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선정벌때 플린트락 한 정 가져와서 연구해보긴 했는데 이후의 기록은 없음ㅇㅇ. 부품 수급의 문제로 포기한 걸로 보임. 그 이후로 수백년간 매치락 쓰다가 19세기 중반에 퍼거션캡 라이플에 대한 정보를 얻고 19세기 후반부터 양산을 시작하려 했지만, 주요 부품들은 전부 수입해와야 했는데다 이미 국력이 나락가버린 상태라 대량 양산이 불가능했고, 19세기 중후반쯤 되면 후장식 라이플들이 등장하면서 퍼거션캡도 구형이 되어버림. 결국 배수량 300톤짜리 운요호 한 척과 20명 남짓한 병력한테 일방적으로 학살당하고 퍼거션캡부터 레밍턴 롤링블럭같은 근대식 라이플들을 본격적으로 들여오기 시작함. 매치락 방식의 머스킷에서 발전하지 못한건 근대식 라이플 비스무리한거 만들 기술력이나 산업 기반이 전무했기 때문임.
@@유태경-p2s 죄송하지만 신립의 상황에서는 소규모 전투니 뭐니 그걸 따질 상황도 아니였고 신립은 게릴라전을 한 적도 없어요 그리고 신립은 오히려 본인의 특기라고 할 수 있는 기마전술을 활용하기 위해서 평지에서 전투하는 걸 선택한 장수 입니다 그리고 당시 신립이 가지고 있던 상황 또한 생각을 해보셔야 합니다 신립은 북방에서 같이 여진족을 잡던 정예 기마부대 하고 군사훈련 한번 제대로 받아본적 없는 징집된 농민군 8천명이 전부였습니다 더군다나 충추가 떨어지면 더 이상 한양을 방어할 만한 지역이 없기 때문에 신립입장에서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일본군을 격퇴했어야 하는 상황인데 일본군에 대한 정보는 없고 방어전을 준비할여니 병력도 그렇고 물자도 그렇게 무엇하나 준비된 것이 없어요 더욱이 당시 일본군은 충추뿐만 아니라 추풍령 하고 죽령 쪽으로 같이 북상을 하고 있던 상황이기 때문에 3개의 길로 일본군이 북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신립입장에서는 지금 기동방어를 해야하는 상황인데 군대에서 하는 기동방어는 진짜 꾸준한 훈련과정이 없으면 실전에서 해보기도 힘든 것 중에 하나인데 더욱이 본인이 말하는 뭐 병종의 우월상성이점을 파악했어야 했는데 라고 하시는데 군사훈련 한번 제대로 받아 본적이 없는 강제 징집으로 구성된 8천명의 농민군이 우월상성이점이 있는 병종이 있었을거라고 보세요???
@@MoonbomSunny 뭔가 오해를 하시는데 전 신립의 게릴라전술에 대해 주장한적이 없어요 잘못 이해하신듯 의병들의 게릴라전 비슷한 소규모 공격에서 왜병의 조총이 그다지 활약 못했다는거죠 갑자기 주제가 신립이라는 인물의 무기를 분석하는 안목에서 신립의 임진년행적으로 바뀌는거같아서 확실히 말해두고싶은게 신립의 무기분석자체는 그다지 틀린게 아닙니다 다만 그걸 대규모로 운용했을때에는 소규모로 운용했을때의 단점을 상쇄시킴을 생각못한건뿐이구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신립의 무기를 분석하는 안목 자체는 그다지 틀린게 아닙니다. 다만 겪어보어 못한 그 조총이 집단운용됐을때의 상황까지 생각이 미치지않았을뿐. 이순신장군은 출격하라는 조정의 무리한 명령을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묵살함으로 병력을 보존했는데 신립이나 원균은 무리한 전략 목표를 가지고 작전을 수행하니 실패했던거구요 차라리 호란때처럼 농민군으로 방어하면서 기병으로 적 보급로만 공략했어도 좋았을텐데
@@유태경-p2s 의병들의 유격전에서 일본군의 조총이 활약하지 못 한 것은 조총이라는 무기도 어떤 부대단위 이상이여만이 구성이 되는 부대입니다 그냥 뭐 일본군이라고 해서 다 조총을 들고 다는 것이 아님니다. 본인이 지금 말씀하시는 소규모 공격이라는 것은 임진왜란 7년 내내 조선군은 일본군과의 소규모 전투에서 계속해서 승리하면서 꽤나 짭짤한 승리를 거두는 것이 사실입니다 왜냐 당시 일본군은 보병위주로 구성된 부대이기 때문에 현지에서 보급품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소규모 부대 단위로 각 마을을 약탈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약탈부대를 방어하고 지역방어를 한게 의병들입니다 그래서 임진왜란 때 500명 단위로 전투를 하는 공식이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겁니다 일본군이 500명이 넘어가면 의병들은 더 이상 공격하지 않고 후퇴를 합니다 그래서 일본군이 다시 대규모의 병력을 이끌고 오면 조선군과 의병들이 산성으로 들어가서 수성전을 하는 겁니다 그리고 이순신하고 신립과 원균을 언급하셨는데 이순신처럼 처음부터 전쟁대비를 한 부대하고 급하게 농민병을 이끌고 충추로 간 신립이랑 동일 선상에 놓고 본다는 시각부터가 잘못보고 있는 겁니다 앞에서도 설명을 했다 싶이 신립 입장에서는 당장에 충추가 떨어지면 한양이 공격을 받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순신과는 주어신 상황부터가 다른 겁니다 원균 또한 처음에는 본인이 할 수 있다고 말을 했다가 막상 통제사 자리에 앉아서 상황을 보니 이순신의 주장이 맞기 때문에 바로 출정을 하지 않고 계속해서 시간을 뒤로 미루었던 걸만 봐도 알 수가 있는 부분입니다 단지 계속해서 한양으로 부터 출정을 하라는 압력이 들어오니 마지못해 출정을 한 케이스인거죠 그리고 뭐 호란 때 처럼 농민군이 방어하면서 기병으로 적 보급로만 공략 했어도 좋았을텐데 라고 하는데 호란 때 기병을 조선군 보다 더 잘 활용하는 것이 청나라 팔기군인데 무슨 조선군의 기병으로 보급로를 공격을 합니까 그리고 신립이 충추에서 충추성에 들어가지 않고 성밖으로 나와서 전투를 한 것은 당시 조선은 군사적인 성이 별로 없는 나라입니다 대부분의 조선시대의 읍성들은 군사적인 역활을 할 수 없는 성들입니다 수성전을 할 때 적의 공성공격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성벽의 높이 6m 에서 8m 이상은 되어야 하는데 당시 충추읍성의 성벽 높이는 고작 3m에서 4m 수준의 성벽입니다 이런 성으로는 효과적인 수성전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 신립입니다 그리고 수성전을 한다고 했을때 그냥 성벽만 있다고 해서 끝이 아니에요 성벽 앞에 해자도 만들어져있어야 하고 성벽에 추가적인 방어 시설물도 구축이 되어 있어야 방어가 가능한 거지 그냥 뭐 성벽에 올라가있다고 끝나는게 아님니다 더욱이 신립이 충추성에 들어간다고 한들 이미 충추 말고도 추풍령 죽령 방면으로도 북상하고 있는 일본군은 뭐 어떻게 상대할여고 성안으로 들어간단 말입니까
제생각에는 조총병 단1명만 움직이지는 않았을거라고 봅니다. 분명 삼수변의 체계로 인하여 3인1조로 움직였을테고 총을 잘쏘는 병사가 사수 나머지 2명이 장전수 역할을 했을거라고 봅니다. 또한 삼수변에 의해서 창병.총병.궁병 이렇게 구성 되었을수도 있고 아니면 등패병.총병.궁병 이렇게 구성 되었을수도 있습니다. 아무런 조치도 없이 영상에서 처럼 장전을 했다가는 20번은 넘게 죽었을겁니다.
삼수변이 아니라 삼 수병 입니다 그리고 화승총은 개인당 한명이 장전을 하고 사격을 합니다 조선 후기 이미 화승총의 4열 사격 진법이 나오는데 무슨 3인 1조로 움직였다는 근거가 어디서에 나오는 겁니까? 그리고 삼 수병 편제가 만들어지면서 살수들의 무장은 원앙진을 기준으로 편성이 됩니다 그리고 조선에서 사수를 유지하는 이유는 포수인 화승총이 장전시간이 길기 때문에 그 사이에 화력을 보강하기 위해서 사수를 유지하는 겁니다
@@MoonbomSunny사수 3명이 자리를 바꿔가면서 쏘는거 보다 사수1명에 나머지 2명이 번갈아가면서 장전 하는것이 연사력도 높일수있고 효율적이니까요 게다가 전열보병 처럼 일렬로 쏘는것 보다 은엄폐로 저격 하는것을 선호 했을것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삼수병은 척계광의 기효신서를 바탕으로 한 절강병법의 기초 진형 입니다. 3인1조로 기본편성을 해서 살수.포수.궁수 이렇게 3명이 한조를 이루는것이고 여기서 장창수 등패수 낭선수 까지 포함시키면 그 유명한 원앙진이 될것입니다. 게다가 조선군은 왜란이 끝난후 기효신서를 바탕으로 새로 재편성을 하였고 인원이 많다고 해도 이 삼수병체제에서 벗어나지는 않았다고 봅니다. 포수가 장전 할 동안 사수 는 활로 시간을 벌어주는 역할 이라면 마지막 1명 살수가 하는 역할은 적기병돌격을 장창으로 막거나 등패로 적의 총알이나 화살을 막는 역할이었다고 봅니다.
@@j8663 죄송하지만 그건 본인의 생각이고요 이미 조선 후기에는 4열 윤방이 나올 정도로 포수 한명이 혼자서 장전을 다 합니다 이미 사르후 전투나 병자호란 등에서 이미 입증이 된 사실입니다 그리고 전열보병 말씀하시는데 후장 식 소총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은 엄폐를 안 합니다 남북전쟁 때 까지만 해도 퍼커션 캡 방식의 뇌관만 발전 했지 총구로 장전하는 전장식인 건 변함이 없었습니다 은 엄폐를 안 합니다 물론 Sharpshooter 라고 명사수들이 등장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극 소수 입니다 Sharpshooter들의 소총 자체가 강선이 있는 소총에서 가축을 감싸서 전장식으로 장전하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는 은 엄폐를 하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삼 수병 편제를 잘못 이해 하고 있는데 삼 수병이라고 해서 살수 1명 사수 1명 포수 1명 이런 식으로 3인 1조가 아니라 원앙진으로 구성 된 살수부대들 있고 거기에 사수와 포수들이 같이 편제가 되어 있는 겁니다 3인 1조로 구성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살수를 중심으로 사수와 포수가 같이 편제가 되어 있는 걸 삼 수병이라고 하는 겁니다 조선 후기 삼 수병 체제는 병과를 나누는 기준으로 만들어진 편제 입니다 조선군의 가장 큰 문제가 군대 편제를 못 한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기 때문에 임진왜란과 호란을 경험하면서 살수 사수 포수라고 하는 병과를 만들어서 살수 중심으로 사수와 포수를 더해서 군대를 편제를 한 것이지 이걸 사수 1명 포수 1명 살수 1명 개념이 아니라구요 참고로 살수는 12명이 살수대를 구성합니다 살수대는 오늘날로 치면 1개소대 급입니다 말씀하신 기효신서에 나오는 원앙진이 12명의 살수들이 모여서 만들어지는 진법인데 3인 1조가 어떻게 나오는 건지 원
흉폭한 야생의 조총병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암 타임슬립을 대비하는 건 현대인이 갖춰야 할 필수교양이지....!!
ㅋㅋㅋㅋㅋ나레이션 중간중간에 디테일 챙기는 거 너무 재밌어요 ㅋㅋㅋㅋㅋㅋ 이제 17세기 조선으로 타임슬립해도 걱정 없겠군요
앜ㅋㅋㅋㅋㅋㅋㅋㅋ진짜 진주박물관 기획하는 분은 상줘야된다 그동안 얼마나 근질거렸을까 ㅋㅋㅋㅋ
17세기 조선으로 타임슬립했는데 이 영상 보고 무관으로서 열심히 살아남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러고 보니 드라마 녹두꽃에서 나오는 마우저소총을 양총이라고 하던데 조총한발 장전할 동안 양총은 30발이나 쏠수있다고 하더군요
장전 하다가 벌집이 되버린다면서요
조총은 숙련된사수가 최대로 쏴도
분당 4발 볼트액션 소총은 미숙한 사수라도 분당
20발이니
근데 조선군이 사용한 마우저 소총은 마우저 M1871 단발식 소총이죠.
@@handycraft8070 그리고 조선군이 사용한 진정한 근대식 소총은 바로 아리사카 30식 소총이죠.
청군이 게베어 1888 5연발 볼트액션 소총을 한양 88식 소총이란 이름으로 채용했다던데...
청군에도 신식군대 만들어서 그 신식군대에 지급할려고 그랬는지...
아닠ㅋㅋㅋㅋㅋㅋ 조상님 동물의왕국 관찰하듯이 보지 말라구요 ㅋㅋㅋㅋㅋㅋ ㅠㅠㅠ
좋은 영상 기다렸습니다 조총 장전하느라 이제 올리셨군요
조총병보다 끌리는 치명적인 cg 참새들의 매력이란...
정말 훌륭합니다.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군요, 응원하겠습니다.
짧은데 빠져드네
조총 장전방식은 처음 보는것 같습니다 완전 리얼하네요 열심히 일하고 계시는 건들건들 형님들
광고 잘만들었네요.
광고하면 화려한 배경과 음악에 빠른 템포의 영상이었는데 이런 다큐멘터리 방식도 신선하고 좋네요
드디어 17~19세기 조총병 복장이 등장했네요ㅠㅜㅠㅠㅠ 비록 실제 사진들과 비교해서 퀄리티가 좀 떨어지긴하지만 이때 당시 조총병 복장이 취향이라 계속 나오고 점 점 발전했으면 좋겠네용ㅎㅎ
저는 남한산성에서 나온 군복이 취향이더라고요.그때의 전율은 명량과도 같은 느낌이였어요
ㅋㅋㅋ박물관 홍보 죽인다 👍👍쌍 따봉 + ❤🧡💛💚💙💜 제 마음 입니다.계속 수고 부탁합니다.
비고 모텐슨 나왔던 영화 알라트리스테 보면 강물에 매복하면서 손목에 화승 묶어놓고 불씨 살리려고 손목은 물밖으로 내놓고 도하하는 장면 나오는데 고증이 참 리얼했음..
여기 대한민국. 모든 것을 해탈한 예비군이 사격준비를 하고 있군요.
엄청나게 진지한 목소리... 그런데 뭔가 코믹한 진행.... 그러나 어디론가 모두 사라졌군요.... 너무도 진중한 조총의 소개를 따라가다가 조총의 절대적 함정에 빠져서 맨붕이 오네요... 그렇게 다 사라지는군요.... 수고하세요...
미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ㅋㅋㅋㅋㅋ 아니 일단 시작부터 전문 성우가 아닌거에 1차 웃겼는데, 그냥 조총 설명하는 척 하면서 개그를 치고있고, 마지막은 홍보까지 완벽 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 화력조선전 보고 감동 먹엇습니다. 정말감사합니다
한국 근세 총기류라던지 대포류라던지 총통류라던지 그런거 실제로 만든다음 진주성에서 발사하는 이벤트 같은거 있었음 좋겠음.
전쟁사 공부 제대로 하고갑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재밌고 뜻깊은 채널이네요~~ 재밌어서 주변에 구독 권유 중입니다^^~
동물원에서 이처럼 흉폭한 조총병을 관람할 때는 꼭 거리를 두는 것이 안전하겠죠?
야생의 "흉폭한 조총병"이 나타났다.
이런 더빙 컨셉은 역시...
원호섭 성우님이면 보다가 잠들듯.
천리길(400km)도 안돼는.
진주 국립박물관ㅋㅋㅋ
1:17 허헣;;;;; 그러면 이 조총병 상관한테 한번만 더 찍히면 영창을 가겠네요 ㅎㅎ 진짜 저 시대 군인들이 한 300년 뒤 볼트액션 소총만 봐도 아주 신세계를 맛 보겠네요 ㅎ
미니건 주면 홍콩가시것네 ㅋㅋㅋㅋ
한국에 가면 특별전이 아니더라도 진주박물관에 꼭 방문하겠습니다. 진주의 맛집과 역사유적, 관광명소들도 탐방하고요.^^
동물의 왕국 컨셉 영상 잘 봤습니다. 다음엔 아예 '그림을 그립시다' 컨셉으로 부탁드립니다. 어때요? (컨셉) 참 쉽죠?
휴.. 그동안 조총 다루는 법을 몰라 늘 불안했었는데.. 이제 안심하고 조선으로 타임슬립 해도 되겠다^^!
이 영상 덕분에 17세기 조선에 전생한뒤 전쟁영웅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항상 잘 보고있습니다
다큐역사상유일하게 총그것도조선조총장전방법을알려주는유일한다큐
장전 순서 중에 13번의 한자가 12번째의 한자에서 바뀌어지지 않았네요.
무튼, 영상 늘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몇년 전에 진주 박물관 다녀왔는데, 언제고 다시 가고 싶어집니다ㅎㅎ
진주박물관 화력조선 잘 보고 갑니다.꾸벅.ㅎ
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웃기다 공식인 것 같은데 너무 웃김 이거 기획하신 분 상줘야 함…..
나레이션이 마음에 들어 구독&좋아요 누르고 갑니다 ㅎㅎ
다행이네요 다음달에 떠날 예정이었는데~
알려주셔서 고마워요~
아이디어랑 나레이션 진짜 최고에요😂😂😂
진짜 골때리고 웃기네요 주기적으로 보러들어오겠습니다
잘만들었다 조총 모형이나 옷 같은 거 좀 만들어서 팔아
가장 중요한 월요일 휴관!!
아 겁나 웃김ㅋㅋㅋㅋㅋㅋㅋㅋ 조상님들의 노고가 느껴짐ㅜㅜㅋ
조총의 발사과정이 이렇게 복잡한줄은 처음 알았네요. 그런데 임진왜란 이후 조선은 조총병을 주력으로 했는데 조총의 느린 발사과정을 알면서도 왜 개선해 보려고 연구하지 않았는지 궁금하네요.
나선정벌때 플린트락 한 정 가져와서 연구해보긴 했는데 이후의 기록은 없음ㅇㅇ. 부품 수급의 문제로 포기한 걸로 보임. 그 이후로 수백년간 매치락 쓰다가 19세기 중반에 퍼거션캡 라이플에 대한 정보를 얻고 19세기 후반부터 양산을 시작하려 했지만, 주요 부품들은 전부 수입해와야 했는데다 이미 국력이 나락가버린 상태라 대량 양산이 불가능했고, 19세기 중후반쯤 되면 후장식 라이플들이 등장하면서 퍼거션캡도 구형이 되어버림. 결국 배수량 300톤짜리 운요호 한 척과 20명 남짓한 병력한테 일방적으로 학살당하고 퍼거션캡부터 레밍턴 롤링블럭같은 근대식 라이플들을 본격적으로 들여오기 시작함. 매치락 방식의 머스킷에서 발전하지 못한건 근대식 라이플 비스무리한거 만들 기술력이나 산업 기반이 전무했기 때문임.
우리보다 먼저 조총을 들여 온 일본도 마찬가지였음
매우 유익한 정보....
조총 장전과 격발은 추노에서 진짜 제대로 표현했지.
업복이의 조총 사격실력은 잊을수가 없음
神器秘訣:
一 洗銃
二 下火藥
三 以朔杖 送藥實
四 下鉛子
五 以朔杖 送鉛子
六 下紙 送紙
七 開火門
八 下線藥
九 下合於身藥
十 仍閉火門
十一 龍頭安火繩
十二 청령 개화문 (聽令 開火門) 1:49 한자 잘못된 곳
十三 准賊人 舉發
앜ㅋㅋㅋ 항상 과거로 갈 준비가 되있는
참된 현대인을 위한 영상이군요
산길에서 호랑이를 만나도 한 방에 쓰러뜨릴 수 있겠네요
결론!! 진주박물관에 놀러와라 ㅋㅋㅋㅋ
트럭에 치이기 3분 전 최고의 선택.
광고였지만 덕심으로 본다
꼭 한 번 가고싶습니다.
이 영상을 보고 조선시대로 회귀해서 임진왜란이서 활약했습니다
큰일날뻔했네요 덕분에 타임트립해도 조총을 쏠 수있게 됐습니다
저도 한번 쏴 봤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난중일기를 보다가 갑자기 1592년으로 이동해 곤란했었는데 이 영상을 본 것을 기억하고 일본군의 조총을 뺏어서 트리플킬 할 수 있었어요!
오늘은 조총을 쏘기위해 코리아맨하고 붕시니가 함께 표적이 되기로 했습니다,,,아,,여기가 아닌가?
와 진짜 잘 만드셨네요 ㅎㅎ
나레이션이 죽입니다. ㅎㅎ
2:24 애비야! 월요일엔 쉰단다!
아. 이거 박물관 광고였어?? ㅋㅋㅋ
진주박물관근무하시는 분들은 유튜브수익 인센줘야함
은은하지만 찐한 광기가 아주..
잘 만들었네요ㅋㅋㅋㅋㅋㅋ
요새 트럭에 치여서 이세계로 가는 사람들 많다던데 이런거 보면서 대비하면 좋을듯 ㄷㄷ
아니.ㅋㅋㅋ
요즘 전쟁,문화쪽 영상들 재미있네.
비 바람부는날엔 그저. . 쇠막대기일뿐이네요 ㅠ
아이고... 숨 넘어가네요....
와 큰일날뻔 했네 이거 안보고 조선 갈뻔
박물관 에서만 판매하는 굿즈 기획좀 조종병 같은거. 솔직히 논개인형은 전국이 다 똑같이 생겼습니다
비와도 못쏘고 바람불어도 못쏘고 화승이 꺼져서 못쏘고 기병 한번에 못잡으면 뒤지는 조총인데 영화나 드라마에선 뛰어다니면서 조총을 쏴재끼는데 어이가 없어서 웃어야될지
신립이 어리석은게 아니라니깐 저거 절차 다 지키는동안 활은 최소 5발은 쐈겠다
그건 개개인으로 봤을 때의 말이고요 전쟁에서 싸우는 전투라고 하는 장소에서는 수천 수만명의 사람들이 집단으로 움직이고 싸우는 장소가 전투지역인데
거기에 집단으로 움직이는 전술적 공격으로 적을 상대하는 일본군의 야전 전술능력을 봐야겠지요
@@MoonbomSunny 그러니까 좀 더 소규모전투에서는 왜군이 죽을 쑤죠 게릴라전으로 가니까 진형짜구 자시구할것도 없으니까 무기나 병종의 우월상성이점을 파악하는 동시에 그걸 최대한 활용하는 방안을 찾아야하는데 신립은 그걸 제대로 수행못함
@@유태경-p2s 죄송하지만 신립의 상황에서는 소규모 전투니 뭐니 그걸 따질 상황도 아니였고 신립은 게릴라전을 한 적도 없어요 그리고 신립은 오히려
본인의 특기라고 할 수 있는 기마전술을 활용하기 위해서 평지에서 전투하는 걸 선택한 장수 입니다 그리고 당시 신립이 가지고 있던 상황 또한 생각을 해보셔야 합니다
신립은 북방에서 같이 여진족을 잡던 정예 기마부대 하고 군사훈련 한번 제대로 받아본적 없는 징집된 농민군 8천명이 전부였습니다 더군다나 충추가 떨어지면
더 이상 한양을 방어할 만한 지역이 없기 때문에 신립입장에서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일본군을 격퇴했어야 하는 상황인데 일본군에 대한 정보는 없고 방어전을 준비할여니
병력도 그렇고 물자도 그렇게 무엇하나 준비된 것이 없어요 더욱이 당시 일본군은 충추뿐만 아니라 추풍령 하고 죽령 쪽으로 같이 북상을 하고 있던 상황이기 때문에
3개의 길로 일본군이 북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신립입장에서는 지금 기동방어를 해야하는 상황인데 군대에서 하는 기동방어는 진짜 꾸준한 훈련과정이 없으면 실전에서
해보기도 힘든 것 중에 하나인데 더욱이 본인이 말하는 뭐 병종의 우월상성이점을 파악했어야 했는데 라고 하시는데 군사훈련 한번 제대로 받아 본적이 없는 강제 징집으로
구성된 8천명의 농민군이 우월상성이점이 있는 병종이 있었을거라고 보세요???
@@MoonbomSunny 뭔가 오해를 하시는데 전 신립의 게릴라전술에 대해 주장한적이 없어요 잘못 이해하신듯 의병들의 게릴라전 비슷한 소규모 공격에서 왜병의 조총이 그다지 활약 못했다는거죠
갑자기 주제가 신립이라는 인물의 무기를 분석하는 안목에서 신립의 임진년행적으로 바뀌는거같아서 확실히 말해두고싶은게 신립의 무기분석자체는 그다지 틀린게 아닙니다 다만 그걸 대규모로 운용했을때에는 소규모로 운용했을때의 단점을 상쇄시킴을 생각못한건뿐이구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신립의 무기를 분석하는 안목 자체는 그다지 틀린게 아닙니다. 다만 겪어보어 못한 그 조총이 집단운용됐을때의 상황까지 생각이 미치지않았을뿐.
이순신장군은 출격하라는 조정의 무리한 명령을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묵살함으로 병력을 보존했는데 신립이나 원균은 무리한 전략 목표를 가지고 작전을 수행하니 실패했던거구요 차라리 호란때처럼 농민군으로 방어하면서 기병으로 적 보급로만 공략했어도 좋았을텐데
@@유태경-p2s 의병들의 유격전에서 일본군의 조총이 활약하지 못 한 것은 조총이라는 무기도 어떤 부대단위 이상이여만이 구성이 되는 부대입니다
그냥 뭐 일본군이라고 해서 다 조총을 들고 다는 것이 아님니다. 본인이 지금 말씀하시는 소규모 공격이라는 것은 임진왜란 7년 내내 조선군은 일본군과의
소규모 전투에서 계속해서 승리하면서 꽤나 짭짤한 승리를 거두는 것이 사실입니다 왜냐 당시 일본군은 보병위주로 구성된 부대이기 때문에 현지에서 보급품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소규모 부대 단위로 각 마을을 약탈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약탈부대를 방어하고 지역방어를 한게 의병들입니다
그래서 임진왜란 때 500명 단위로 전투를 하는 공식이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겁니다 일본군이 500명이 넘어가면 의병들은 더 이상 공격하지 않고 후퇴를 합니다
그래서 일본군이 다시 대규모의 병력을 이끌고 오면 조선군과 의병들이 산성으로 들어가서 수성전을 하는 겁니다
그리고 이순신하고 신립과 원균을 언급하셨는데 이순신처럼 처음부터 전쟁대비를 한 부대하고 급하게 농민병을 이끌고 충추로 간 신립이랑 동일 선상에 놓고
본다는 시각부터가 잘못보고 있는 겁니다 앞에서도 설명을 했다 싶이 신립 입장에서는 당장에 충추가 떨어지면 한양이 공격을 받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순신과는
주어신 상황부터가 다른 겁니다 원균 또한 처음에는 본인이 할 수 있다고 말을 했다가 막상 통제사 자리에 앉아서 상황을 보니 이순신의 주장이 맞기 때문에
바로 출정을 하지 않고 계속해서 시간을 뒤로 미루었던 걸만 봐도 알 수가 있는 부분입니다 단지 계속해서 한양으로 부터 출정을 하라는 압력이 들어오니
마지못해 출정을 한 케이스인거죠
그리고 뭐 호란 때 처럼 농민군이 방어하면서 기병으로 적 보급로만 공략 했어도 좋았을텐데 라고 하는데 호란 때 기병을 조선군 보다 더 잘 활용하는 것이 청나라
팔기군인데 무슨 조선군의 기병으로 보급로를 공격을 합니까 그리고 신립이 충추에서 충추성에 들어가지 않고 성밖으로 나와서 전투를 한 것은
당시 조선은 군사적인 성이 별로 없는 나라입니다 대부분의 조선시대의 읍성들은 군사적인 역활을 할 수 없는 성들입니다 수성전을 할 때 적의 공성공격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성벽의 높이 6m 에서 8m 이상은 되어야 하는데 당시 충추읍성의 성벽 높이는 고작 3m에서 4m 수준의 성벽입니다
이런 성으로는 효과적인 수성전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 신립입니다 그리고 수성전을 한다고 했을때 그냥 성벽만 있다고 해서 끝이 아니에요 성벽 앞에 해자도
만들어져있어야 하고 성벽에 추가적인 방어 시설물도 구축이 되어 있어야 방어가 가능한 거지 그냥 뭐 성벽에 올라가있다고 끝나는게 아님니다
더욱이 신립이 충추성에 들어간다고 한들 이미 충추 말고도 추풍령 죽령 방면으로도 북상하고 있는 일본군은 뭐 어떻게 상대할여고 성안으로 들어간단 말입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잘만들엇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올해 안으로 꼬옥 가겠습니다.
그러고보니 삭장 부러진다는 언급보고 생각나는게 동시대 프로이센군의 혁신중 하나가 삭장을 나무에서 철로 바꿔서 부러지는 사고를 방지했다는건데 다른 나라들이 진작에 이렇게 안한거 보면 목재 삭장이 자주 부러지는걸 감안해도 강철 삭장보다 훨씬 쌌나요?
@최한석 그래도 5,6번 뽀개먹으면 쇠꼬챙기 값을 넘길것 같긴해서
@w hw 그래도 프로이센군이 했고 다른 나라도 따라한거 보면 실제 폭발 가능성이 그리 큰거 같진 않습니다
비용도 비싸고
다져넣다가 마찰로 인한 정전기 혹은 작은 불꽃 하나에 큰사고로 이어지니 안전성에서 부적합 하죠
국립 진주 박물관 일 잘하네
서울에서 천리길도 안되니 가야겠군요. ㅋㅋㅋ
흉폭한 야생의 조총병. 하지만 제 단백질원 이지요.
아 역시 무연화약 과 탄피의 발명은 엄청난거다
정말 장전에 1분정도 걸리네요
조총을 미리 장전해놓고 잠복 대기를 하지. 오랑캐가 나타나면 바로 조준하고 1발 사격을 바로 한다. 오랑캐 1명을 사살하고 재장전은 오래 걸리니 다른 오랑캐가 공격해오면 칼, 창, 활, 도끼로 전투한다. 적의 화살은 방패로 막는다.
조총병은 6명이 1조로 움직인다. 3명이 발사하고 뒤로 가서 재장전할 때 뒤에 3명이 바로 사격한다.
신기전, 총통의 화력 지원을 받는다. 비격진천뢰를 투척한다.
숨겨둔 총 꺼낼때 조선윅인줄
제생각에는 조총병 단1명만 움직이지는
않았을거라고 봅니다.
분명 삼수변의 체계로 인하여 3인1조로
움직였을테고 총을 잘쏘는 병사가 사수
나머지 2명이 장전수 역할을 했을거라고 봅니다.
또한 삼수변에 의해서 창병.총병.궁병
이렇게 구성 되었을수도 있고
아니면 등패병.총병.궁병 이렇게 구성 되었을수도 있습니다.
아무런 조치도 없이 영상에서 처럼 장전을
했다가는 20번은 넘게 죽었을겁니다.
삼수변이 아니라 삼 수병 입니다 그리고 화승총은 개인당 한명이 장전을 하고 사격을 합니다 조선 후기 이미 화승총의 4열 사격 진법이 나오는데 무슨 3인 1조로
움직였다는 근거가 어디서에 나오는 겁니까? 그리고 삼 수병 편제가 만들어지면서 살수들의 무장은 원앙진을 기준으로 편성이 됩니다 그리고 조선에서 사수를 유지하는 이유는
포수인 화승총이 장전시간이 길기 때문에 그 사이에 화력을 보강하기 위해서 사수를 유지하는 겁니다
@@MoonbomSunny사수 3명이 자리를 바꿔가면서 쏘는거 보다 사수1명에 나머지 2명이 번갈아가면서 장전 하는것이 연사력도 높일수있고 효율적이니까요
게다가 전열보병 처럼 일렬로 쏘는것 보다 은엄폐로 저격 하는것을 선호 했을것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삼수병은 척계광의 기효신서를 바탕으로 한 절강병법의 기초 진형 입니다.
3인1조로 기본편성을 해서 살수.포수.궁수 이렇게 3명이
한조를 이루는것이고 여기서 장창수 등패수 낭선수 까지 포함시키면 그 유명한 원앙진이 될것입니다.
게다가 조선군은 왜란이 끝난후
기효신서를 바탕으로 새로 재편성을 하였고 인원이 많다고 해도 이 삼수병체제에서 벗어나지는 않았다고 봅니다.
포수가 장전 할 동안 사수 는 활로 시간을 벌어주는 역할 이라면
마지막 1명 살수가 하는 역할은
적기병돌격을 장창으로 막거나
등패로 적의 총알이나 화살을 막는 역할이었다고 봅니다.
@@j8663 죄송하지만 그건 본인의 생각이고요 이미 조선 후기에는 4열 윤방이 나올 정도로 포수 한명이 혼자서 장전을 다 합니다 이미 사르후 전투나
병자호란 등에서 이미 입증이 된 사실입니다 그리고 전열보병 말씀하시는데 후장 식 소총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은 엄폐를 안 합니다 남북전쟁 때 까지만 해도 퍼커션 캡 방식의
뇌관만 발전 했지 총구로 장전하는 전장식인 건 변함이 없었습니다 은 엄폐를 안 합니다 물론 Sharpshooter 라고 명사수들이 등장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극 소수 입니다
Sharpshooter들의 소총 자체가 강선이 있는 소총에서 가축을 감싸서 전장식으로 장전하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는 은 엄폐를 하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삼 수병 편제를 잘못 이해 하고 있는데 삼 수병이라고 해서 살수 1명 사수 1명 포수 1명 이런 식으로 3인 1조가 아니라 원앙진으로 구성 된 살수부대들 있고
거기에 사수와 포수들이 같이 편제가 되어 있는 겁니다 3인 1조로 구성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살수를 중심으로 사수와 포수가 같이 편제가 되어 있는 걸 삼 수병이라고
하는 겁니다 조선 후기 삼 수병 체제는 병과를 나누는 기준으로 만들어진 편제 입니다
조선군의 가장 큰 문제가 군대 편제를 못 한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기 때문에 임진왜란과 호란을 경험하면서 살수 사수 포수라고 하는 병과를 만들어서 살수 중심으로
사수와 포수를 더해서 군대를 편제를 한 것이지 이걸 사수 1명 포수 1명 살수 1명 개념이 아니라구요
참고로 살수는 12명이 살수대를 구성합니다 살수대는 오늘날로 치면 1개소대 급입니다 말씀하신 기효신서에 나오는 원앙진이 12명의 살수들이 모여서 만들어지는 진법인데
3인 1조가 어떻게 나오는 건지 원
잘 만들었네 ㅋㅋㅋㅋㅋㅋ
저 박물관 가면 한 방 쏴볼 수 있나여?
남자가 장전을 했으면 무라도 쏴야죠
17세기에 간사람입니다. 조선활이 더쌔더군요
재밌네욬ㅋㅋㅋ
우리한테 조총이 많고 화약도 많이 생산가능했고 업글기술도 있었다면 어땠을까?
이미 임진왜란 때 부터 조총이 많이 생산이 되었고 문제는 화약입니다 조선은 멸망하는 내내 만성적인 화약부족에 힘들어 하는 국가입니다 화약에서 가장 중요한 질산칼륨을 확보하는데
어려움이 많았기 때문에 조선은 늘 화약 부족에 힘들어하는 국가였어요
서울에서 천리도 안되는 ㅋㅋㅋㅋㅋㅋ 꼭 가야겠습니다
슥...슥....슥....슥...
H3할때 못쐈는데 배워갑니다
찬조 출연: 작은 새 두마리😚
차라리 습사수(편전)가 낫겠다.
종이는 왜 넣는거에여?
아마 탄알사이에 있는 틈을 막는 역활인거 같은데요?
요즘이야 총구랑 탄이 거의 딱 맞아떨어지는데 저때만해도 탄알의 크기가 뒤죽박죽이라 조금이라도 화약 폭발에 의한 힘을 받게 해주려고 한거 같습니다
어차피 종이는 타거나 탄알이 충분히 관통하며 나갈테닌깐요
@@kaguya2241 그것도있구 탄이빠지지 말란의미도 ㅋㅋㅋ총통의경우 토격이라고 진흙을 다져넣음
총구 내렸을때 탄 빠지지 말라고
추노 에서도 조총으로 싸우는데 추노 해주었으면 좋겠다
동물의 왕국 : 조선의 정글
오랑캐의 천적 (수도가 따이며 왕이 머리를 박으면서)
덕분에 호랑이에게 물려죽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 국가 기관중 일 제일 잘하는 곳
아 잘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