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아(無我)가 참나로 둔갑한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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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3 янв 2025

Комментарии • 77

  • @danyesophia
    @danyesophia  2 года назад +1

    단예소피아 추천채널
    [아리수가 유튜브] ruclips.net/channel/UCzkTlLKcQ6m6vhTWN8malCQ
    [아리수가 공식블로그] blog.naver.com/arisuga2021/222586795422

  • @무위자연-s2j
    @무위자연-s2j 3 года назад +11

    영상감사합니다 🙏

  • @성수동-s9s
    @성수동-s9s 3 года назад +13

    쉽게 편안하게 포장된 글입니다 부처님말씀중 핵심은 탐욕집착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는 바른길인데 팔정도의말씀속엔 바른실천수행으로 지혜로가는수행이 중요합니다 나라고 내세우지 말라는 모든 이분법에서 벗어나라는거지 무아가 전부가 아니라고 알아차립니다

  • @myjang3279
    @myjang3279 3 года назад +4

    덕분입니다 ~♡
    감사합니다 ~♡
    사랑합니다 ~♡

  • @Uni-young369
    @Uni-young369 3 года назад +8

    감사합니다 🙏

  • @민경훈-m3h
    @민경훈-m3h 3 года назад +8

    제가 수년동안 고민하다가
    낸 결론과 비슷하네요
    단예님 지식에 정말 감탄합니다

    • @hioh6753
      @hioh6753 Год назад

      정말 진지하게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착한 일을 100가지 했더라도
      죄는 1가지만 드러나도
      범죄자가 되고, 그 죄값 받아야 하는데요.
      하지만, 사람은 생각으로, 행동으로, 말로
      이기적이고, 탐욕적이고, 무시하고,
      음란하고, 시기 질투하고, 도둑질하고,
      거짓말 속이고, 험담하고, 미워하고...등.
      매일 수없이 죄를 짓고 살았어요.
      수행, 고행하는 과정이라도
      죄를 짓고요,
      오랜 수행 끝에 결국에는
      정말 해탈 했다고 해도,
      이미 그동안 지은 죄가 너무나도 많아서 죽으면 마땅히 지옥에 가야 합니다.
      참회를 한다고 끝나는게 아니죠.
      참회를 했더라도 지은 죄값은 치뤄야 합니다.
      해탈했다고 끝나는게 아니죠.
      지은 죄값은 치뤄야 합니다.
      범죄자이고 죄인이기 때문이죠.
      수없이 범죄한 범죄자가
      자신은 해탈했다고 그 죄값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 죄값은 마땅히 받아야 합니다.
      범죄자는 재판관이 심판하여 처분을 내립니다.
      그런데, 수없이 범죄한 자가
      자신은 해탈했다고 재판관이 아닌 자신이 처분을 내리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말도 안되는 얘기지요.
      정의가 살아 있다는 말은
      죄지은 자들이 결국에 마땅히 그 죄값을 받게 될 때 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석가모니께서
      자신이 지은 죄값을 심판받아
      영원한 지옥에 가서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 가르침을 따르는 분들도
      당연히 죽어서 그 곳에 간다고 믿고 있습니다.
      행위로는 모든 사람은 범죄자들이고
      모두 지옥 갈 자들입니다.
      자신이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은 자신이 짓고 있는 수많은 죄는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자신이 했던 착한 일들만 생각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사람의 그 어떤 노력, 열심, 선행, 고행으로 사람은 착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고, 자신이 지은 죄값도 자신 스스로는 해결할 수 없음을 알게 되셨을 겁니다.
      정말 깨닳으셨다면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발견 했을 것이구요,
      자신이 마땅히 영원한 지옥불에 태워져야 할 "악취나는 쓰레기 죄악덩어리" 임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나를 만드시고 우주만물을 다스리시는 왕이신 창조주 하나님을 거부하고(패륜아, 대역죄인),
      지금까지 수도없이 죄를 지어왔었고, 지금도 죄를 짓고 있고, 앞으로도 죄를 짓습니다.
      은혜아니고서는 구원받을 길이 없습니다.
      정말 너무나도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죄악된 우리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은혜인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죄사함" 아니고서는 내가 구원받을 길이 도저히 없음을 깨닳았을 것입니다.
      죽어서 지옥가시지 마시고
      꼭 천국 가셨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지금 이 세상에서 목숨이 살아 있을때가 돌이킬 수 있는 단 한번의 기회이니 정말로 깊은 고민을 해보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 @진여진공
    @진여진공 3 года назад +5

    수고가 많습니다

  • @용관김-r1q
    @용관김-r1q 6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와!

  • @dkdkkim8508
    @dkdkkim8508 3 года назад +17

    무아와 참나가 같은 걸로 알았는데 이렇게 다른거였네요. 감사합니다.

    • @You_im
      @You_im 3 года назад +3

      맞아요
      저도 무아와 참나가 헷갈렸는데 쉽게 정리가 되네요

    • @지장보살-n9d
      @지장보살-n9d 3 года назад +1

      @@진리는살아있다 먼말인가요 내가 없다는말인가요 있다는말인가요 내가 없으면 존재하지않는다는말인가요. 아님 하나의 큰 의식으로 합쳐진다는말인가요

    • @hioh6753
      @hioh6753 Год назад

      정말 진지하게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착한 일을 100가지 했더라도
      죄는 1가지만 드러나도
      범죄자가 되고, 그 죄값 받아야 하는데요.
      하지만, 사람은 생각으로, 행동으로, 말로
      이기적이고, 탐욕적이고, 무시하고,
      음란하고, 시기 질투하고, 도둑질하고,
      거짓말 속이고, 험담하고, 미워하고...등.
      매일 수없이 죄를 짓고 살았어요.
      수행, 고행하는 과정이라도
      죄를 짓고요,
      오랜 수행 끝에 결국에는
      정말 해탈 했다고 해도,
      이미 그동안 지은 죄가 너무나도 많아서 죽으면 마땅히 지옥에 가야 합니다.
      참회를 한다고 끝나는게 아니죠.
      참회를 했더라도 지은 죄값은 치뤄야 합니다.
      해탈했다고 끝나는게 아니죠.
      지은 죄값은 치뤄야 합니다.
      범죄자이고 죄인이기 때문이죠.
      수없이 범죄한 범죄자가
      자신은 해탈했다고 그 죄값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 죄값은 마땅히 받아야 합니다.
      범죄자는 재판관이 심판하여 처분을 내립니다.
      그런데, 수없이 범죄한 자가
      자신은 해탈했다고 재판관이 아닌 자신이 처분을 내리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말도 안되는 얘기지요.
      정의가 살아 있다는 말은
      죄지은 자들이 결국에 마땅히 그 죄값을 받게 될 때 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석가모니께서
      자신이 지은 죄값을 심판받아
      영원한 지옥에 가서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 가르침을 따르는 분들도
      당연히 죽어서 그 곳에 간다고 믿고 있습니다.
      행위로는 모든 사람은 범죄자들이고
      모두 지옥 갈 자들입니다.
      자신이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은 자신이 짓고 있는 수많은 죄는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자신이 했던 착한 일들만 생각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사람의 그 어떤 노력, 열심, 선행, 고행으로 사람은 착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고, 자신이 지은 죄값도 자신 스스로는 해결할 수 없음을 알게 되셨을 겁니다.
      정말 깨닳으셨다면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발견 했을 것이구요,
      자신이 마땅히 영원한 지옥불에 태워져야 할 "악취나는 쓰레기 죄악덩어리" 임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나를 만드시고 우주만물을 다스리시는 왕이신 창조주 하나님을 거부하고(패륜아, 대역죄인),
      지금까지 수도없이 죄를 지어왔었고, 지금도 죄를 짓고 있고, 앞으로도 죄를 짓습니다.
      은혜아니고서는 구원받을 길이 없습니다.
      정말 너무나도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죄악된 우리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은혜인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죄사함" 아니고서는 내가 구원받을 길이 도저히 없음을 깨닳았을 것입니다.
      죽어서 지옥가시지 마시고
      꼭 천국 가셨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지금 이 세상에서 목숨이 살아 있을때가 돌이킬 수 있는 단 한번의 기회이니 정말로 깊은 고민을 해보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 @user-gihm_lp9fm
      @user-gihm_lp9fm 8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지장보살-n9d 무아라고 꼬집어서 아픈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석가모니 말씀은 현재 꼬집으면 아픈 나란 존재는 연기에 의해
      실제로 존재하지만, 연기에 의해 인연이 다 돼서 죽으면 화학 원소(불교에서는 4대 요소 흙, 물, 불, 바람: 이 때는 과학이 발달이 안돼서 삼라만상이
      4대 요소로 이루어진 것으로 봄) 로 흩어져 없어져서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는 의미로 무아라고 한 것입니다.
      즉, 나라는 존재는 100년 남짓 유한한 것이라 죽음 뒤에는 나라는 존재가 없는 무아가 되는 것이지요. 이것은 또한 유물론이자 단멸론이라고 합니다.
      즉, 죽으면 아무 것도 없는 끝이라는 의미이지요. 근데 영상에서 하는 말은 무아가 이렇게 무아론이 유물론을 의미하니 제자들이 반발을 일으켜서 단멸론을
      경계하는 방편을 써보니 제자들이 이를 확대 해석해서 무아는가짜 나가 없어진 참나(바라문교나 흰두교의 아트만)가 있다라고 했다는 말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불교에서는 무아를 주장하면서 단멸론(죽으면 끝이라는 의미)은 부정합니다. 무아면 당연히 단멸론, 유물론이 맞는데도 말입니다.
      단멸론을 부정하는 이유는 죽으면 끝이다라고 하면 사람들이 인생을 제멋대로 막 살기 때문에 이를 방지 하기 위해 단멸론을 부정한다고 말합니다.
      근데 말도 안되는 말입니다. 지금 아무런 종교를 갖고 있는 즉 무교인 사람들도 꽤 많습니다.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되는대로 세상을
      살아갑니까? 아니잖아요. 그러니 사실 불교에 맹점도 엄연히 존재하는 건 사실입니다.

  • @yskpat
    @yskpat 3 года назад +12

    참으로 듣고 싶은 이야기.. 그대로였습니다.
    Anatta (팔리), An-Atman (산스크리트)를 '무아', 즉 '아트만 없음'으로 알고 있는데 자꾸 '참나'라니..?
    궁색하게 비아'는 또 뭔가..? 진리는 다수결이 아니라고 스스로 다짐해 왔는데..
    고맙습니다.
    대단히 고맙습니다.

  • @dox-ujsei-vmeix-sq9in
    @dox-ujsei-vmeix-sq9in 7 месяцев назад +1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면 '자신의 원래 모습으로 그냥 있다'는 건 무슨 뜻인가요?

  • @알고리즘-s9n
    @알고리즘-s9n 3 года назад +4

    대단하네요. 통찰.

  • @LDHTKD
    @LDHTKD 3 года назад +3

    오... 나의 경계가 없으면 나는 없는 것인가...!

  • @성수동-s9s
    @성수동-s9s 3 года назад +7

    무아 참나 공 이란단어는 나란존재에 집착하지말라는 뜻일뿐 팔정도가 빠진것은 부처님법이 아니며 늘수행을통해 지혜의길로가는게 핵심이라 알아차립니다

  • @user-jx9gf612
    @user-jx9gf612 Год назад +3

    일개 인간이 만고의 진리를 깨우친 부처님의 마음이나 생각이니 저울질하는건 옳지않다고 본다. 각자 깜냥만큼 본다

  • @푸들닮은헤이더
    @푸들닮은헤이더 2 года назад +2

    홀로그램으로 만들어진 어떤 사람을 보면 그사람이 '있다'라고 할수 없듯이 이세상이 가상이고 나 또한 가상세계에 있으니 무아라 할수도 없고 참나가 있다고 할수도 없는게 아닐까 합니다.

  • @티와이-ty
    @티와이-ty 3 года назад +13

    당신은 "나"가 꼭 있어야 하나요?
    "나"가 영원히 사라지면 안되는 걸까요?
    "나"의 범위가 없는데 왜 당신은 "나"가 있고 없는 것에 극도로 집착하는 걸까요?
    "나"에 대한 착을 잠시라도 내려 놓으시는 건 어떨까요?
    뼈 때리는 질문입니다. 충격받고 갑니다. 오늘도 귀한 영상 감사드립니다.

  • @friendsehi
    @friendsehi 3 года назад +8

    잘 보고있습니다~~^^

  • @양씨형
    @양씨형 3 года назад +7

    영상 항상 感謝합니다

  • @남희정-z9l
    @남희정-z9l 3 года назад +2

    살아있든 죽어있든 공부해야 벗어날수 있으니 아라서 하세요.어차피 눈뜨는 시기는 다 다르니까요.노력하는자는 빠르게 가고 노력하지 않음 시간은 느리게 가니까요.

  • @김금동-i4i
    @김금동-i4i 3 года назад +4

    나는 없고 삶과 생만이 있다.

  • @민트민트-x6k
    @민트민트-x6k 3 года назад +6

    무아(에고자아가 사라진상태)가 되면 참나 (진아)의 상태가 되는것이지요
    과학은 양자역학을 얘기하는데 ..
    양자역학을 이론체득과 체험을 동시에 하신분들이
    참진리에 더 가까이 가실거거같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첨 방문인데 자주들릴거같진않네요
    공부에 갈증이 많으신분들
    화이팅 ~ 합시다^^

    • @yskpat
      @yskpat 3 года назад +4

      무아(無我)의 아(我)는 ‘오온(五蘊)으로 이루어진 나’ 즉, ‘현상계의 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Atman/진아(眞我)/참나를 가리키는 겁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무아(無我)의 아(我)는 지금 글을 쓰고, 읽고 하는 '나'가 아니라 Atman/진아(眞我)/참나의 아(我)이고, 무아(無我)는 그런 거는 없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요즘 양자역학 등 과학을 많이 인용하는데 불교는 ‘사유와 경험’으로 입증해야지 과학으로 입증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제가 양자역학을 공부한 과학자라고 할 수 있는데)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더구나 양자역학이든 뭐든 과학이 완성판이 나온 것도 아니고요.

    • @yskpat
      @yskpat 3 года назад +4

      @@au79ag47 부처님도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욕망이 이 세계를 움직이는 원동력(driving force)이라고..

    • @윤남현-t4p
      @윤남현-t4p 3 года назад +2

      @@yskpat 무아가 참나가없다는뜻이라면 자아도없고 참나도없는데 어떻게 "사유와경험"으로 입증을하나요?? 자아도없고 참나도없는데 "사유와경험"을 하는 주체가있어야 "사유와경험"으로 입증을하지 나라는게 없는데 "사유와경험"으로 어떻게 입증을하죠???

    • @yskpat
      @yskpat 3 года назад

      @@윤남현-t4p "사유와 경험"은 "오온으로 이루어진 나"/"현상계의 나"가 합니다.
      "오온으로 이루어진 나"는 분명히 존재하는 것으로, 논란의 여지가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분명히 글을 읽고, 생각을 하고, 글을 쓰고 있지 않습니까?
      * 참나/진아/Atman은 이 "오온으로 이루어진 나"의 배후에 "항구불변하는/변화하지 않는 나"를 상정한 것입니다.
      * 그리고 무아는 이 참나/진아/Atman, 그러니까 "현상계의 나"의 배후에 또는 안에 "항구불변하는/변하지 않는 나"가 없다는 것이고요.

    • @addshjkgyu
      @addshjkgyu 2 года назад

      @@윤남현-t4p 옳소..
      대승불교, 선불교 하시는 분들이 무아인 줄 몰라서 "참나" 이야기 할까요?
      부처님이 무아인줄 깨달으셨는데, 무아인 줄 아는 그 놈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요?
      무아이면서 그 무아를 확연히 체감하는 그 놈을 억지로 말하자니,
      참나란 것이지요. 거기엔 본래 어떤 이름이 붙일 수 없는 자리지요.
      수행은 않고 말꼬리 잡고 늘어지는 사람들,,,,,,

  • @마리아-n4f
    @마리아-n4f Год назад

    내가 본 이마에 단추구멍이 똑같네요. 누워있는 부처님이 양탄자를 많이 태워주셨는데.

  • @yskpat
    @yskpat 3 года назад +5

    사람의 아들님,
    아래 2개의 댓글을 추가합니다.
    이는 월폴라 라훌라 Walpola Rahula 존자의 What the Buddha taught라는 책 Chapter 6 Annata의 일부를 제가 번역한 것입니다.
    참나를 느끼기만 해도 높은 수준입니다. 아무나 경험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지요. 하지만 지금 우리는 부처님의 깨달음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조금만 더 씁니다.
    그에 상응하는 실재가 없는데도 자아라는 관념을 만들어 내는 것은 (I AM)라는 막연한 느낌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사실, 즉 무아를 아는 것이 곧 열반을 깨닫는 것인데 그것이 그렇게 쉽지는 않다. 《쌍윳타-니까야》 Samyutta-nikaya에는 케마카Khemaka라는 비구와 그의 동료들이 나누었던 이 문제에 대하여 잘 설명해주는 대화가 있다.
    비구들이 Khemaka에게 오온 속에서 자아나 자아와 관련된 그 무엇이 보이는지 묻는다. Khemaka는 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비구들은 만약 그렇다면 Khemaka는 모든 번뇌에서 벗어난 아라한이 분명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Khemaka는 오온 속에서 자아나 자아와 관련된 그 무엇을 찾아볼 수는 없지만 「나는 모든 번뇌에서 벗어난 아라한은 아니」라고 고백한다. 「오! 벗들이여. 오취온(五取蘊)과 관련하여 『나는 존재한다』(I AM)라는 느낌이 있다. 그러나 『이것이 존재하는 나다』(This is I AM)라고 분명히 보이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Khemaka는 그가 라고 하는 것은 물질(色)도, 감각(受)도, 지각(想)도, 정신이 형성한 것(行)도, 의식(識)도, 또 그것들 밖에 있는 어떤 것도 아니라고 설명한다. 라고 분명히 볼 수는 없더라도 그에게는 오온과 관련하여 라는 느낌이 있다.
    There is the fact of No-selfness. 번역하면.. 무아는 팩트다. 그러니까 믿음/추론이 아니라 사실(팩트)이라는 겁니다.

  • @이희전-f4s
    @이희전-f4s 3 года назад +5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

  • @yskpat
    @yskpat 3 года назад +7

    《맛지마-니까야》Majjima-nikaya의 《뱀의 비유경》Alagaddupama-sutta에서 붓다는 제자들에게 말했다.
    「비구들아, 받아들이면 슬픔과 탄식, 고난, 고통과 분노가 일어나지 않는 영혼설이 있다면 받아들여라. 그런데 그와 같은 영혼설을 너희들은 보았느냐?」
    「보지 못했습니다.」
    「그렇다. 비구들이여, 나 역시 그와 같은 영혼설을 보지 못했다.」
    만약 붓다가 인정한 어떤 영혼설이 있었다면 거기서 분명히 그것을 설명했을 것이다. 그는 비구들에게 받아들여서 괴로움이 일어나지 않는 영혼설이 있다면 받아들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붓다가 보기에 그런 영혼설이 없었다. 그리고 어떤 영혼설이든 그것이 아무리 미묘하고 고상하다 해도 거짓이고 상상이며, 온갖 문제들을 만들어 내고, 슬픔과 비애, 괴로움과 시련을 만들어 낸다.
    같은 경에서 붓다는 설법을 계속한다.
    「비구들아, 자아도, 자아에 관계되는 그 어떤 것도 실제로는 발견할 수 없는데 『우주는 아트만이다. 나는 죽어서 아트만이 될 것이고, 나는 아트만과 같이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라는 사색에 근거한 견해를 가지는 것은 전적으로 그리고 완전히 어리석은 것 아니냐?」
    여기서 붓다는 아트만, 영혼 또는 자아는 실제로는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데 그런 것이 있다고 믿는 것은 어리석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 @yskpat
      @yskpat 3 года назад

      글 앞에 적은 바와 같이
      《맛지마-니까야》Majjima-nikaya의 《뱀의 비유경》Alagaddupama-sutta
      입니다.
      @@au79ag47

    • @yskpat
      @yskpat 3 года назад +1

      @@au79ag47 '나'가 없는데.. 누가 깨닫고, 누가 윤회하냐?
      지혜가 깨닫고, 욕망이 윤회합니다.

    • @푸른바다-h9f
      @푸른바다-h9f 2 года назад

      @@yskpat ‘깨닭는다’는 과거형이 아닙니다.상황에서 깨닭는다는 것이고 이것은 생각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것으로 특정한 나의 잡착된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움을 말하는 것입니다.
      ‘깨닭는다’가 완전한 상태가 지속된 완성이란 단계 혹은 상태의 지속이라고 본다면 님의 말씀이 동의가 되는 군요…
      그리고 윤회는 기복에 근거한 유위행에 대한 방편이라고 생각합니다.

  • @dreamonuntildie
    @dreamonuntildie 2 года назад

    8:36.... 이런 것을 완전히 부셔서 "자신의 원래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싯다르타의 무아입니다.........이 설명 속의 원래모습은 참나가 아니겠죠?

  • @perfection-mk4wz
    @perfection-mk4wz 3 года назад +1

    아상에서 벗어나기도 힘든데...어찌하여 형체도 없는 무아를 알리는지요
    참나 불성만 찾아도 세상에 이름을 남길 것인데....
    어찌하여 형체도 없는 무아를 알리는지요
    나를 위해 살았고 또 나를 위해 살아 가고 있는데....
    어찌하여 형체도 없는 무아를 말하며 나를 내려놓게 하나요^^

  • @yskpat
    @yskpat 3 года назад +7

    《법구경》(Dhammapada)에는 붓다의 가르침 중 지극히 중요하고 핵심적인 세 개의 게송이 있다. 그것들은 Chapter 20의 5, 6, 7번이다. (또는 277, 278, 279번 게송)
    그 첫 번째 게송과 두 번째 게송은 다음과 같다.
    「조건에 따라 생겨나는 것은 모두 덧없다.」(Sabbe SAMKHARA anicca; 諸行無常)
    「조건에 따라 생겨나는 것은 모두 둑카(苦)다.」(Sabbe SAMKHARA dukkha; 一切皆苦)
    그 세 번째 게송은 다음과 같다.
    「모든 법(法)은 자아가 없다.」 (Sabbe DHAMMA anatta; 諸法無我)
    여기서 첫 번째 게송과 두 번째 게송에 samkhara 이라는 단어가 쓰인 것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그러나 세 번째 게송에서는 그 자리에 법dhamma 이라는 단어가 쓰였다. 왜 세 번째 게송에서는 앞의 두 게송에서와 같이 samkhara 이라는 단어가 쓰이지 않고, 법이란 단어가 대신 쓰였는가? 여기에 전체 문제의 핵심이 있다.
    samkhara는 오온, 그것이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조건에 따라 생겨나고, 상호 의존적이며, 상대적인 사물과 상태를 의미한다. 만약 세 번째 게송이 「조건에 따라 생겨나는 것은 모두 자아가 없다.」라고 했다면 사람들은 비록 조건에 따라 생긴 것은 자아가 없지만, 조건에 따라 생긴 것의 밖에는, 즉 오온의 밖에는 자아가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니까 세 번째 게송에서 법이라는 용어가 쓰인 것은 이러한 오해를 피하기 위한 것이다.
    법(dhamma)은 상카라(samkhara)보다 뜻이 훨씬 넓다. 불교 용어 중에 법보다 넓은 뜻을 갖는 용어는 없다. 그것은 조건에 따라 생겨나는 사물이나 상태뿐만이 아니라 조건에 따라 생겨나는 것이 아닌 것, 즉 절대 진리, 열반까지도 포함한다. 우주 안이든 밖이든, 좋든 나쁘든, 조건에 따라 생겨나는 것이든 조건에 따라 생겨나는 것이 아니든, 상대적이든 절대적이든, 이 용어에 포함되지 않는 것은 없다. 그러므로 「모든 법은 자아가 없다」라는 문장에 의하면 오온의 안뿐만 아니라 밖의 어떤 곳에도 자아나 아트만이 없음이 아주 분명해진다.
    이는, 상좌부(Theravada)의 가르침에 따르면, 자아는 각 개인(puggala)에게도 없고 법(dhammas)에도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승불교 철학도 (我無我)뿐만 아니라 (法無我)도 강조하는 견해에 서 있으므로 이점에 있어 상좌부와 조금의 차이점도 없이 정확히 같은 입장을 견지한다.

  • @TV-mb1wf
    @TV-mb1wf 3 года назад +2

    와 생각해보니 우주가 돌아가는데 '나'라는게 없어도 되겠네요.

    • @명상-o1d
      @명상-o1d 3 года назад

      우주의 원소와
      나의 원소는
      다름이 없습니다.

  • @성수차-w2o
    @성수차-w2o 3 года назад +1

    감사합니다
    배경음악은
    매우작게줄여주세요

  • @조철구-x5v
    @조철구-x5v 3 года назад

    나의 이익? 봉사활동을 생의 가치로 삼는 사람도 많은데,
    우주의 기가 잠시 뭉쳤다 사라지는 것이 인간이니
    구원이라는 것,도 나라는 것도 없지요.
    단지 인간이라는 것에 휩쓸려 살지는 않는지? 항상 깨어있어야지요

  • @天上天下.唯我獨尊.三
    @天上天下.唯我獨尊.三 3 года назад

    [동방불패]
    인생은 고통속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전부이며, 행복이란 전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고통의 시간이 잠시 주춤할때, 그것을 행복이라고 착각합니다.
    수행자는 마음을 비우고, 욕망을 내려놓을때, 비로소 참된 깨달음을 얻을수 있습니다.
    즉, 깨달음 역시 어느순간 우연히 얻어지는 것입니다.

  • @마음코디EFT
    @마음코디EFT 3 года назад +2

    '나'가 없다는게 말이 되나요..'나'가 없으면 세상이 존재할수 있나요?

    • @마라-q4k
      @마라-q4k 3 года назад +2

      나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라는 생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욕도 착도 일어나지 않는것이 싯타르타의 체험입니다
      그체험을 견성이라 하지요
      신기한 일이지요 왜 그렇게 의식이 바뀌었는지 사유를 합니다 결론은 나라는 의식에 의해 욕구가 생기고 착이 달라붙게 되었음을 깨닫고 수행의 방법을 마음을 정립하고 호흡에 집중하는 수행을 통해 중생으로 돌아가지 않는 무상정각을 이룹니다
      호흡이 왜 의식의 변화를 가져왔는지 설명이 길어지니 간단히 설명하자면 호흡의 원리를 아시고 우리가 마시는 공기안에는 무엇이 들어있는지 아시면 해답을 찿을것입니다

  • @무유여
    @무유여 3 года назад +1

    나무아미타불~♥

  • @진영숙-w7m
    @진영숙-w7m 3 года назад +3

    하지만 왔던 길을 다시 돌아 가려면 착과욕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 @벤자민-r5n
    @벤자민-r5n 3 года назад +3

    단예소피아라는 말에서 많이 느꼈는데 쭉 영상을 보니 제가 깨우치고 있는것들을 말씀해주셔서 좀 놀랐습니다. 최근 물리학 특히 양자역학등을 공부하면 할수록 또는 수학과 철학을 공부할수록 붓다의 법이 무슨뜻인지 이해가 됩니다. 선정이니 해탈이니 열반이니 하면서 먼가 거창한 체험을 꾸며내고 경험하는것이 아니라 앎의 깨우침 말이죠.
    알게되어 깨우치니 거짓됨없고 속임이 없는 상태말이죠.

  • @김윤섭-w7u
    @김윤섭-w7u 3 года назад +5

    사물은 없고 사건만 있다?

  • @조태행-w6w
    @조태행-w6w 3 года назад +1

    불교공부다시해야하나요.?

  • @paradiseherbs3402
    @paradiseherbs3402 3 года назад +1

    나에 대한 의식이 극도로 희미해지면 인간의 뇌는 다른 인격 or 대체 자아를 만들어 내거나 정신분열 증상을 일으켜서 환청 환시 환각을 일으킴. 인간은 육체를 가진 생명체이기 때문에 이 범주를 벗어날 수 없음. 간혹 내가 뭘 느꼈다 깨달았다 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일시적으로 좌뇌가 기능을 멈추고 우뇌의 기능으로 외부를 인식하면서 생긴 뇌줄중에 가까운 현상일뿐. 아무리 좋게 봐줘도 결국 환자

  • @user-gihm_lp9fm
    @user-gihm_lp9fm 8 месяцев назад

    붓닥가 비겁했네요. 승가가 어찌되든 그냥 단멸론 내지는 유물론인 진리를 그냥 밀고 나갔어야죠. 그랬으면 현재 불교가 흰두교로 변형되지는 않았을 것 아닌가요?

  • @힐링퇴근길지하철
    @힐링퇴근길지하철 3 года назад +1

    '무아지경'이라는 말을 아무 생각없이 사용했는데 그 태생이 있었네요. '무아'란 나와 외부세계와의 경계가 없는 상태가 아닌가요? 그러면 나는 무엇인가요? 인간이 뇌 활동에서 의식할 수 있는 부분은 극히 일부이고 나머지 대부분은 자기자신도 모르는 무의식이랍니다. 결국 참나를 알아야 무아의 경지에 이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 @명상-o1d
      @명상-o1d 3 года назад

      맞는 말씀입니다..

  • @commonsenser
    @commonsenser Год назад

    아상은 자기 이익을 의해 현실의 왜곡한다
    신앙과 참나가 수행의 함정이다
    아상의 미끼다
    그냥 있는 상태를 바랬다 원래 모습으로 있는 것

  • @TV-cc2pl
    @TV-cc2pl 3 года назад

    옴아훔 벤자구루 빼마 싯디훔

  • @광택임-z1b
    @광택임-z1b 3 года назад

    영원히 사라지는 것...

  • @taiguojin6441
    @taiguojin6441 3 года назад

    무아 가 아무것도 없는것이 아닙니다
    인연에따라 영원치 않다는 의미입니다
    진짜 나 는 오온이 사라지면 있을수 없지요 ㅠㅠ
    힌두교는 재생무아 라는 것을 부정 합니다

  • @종현정-u9v
    @종현정-u9v 3 года назад +3

    참나니 무아니 모두 변견아닌가요? 중도가 답..

    • @yskpat
      @yskpat 3 года назад

      맞습니다.
      아트만이 있는지 혹은 없는지 제자가 물어왔을 때, 대답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 @oneness2538
    @oneness2538 3 года назад +4

    참나보다 한단계위의 경지 무아 .... 진정한 해탈 ....

  • @hwananoppa
    @hwananoppa Год назад

    말장난일 뿐입니다. 참나라는건 없습니다.
    이론적으로. 또 철학적으로 어떤 이야기를 한들 구도자에게 나. 그것이 참나든 된나든 별나는 나라든 단어가 들어가는 순간
    첫발부터 엉망진창이 되지요.
    뭘로 설명하고 뭘로 느끼고 무엇으로 설명하고 규정허든 나라는 단어를 쓰는 순간
    얻는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 @명상-o1d
    @명상-o1d 3 года назад

    일념생 만법생 에서
    붓다께서 설 하신 무아는
    나라는 개체의식의
    가아를 없애는
    무아(無我)
    입니다.

  • @9225364535
    @9225364535 3 года назад

    이해가 안되는 영상! 어려워~~~

  • @몽중인-g6l
    @몽중인-g6l 3 года назад +1

    진공 묘유에 확연하면 깨달음이요.
    무상하이 증득되면 해탈입니다.
    진공이니 고요하고 묘유이니 무상합니다.
    고요하고 무상하니 화장장엄세계요.
    대자유 입니다. "無我"

  • @뽕밭나그네-m2m
    @뽕밭나그네-m2m 3 года назад +2

    모르는 분은 공붓길 멀어지시겠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