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기록은 엄청나죠. 세종대왕이 인력을 사용해서 아날로그 종이 엑셀을 사용하셨다고.... 지방에서 올라온 세금품목들 종이에 항목별로 각각 적어서 마당에 펼쳐놓고 “날짜별로 내림차순해보게”, “날짜별로 소계 정리해두게”, “이번엔 품목별로 분류해보게”, “품목별로 소계 정리해두고” 이런식으로 아날로그 수동 엑셀 ㄷㄷㄷㄷ
실수로 누락하거나 계산착오시 퇴근불가. 그일을 매듭짓기까지 매일 야근에 주말특근에, ㅋㅋ 한번 출근하면 퇴근가능한날이 손에 꼽을정도. 아 물론 성군답게 밥은 잘먹이심. 것도 정1품 특제 고기반찬이 삼시세끼 내새 푸.짐.히. 거 그거 맛나게 들고 남은 정무를 이어서하게.(세종대왕 전언)
@@gustave7223 대구는 이미 조선후기부터 경상감영이 있어서 상주보다 잘나갔고, 지금이야 소백산맥에 조령이든 죽령이든 이화령이든 육십령이든 터널 뚫어버리고 고가 놓지만 그 당시에 무슨 상주를 감 ㅋㅋㅋ 아재들 할배들 떠드는 거 다 헛소리임. 경부선 놓을 때, 제일 만만한 추풍령으로 간거고 경부고속도로도 따라 간거임. 추풍령 구간 지금 같았으면 터널 뚫어서 직선으로 갈만한 구간이지만 그 당시에 기술이 없어서 고갯길을 타고 오름. 동시대 지은 구마고속도로도 마찬가지고 하다못해 평지에 지은 경인고속도로도 은근 고저차 있음.
@@촉법소년단-q1c 낭설은 무슨 낭설? 박정희가 상주로 내려고 했는데 지역 유림들이 반대해서 김천으로 간건 팩트인데~ 잘 모르면 말하지 마세요. 안동에 지역 지역 mbc, kbs도 원래 상주로 오려고 했고 예천에 있는 공군부대 및 공군비행장도 상주 오려고 했고 고속도로도 마찬가지고요. 상주는 전통적으로 신라때도 중요도시, 고려때도, 조선시대때도 마찬가지고 님이 대통령이라면 전통적으로 이름 있는 지역으로 고속도로 내려고 하겠습니까? 별 이름도 없는 지역으로 내려고 하겠습니까?
원레 옛부터 갱상도 지방은 골치 아푼 지방으로 향소부곡 천민 거주지로 지정한 지방 이였어요.. 멘날 반란만 일으켜서 그 갱상도 지방을 200년동안 과거를 금지시키고 정부 중요자리에 등용을 금지시킨 지방 이였지요..일제 해방후도 공산 빨갱이 폭동을 멘날 일으켜 그때 북한 빨갱이 박정희형 박상희도 우리군이 사살했고 그후도 멘날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등이 쿠테타로 우리국가 전복해 독재국가만 만든 골치아푼 지방임 현제도..
조선시대때 전라도(전주.나주)경상도(경주.상주)평안도(평양.안주)같이 8도의 이름을 가진 도시에서 반역이나 큰 범죄가 발생하면 도명을 바꿔버리곤 했습니다. 강원도란 이름도 강릉과 원주에서 큰 범죄와 역모가 발생해서 한때 도명이 원양도(원주.양양) 원춘도(춘천.원주) 강춘도(강릉.춘천)로 바뀌곤 했었죠
전주는 조선시대에 남한기준 3위의 도시였지만, 현재는 18위로 밀려남. (청주, 천안, 남양주, 화성한테 밀림.) 거기에 전주가 크질 못한이유가 호남선철도가 익산으로 빠져버린건 두고두고 후회할일인데, 당시 전주의 유지였던 박기순이 이미 측량까지 끝난시점에 와서 반대하였고, 총독부에서도 그 박기순을 이길수가 없었다함. 결국 당시 이리라는 동네로 부설되었는데, 그게 지금의 익산임. 호남선, 전라선의 분기역이 익산이 아닌 전주였으면 광주에도 꿀리진 않았을텐데, 전주는 참 뭐 들어온다면 무조건 반대부터함. 거기에 당시 호남선 철도는 조치원-공주-노성-금마-전주-금구-태인-정읍-광주루트로 가려던게 지금에 이른거. 덕분에 대전이 성장하게 된거고, 반대로 공주와 전주는 쇠퇴함.
당시 개성인구는 태조, 태종 대의 인구 이주 정책 및 차별(향후 100년간 과거시험 응시 금지, 과전 지급하지 않음)등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떠났습니다. 조선 초기에는 약8700여명입니다. 이들은 과거제에 응시도, 과전도 받지 못하니 강제적으로 상업에 종사해야했습니다. 사료에 따르면 개성의 군인, 양반 사대부들도 상업에 종사했다고 합니다. 조선 후기로 넘어가면서 상업이 발달하였고, 대청무역에서 인삼, 홍삼 등이 유행하면서 개성은 활기를 띄기 시작합니다. 이들을 개성송상이라고 하는데, 국제 무역의 한 축을 담당할만큼 성장하였습니다. 후에 개항기가 되면 8만여명에 달하는 상업도시가 됩니다.
대전은 일제시대에 떡상한 도시. 일제가 철도 놓으려고 할 때 다른 도시들은 지배층인 양반들이 철길 지나가는 게 불길하다며 반대. 하지만 대전은 양반들이 없었고 상민들이 양반들 땅에서 소작이나 하던 동네라서 큰 반대 없이 철길이 놓임. 덕분에 떡상.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청주나 충주가 교통요지가 되었을것임.
반대보다도 경제적인 이유가 컸겠죠 땅을 보상해줘야되는데 기존에 개발된 땅을 사는거보다 아무것도 없는 땅을 사는게 훨씬 저렴하기때문에 지금도 마찬가지의 이유로 떡상하듯 그 당시도 경제논리가 가장 큰 이유였겠죠 발전된 공주에 기찻길을 만드는거보다 아무것도 없는 대전에 하는게 훨씬 경제적이니
@@킹대주 그분들도 바보가 아니고 다들 알았어요....라?... 역사를 보면 조선시대 양반들은 그냥 우물안 개구리였던 것 같은데요. 공주니 청주니 충주니 자존심 엄청 쎈 양반동네라 "왜놈들이 놓는 철길이 관통한다고? 어림도 없다, 암! 암!!!" 했을 게 눈에 선합니다. 그래서 양반은 없고 상민들이 소작농으로 사는 대전으로 뚫린 것. 충주는 교통의 요지가 될 수 없다??? 하지만 충주는 예로부터 교통의 요지였습니다. 역사책 보면 삼국시대부터 치열한 쟁탈전이 있던 곳이죠.
충주는 국토개발에 정치,지역색 없이 발전되었다면 현재 대전급 지위를 가졌을 것으로 예상되는 수운뿐만 아니라 육로의 위치 상으로도 핵심 도시입니다. 경부 고속도로만 해도 서울과 부산을 직선으로 이었을때 월악산과 속리산 사이를 지나가는 도시로서 직선화에 아주 유리하며 좌우 상하로도 중심에 있죠
우선 경부선이 공사하면서 수운교통의 중요성이 줄어들고 철도교통이 대두되면서 충주시인구는 정체를 겪게 된것이 가장 크고 해방이후 1959년 이승만정권때 농업의 중요성때문에 비료공장을 크게 진적이 있엇지만 이농현상이 가속화되면서 농촌에서 도시로 빠져나가는 사람이 많았고 1980년도에 충주시 인구가 10만명.중원군이 10만명정도로 1995년에 통폐합 20만명이니까 거의 40년동안 인구수가 증가하지 못헸죠.... 옛날에는 세한미디어 시멘트공장 화학비료공장 그래도 어느정도 규모있는 공장이 있었으만 1985년 충주댐건설로 상수도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서 대규모공장이 떠나고 일자리가 그만큼 줄어듬에 따라 인구유출이 심한것이 많았죠....
@@정원희-f9v 충주시 인구를 늘릴려면 일자리확보가 가장 중요한거죠....일자리가 있어야 사람들이 몰리고 그리고 상권이 형성이 되니까요.. 1993년도까지 학교를 충주에서 다녀서 충주의 역사를 잘알죠... 옛날에는 교통이 수운으로 물자를 운송하는것이 많아서 남한강을 끼고 한양으로 가는것이 쉬웠고 주변에 산이 많아서 군사측면에서 방어하기 쉽고 그래서 번성했지만 철도가 운송의 중심지가 되면서 쇠퇴한것이 크니까요... 희망적인것은 그래도 여주를 통해서 서울로 연결이 되고 각종 고속도로가 생기면서 주덕이나 음성같은데는 공장이 대규모로 생기니까 어느정도 발전이 될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것은 삼성이나 sk 현대같은 굴지의 대기업이 들어오지않는한 인구증가는 한계에 도달할것 같아요...그렇지 않아도 저출산으로 인구가 점점 줄어드는 형국이라서.....
대전은 일제 강점기때 발달한 대표적인 도시 지금으로 보면 신도시라할수있습니다 지명도 공주군 진잠 회덕등 병합 흡수하며 호남의 곡물과 북쪽의 광물을 수송 보관하던 군수기지라 보시면 됨니다 이름도 태전 한밭 등 많은 이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역사가 말하듯 천년의 수도 경주 호남의 중심 전주 그리고 충청의 대표 충주 등 많은곳이 입지가 달라지고있습니다 대전 이제 점점 교통의 요지을 천안 으로 이동하는것 같습니다
광주(전남)는 족보도 없슴. 참고로 전남(광주) 제주를 행정 관할했던 전라감영 소재지 이천년고도 전주에 국가예산 몰빵해셔 국토 균형개발 끝내야한다. 가장 한국적인 도시 조선왕조발상지가 이천년 전주 임. 견훤 후백제 왕도 가장 한국적인 도시 이천년고도 전주에 국가예산 몰빵이 답이다. 대한민국 국가 경쟁력을 위해셔라도 지방 균형개발 국토 균형개발 서둘러 해야 합니다.
흥미있는 자료 감사합니다. 전국적으로 골고루 인구가 분포되어 있었군요.
농경사회는 땅이 중요해서 당연한거임. 흩어져 사니까 상업이 발달 못하지
농업 유기농사회라
식재료좋군@@hofffnung
귀중한 자료 감사합니다
잘 배웠습니다.
고맙습니다.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숙희야...
오 이런 자료를...감사합니다. 현대랑 많이 비교되네요~
유익한 영상 감사합니다. 저는 홍성이 고향인데 조선시대에 홍주목은 꽤 큰 고을이었군요.. 근데 요즘 홍성은 겨우 그때의 두배 정도 인구수네요..
제 외가집 홍성인데 다 반계초 나오셨어요 ㅎㅎ
관심있었는데 이리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당시 충주가 한양 다음으로 인구가 많았다는게 놀랍네요 지금은 서울의 한구만도 못한 도시가 되었지만ᆢ
예전에는 배로 운송을 하다보니 자연스레 한강,금강 유역의 도시들이 발전했죠 일제시대 철도 중심, 자동차중심으로 변하다보니 자연스레 쇠퇴
상수도 보호구역이라 변변한 공장 못들어옴 ᆢ
중원경
@@이은수-r5f 그럼 서원경 동원경 남원경 북원경은 어디인가요?
조선시대 지역별로 인구 분포도 유익하게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격려 감사합니다.
😊😊😊😊⁸⁷7
조선의 기록은 엄청나죠. 세종대왕이 인력을 사용해서 아날로그 종이 엑셀을 사용하셨다고.... 지방에서 올라온 세금품목들 종이에 항목별로 각각 적어서 마당에 펼쳐놓고 “날짜별로 내림차순해보게”, “날짜별로 소계 정리해두게”, “이번엔 품목별로 분류해보게”, “품목별로 소계 정리해두고” 이런식으로 아날로그 수동 엑셀 ㄷㄷㄷㄷ
과학기술은 뒤떨어졌지만 기록만큼은 진심인 나라..
실수로 누락하거나 계산착오시 퇴근불가. 그일을 매듭짓기까지 매일 야근에 주말특근에, ㅋㅋ 한번 출근하면 퇴근가능한날이 손에 꼽을정도. 아 물론 성군답게 밥은 잘먹이심. 것도 정1품 특제 고기반찬이 삼시세끼 내새 푸.짐.히.
거 그거 맛나게 들고 남은 정무를 이어서하게.(세종대왕 전언)
노비종모법.
ㅁㅊㅋㅋ
다른나라도 그렇게 다 했어요..
유익합니다 늘 잘보고있어요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끝에 ‘주’가 들어가는 도시들이 대부분 큰도시였네요😮 (충주, 청주, 양주, 상주, 성주, 경주, 진주, 광주, 전주, 나주 등등)
경기도 ㅡ 양주/남양주/광주/여주
충청도 ㅡ 청주/충주/공주
강원도 ㅡ 원주
경상도 ㅡ 경주/상주/영주/성주/진주
전라도 ㅡ 전주/나주
황해도 ㅡ 황주/해주
평안도 ㅡ 안주/신의주/정주/삭주/의주
함경도 ㅡ 함주/길주
"-주"로 끝나는 도시는 다 "천년고도"라고 보면 됩니다. 고려 시대에 생긴 지명들이거든요.
@@thesajahoo 경기도는 옛날이름이 양광도 였다가 경기도로 바뀌고 함경도는 옛날에 함길도였다가 이시애의난 때문에 길주가 반란지역으로 낙인찍혀 함경도로 바꼈죠
기쁘다 구주
@@wolflone-i5x 오늘도 일용할 양식을 주신 우리 주
상주도 굉장히 큰 도시였네요 좋은 정보 감사해요
도움이 되셨다니 감사합니다
경상도 자체가 경주 상주 줄임말인데 완전 대도시였음 옛날옛적엔
과거엔 강과 산골이..지금은 바다를 끼고..
임진왜란때 보면 부산(동래) 를 점령하고 그다음 서울로 가는 길에 상주로 진군하는 일본놈 영상이 기억 나네요...
@@leonshim8522 지금도 그 길이 충주-상주-대구로 이어지는 중부내륙고속도로죠
진주부가 땅이 넓었죠
하동군 일부 남해군 창선도 사천시 일부 산청군 일부 먹을 정도로 컸던..
임진왜란 당시 진주목 백성들이 왜군을 막아 당시 인구의 반 이상 희생된것도 널리 알려지면 좋겠어요. 김시민 장군도 알려지고...
오~ 대박 정보 감사합니당^^
5:42 에 나오는 배경이 전라남도 나주가 아니라 경상북도 경주같은데요... 멀리 드라켄이 보이고 그 앞에 황룡원 중도탑 그 옆엔 경주 더케이호텔이 보이네요 정정 부탁드립니다.
보물같은 유투브 영상이네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너무너무 좋은자료 입니다. 이런자료 또 있으면 부탁드립니다 ~~~^^
성주편에서 대구와 조령을 잇는 도시는 상주가 아닌가 싶네요..확인 한 번 부탁드립니다.
조령은 상주를 지나 문경에 있는 소백산맥 줄기의 고개마루로서 한양이나 충주가는 길목이거늘 한참 멀리 떨어져 있는 왠 성주가 거명되는지???
현재 주로 끝나는도시 상주경주나주청주 등등 주로로 끝나는도시는 지금으로 치면 광역시라보면됨
그 도시들의 앞글자를 따서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이지요
저는 충주시민인데..ㅎ 아쉽네요~충주~^
잘 봤습니다
기업인 여러분 상주에 투자하세요 서울부산 그리고 동과서로 딱 중심에 있는도시이고 낙동강이 흐르고 넓은 평야지역이 많고 청주 대구 대전과 1시간 거리에 위치해있습니다
내가 사는 성주군이 예전엔 큰 도시였다니~~~70년대까지만 해도 인구가 많았던거 같은데,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교육때문에 대구로 가다보니 지금 이모양이 된거 같네요ㅜㅜ
성주ㅋㅋㅋ 씹상북도 상종자들이 사는곳아님?ㅋㅋ
경부 고속도로가 놓일 때 고속도로 경유지가 대구가 아니라 상주가 될 예정이었는데 상주에서 반대해서 대구가 경유지가 되었고 대구가 경상도 교통 중심지가 되어서 공업 도시가 되었다네여
@@gustave7223 이미 일제때부터 경북의 메인스트림이 대구가되어서 낭설에 불과할지 싶네요. 그리고 경부고속도로를 놓은 장본인이 구미출신 박정희 대통령인데 설마 대구를 그냥 지나쳤을리가...혹시 경부선 철도 부설할때 공주와 대전의 얘기랑 혼동하신듯
@@gustave7223 대구는 이미 조선후기부터 경상감영이 있어서 상주보다 잘나갔고, 지금이야 소백산맥에 조령이든 죽령이든 이화령이든 육십령이든 터널 뚫어버리고 고가 놓지만 그 당시에 무슨 상주를 감 ㅋㅋㅋ 아재들 할배들 떠드는 거 다 헛소리임. 경부선 놓을 때, 제일 만만한 추풍령으로 간거고 경부고속도로도 따라 간거임.
추풍령 구간 지금 같았으면 터널 뚫어서 직선으로 갈만한 구간이지만 그 당시에 기술이 없어서 고갯길을 타고 오름. 동시대 지은 구마고속도로도 마찬가지고 하다못해 평지에 지은 경인고속도로도 은근 고저차 있음.
@@촉법소년단-q1c
낭설은 무슨 낭설?
박정희가 상주로 내려고 했는데 지역 유림들이 반대해서 김천으로 간건 팩트인데~
잘 모르면 말하지 마세요.
안동에 지역 지역 mbc, kbs도 원래 상주로 오려고 했고 예천에 있는 공군부대 및 공군비행장도 상주 오려고 했고 고속도로도 마찬가지고요.
상주는 전통적으로 신라때도 중요도시, 고려때도, 조선시대때도 마찬가지고 님이 대통령이라면 전통적으로 이름 있는 지역으로 고속도로 내려고 하겠습니까? 별 이름도 없는 지역으로 내려고 하겠습니까?
州(고을주)자 붙은 지명이 농경사회에선 큰도시였죠...전주 나주 경주 상주 충주 청주 진주 광주(경기도) 양주 황주 해주 길주 의주 안주 등등
원주는요
무주 나 성주는 왜...
@@백용권-s1j 네 강원도 원자가 원주니 원주도 강원도에선 큰고을이였죠..첩첩산중에 분지지역이니깐요
맞습니다!
양자붙은고을은 불고기가 맛남 평양 광양 언양 등
이렇게 긴 역사를 거슬러 보면 세상은 또 인구의 이동은 항상 있었다.
하지만 자기의 한평생은 긴 세월의 한 시대일뿐
그 시대에 최선을 다하는 삶이 최고이다.
이 영상을 충주맨이 좋아합니다
좋은정보 잘 보았습니다.
좋은정보너무너무감사합니다.
충청도ㅡ충주 청주
경상도ㅡ경주 상주
전라도ㅡ전주 나주
강원도ㅡ강릉 원주
중에서는 청주 전주 원주가 그나마 어느정도 규모 유지중
충주 상주.. 완전망함
요즘은 수도권 아닌 지방은 부산 대구나 광주나 어디나... 그나마 충청권 대전 세종 청주 천안이 일자리나 인구유지나 선방중
울 부모님 상주 출신. 그런데 정작 저는 경상도를 별로 안좋아함. 친척들끼리 사기치고. 어휴..... 연 끊은지 오래됨. 사투리만 들어도 사지가 떨림.
전형적인 좁은 시야입니다ㅎ 예로 서울에서 살인이나 사기 사건.서울 사람 모두가 그런게 아니고 타지역에서 어떤 사건이 발생해도 그지역이 그런게 아니듯. 그사람이 그런것 성인이라면 객관적으로 볼수있는 시야는 기본이지요ㅎ
원레 옛부터 갱상도 지방은 골치 아푼 지방으로 향소부곡 천민 거주지로 지정한 지방 이였어요.. 멘날 반란만 일으켜서 그 갱상도 지방을 200년동안 과거를 금지시키고 정부 중요자리에 등용을 금지시킨 지방 이였지요..일제 해방후도 공산 빨갱이 폭동을 멘날 일으켜 그때 북한 빨갱이 박정희형 박상희도 우리군이 사살했고 그후도 멘날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등이 쿠테타로 우리국가 전복해 독재국가만 만든 골치아푼 지방임 현제도..
안동이 학문과 정치적으로 중요 도시였군요 그래서 증조 할머니(돌아 가셨음)가 안동은 양반이라고 하셨던건가😊
흥미롭네요.. 전국이 고루 살기 좋은 동네로 개성이 있었겠네요. 전 강원도에 사는데 그때도 인구가 적은 소외지역이었나 보네요...
강릉,원주..강원도
그래도 평안도나 함경도에 비하면 뭐.
그 당시 기술로는 태백산맥을 넘는게 불가능했으니까요. 1970년대까지도 강릉 사람이 서울에 가려면 배를 타고 부산에 간 다음 경부선 열차를 타야했습니다.
조선시대때 전라도(전주.나주)경상도(경주.상주)평안도(평양.안주)같이 8도의 이름을 가진 도시에서 반역이나 큰 범죄가 발생하면 도명을 바꿔버리곤 했습니다. 강원도란 이름도 강릉과 원주에서 큰 범죄와 역모가 발생해서 한때 도명이 원양도(원주.양양) 원춘도(춘천.원주) 강춘도(강릉.춘천)로 바뀌곤 했었죠
틀린말입니다. 영동선이라는 열차노선이 있어서 청량리에서 강릉까지 갔었는데 무슨 말씀이신지
감사드립니다
확실히 조선시대에는 한양을 제외하고는 인구수가 그리 큰 차이 안나고 고르게 분포하고 있었군요 경기 서울권 인구 비율이 9% 지금은 50% 이상이 인상적이군요
무슨 경기도 인구가 50프로야...빙신이냐?
지금 뭔 경기도가 50프로야 ㅋㅋ 헛소리하고있네
경기도가 50퍼는 아니고 경기 서울 인천 수도권인구합쳐서 50퍼 정도네요
서울 경기권이라고 표현해야 할것을 잘못 말씀하셨네요.
@@_RED_FISH_;; 금쪽이
인구수 조사할때 노비들 승려 포함
안한거 같습니다~인구수 아마도
좀더 많았을꺼에요~
순천시가 고려시대에도 승주목이고~나름 큰 도시였네요~사대문중 남대문이라도 복원해서 관광자원으로 활용 했으면 합니다😊
맞습니다
상주가 조선 시대의 큰 도시였군요!
어쩐지… 상주에 양반이 많지요~
화려한 영상에 눈이 휙휙 돌아가네요~
멋진 자료 너무 잘 봤습니다 ^^
경상도의 상을 맡고있죠ㅎㅎ
전주는 조선시대에 남한기준 3위의 도시였지만, 현재는 18위로 밀려남. (청주, 천안, 남양주, 화성한테 밀림.)
거기에 전주가 크질 못한이유가 호남선철도가 익산으로 빠져버린건 두고두고 후회할일인데, 당시 전주의 유지였던 박기순이 이미 측량까지 끝난시점에 와서 반대하였고, 총독부에서도 그 박기순을 이길수가 없었다함. 결국 당시 이리라는 동네로 부설되었는데, 그게 지금의 익산임.
호남선, 전라선의 분기역이 익산이 아닌 전주였으면 광주에도 꿀리진 않았을텐데, 전주는 참 뭐 들어온다면 무조건 반대부터함.
거기에 당시 호남선 철도는 조치원-공주-노성-금마-전주-금구-태인-정읍-광주루트로 가려던게 지금에 이른거. 덕분에 대전이 성장하게 된거고, 반대로 공주와 전주는 쇠퇴함.
전주는 뭐가 들어온다면 무조건 반대함..이거 완전 팩폭입니다 ㅠ
근데 박기순이 반대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자기땅이라서 국가에 주기 싫어서???
수고하셨어요~탱큐~
좋은 정보에 감사드립니다
제 고향이 경북 상주인데 경상도 지명유래와 감영이 있었다는 정도만 알았는데ᆢ전국 5위의 큰 고장였는줄은 몰랐습니다
다시한번 감사드리며 귀 채널 발전을 기원드립니다
쌍도ㅋ
@@관운장KOR 홍어 왔능가
@@관운장KOR홍어ㅋ
감사합니다
부산은 일제 .625 임시수도 되면서 급격히 팽창된 도시임..대구는 전통적인 대도시 오래된 거대도시다보니 인재가 많이 났고 한국동란때 낙동강전선 중심도시라 그인재들 군인이 되었고 군사정변 주역들이 되었음..
그 이전에 개항장 설치되었을때 부터다
충주 생각보다 더 근본이엿네요ㄷㄷ
임란 전까지 충청도 관찰사가 있었고, 그 전에 고구려때 국원성, 신라때 국원소경-->중원경등이 설치됐습니다. 충청도가 남북 분도 됐을때 충북도청이 설치되었다가, 을미의병 당시 유인석(제천)의 거점이 되면서 도청을 청주로 이전하게 됩니다.
요런거 좋아😊
한양이 동양에서 손 꼽히는 화려한 도시는 아니죠 도시 건물 대부분이 초가집이었는데 ㅎㅎㅎ
흥미 있는 자료입니다. 당시 개성인구도 궁금합니다.
당시 개성인구는 태조, 태종 대의 인구 이주 정책 및 차별(향후 100년간 과거시험 응시 금지, 과전 지급하지 않음)등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떠났습니다.
조선 초기에는 약8700여명입니다.
이들은 과거제에 응시도, 과전도 받지 못하니 강제적으로 상업에 종사해야했습니다.
사료에 따르면 개성의 군인, 양반 사대부들도 상업에 종사했다고 합니다.
조선 후기로 넘어가면서 상업이 발달하였고, 대청무역에서 인삼, 홍삼 등이 유행하면서 개성은 활기를 띄기 시작합니다. 이들을 개성송상이라고 하는데, 국제 무역의 한 축을 담당할만큼 성장하였습니다. 후에 개항기가 되면 8만여명에 달하는 상업도시가 됩니다.
네 그렇군요. 답변에 감사드립니다.@@jinjunggu4169
교통의 흐름이 많은 변화를 불러오지요~ 지금도 통합된 도시들이 정말 많은데~ 다루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구독합니다.🎉🎉
역시 서울은 예나 지금이나 짱이네요.... 충주와 전주도 대단했고...대구도 지금 6대 광역시중에서 가장 뼈대있는 찐 광역시였군요...
일제가 경부선 철도를 깔면서 전주, 충주가 몰락하고 부산, 대전이 엄청나게 떳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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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없던 광주가 지금의 호남의 중심도시로 우뚝 선 상황이 흥미롭다. 왜 전주가 호남의 중심도시를 되찾으려 하는 이유도 알겠고... 전주가 조선시대에 3대 도시중 하나였었구나!
수도권 분포가 너무 심각해요... 전주 살기좋은데 3위였던거보면 그간 얼마나 집중분포와 도시 위상이 바뀌었나 알수있네요
5:41 왜 나주 소개에 경주 보문단지가 보이죠?
충주는 참신기한 도시야 충주맨도 그렇고
진주시 잘 보았습니다.^^
좋은 영상 감사 합니다.
댓글이나 설명에 순위 간단 요약이 있었으면 합니다.
홍성군 소개편에서 큰 저수지처럼 보여지는 곳이 어디일까요?(홍성군 영상이 아니라 유사영상이시라는데..)
너무 예뻐서 한번 찾아가보고 싶습니다.
그많은 옛도시의 성곽과 문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ㅠㅠ
와우 신박해요 ㅋㅋ
아마 저기서 수원은 정확히는 광교산인근의 용인까지 포함하는 지역이거나, 아니면 남쪽의 화성시를 포함하는 인구가 아니였을까 싶네요. 수원자체만으로는 임야가 적어서 많은 인구를 부양하기에는...
광교산인근은 광주고, 평택서부 화성동부에 해당되는 지역이예요. 참고로 화성서부는 남양 안산반월주변까지는 광주였답니다.
부산광역시는 그때로 따지면 동래부와 부산포가 아닌가요?
시민들보다 유튜브 구독자가 더 많은 충주시 ㅠㅠ
ㅋㅋㅋ
충주는 가본적 없는데 충주시 유튜브는 구독함 ㅋㅋ
광역시 승격도 코앞
*좋아요 유익하고*
경주는 꽤 높은 아파트들이 사방으로 많이 안 도배되서 좋음
잘봤습니다~ 개성 평양 신의주가 없는게 살짝 아쉽네요 ㅠ
약 10만명의 인구가 아파트나 빌라, 연립 주택등 공동 주택이 업이 개인 주택 단층 기와집,초가집등에 살려면 엄청난 주택 용지가 필요해서 오늘날 서울시 만한 땅이 산과 강,호수,도로,공원등을 제외하고 대부분 집으로 채워질거 같다
조선시대 상놈들은 집이 없었어요 그냥 양반집 구석태기 방 하나에 개떼같이 몰아놨음. 지금처럼 집 한채 있고 사람 3~4명씩 있는 구조 생각하면 안됨
재밌다...!
서울에서 부산 목포 신의주 두만강 방향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목에 있는 도시들이 대도시였습니다
부산방향은 서울 광주 여주 충주 문경 상주 대구 밀양 부산 라인이 가장 빠르게 갈수 있는 길입니다
2위 충주 ...?? 충주시 폼 미쵸따 주무관 셔터 내려 !!
홍성이 고향인 전주사는사람인데 순위권에 잇어서 기부니 좋네용
전라도에서 탈출하세요. 저의 외가쪽도 홍성
대전은 일제시대에 떡상한 도시. 일제가 철도 놓으려고 할 때 다른 도시들은 지배층인 양반들이 철길 지나가는 게 불길하다며 반대. 하지만 대전은 양반들이 없었고 상민들이 양반들 땅에서 소작이나 하던 동네라서 큰 반대 없이 철길이 놓임. 덕분에 떡상.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청주나 충주가 교통요지가 되었을것임.
반대보다도 경제적인 이유가 컸겠죠 땅을 보상해줘야되는데 기존에 개발된 땅을 사는거보다 아무것도 없는 땅을 사는게 훨씬 저렴하기때문에 지금도 마찬가지의 이유로 떡상하듯 그 당시도 경제논리가 가장 큰 이유였겠죠 발전된 공주에 기찻길을 만드는거보다 아무것도 없는 대전에 하는게 훨씬 경제적이니
@@user-tv8ny9sx5d 조선시대는 화폐조차 제대로 쓰이지 않던 물물교환의 시대. 경제적인 이유보다 더 큰 건 정신적이고 풍수적인 이유가 있지 않았나 싶어요. 게다가 왜놈들이 놓는 철길이 관통하다니...양반들이 펄쩍펄쩍 뛸 듯.
@@킹대주 그분들도 바보가 아니고 다들 알았어요....라?... 역사를 보면 조선시대 양반들은 그냥 우물안 개구리였던 것 같은데요. 공주니 청주니 충주니 자존심 엄청 쎈 양반동네라 "왜놈들이 놓는 철길이 관통한다고? 어림도 없다, 암! 암!!!" 했을 게 눈에 선합니다. 그래서 양반은 없고 상민들이 소작농으로 사는 대전으로 뚫린 것. 충주는 교통의 요지가 될 수 없다??? 하지만 충주는 예로부터 교통의 요지였습니다. 역사책 보면 삼국시대부터 치열한 쟁탈전이 있던 곳이죠.
우리가알기로는 일제시대는 아무렇게 탄압하고 양반들이 반대하면 총칼로 무릎꿇리고 철도 놓을줄알았는대 현실은 우리가 알던 사실과 사뭇 다른가보네요
@@킹대주저기요 저 사학과인데 당시 대전 이외의 곳 가령 부여 같은 곳은 양반들의 반대가 거셌던 것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이며 강행 가능했겠죠
실제로 양반사대부들의 반대가 일부 영향을 줬던 것도 맞고요
잘 보았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곳에 불만이 많았는데 지난 이야기이지만 자부심이 좀 생기네요.
일제시대와 철도, 도로의 영향으로 바뀌어버린 도시..도로경제학이 틀린말은 아닌것 같네요
대전은 조선시대때 문화와 역사가없는 깡촌시골 지역이었다가 일제가 철도깔아줘서 인구도늘고 발전했죠
@@clear-sky-6 대전이 애초에 허허벌판 즉 큰 밭만 있다해서 순우리말로 한밭 이라 불렀고 그걸 한자로 쓴것이 지금의 대전임 ㅋㅋ
청주시의 인구를 잘못 읽으셨네요. 그래도 아주 흥미로운 주제..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우와 영상 재미있습니다~ 저희는 요즘 50년대 도시들 풍경을 올리고 있습니다~^^
좋은 영상 잘 봤습니다
문득 남북한이 하나가 되는 통일한국의 모습도 생각해보게 되는군요
춫주가 두번째로 큰 도시였다는게 의외네요 ㅎㅎ
전주는 원래 조선의 뿌리에다가 곡창지대 때문에 큰도시 인줄은 알았는데... 충주가 대도시였다는게 ㅎㅎ 신기 ㅎ
조선의뿌리는개뿔 . 전주가 어떻게뿌리냐?
@@skim3262 이성계는 함경도, 족보 상 뿌리는 전주.
충주는 국토개발에 정치,지역색 없이 발전되었다면 현재 대전급 지위를 가졌을 것으로 예상되는 수운뿐만 아니라 육로의 위치 상으로도 핵심 도시입니다.
경부 고속도로만 해도 서울과 부산을 직선으로 이었을때 월악산과 속리산 사이를 지나가는 도시로서 직선화에 아주 유리하며 좌우 상하로도 중심에 있죠
@@skim3262 상도애들은 언제나 이렇더라. 그래야 상도지.
난 전주가 큰도시였다는게 놀람 . 뿌리는 듣기좋으라고 하는빈말이고
신기한 영상이네요😅😅
잘봤습니다😮😮😮
충주 레전드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좋댓구알 선물하고 갑니다.
처음으로 조선시대 인구밀도를 접했습니다.
유익한정보 감사드립니다.
@user-nw6ch4og9k 농자천하지대본 이라 했지요.
전라도는 곡창지대가 넓어 과거에도 잘 사는 도시로 꼽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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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밀도랑은 전혀 다릅니다
역사전문가인 박사님이 조선시대 인구수는 정확히 집계되지않았다는데 뭘보고 확실한것처럼??
평양 함흥이 없을리가 없을거같은데 왜 남한지역만 나오는건가요?
충주?
대박ㅋ
제가 살고있는 진주시가 6위라는게 자랑스럽네요 ㅎㅎ 남강 아주 이쁩니다 놀러 많이 오세요~
내고향 충주가 조선시대엔 저렇게 중요한 도시였다니... 근데 어쩌다 이렇게 된겨
상수도 보호구역때매 공업시설 설치가 어려워서 ㅠ 현재 전국에서 인구 많은 대도시들 대부분이 공업으로 성장한 도시에요 ㅠㅠ
@@dembaba197남한강이 오염되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까요
우선 경부선이 공사하면서 수운교통의 중요성이 줄어들고 철도교통이 대두되면서 충주시인구는 정체를 겪게 된것이 가장 크고 해방이후 1959년 이승만정권때 농업의 중요성때문에 비료공장을 크게 진적이 있엇지만 이농현상이 가속화되면서 농촌에서 도시로 빠져나가는 사람이 많았고 1980년도에 충주시 인구가 10만명.중원군이 10만명정도로 1995년에 통폐합 20만명이니까 거의 40년동안 인구수가 증가하지 못헸죠....
옛날에는 세한미디어 시멘트공장 화학비료공장 그래도 어느정도 규모있는 공장이 있었으만 1985년 충주댐건설로 상수도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서 대규모공장이 떠나고 일자리가 그만큼 줄어듬에 따라 인구유출이 심한것이 많았죠....
@@redsun-qq2jx 네 잘 알고 계시네요. 그나마 다행인건 요즘엔 기업도시도 생기고, 현대엘리베이터도 이전하고 해서 계속 줄다가 요즘 다시 증가하는 추세에 있어요
@@정원희-f9v 충주시 인구를 늘릴려면 일자리확보가 가장 중요한거죠....일자리가 있어야 사람들이 몰리고 그리고 상권이 형성이 되니까요..
1993년도까지 학교를 충주에서 다녀서 충주의 역사를 잘알죠...
옛날에는 교통이 수운으로 물자를 운송하는것이 많아서 남한강을 끼고 한양으로 가는것이 쉬웠고 주변에 산이 많아서 군사측면에서 방어하기 쉽고 그래서 번성했지만 철도가 운송의 중심지가 되면서 쇠퇴한것이 크니까요...
희망적인것은 그래도 여주를 통해서 서울로 연결이 되고 각종 고속도로가 생기면서 주덕이나 음성같은데는 공장이 대규모로 생기니까 어느정도 발전이 될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것은 삼성이나 sk 현대같은 굴지의 대기업이 들어오지않는한 인구증가는 한계에 도달할것 같아요...그렇지 않아도 저출산으로 인구가 점점 줄어드는 형국이라서.....
재밌네요
이 인구에 노비나 천민이 포함되어 있나요?
노비 천민이 80%인 국가인데 당연히 그렇겠죠
@@생쥐대장조선시대 인구조사는 호패달고 다니는 사람만 했죠 노비나 여자는 포함안함
@@푸른산-v3m 그럼 노비 천민 포함하면 조선 인구가 엄청 많았겠네요 영상으로 충분히 그시절 치고는 많은것 같은데
@@생쥐대장 조선초기는 천민이 많아도 지금 인구조사할때가 정조때라니까 그때는 돈많은 천민들은 양민으로 많이 돌아을것 같은데요 조선후기는 돈주고 양반도 많이 됐다는데 족보도 사고. 호패로 조사안하면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조사할수는 없지요 지금처럼 교통수단도 없는데
2:25 4만 746명이라고 나오고, 영상은 4만 7046명인데 어떤게 맞는건가요
대전은 경부철도가 뚫리기 전까지만 해도 "공주군 산내면 대전리"였습니다. 거기에 경부고속도로가 예정을 벗어나 대전을 통과하고 호남고속도로 분기점까지 대전으로 결정되면서 교통이 편리해서 갑자기 눈덩이 처럼 커진 도깨비 도시입니다.ㅎㅎㅎ
일제강점기 철도부설과 충남도청 이전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도시입니다. 경부고속도로는 1970년에 완공되었습니다.
대전은 일제강점기에 이주한 일본인에 의해 만들어진 도시입니다. 1898년 이전에 대전이랑 명칭의 도시는 존재하지 않았지요. 허허벌판 황무지 였을뿐~
대전은 일제 강점기때 발달한 대표적인 도시 지금으로 보면 신도시라할수있습니다
지명도 공주군 진잠 회덕등 병합 흡수하며 호남의 곡물과 북쪽의 광물을 수송 보관하던 군수기지라 보시면 됨니다
이름도 태전 한밭 등 많은 이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역사가 말하듯 천년의 수도 경주 호남의 중심 전주
그리고 충청의 대표 충주 등 많은곳이 입지가 달라지고있습니다
대전 이제 점점 교통의 요지을 천안 으로 이동하는것 같습니다
무슨 소리 입니까?
내가 국민학고 다니던때(50년대) 교과서에 전국 4대도시가 나오는데 서울,부산,대구,광주라고 했으며 그다음이 인천과 대전 이라고 나왔고 고등법원도 서울, 대구, 광주, 대전에 4곳만 있었어요. 그이후 부산과 수원이 포함돼 6곳으로 늘었죠.
단군부터 한반도가 본토가 아님.
구한말 1400만명 한반도로 대이주 ㅡ 다음 검색
조선시대 전주, 충주 대단했구나.
지역 균형 발전 좀 하자~~~~~~~ 서울 집중 좀 그만하고.
무슨 김포 편입이야~ 뜬금없이. 지금 장난해?
광주(전남)는 족보도 없슴. 참고로 전남(광주) 제주를 행정 관할했던 전라감영 소재지 이천년고도 전주에 국가예산 몰빵해셔 국토 균형개발 끝내야한다. 가장 한국적인 도시 조선왕조발상지가 이천년 전주 임. 견훤 후백제 왕도 가장 한국적인 도시 이천년고도 전주에 국가예산 몰빵이 답이다. 대한민국 국가 경쟁력을 위해셔라도 지방 균형개발 국토 균형개발 서둘러 해야 합니다.
@@군산갈매기-u2w뭘 균형발전을 억지로 하냐? 그럼 인구 2만정도되는 군부터 살려라
김포 시민들 스스로 부동산 값 올리려고 우리도 서울시에 편입해줘 혈안이 되어 있는 걸 어쩌라고
조선시대 도시는 현대에 비해 인구가 그리 많은건 아니지만,
관할면적으로 보면 그야말로 '메가시티'
평양 개성은 얼마나 살았었을까요??
조선시대는 오늘날과 행정체계가 다름 충주만 하더라도 제천단양괴산음성 등 여러곳이 충주임
강원도는 여전하네😊
귀중한 역사적 자료네요 앞으로 또 도시의 인구 변화 순위가 바뀔지는 의문입니다 최소 서울시와 수도권 지역은 불변일듯
경주,전주가 옛명성을찾길. 그많은인구가 다어디로갔을련지.
내 고향 충주, 한때 잘나갔네😢
조선시대에 군현은 지방관의 품계에 따른 규모 차이가 있습니다
유수부 (2품) 목사 (3품) 대도호부사 도호부사 군수 현감 등
드라마에 지방관 사또보고 부사라 고 부르는 것은 도호부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현재의 광역시 중 유일하게 대구 라는 도시만 조선시대에도 꽤나 입지가 있는 대형 도시였군요.
학창시절때 역사선생님이 대구는 옛날부터 .아주 큰 상업도시라고했음
@@1355x-w7h 色정 은 생 모 고 용 희는,
@@1355x-w7h 목 포 출 신 色고경택이
@@1355x-w7h 오 ㅅr ㅋr건너가낳은
@@1355x-w7h ㅈH 일교 포2세~
좋은자료 감사합니다.😅
응아니야
옛날은 충주가 대도시로 유명했는데 지금은 유튜브가 더 유명함…
충남 공주시의 인구는 얼마였나요?
니가찾아봐
조선시대 인구수
2위가 충주라구요?
그랬었군요 ㅎ
충주시민중 한사람
으로 격세지감..
천천히 한발 두발 그리고 세발 앞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