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숙종"이 가장 사랑하고 아끼던 왕자이자, "경종"과 "영조"의 이복동생인 연령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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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9 сен 2024
  • 연령군 이훤(1699년 ~1719년 )은 숙종의 여섯째 아들이자 명빈박씨의 아들로 경종과 영조의 이복 동생입니다.
    숙종의 막내아들로, 숙종의 아들 중에 경종, 영조보다 더 많은 사랑을 받습니다. 5살의 나이에 어머니인 명빈박씨가 죽자, 숙종은 6세 이후의 왕자의 군호를 봉작한다는 예법을 어기고 연령군으로 봉하였으며 늘 곁에 두고 보살폈습니다. 이후 젊은 나이에 후사 없이 승하하자 숙종은 매우 애통해합니다. 세월이 흘러 제사를 위해 양자를 들이면서 계통상 흥선대원군의 고조부가 됩니다. #역사 #조선시대 #공주 #조선왕조실록 #조선

Комментарии • 37

  • @hahyun06
    @hahyun06 Месяц назад +18

    부친에 효를 다하고 간 아들이네요.
    오늘도 잘 감상했습니다.

  • @user-rq2ip3oz9i
    @user-rq2ip3oz9i Месяц назад +29

    연령군이 오래 살았다면 경종의 후계자는 연령군이 되었을 겁니다
    순서상으로는 연잉군 즉 영조가 앞서는데 자식도 아니고 동생에게 갈 것 굳이 순서를 심각하게 따질 필요도 없고
    모계 가문도 좋은 연령군이 후계자가 되는 것이 모양도 좋으니 ....

    • @inyeobseo9369
      @inyeobseo9369 Месяц назад +3

      경종의 후사 문제로 1717년 정유독대를 숙종이 하였는데 이때 연잉군, 연령군 누구를 세제로 정할지의 논의는 기록이 없습니다. 아마도 연령군일 가능성이 큽니다. 숙종이 죽은 것도 연령군에 대한 슬픔이 원인인 것으로 봅니다.

    • @user-xd1th4uq3h
      @user-xd1th4uq3h Месяц назад +2

      연령군 생모도 궁녀 출신(희빈 장씨의 나인이었다고..;;) 인걸로 아는데 모계 가문이 좋은 건가요?? 연령군은 숙종이 후계로 생각했다, 그냥 자식으로만 예뻐했다 의견으로 갈리네요;; 진실이 무엇이었는지는 숙종만이 알겠죠;;

    • @inyeobseo9369
      @inyeobseo9369 Месяц назад +6

      @@user-xd1th4uq3h 박명빈이 상궁 출신이니 희빈, 숙빈보다 궁녀 중에는 높은 위치였습니다. 숙종이 세아들 중에 가장 마음에 들고 연령군이 4세에 모친상을 당해 애처롭게 생각한 아들이고 효자이고 이론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부분인데 연령군이 가장 귀한 대접을 받았다는게 팩트입니다. 경종의 불임을 숙종이 알고 있었다는 점도 가슴이 아픈 부분입니다. 영조가 동생의 죽음으로 세제가 된 것이 팩트임. 숙종은 말년에 눈도 멀어 경종이 대리청정 하였다고 합니다.

    • @user-xd1th4uq3h
      @user-xd1th4uq3h Месяц назад +6

      @@inyeobseo9369 숙종이 경종의 불임을 알고 있었군요ㅠㅠ 경종도 3살에 세자로 책봉될 정도로 사랑을 많이 받았고 희빈장씨가 중전이었을 땐 적장자로 위치가 탄탄했던 시절도 있었는데 어쩌다가 후사문제까지 걱정할 정도로 저렇게 건강이..ㅠㅠ 숙종이 젤 나쁨-.-;; 어쩌면 연령군이 젊은 나이에 죽지 않았더라면 굳이 숙종이 아니더라도 경종이 후계로 고려했을 수도 있겠네요;; 그럼 임오화변 같은 비극도 없었겠죠?

    • @user-fw4wx1gz4x
      @user-fw4wx1gz4x Месяц назад

      ​@@user-xd1th4uq3h 연령군의 생모 명빈박씨는 부친이 3품 통정대부로 희빈장씨와 같은 중인출신입니다. 천민이나 다름없는 숙빈과는 완전 다르죠. 왕족의 서자가 아닌 왕족의 얼자는 대우에도 차등을 두었습니다. 숙종말년 연잉군에 대한 대한 대우와 위상은 연령군에 비해 낮았습니다. 영조시대 이후 사실처럼 굳어진거와는 달리 연잉군에 위상이 세자를 위협한게 아니라 연령군의 위상이 연잉군을 압도했음

  • @user-yd4zm9hq2k
    @user-yd4zm9hq2k Месяц назад +23

    숙종이 확실하게 세자나 연잉군보다 연령군을 더 총애했네요

    • @user-ns3ic9dr2h
      @user-ns3ic9dr2h 18 дней назад

      장희빈 아들은 첨엔 이뻐했지만 장희빈이 못된짓을 한 후 부턴 세자도 엄청 미워해서 버림받았죠 그래서 세자가 우울증 걸리고 몸이 쇠약해지고 스트레스 많이 받아 많이 먹어 그런지 아주 뚱뚱햇답니다

  • @user-uo6ih8ur1t
    @user-uo6ih8ur1t Месяц назад +6

    숙종도 참 자식들에게는 애틋한 왕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 @sovereigntylux
    @sovereigntylux Месяц назад +8

    이 왕자는 후손도 없지만... 묘도 실전되어서 찾을 수가 없음 ㅇㅅㅇ

    • @inyeobseo9369
      @inyeobseo9369 Месяц назад +6

      연령군의 묘는 보라매 근처에 있다가 일본이 1940년 충남 예산으로 이장합니다. 남연군의 후손이 제사를 지냈다고 하며 신도비는 노원구 육사 근처에 있습니다. 상산군부인 김씨도 1725년 요절합니다.

  • @user-pm1jt2xz6w
    @user-pm1jt2xz6w 20 дней назад

    가슴아프다!!

  • @user-or5xb4gv8x
    @user-or5xb4gv8x Месяц назад +4

    빈은 보통 세자를 낳은 후궁급에게만 주어줬는데, 세자의 생모가 아닌데도 빈을 받았으면 숙종이 정말 아낀 듯

    • @yl6862
      @yl6862 28 дней назад +2

      뭔소리지 빈은 그거랑 상관없는데

    • @user-xd1th4uq3h
      @user-xd1th4uq3h 23 дня назад +1

      @@yl6862 아들이긴 하지만 자식 하나 낳았고 아들이 세자도 아니고 본인도 간택후궁 출신도 아닌데 정1품 빈은 과하긴 합니다;; 숙종이 아낀 건 맞는 듯요;;

    • @yl6862
      @yl6862 23 дня назад

      @@user-xd1th4uq3h 과하진 않은것같네요

    • @user-ns3ic9dr2h
      @user-ns3ic9dr2h 18 дней назад

      연잉군 모친 최무수리도 최숙빈으로 빈을 받았어요

    • @user-or5xb4gv8x
      @user-or5xb4gv8x 6 дней назад +1

      @@user-ns3ic9dr2h 연잉군이 세제가 되었잖아요 그래서 받은 빈이에요.
      빈은 세자의 생모나 후궁 간택으로 들어와서, 소위 후궁의 친정 권력이 왕의 뒷배가 되는 급에게만 주어집니다

  • @user-tw5uo7ee6l
    @user-tw5uo7ee6l Месяц назад +3

    세종대왕의 딸들도 부탁드립니다!!제발

  • @user-ns3ic9dr2h
    @user-ns3ic9dr2h 18 дней назад +1

    숙종이 정말로 연령군 모친을 사랑 했다면 연령군 모친을 중전 삼았을것입니다 숙종은 자기가 원하는건 다 하는 사람이거든요 그리고 명빈 박씨 집안이 좋았어요 아버지가 정3품 그리고 인현왕후가 죽기전 숙종에게 영빈김씨를 중전에 앉히라고 부탁하고 죽죠

    • @user-ns3ic9dr2h
      @user-ns3ic9dr2h 18 дней назад

      영빈김씨는 간택 후궁이고 집안이 엄청난 가문이죠 영빈김씨 미워서 후궁은 중전이 될수 없다 하교를 숙종이 했죠 중종때 경빈 박씨가 엄청난 미녀라 복성군 아들도 일찍 낳고 했지만 신하들이 출신이 천하다고 안된다해서 못되고 파평윤씨 가문 윤숙의가 중전이 되죠

  • @user-ns3ic9dr2h
    @user-ns3ic9dr2h 18 дней назад +1

    연령군을 예뻐한건 가장 막내니깐 더 귀엽고 예쁘죠 그리고 엄마가 일찍 죽어 불쌍하니 애틋 했겠죠 거기반해 연잉군은 어머니가 천출 이라도 노론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았어요

    • @user-fw4wx1gz4x
      @user-fw4wx1gz4x 14 дней назад

      연령군이 사망하기전까지 연잉군에 대한 노론의 지지는 결코 크지 않았습니다. 희빈사후 강력한 왕권을 의식해 노론은 후계문제에 대놓고 나서지 않았고(과격한 주장을 한건 오히려 소론과 남인쪽)잘 알려져있진 않지만 노론영수이자 민씨가문 수장인 민진후는 경종즉위직전 사망하기전까지 경종이 대한 충성심이 강했습니다. 경종시절 노론이 보인 하극상은 왕이 거의 매일 병상에 있는 상황에서 연잉군외에는 삼종의 혈맥을 이을 왕자가 없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죠

    • @user-fw4wx1gz4x
      @user-fw4wx1gz4x 14 дней назад

      숙종생전 연잉군에 대한 노론의 지지는 크지 않았습니다. 강력한 왕권을 의식해 노론실력자들은 후계문제에 대해 감히 드러내놓고 나서지 못했고(과격한 주장을 한건 소론과 남인쪽) 잘 알려져있진 않지만 노론영수중 하나이자 민씨가문 수장인 민진후는 경종즉위직전사망하기 전까지 경종에 대한 충성심이 강했습니다.
      숙종말년 숙종이 전교에 연령군, 연잉군 순으로 언급해도 집권 노론인사들 누구하나 이의제기한바 없었던 반면 희빈장씨 묘 천장당시 노론실권자들은 망곡을 허용하자며 재야노론인사들을 달래기도했죠. 경종시절 보인 노론의 하극상적인 모습은 경종이 만만해보이는데다 왕이 거의 매일 병상에 있는상황에서 삼종혈맥이을 왕자가 연잉군밖에 없어서 일어난일입니다

  • @bca426
    @bca426 Месяц назад +1

  • @user-ez6nm3sk2d
    @user-ez6nm3sk2d Месяц назад +2

    왕들은 참 팔자쎄다..

  • @user-nc2bq2yh6l
    @user-nc2bq2yh6l Месяц назад

    중국왕이 뭐라고 하는지 뚱단지같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