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상사, 요정 대원각의 아름다운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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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Опубликовано: 6 фев 2025
- 서울 성북동에는 '길상사'라는 예쁘고 특이한 사찰이 있습니다.
이곳은 원래 유명한 요정 '대원각' 이 있던 자리였는데,
1995년 사업주인 김영한 여사(1915~1999)가 말년에
재산의 사회환원을 결심하고, 법정 스님에게 간청하여
절로 만들어 달라고 했고, 법정 스님이 이 요청을 받아들여
1997년에 길상사를 창건하게 된 것입니다.
그 후 법정 스님은 길상사의 회주(會主)로 주석하다가
2010년에 입적하셨습니다.
길상사는 서울의 도심사찰이지만 깊은 숲 속에 있는 듯,
찾는 사람들에게 몸과 마음의 휴식을 주는 공간이 되고 있습니다.
작품같은 영상에 감동이 벅찹니다.
길상사를 너무 예쁘게 담아주셔서.
건강 평안하십시요 ()()()
변변치 않은 영상에 멋진 격려 말씀 주셔서 감사합니다.
길상사는 정말 아름다운 사찰입니다.
참으로 본받을만한 분입니다 그 큰 전재산을 이렇게 멋지게 남기시고 떠나신 자야(김영한)할머니 언제 시간되면 가보고 싶군요 멋진 마지막 장식을 하시고 떠나셨네요 극락왕생 하소서 나무아미타불🙏
그렇습니다. 김영한 부살님은 정말 대단한 업적을 남기셨지요. 인생의 마지막에 멋진 선택을 하고 부처님 품으로 돌아가신 듯 합니다.
좋은글과 영상들에 알기 쉽게 설명까지 해주셔서 대단히
감동받고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제 부족한 유튜브를 방문해주시고 따뜻한 격려말씀도 남겨주셔서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더 좋은 작품 만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생전에 법정스님친견없었어도 법문많이듣고있었읉때 법정스님다비식날 기도를해드렸는데 꿈을꾸었거든요.그래서물어물어길상사를찾아갔었지요.
그런 히스토리가 있었군요.
아마도 전생에 법정 스님과 억겁의 인연을 쌓으셨던가 봅니다,
길상사 참 아름답네요~ 덕분에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오래 전에 올린 동영상을 찾아와 주셔서 좋은 말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법정스님이 말년을 보내신 곳이라니 정감이 가네요.
스님의 단아한 성품대로 정갈함과 경건함이 절로 우러나는 듯 합니다.
일전에 보신 우리옛돌박물관과 600m 거리에 있답니다.
다음에 오시면 두곳을 하루에 보시면 좋지요..
가까운 곳에 서울에서 유명한 보리밥집도 있답니다.
요정 대원각에서 길상사로 변신한 내력을 잘 보고 갑니다.
김영한 보살님 참 대단하시군요. 형통.
우와~! 제 유튜브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말로만 듣던 대원각이 아름다운 길상사로 변신했군요 잘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그야말로 아름다운 변신이지요.
김영한 보살님이 정말 큰 일을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꼭 가보고 싶습니디
제 유튜브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서울 시내에 있는 사찰이니 기회 만들어서 가보시기 바랍니다.
길상사의 모습도 참 멋지게 잘 담으셨네요~~
설명도 알차서 많이 배우고 갑니다^^
방문해 주신 것 만도 감사한 일인데, 멋진 찬사까지 남겨주셔서 힘이 납니다.
요정이 이렇게 멋진 변신을 했다니 믿어지지 않네요
다음번에 꼭 한번 찾아 봐야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전에 참 대단한 요정이었지요.
저도 80년대에 세 차례 정도 가 본 기억이 있습니다.
길상사가 이렇게 웅장한 모습인줄은 몰랐습니다.
기회가 되면 꼭 방문하겠습니다. 조 부회장님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길상사는 정말 멋진 곳입니다. 저는 80년 대 중반부터 90년 대 초반까지
이곳에서 외빈을 접대하며 몇 차례 식사를 하거나 술을 마신 적이 있어서
이곳에 가니 감회가 새롭더라구요. 정말 아름다운 변신이었습니다.
부회장님 유튜브는 국보급입니다!!
아이구 변변치 않은 글인데 비행기를 너무...
나는 법정스님 책을 출판하여 나오는대로 계속 사서 보았읍니다
법정스님은 김영한보살에게 대원각을 시주 받고 어떻게 꾸며서 정리정돈할것인지 같이 의논도 하고 속가사촌이었으나 출가한 스님을 길상사 초대 1번째 주지로 임명하고 함께 의논하고 계획하였고 1달에 한번 법문 요청을 받으면 법문을 하고 신도들과 함께 대화도 하고 사진도 찍고 하여 준 다음에 1일 하루밤도 길상사에서 잠을 자지 않고 강원도 오두막으로 떠난다고 글을 썼다 그 이유는 대원각을 시주 받았다고 하여 내 사찰이라는 집착심 애착심이 자라날까 우려되어 무소유의 마음 자리로 거리를 두가 위해서라고 하였다 그런데 말년에는 길상사에서 생횔하는 공간 집1채를 암자처럼 같이 사용하며 살았네요 법정스님은 죽기전까지 계속 책을 리모델링하여 추려서 발간 하였다 그러나 길상사에서 생활하고 있다거나 생활하게 되었다는 말은 한마디도 없었다 그리고 법정스님은 죽기전에 불교 성철스님책 1.2.권을 다큐책처럼 써서 성공시킨 정찬주 작가를 불러서 법정스님의 어린시절 속가에서 자라며 겪었던 일들도 구술로 이야기 하여 주며 법정스님이 죽고 나면 법정스님에 대한 책도 다큐책처럼 써서 출판하여 줄것을 요청하였다 정찬주 작가도 하고 싶은 작품이기에 흔쾌히 수락했고 법정스님이 죽고 다비식이 끝나고 나서 정찬주 작가는 법정스님 책을 써서 출판하여 서점에 진열하였다
나는 서점에서 정찬주가 쓴 법정스님 책을 끝까지 다 읽으며 굵은 눈물이 줄줄줄 하염없이 흘러 내리는 상태에서 끝까지 다 읽었다 서점 주인과 고객들이 여러명 있었지만 나는 눈물을 흘리며 계속 끝까지 읽었다
법정스님의 어린날과 사춘기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상황에서 겪은 심리적인 고통심경과 가정환경의 부담스러웠던 힘겨움이 마음으로 헤아려져서 눈물이 멈추지 읺았다
법정스님은 목포에서 멀리 떨어진 섬에서 태어나고 자랐고 재산이 조금 있는 집안이었으나 아버지는 어린날에 일찍 돌아 가셨다고 한다 그리고 작은아버지가 집안 재산을 관리하고 안채주택을 사용하고 사랑채에서 어린 법정과 어머니와 할머니가 기거하며 살았고 어머니와 할머니는 농사일도 하고 남의 집 농사일 품삵일도 하면서 살았고 작은아버지는 선착장에서 매표소와 매점을 운영하며 돈을 벌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학교 다닐때 등록금을 작은아버지에게 타서 다녔고 어머니와 할머니가 많이 감싸 주는 사랑으로 어린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그런데 남자인 법정스님이 중학생때 아버지도 돌아 가시고 없는데 어머니 배가 불러오기 시작 하더니 10달이 되자 여자아이를 출산 하였다는 것이다 법덩스님은 여동생을 살갑게 예뻐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목포에 방1칸을 얻어서 자취 생활을 하며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제일 힘겨운 것이 작은아버지가 항상 등록금과 방세 생활비를 주시면서 생색을 내서 함들었다고 한다 어머니와 할머니가 일을 하여 번 돈을 보태서 법정스님의 학교 생활이 유지됐다 법정스님은 전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합격하여 등록금을 타러 갔는데 작은아버지의 생색 내는 소리가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다고 한다 법정스님은 1학년 1학기를 다니고 휴학 하여ㅛ다고 한다 그리고 심적으로 많이 방황하다가 목포 시내에 포교당이 있는 곳에 찾아가서 잠시 있으면서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나중레는 포교당에서 스님과 함께 숙식생활을 하며 불교에 대한 지식을 더 많이 습득하고 기도 생활도 병행 하다가 출가 하고 싶은 마음생각으로 전환 되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스님에게 출가하고 싶다고 말하자 통영 미래사에 이었던 효봉스님을 소개하여 주어 찾아가서 뵈었고 효봉스님의 가르침을 받으며 출가하게 되었다고 한다 법정스님은 마음 한구석에 어머니와 아버지도 모르는 여동생에 대한 생각이 편치 않아서 왕래를 하지 않다가 송광사 소속 산위에 있는 폐허가 된 불일암을 다시 불사시주로 건축하고 나서 계속 수행정진하며 책을 출판하며 생활 하다가 40년만에 섬마을에 있는 어머니와 시집간 여동생을 불일암으로 초대하여 만났다고 한다 법정스님은 송광사에서 어머니와 여동생을 만나서 불일암으로 걸어서 걷고 걸으며 올라가다가 작은 개울가에서 어머니를 등에 업고 건너 주었고 불일암에서 몇일 같이 생활하면서 40년만에 어머니와 여동생과 화해를 하였다는 말을 정찬주 작가에게 구술하여 주었고 법정스님이 죽고 나서 책으로 출판을 하라고 부탁을 하였다고 한다
지방입니다.
아름다운가을날에.
꼭가보싶습니다.
서울역에서.길상사갈수있는방법.
안내좀부탁드려도될까요?
저도 평소에 차를 가지고 다녀서 타 본 적은 없지만, 서울역 전철역에서 4호선을 타고 한성대 입구역에서 타셔서 '성북2호' 마을버스를 타고 길상사 앞에서 하차하시면 될 듯 합니다. 마을버스는 배차 간격이 15분 정더라고 하구요 마을버스를 얼마만에 타는가에 따라 서울역에서 40분~50분 정도 소요될 것 같습니다.
영상 마지막 코멘트
"전재산을 던져서 뒷날 많은 사람들에게 몸과 마음의 안식처를 제공하신"
이란 말은 후사를 앞둔 이들이 꼭 새겨들을만한 지침으로 생각됩니다.
그렇습니다. 절대로 쉬운 일은 아니었지요.
덕분에 뒷날 수많은 사람들이 멋진 사찰 속에서 영혼의 힐링을 얻게 되었으니...
네, 길상화로알려진, 김영한 보살님의 보시, 우리불교인모두 은혜를 영원히 간직합시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
그래야겠지요. 저는 절이 좋아서 찾아다니는 수준이기는 하지만 김영한 보살님은 독실한 불자로서 가장 보람된 선택을 하신 것 같습니다.
네, 깊은 관심 매우, 감사합니다 ^^@@TV-pp9it
나는 왜 허리골절의 실험대상이 되었을까?
허리가 아프면 참기 힘들 정도로 고통이 심합니다. 어떤 때는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죄수들이 나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고통이 언제 끝나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허리 통증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천벌을 받은 존재라는 절망감에 사로 잡히기도 했습니다,
하여 허리 통증의 정확한 원인과 통증과 운동과의 상관관계를 알아서 허리 통증의 근본적인 해결방법을 찾고자 위험을 무릅쓰고 허리를 골절시키는 실험을 했고,실험은 운 좋게도 성공적이었습니다.
제가 실험한 결과 허리 통증은 이렇습니다.
허리 통증은 질병이 아니라 자신의 체중이 누르는 중력을 견딜 만큼 허리 주변 근육이 단련되지 않아 나타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철봉에 매달리고 윗몸 일으키기 운동기구에 상체는 아래로, 하체는 위로 매달린 후 윗몸 일으키기를 하면 통증이 완화됩니다.
허리통증을 없애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무거운 것을 들어 올리는 역도와 높은 산을 오르는 것이 허리 주변근육을 단련시켜 허리통증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습니다.
2017년 5월 초, 저는 척추전방전위로 13mm가 어긋나 있었고, 요추 4번과 5번 사이 디스크가 87%가 파열되어 없어졌으며, 흉추 11번이 30%가 골절로 손상되어 없어졌지만 요추는 골절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저는 허리 통증과 운동과의 상관관계를 입증하기 위해 무리하게 역도를 하는 등의 방법으로 일부러 허리에 문제를 일으켜 고통을 유발하고, 그것을 운동으로 극복해 보기로 결심했습니다.
2017년 5월 12일부터 14일까지 무리하게 역도를 하는 등 무리한 운동을 하여 요추 2번이 압박골절로 20%가 손상되는 중상을 입었습니다. 면도날로 허리를 도려내는 듯한 통증이 찾아왔습니다. 저는 고통을 참으며 윗몸 일으키기와 두 다리를 동시에 들어 올리는 등의 운동을 두 달 동안 매일 아침마다 했습니다. 그렇게 고통 속에서 운동을 한 결과 일어날 수 있었고, 드디어 7월 15일에는 사전 준비 운동 없이도 가볍게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위와 같이 허리를 다쳐도 운동으로 극복했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7월 24일 오대산을 5시간 산행한 후, 7월 29일 병원에 갔더니 요추 2번이 압박 골절로 20%가 손상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 후에도 설악산 대청봉을 즐겁게 등산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제가 요추를 일부러 손상시켜 고통을 유발한 뒤에 그 상황을 극복한 것은 허리 통증은 더 이상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 위함이었습니다. 아무나 허리를 부러뜨리고 설악산 대청봉을 등산할 수 있다면 저는 굳이 위험한 실험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구상에서 어느 누구도 허리 통증의 정확한 원인을 알고자 일부러 허리를 부러뜨리는 실험을 했다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제가 실험을 한 것입니다.
허리 통증의 원인을 알아서 그 원인을 제거하는 운동을 하면 누구나 허리 통증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저의 실험은 그런 사실을 널리 알려 허리 통증으로 고통 받는 분이 없기를 희망하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WHO. 미국대통령.하바드대 의과대학 .주한 독일 프랑스 영국.스웨덴 이탈리아 대사관에도 보내드렸습니다.)
사람은 왜 목 허리 무릎이 아플까?
저자 법무사 이 희 숙 서초동
010-5250-4802(무료)
동국대불교대학원 31기
법정스님이 길상사 회주스님이신건 맞지만 주석하시진 않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 그랬었군요. 제가 잘 몰랐네요.
열반에 드신날 하루 주무신걸로 알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