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에 우리집은 비디오가게를 하고있었는데, IMF에 오히려 장사가 너무 잘됬었다. 어린 기억에, 매일 같은 시간 퇴근길에 양복을 멋지게 차려입고 비디오 빌려가시던 아저씨가, 고동색 짙은 추리닝 바지를 입고 머리를 긁적이며 씁쓸한 웃음을 짓던 그 모습이 떠오른다. 지금 어른이 되어보니 그 웃음의 깊은 의미를 알 것만 같다.
7살때 imf왔었는데 초등학교 들어가니까 집 망했다고 한 애들이 더러 있었음 동사무소에서 금모으기 운동한것도 또렷이 기억남 엄마 아빠가 금 내러가구.. 그때 한창 돈벌어야 했던 직장인 분들 짤리셔서 다 힘드셨겠지만 문제는 ㅋㅋㅋ 그분들의 딸뻘 세대도 만만치 않게 힘들다는거. 취업도 잘안되궁 .. 내 주변도 보면 얼마전 까지 정규직으로 취업한 애들 얼마 없었고 하더라도 월급 별로 안높고 진짜 문과는 취업 전멸에 .. 우울한 이야기가 대를 이어 계속되는듯
회사 다니는 사람도 직장에서 짤렷지만 저 당시는 돈이 돈을 부르는 사회였습니다.. 은행이자보다도 더 비싼 개인사채를 10프 로를 빌려 투자를 해도 돈이 남았고 일반 사람들도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았죠 직장인만 피해본게 아니라 전국민이 피해를 봤습니다..부자들이 몰락했고 중산층이 몰락하다보니 소비가 안되고 일반가게부터 기업까지 줄도산되니 본인이 그 시절에 겪지 못했다는 개소리로 직장 있는 서민만 피해다?라는 합리화는 노노입니다 지금 정부도 마찬가지고 이전정부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동산 투기는 나쁜것이지만 부동산이 활성화되지 않아도 문제입니다 이거까지는 설명하기 귀찮네요 개소리 하시는 분에게 귀찮지만 대충 설 명해드리죠 단순히 집값이 오른다 그게 거품은 아닌겁니다 물가라 보시면 어느정도 이해는될거고 서울이 왜이리 비싸냐? 이 질문은 니가 같은돈이면 지방에 살래 서울에 살래 본인이 생각해보세요 당연히 서울에 살겠죠? 그럼 다음은 서울대가 좋아요? 경기대가 좋아요? 이런질문을 대답해보시면 답은 뻔합니다 그래서 집값이 비싼거죠 근데 내가 당신같이 개소리 하는 사람에게 이런 내 귀중한 시간을 들여 설명을 하니까 진짜 개소리 댓글에 또 댓글을 달면서 시간 낭비하네요 ㅜㅜ
IMF 를 거치면서 이혼 정말 많이 했죠... 이혼 전에 먼저 실직이 있었고... 사업하시는 분들은 부도하고 빨간 딱지가 먼저 있었고.... ;;;;;; IMF 가 다 지나고 나서 결국 돌아보니 최대 수혜자가 대기업이였네요... 산업 생태계가 완전히 대기업 위주로 바뀌는 전환점이 IMF 였던 것 같습니다.
@@asmrnrinasmr7188 삼성만큼 깨끗한기업 없습니다 언론에서 삼바 회계로 크게 1면장식을 햇어도 신문기사 자세히 읽어보면 정부가 말장난치며 푸쉬하는거 보일텐데요 그저 아 삼성 더러워 비리가 많을것 같다라고 근거없이 상상하는 님 좀 불쌍하네요 한쪽에서 큰소리쳐도 정보를 걸러내 구별하는건 자신의 몫입니다
난 솔직히 imf 이전에도 찢어지게 가난했던 집구석이라 국가 부도가 어쩌고 저쩌고 하나도 감이 안 왔음....... 아빠는 기술자라 딱히 영향이 없기도 했고. 오히려 잘 먹고 잘 살던 중산층 이상 계급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져 내렸지, 우리같은 밑바닥 인생들은 원래도 없이 살아서 더 안 좋아질 일도 없었던 거 같음. 더 망할 것도 없던 집구석이라 꾸준히 예금해서 돈 모았고 30평 넘는 아파트도 삼. 평생을 지하실 단칸방, 바퀴벌레 드글거리는 낡은 빌라로 전전하며 살다가 처음 집 샀을 때 엄마가 펑펑 울었음.....
아버지 다니시던 곳이 큰 제약회사였는데도 당시에 엄청 휘청거렸었다고 함 별종이었던 아버지는 구조조정될 위치 아니었는데 밑에 사람들이 줄줄이 잘려나가니까 그냥 사표 내고 나오셨음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랑 엄청 싸우셨고 가족들은 월세집 전전하면서 이사도 엄청 자주 다니고 아버지는 사업 하신다고 진짜 몇년을 가족들도 버려두고 사무실이나 공장에서 시간 보내곤 하셨는데... 어쨋든 지금 떠올려도 안좋은 기억들....
1201 kalry 님 일상생활가능하세요? 사표낸걸 누가 잘했답니까? 사표낸건 사표낸거고 그건 제가 왈가왈부할것도 아니구요 사표낸 이후 공장이나 회사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신거에대해서 서운하게 생각하시는것같길래 한푼이라도 더 벌려고 가족들 먹여살리려고 그러신걸거다라며 좋게 생각하십사 글 남긴건데 누가 애초에 사표낸걸 잘했답디까? ㅋㅋ 난독증 고치세요
@@레고-i3f 애초에 전제가 잘못됐는데 좋게 포장해봐야 무슨 소용? 멀쩡히 잘 다니던 회사를 짤린 것도 아니고 본인 스스로 그만두는 행위의 어디에 가족을 부양할 마음이 있다는 거에요?? IMF 때는 취업 자체가 거의 안 되던 시절이었고 뭘 해도 먹고 살기 힘들었는데 잘 다니던 회사를 일부러 관두고 공장 다니는 게 좋게 생각해줘야 할 일?? 님이야말로 일상생활 가능함?? 당장 님이 처자식 먹여 살려야 하는데 불경기에 잘 다니는 회사 관두고 공장 다니면서 가족들 먹여 살리니까 난 좋은 가장이다, 이럴 수 있어요?? 애초에 사표를 안 썼으면 실업자 될 일도 없고 가족들 먹여 살린다고 공장 다니지도 않앗겠죠. 그러니까 부부싸움도 하신 거고요. 난독증은 님이나 좀 고치시고요 ㅋㅋㅋㅋㅋㅋ
우리 세대에 가장 큰 사건은 imf가 맞아요. 유년 시기의 그 일로 인해 “정서적” 부분이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우리 세대의 직업 선택에 가장 큰 요인이 “안정”에 있는 것도. 우리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 이유가 너무 힘들었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저출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는 지금의 소위 'MZ' 세대를 전혀 이해하려 하지 않습니다. 어릴 때 IMF 시절, 내가 가족의 짐인 채로 크면서 어른이 된 세대가, 가족이 박살나면서 조각나고 공동체가 나를 방치한 경험이 맘속 깊이 각인된 세대가, 다시 두 번의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출산을 어떻게 바라보게 됐을지, 그들에게 아이들이란 과연 희망인지 짐인지, 자원이 풍부할지 아닐지 계속해서 불투명한 상황 속에서 똑같이 가족의 짐을 생산해내 고독하고 외로운 삶을 반복하게 할 자신이 있는지, 여전히 그들 스스로는 희망인지 짐인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사실 IMF 당시 아이였던 어른들은 자신을 이해해 주기를 기대도 않습니다. 기대가 없으니 딱히 이해해 달라고도 않죠. 어차피 뭐라 할지는 똑같으니 입 아프게 긴 말 않고 그냥 겉으로 드러난 경제적 어려움만 말합니다. 다만 같은 MZ로 묶이더라도 경제 상황이 1990년대 중후반과 2000년대 중후반은 부쩍 달랐던 만큼 지금 20대 초반은 분명 삶의 궤적이 많이 다를 것입니다.
에?누가 그딴식으로 교육시켜요?? 우리나라가 한참 성장은 했지만 그만큼 해외 투자자들에게 빚도 많이 지고 있었는데 외국 어디더라 그쪽에 경제상황이 안좋아지면서 투자자들이 우리나라한테 한꺼번에 돈갚으라고 했는데 그 당시에 그럴만큼의 돈(외화)이 없어서 IMF에 구제신청을 하게 됬고 교과서에 다들 그렇게 나와있던걸로 기억나는데...
사실상 IMF때 힘들고 극복하셔서 지금은 옛날 이야기다 하시는분들도 계시겠지만 아직까지 극복하지 못하고 힘들게 사는분들도 많죠.. 저희 집은 아직 힘들게 사네요 부모님 두분도 노후까지 걱정하시면서 힘들게 사시구 있는 자식이라곤 취업못해 전전긍긍하구 .. 부모님만 바라보면 잠도 안주무시고 열심히 살아도 진짜 제자리만 도는데 그래도 언젠간 빛 보겠지하고 달리고 계시네요 저와 같이 힘들게 사시는분들 많으시겠지만 힘내세요 다들..!
초3때 IMF가왔습니다. 학교가니까 담임이 이제 뭐 정신바짝차리라면서 IMF왔다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희집은 다행이었던게 어머니는 학교 선생님 공무원이셨고, 아버지도 다니던 직장 그만두시고 개인적인 일을 하나 시작할때셔서 영향이 별로 없었던게 다행이었습니다. 아무튼 그때 참 아시아의 용이니 뭐니 하면서 한국이 중산층도 많고 경제적으로 잘살던 때였는데 국가부도가 와서 국민의 한사람으로써 마음이 아프네요.
전 어릴 때부터 주변 어른들한테 일명 '부도 베이비'라고 불렸습니다 아버지가 다니던 회사가 부도난 직후에 태어났거든요 이미 아내와 아들이 있던 상태에 갓난아기까지 태어났는데 회사가 망한 거죠 아빠 회사 작업복을 입은 채 끊었던 술을 한잔 하러 혼자 포장마차에 갔는데 손님들이 그 회사 사람이라고 알아보곤 사정 들어주더니 술값을 내주고 가셨더랫죠 다행히 곧 좋은 곳에 취직해 별 무리 없이 자랐지만 적어도 유치원 다니기 전 영유아기 때까지는 많이 어려웠었죠
그때가 저희 엄마께서 20대 후반쯤 되셨는데 이미 잃을것없이 가난한 집이라 타격이 없으셨데요 그때 서울살던 외삼촌이 엄마께 좀 큰지역에서 돈좀 만진다 하는 사람은 싹다 폭삭 망했다고 이제 우리나라 망할것 같다면서 엄청 흥분하며 전화를 했대요 저희아빠네 집은 내노라할정도로 부유했는데 imf 일어나기 딱 1년전에 사업이 망해서 재산이 좀 준뒤 그일로 욕심버리고 남은돈가지고 미국으로 이민가셔서 30년째 굉장히 잘사시고계세요 근데 아빠네 식구들이 항상 하는말이 두고두고 불행중 다행이라 하세요..imf때 망했으면 진짜 동반자살 했을거라고 그만큼 살길이 없었을거라고ㅠㅠ
우리부모님은 정말 열심히 개미처럼 일하셨다 잠도 적게 시간을 쪼개서 그리고 그 성실함과 정직함에 운이 답해줘서 넉넉하게 잘 살았다 쉽게 돈벌려고 꾀부리지도 않았고 단순한 투자나 한방을 노리지도 않으셨다 지금도 일절 정부지원없이 넉넉하게 하고 싶은거 세계 여러나라 여러번씩 여행 다 하시고 사시지만 평소 생활은 아주 검소하고 성실하시다 항상 힘들었던 과거잊지않고 도우며 배풀며 사시는 부모님을 존경한다 정직하고 성실한 삶은 보답받는다는걸 보고 자랐다
올해 30살인 90년생입니다. 초등학생때 가장 첫번째 본 뉴스부터 지금까지 단 한번도 국내 경기가 좋다는 뉴스를 본적이 없습니다.. 제또래 기억에 우리나라는 항상 어려운 상황속에 있었지 80년대 후반 90년대 초에 있었다는 호황은 역사속에만 존재하는 일 같이 느껴집니다.
큰아버지가 묵호(동해)에서 철강회사 운영하고 잘나갔는데 IMF로 내리막이었지요.(새뱃돈만 1만원짜리 3장씩받음) 그때 생각하면 IMF이전에는 풍족하게 살던 사람이 갑자기 몰락한거 보니... 무슨 감정이 잘 모르겠습니다. 아버지도 제일은행에서 근무했고 망하지 않았다면 은행장이 되거나 지방 은행지점장이 될 수 있는 코스도 밟고있다가(뱅크오브아메리카나 도이치에서 스카웃도 왔었습니다.) IMF로 나가리 되고 자산관리공사에 있다가 퇴직하고 식당하다 망해서 지금은 택시 운전하시고 계십니다. 하하하.... 무슨말을 이어갈지 정리가 안되는군요.
전 저때 초1이었어요. 지금도 기억남. 선생님이 집에 아빠 쉬고있는 사람 손들어보라했는데 50명중 저 포함 10명도 안되는 사람빼고 다 손들었음. 그때는 아빠가 회사 비상경영체제 돌입해서 회사 숙소에서 주무시던때라 걔들은 아빠 자주 봐서 좋겠다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내가 운이 좋았던거
ㄹㅇ. 그 전세대는 나이 차면 결혼하고 애 낳고, 가난해도 그런갑다 하고 살던 전쟁~전후 세대였으나, IMF이후로 가정불화, 빚 때문에 이혼하고, 하던 일 망해서 남편이 어디 갔는지 행방불명 된 집도 있고. 그걸 보고 자라 온 세대들은 돈 앞에서 결혼도 망설이고, 결혼 해도 예전 처럼 남들이 흉 볼 까봐, 혹은 애 때문에 사이 나빠도 쉬쉬하고 꾸역꾸역 사는 세대가 이제는 아니죠.
당시 들으면 알만한 중견기업 건설회사 다니던 아버지네 회사가 폭삭 망하면서 두살 아들 갓난이 딸 둔 지금 내 나이대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막일이며 어떤일이던 마다하지 않고 가정을 지켜줘서 내가 지금 이렇게 하고싶은 일 하며 살 수 있는거라고 생각합니다. 부모님이 자랑스럽고 또 자랑스러운 일.
저희 어머니... 딱 저때 태어나셨고 아버지도 imf 터지기 2년전에 태어나셔셔 아버지말로는 할아버지께서 사업에 성공하셔셔 2층집이였는데 갑자기 imf 터져서 할아버지 거의 부장급이였는데 해고당하고 투자한데는 다 망하고 완전 폭삭망해서 남의집가서 할머니는 유모로 살고 할아버지는 돈되는일이면 최대한 다 해보고 할머니 유모하시면서 그집에 딸린 쪼그만한 3 ~4 평 되는 다락방에서 3명이서 잤다고했는데.. 그래서 아버지 엉덩이 떼지도 않고 그 작은방에서 열심히 공부하셔서 지금은 자랑스러운 의사이십니다 . 전엔 아버지네 집만 심한줄 알았는데 댓글보니깐 그동안 아버지한테 짜증냈던게 죄송해지네요.. 올해 50되시는데 건강 안좋아지시기전에 빨리 효도해야겠어요... 다들 힘냅시다
92년생 imf때문에 부모님 겁나 싸우고 하던 사업들 다 정리하고 아빠고향으로 도망치듯 이사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 끔찍하다 끔찍해 지금은 취업난에 또 시달리고 진심 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 생들보고 왜 저주받은 세대라고 부르는 지 어릴 때 부터 뼈져리게 느끼고 있다
우리 아버지도 욕조회사 크게 하시다가 망하셨는데 그 힘든걸 다 이겨내고 집안 다시 일으켜 세우셨음ㅠㅠ 지금 일 그만 두시고 편하게 쉬고 계시는데 난 제일 존경하는분 하면 우리 아버지임. 그 힘들었을때를 다 보고 커 와서 얼마나 힘드셨는지 알기 때문에 그리고 누나랑 나랑 기 죽지 않게 힘들어도 다 해주실려던 우리 아버지, 어머니.. 그래서 난 우리 부모님을 위해서는 뭐든 할수 있음.
인류는 10만 이상을 먹고 마시고 즐기고 살었어요. 시대에 따라 삶의 방식 행복의 척도가 달라지지만 내 주변에는 없고 주변의 주변에는 있는 영원히 오지않을 행운에 목메지 말고 자신의 가치를 높히고 그속에서 행복을 찾는다면 부모님 시대의 행운이 부럽지 않을 겁니다.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가는 길에 있었던 부모님 세대의 행운이 앞으로 다시는 없을겁니다. 이제 새로운 우리들의 행복을 찾아 새로운 기틀을 만들고 다음 세대에 물려줘야할 의무만 남은 겁니다. 그 의무가 버겁다면 적자생존 도퇴는 자연의 섭리지요.
80년생 우리 형이 7살때 도시락 가방이 나이키 진품 이였다가 IMF 때 망해서 90년생인 나는 30센치 소시지 하나로 부모님 없이 일주일을 살았었지 빨간딱지 가 붙은 티비로 뭔줄도 모르고 케이블 방송 카툰네트워트 만화 보면 돈내야 한다 라는 중학생 누나의 짠한 거짓말이 생각나네 젊은 우리 엄마 아빠는 그 당시 얼마나 힘드셨을고 부모님 사랑 합니다
우리집은 저때 다행히 사업은안해서 그때 모앗던 돈으로 강남에 땅삿는데 그땅이 비싸져서 그거 팔고 지금은 팔고 그돈으로 저희고향인 대전에서 건물사고 아버지는 사업하십니다 제기억으로는 그때 당시에 아버지가 위기를 기회로 바꾸자고 하셔서 그때 엄마가 제일 말리신걸로 기억하는데 아버지가 인생뭐 있냐고 한번 질러보자고 하셔서 엄마가 말리셨는데 결국엔 했습니다 오히려 지금은 엄마가 제일 좋아합니다ㅋㅋㅋㅋㅋ
아버지는 사업가에 중형차.. 엄마는 거실과 냉장고,세탁기를 보유한 분리된 주방을 갖춘 서울 한복판아파트에서 실크 잠옷으로.. 아이들은 소파앞에서 생일케잌으로 축하받고 도시락 반찬으로는 햄과 소세지가 끊이질 않았겠지?! 특히 여아이는 예쁜 브랜드 공주복으로.. 당시의 대한민국 상류층..부자의 생활.. 정말이지 부러움의 대상이다.. 어머니와 나와 동생들도 아버지 돌아가신후 ㄸ구멍찣어지게 가난했었지.. 국민학교때 서러움과 친척집에 맡겨졌을때의 눈치밥..애비없는 가정이라 놀림받을까 노심초사 하시며 고생이란 고생을 지지리도 겪으셨던 어머니.. 짐도 생각하면 눈물이난다..
저도 그 시절 초딩이었는데, 원래 못 살아서 그런지, 별로 타격이 없었어요.. 저희집도 엄청 허름한 연립주택이었고, 아버지가 기술직으로 공업사에 일 하셨는데 빚은 없지만 정말 소소하게 살았던 기억이 있었어요, imf때문에 집이 확 어려워 지거나 그런 얘기는 좀 살았던 집안들이 크겠죠
저도 04년생인데 제가 배운 바로는 아마 경제성장이 급속화돼서 너무 퍼주다가 경제가 어려워져서 국제 통화 기금(IMF)의 도움을 받았는데 돈을 빌려주는 대가는 돈을 다 갚을 때까지 IMF가 시키는 대로 다 하는 거였는데 IMF가 철폐하라고 하면 회사나 기관같은 것도 철폐해야한다 하던데 대충 이렇게 압니다
저희집은 아버지가 전문직이여서 IMF 가 뭔지도 모르고 지나갔어요 오히려 저희집 소득은 항상 비슷비슷한데 다른 분들 소득이 많이 떨어져 상대적으로 잘 살아 보였던 기역도 나네요 그 시기쯤 우리 가족모두 한달동안 미국 해외여행한 기억도 나고.. 나름 풍족한 IMF 시절을 보낸 것 같에요.. 이런거 보면 역시 좋은 전문직을 가져야 된다는 거와 투기 투자 주식 이런거는 자기 분수에 맞지 않게 무리하게 하면 안된다는걸 느낀 것 같음..
저는 군시절에 Imf를 겪었습니다. 부산 출신인데 서울로 대학간 친구들중에 집안 형편이 좋은 경우는 아파트를 집에서 사주기도 했었는데 그런 친구들은 제대하고오니 아이엠에프 이후 집값이 오르면서 등록금, 생활비까지 전부 다 뽑아먹고도 남게됐었죠. 90학번 91학번들 회사에 합격했다가 입사 취소 통보받는 경우도 봤고 군에서는 휴학하고 입대 신청한 장정들이 너무 많아 수용이 안되어서 매트리스 두장당 세명씩 자기도 했고, 유류비 아낀다며 훈련도 줄이고, 부식도 줄였고, 심지어는 보너스도 없앴습니다. 요즘 군대가면 나오는 100일 휴가라는게 imf 때문에 생긴겁니다. 그 이전에는 훈련소 수료하면 퇴소식을 했었고 가족들과 1박2일 외박을 허용해줬고 첫휴가는 육개월 지나면 일병 진급 휴가라해서 보내줬죠. 근데 나라에 큰일이 터져 살기가 힘들어지면서 부모님들이 면회 오시기도 어려워져서 퇴소식과 외박을 폐지하고 백일이 되면 휴가를 보내주는걸로 바뀌었죠. 그 이전에는 요즘처럼 입대할때 입고온 사복을 소포로 집으로 보내줬었는데 Imf 시기에는 예산 절감을 위해 창고에 보관했다가 첫휴가 나가면서 녹색 비닐 봉투에 직접 가지고 나가게 했었죠. 참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습니다.
저때 내 친구가 유치원 다닐때 부모님 이혼했었음.. 그때 imf 초기라 이혼한 애들이 많지 않았는데 다른 애들이 약간 불쌍하게 보고 그랬음 그리고 그 불쌍하게 본 애들중 몇몇은 자기 가족도 이혼했고.. 원래 그 친구 집이 가난했었는데 imf까지 와서 돈때문에 이혼했다고 들었음 지금은 아버지 부동산 대박나셔서 잘 사는데 아직도 그 생각하면 가슴이 찡하대.. 그리구 이혼하고 몇십년만에 어머니 찾아서 이복동생하고 아버지하고 넷이서 잘 살고있음..
저의 경우는 imf때가 5살이었는데 저희집이 imf로 타격을 입은 적이 없어서 경제적으로 무난하게 안정적이었던 걸로 알아요. 왜냐하면 그때 당시에 저희 아버지가 고등학교 선생님이셔서 imf때 집안에 큰 타격을 입지 않았거든요. 부모님께 imf때 상황 어땠냐고 물어봤을때 그렇게 말씀하셔서 imf때가 기억이 안나기도 하면서도 얼마나 어려운 상황이었는지를 초등때 교과서나 뉴스를 통해서야 비로소 1997년에 경제적으로 심각했던 상황이 있었구나 라고 깨달았어요. 아버지의 직업 때문에 집안상황에 타격을 입지 않아서 그런건지 잘 모르겠지만 어릴때부터 장래희망이 교사였었어요. 지금도 하고 싶어하는 직업이나 회사의 경우도 다 "공"이란 단어가 들어간 직업이나 회사를 선호해요. 공기업이나 교사나 공무원같은 안정적인 직업을 선호하는 것도 어찌보면 아버지의 직업 영향으로 그런 것 같아요.
저희집이야 부모님이 공무원이셔서 큰 탈은 없었지만 국딩에서 막 초딩으로 전직한 시기에 반 친구 한사람이 다음 날 부터 학교에 안나오는 경우가 있었죠. 회사 부도 때문에 아버지께서 야반도주를 해서 같이 갔다고 들었었는데 늘 마음한켠에 잘지내고 있나 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부디 몸 건강히 잘 지내고 열심히 살고있길 바라!
동시대 사람이라 그런지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 한구석은 먹먹하면서도 응원해 드리고 싶은, 그 다음이 더 궁금해지는 영화였어요. 저희 부모님 생각도 많이 나고, 생각이 참 많아지네요. 가볍게 본 영화가 나에게 많은 감정을 그리고 생각을 하게 만들어주네요. 지루할 틈 없이 영화 잘 봤습니다.
지금 20대들을 30대중후반이나 40대초중반이 공감하는게 저 고3 마지막해에 터지더군요. 그 당시 상고 다녔는데 은행에 취업됐던친구들 대부분 취업 보류나 취소당하고 집이 망해서 도망가거나 자살하던 부모님들이 계셔서 힘들었어요. 특히 그 당시 초등학생이던 아이들 중 집이 어렵던 애들이 보육원에 맡겨진 일이 많아서 참 암담하던 시절이었네요. 그래서 지금 20대들 보면 안쓰러워요. 못먹고 자라던 세대들이라...
난 IMF때 없었지만 언니들이랑 나이차이 많이나서 들어본 얘기로는 아빠 마트하셨는데 엄청 힘드셨다고... 엄마도 모든 금 다 내놔서 언니들 돌반지도없구 엄마 결혼반지도없다고... 아직도 엄마 반지같은거 가지고싶어하시는데.. 고등학생인 내가 선물하기엔 큰돈이라.. 나중에 직장들어가서 돈 모으면 꼭 해드릴게요 ㅠ
아버지가 술에 취하시면 항상 하시는 말씀이.. “IMF만 없었으면 넌 헬기타고 도련님 소리 듣는거였는데...” 흐엉 ㅠㅠ
저도 아빠랑 자주 다툴때도 많았고 짜증도 낼때가 많았습니다 (아버지 죄송합니다)나중에 시간데시면 아버지 한데 감사하다고 예기하면서 안아주세요
그래도 댓글에서 보이는 가족에 대한 애정이, 도련님소리 안들어도 이미 멋지게 크신듯
감성충들
@@Dearest. 이 댓글의 요지가 그게 아닐텐데...
Imf가 없었다면 저희가 엄청난 외국자본에 의존하고 있다는걸 알지 못했겠죵
나도 애기때 백일반지며. 돌반지 등등 집에 금이 어느정도 있었는데 IMF 때 그런상황이 오더니 부모님이 집에 있던 금 다 파심...
근데 웃긴건 그때 겁나 큰 부자들은 금 안내놓은게 사실. 금 내놓은건 일반 중산. 서민 들 뿐.
애당초 금모으기 운동은 의미가 없었음
와 실화냥? 지들 부자라서 지들 살겠다고 지X하는 재벌새키들한테 보이스피싱이 왔으면...
쌉인정
ㄹㅇ 잇는놈들은 안팔고 일반 서민들이 다 냈지 ㅋㅋㅋ 저도 백일돌반지 하나도 없심더 ㅋㅋㅋ
흑흑 우리 할머니도 그때 금바친거 후회하심ㅠ
저때 취미로 비디오 카메라러 저런 일상을 담았다는 거 자체가.. 아버지가 돈만큼 값진 것을 물려 주셨네요~
진짜 너무 부러워요ㅠ 저도 저 당시 어렸을 때라 비디오 카메라는 정말 부의 상징이었는데...
저희 집도 비디오카메라 있어서 어릴 때 일상 다 남아있는데... 27살되서야 다른 집에 캠코더 없는거 알았네요ㅎㅎ 이 댓글보고...
저당시라는게 몇년도를 말하는거죠..? 감이안오네요. 90년대생인데 태어났을때 당시 비디오는 다 가지구있고, 심지어 어머니아버지 결혼하시기 전 함 사세요 외치는것들까지 다 찍혀있던데...너무옛날얘기하시는거같아서.,,
@@김미니-i8n 비디오는 있었쥬..비디오 카메라까지 갖구 있는 집은 많진 않았쥬..80년대생은..
김미니 비디오는 어느 집이나 있지만 저시절 캠코더는 메모리칩이 아니라 보관이 어려웠죠ㅠ 따로 핸드폰이나 웹저징도 없었기때문에 테엽 자체를 잃어버리거나 테엽형이라 잘 망가지고 필림 꼬여가지고... 보관이 어려웠죠 ㅠ
당시에 우리집은 비디오가게를 하고있었는데,
IMF에 오히려 장사가 너무 잘됬었다.
어린 기억에, 매일 같은 시간 퇴근길에 양복을 멋지게 차려입고 비디오 빌려가시던 아저씨가, 고동색 짙은 추리닝 바지를 입고 머리를 긁적이며 씁쓸한 웃음을 짓던 그 모습이 떠오른다. 지금 어른이 되어보니 그 웃음의 깊은 의미를 알 것만 같다.
영화관은 돈이 많이들고 컴퓨터+인터넷은 비싸고
비디오가게가 Imf당시 체인점 비슷하게 생기고 만화책도 빌릴수있게 해놓고(그전 비디오가게는 비디오만 빌릴수있고 만화방은 있어도 만화책 빌릴수있는곳이 없었던걸로 기억하네요) 1박2일에 오래된 비디오는500원인가 그랬었던.
그래서 아마 잘됬던게 아닌지 싶어요.
imf때 잘됬던게 PC방도 잘됬었다네요 그때가격이 한시간에 천원이였던걸로 기억하는.
_망망류화갱얼쥐 굳이 그러고 싶니......
그 의미가 뭐에요?제가
어른이 아니어서..
ㅠㅠ
@@Duck순 저도 초딩인데 아마도 일자리를 잃으신거 같네요 ㅠㅠ 경제위기로 ㅠㅠ
난 IMF를 느끼지 못했음. 우리 집은 있던게 없어질정도로 무언가를 가져본적이 없었기 때문.
.......
Me too.
미투
나 고2였는데 imf가 뭐냐... 썅
맞아요.. 항상 힘들었죠.. 그냥 계속..
내동생 초등학교 때 나 중학생때 imf로 한순간에 집도 잃고 부모님과도 생이별... 지금까지 아버지는 생사를 모름.. 허허..
무슨일이 있어도 동생과 떨어지면 안된다 그리고 엄마를 잘부탁한다
최덕팔 여기 운동장아이다
부모님과도 다시 만나고 생사를 모른 아버지와도 다시 만나길 바랄게요 가족 이라는게 끈끈한 인연 입니다
힘내세요!
ㅋㅋㅋㅋㅋ
저도 imf때문에 인생이 바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전후로 나뉘어요 제 인생은
영상 속 말 한마디 한마디 전부 공감합니다
아기엿어요 저희엄마가 제 돌반지 다 냈대요.
인생이 바뀌었데ㅋㅋㅋ님 인생은 님이 만드세요 부모님 탓 오지구요
@@chhshshdggsjs7519 인생이 어떻게 바뀌었다 이렇게 말 한 것도 아닌데 갑자기 화내네
@@chhshshdggsjs7519 이게 부모님탓이라고 했냐? 저때 태어나긴했었니 급식아
@@chhshshdggsjs7519 왜케 악부리세요..? 가슴에 화가 많으신분이신듯.. 미세먼지 걷히면 좀 뛰세요
반친구 일가족 동반자살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는 IMF.
헐 일가족이 동반자살할정도였음...?얼마나 폭삿 망했길래....충격이 크셨겠네요
눈물나네
@@eew7446 ? 좋은 쪽이 뭔데요..?
양날의검 무슨 뜻인지 알고 쓰는거?
충격이셨겠네요..
@@whiteB_ 한국경제 구조조정하는 절호의 기회 ㅡㅡ
7살때 imf왔었는데 초등학교 들어가니까 집 망했다고 한 애들이 더러 있었음 동사무소에서 금모으기 운동한것도 또렷이 기억남 엄마 아빠가 금 내러가구.. 그때 한창 돈벌어야 했던 직장인 분들 짤리셔서 다 힘드셨겠지만 문제는 ㅋㅋㅋ 그분들의 딸뻘 세대도 만만치 않게 힘들다는거. 취업도 잘안되궁 .. 내 주변도 보면 얼마전 까지 정규직으로 취업한 애들 얼마 없었고 하더라도 월급 별로 안높고 진짜 문과는 취업 전멸에 .. 우울한 이야기가 대를 이어 계속되는듯
그 금들이 그때 외환위기 사태에 주범들 중 하나인 기업들 똥닦는데 사용되었죠..
현 01년생인데 내년에 02 통합되면 진짜 문과 설 자리가 없을 거 같음.....
고작 7살따위가 기억날리가. 세상까막눈 사회까막눈 시기여 그때가. 마치 95년생따위가 02월드컵 생중계 본 거 다 기억나네 하는꼴
@!? ㅋㅋㅋ묵직하다
개새끼 으휴 고작 7살따위라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 7살이라서 더 기억을 하는 거지^^ 그 어린 나이에 얼마나 힘들었으면 아직도 기억을 하겠니
저때 폭락한 부동산 줍줍한 사람들 지금다 재벌됐음 ,,,
저희 엄마가 저 시기에 부동산 하셨는데 돈많은 사람들이 집을 개많이사가셨데요.. ㅠㅠ
@@찾으러감아이디 부가 부를 낳는듯..
저희집이 그렇습니다
그때 사놓은건물이 벌써
그때시세의 수십수백배가 됐네요
Selena송 좋겠네요
결국 극소수 돈많은사람만 저당시 부를 따따블로 뻥튀기한거네요.중산층은 거의 전멸하구요.
가난한사람이 부자가되면 그 습관을 못버려서 계속 검소하고 아껴씀
부자 였던 사람이 가난해지면
습관처럼 씀씀이가 줄어들수없음
오 띵언
오히려 가난 할때 많은 돈이 들어오면 망하는 일이 많아보이는데
?오히려 가난한 사람이 부자되면 돈관리 못해서 망해버리던데 부자였던 사람은 돈관리하던 습관덕에 다시 일어나는 경우가 많고
정 반대인데ㅋㅋㅋ
Duesenberry 상대소득가설의 톱니효과가 이를 설명하죠
서울역에서 노숙하는분들중에 imf때 커다란중소기업 사장들많다
커다란 중소기업은 뭐죠? 커다라면 대기업 아닙니까?
@@몰라-y2t 웃고 간다
김상억 증견기업 말하는거 아닐까요
@@nobunagaoda30 중견아니고?
@@nobunagaoda30 아 그럴수도 있고요
저희 부모님도 부동산 환상 아직도 가지고 계세요... 미래를 보고 살지 않고 과거를 보며 살고 있는 부모님... 에효 남일이 아님ㅜㅠ
JudithM. 지금이̆̈ 부동산 한 방 공식이̆̈ 더하면 더했지̆̈ 그때보다̆̈ 덜하진 안잖아요ㅠ
먼소리예요 지방에 아파트 넘치고 넘쳐서 분양도 안되는판에 유령도시도 넘쳐서 이젠 부동산 똥산됬어요
지방은 부동산 투자를 잘 안하죠 한방공식은 수도권이야기이고 실제 통계를 보자면 맞는 말이고요
서울부동산이면 그때보다 더 합니다
부동산 환상이 아닙니다. 어느정도 여유있는사람은 아직도 부동산으로 돈벌어요. 지금 대출안해줘서 그렇지 유주택자 대출되면 작년시세 회복할겁니다.
아부지가 공무원이셔서 그냥 조용히 넘어갔었던 기억이 있다.. 다른 사람들 망하는것도 몰랐었음
ㄹㅇ 공무원들 대부분은 성향이 그래서 그런지 투자도 별로 안하고 안짤리니 그냥저냥 넘어감 울집도
@@higher8476 저는 그당시 않태어났어서 모르지만 제가 엄마한테 물어봤는데 엄마는 그때 사법고시 붙었데요 그래서 그럭저럭 사랐다네요
저두요 그냥잘살지도 못살지도무난하게살았네요 아빠가의심이많은분이고빚지는거싫어해서 카드도잘안쓰는분이라 열심히저축하며 평범하게살았던.올해서른인데 솔직히 기억나는건 아나바다운동엄청했던거랑(그때당시했던건지모르겠네요 imf이훈지)금모으기운동은기억나요 반대로저희남편은 집이어려워졌었다고ㅠ
히치
울 아빠도 저때 괜찮아서 망하지 않음. 그래서 내가 IMF에 대해서 잘 모르고 산듯.
울 오빠도 지금 성인인데 난 IMF에 대해 들어본적 없었던 것 같음.
저희집도... 그래서 imf가 얼마나 심각한건지 감도 못잡았었죠
자살률 폭등하던 시절;; 직격타 맞은 세대라서 공감가고 기분이 더럽다 ㅠㅜ 압구정 아파트 살다가 IMF 터지고 시흥에 다 쓰러져가는 벽돌빌라로 이사가던걸 어린시절의 나는 이해를 못했지.
요즘 20대가 공무원 공기업에 집착하는데는 이유가 있네요. 저때의 집단 기억이 있어서 지금도 안정적인 직업 집착하는 듯.
그게 아니라 그냥 요즘 공무원이 복지가 좋아서 그런거 아닌가요
요새 20대는 저때 태어났는데 기억이 어딨음
@@user-pr6cb1oq3f 20대들 부모님세대들이 공무원이 최고라고 세뇌시켰음 ㅋㅋㅋ 안정적이고 제일 좋다고...나도 공무원 소리 지겹도록 듣고 자람
@@user-pr6cb1oq3f 요새 20대가 자의적으로 처음부터 저걸 고른게 아니고
애초에 공무원은 이름부터
조또 재미있는 일이 없을 것 같은데
자의적으로 고르는 케이스가 흔치 않지
저때 트라우마 있는 부모가
공무원밖에는 못 하는 식으로 공부시킨거지
@@이22-g9o imf 때 워낙 해고당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마지막까지 직장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공무원이였음.
imf 전까지 공무원은 할거 없는 사람들이나 하는 거였음. 공무원한다하면 ㅁㅊ놈 소리 듣던 시절.
저때24억이면.....
와 20년전 24억.... 지금 100억 가뿐히 넘겠네요
저때나 지금이나 지페는 같았고 환율도 같았던걸로알음
환율은 같아도 집값이라던가 이것저것 물가는 엄청나게 뛰었죠
@성지우 ? 웃음포인트를못찻갯성...ㅠㅠ
이야....
다좋은데 나는 안겪었고 안힘들었는데 부동산 투자하다가 망한거아니냐는 이상한 댓글들좀 없었으면 좋겠다
실제로 피해를 많이본건 부동산이아니고 회사다니고 자영업하던 서민들인데 뭔 개소리들을 하는지 모르겠다
회사 다니는 사람도 직장에서 짤렷지만
저 당시는 돈이 돈을 부르는 사회였습니다..
은행이자보다도 더 비싼 개인사채를 10프
로를 빌려 투자를 해도 돈이 남았고 일반
사람들도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았죠
직장인만 피해본게 아니라 전국민이
피해를 봤습니다..부자들이 몰락했고
중산층이 몰락하다보니 소비가 안되고
일반가게부터 기업까지 줄도산되니
본인이 그 시절에 겪지 못했다는
개소리로 직장 있는 서민만 피해다?라는 합리화는 노노입니다
지금 정부도 마찬가지고 이전정부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동산 투기는 나쁜것이지만
부동산이 활성화되지 않아도 문제입니다
이거까지는 설명하기 귀찮네요
개소리 하시는 분에게 귀찮지만
대충 설 명해드리죠 단순히 집값이 오른다
그게 거품은 아닌겁니다
물가라 보시면 어느정도 이해는될거고
서울이 왜이리 비싸냐?
이 질문은 니가 같은돈이면 지방에 살래 서울에 살래
본인이 생각해보세요
당연히 서울에 살겠죠?
그럼 다음은
서울대가 좋아요? 경기대가 좋아요?
이런질문을 대답해보시면
답은 뻔합니다
그래서 집값이 비싼거죠
근데 내가 당신같이 개소리 하는
사람에게 이런 내 귀중한 시간을
들여 설명을 하니까
진짜 개소리 댓글에 또 댓글을
달면서 시간 낭비하네요 ㅜㅜ
@@오정섭-p2s 시간이 아까우면 세줄요약을 하세요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지 말고
IMF전에는 공무원,공기업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친구는 한전 다니다가 월급 적다고 현대로 왔다가 현대전자 공중분해로 중소업체에 전전하고 있음,,,,,지금 공기업 다니는 친구들 신의 직장이 될지 몰랐지.....인생 복불복이야.
저희 아빠가 한전다니시다가 스카웃되셨는데 안가신게 진짜 신의한수였네요 ... 지금은 킹갓공기업이 되버림
울아빠 삼성다니다가 주변에 권유로 오래못간다해서 90년대 중반에 공무원 시험 쳐서 들어온게
신의 한수 ㅋㅋㅋ
울아빠도 건보공이라..타격 없었음
@@Iveive12345 삼성은 자동차사업부 아니면 나간 게 오히려...
@@셀토스-h2m 아빠랑 같이 다녔던 아저씨들 1명 빼고 다 짤림 ㅋㅋㅋ
IMF 를 거치면서 이혼 정말 많이 했죠... 이혼 전에 먼저 실직이 있었고... 사업하시는 분들은 부도하고 빨간 딱지가 먼저 있었고.... ;;;;;; IMF 가 다 지나고 나서 결국 돌아보니 최대 수혜자가 대기업이였네요... 산업 생태계가 완전히 대기업 위주로 바뀌는 전환점이 IMF 였던 것 같습니다.
수혜자라구요? 망한 대기업도 수두룩해요 그와중에 살아남은 대기업들이 현존해서 대한민국 먹여살리고 있는중이죠
금융법안 반대한 김대중이 정치 최대수혜자면 모를까
earial y 빛때문에 이혼 하시분도 많아요 ~ 사실은 같이 살지만
@@asmrnrinasmr7188 무슨로비요 ㅋㅋㅋ상상하지마세요
로비만으로 글로벌기업이 될 가능성이 얼마나 있는지 생각해보시길 바래요
대기업이 산업을 이끌어가는 구조라 피해가 더컷던겁니다
@@asmrnrinasmr7188 삼성만큼 깨끗한기업 없습니다
언론에서 삼바 회계로 크게 1면장식을 햇어도 신문기사 자세히 읽어보면 정부가 말장난치며 푸쉬하는거 보일텐데요
그저 아 삼성 더러워 비리가 많을것 같다라고 근거없이 상상하는 님 좀 불쌍하네요
한쪽에서 큰소리쳐도 정보를 걸러내 구별하는건 자신의 몫입니다
할아버지가 강남에 땅사고 존버타다 금수저됌 개천에서 용남
ㅋㅋㅋ
됨
님아버지는 오렌지족이 되셨겠네요
@@김미니-i8n 부럽당
저희 아버지도 imf 터지고 강남에 집 두 채 사 놓으셨는데 집값 많이 올라서 호화롭게 살고 계십니다
난 솔직히 imf 이전에도 찢어지게 가난했던 집구석이라 국가 부도가 어쩌고 저쩌고 하나도 감이 안 왔음....... 아빠는 기술자라 딱히 영향이 없기도 했고. 오히려 잘 먹고 잘 살던 중산층 이상 계급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져 내렸지, 우리같은 밑바닥 인생들은 원래도 없이 살아서 더 안 좋아질 일도 없었던 거 같음. 더 망할 것도 없던 집구석이라 꾸준히 예금해서 돈 모았고 30평 넘는 아파트도 삼. 평생을 지하실 단칸방, 바퀴벌레 드글거리는 낡은 빌라로 전전하며 살다가 처음 집 샀을 때 엄마가 펑펑 울었음.....
@@사랑감사-d6q 뭔 ㅉㅉ임
엄마 아빠 명문대나오고 대기업다니면서 부귀영화길 걷다가,, IMF 이후로 다 잘리고..
아버지 다니시던 곳이 큰 제약회사였는데도 당시에 엄청 휘청거렸었다고 함 별종이었던 아버지는 구조조정될 위치 아니었는데 밑에 사람들이 줄줄이 잘려나가니까 그냥 사표 내고 나오셨음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랑 엄청 싸우셨고 가족들은 월세집 전전하면서 이사도 엄청 자주 다니고 아버지는 사업 하신다고 진짜 몇년을 가족들도 버려두고 사무실이나 공장에서 시간 보내곤 하셨는데... 어쨋든 지금 떠올려도 안좋은 기억들....
힘내세요! 그래도 아버님께서 가족을 버려둔게 아니라 가족을 살리기위해 사무실이나 공장에서 시간을 보내셨던거실거에요
@@레고-i3f 가족을 살리려고 했으면 사표를 내지 말았어야죠. 다른 수입이 일절 없는데 회사를 덜컥 그만두면 당시엔 멀쩡하던 회사도 망하던 시절이라 재취업이 하늘에 별따기였는데....... 어머니가 빡칠만 하죠. 자식도 있으면서 뭐 먹고 살라고 사표를 냅니까 ㅋㅋ
1201 kalry 님 일상생활가능하세요?
사표낸걸 누가 잘했답니까?
사표낸건 사표낸거고 그건 제가 왈가왈부할것도 아니구요
사표낸 이후 공장이나 회사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신거에대해서 서운하게 생각하시는것같길래 한푼이라도 더 벌려고 가족들 먹여살리려고 그러신걸거다라며 좋게 생각하십사 글 남긴건데 누가 애초에 사표낸걸 잘했답디까? ㅋㅋ 난독증 고치세요
@@레고-i3f 애초에 전제가 잘못됐는데 좋게 포장해봐야 무슨 소용? 멀쩡히 잘 다니던 회사를 짤린 것도 아니고 본인 스스로 그만두는 행위의 어디에 가족을 부양할 마음이 있다는 거에요?? IMF 때는 취업 자체가 거의 안 되던 시절이었고 뭘 해도 먹고 살기 힘들었는데 잘 다니던 회사를 일부러 관두고 공장 다니는 게 좋게 생각해줘야 할 일?? 님이야말로 일상생활 가능함?? 당장 님이 처자식 먹여 살려야 하는데 불경기에 잘 다니는 회사 관두고 공장 다니면서 가족들 먹여 살리니까 난 좋은 가장이다, 이럴 수 있어요?? 애초에 사표를 안 썼으면 실업자 될 일도 없고 가족들 먹여 살린다고 공장 다니지도 않앗겠죠. 그러니까 부부싸움도 하신 거고요. 난독증은 님이나 좀 고치시고요 ㅋㅋㅋㅋㅋㅋ
레고 애초에 진짜 가족을 생각했으면 사표를 내지도 않았겠지 ㅋㅋㅋㅋ 말이 되는 소리를 하세요
우리 세대에 가장 큰 사건은 imf가 맞아요. 유년 시기의 그 일로 인해 “정서적” 부분이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우리 세대의 직업 선택에 가장 큰 요인이 “안정”에 있는 것도. 우리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 이유가 너무 힘들었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80년대생들이 유난히 다른세대보다 개인주의가 강하고, 남피해주면서 자기몫 챙기는게 강한것 같네요.. 다는 아니지만 아엠에프때 초딩, 사춘기 겪으며 정서적 영향이 컸기에. 직장에서도 보면 남짓밟고 왕따 조장하고 패 나누고 텃세부리는 직원들 대부분 80년대생들 ㅠㅠ "우리애 기죽이지 마요!" 엄마들도 80년대생들.. 내몫을 악착같이 챙겨야 살아남는다는걸 다른 세대보다 절실하게 체험한 세대니까요.
저출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는 지금의 소위 'MZ' 세대를 전혀 이해하려 하지 않습니다. 어릴 때 IMF 시절, 내가 가족의 짐인 채로 크면서 어른이 된 세대가, 가족이 박살나면서 조각나고 공동체가 나를 방치한 경험이 맘속 깊이 각인된 세대가, 다시 두 번의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출산을 어떻게 바라보게 됐을지, 그들에게 아이들이란 과연 희망인지 짐인지, 자원이 풍부할지 아닐지 계속해서 불투명한 상황 속에서 똑같이 가족의 짐을 생산해내 고독하고 외로운 삶을 반복하게 할 자신이 있는지, 여전히 그들 스스로는 희망인지 짐인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사실 IMF 당시 아이였던 어른들은 자신을 이해해 주기를 기대도 않습니다. 기대가 없으니 딱히 이해해 달라고도 않죠. 어차피 뭐라 할지는 똑같으니 입 아프게 긴 말 않고 그냥 겉으로 드러난 경제적 어려움만 말합니다. 다만 같은 MZ로 묶이더라도 경제 상황이 1990년대 중후반과 2000년대 중후반은 부쩍 달랐던 만큼 지금 20대 초반은 분명 삶의 궤적이 많이 다를 것입니다.
imf 때 아버지 여기저기 돈 끌어쓰고 잠적해버리고 엄마 뇌졸중으로 불구되고 그 때 초등학생이었는데 어릴떄부터 집안살림하고 엄마 간병하고 돈이없어서 쌀빌려다가 물 잔뜩붓고 반찬도 없이 끓여먹었다 이기억은 절대 잊을 수 없지...
아이고 ㅠㅠ 현재 어머니는 괜찮으신 가요?
저때 2~40대였던 분들은 정말 땅에 대한 욕망이 크신 것 같아요. 저희 집도 어딜가던지 어른들끼리 모이기만 하면 땅이야기부터 시작하시거든요. 어디가 오르고 있더라 지금 가지고 있는 땅이 어떤 땅이더라고 하시면서 모이시면 이야기의 끝을 땅으로 맺으시는 것 같아요.
그런거 같기도 해요... 저희 부모님도 가끄씩 할머니랑 만나면 엄마랑 할머니랑 땅값(?)이야기하고 그래요..
아니면 그냥 지금 나이때쯤에 어른들이 부동산얘기를 많이 하는거일수도있어요 저는 웬지 50대쯤되면 부동산얘기를 할껏같네요ㅋㅋㄱ
작년만해도 서울 집값 상승률이 어마무시했는데 집이야기를 안할수가없죠 몇십억이 왔다갔다하는 판인데 혼자모르고있으면 본인만 손해보는 시장이 부동산시장입니다
그냥 지금도 30대이상이면 무조건 얘기하고 20대후반만되도 관심있으면 얘기해용ㅎㅎ
코파파 엥 ㅋㅋㅋㅋㅋㅋ투기 불법인데 ㅋㅋ자랑임?
현실은 국민이 사치해서 IMF왔다고 교육시키던거 보곤 얼탱이가 없었죠. 저도 iMF 직격세대였습니다. 후
저 유치원생때 IMF 국가부도의 년도 제 동생은 그 해에 태어났어요
에?누가 그딴식으로 교육시켜요?? 우리나라가 한참 성장은 했지만 그만큼 해외 투자자들에게 빚도 많이 지고 있었는데 외국 어디더라 그쪽에 경제상황이 안좋아지면서 투자자들이 우리나라한테 한꺼번에 돈갚으라고 했는데 그 당시에 그럴만큼의 돈(외화)이 없어서 IMF에 구제신청을 하게 됬고 교과서에 다들 그렇게 나와있던걸로 기억나는데...
@@수연S-f3r 요즘 교과서는 모르겠는데 제가 초등학교 때만해도 정말로 국민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내용으로 가르쳤습니다. 실제로는 아시아 크라이시스 때문이지만...
@@고르도 미쳤나봅니다... 하... 어떠한 경우에도 정부가 사회문제의 원인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일은 있어서는 안되는 일인데 말이죠..
정부는..국민 개개인 보다는 압도적인 강자의 입장에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강자가 약자의 탓을 하다니 원,..쯧..,
당시 일반서민가계 저축률은 매우 높았고 과소비가 아닌 기업들이 빚을 펑펑써가며 해댄 과잉투자가 잘못이었죠. 물론 그 빚은 다 서민들이 저축해놓은 예적금에서 나온거구요.
사실상 IMF때 힘들고 극복하셔서 지금은 옛날 이야기다
하시는분들도 계시겠지만 아직까지 극복하지 못하고
힘들게 사는분들도 많죠..
저희 집은 아직 힘들게 사네요
부모님 두분도 노후까지 걱정하시면서 힘들게 사시구
있는 자식이라곤 취업못해 전전긍긍하구 ..
부모님만 바라보면 잠도 안주무시고
열심히 살아도 진짜 제자리만 도는데
그래도 언젠간 빛 보겠지하고 달리고 계시네요
저와 같이 힘들게 사시는분들 많으시겠지만
힘내세요 다들..!
그렇습니다 이제는 빛을 보고 있습니다 당신 집은 아직 힘들게 살지만 조금씩 안정도 찾고 잘 살고 있습니다 열심히 살아도 제자리만 도는데 이제는 힘찬 출발을 시작한 님을 격려 합니다
괜찮아 질거에요 응원합니다
초3때 IMF가왔습니다. 학교가니까 담임이 이제 뭐 정신바짝차리라면서 IMF왔다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희집은 다행이었던게 어머니는 학교 선생님 공무원이셨고, 아버지도 다니던 직장 그만두시고 개인적인 일을 하나 시작할때셔서 영향이 별로 없었던게 다행이었습니다. 아무튼 그때 참 아시아의 용이니 뭐니 하면서 한국이 중산층도 많고 경제적으로 잘살던 때였는데 국가부도가 와서 국민의 한사람으로써 마음이 아프네요.
전 어릴 때부터 주변 어른들한테 일명 '부도 베이비'라고 불렸습니다 아버지가 다니던 회사가 부도난 직후에 태어났거든요 이미 아내와 아들이 있던 상태에 갓난아기까지 태어났는데 회사가 망한 거죠 아빠 회사 작업복을 입은 채 끊었던 술을 한잔 하러 혼자 포장마차에 갔는데 손님들이 그 회사 사람이라고 알아보곤 사정 들어주더니 술값을 내주고 가셨더랫죠 다행히 곧 좋은 곳에 취직해 별 무리 없이 자랐지만 적어도 유치원 다니기 전 영유아기 때까지는 많이 어려웠었죠
영유아기시절이면 기억은 안 나겠네요...
베이비붐세대 은퇴만 해도 일자리 엄청 많아질 거라고 하던데..그분들 캐어하려면 또 세금 어마어마하게 가져가겠고...2000년대 태어난 아이들도 많이 힘들겠네요
200년생 포항공대 붙었는데 토플 공부할생각에 너무 힘듭니다
@@김범준-n1d 헉 200년생이시면.....?
@@김범준-n1d 아직 정정하시네요 건강잘챙기십쇼
@@김범준-n1d 엌ㅋㅋㅋ
그래도 일자리는 있겠넹 흐헹흐헹 흨흨
고딩이고 학교에서 국가가 imf일땐 국민이 금을모아 헌금해야된다해서 반박했다가 혼남 교과서는 이상을가르키고 진실을 은폐한다는걸 깨닳았다 imf 가 전혀 말도안되는 것이었단걸 국가는 서민에게 가르치지 않는다.
원래 교과서 믿으면 흑우죠 뭐ㅋㅋ
어차피 시험끝나면 다 잊어먹고 롤이나 할텐데
뭐하러 진실을 은폐하고 구라나 칠까요?
교육부의 심리가 궁금해집니다....
@@촉수만세촉수만세촉수 이때에비해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는데요
교육부는 이상을 가르치는게 아니라
기득권들을 위한 질좋은 노예를 양성하는곳 입니다
채널 너무 재밌어요 ㅠㅠ 항상 좋은 영향 많이 받고 갑니다 😍👍
엌 ㅋㅋㅋㅋㅋㅋ 찐이다
어머머머 이분이 여기 계시다니
imf 전에 착실하게 돈 모았던 집들 그러니까 사이판 여행 안 가고 차 비싼거 안 타던 집은 예금금리 받아서 부자됨.
Daehoun An 그렇긴하지만 인간의욕심은 진짜끝이없고 오히려 있는사람들이 더더 욕심이강해서 많은사람들이 타격을받은거겠죠
정부에서 바로 그런점을 엄청 홍보했음. 니들이 흥청망청써서 나라망한거라고
그러나 그것은 단지 개인의 생각의 자유일 뿐, 그것이 금융 위기의 원인은 아니였다는 평가가 절대 다수인 것으로 압니다
@JB kim 기업이무너지니까 당연히 실업자늘어나고 개인한테 타격온게맞죠ㅇㅇ
@JB kim 와 ㅋㅋ 난독증이 진짜 존재 하나보네 ㅋㅋ 작성자가 뭐 때문에 망했다고 한적없는데 혼자 딴소리 ㅋㅋ
92년생임. 이거 보는데 눈물난다..
그때가 저희 엄마께서 20대 후반쯤 되셨는데 이미 잃을것없이 가난한 집이라 타격이 없으셨데요 그때 서울살던 외삼촌이 엄마께 좀 큰지역에서 돈좀 만진다 하는 사람은 싹다 폭삭 망했다고 이제 우리나라 망할것 같다면서 엄청 흥분하며 전화를 했대요 저희아빠네 집은 내노라할정도로 부유했는데 imf 일어나기 딱 1년전에 사업이 망해서 재산이 좀 준뒤 그일로 욕심버리고 남은돈가지고 미국으로 이민가셔서 30년째 굉장히 잘사시고계세요 근데 아빠네 식구들이 항상 하는말이 두고두고 불행중 다행이라 하세요..imf때 망했으면 진짜 동반자살 했을거라고 그만큼 살길이 없었을거라고ㅠㅠ
우리부모님은 정말 열심히 개미처럼 일하셨다
잠도 적게 시간을 쪼개서
그리고 그 성실함과 정직함에 운이 답해줘서 넉넉하게 잘 살았다
쉽게 돈벌려고 꾀부리지도 않았고 단순한 투자나 한방을 노리지도 않으셨다
지금도 일절 정부지원없이 넉넉하게 하고 싶은거 세계 여러나라 여러번씩 여행 다 하시고 사시지만 평소 생활은 아주 검소하고 성실하시다 항상 힘들었던 과거잊지않고 도우며 배풀며 사시는 부모님을 존경한다
정직하고 성실한 삶은 보답받는다는걸 보고 자랐다
전 Imf baby라서
그때에 태어나서 잘은모르지만 큰 영향은 끼쳤었죠
아뇨 저도예요! 반가워요ㅎㅎ
전 96이네요. IMF 때 이젠 막 걸음마 뗀 갓난 애기 시절... 그 때 그 시절 유명했던 노래로는 H.O.T- 캔디, 빛... 김건모- 잘못된 만남이 있었네요. 벌써 그때가 23~24년전입니다.
@@창렬스러운혜자누님 동갑이시넹
내 돌반지도 어머니가 금모으기 에 내셨는데...
ㅋㅋㅋ
저희 엄마도 가정유지할 돈이 부족해서 저 낳자마자 할머니께 맡기고 아빠랑 같이 맞벌이 했다는데ㅠㅠ 저 키워주시느라 고생하신 부모님 정말 감사합니다ㅠㅠ
와 10대인데요, lmf때 취업하신 우리 아빠 진짜 대단했내요.....진짜 그때 취업률이 300대1 이였다고...
와 저희 아버지도 Imf때 기아 취직하셨는데 IMF 전에 입사하신줄알고 있었는데 엄청 운이 좋았던거같네요)
저는 아빠가 Imf 터지기 몇달 전에 취업했다네요.. 몇달만 늦었어도... 근데 정작 아빠는 무덤덤ㅋㅋ 포항이라 딱히 피해는 없었다면서 ㅋㅋ
Imf는 끝났지만 그 영향은 아직도 안사라짐 현재 취업난, 자영업자의 비정상적인 비율, 부동산 등등 현재 경제에 주요한 문제는 저 imf에서 태어난 괴물인거지
위기는 기회다
위기가 기회가 될려면 준비가 되 있어서 위기를 최소 피해로 넘어섰을 때라야 가능하지. 지금 전세계 코로나 감염위기에서 한국처럼. 위기에 큰 피해를 겪고 가능이나 하겠나?
IMF현재진행형 동의합니다. 언제쯤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올해 30살인 90년생입니다. 초등학생때 가장 첫번째 본 뉴스부터 지금까지 단 한번도 국내 경기가 좋다는 뉴스를 본적이 없습니다.. 제또래 기억에 우리나라는 항상 어려운 상황속에 있었지 80년대 후반 90년대 초에 있었다는 호황은 역사속에만 존재하는 일 같이 느껴집니다.
큰아버지가 묵호(동해)에서 철강회사 운영하고 잘나갔는데 IMF로 내리막이었지요.(새뱃돈만 1만원짜리 3장씩받음) 그때 생각하면 IMF이전에는 풍족하게 살던 사람이 갑자기 몰락한거 보니... 무슨 감정이 잘 모르겠습니다. 아버지도 제일은행에서 근무했고 망하지 않았다면 은행장이 되거나 지방 은행지점장이 될 수 있는 코스도 밟고있다가(뱅크오브아메리카나 도이치에서 스카웃도 왔었습니다.) IMF로 나가리 되고 자산관리공사에 있다가 퇴직하고 식당하다 망해서 지금은 택시 운전하시고 계십니다. 하하하.... 무슨말을 이어갈지 정리가 안되는군요.
하 ..........그저 눈물만 ㅠㅠ
동해서 철강회사면.. 삼화제철인가요 ? 그정도로 큰 제철소는 여기에 없었던걸로 아는데..
뱅크오브 아메리카만 선택했다면....
자산관리공사 나쁘지 않은데 지금도 들어가려고 줄섰음 물론 boa나 도이치로 비교하면 그렇지만
ㄹㅇ 인생이 한 치 앞도 알 수 없노
1:11 엄마, 화끈하게 일을 저지름 ㅋㅋㅋㅋㅋㅋㅋ
그때태어났는데 그냥저냥 걱정안하고 살았던것같다... 그때는 아무걱정없이 살았는데 뒤에서 부모님이 키우느라 얼마나 힘드셨을까.. 나라면 그 상황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 같은데 이세상 모든 부모님들은 참 대단하신 존재다..
2000년대생이라 이런거 잘 몰랐는데 교육적인내용 감사합니다
전 저때 초1이었어요. 지금도 기억남. 선생님이 집에 아빠 쉬고있는 사람 손들어보라했는데 50명중 저 포함 10명도 안되는 사람빼고 다 손들었음. 그때는 아빠가 회사 비상경영체제 돌입해서 회사 숙소에서 주무시던때라 걔들은 아빠 자주 봐서 좋겠다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내가 운이 좋았던거
IMF때 어려서 뭘 잘 몰랐지만.. 그떄생각하면 마음한편이 아련합니다.. 부모님 사랑합니다~!!!!!
나도 그때 태어남 가정불화 심했음 그때의 세대가 자라 가정불화와 경제위기를 봐서 결혼을 주저하는듯함
ㄹㅇ. 그 전세대는 나이 차면 결혼하고 애 낳고, 가난해도 그런갑다 하고 살던 전쟁~전후 세대였으나, IMF이후로 가정불화, 빚 때문에 이혼하고, 하던 일 망해서 남편이 어디 갔는지 행방불명 된 집도 있고. 그걸 보고 자라 온 세대들은 돈 앞에서 결혼도 망설이고, 결혼 해도 예전 처럼 남들이 흉 볼 까봐, 혹은 애 때문에 사이 나빠도 쉬쉬하고 꾸역꾸역 사는 세대가 이제는 아니죠.
우리 아버지가 정말 현명하셨다. IMF때문에 집값 뚝뚝 떨어지는 마당에 몇년안에 경제가 회복된다고 말씀 하시면서 강남에 집 두 채 사 놓으셨다. 그리고 지금 집값 개 떡상했다
당시 들으면 알만한 중견기업 건설회사 다니던 아버지네 회사가 폭삭 망하면서 두살 아들 갓난이 딸 둔 지금 내 나이대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막일이며 어떤일이던 마다하지 않고 가정을 지켜줘서 내가 지금 이렇게 하고싶은 일 하며 살 수 있는거라고 생각합니다. 부모님이 자랑스럽고 또 자랑스러운 일.
저희 어머니... 딱 저때 태어나셨고 아버지도 imf 터지기 2년전에 태어나셔셔 아버지말로는 할아버지께서 사업에 성공하셔셔 2층집이였는데 갑자기 imf 터져서 할아버지 거의 부장급이였는데 해고당하고 투자한데는 다 망하고 완전 폭삭망해서 남의집가서 할머니는 유모로 살고 할아버지는 돈되는일이면 최대한 다 해보고 할머니 유모하시면서 그집에 딸린 쪼그만한 3 ~4 평 되는 다락방에서 3명이서 잤다고했는데.. 그래서 아버지 엉덩이 떼지도 않고 그 작은방에서 열심히 공부하셔서 지금은 자랑스러운 의사이십니다 . 전엔 아버지네 집만 심한줄 알았는데 댓글보니깐 그동안 아버지한테 짜증냈던게 죄송해지네요.. 올해 50되시는데 건강 안좋아지시기전에 빨리 효도해야겠어요... 다들 힘냅시다
아버지가 imf 2년전에 태어났으면 95년생이신데?? 갑자기 올해 50이심???
@@유투브-g5r 에 어떤분이 imf 74년도에 생겼다고 그러던데 95년도였나요 ㅠㅠ 수정하겠습니다
우리집이랑 사정이 같군. 당시 빌딩집 아들로 호통치며 살았는데..이젠 호통받으며 살고 있음..
아직도 기억나네 저때 초딩이었는데 내 단짝친구 잃었어요. 가족 전부 삶을포기했었습니다.
92년생 imf때문에 부모님 겁나 싸우고 하던 사업들 다 정리하고 아빠고향으로 도망치듯 이사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 끔찍하다 끔찍해 지금은 취업난에 또 시달리고 진심 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 생들보고 왜 저주받은 세대라고 부르는 지 어릴 때 부터 뼈져리게 느끼고 있다
우리큰누나는 95년생 3살이라서 기억안날듯하네요.. 저희집은 아빠가 교도관 구치소일하셔셔 영향안받았습니다 !
저도 90년생인데 IMF때 진짜 반마다 최소 1~2명은 아빠 사업, 직장 망해서 이사갔음...
그리고 아직까지도 나를 비롯한 어른들은 '부동산 불패'라는 생각을 못 버리고.. 또 결국엔 그게 맞다는 게 너무 씁쓸하네요ㅠ
아, 저는 혼자 반전세 삽니다ㅠㅠ
전 그 당시 뉴스도 안보던 초등학생이고 부모님 두 분 다 공무원이셔서 IMF란걸 거의 남의 나라 일처럼 생각했다가 중학생이 돼서 초등학교때 친구의 집에 놀러가고 알았습니다...그 당시 철없던 저는 친구에게 왜 이런 집으로 이사왔냐고 물었던 기억이 나네요...
록시땅 제 친구가 저한테 그렇게 물었던거 기억납니다. 53평짜리 방다섯칸 아파트살다가 IMF 지나고 18평짜리 방두칸 임대 아파트로 이사했었거등요ㅋㅋ
아이고.. 친구분이 얼마나 상처받으셨을지 너무 슬프네요..
저도 imf 이후로 아버지가 대기업 생산직(h그룹)에서 짤리셔서 많이 힘들었죠... 거기서 살아남으신 분들은 지금 중산층으로 잘살고 계십니다...
저희 집도 그래요...아빠 회사가 부도나서 그만두시고
저는 97년도에 태어났는데 아빠가 돈도 못받고 일이 갑자기 잘리고 일도구할수가없어서 식당밑에 지하실같은 집에서 월세내고 겨우 버티면서 살았다구.. 아무일 막하면서 일당벌러다니구 그때 엄마가 임신했을때였는데 전기가 끊겨서 생쌀 그냥 씹어먹은적있다고말해준적이있었음
ㅜㅜ아이엠에프시기맞춰서 부모님이 절가졌는데 어려운형편이라 지울려고 그러셨다는데...ㅜㅠㅠ이렇게힘든시기였었네요ㅠㅠㅠ
98년생이여서 imf에 대한 지식은
학교에서 들은게 전부인데 이런 영상 좋은것 같아요! 잘보고갑니다
우리 아버지도 욕조회사 크게 하시다가 망하셨는데 그 힘든걸 다 이겨내고 집안 다시 일으켜 세우셨음ㅠㅠ 지금 일 그만 두시고 편하게 쉬고 계시는데 난 제일 존경하는분 하면 우리 아버지임. 그 힘들었을때를 다 보고 커 와서 얼마나 힘드셨는지 알기 때문에 그리고 누나랑 나랑 기 죽지 않게 힘들어도 다 해주실려던 우리 아버지, 어머니.. 그래서 난 우리 부모님을 위해서는 뭐든 할수 있음.
저는 어릴때부터 비닐하우스 살아서 가난이 익숙해요. 그래서 그냥 가난한지도 모르고 살았는데.
이거보며 눈물이 쏟아집니다.아직도 막 흘러요
인류는 10만 이상을 먹고 마시고 즐기고 살었어요. 시대에 따라 삶의 방식 행복의 척도가 달라지지만 내 주변에는 없고 주변의 주변에는 있는 영원히 오지않을 행운에 목메지 말고 자신의 가치를 높히고 그속에서 행복을 찾는다면 부모님 시대의 행운이 부럽지 않을 겁니다.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가는 길에 있었던 부모님 세대의 행운이 앞으로 다시는 없을겁니다. 이제 새로운 우리들의 행복을 찾아 새로운 기틀을 만들고 다음 세대에 물려줘야할 의무만 남은 겁니다. 그 의무가 버겁다면 적자생존 도퇴는 자연의 섭리지요.
80년생 우리 형이 7살때 도시락 가방이 나이키 진품 이였다가 IMF 때 망해서 90년생인 나는 30센치 소시지 하나로 부모님 없이 일주일을 살았었지 빨간딱지 가 붙은 티비로 뭔줄도 모르고 케이블 방송 카툰네트워트 만화 보면 돈내야 한다 라는 중학생 누나의 짠한 거짓말이 생각나네 젊은 우리 엄마 아빠는 그 당시 얼마나 힘드셨을고 부모님 사랑 합니다
정치인들이 일 벌이고,해결하는건 국민이냐?
나 태어나지도 않았던 시절이다... 이때 이렇게 힘들었군요... 이겨내신 모든 국민분들 감사합니다! 배우기론 금모으기운동도 하셨다는데 국민들 대단하네요ㅠㅠ
힘든 시련도 잘 버텨내주신 모든분들 너무 감사해요! !!♡ 행복하세요
많이 가졌던 부가 한순간에 몰락한 기분. 당해보지 않은 사람들 절대 이해 못함.
아마 저분들. 하루하루가 지옥일 것임...남들이 말하는 망상조차 안한다면, 삶의 이유를 잃어버림.
무려 세번 보았습니다. 엄마랑 깔깔대면서 봤어요. 우리집 같아서 재밌고 슬프고 짠하고 고마웠어요★
IMF때 실직하시고 다섯가족 위해 어떤일도 마다하지 않으셨던 아빠, 엄마는 발벗고 장사에 뛰어드시고,, 너무 고생하셨어요.
부족하지않게 자라면서 꿈도 많았던 저는 많은걸 포기해야했고 남동생은 태어나자마자 집안 어려워 부모님이 제대로 신경도 못써주셨어요 우리에게 참 아픈시간이었네요.
우리세대 많은 분들이 그렇겠지요?
혼자만 그런게 아니니 우리모두 힘내요.
어릴때지만...가진것 없는 우리 가족이 imf같은 위기를 tv에서 보고 아 그냥 그런가 보다했지.유치원가다가 공중전화로 통화하던 아저씨가 전화잡고 울었던걸 본게 생생히 기억난다..
24살인데 imf당시 어려서 전 저런 기억이 없네용ㅋ 근데 시골살아서 딱히 imf아니여도 가난했습니다ㅠㅠ
우리집은 저때 다행히 사업은안해서 그때 모앗던 돈으로 강남에 땅삿는데 그땅이 비싸져서 그거 팔고 지금은 팔고 그돈으로 저희고향인 대전에서 건물사고 아버지는 사업하십니다 제기억으로는 그때 당시에 아버지가 위기를 기회로 바꾸자고 하셔서 그때 엄마가 제일 말리신걸로 기억하는데 아버지가 인생뭐 있냐고 한번 질러보자고 하셔서 엄마가 말리셨는데 결국엔 했습니다 오히려 지금은 엄마가 제일 좋아합니다ㅋㅋㅋㅋㅋ
울 아빠도 부잣집 막내 아들이였는데 IMF 때문에 할아버지 사업 완전 와르르 무너져서 힘들게 사셨다네요ㅠㅜㅜㅠ
IMF 나기 전 부모님이 공무원이 되셨을 때 모두가 왜 그러냐고 이상하게 생각했대요 엘지나 삼성이나 기업 들어가서 회사원 되는 게 훨씬 돈 많이 버는데 공무원 가니까요 근데 부모님은 각자 꿈도 있었긴 하지만 안정적이어서 그렇게 한 거였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
보증=가정 파산 지름길입니다..
의리,우정,우애 이런걸 따지기 보다 지금 내가 지켜야할 가정과 미래를 생각하세요..
*형제끼리도 보증은 하는거 아닙니다*
아버지는 사업가에 중형차..
엄마는 거실과 냉장고,세탁기를 보유한 분리된 주방을 갖춘 서울 한복판아파트에서 실크 잠옷으로..
아이들은 소파앞에서 생일케잌으로 축하받고 도시락 반찬으로는 햄과 소세지가 끊이질 않았겠지?!
특히 여아이는 예쁜 브랜드 공주복으로..
당시의 대한민국 상류층..부자의 생활..
정말이지 부러움의 대상이다..
어머니와 나와 동생들도 아버지 돌아가신후 ㄸ구멍찣어지게 가난했었지..
국민학교때 서러움과 친척집에 맡겨졌을때의 눈치밥..애비없는 가정이라 놀림받을까 노심초사 하시며 고생이란 고생을 지지리도 겪으셨던 어머니..
짐도 생각하면 눈물이난다..
그런 사람들이 상류층으로 보였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런 사람들은 사실 호황기에 잠깐 뜬 유사 중산층들일거에요. 실제 상류층들은 어마어마한 부를 이루었고 외환위기를 만들어낸 장본인들이지만 국가가 봐주니까 타격을 입더라도 유사 중산층들처럼 망하진 않고 잘먹고 잘살았죠
중산층입니다 그정도는
고생많으셨어요ㅠㅠ
진짜 IMF때 저런분들 땜에 지금의 저희가 있습니다.감사합니다
부모님이 마치 일본 버블경제의 화려한 시절을 잊지 못하는 일본 같네요
저도 그 시절 초딩이었는데, 원래 못 살아서 그런지, 별로 타격이 없었어요..
저희집도 엄청 허름한 연립주택이었고, 아버지가 기술직으로 공업사에 일 하셨는데
빚은 없지만 정말 소소하게 살았던 기억이 있었어요,
imf때문에 집이 확 어려워 지거나 그런 얘기는 좀 살았던 집안들이 크겠죠
국내 최초 편의점과 최초의 복층식 아파트 올림픽선수촌... 현재 2~30억 시세.. 당시에도 찐 부자들만 살던 아파트 ㄷ
저때 올림픽선수촌이면.. 당시 복층아파트, 최초의 편의점 해외 프렌차이즈가 최초로 오픈되는 등 모든게 최초였던.. 가정부에 회장님 차가 즐비했던 곳.. ㄷ
2004년생이여서 사실 IMF가 정확히 어떤상황이었는지 알지못했는데 이렇게 쉽게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당!/!
미튜
04년생 귀여우심 ㅋㅋ
저도 04년생인데 제가 배운 바로는
아마 경제성장이 급속화돼서 너무 퍼주다가 경제가 어려워져서 국제 통화 기금(IMF)의 도움을 받았는데 돈을 빌려주는 대가는 돈을 다 갚을 때까지 IMF가 시키는 대로 다 하는 거였는데 IMF가 철폐하라고 하면 회사나 기관같은 것도 철폐해야한다 하던데 대충 이렇게 압니다
어느날 선생님이 집에 아버지 계신애들 손들어보라고 했는데 50명중 손 안든사람이 나 포함 10명도 없었음. 그때는 오히려 아버지가 회사에서 꾸린 TF에 소속되어서 2주에 딱 하루 봐서 걔들이 부러웠는데 알고보니 내가 운이 좋있던거
사실 90년대생들도 어려서 기억이 안나요ㅎㅎ 보통 유치원쯤가야 기억 흐릿하게라도 나서...
저때 5살이었던 1인..사실 잘 기억이 나지않고 겪었던 기억은 없지만 부모님의 말씀을 듣고 알았답니다 저희집도 imf이후로 대기업다니던 아버지 회사가 부도나서 힘든 시절이 있었다하더라구요 너무 안타까운 시절이었죠
저희집은 아버지가 전문직이여서 IMF 가 뭔지도 모르고 지나갔어요 오히려 저희집 소득은 항상 비슷비슷한데 다른 분들 소득이 많이 떨어져 상대적으로 잘 살아 보였던 기역도 나네요 그 시기쯤 우리 가족모두 한달동안 미국 해외여행한 기억도 나고.. 나름 풍족한 IMF 시절을 보낸 것 같에요.. 이런거 보면 역시 좋은 전문직을 가져야 된다는 거와 투기 투자 주식 이런거는 자기 분수에 맞지 않게 무리하게 하면 안된다는걸 느낀 것 같음..
저는 군시절에 Imf를 겪었습니다. 부산 출신인데 서울로 대학간 친구들중에 집안 형편이 좋은 경우는 아파트를 집에서 사주기도 했었는데 그런 친구들은 제대하고오니 아이엠에프 이후 집값이 오르면서 등록금, 생활비까지 전부 다 뽑아먹고도 남게됐었죠. 90학번 91학번들 회사에 합격했다가 입사 취소 통보받는 경우도 봤고 군에서는 휴학하고 입대 신청한 장정들이 너무 많아 수용이 안되어서 매트리스 두장당 세명씩 자기도 했고, 유류비 아낀다며 훈련도 줄이고, 부식도 줄였고, 심지어는 보너스도 없앴습니다. 요즘 군대가면 나오는 100일 휴가라는게 imf 때문에 생긴겁니다. 그 이전에는 훈련소 수료하면 퇴소식을 했었고 가족들과 1박2일 외박을 허용해줬고 첫휴가는 육개월 지나면 일병 진급 휴가라해서 보내줬죠. 근데 나라에 큰일이 터져 살기가 힘들어지면서 부모님들이 면회 오시기도 어려워져서 퇴소식과 외박을 폐지하고 백일이 되면 휴가를 보내주는걸로 바뀌었죠. 그 이전에는 요즘처럼 입대할때 입고온 사복을 소포로 집으로 보내줬었는데 Imf 시기에는 예산 절감을 위해 창고에 보관했다가 첫휴가 나가면서 녹색 비닐 봉투에 직접 가지고 나가게 했었죠. 참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습니다.
저때 내 친구가 유치원 다닐때 부모님 이혼했었음.. 그때 imf 초기라 이혼한 애들이 많지 않았는데 다른 애들이 약간 불쌍하게 보고 그랬음 그리고 그 불쌍하게 본 애들중 몇몇은 자기 가족도 이혼했고.. 원래 그 친구 집이 가난했었는데 imf까지 와서 돈때문에 이혼했다고 들었음 지금은 아버지 부동산 대박나셔서 잘 사는데 아직도 그 생각하면 가슴이 찡하대.. 그리구 이혼하고 몇십년만에 어머니 찾아서 이복동생하고 아버지하고 넷이서 잘 살고있음..
저의 경우는 imf때가 5살이었는데 저희집이 imf로 타격을 입은 적이 없어서 경제적으로 무난하게 안정적이었던 걸로 알아요. 왜냐하면 그때 당시에 저희 아버지가 고등학교 선생님이셔서 imf때 집안에 큰 타격을 입지 않았거든요. 부모님께 imf때 상황 어땠냐고 물어봤을때 그렇게 말씀하셔서 imf때가 기억이 안나기도 하면서도 얼마나 어려운 상황이었는지를 초등때 교과서나 뉴스를 통해서야 비로소 1997년에 경제적으로 심각했던 상황이 있었구나 라고 깨달았어요. 아버지의 직업 때문에 집안상황에 타격을 입지 않아서 그런건지 잘 모르겠지만 어릴때부터 장래희망이 교사였었어요. 지금도 하고 싶어하는 직업이나 회사의 경우도 다 "공"이란 단어가 들어간 직업이나 회사를 선호해요. 공기업이나 교사나 공무원같은 안정적인 직업을 선호하는 것도 어찌보면 아버지의 직업 영향으로 그런 것 같아요.
저희집이야 부모님이 공무원이셔서 큰 탈은 없었지만 국딩에서 막 초딩으로 전직한 시기에 반 친구 한사람이 다음 날 부터 학교에 안나오는 경우가 있었죠. 회사 부도 때문에 아버지께서 야반도주를 해서 같이 갔다고 들었었는데 늘 마음한켠에 잘지내고 있나 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부디 몸 건강히 잘 지내고 열심히 살고있길 바라!
동시대 사람이라 그런지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 한구석은 먹먹하면서도 응원해 드리고 싶은, 그 다음이 더 궁금해지는 영화였어요. 저희 부모님 생각도 많이 나고, 생각이 참 많아지네요. 가볍게 본 영화가 나에게 많은 감정을 그리고 생각을 하게 만들어주네요.
지루할 틈 없이 영화 잘 봤습니다.
imf 때 태어나서 그 당시 기억은 전혀 없는데 아빠가 일했던 회사가 엄청 힘들었었다고만 전해들었습니다ㅠ
지금 20대들을 30대중후반이나 40대초중반이 공감하는게 저 고3 마지막해에 터지더군요. 그 당시 상고 다녔는데 은행에 취업됐던친구들 대부분 취업 보류나 취소당하고 집이 망해서 도망가거나 자살하던 부모님들이 계셔서 힘들었어요. 특히 그 당시 초등학생이던 아이들 중 집이 어렵던 애들이 보육원에 맡겨진 일이 많아서 참 암담하던 시절이었네요. 그래서 지금 20대들 보면 안쓰러워요. 못먹고 자라던 세대들이라...
우리 부모님은 두 분 다 선생님이셔서 imf에 대한 피해가 없어서 다행이신데 피해받으신 분들은 진짜 안타깝다..
저 시절을 겪은세대인 저는 인생의 큰 모험을 차마 할수가없음..지나간 그 시절이 또 돌아올 불안함이 있기에
다행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우리집은 외환위기 사태때 아버지가 회사원이 아니라 개인사업자가 있어서 그나마 직장 유지할수 있어서 다행이랄까
난 IMF때 없었지만 언니들이랑 나이차이 많이나서 들어본 얘기로는 아빠 마트하셨는데 엄청 힘드셨다고... 엄마도 모든 금 다 내놔서 언니들 돌반지도없구 엄마 결혼반지도없다고... 아직도 엄마 반지같은거 가지고싶어하시는데.. 고등학생인 내가 선물하기엔 큰돈이라..
나중에 직장들어가서 돈 모으면 꼭 해드릴게요 ㅠ
IMF 시절때 어떻게 버티셨는지 ㅠㅠ
우리부모님 존경합니다ㅠ
전 99학번이거든요~~IMF가 고등학교2학년때
터졌는데 고등학교때까지는 지방에서 살아서 티비를 통해 국가에 엄청 큰일이 일어났구나 했어요ㆍ대학이후 서울와서 직장생활을 강남쪽에서 하면서 엄청 IMF로 망하거나 아님 오히려 기회를 잡고 엄청 돈번분들도 애기듣고 봤어요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