Это видео недоступно.
Сожалеем об этом.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떤 밥을 먹었을까? 우리가 모르는 조선시대 식사 문화

Поделиться
HTML-код
  • Опубликовано: 13 окт 2022
  • 안녕하세요 역사돋보기입니다 :)
    저희 역사돋보기가 생생한 설명을 위해 직접 현장에 나가봤습니다!
    저희 역사돋보기의 직접 찾아가는 역사 여행 콘텐츠도 많이 사랑해 주세요
    항상 감사합니다:)
    / @culturepower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떤 밥을 먹었을까
    그럼 역사돋보기 시작합니다.
    #밥
    #조선시대
    #조선
    #밥상
    #식사
    #조선역사
    #역사
    #역사이야기
    #역사다큐멘터리
    도서 리뷰 및 기타 협업 제의 있으신 분 연락 주세요.
    historyice93@naver.com
    감사합니다 :)

Комментарии • 796

  • @historycreator
    @historycreator  Год назад +24

    직접 찾아가는 역사 여행 콘텐츠
    ruclips.net/channel/UCC7bElwd29qpkgLo0j3l3Qw

    • @chuljinkim4084
      @chuljinkim4084 Год назад

      3:43 약11만 + 약71만 = 약 82만 , 83만명이 전체인구의 6할이라굽쇼??????
      그럼 일제시대 1924년 조선 전체인구가 약 183만명이라굽쇼????? 이상하지요??
      조선총독부 인구조사자료에 따르면 약1872만명 입니다. chrome-extension://efaidnbmnnnibpcajpcglclefindmkaj/img.kisti.re.kr/soc_img/society/pak/GOGHBY/2009/v32n2/GOGHBY_2009_v32n2_29.pdf
      네번째 페이지 보셔요.
      역사 다루는 채널이라면 재대로 알고 말씀 하셔야겠죠? 안그럼 역사왜곡이 되니까요.
      혹시 1할이 몇%인지 모르는게 아닌지,,,, 여튼 조심합시다.

    • @DOCPOWERKorea
      @DOCPOWERKorea Год назад

      ㅁcx'xxxxxxxxxxxxzxxxxxxxxx'xoxxx

    • @DOCPOWERKorea
      @DOCPOWERKorea Год назад +1

      xx

    • @DOCPOWERKorea
      @DOCPOWERKorea Год назад +1

      xxxx

    • @DOCPOWERKorea
      @DOCPOWERKorea Год назад

      x

  • @user-ec3is2pe7x
    @user-ec3is2pe7x Год назад +78

    70년대초 매주 수요일은 분식의 날,
    일반음식점에서 쌀밥
    내놨다간 동사무소 적발반에 적발될 경우 엄한 벌금형에 처해지기도, 음식점에서도 밥은 못팔고 국수종류만 팔아야했었죠. 그러더니 나라사정이 좀 나아졌는지 초등학교 도시락도 혼식의 날이라해서 반드시 보리나 잡곡비율이 쌀밥대비
    30%이상 되어야해서
    검사하는 날은 쌀밥 싸온애가 보리밥만 싸온 친구 도시락까고 반반 섞어 검사받느라 비상걸렸었죠. 지금은 아련한 추억이네요.

    • @reginasong5733
      @reginasong5733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2

      맞습니다. 어떤 애들은 위에만 보리 깔고 아래는 쌀밥 ㅎㅎ, 저는 중학교때 봉사부장을 했는데, 점심 시간에 애들 보리밥 싸왔는지 검사담당이었죠. 60이 된 지금은 님 말씀대로 아련한 추억이네요.

    • @simhopp
      @simhopp 19 дней назад

      외국 놀러가는것도 막았죠.
      그만큼 한국이 못살았다는거죠.
      그덕분에 지금 잘살게 된건데, 그런 정책들을 욕하는 미친인간들이 많죠.

  • @ullysiss1
    @ullysiss1 Год назад +81

    소반은 식탁이 낮아진게 아니라 쟁반에 발이 달린 개념으로 생각하면 왜 낮은지 이해할수 있슴.
    부엌에서 차려 방으로 옮겨야 하는데 쟁반이 필요하고, 쟁반이 너무 낮아서 먹기 불편하니 최소한의 다리가 생긴것

    • @yhansookim7850
      @yhansookim7850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시골은 다 잇는...
      어릴때 생각나네요.
      상 다리 펴~

  • @user-fz6os3io2h
    @user-fz6os3io2h Год назад +11

    요즘도 하루 세끼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나라에서 쓸데없이 세금 낭비 하지 마시고 필요한 곳에 빨리 지원 바랍니디ㅡ

  • @Cro-cop
    @Cro-cop Год назад +329

    80년대만 해도 밥을 와구와구 미친듯이 씹어먹지 못했음.. 밥먹다가 돌 씹어서 어금니에 구멍나기 일수였어서..ㅜ

    • @user-be5zs8yo6p
      @user-be5zs8yo6p Год назад +35

      기억나요 ㅜㅜ 돌엄청.맞았음.ㅜㅜ

    • @user-gu8tk8lw9i
      @user-gu8tk8lw9i Год назад +37

      70년대 초에 조리라는걸로 쌀씻고 돌고르는걸 본적있슴

    • @dustjdbs
      @dustjdbs Год назад +29

      나도 초딩 저학년때 밥에 돌들어서 먹기 무서웠었음
      차라리 처음부터 돌을먹지 밥먹다 돌씹으면 진짜 기분 뭣같아

    • @user-wp8vw8ij2u
      @user-wp8vw8ij2u Год назад +32

      돌 많이.씹었내요 80년대 그래서 엄마가 쌀을 엄청 매매 씻었자요

    • @user-rw6lv7pc9p
      @user-rw6lv7pc9p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니 엄마가 개을렀내

  • @user-zz4kf3rg6v
    @user-zz4kf3rg6v Год назад +53

    저도 어릴적 시골에서 기계없이 일을 하고나면 공기밥 3~4개 정도는 아무것도 아님... 그만큼 고된일을 했다는 증거입니다

  • @blueho65
    @blueho65 Год назад +77

    50,60년대 영화들의 식사장면을보면 밥그릇이 매우컸다는걸 알수있죠...
    지금 50대이상도 그걸보면 기억이 되살아 날정도로 작은공기에 먹는게 익숙해진 시대입니다.

    • @user-vt1hj7nh7f
      @user-vt1hj7nh7f Год назад +13

      다까끼마사오 망령이 아직까지 살아있는 것이죠. 쌀 아껴야된답시고 가가호호 밥그릇 크기까지 ㅙ구 밥그릇 크기로 강제 규제한 게 여지껏 남아 내려옴.

    • @벽을뚫는포신
      @벽을뚫는포신 Год назад +21

      @@user-vt1hj7nh7f 그게 불만이면 넌 많이 집어넣으면 되겠네

    • @shlim2306
      @shlim2306 Год назад +8

      @@벽을뚫는포신 사실을 얘기하면 아 그렇구나 라고 넘어가

    • @skdjcsddd
      @skdjcsddd Год назад +8

      @@user-vt1hj7nh7f 밥그릇까지 규제한것도 아닌데 왜 지랄이야?
      한공기 모자르면 두공기 먹으면 될일이지

    • @user-ri73bdis88h7
      @user-ri73bdis88h7 Год назад

      @@skdjcsddd 미국대통령이 치즈버거 크기를 규제하고 하나 부족하면 두개 먹어라 이따위로 하면 샷건맞는다.
      후진적인 한국이니까 그런 횡포가 가능한거지.

  • @Jenny-nd2me
    @Jenny-nd2me Год назад +13

    와아..역사 공부를 재밌게 했어요. 감사해요!👍👍

  • @user-le6il9cd4l
    @user-le6il9cd4l Год назад +18

    나 어릴때(80년대)만 해도 대부분 다 보리밥 먹었던 기억. 시골이라 더 그랬던것도 있지만

  • @user-bg7bx3le6y
    @user-bg7bx3le6y Год назад +10

    지금 생각헤보니까 저 어릴때 엄니가 잡곡밥을 아래넣고 위쪽에 흰쌀밥을 올려줬던게 기억납니다 아주 어릴때였는대 80년대 초반? 대략 6,7살 정도였던거 같네요 ㅎㅎㅎ

  • @jaelee6784
    @jaelee6784 Год назад +31

    사실 고대 동아시아에서는 병사 한 명이 하루 잡곡 1kg을 소비한다고 가정하고 병참을 계산했고, 나폴레옹도 건빵 550그람, 쌀같은 곡류 30그람, 건조채소 60그람 염장고기 200그람, 포도주 250미리리터로... 대강 1kg로 맞춰서 계산했습니다. 물론 고기나 포도주는 곡류보다 훨씬 비싸고 영양도 우수했겠지만요...
    육류 등이 부족하고 노동량이 많은 전근대인에게 잡곡 1kg는 많은게 아니라 오히려 평균에 가깝거나 부족하다고 할 수 있죠.
    홀수의 반찬은 모두 중국의 유교에서 기원한 것입니다. 9는 가장 많은 것으로 천자만 쓸 수 있었고, 이후로 제후는 7, 경대부는 5, 사는 3 순이었죠. 이렇게 엄격하게 지켜지진 않았지만 원칙의 측면에서는 그러했습니다.
    또한 소반 역시 중국에서 유래했는데, 고대 중국에서는 바지가 없고 남녀 모두 치마만 입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기본적인 생활 방식은 돗자리 위에 앉는 것이었고, 치마를 입고 양반다리를 할 수는 없어서 무릎을 꿇고 앉아서 생활했습니다. (금문의 사람 인人자는 무릎꿇고 앉은 사람을 형상화한 글자입니다) 그렇게 바닥생활을 했기에 그릇은 모두 그릇받침이 있었고(현재 한국의 제사그릇도 그릇받침이 있죠) 소반 위에서 밥을 먹고 공부를 했죠. 소반이 낮은 이유도 이러한 그릇 받침 때문일 겁니다.
    이러한 습속이 이어져 조선에도 내려오다가, 이황 때는 더 이상 치마를 입지 않고, 평균수명이 이전보다 늘어나 늙은 사람들의 무릎관절을 걱정해야 했기 때문에 반좌로 자세를 바꾼 거죠. 하지만 어쨌든 정식 예법은 정좌 - 즉 무릎 꿇고 앉는 것입니다.
    정작 중국은 당나라 이후 인도에서 수입된 의자에 앉는 문화가 생겼지만요.

  • @violet1945
    @violet1945 Год назад +49

    저 어릴 적엔 시골에서 농사지어 나오는 게 주식이었는데요.
    지금 국그릇이라고 부르는 게 당시엔 밥그릇이었어요.
    당시엔 정간이라 불렀던 부엌엔 아궁이가 있었고,
    아궁이엔 솥이 두 개 걸려 있었습니다.
    솥 하나는 밥용, 다른 하나는 국용이었고요.
    메 끼마다 밥괴 국을 새로 해야 했어요.

    • @sonamu5
      @sonamu5 Год назад +6

      정간이란말 정말 오랜만에,햐 가슴이 찡 하네요,감사

    • @2mb1000
      @2mb1000 Год назад +5

      정간 정지라고 불렀죠 그리운 이름입니다. 제 할머니도 어머니도 거기서 밥을 지어 저를 먹이고 키우셨죠.

    • @user-uk2ol4od5r
      @user-uk2ol4od5r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부엌을 정간이라불렀나요

    • @user-xz3pm4bv6x
      @user-xz3pm4bv6x Месяц назад

      할머니 생각나네요 경상도는 정지라고 햇어요.정지가서 물잔 가꼬온나~

  • @chakagesalja99
    @chakagesalja99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11

    밀은 영양소가 쌀보다 적고 대신 도파민을 촉진하는 성분이 있어 기분을 좋게하고 빠르게 포만감을 줍니다
    쌀은 밀보다 소화되는 시간이 길지만 거의 모든 필수영양소와 단백질, 탄수화물등 고에너지를 포함해서 밥만먹어도 큰 문제가 없는 곡식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주식인 자포리카쌀은 한국,일본,미국서부, 중국연안,러시아 일부지역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쌀의 나라들은 인디쌀을 주로 먹습니다
    해산물과 청정한 담수가 풍부한 지역은 찰진 쌀을 선호하지만 날씨가 덥고 습하며 다양한 향신료와 과일등 식재료들이 풍부한 지역은 볶음요리에 어울리는 길고 얇은 쌀을 선호합니다

  • @user-ow2cb6hr4o
    @user-ow2cb6hr4o Год назад +6

    오늘도 재미난 영상 감사 합니다.

  • @wnb7276
    @wnb7276 4 месяца назад +2

    조선이 대단한게..
    조선초 15세기 만든 법전을 20세기 망할때 까지 그대로 사용 햇다는건 세계역사에 조선이 유일하다고..근 500년 동안 단 하나의 법전을 그대로 사용함.

  • @mool_tissue
    @mool_tissue Год назад +5

    정도전이 조선이라는 나라를 설계 할때는 쌀 생산량만 늘면 알아서 강대국이 될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500년 내내 쌀 생산량을 늘렸죠. 그래서 쌀 소비량도 늘었고 쌀 저축량도 늘었는데 그런다고 조선이 강대국이 되지는 못했죠.
    스타로 치면 미네랄 생산량 늘이겠다고 시작 10분 동안 프로브 계속 뽑으면서 파일런 게이트만 지은 꼴..
    실제로 조선이 고려보다 쌀 생산량은 훨씬 많았는데 정작 전쟁때 동원할 수 있는 장정의 수는 고려가 더 많았습니다. 이건 뭔가 잘못된 거죠.

  • @Bohemian5380
    @Bohemian5380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6

    옛날엔 작정하고 먹으면 양은밥통 하나 정도는 뚝닥~
    대신 별 반찬은 없고 세상 맛있는 김치나 풀떼기류 반찬들...ㅋㅋㅋ 특히 시골 아이들이 많이 먹었죠.

  • @user-xd1wz4cl8v
    @user-xd1wz4cl8v Год назад +41

    80년대에 서울에서 강원도로 이사갔는대 저보다 작은 애들이 아빠 밥그릇이라고 일반 밥그릇보다 큰 그릇에 먹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일반인도 지금 보다 많이 먹어서 90년대 식당에 가면 공깃밥 보면 조금 줘서 아쉬웠던 기억이. 고등학교때 서울 올라가서 짜장면을 먹으면서 두젓가락만큼 준다 투덜거린 기억도 있네요. 지금은 햇반도 양이 많게 느껴지는대

    • @user-ds2xk9cl9g
      @user-ds2xk9cl9g Год назад +8

      햇반처음나왔을때 밥을 반공기씩 주는건줄

    • @user-zg4mu2gm3i
      @user-zg4mu2gm3i 8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옛날 식당을 아는 저로선... 요즘은 식당 갈때마다 짜증--+ 밥이 너무 적어.그래서 항상 식당에선 1~2천원 더 주고 추가로 시켜먹지요 . 옛날 식당밥의 절반밖에 안주는듯해요 . 가격은 더 받으면서. 식당주인 개객끼들.

    • @user-ji4xc6mw8d
      @user-ji4xc6mw8d 3 месяца назад

      ㅅㄱ

  • @RisaRena
    @RisaRena Год назад +119

    일본 카토가에서 태어나 십년 넘게 살다가 한국으로 귀화 했는데 밥 다먹으면 깨끗하게 잘 먹었다고 칭찬받으며 자랐고 학교에서도 농민분들께 감사해 하며 밥알 한알까지 싹싹 먹고 설거지 하기 쉽도록 항상 물을 밥그릇에 부어 마시거나 미소된장국을 마지막 밥그릇에 말아 마르지 않게 하도록 가정교육 받아왔어요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 @user-kk6mf5gs7q
      @user-kk6mf5gs7q Год назад +12

      저희 외가가 농사를 짓는데 어렸을 때 밥알 흘리면서 먹거나 밥을 남기면 혼나곤 했습니다
      지금이야 흔한 쌀밥이지만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식사해야겠네요.

    • @churlkoh8053
      @churlkoh8053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10

      한국과 똑같군요

    • @user-qt4zu1jx1m
      @user-qt4zu1jx1m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10

      외할머니 고향이 일본인데 지금도 저희 할머니는 가족식사할때 밥 깨끗히 먹으면 칭찬 해주시고 가족 모두가 집에 들어갈 때 신발 돌려 놓는게 습관화 돼있어요

    • @user-qt4zu1jx1m
      @user-qt4zu1jx1m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user-kk6mf5gs7q그게 한국 가정교육의 문제였죠 .. 잘 먹으면 칭찬을 해야되는데 남기면 혼내는 문화 시간이 지나니 이제는 선생님이 혼내도 학교 찾아가서 진상떠는 페미창궐시대 부모들

    • @user-hz7uc1ip8e
      @user-hz7uc1ip8e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10

      일본사람들 밥 싹씩 깨끗이 먹는데 한국인은 잔뜩 퍼와서 다 남기고 더럽게 먹고

  • @user-bl1hp1ed5x
    @user-bl1hp1ed5x Год назад +8

    80년대 후반에 지금의 작은 밥공기가 나왔는데..당시 쌀이 부족해서 쌀 아끼려고 밀가루막걸리와 함께 만든거..이만기씨가 그 밥공기를 처음 보고 한숟갈 뜨니까 밥이 없더라는..ㅋㅋㅋㅋ 지금도 시골 출신 밥좀 먹는다는 사람들 보면,, 국물에 공기밥 8개 말아먹는 사람 흔한데, 그게 80년대 2공기 양이다. 다만 그사람들은 반찬은 손도 안대고 밥만 먹음

  • @mirr660
    @mirr660 Год назад +36

    저 당시 쌀은 도정기술이 재래식이어서 무조건 현미라 나름 영양이 풍부해 별 반찬없이 먹어도 건강식이었지만 지금의 백미 쌀은 그것만 먹게되면 당뇨에 걸리게 하고 영양은 거의 없고 열량만 가득하게 됩니다…다들 현미 드세요…
    조선 사람들이 누런 쌀밥이라 했던 그것이 현미입니다

    • @Jeong-eun
      @Jeong-eun Год назад +1

      맞습니다. 디딜방아에 찧어서 밥을 해서 먹었지요.

    • @flat-coatedretriever4033
      @flat-coatedretriever4033 Год назад +3

      현미를 조선시대 고봉밥을 먹어요? 현미는 독소가 있어요 저렇게 많이 먹으면 탈납니다😊

    • @user-pb5sy9ux6q
      @user-pb5sy9ux6q Год назад +2

      칠십년대 돼지 키울때 설겆이 한물에 딩기를 한바가지 넣어서 키워습니다 그당시는 세제를 사용하지 안아쓰니까요 딩기가 쌀 도정하면 나오는 꺼칠,꺼칠한 현미 부분이죠 한편으로 짐승을 키우려고 도정을 의도적으로 만이 할수 있다는 생각이 듬니다
      심지어는 개도 딩기를 주기도 하는것을 밨습니다 살은 고구마도 하나 던져 주기도 하고요
      사람이나 짐승이나 먹고 살기 힘들었던 시대죠
      삼시세끼 밥을 못먹고 고구마 죽 감자 옥수수 국수로 한끼는 때워고 여름에는 누런 보리밥만 먹었서니까요 충북 산골짝에서 어린시절 추억

    • @sunjong0649
      @sunjong0649 Год назад +5

      저당시 조선시대 쌀과 현재 생산돼는 쌀과는 달랐습니다 칼로리 단백질등 영양소가 지금 국내에서 생산 돼는 쌀에 비해적었고 그로 인해 포만감도 적어 양을 많이 섭취 할수 밖에 없던겁니다 쌀알 크기도 지금보다 상당히 적었다고 합니다

    • @user-uk2ol4od5r
      @user-uk2ol4od5r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1

      ​@@flat-coatedretriever4033개솔ㄴ

  • @wj4236
    @wj4236 Год назад +7

    중간에 일본에서 밥 그릇을 싹 비우면 식사량이 불충분하다, 배고프다 라고는 말씀하셨는데 잘못 된 내용입니다. 한국하고 같습니다. 중국문화랑 착각하신거 같습니다.

    • @kevinbae4246
      @kevinbae4246 Год назад +5

      저도 영상보고 의하했는데 일본이 아니고 중국문화가 맞습니다.

    • @Cro-cop
      @Cro-cop Год назад

      부모님 집에 갔을 때 엄마가 밥을 너무 많이 주셔서 겨우겨우 다 먹으면 "아이고 우리아들 배가 많이 고팠나보네 더 먹어라" 이러시는데 ㅋㅋㅋ

    • @adrianobonucci415
      @adrianobonucci415 Год назад +1

      맞아요. 배우자가 일본인인데 처음 같이 밥 먹을때 밥공기에 밥풀떼기 몇개 붙은거 먹으려고 열심히 젓가락질 하는거때매 엄청 신기해서 웃었던 기억이..
      깨끗하게 비우는게 잘먹었다는 예절이에요

  • @user-pf3fp7hi3g
    @user-pf3fp7hi3g Год назад +7

    보리밥에 감자, 고구마 얹어서 많이 먹었음

  • @user-bl8nh2gy4i
    @user-bl8nh2gy4i Год назад +5

    어릴적 할머니말씀에 보통 집에서는 여자들 특히 어린여자들은 비빔밥을 많이드셨다는...남자들만 상에서먹고 따로모여 남은밥과 나물을비벼 부엌 부드막이나 주위에 옹기종기모여드셨다고
    국밥이나 비빔밥 처럼드셨다합니다
    특히 그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보통은 상없이그렇게 드셨다고...
    부자집도 마찬가지임... 우리가 좋아하는 국밥 비빔밥은 보통 시장거리에서 차리지 않고 바삐먹는 음식이었다고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나이가 있는분들은 초대받은 자리에서 밥을국에 말아서 또는 비벼서먹는것을 금했다고 들었어요ㅡ

  • @user-kp3hw1nu4b
    @user-kp3hw1nu4b Год назад +3

    02:44 물에다가 밥을 먹어서라도 ==> 물에다가 밥을 말아서라도
    대사 오류에 자막 오류가 났네요

  • @hckim8670
    @hckim8670 Год назад +10

    일본에서 음식 안남깁니다. 중국이 남겨야 하죠. 그리고 둘다 일상적 식사가 아니라 손님초대시..일본은 남기면 맛없었다 생각하고 중국은 다 먹으먼 부족하게 차렸다 생각한다고 하죠.

  • @troika4430
    @troika4430 Год назад +7

    고증 등 더 세밀히 살펴보시고 만들면 더 유익하지 않을까요 ㅎ

  • @aksjen
    @aksjen Год назад +4

    지금도 시골에서 밭일하면 밥도많이먹고 참도 식사전후로 3~4번먹음

  • @mun5828
    @mun5828 Год назад +14

    ㅎㅎㅎ 그렇게 오래 되지 않은 군대가기전 자원봉사 할때 (98년인데 오래된건가 ㅜㅜ)
    혼자 사는 어르신들 도와드리는 자원봉사
    할머니가 밥먹고 가라고 해서 밥을 얻어 먹은적이 있는데깜짝놀람
    그때 당시 국 그릇 크기 밥 그릇에 밥을 진짜로 고봉으로 주심
    (지금 우리집에서 쓰는 국 그릇 보다 더 큰...)
    반찬은 3가지는 확실히 넘었는데 기억이 안나네요
    웃긴건 거북하긴 했지만 어른이 주신거라 다 먹음
    (다 먹고서 더 먹을거냐고 물어보신게 레전드;;)
    지금으로 따지면 3끼정도 밥 양인데 어떻게 다 먹었었지

    • @andrewnathan629
      @andrewnathan629 Год назад +3

      제가 98년도에 태어났는데...

    • @gyeongdeog_777
      @gyeongdeog_777 Год назад

      98년도면 나 태어나기10년 전쯤인데..

  • @jksapporo
    @jksapporo Год назад +73

    일본에서는 밥을 싹싹 다 먹으면 나 배고프다 밥이 모자르다...라고 하는 썰이 퍼져있는데 일본도 밥 알 남기면 하늘에서 벌 받는다고 혼납니다. 이런 유명한 방송에서 낭설을 알려주는건 안될거 같아서 글 올려봅니다

    • @golden3314
      @golden3314 Год назад +10

      출처 나무위키인 유튜버인데 뭘 바람 ㅋㅋㅋㅋ

    • @uchan7593
      @uchan7593 Год назад +1

      그건 중국 아닙니까?

    • @user-yf9ch8vj8o
      @user-yf9ch8vj8o Год назад +12

      중국애들이 밥 남긴다 일부러... 많이 시키고 그걸 또 남겨.. 중국문화인듯.
      일본애들은 소박하게 먹고 깨끗하게 비운다.

    • @user-qv2qq2nh7z
      @user-qv2qq2nh7z Год назад +1

      일제땐 전쟁심화될때 군량으로 갖고간거지 일제 전체와 조선전체 따지고보면 조선 관아와 관리들 양반들 수탈이 훨씬컸죠
      그냥 100년지난 반일정신병 주입사관에 입각한걸 정설로 주장하는거뿐입니다

    • @user-if5zf1wx4y
      @user-if5zf1wx4y Год назад +3

      그거 중국의 손님 예절임
      중국도 매일 식사에서 밥 남기는 거 아니고 손님 왔을때 밥을 고봉밥으로 준다고 합니다
      그러면 손님은 밥을 일부러 남기는 거죠. 손님이 밥을 안 남긴다는 건 밥이 부족했다-> 손님대접에 소홀했다가 되서 식사대접자가 안절부절 못한다고 하더라고요.(중국어 선생님의 썰입니다)
      그래서 손님은 일부러 밥을 남기는게 예의라고 합니다

  • @k76106
    @k76106 Год назад +10

    70년대도 지역별로 보릿고개는 존재했었습니다 이시기 미국등에서 구호물자로 밀을 보내준적있었고 대개 동사무소나 교회등에서 배포해 수제비를 해먹었죠 그래서 당시 통반장 민방위대장등의 직함의 힘이 무시무시했습니다 교회에서도 구호품을 나눠준건 미국 장로교회 목장주들이 교회를 통해 구호품을 보내주기도 했기때문입니다 때문에 당시 종교에 상관없이 온마을이 구호품을 받기위해 예배를 드리기도 했죠

  • @Gimbal_King
    @Gimbal_King Год назад +25

    실제 드라마에서 보여지는 어처구니 없는 역사왜곡이 아니라 실제 서민들의 삶이 어땠는지에
    대한 영상을 올려주세요~~~ 진짜 고종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민비가 내가 조선의 국모다
    이런게 아니라 실제 민비의 행태와 고종의 행태를 정말 서민의 삶을 다뤄 주세요 ㅋㅋㅋ

    • @simhopp
      @simhopp 19 дней назад

      좌파 정권때, 반일 선동 하기 위해서, 민비를 반일 투사 인거 마냥 미화 한거죠.
      그런데, 민비를 영화, 연극, 드라마, 오페라 로 미화 해대니까, 궁민들이 민비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스스로들 알아보니, 민비의 악행을 알게 되고, 그래서 더이상 민비를 이용한 반일 선동이 먹혀들지 않으니,
      좌파들도 민비 이용하는걸 포기했죠.

  • @nowlyh
    @nowlyh Год назад +11

    2:47 이부분에서 음식을 싹 비우는게 예의인 국가는 한국과 일본이 동일합니다.
    말씀하시는것처럼 음식을 남게 먹어야 부족하지 않게 접대 했다며 예의로 치는것은 중국입니다.

  • @user-kb8yc5li2w
    @user-kb8yc5li2w Год назад +7

    조사 많이 하셧네요 잘 배워갑니다.

  • @manyongchoe7017
    @manyongchoe7017 Год назад +3

    도정안된 현미쌀 물에 엄청불려야하고
    밥짓기도 어려움 설익을수있어서
    제대로된 현미밥은 구수한맛이 있고

  • @chakagesalja99
    @chakagesalja99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6

    원래 한국의 식사는 언제나 독상이었음
    겸상은 가축을잡아 고기를 구워먹거나 사냥인타 농사,어업때 뿐이었고 일반적인 식사는
    신분과 관계없이 겸상을 요구하는것은 인간성에 대한 모독으로 받아들일 정도였음
    가족이 다 같이 밥먹는 식사는 6.25전쟁 이후 부터임

  • @user-nw2gf9dn3t
    @user-nw2gf9dn3t Год назад +15

    고종은 뭘 잘한다고 12첩 반상에, 커피에, 식혜까지 먹었을까?.. 그게 목구멍으로 잘도 넘어갔을까?.. 아버지 내쫓고, 와이프 처참하게 난도질 당해 죽을때, 아무것도 못하고 도망친 사람이 먹기는 잘 먹고 살았네..

    • @shk3245
      @shk3245 7 месяцев назад

      명성황후는 악녀로 많이 알려져있습니다 드라마 미화의 대표적 사례

    • @simhopp
      @simhopp 19 дней назад

      @@shk3245 좌파 정권때, 반일 선동 하기 위해서, 민비를 반일 투사 인거 마냥 미화 한거죠.
      그런데, 민비를 영화, 연극, 드라마, 오페라 로 미화 해대니까, 궁민들이 민비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스스로들 알아보니, 민비의 악행을 알게 되고, 그래서 더이상 민비를 이용한 반일 선동이 먹혀들지 않으니,
      좌파들도 민비 이용하는걸 포기했죠.

  • @andrewnathan629
    @andrewnathan629 Год назад +2

    정 1품이 1년에 2번씩 1만4천kg의 쌀을 받았을 때 현재의 가치로 환산했을 때
    현재 쌀 한가마80kg 당 22만원정도며 이것을 1만4천kg을 금전적인 가치로 환산하면 3850만원이 된다
    1년에 2번씩 받았으니 정1품의 연봉은 현재기준 세후 실수령으로 7700만원정도로 예상됨
    다만 저 당시 쌀 한가마니의 가치는 현재보다 더 높았기에 연봉 7700보다 더 높았다고 볼 수 있음 어지간한 양반자제들만 쌀밥을 먹을 수 있었으니 쌀이 거의 금값이던 시대

    • @user-zx9zn3zj9l
      @user-zx9zn3zj9l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근데 고려시대 종9품이 조선시대 정1품보다 연봉이 더 높았습니다

  • @user-sky..
    @user-sky.. Год назад +3

    고봉밥에 풋고추 된장 김장김치만 잇어도 뚝딱이죠?

  • @yicandy818
    @yicandy818 Месяц назад +1

    자고로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은
    보릿고개 따윈 몰랐다는.
    내륙지방 사람들은
    보릿고개 때 허멀건한 버짐이 온 몸을 덮고 삐쩍 말라
    싸지른 똥도 볼품 없었지만
    바닷가 사람들은 피둥피둥 번지르르했다는 울 할머니 말씀.
    살아 계신다면 지금 115세

  • @TV-bp7zm
    @TV-bp7zm Год назад +4

    유익하네요!

  • @user-kt1tx6qy8f
    @user-kt1tx6qy8f Год назад +10

    좌식 문화(책상다리)가 전통적인 한국 문화이긴 하지만 의학적 관점으로 봤을땐 다리의 모양을 불균형 적으로 만들어 좋은 문화라 할수 없음 오다리가 되거나 다리가 짧아진 것도 좌식 문화의 영향이 있음

  • @seung-hoonlee6204
    @seung-hoonlee6204 Год назад +17

    지금은 농사기술이 첨단화되어서 쌀의 생산량이 엄청 늘어나서 그냥 국민주식이 되어있지만..
    조선시대~1900년대 중반쯤까지는
    쌀자체가 곡식류중에서는 화폐적가치를 할수있을만큼 비싼 곡식이었던걸로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생산하기가 어렵고 까다로운 곡식이었던것 같습니다.
    그래서 서민층의 주민들이 쌀을 제외한 나머지의 농작물을 주식으로 삼기위해 재배 및 생산이 용이하면서도 저렴한 곡식류나 채소와 과일을 생산해서 섭취해온것 같습니다.

    • @user-iv1yx5vy6v
      @user-iv1yx5vy6v Год назад +4

      통일벼가 나오면서 쌀생산량이 는거 같아요

    • @user-vo5ur7pr9g
      @user-vo5ur7pr9g Год назад +3

      조선시대엔 단위 면적당 쌀생산량이 현재의 3분의 1도 안돼었답니다.

    • @user-iv1yx5vy6v
      @user-iv1yx5vy6v Год назад +1

      @@user-vo5ur7pr9g 그때는 모심기도 안하고 직파법으로 경작한걸로

    • @user-yr4kq1rd7d
      @user-yr4kq1rd7d Год назад +1

      몽고시대에는 모든 국가들이 교초라는 통일화폐를 썼습니다 그런데 몽고가 망하면서 교초가 0원이 되버렸죠, 지금으로 치면 달러가 순식간에 휴지가 된겁니다
      이렇게 되면 현물 가지고 있는 놈들이 장땡이겠죠?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일본도 경제위기로 은행에서 0하나빼는 정책을 펴는 바람에 지금도 은행에 저금을 안하고 현금 결제가 주류를 이루죠
      자 조선은 그럼 어떻게 했을까요? 조선초 교초를 대체할 화폐개혁을 단행했지만 전재선이 0원이 되는 경험을 한 조선인들은 화폐쓰기를 거부합니다
      그래서 현물거래가 주를 이루게 되고 그 중 가장 흔하면서 가장 필요한 현물이 화폐를 대신하게 되었지요. 그게 쌀입니다. 쌀이 비싸서 그런게 아니구요
      그럼 명나라는? 왜는? 그럴 수 있는데
      명은 제국으로 우리뿐만 아니라 수많은 나라를 상대해야 했기에 교초0원이라는 위기를 빨리 극복합니다. 그리고 왜는 전국시대인데다 몽고 지배하에 없었기 때문에 그냥 지갈길 갔습니다
      그런데 조선은... 정말 운이 없었어요 여진은 만주에서 국가를 세우지 못하고 부족생활을 했고, 왜는 전국시대라, 실제 조선이 거래할 수 있는 나라가 명정도밖에 없었는데 이놈들이 공무역을 해서 화폐가 민간에 파고 들수가없었죠
      게다가 조선은 세금을 돈으로 받는게 아니라 노동력으로 받았는데 조선이 화폐혁을 추진하면서도 교초 0원에 대한 충격을 상쇄하기 위해 노력, 결국 화폐의 필요성이 줄어들게 만든거죠
      국내사정에 외교사정까지 이러니 조선은 점점 더 물물교환국가가 되어갑니다

    • @SeaKing_Bonobono
      @SeaKing_Bonobono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생산하기 어렵고 까다로웠으면 진작에 다른 작물로 갈아탔지 쌀 생산력 자체는 어마어마합니다. 당장 님들 조선 개ㅈ밥으로 보는 경향이 강한데 세계 순위로 보면 조선이 중국 다음 세계 2위의 국력일때도 있고 암만 양란 겪었어도 5위 밑으로 떨어진적이 없음. 더욱이 가난하고 굶주리는 백성 자체가 그냥 미디어의 산물입니다. 조선 백성들 잘먹고 잘살았습니다;;; 당장 조세수취율이 현저히 낮아서 세금 낼거 다 내도 먹을 쌀 많았고 삼정의 문란을 위시로한 조선 후기의 혼란상때도 탐관오리들이 뜯어가도 오히려 일본보다 훨씬 낮았음.

  • @adrianobonucci415
    @adrianobonucci415 Год назад +3

    배우자가 일본인이라 일본에 사는데 일본사람들 쌀 한톨도 안 남기고 설겆이 한것처럼 깨끗하게 먹어요. 오히려 한국사람인 내가 밥톨 남기고 국물자국 남기고 드럽게 먹지. 잘못된 정보입니다

    • @jjiille
      @jjiille Год назад +4

      저도 일본 살고 있는데 이거 핵 공감 합니다 이런 쓰레기 유튜브 채널로 잘못된 정보 퍼지는거 화나네요

  • @Kminjun
    @Kminjun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4

    일제시대에 그렇게 수탈당했다는데 일제30년만에 조선인구가 2배 늘음

    • @user-bf6th9lr3y
      @user-bf6th9lr3y 8 месяцев назад +5

      일제에 대한 기록이 왜곡된게 많아요. 노비등 신분제도 없어지고, 교육시키고 일하면 임금주고, 전염병의 온상인 오물로 뒤덮힌 길거리 싹다 상하수도 공사하고. 물론 일본인이 건너와서 살려면 그렇게 해야 겠지만. 쌀수탈등도 왜곡되었다고 봐요. 물론 태평양 전쟁시엔 그렇게 했겠지요. 강제 징집하고. 일본내에서도 그리 했고.

  • @Velvet_NyamNyam
    @Velvet_NyamNyam Год назад +6

    음식을 남기는건 일본이 아니라 중국의 문화입니다.

  • @musico119
    @musico119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예전에 우리는 하루 한끼 정도 먹던 민족임.. 고로 짜게 먹어도 토달 나트륨 양이 그렇게 많지 않았음. 그래서 1일 1식 먹는 사람에게는 젓갈, 국등을 먹어도 나트륨 과잉이 아닌데 3끼,를 다 먹으니 과잉이 되고 고혈압을 유발 하는 것임.

  • @user-gu4kv7zl3o
    @user-gu4kv7zl3o Год назад +7

    지금이야 잡곡밥이 건강식이지만, 몇 십년 전까지만 해도 잡곡밥은 익숙하지 않는 이상
    차마 목구멍으로 못 넘길 정도였어요. 크고 둥근 보리가 50%이고 나머지는 기장, 조, 콩... 등이었는데,
    미끌미끌한 보리가 돼지비계처럼 비위와 목젓을 자극하면서 건드고...
    그리고 20%이상을 차지하는 기장은 까칠까칠해서 보리의 느낌과 충돌을 일으키고... 사실상 걍 보리밥....

    • @보르그랜드-Bolgland
      @보르그랜드-Bolgland Год назад

      지금은 도정기술이 발달해 쌀밥이 더 흔하지만 그당시에는 아니었죠

  • @wooridog
    @wooridog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참.. 몰라도 너무 모른다.. 흰쌀이 무슨 조선시대에 있었다고…. 그리고 새참 참 이런거 기본인데 뭐 점심도 못묵는다고…. 왜들 이러세요? 우리역사 좀 제대로 알고 만듭시다. 조선 일부 시대만 알고 전체는 안보는 역사관으로 이런 황당한 걸 올리진 마셨으면 ..

  • @user-cg2dx3rf8b
    @user-cg2dx3rf8b 7 месяцев назад +1

    5:10 식!탁! ㅋㅋㅋㅋ 웃기네

  • @user-rp7nh1be7k
    @user-rp7nh1be7k Год назад +1

    저의 어머님은 비빔밥을 요리해 주신적이 한번도 없었어요 항상 국밥에 찬이 었습니다. 여러분들이 말씀하시는데 비빔밥은 아녀자들이나 아랫사람들이 부엌에서 바삐먹은 음식이였답니다.
    그런데 생활이 변해 저는 커가면서 비빔밥을 자주해 먹었습니다. 고추장 비빔밥이 아니라 된장비빔밥을요 비빔밥은 격식이 없는 즉흥적인 요린데 이제 이 비빔밥에 격식이 생겨 건강식으로
    세계인의 입맛을 땅기고 있어요 비빔은 화합과 평화를 차별이 없는 평등을 이야기하는 음식입니다. 환경과 자연을 상징하는 비빔밥

  • @gaweekin524
    @gaweekin524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3

    조선시대는 음식에 고추 거의 없었음... 16세기에 고추 들어왔어도 대중화된건 1950년대 한국전쟁 이후임

  • @user-xi7qq9fl3s
    @user-xi7qq9fl3s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1

    고봉밥ᆢ
    조상님들의 참으로 고되고 힘든 삶의 애환이 담긴 세월의 흔적이겠지요!!

  • @user-vt1hj7nh7f
    @user-vt1hj7nh7f Год назад +1

    양반다리보다는 '올방자' 라고 했는데 반좌가 와전된 것으로 볼 수 있겠군요.

  • @Si-kwanKim
    @Si-kwanKim 7 месяцев назад +1

    만약 조선이 패망하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교육제도는 서당, 머리카락은 상투, 머리에는 이가 득실, 양반과 상놈으로 구분, 60%는 종, 보리밥으로 겨우 연명,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의 비참한 삶. 지금 대한민국은 천국!

    • @simhopp
      @simhopp 19 дней назад

      상상할 필요도 없어. 북조선 이 바로 현대화된 조선이야.
      이씨 왕실 = 김씨 왕실. 양반 = 고급당간부, 중인 = 일반당원, 평민 = 비당원, 천민 = 반동분자.
      외국과 담 쌓은 쇄국정책도 똑같고. 유교성리학 = 주체사상, 툭하면 흉년으로 대량 아사, 피튀기는 궁중혈투.

  • @paull77ful
    @paull77ful Год назад +31

    쌀농사를 많이 지었는데 대부분 평민들이 쌀밥을 거의 못먹었다는건 아니겠죠. 평야지대와 산간지역 차이가 많았을거구요. 김제평야 김해평야 이런곳은 쌀밥먹었겠죠.

    • @shotgun2992
      @shotgun2992 Год назад +7

      대부분 소작농이었고.. 납세면제 군역면제의 특권을 지닌 양반 때문에ㅜㅜㅜㅜ 서양이었으면 바로 머스킷 들고 일어났을텐데

    • @nyx2679
      @nyx2679 Год назад +12

      양반은 백미 일반 농민은 현미를 많이 먹었습니다(조선 후기에 기록을 보변 양반이든 상민이든 백미를 좋아해 백미만 먹는다고 한탄한 기사도 있습니다.). 아예 쌀밥을 먹지 않은 것은 아니고 쌀과 잡곡을 넣어 먹었죠.. 지역에 따라서 삼남지방(경상 충청 전라)은 쌀 농사가 보편적이라서 쌀밥을 먹었고 경기 이북은 논농사 보다 밭 작물을 길러서 조밥을 먹었다고 합니다. 다만 황해도 평안도 서안엔 쌀농사를 했다고 하니 나름 융통성이 있었을 것입니다. 황해도와 평안도에선 공납미를 받지 않았는데 그긴 사행로라서 사신들을 대접해야 했기 때문이고 함경도는 지역이 척박해 도리어 삼남지방의 쌀을 원조해 주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다만 관동(강원도)과 관북(함경도)지방에서 조밥을 먹었다고 했으니 지역차가 심했습니다. ( 조선 중후기 기후대로 보면 쌀의 북방 한계선은 강릉 부근입니다. 만주(소헌세자가 만주에서 쌀농사를 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나 연해주 중앙아시아 까지 현재는 쌀농사를 짓고 있는데 과거 조선민들의 이주지역과 겹치고 만주의 대규모 벼농사는 조선후기 농민들의 도강으로 이뤄진 것입니다.-> 물론 모두 조선 농민들의 공이 아니라 18세기말 부터 소빙하기(소빙기)가 끝이 나고 날씨가 따뜻해졌어 벼농사 한계선이 올라간 것도 큰몫을 했습니다.) 공납미도 삼남지방에서 주로 시행되었고 경기 삼남지방에선 노비들도 백중날은 머슴날이 이라고 해서 주인이 노비들에게 고기와 쌀밥(백미)을 내어와 배불리 먹였습니다. 백중날은 불교적 명절이기도 했지만 농번기의 중간(대체로 모내기가 끝이나고 벼가 자라는 시기)이라 나름 노비에게 보상 하기 위해서 입니다. 당시 쌀을 공납미로 내기에 쌀소비량은 의외로 많았고 조선 시대의 식사는 물론 현대에선 소박하겠지만 당 시대의 동아시아의 상차림에 비해서 질이 떨어지진 않았습니다. 근대 이전엔 분명 보릿고개가 있었습니다. 당시 중국도 회수(화남)이남 이북(화북)은 문화권이 달랐다고 할 정도로 회수 이북은 밀 이남은 쌀문화권 이었죠..

    • @nyx2679
      @nyx2679 Год назад +8

      벼는 장기가 보관을 하지 못하는 작물입니다. 현대도 대량의 저온창고가 아니면 쌀이나 나락을 대량으로 보관을 못했기에 당시엔 1~2년분만 비축하고 다 그해에 난 나락은 다 사용했습니다. 사실 곡물 저장이라는 개념과 곡물 창고는 오래된 것이나 현대처럼 대량 보관하는 법은 현대에나 가능 했다는 것이라.. 당시 소출 되는 곡식은 그해에 다 소빌 했습니다. 우리나라만 아니라 전세계는 근대 이전엔 곡물을 대량 저장하는 방법이 없기에 기후에 따라서 기근과 풍년이 번갈아 오는 것은 조선만의 특유의 사건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일어난 것입니다.

    • @user-cp6mf7jv7f
      @user-cp6mf7jv7f Год назад

      @@shotgun2992 ㅋㅋ무식한님이 여기저기 글만 싸지르네 서양이야말로 소작농들이 많았고 그이유는 봉건시대가 상당히 길어서다 공작백작즉 지방세력들이 세력을 형성했던것ㅋㅋ무식아 프랑스혁명이 난건 대기근 즉 지구의 소빙하가 왔던시대이고 굶어죽으나 투쟁으로죽으나 이판사판이였던 시대에 일어난일이다ㅋㅋ

    • @user-lv8gy3mo6o
      @user-lv8gy3mo6o Год назад +3

      어부는 생선이 주식인줄 아나..

  • @user-mx5es2mq2t
    @user-mx5es2mq2t Год назад +3

    자려는데...배고파지네요

  • @Anytime4771-m1g
    @Anytime4771-m1g 24 дня назад

    진짜 구라안치고..
    형이 유딩때부터 초등학교 고학년까지만해도
    할아버지 할머님들이랑 함께 식사를 할적에는
    그 행위 자체가 굉장히 신성한 것이었다.
    밥상머리에서 Ooooooo 하면 안된다
    밥먹을때에는 개도 안건드린다 등등
    밥상머리에 관련된 속담이 왜 우리 민족에 많았을까??
    이런 의구심을 갖을 수 있었던 사람은

  • @hotwo7021
    @hotwo7021 Год назад +1

    1:03 자막이랑 대사랑 오타났어요

  • @user-bt7cj3pt1u
    @user-bt7cj3pt1u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내가 듣기로는 말 그대로 잡곡밥이라는 것은 지역의 사정에 따라 먹는 것이 다양해 한 말로 꼭 집어 말하기도 어렵다고 했다. 전형적인 잡곡밥의 특징은 쌀밥 보다는 찰기가 없었던 것이 특징이었고 특히 잡곡밥이 식었을 경우는 숟가락으로 떠서 숨을 잘 못 쉬면 날라가는 것도 예사였다고 했다. 그렇게 먼 옛날도 아니었지만 1960년대 초 내가 경북 석포리 넘어 화전민 촌에서 하룻밤을 묵었는데 밥상이 들어 오는데 깜짝 놀랬던 적이 있다. 물론 잡곡밥이었지만 밥 그릇도 작지 않았지만 밥을 어떻게나 고봉으로 높이 올렸던지 그 양도 양이었지만 그렇게 높이 담아 올린 재주가 더 용해 보였다. 처음에는 이렇게 많은 것을 어떻게 다 먹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푸석 푸석했던 그 밥그릇은 별로 어렵지 않게 다 비워졌고 그런 후에는 조금은 더 부족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해 나는 그 많은 양을 먹었는데도 이러하니 역시 잡곡밥으로 하루 두끼를 먹고 죽도록 고된 노동을 한 옛 사람들은 어떠했으랴 싶은 생각이 들었다.

  • @anhk-gs2mw
    @anhk-gs2mw 9 месяцев назад +3

    쇼파 와 닿네요
    저희집은 쇼파엔 개가 둘어 누워있고 사람은 거의 등받이용 ㅋㅋ

  • @user-dv4dp3pn5v
    @user-dv4dp3pn5v Год назад +1

    03:44 6할이면 60%인데 맞나요?

  • @user-su6zo3lt2w
    @user-su6zo3lt2w Год назад +4

    그러니까 잡곡밥 이고 밥말고는 영양소 를 충분히 공급할 다른게 없어서 많이먹엇다는 거군요

  • @lgwin
    @lgwin Год назад +1

    우리 작은아버지 58년생이다 홍천내면에 사셨고 작은 아버지 어려서도 쌀밥을 못 드셨다고 한다 조선시대까지 갈 필요가 없다

  • @user-hw8rh6jf2t
    @user-hw8rh6jf2t 9 месяцев назад +1

    밥을 다 비우면 대접이 모자라다고 여겨지는것은 중국입니다.
    그래서 손님대접할때 상다리 휘어지게 차리고 손님도 일부러 조금 남긴다고 합니다

  • @sjo7734
    @sjo7734 Год назад

    배경 브금이 뭐죵????

  • @ohmi8762
    @ohmi8762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1

    반상의 높이는 키를 기준으로 한것입니다.
    온돌에 온도가 올라오도록 만든다는 상식적으로도 말도 안된소리지요.
    무슨 보온 해야면서 먹겠습니까??

  • @user-du4bd3bk6t
    @user-du4bd3bk6t 7 месяцев назад +2

    농사일 해보면 먹는양이 확 늘어남 진짜 ㅈ빠지게 힘들어서 먹는양이 한 3~4배 정도 많이먹게됨

  • @san55song85
    @san55song85 Год назад +10

    우리 옛조상이 저정도의 밥을 먹는것도대단한데 지금이 많이 줄었다는 것을 처음 알았네요

    • @user-cx8gk3ng2r
      @user-cx8gk3ng2r Год назад +1

      문제는 밥이 쌀이 아닌 잡곡+보리밥 이라 크기는 커 보여도 칼로리가 높지 않습니다
      거기다 반찬은 전부 풀떼기 뿐이라 더욱 그렇고요 거기에 조선시대 노동량을 생각하면...

    • @inyeobseo9369
      @inyeobseo9369 Год назад

      공기밥 이라는 70년대 박정희가 개발한 밥의 양이 표준이 되어 쌀의 소비를 줄이자는 강제적 발상입니다. 지금은 쌀이 남아 도는데도 공기밥 하나를 남기는 분이 많습니다. 밥의 양이 적어진 것은 교통의 발달로 운동 부족 때문입니다. 60년대만 해도 하루 4키로 걷는 것은 보통이고 비만, 지방간, 당뇨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밥을 적게 먹고도 걷기운동을 안하니 성인병, 당뇨가 늘어납니다.

    • @user-cx8gk3ng2r
      @user-cx8gk3ng2r Год назад

      @@inyeobseo9369 운동보다는 그만큼 다양한 먹을거리가 많아진거죠
      70년대 까지만 해도 제주도는 쌀을 매일 못먹었어요
      150년 전만 해도 흰쌀밥은 부자집이나 먹는 것이었고요
      요즘은 치킨 탕수육이 당연한거지만 80년대만 해도 가볍게 먹긴 비싼 음식이었지요

    • @보르그랜드-Bolgland
      @보르그랜드-Bolgland Год назад

      @@user-cx8gk3ng2r 그당시에는 밥과 약간의 반찬 외에는 먹을것이 없었어요

    • @simhopp
      @simhopp 19 дней назад

      @@inyeobseo9369 그당시엔 밥하고 김치 하고 식물성 반찬이 다 였지.
      지금은 매끼 열량 높은 고기 반찬과 같이 먹으니, 탄수화물 덩어리인 쌀을 그때 처럼 많이 않먹는거지. 육체 노동 하는 사람도 줄어들었고.
      잘먹고 잘살게 만들은 박정희 덕분이니 고마운줄 알아야지.

  • @user-ro3ok2in4e
    @user-ro3ok2in4e Год назад +1

    10첩 반상도 요즘 흔히 보이는데 현대에 생긴것일까요?

  • @agm1144
    @agm1144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조선시대엔 현미만 먹었나?
    No. 방아에 여러번 찍어 도정하는 방법은 조선시대에도 있었서 백마를 만들어 먹었음. 다만 백미는 도정에 많은 수고를 했기 때문에 그만큼 비싸고 귀한 쌀이였고 왕족이나 양반 고위층이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이였음
    2. 조선시대 주식은 쌀이 아니다?
    No. 모든 기록을 다 보이도, 주요 농작물은 '쌀'이지 다른 곡류가 아니였음. 쌀농사를 주로 짓는데 쌀이 주식이 아닐 수가 없음. 다만 가난한 하층민이 비싼 쌀만으로 배불리 먹을 수 없었기 때문에 값싼 잡곡이나 나물 등을 섞어 먹었던거 뿐임.

  • @mochalatte04
    @mochalatte04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저는 70년대 후반, 아빠는 48년생, 고향은 태안, 도내리, 어릴때 산을 두개씩 넘어 다니며 학교를 다니셨다는 말을 하셨음. 학교 가면서 이미 배가고프고 발도아팠다 하시는데, 저는 거짓말이라고, 무슨 학교를 산을 두개씩 넘어 다니냐고,깔깔댔는데, 산넘어 학교 다녀오면, 배가 터지게 밥을 먹고 기운을 차렸었단 말씀이 문득 생각납니다. 학교만 다녀와도 하루치 기운을 다 써야만 했던 그때의 생활이 과연 어땠을까. ㅜ

  • @user-fl8xr3mx6o
    @user-fl8xr3mx6o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저도 식사량이 많은편인데... 그만큼 움직이면 마른체형이 되더군요.

  • @user-ou8qf3xn5p
    @user-ou8qf3xn5p Год назад +3

    하지만 양반다리는 몸에 좋지 않다는거잖슴

  • @sjmtech7572
    @sjmtech7572 Год назад +1

    아따 국밥 한그릇 땡기네

  • @user-eh9zj4nw1w
    @user-eh9zj4nw1w Год назад +19

    그 당시 반찬들은 지금보다 훨씬 맛은 있었어요.
    다만 간이 조금 짠 편이었고,
    양이 넉넉하지는 않았습니다.
    밥은 많은데 반찬의 양이 넉넉하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더욱 간을 짜게 했지요.
    그래도 지금 우리가 먹는 한식의 반찬 대부분이
    그때가 훨씬 맛이 있었어요.

    • @user-pb5sy9ux6q
      @user-pb5sy9ux6q Год назад +6

      제생각입니다만
      제 고향 충북 칠십년대 산골
      맞을 낼수 있는것은 장류 외에는 없서습니다 멸치 다시마 엠에스지
      나이 들어 이십대 후반 고향 가서 할머니가 해주시는거 먹어 보니 어릴때 그렇게 맞있서먹든게 맞이 업서습니다 아 그때서야 어릴때는 배가 고파서 맞이 있서든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기는 못먹는거고 맞을 낼수 있는게 없서니까요
      지금은 각종 다시 재료 msg 향신료 고기류
      현대인들은 국에 채소와 간장 만 너어 먹는다 면 몿먹을겁니다

    • @user-tf3jo1io4z
      @user-tf3jo1io4z Год назад +4

      뭔 지금보다맛있었데 재료가없는데

    • @보르그랜드-Bolgland
      @보르그랜드-Bolgland Год назад

      지금 우리들이 먹는 식재료와 그당시때 먹었던 식재료를 비교할수는 없습니다
      당시에 무슨 자동차,기차,트럭,비행기같은게 있었겠습니까?
      운송업이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 지역적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지역별로 다른 밥과 반찬을 먹었죠

    • @보르그랜드-Bolgland
      @보르그랜드-Bolgland Год назад +4

      @@user-tf3jo1io4z 지금 우리들이 먹는 식재료가 조선시대 임금이 먹었던 식재료보다 수천배 좋다고 생각하시면 납득이 가실 겁니다

  • @user-uo4fw8oc7h
    @user-uo4fw8oc7h 2 месяца назад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 (1917년생)의 말씀에 의하면 중조 할머니 고조 할머니가 살아 계실때는 밥은 안 굶었음. 일제의 태평양 전쟁 이후 밥을 굶게 됨.수탈로 인해서 조선시대에는 농민 장려 정책으로 상업을 천시함. 농민들을 위해서 (상업이 증대 되면 밥굶은 농민들이 생기니. 가격으로 죽는자와 사는자가 생기니) 일제시대 상업이 부흥하니 밥굶은 농민들이 생기고 한국의 가난한 자들이 밥을 굶게 됨. 조선시대가 어떻게 보면 요즘 말하는 사회주의 국가 같은 느낌 탐관 오리도 있었지만 일제 시대보다는.

  • @user-iy1ed4pe7m
    @user-iy1ed4pe7m 4 дня назад

    후라이드반 양념반이 괜히 생긴게 아니었군요

  • @Goryeo_Emperor
    @Goryeo_Emperor Год назад +5

    역사돋보기님은 한국사가 가장 잘어울리시지만 서양사도 해주세요 전 벨라루스 역사가 궁금하네요

    • @user-ci2vv7fd5n
      @user-ci2vv7fd5n Год назад +3

      궁금하면 직접 찾아보고 공부하던가

  • @user-yy9js8md8t
    @user-yy9js8md8t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3

    국민들은. 소나무껍질로. 연명하는대. 12첩반상이라 ㅡ예나 오늘이나. 국민을 생각하는 정치하는놈들은. 없었구나 ㅡ생각하고. 생각해본다

  • @admandburke.
    @admandburke. Год назад +2

    36년 비자발적 근대화학습시기
    쌀 수출입니다

  • @k802k
    @k802k Год назад

    1:03 이백에서 삼십마지기는 뭡니까?

  • @user-yf2mu9fz9b
    @user-yf2mu9fz9b 3 месяца назад +1

    옜날에는 지금과같이 정미소가 없어서 하얀쌀도백미가 아니였겠지

  • @user-zu6hd5sk8f
    @user-zu6hd5sk8f 2 месяца назад

    6.23 웃기네요

  • @user-uu9le4le9b
    @user-uu9le4le9b Год назад +3

    햇반이 200-210g이니 한끼에 햇반 세개이상 먹은셈

  • @user-rp1vq1qo2h
    @user-rp1vq1qo2h 2 дня назад

    01:05 200에서 30마지기 오타

  • @father_job
    @father_job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이쪽은 일본에 쌀을 수탈 당해서 조선인이 먹을게 없었다고 하고... 저쪽은 일본에 조선쌀이 수출되지 않아 쌀값이 떨어져 조선인이 힘들다고 하고... 일본 신문엔 조선쌀 수입을 반대하는 일본인들의 기사가 있던데... 어떤게 맞는 역사인지;;

  • @user-js6yk8pz7v
    @user-js6yk8pz7v Год назад

    70년대 어려서 고봉으로 밥을 먹던 기억이 있는데.. 먹고 얼마 있으면 배가 고파.. 쌀이 조금 들어간 보리밥인데 까클거리니 간장,고추장에 비비거나 물에 말아 먹으니 배고퍼. 반찬은 김치

  • @BCA-lo3gc
    @BCA-lo3gc Год назад +2

    쌀 품질 자체도 낮아서
    찰기나 열량도 옛날이 더 낮았겠죠

  • @musico119
    @musico119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인간은 태생적으로 탄수화물을 적게 먹어야 하는 존재. 농사로 탄수화물을 많이 먹는 시대로 접어 들며 각종 질별에 시달림. 단백질, 지방, 채소를 먹어야 건강해 지는 원인이 지금 밝혀짐.

  • @user-q389
    @user-q389 Год назад +4

    기근이 있었을당시 어촌마을 사람들은 어땠는지요? 어류가 지금보다 풍족했을텐데

    • @user-bz7vz1ci4i
      @user-bz7vz1ci4i Год назад +2

      산골 사는 사람들 굶어죽을때 바닷가 사는 사람들 입엔 뭐라도 들어갔다 하져

    • @gordon-chang
      @gordon-chang Год назад +2

      70년대도 한국이 풍족하지는 않아서 보리등 잡곡을 섞어 먹었는데 인천만 해도 꽃게 조기등 지금은 비싼 해산물도 쉽게 구해먹었습니다.
      할아버지가 연안부두에서 꽃게를 옛날 쌀포대 80kg짜리에 반씩채워 가져오시곤 하셨는데
      힘이 장사였죠 ㅋㅋㅋㅋ

    • @gordon-chang
      @gordon-chang Год назад +2

      육고기는 자주 접하기 힘들였는데 생선은 거의 매일 먹었기 때문에 조기는 정말 물릴정도 였는데 할머니가 해주신 간장게장이 생각나네요

    • @Cro-cop
      @Cro-cop Год назад +1

      @@gordon-chang 저는 80년대 초,중반에 시골 살 때 쌀밥 나오는 날은 환호했던 기억이 있네요.
      거의 꽁보리밥이나 보리 섞은 쌀밥만 먹어서 ㅎ 80년대 후반부터는 쌀밥 실컷 먹기 시작했구요 ㅋㅋ

  • @user-rq1rf2bf5j
    @user-rq1rf2bf5j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3

    일본도 남기면 안됩니다

  • @user-tp8qy1oo2g
    @user-tp8qy1oo2g 2 месяца назад

    나는.지금.60이넘어지많
    죽을때까지.보리밥은
    않먹을줄.알앗는데.지금은.건강식으로들.먹는군요.보리밥많.먹을수있으면.그나마.먹고살많한.집이고.여기에.겨울에는.무밥.봄에는.산들나물..여름
    감자밥.가을쌀조금.보리
    여기다.반찬은.밭작물아니면.도토리.상수리.묵
    보리쌀보다.부가적인게
    양이더많앗지요

  • @navyan7935
    @navyan7935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생각해 보셔야 하는 게 현대인들이 밥만 적게 먹는 거지 식사량이 총합을 보면 적게 먹지 않습니다. 조선시대에는 반찬을 놓고 먹는 것이 김치 간장등 현대는 젓가락이 갈까말까한 반찬을 두고 먹었습니다. 배가 부르려면 밥을 많이 먹을 수 밖에 없는 거죠. 고기 반찬 당연히 없습니다. 두부 없습니다 계란 없습니다. 고기 생선 두부 이것들도 배를 채울 수 있는 부피를 갖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밥만 먹어서 배가 불러야 되는 것이죠 그럼 역시 밥을 많이 먹을 수 밖에 없습니다

  • @whj4109
    @whj4109 9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수탈당한게 아니라 수출로 더많이 생산해 식량이 늘었고 그로인한 일본 본토에 쌀가격이 폭락해 반발이 심했다고 하는데.....쌀가격을 안준게 아니니 수탈은 아니거 아닌가요? 쌀수출 더할려고 농사 열심히 지었다고도 합니다

  • @Badagaese
    @Badagaese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어릴때 남자들이 고봉밥 먹는것을 본 기억이 있어요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 시절에는 밥 외에 간식이란것이 없었고 농사일이 고되엇기 때문이 밥을 많이 먹지 않을수 없었을 것임니다
    고봉밥이란 그릇 위로 수북하게 담은 밥임니다 , 먹고 살기 힘들었던 시절이라 반찬도 김치 외에 간장이나 장아찌 두세가지였지요

    • @grx1988
      @grx1988 5 месяцев назад

      축산업이 발달될수록 곡류소비는 줄어들죠 북한은 1인당 필요한 쌀이 남한의 4배 입니다

  • @1244K
    @1244K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조선시대에는 일반 백성들은 꽁보리밥에 개구리 뱀 미꾸라지 잡아서 삶아서 소금찍어서 쉰 김치하고 먹었고..여름에 잔뜩잡아서 말려서 한겨울에도 먹었습니다...동네 부자집은 허구헌날 소 돼지 닭고기에 쌀밥만 먹어서 뚱뚱한 돼지형상이었습니다..

  • @bonghalee
    @bonghalee Год назад +2

    저희 아버지께서는 농담인지 진담인지 소반 앞에 양반다리를 하며 낮게 식사한 이유를 먹을 때마다 '감사인사'한다며 (반대로 일본사람들은 그릇을 들고 먹는다) 유교전통에 의한 것이라고 하셨는데, 생각나서 적어봅니다.

  • @kddddds
    @kddddds 5 месяцев назад

    쌀 보리 조 수수 이런 곡물 중에 단위면적당 생산량이 가장많은게 쌀이라는데 왜 쌀이 귀해서 잡곡밥을먹고 쌀은 부자들만 먹는거라는지 궁금해요

    • @user-ik7dd3cw6b
      @user-ik7dd3cw6b 5 месяцев назад

      쌀은 거의 내다 팔았어요. 시골 아는집 가보면 쌀팔아 가용돈 쓰고요..봄이 되기전 쌀이 떨어져 순 깡보리밥 먹더라구요. 보릿고개란 말이 사라진건 박정희 대통령때죠..또한 당시 쌀 수학량이 적었죠..통일벼가 나오고 수확량이 늘었구요..무튼 우리 할머니..어머니 세대가 고생 많았죠. 애들은 생긴대로 낳아 죄다 밥달라 입만 벌리고 있으니...그래서 요즘도 밥밥 한답니다

    • @gy-zj6dv
      @gy-zj6dv 3 месяца назад

      밭 면적에 비해 논 면적 훨씬 적었기 때문이죠

  • @user-ct3ki1lm6w
    @user-ct3ki1lm6w Год назад +2

    지금은 배가 불러서 버리는 음식 쓰레기 양이 엄청나지. 먹방 방송봐라. 음식에 대한 모욕이지. 개,돼지가 처먹듯이 먹는 것을 보는 인간들도 이해가 안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