무능한줄도 모르고 아집에 사로잡힌 자에게 쥐어진 권력은 미치광이에게 칼을 준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임진왜란 당시 선조의 총애를 받은 간신배에 의해 무고한 옥고를 치른 장수가 어디 한 둘이었나. 이순신 장군은 너무 잘 알려진 사례이지만 이순신 장군의 뒤를 이어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이운룡장군 역시 두 차례나 옥고를 치르고 강등 되었죠.
큰죄 두가지를 들자면 1. 미숙한 판단으로 임란에 대비하지 못하고 왜적에게 고속도로를 열어준 죄 2.19세 처녀장가들 욕심에 서자 지위에 있던 광해군을 준정해 적통으로 삼아 왕위를 탄탄히 하지 못하고 새 대군을 낳아 화근을 만들었다. 결국 훗날 고리타분한 당대 사대부들로하여금 적통논란을 불러일으키며 광해군 체제질서를 위태롭게하고 결국 그 과정에서 쿠데타를 초래, 두 차레 호란을 자초한 점이다. 고로 적어도 통칭으로 하성군으로 낮추는 것이 바람직하다.
동의보감이 임진왜란후 선조때 허준을 시켜 완성됐는데 이거하나 빼고는 이순신 괴롭히다 노량해전에서 죽게 만들고(? 국가에 반역할수없어 죽음의 길을 택한거 같음) 급할때는 승병을 조직하게하여 상을 내린다 하고는 막상 왜가 물러나 전쟁이 끝났을 때는 오히려 사약을 내리거나 죽게함ᆢ왕권도전에 대한 불안이나 열등의식때문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ᆢ
선조는 인물을 등용하는 능력자체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지만 군왕이라 하기엔 속이너무좁은 소인배였고 유능한 장수나 의병장들을 무고하게 의심하고 죽인 크나큰 잘못이 있죠 특히 임진왜란 최초의 승리인 해유령 전투의 승장인 신각 장군을 되지도 않는 이유로 탈영이라며 참수한건 참 어처구니가 없는 처사였습니다 지금이라도 신각 장군을 재평가 해야하는게 맞습니다.
조선 전기에도 200년간 전쟁이 없어 왜란, 호란을 겪고 후기에도 200년간 외침이 없어 일본의 먹이가 됩니다. 장기간 전쟁이 없는 것도 군사력을 약하게 하는 원인입니다. 1894 동학혁명의 진압을 청에게 위탁하였다는게 이미 조선의 명운이 다하였다고 보는 분이 많습니다.
이거 잘 올림 사실 당시 신각이 승전하고도 처형당했던 확실한 이유는 자신이 임란 발발 이후 최초로 빛나는 승리를 거둔 건 분명했지만 그 직후 중요 전투가 끝난후 필수적으로 수행해야 할 전투 결과를 보고하는 문서인 장계를 제때 맞춰서 올리지 않고 늦어지게 했었기 때문임 물론 그게 처형에 해당하는 중대 과실임에는 분명했지만 당시 아군의 승전 사실도 명확히 보고받지 않은 상태로 처형을 명했던 선조의 실책도 확실히 문제가 있긴 했었던
선조에 대한 평가를 주로 능력은 있었다 라고 사람들이 평하는데 조선이란 국가에 대해 이해를 못하는것이라 생각함 조선은 유교의 바탕으로한 성리학을 이념으로 삼은 국가임 전제주의 형태로 보이지만 신하들과 타협과 소통을 하며 정치하는 시스템임 즉,왕의 절대권력으로 독재를 하는것이 아니라 정책을 논의하고 소통하며 정당이 상생하는 것을 추구했음 그 정치의 근본이되는게 성리학임 근데 왜란 중에 선조가 보인행태는 오로지 자신의 안위를 위한 것들뿐이였음 전란 중이라 국가행정시스템이고 뭐고 마비됐다해도 신하들 간언 무시하고 요동까지 런하려니까 오죽하면 선조라인 신하들도 앞에서깔정도였음 그리고 선조시대에 이순신 파격 인사권에 대해 공으로 삼는데 류성룡뿐만아니라 이산해 정언신 추천도했었고 을묘왜변을 본보기삼아 적임자를 앉히단거니 이순신이 적임자라 고속승진한거임 지금으로 치면 안보실장 국방부장관이 추천한거니까 그리고 선조시대의 인재들은 그냥 어벤져스급인데 그 인재들가지고도 나라꼴을 그꼴로 만든게 용할지경임 왜란은 감지해서 대비한것도 알고 의논한것도 알지만 그걸 수용하려하지않았음 이이가 생전에 만언봉사 상소가 대표적임 제도개혁에 귀를 열만한 뛰어난 정치감각이 있었다면 선조가 수용했어야함 류성룡이 이이의 양병설을 반대했다어쨌다 그건 둘째사안이고 선조는 태평성대에 피어난 수많은 유학자들과 인재를 가지고도 겨우 국가를 보존한 군주일뿐임 그것도 사대에 의존해서 구했다고 자부함 그걸 증명하는게 공신책봉에서 들어나는건 누구나 알것이고 이런 암군이 전성기때 깔아놓은 비단길에 몇가지 업적이뤘다고 재평가운운하는게 어이가없을뿐임
이 사건은 누구 한 사람의 과오라기 보단 김명원과 신각의 갈등과 불화에서 비롯된 사고였음. 도원수 김명원은 문관으로 군사적 식견을 갖추지 못한 인물이였고, 부원수 신각은 그러한 김명원을 지휘관으로서 상당히 불신했음. 그런 상황에서 김명원이 한양 방어를 포기하고 임진강으로 퇴각을 결정하자 신각이 여기에 크게 반발했음. 신각은 상관인 김명원을 무능한 겁쟁이라고 비난하며 명령에 불복하여 임진강으로 가지 않고 양주로 가서 김명원과 연락도 끊어버렸음. 김명원 입장에선 부원수 신각이 임진강에 합류하지 않고 멋대로 양주로 가선 연락도 끊으니 전선을 무단 이탈해서 잠적한 것으로 판단할 수 밖에 없었음. 이는 명백히 명령 불복종 즉 항명임 김명원은 당연히 신각의 항명을 조정에 그대로 보고했는데, 마침 그때 조정은 군이 연패를 한 건 군 기강 해이에서 비롯되었다며 엄한 군법을 적용하여 기강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입장을 정하고 있었음. 그런 상황에서 '부원수 신각'의 항명 사건은 기강을 잡기 위한 본보기 사례로서 처리됨. 당시 경상병사 이각도 도주 중에 임진강에서 체포되어 처형 되는 등 적전 도주한 장수나 관리들을 색출해 극형에 처하는 조치들이 실행되던 중이였음. 평소 같으면 진위 파악을 위한 조사부터 했겠지만 수도까지 내어주고 피난한 비상 상황이라 진상 조사도 생략하고 즉결 처분 수준의 사형 집행을 감행했음. 그러나 뒤늦게 신각이 올린 장계를 통해 신각이 비록 김명원에 항명한건 사실이나 도주를 한건 아니고 양주에서 독자적으로 군사 활동을 지속했고 승전까지 올렸음이 확인되자 처형은 과도한 조치라 판단하고 이를 취소하러 관리를 파견했지만 이미 늦었던 것.
어리석은 군주나 상관은 적 보다 못하다.
도망간 놈이 승장을 멋대로 처형시키다니
신각장군이 살아계셨다면 임진왜란 동안 또다른 공적을 쌓았을 유능한 장수였을텐데..참 안타깝네요.
새로운 역사를 알게 해 주신 주 피디님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저러니 누가 나라를 위해서 목숨까지 걸고 헌신하려하겠는가ㅡㅡ
나라와 임금은 다릅니다!!!
임금은 없어도 살지만 나라가 없으면 모조리 노예가 되고 마는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종북하는 잡스런 자들이 새겨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뜻은좋은데 일본앞잡이시키가 못된거지 빙딱한놈
북한에게 침략당한건 국민의 혹독한 삶이지만
일본에게 점령당한 식민지는 거러지 인생이란걸 모르냐
제국주의 흑인삶에서 노예의 삶을 알수가 잇다
그런명분도 모르는 시키들이 주둥이터냐
욕하고시푸면 순서가
일본앞잡이시키부터 주둥이털고 시작해라
존만한것아@@沁心-e3h
친일도 마찬가지
실제로 선조 때문에 이후 병자호란땐 의병도 제대로 안 일어나고 아무도 제대로 싸우려하지 않음.
그래서 병자호란때 그렇게 처참하게 털린이유죠
신각 장군님과 무명의 조선 군인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편안히 잠드소서 ~~~
선조같은 임금은 진즉 버렸으야 했는데,
그랬으면 칠천량해전이 없었죠
정신차리고 윤씨나 빨리 버려 선조보다 더한 놈이니까
선조는 임진왜란 끝나고 제일먼저 광화문에 효수했어야 될 놈이었다
무능해서 이순신을 죽게만든자다.
9:27 조선이 버린 장군을 대한민국이 받들다. 감사히 잘 봤습니다.
선조는 왕이 되면 안될 인물이네요 ㅠㅠ 정말 참담합니다
선조대왕 모욕하지 마세요 이순신을 7계단 파격승진 시켜서 나라를 지킨것도 선조고 도망 잘가서 왜군의 포로가 되지않은것도 명군20만대군 파병 이끌어낸것도 선조대왕 입니다
뭐 그렇게 칭송하는 세종이나 정조 같은 임금이라고다를거 같나요
무능한줄도 모르고 아집에 사로잡힌 자에게 쥐어진 권력은 미치광이에게 칼을 준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임진왜란 당시 선조의 총애를 받은 간신배에 의해 무고한 옥고를 치른 장수가 어디 한 둘이었나.
이순신 장군은 너무 잘 알려진 사례이지만 이순신 장군의 뒤를 이어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이운룡장군 역시 두 차례나 옥고를 치르고 강등 되었죠.
김명원은 자기 휘하를 보호하기는 커녕 한강 방어에 실패한 책임을 신각장군에게 떠넘긴 혐의가 보인다.
잘알려지지않던 숨겨진 장군 ᆢ 선조의. 무능때문에. 안타깝게 사라지신분 기억해야될 조상님들 ᆢ영상감사
글쎄 무능이라고볼수있을까 ?
장계는 정식보고임 사령관이 부사령관이 도망갔다고 보고했는데 그럼뭐라 답을내려 ?
거기다 한가롭게 잡아와서 문초라도 하면서 이유물어보고 뭐 그렇게하라고할까 ?
전시에 탈주는 병사라해도 어느시대를 막론하고도 사형에처할수있는데 ?
그렇게 잡아오는 놈들이 뭐 곱게 탈주했다고할까 ? 대부분 살기위해 이런저런 변명을 늘어놓게됨
우리가 보는 시점상으로는 전쟁초반이지만 당시 시점에서는 당장 수도도 뺴앗긴상황이니 일벌백계차원의 강경한 조치는 어찌보면 당연한처사임
상황이 안타까울뿐이지만 뭐 그걸 다꿰뚫어볼정도면 무당을하지 왜 왕을하고있겠냐 ?
선조가튀어서 이순신잡아들여서 뭐 이런걸로 욕하고싶은건알겠는데
그렇다고해서 무지성으로 모든걸 싸잡아서 욕하는행위가 정당화되지는않음
신각 장군님... 부디 평안히 영면하소서...
그 이름 후대에 잊지말라 후손에 전하겠습니다.
충성...
잘 들었습미다. 편안한 목소리가 좋아요
선조의 예우를 왕이 아니라 군으로 낮춰야 합니다.
큰죄 두가지를 들자면 1. 미숙한 판단으로 임란에 대비하지 못하고 왜적에게 고속도로를 열어준 죄 2.19세 처녀장가들 욕심에 서자 지위에 있던 광해군을 준정해 적통으로 삼아 왕위를 탄탄히 하지 못하고 새 대군을 낳아 화근을 만들었다. 결국 훗날 고리타분한 당대 사대부들로하여금 적통논란을 불러일으키며 광해군 체제질서를 위태롭게하고 결국 그 과정에서 쿠데타를 초래, 두 차레 호란을 자초한 점이다. 고로 적어도 통칭으로 하성군으로 낮추는 것이 바람직하다.
선조? 그새끼 ` ~그 개새끼라 하자 ~ 역사가 말을 하자 ~그래야 지금도 ~역사를 무서워하지~
군. 이아니고역적의명부에올려야합니다
김명원은 역사적 기록을 남겼다
신각장군을 도망갔다고 보고하다니
어처구니 없다
지도자의 중요성을 느끼게 해 줌.
"주피디의 역사여행" 오늘도 유익한 도움이 되어 감사 드립니다.!!🙏🙆♂️🙋♂️💕💕
역사탐방을 통한, 차분하면서도 절제된 듯한 편안한 해설, 주제의 범위도 교양과 세세한 전문적부문의 선상에 있는 듯한 해설 좋습니다.
@@한동주-o2t 감사합니다.~~
호남의 의병장 김덕령장군도 억울한 죽음을ㅠㅠ
인조때 죽은 정문부, 임경업 장군도 억울하게..
김덕령장군은 기록의로는 전공이없고 군률을 엄격히해 사람들을 맘대로 죽이고 다녀서 원한이 많았다고하내요 선조가 괜히 죽인건
김덕령장군은 기록의로는 전공이없고 사람들을 함부로 죽이고 다녔다고하내요 선조억울
김덕령장군은 기록상에는 전공은없고 사람을 함부로죽여 원한이많았다내요 선조억울
선조
이건 한민족의 철천지 원수다
주피디님 ㆍ고맙습니다
역사 강의 잘받고 갑니다
주교수님👍👍👍
선조는 연산군보다 더 악질인 인간 개차반중에 개차반
동의보감이 임진왜란후 선조때 허준을 시켜 완성됐는데 이거하나 빼고는 이순신 괴롭히다 노량해전에서 죽게 만들고(? 국가에 반역할수없어 죽음의 길을 택한거 같음)
급할때는 승병을 조직하게하여 상을 내린다 하고는 막상 왜가 물러나 전쟁이 끝났을 때는 오히려 사약을 내리거나 죽게함ᆢ왕권도전에 대한 불안이나 열등의식때문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ᆢ
선조라고 하면 우선 총살감의 임금 ???
침략 5일만에 조정에 보고 되다니 상식으론 도저히 이해가 안된다.
왜 그랬지?
봉화도 있고 파발도 있었을텐데 ...
선조는 인물을 등용하는 능력자체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지만 군왕이라 하기엔 속이너무좁은 소인배였고 유능한 장수나 의병장들을 무고하게 의심하고 죽인 크나큰 잘못이 있죠 특히 임진왜란 최초의 승리인 해유령 전투의 승장인 신각 장군을 되지도 않는 이유로 탈영이라며 참수한건 참 어처구니가 없는 처사였습니다 지금이라도 신각 장군을 재평가 해야하는게 맞습니다.
대인배요? 소인배겠죠.
@@동네한바퀴-n5y 잘못적었는듯 ㅇㅇ
주피디 설명과 목소리 최고요.
선조 이게 왕이 라고
안 그래도 어려운 정세에 이런 게 왕이었으니, 고생과 비극은 백성들이 다 겪었을 터...
안타까운 역사 당시 혼란했던 조선을 대변해주는 사건 여기 저기 관군들이 도망 가고 정보 전달 체계도 거의 무너진 때라 이런 일이 벌어짐
징병ㆍ소집체제도 엉망였나요?
정말 무능 무능한 선조 휴 휴
신각 장군 후순분들이 부럽습니다 충신중에 충신 입니다❤
목소리 넘 좋아요
@@다봉이-f9q 고맙습니다.~~^^
전쟁중에 한명의 장수라도 귀하거늘 신중하지 못하고 어쩜 저리 장군 목숨을 쉽게 거둘까
선조 이세끼는 왕이 되지 말아될 놈어 되어서 임진왜란 당시 조선왕조가 막 내렸으면 어때을까..
결국은 국민들이 단결을 해야 전쟁에서도 승리할 수 있어... 전시에 장군을 목을 베다니...정말 역사 이래로 선조같은 무능한 임금도 없을것...
역사 이야기를 많이 다루어 주세요ㆍ수준낮은 유트버들에게 경종을 ᆢ
전문가의 체널이 더 존중 받아야 해요
잘알았습니다. 좋아요 하고 갑니다. 감동했어요
선조능은 안파헤어 쳐진게 감지덕지다.
잘 몰랐던 소소한 역사에 대해 많이 배웁니다!
조선이란 무능한 왕조가 500년을 지속했다니 민초들의 고생을 어찌 헤아릴까?
선조~~
또 다시 부끄러운 그 이름을 올리는구나.......
선조 인조 고종 순종 과연 왕 자격이 있는가?
한마디로 보면 전시상황에서는 최고로 선조가 무능한 거죠
승리를 한장수를 사형시키고 또한 해전에서 연전연승하던 이순신을 죽일려고 했으니 엄청 심각하게 무능한 겁니다.
깜이 안되는 인물이 최고 통치자나 지휘관이 되면 어떤 비극이 일어나고 나라와 국민들이 심각한 위기에 내몰리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황이네요
1등으로 댓글 달고 싶었습니다 ㅎㅎ
덕분에
역사 공부 잘 하고 있습니다 ^~^
부국강병 유비무환 입니다 역사는 반복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조선 전기에도 200년간 전쟁이 없어 왜란, 호란을 겪고 후기에도 200년간 외침이 없어 일본의 먹이가 됩니다. 장기간 전쟁이 없는 것도 군사력을 약하게 하는 원인입니다. 1894 동학혁명의 진압을 청에게 위탁하였다는게 이미 조선의 명운이 다하였다고 보는 분이 많습니다.
@@FKiller7235수정~~감사 합니다.!!🙏
@@형순철 넵~~✨️
권력을 가장 비열하게 사용한 왕
경력이 말해주듯 깔끔한 영상입니다!
안녕하세요 오지환입니다 반갑습니다
말 탄 왜병 3명 나오는데 회면상 오른쪽 승려가 임진왜란 후에 조선에 담배를 전파한 인물이죠
아! 안타깝도다!
선조라는 자....
조선 최고의 드으응시인 왕,
선조, 인조, 고종...
충무공이순신께서도 녹둔도 만호시절 여진족과 중과부족인 상황에서 고군분투 해서 조선백성들을 구했지만 북병사 이일의 거짓장계 때문에 백의종군 한적이 있죠.
5천년 역사 이래 임금이라 할 수조차 없는 최악의 임금. 하성군 이휘
슬픈😭신각 장군
지휘체계 2원화가불러온 참사. 당시는 지금처럼 전기통신이 없던 시절이고 정보전달 보고 체계에서 오류가 발생해 저런 일이 종종 있었음.
전주이씨라고 하는 인간들!!!! 평생 반성하면서 살아야 한다.
얼마나 억울했을까... 주변애들은 또 얼마나 황당하고 정상적 판단력이 망가져 버렸을까나...
미래를 본건가 이순신장군님은
하성군.... 뭐 워낙 말종 짓을 많이 한 인간이라 이런 일은 황당 하지도 않음.
저런게 왕이라니.
이거 잘 올림 사실 당시 신각이 승전하고도 처형당했던 확실한 이유는 자신이 임란 발발 이후 최초로 빛나는 승리를 거둔 건 분명했지만 그 직후 중요 전투가 끝난후 필수적으로 수행해야 할 전투 결과를 보고하는 문서인 장계를 제때 맞춰서 올리지 않고 늦어지게 했었기 때문임 물론 그게 처형에 해당하는 중대 과실임에는 분명했지만 당시 아군의 승전 사실도 명확히 보고받지 않은 상태로 처형을 명했던 선조의 실책도 확실히 문제가 있긴 했었던
고구마 천개먹은 느낌 후... 세종대왕이 아니었으면 조선은 우리역사 최악의 시대가 아닐까 결국 몇천년을 독립국가로 살던 한반도를 일본에 내줘버린 왕조...
이런 역사가 있었다니요
잘 배웠습니다
못난임금 선조
참 잘했습니다.
무능한 왕 선조 충신도 모르는 왕 선조 ~ 수고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
신각이 총사령관 허가없이 한강에서 후퇴해서 양주까지 밀려난건 도망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닌듯! 자신의 과오를 덮기 위해 기습전투를 통해 전과를 올리기는 했는데 사령관과 연락을 유지해야 할 의무가 있었던것으로 보이네요
김명원은 신각의 사건 이후로 섣부른 판단으로 억울한 일이 없어야 한다며 굉장히 신중했었다고 합니다 잘 봤습니다
조국을 지키는 와중에
항변도 안 들어주는 선조 _ 김명원
부관 - 신각을 끌어내는 ..
육전을 이겼던 장수를 죽이는 선전관
조정에는 승전보가 날아들었고 ..
해유령 전투 - 부원수 신각 ..😢
김덕령도 마찬가지
우리동네인데.......다시한번 상기 합니다
해유령 전적비 한번 구경하구 와야 겟다... 보니까..비암리에서 양주로 가는길이네..비암리는 군대에서 엄청 지나댕겻던길인데....
그렇군요 선조는 왕이 되지 말았어야 했어요
단군이래 최고의 무능한 왕..선조... 조선의 수치다!!
선조는 권력을 국가를 위하지 않고 개인을 위해 사용하여 승전한 개인을 죽였으니 부관참시가 답이다
역사를 바로잡고 원혼을 달랩시다
조선 최악의 임금...?
선조나 작금의 현상황이 왜이리 오버랩 될까😢😮😢😮
노예제 국가 조선을 위해 죽는 것은 미친짓이였다
지금도 똑같은 꼴이로구나😢😮
선조나 인조는 없었어야 한다, 역사는 되돌릴 수 없어니,
한국역사의 치부가 드러난 수치스러운 사건의 한편….
병자호란 임진왜란 원균 선조같은 역사 영화 그림 불효를 못하게 배우게 해야
고려부터 조선, 일제점령기,6.25 우리 조상은 어떻게 살아남아서 내가 태어났을까? 대단하다~ 한 전투에서도 저렇게 많이 죽는데.. 역사 스페셜로 내 조상이 살아남았었던 과정을 보고싶다~~~~
님의 조상님들도, 우리 조상들처럼 산속으로 피난했을 겁니다.
이런 한심한 왕들의 조선 그러니 그 후손 놈들이 일본에게 싸워 보지도 못하고 나라가 망했지
선조가 멍청하다고 욕하지만 지금 정치인들보면 답 나오잖나? 권한이 많으면 다 저리된다고 봅니다.
선조에 대한 평가를 주로 능력은 있었다 라고 사람들이 평하는데 조선이란 국가에 대해 이해를 못하는것이라 생각함
조선은 유교의 바탕으로한 성리학을 이념으로 삼은 국가임 전제주의 형태로 보이지만 신하들과 타협과 소통을 하며 정치하는 시스템임
즉,왕의 절대권력으로 독재를 하는것이 아니라 정책을 논의하고 소통하며 정당이 상생하는 것을 추구했음
그 정치의 근본이되는게 성리학임
근데 왜란 중에 선조가 보인행태는 오로지 자신의 안위를 위한 것들뿐이였음 전란 중이라 국가행정시스템이고 뭐고 마비됐다해도 신하들 간언 무시하고 요동까지 런하려니까 오죽하면 선조라인 신하들도 앞에서깔정도였음 그리고 선조시대에 이순신 파격 인사권에 대해
공으로 삼는데 류성룡뿐만아니라 이산해 정언신 추천도했었고 을묘왜변을 본보기삼아 적임자를 앉히단거니 이순신이 적임자라 고속승진한거임 지금으로 치면 안보실장 국방부장관이 추천한거니까
그리고 선조시대의 인재들은 그냥 어벤져스급인데 그 인재들가지고도 나라꼴을 그꼴로 만든게 용할지경임
왜란은 감지해서 대비한것도 알고 의논한것도 알지만 그걸 수용하려하지않았음
이이가 생전에 만언봉사 상소가 대표적임 제도개혁에 귀를 열만한 뛰어난 정치감각이 있었다면 선조가 수용했어야함 류성룡이 이이의 양병설을 반대했다어쨌다 그건 둘째사안이고
선조는 태평성대에 피어난 수많은 유학자들과 인재를 가지고도 겨우 국가를 보존한 군주일뿐임 그것도 사대에 의존해서 구했다고 자부함
그걸 증명하는게 공신책봉에서 들어나는건 누구나 알것이고 이런 암군이 전성기때 깔아놓은 비단길에 몇가지 업적이뤘다고 재평가운운하는게 어이가없을뿐임
오해. 오해로구나. 애석한일
선조는 무신~~
걩 이연이라 이름만 불러 주어도 과분 하지요
참으로 안타까운 사연
그후로 의병장 들도
좋은 의미로. 출정하였지만
결과는 시큰둥!
역사는 돌고도네요~
구중궁궐에서 작전지시라고 내린 어명이 가소롭다.
선조가 왕이가
그러니깐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쳐봐야 ~ 오히려 죽음을 당한다 그냥 망하도록 ` 놓아두고 ~왕은 돼지단 말던 ~ 두고 살길을 `
이 사건은 누구 한 사람의 과오라기 보단 김명원과 신각의 갈등과 불화에서 비롯된 사고였음.
도원수 김명원은 문관으로 군사적 식견을 갖추지 못한 인물이였고, 부원수 신각은 그러한 김명원을 지휘관으로서 상당히 불신했음.
그런 상황에서 김명원이 한양 방어를 포기하고 임진강으로 퇴각을 결정하자 신각이 여기에 크게 반발했음. 신각은 상관인 김명원을 무능한 겁쟁이라고 비난하며 명령에 불복하여 임진강으로 가지 않고 양주로 가서 김명원과 연락도 끊어버렸음.
김명원 입장에선 부원수 신각이 임진강에 합류하지 않고 멋대로 양주로 가선 연락도 끊으니 전선을 무단 이탈해서 잠적한 것으로 판단할 수 밖에 없었음. 이는 명백히 명령 불복종 즉 항명임
김명원은 당연히 신각의 항명을 조정에 그대로 보고했는데, 마침 그때 조정은 군이 연패를 한 건 군 기강 해이에서 비롯되었다며 엄한 군법을 적용하여 기강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입장을 정하고 있었음. 그런 상황에서 '부원수 신각'의 항명 사건은 기강을 잡기 위한 본보기 사례로서 처리됨. 당시 경상병사 이각도 도주 중에 임진강에서 체포되어 처형 되는 등 적전 도주한 장수나 관리들을 색출해 극형에 처하는 조치들이 실행되던 중이였음.
평소 같으면 진위 파악을 위한 조사부터 했겠지만 수도까지 내어주고 피난한 비상 상황이라 진상 조사도 생략하고 즉결 처분 수준의 사형 집행을 감행했음.
그러나 뒤늦게 신각이 올린 장계를 통해 신각이 비록 김명원에 항명한건 사실이나 도주를 한건 아니고 양주에서 독자적으로 군사 활동을 지속했고 승전까지 올렸음이 확인되자 처형은 과도한 조치라 판단하고 이를 취소하러 관리를 파견했지만 이미 늦었던 것.
제대로 배우신분
사람사이 정치가 있었네요
조선 왕들은 괜잖은 왕이 거의 없음ᆢ
조선 28대 군주 중 제일 우둔했던 군주가 선조입니다.
제일 꼴지 인데 조금 후면 꼴찌 순위를 가져 갈 자타 왕이 나올지 모릅니다.
어리석은 왕 때문에 임진왜란 당했다
양반이 늘어나면 당연히 노비는 늘어날수밖에 없는 구조임. 당연히 양반이라는 기득권들은 노비를 늘리는데는 혈안이될것이고 고려시절은 소수의 귀족들이 지배하는 시절이라 노비는 제한될수밖에 없음. 애초에 양반사회로가면 안되는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