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st loved concubine by King Munjong of the Joseon Dynasty, Sookbin Hong [History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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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22 окт 2024

Комментарии • 85

  • @몰람-u6e
    @몰람-u6e 4 года назад +57

    역대 최고미남이자 세종과 모든업적을30년간 함께한 문종...햐

  • @user-g1i3r
    @user-g1i3r 2 года назад +27

    아니 단종.. 정통성의 끝판왕이었는데 적장자로 태어나서 세손-세자-왕 이 루트 거쳐가지고.. 아빠인 문종도 세종의 적장자였으니..

  • @도고산-m6x
    @도고산-m6x 4 года назад +109

    문종이 너무 일찍 승하 했습니다.
    5년만 더 살았어도 조선의 역사가 바뀔수도 있었는데 말이죠.

    • @inyeobseo9369
      @inyeobseo9369 3 года назад +16

      홍숙빈을 중전으로 책봉만 했어도 단종의 수렴청정을 하여 계유정난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세종, 문종이 재혼하지 않은 것이 단종 비극의 가장 큰 원인입니다.

  • @AURORE_yummy
    @AURORE_yummy 2 года назад +39

    단종이 성인이 될 때까지만 문종이 살아계셨다면 수양대군이 감히 반란을 일으키지 못했을텐데ㅠㅠㅠㅠㅠㅠㅠㅠ

  • @79violin
    @79violin 3 года назад +5

    감사합니다 쉬는 날 꼭 한번 다녀갑니다. 야사도 역사도 재미있는데 컨텐츠 만드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 @에르브
    @에르브 5 месяцев назад +5

    중전으로 승차시킬수있는데~여러모로 바쁜지? 못했네ㅠ 숙빈홍씨친정가문이 힘이 약한지? 중전으로 승차못한것이 아쉽네요

  • @수호천사-d3y
    @수호천사-d3y 2 года назад +18

    왕이나~~ 일반가정이나~~ 부모가 일찍 세상을떠나면~ 가정이 붕괴되는법~~~ 이또한 운명이리~

  • @래은송-k6d
    @래은송-k6d 4 года назад +58

    세조가 나쁜놈임..진짜 나쁜놈임

    • @다일까요현일까요
      @다일까요현일까요 3 года назад +1

      지 조카를....... 지금 오세홍 성우님 명언 보고 이거 보는데 울다가 화나...

  • @reolee-gk2gx
    @reolee-gk2gx 4 года назад +26

    오늘 역사를 되짚어 볼때마다 항상 이때 이랬으면 역사가 바뀌었을텐데.. 라는 소리를 들을만한 분을 소개해주셨네요 고퀄리티의 영상 정말 잘 보았습니다 문종은 처복이 없기로 유명했었는데 꼭 그렇게 복이 없는 사람은 아니였나 보네요

  • @딸기씨-m1w
    @딸기씨-m1w 3 года назад +23

    문종이 왜 계비를 들이지않았을까에 대한 생각은 태조때 계비 신덕왕후가 아들을 낳아 왕자의 난이 일어난 전례가 있었기때문이 아닐까싶네요 이미 아들(단종)이 있고 계비를 들여 또 아들을 낳게되면 그때처럼 왕위를 두고 싸울까봐;;; 결론적으로는 단종이 어린나이에 임금이 되어 비극이 되지만 (문종이 좀 더 오래산다는 가정하에) 애초 걱정은 아들끼리 싸울까봐 그런게 아닌가 싶습니다

    • @shin6121
      @shin6121 2 года назад +6

      문종이 현명한듯...

    • @ysjeong2153
      @ysjeong2153 2 года назад +7

      그러면 뭐합니까. 동복형제인 수양에게 단종이 당했는데요.

    • @inyeobseo9369
      @inyeobseo9369 9 месяцев назад +2

      현덕왕후가 죽고 단종의 양육은 혜빈 양씨가 맡습니다. 홍숙빈이 계비가 되었으면 혜빈과의 충돌이 예상된 점도 있고 1446년부터 모친상, 부친상이 계속 이어져 경황이 없었으리라고 봅니다.

  • @gracewon9503
    @gracewon9503 4 года назад +25

    옛날동영상들 다 없어졌네요ㅠㅠㅠ 옛날꺼에 항상나오던 bgm 알수있을까요...

  • @유니콘-o3j
    @유니콘-o3j 13 дней назад +1

    총애할 거면 홍씨를 중전으로 삼지... 아무리 선왕의 여인이라지만 후궁은 절대 대비가 될 수 없는 것을 형식상으로라도 대비가 있었으면 수양이 왕위찬탈하기가 더 어려웠을 텐데

  • @NativeBakJaesaram0001
    @NativeBakJaesaram0001 3 года назад +9

    후궁 이전 남자와 여자로 만나 사랑하고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삶이었습니다

  • @걍계정-u7q
    @걍계정-u7q 4 года назад +18

    항상 랭킹패치님 보며 역사공부를 하였는데 영상이 없어져서 놀랐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영상 올려주세요!

  • @안대나무
    @안대나무 4 года назад +30

    세종이 성군일지몰라도 자식 농사는 잘못지음 숙빈홍씨는 문종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아놓고선 그의아들 단종이 죽어갈때 방관만하고 자기 안위만 챙긴거라 본다 그럴수 있을까?

    • @user-hj6rptzc2o
      @user-hj6rptzc2o 3 года назад +17

      후궁이 무슨 힘이 있겠어요...? 그리고 뭐 자기아들도 아니니 자기목숨을 위협받으면서 까지 지키코 싶지 않았겠죠 아버지(세종)의 후궁인 혜빈양씨까지 단종을 지키려다 죽었는데 문종의 후궁인 숙빈홍씨가 무슨 힘이 있다고 지키겠어요
      혜빈양씨야 단종을 어릴때부터 키웠으니
      단종이 왕위에 오르면 후한대접 해주겠지만
      숙빈홍씨는 정실왕비도 아니고 후궁인데다가 단종을 키운적도 없는데 모성애같은 정이 남아 있겠습니까...?

    • @츄츄-p9x
      @츄츄-p9x 3 года назад +15

      어차피 왕비도 아니었고 사랑을 많이 받았으나
      자기 친아들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기가 키운것도 아니니 별 감정 없었겠지요.
      심지어 자기 친척이 수양대군 쪽 사람이고
      미래를 내다봤을때 중립이 자기가 살길이니
      홍씨는 결국 자기 가문을 지킨거겠네요.

    • @inyeobseo9369
      @inyeobseo9369 9 месяцев назад

      숙빈의 조카가 성종의 누나 명숙공주와 결혼합니다. 즉 세조 집안과 사돈이기 때문에 저항의 의지가 없었다고 보여지며 정의공주, 임영대군, 영응대군, 신빈 소생의 아들이 모두 세조를 지지한거 보세요.

    • @냥3집사
      @냥3집사 5 месяцев назад

      혜빈양씨가 단종키운 할미라고 나섬
      홍씨는 힘없음 그나마 빈된것도 문종죽고 세조가 혜빈양씨 견제하려 빈으로 만든것임

  • @Wannabe2023
    @Wannabe2023 4 года назад +26

    수양의 심복이었고 거사의 주동자였던 한명회는 공신중 으뜸이 되어 영의정을 지내고 두 딸을 모두 중전으로 올렸지만, 두 딸들은 후사도 없이 요절하였고, 자신도 백성들과 유림의 손가락질을 받는 가운데 죽어서 연산군에 의해 부관참시를 당하고 멸문되는 치욕을 당하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을 홀로 남아서 지켜보았던 단종비 정순왕후는 장수하며 이들의 몰락을 목격하게 됩니다. 모든 욕심은 비참한 결과를 낳는 법입니다.

  • @rosemary0151
    @rosemary0151 4 года назад +18

    세종이 너무 후사 문제에 닥달하지않았다면 휘빈이 미신에 빠지지않고 문종이 다른 후궁에서라도 아이를 보지않았을까 싶네요. 아니면 숙빈을 세자빈으로 삼았다면 금방 아들을 보지않았을까싶고요

    • @inyeobseo9369
      @inyeobseo9369 9 месяцев назад +2

      권승휘가 세자빈이 된 이유는 경혜공주를 낳았기 때문에 아기를 더 낳을 가능성이 있다고 책봉된 것입니다. 제 생각엔 소헌왕후가 그렇게 시킨 것으로 보입니다. 소헌왕후는 궁녀들을 동궁전에 여러명 심어 감시하여 대안을 제시하였다고 합니다. 자녀들 일에 지나치게 간섭한 왕비...

  • @thinredline9161
    @thinredline9161 4 года назад +22

    왕과비에서 장서희가 숙빈홍씨로 나왔었지. 그리고 한혜숙이 정희왕후. 종조카와 종이모 둘은 내세에 드라마작가와 여배우로 환생해서 종이모가 종조카에게 뺨을 맞는 수모까지 당하고......

    • @zhugelianglove
      @zhugelianglove 4 года назад +2

      어떤작품서 왕과비에서 숙빈홍씨와 정희왕후 맡은배우가 드라마작가와 여배우로 나오나요?

    • @sonevertheless2045
      @sonevertheless2045 4 года назад +2

      @@zhugelianglove 인어아가씨

  • @inyeobseo9369
    @inyeobseo9369 3 года назад +7

    남양 홍씨의 왕비는 헌종비 효정왕후가 있고 후궁은 선조의 정빈과 중종의 희빈이 있습니다. 부마로는 숙안공주의 남편 홍득기가 있습니다.

    • @홍순근-i3u
      @홍순근-i3u 8 месяцев назад +1

      남양홍씨 인가요 정확히 알고 계시는군요 고맙 습니다

  • @노미정-s4g
    @노미정-s4g 3 года назад +29

    문종이 오래 살았어야함~
    세상이 달라졌을건데~

  • @오구귀여워-i6d
    @오구귀여워-i6d 4 года назад +19

    2:56 tv조선 간택에나온 장면이네요 세자빈 봉씨와딱어울리는 장면이네요 ㅎ

  • @zhugelianglove
    @zhugelianglove 4 года назад +11

    홍응이 숙빈홍씨의 동생이군요 .

    • @zhugelianglove
      @zhugelianglove 4 года назад +2

      왕과비서 홍응이 나와서 누군가 했읍니다.

  • @꽃말-y6l
    @꽃말-y6l 4 года назад +46

    전 정말 소헌왕후와 세종대왕, 문종이 이해가 안 가는 점이 이 부분입니다. 소헌왕후와 세종대왕은 매우 똑똑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특히 세종대왕이요. 그리고 자신의 아들들, 후궁 소생 자식들이야 적통 왕자가 6명이나 있는 가운데 감히 나서지 못하긴 했지만 적통 중 둘째와 셋째인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이 왕의 자리와 권력에 관심이 매우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소헌왕후 소생 왕자는 8명이지만 광평대군과 평원대군은 일찍 죽었죠. 그래서 6명이라고 한 겁니다.
    문종은 역사 잘 모르는 사람들에겐 단명한 데다 병약했다는 이미지가 강한데 몸은 좀 약하긴 했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똑똑하고 성격도 강한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두 동생들이 문종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문종에게 밀려 숨죽여 지냈죠. 하지만 문종이 병치레가 많다는 것은 세종이 알고 있었어요. 영상에서 언급하는 단종의 유모, 혜빈 양씨가 바로 문종의 나인이었다가 문종의 병문안을 다니던 세종의 눈에 든 여인입니다. 그렇기에 문종이랑도 가까웠고 자연스레 현덕왕후가 산후병으로 사망하자 단종의 유모 역할을 맡게 된 거죠.
    한때 세종은 야심을 간파하고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을 지방으로 쫓아내 버리기까지 했었어요. 소헌왕후가 1446년에 사망했어요. 보통은 계비를 들이죠. 태조랑 태종이 정비가 먼저 사망했음에도 계비를 들이지 않은 건 이 때 워낙 나이가 많았고 이들은 상왕으로 물러난 상황이었으니까 그런 거고, 내명부를 통솔할 수장이 필요합니다. 전 세종대왕까지도 계비를 들이지 않은 것이 이해가 되요. 세종대왕이 1450년에 사망하는데 1446년 시점에 이미 본인 건강도 별로 안 좋았고 상왕으로 물러난 건 아니었지만 1442년부터 문종에게 대리청정을 시켜 상왕으로 물러난 것까지는 아니었지만 사실상 일선에서 물러난 상태였어요. 그러니 소헌왕후에 대한 마음도 깊고, 굳이 내명부를 통솔할 "자신의 중전"을 들일 필요가 없었던 거죠. 그런데 왜 "문종의 세자빈"을 들이지 않은 걸까요?
    위에서도 언급했듯 내명부를 통솔할 수장은 필요합니다. 훗날의 일이긴 하지만 선조, 숙종, 영조 모두 부득불 늦장가를 가죠. 물론 젊은 여인 보고 싶어서일 수도 있지만 신하들의 주청도 있었고 내명부를 통솔할 수장으로 중전은 당연히 있어야 하는 겁니다.
    연표로 보여드리자면
    * 1441년: 단종 탄생 & 단종의 생모 현덕왕후 권씨 산후병으로 사망
    * 1442년: 건강이 안 좋아진 세종이 문종에게 대리청정 맡겨 문종이 대리청정 시작
    * 1446년: 소헌왕후 사망
    * 1450년: 세종대왕 사망 & 문종 즉위
    * 1452년: 문종 사망
    이렇습니다.
    현덕왕후보다 소헌왕후가 5년 있다 사망해요. 세종은 9년 있다 사망하고 문종에게도 2년이라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야심만만한 숙부들 있는 거야 어쩔 수 없다 쳐도, 아니 이조차도 문종 그 똑똑하고 성격 강한 사람이 세종대왕이랑 소헌왕후는 차마 자식들이라 제거까지는 못했어도 권력의 비정함 속에서 친동생들일지라도 치세 2년 동안 문종이 제거했을 수도 있어요.
    차마 친동생들이라 죽이지는 못했다 쳐도 그럼 최소한 단종을 위해 수렴청정할 대비는 저 세 사람이 만들어줄 수 있었습니다. 문종 스스로가 세자빈 운이 워낙 없어 학을 뗐다 하더라도 그럼 새로 들이지 않더라도 영상에서 얘기하는 숙빈 홍씨가 있었습니다. 실질적으로 중전 역할을 했고 문종이 총애도 많이 했고 중전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명문가 출신입니다. 아들 못 낳은 거야 즉위 시점에는 언제 아들을 낳을지 알 수 없긴 했지만, 설령 아들을 낳았더라도 단종의 법적 어머니 역할을 했을 겁니다. 훗날의 성종의 정비였던 정현왕후 윤씨를 떠올려 보십시오. 문정왕후도 자신의 친아들 명종을 보위에 올릴려고 갖은 수를 쓰긴 했지만 어쨌든 겉으로는 인종의 법적 어머니 역할을 했어요. 친아들이 아니라 얼마나 나섰을지는 미지수지만 결과적으로 숙빈 홍씨가 아들을 낳지도 못했으니 본인이 중전이 되었더라면 그 친정 집안 사람들이라도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수양대군, 안평대군과 맞서 싸워주었을 겁니다. 자신에게 친아들이 없자 훗날 광해군을 후원한 의인왕후와 영조를 후원한 인원왕후를 떠올려 보십시오.
    기록을 보면 그다지 정치에 나서고 싶어하지도 않고 야심만만한 성격도 아니라 결국 수양대군과의 싸움에서 졌을 수도 있지만 제가 저 세 사람이었더라면 어떻게든 문종의 정비를 만들었을 겁니다.
    실제 숙부에게 죽임당한 불쌍한 어린왕이라고 하면 단종을 떠올리기 십상인데 조선시대만 놓고봐도 다른 왕들도 단종 또래에 즉위한 왕들 많아요. 이 땐 40대가 평균 수명이던 시절이니까요. 단종이 만 11세에 즉위했는데 성종이 만 12세, 명종도 만 11세, 숙종이 만 13세, 순조 만 10세, 헌종 만 7세, 고종 만 11세에 즉위했습니다. 후대왕들과 단종의 차이점은 2가지입니다. 야심만만한 성인 숙부가 없었다는 점과 수렴청정해 줄 대비나 대원군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저 숙빈 홍씨를 중전으로 올려 숙빈 홍씨가 수렴청정을 했더라면 우리나라 역사는 또 어떻게 흘러갔을까요? 물론 숙빈 홍씨가 중전이 되어 수렴청정을 했더라도 후대왕들과는 상황이 많이 다르긴 해요. 후대왕들은 야심만만한 성인 숙부들이 없었는데 숙빈 홍씨는 야심만만한 시동생들과 치열하게 싸워야 했겠죠;;; 이건 단종의 친어머니, 현덕왕후가 오래 살아서 수렴청정을 했더라도 세조나 안평대군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었을지 미지수이기는 합니다. 그녀 자신은 남편이 자신을 중전으로 올리지 않았기에, 그리고 아들을 못 낳았기에 역설적으로 무난하고 행복하게 살다 갔네요. 물론 단종보다 후대에 어떤 왕이 나타났을지 모르는 일이기는 합니다. 단종도 명군이었을지 폭군이었을지 워낙 어린 나이에 숙부에게 죽어 알 수 없는 일이고요. 한데 단종이야말로 혈통이 중요했던 왕정 시대에 혈통으로는 극강의 화려함을 자랑했습니다. 태조는 건국자, 정종은 차남, 태종은 정종의 양자로 입적하는 형식으로 즉위한 5남, 세종은 3남인 데 반해 세종의 장남인 문종의 정비가 낳은 장남이었어요.
    차라리 단종이 공주로 태어났더라면 그의 인생이 백만배는 행복했을 텐데요... 문종이 후사 없이 죽은 후 당연히 돌아온 자신의 차례로 즉위한 세조가 보여주기식으로라도 문종의 두 딸들은 평생 온갖 혜택을 주며 예우했을 겁니다. 실제로 위협도 되지 않으니 먼저 죽은 형에 대한 애틋함까지 더해져서요... 광해군도 정명공주는 매우 귀여워했다죠.

    • @희러-s7r
      @희러-s7r 4 года назад +3

      그렇죠. 하지만 문종은 자기가 그렇게 일찍 줄을 줄 몰랐겠죠. 그리고 들였던 왕비나 세자빈이 세명인데 다 주거나 내쫒겼으니 이제 들이기 싫었을거에요. 그리고 세조가 무정하긴해도 폭군은 아니였으니까요. 어느면에선 성군이라고 칭할 수도 있을 정도니까요. 새종대왕의 가장 큰 실수는 아들들이 너무 똑똑한거 같네요.

    • @꽃말-y6l
      @꽃말-y6l 4 года назад +1

      @이재현 다 떠나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김종서와 황보인에게 부탁해서 황표정치를 하게 한 것은 문종의 판단력을 의심스럽게 만듭니다. 김종서와 황보인이 정치적으로 뛰어나서 결과적으로 그게 선정이었는지는 제가 모르겠지만, 누가 봐도 이건 태종과 세종이 애써 일궈놓은 왕권을 바닥에 떨어뜨리는 짓이었어요. 신하가 낙점한 인사를 왕이 승인만 한다라... 완전 왕의 머리 꼭대기에 앉아서, 이랬다가는 단종은 성인이 되어서도 결국 이들에게 크게 의지하는 나약한 군주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수양대군뿐 아니라 다른 신하들까지도 불만이 큰 상황이었어요. 이게 결과적으로 수양대군의 계유정난의 성공으로도 이어진 거죠.

    • @꽃말-y6l
      @꽃말-y6l 4 года назад +3

      @@희러-s7r 수양대군이 아니었더라도 안평대군이 일 냈을 겁니다ㅠㅠ 임영대군도 순서상 자기는 아우이고 저 둘의 세력이 워낙 크니 수양대군 쪽에 붙은 거고 만약 수양대군이나 안평대군이 없었더라면 야심을 드러냈을 것 같은 인물이에요.

    • @이도형-x9x
      @이도형-x9x 4 года назад +1

      사실 단종을 생각한다면 세종께서 혜빈양씨나 신빈김씨와 형식적이라도 혼례를 치루는 것이 좋았습니다. 혜빈은 단종의 사실상 유모고 신빈은 수양을 돌봐준 사람이라 ... 저들 중 한 명이라도 단종 뒤에 대비로서 있었다면 수양은 나설 명분이 없습니다. 숙빈 홍씨는 어떻게 보면 자기 연적 아들을 그리 지켜주었을지 의문이고요

    • @이도형-x9x
      @이도형-x9x 4 года назад +1

      @@꽃말-y6l 황표정사는 사실 그 비슷한 것이 지금도 하고 있지요. 지금도 승진 후보자 정해야 하면 1-3순위 정도 정하고 인사 담당자들이 맘에 든 사람 따로 표시해서 올리는 것 비슷하니까요. 저 때 문제는 이조에서 해야할 일을 정승들을 거쳐 왕은 형식정 결제만 한다는 것인데 ... 당시로서는 저것 말고 답이 있었나 싶습니다. 더구나 의정부서사제였던 세종 말기부터의 현실을 보면 ..... 그리고 세종과 문종의 문제는 설마를 믿은 죄 아닌가 싶습니다. 설마하니 아무리 그래도 삼촌이 조카를 ....

  • @Dhellbeep
    @Dhellbeep 4 года назад +5

    옛날동영상ㅠㅠ 어디 갔나요

  • @로버트레드포드-p6y
    @로버트레드포드-p6y 4 года назад +39

    문종 때 왕비처럼 대접 받았다는 숙빈이 남편의 아들 단종이 그 몹쓸 일을 겪을때 수수방관 했을까 아니면 단종을 지키려고 노력했는데 역부족 . 능력밖이었을까
    차라리 숙빈을 왕비에 봉했더라면 어린 단종이 친정을 할때까지 수렴청정을 해서 단종이 무사 했을것을
    그러나 천륜까지 버린 잡놈 세조가 후궁출신인 숙빈이 수렴청정 하는 꼴도 못봤을거 같으네

    • @꽃말-y6l
      @꽃말-y6l 4 года назад +16

      저도 그 부분이 매우 궁금합니다. 만약 숙빈 홍씨가 중전이 되었더라면 수양대군과의 파워 싸움에서 졌을지, 이겼을지요....
      그런데 세조의 혼맥이 워낙 화려했던지라... 정희왕후가 속한 파평 윤씨 집안도 그렇고 사돈이 그 유명한 한확이었잖아요. 인수대비의 아버지... 숙빈 홍씨가 중전이 되었더라도 계유정난은 일어났을 거고 세조가 이겼을 가능성도 높습니다. 다만 단종이 저렇게 천둥벌거숭이로 홀로 남는 것보다는 백만배는 나았을 거에요ㅠㅠ

  • @김도로시-t5n
    @김도로시-t5n 4 года назад +1

    감사해요

  • @박셈2
    @박셈2 4 года назад +18

    안녕하세요 오늘은 숙빈홍씨를
    하셨네요^^ 숙빈홍씨가 왕비가 되지
    못해서 좀 아쉽네요!
    전 개인적으로 현덕왕후보다
    숙빈 홍씨가 왕비가 되었스면
    좋게다고 생각합니다

    • @xiulove999
      @xiulove999 4 года назад +3

      현덕왕후와도 권씨도 사이가 좋았습니다.. 경혜공주를 낳았으니 왕손을 낳을수있다는 기대도 있었을테니까요..ㅎ

  • @냥3집사
    @냥3집사 5 месяцев назад +2

    폐출된 세자빈들에게 잘해주지ᆢ그때일찍 왕자라도 낳았으면ᆢ
    정이 안가도 왕실을 위해 할껀하고 좋아하는 여자는 후궁삼으면되고ᆢ

  • @이승철-q6z
    @이승철-q6z Год назад +3

    세조조차 종모법을 폐지 하였는데 이 막동은 ..부민법과 종모법을 통하여 생지옥을 만들었는가? 색과 고기에 빠져 단명하는가?

  • @하닷사-s2q
    @하닷사-s2q 4 месяца назад +1

    세종이 며느리들를 쫓아낸 죄가 큼....

  • @하정관-i6u
    @하정관-i6u 4 года назад +2

    문종 장남 ~ 왕세자 이홍위

  • @하정관-i6u
    @하정관-i6u 4 года назад +2

    수양대군 ~ 안평대군 ~ 임영대군

  • @하정관-i6u
    @하정관-i6u 4 года назад +2

    김종서 ~ 수양대군 ~ 안평대군

  • @인물탐구-i5p
    @인물탐구-i5p 4 года назад +3

  • @김갱이-r2x
    @김갱이-r2x 4 года назад +5

    우리나라 왕족족보보면 개판

  • @시원한강바람
    @시원한강바람 3 месяца назад

    총 애 ㅡ뭐해 재수 없 다 ㅡ

  • @손경선-b5e
    @손경선-b5e 4 года назад +1

  • @폴폴쬠만
    @폴폴쬠만 4 года назад +1

    말이 너무 늦어요 ㅠ

  • @초롱불-l7u
    @초롱불-l7u 4 года назад +7

    몸도약한게 색에미쳐 자빠졌으니 오래살수가
    있었겠나?

  • @gracewon9503
    @gracewon9503 4 года назад +8

    옛날동영상들 다 없어졌네요ㅠㅠㅠ 옛날꺼에 항상나오던 bgm 알수있을까요...

    • @gracewon9503
      @gracewon9503 4 года назад +1

      Claire Kim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