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보고 있습니다. 평소 관심이 있던 말갈/여진/만주족을 어떻게 공부해야 하나 했는데 덕분에 이렇게 시작하게 되는군요. 굳이 하나 언급하면 이제는 수렵민은 유목민과 구별하는 듯합니다. 많은 공통점이 있긴 하지만 숲에 사는지라 유목민보다는 배타적이고, 사냥감 따라 이동도 하지만 어렵처럼 거의 정주하기도 하구요. 사냥활동이 주업이니 전투력은 더 강하다고 합니다. 다만 생산성이 떨어지니 인구가 적은 편이고, 유목민, 농경민보다 중심세력의 주변부 장악력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합니다.
고구려는 좀 애매함 일단 부여라는 나라 자체가 농업 기반의 정주 민족임.그 부여계의 한 부류가 고구려임.근데 고구려 건국 당시는 고구려라는 국명이 아니고 부여계 주몽과 졸본 토착 세력의 연합 독립체 인데 얘네 주 생산 활동이 유목이 아니고 약탈임.조공 약탈 그리고 일부 농업.고구려는 문명도 그렇코 정통 유목 국가는 아님.성을 쌓코 거주하는 정주 민족임.
고구려가 요동요서를 장악할때는 만주족은 고구려에 속한 여러 이민족중 하나였습니다. 원래부터 요동요서지방에 있었다기 보다는 지금의 몽골지역에 살다가 이주해온것으로 보입니다. 이들이 크게 거란과 여진족으로 나뉘어 고구려에 속했있었는데 이때는 고구려는 행정체계도 국가로서 부합하고 국가제도와 군대의 규모, 학문등 하나의 국가기능을 하였지만 거란,여진족은 일개 부족에 불과하여 나라를 이루기 보다는 고구려에 속해 살았던겁니다. 즉, 몽골초원에서 고구려로 이주하여 살았고 이후 고구려가 여진족을 군댈 양성하여 파견하는 내용도 있는걸 보면 한번도 국가를 이루지 못했던 여진족은 일종의 고구려내의 일반백성으로 여겨져 순명하여 살았던듯합니다. 하지만 고구려가 멸망후 거란족은 그 영향에서 벗어났고 대진국(발해)가 들어서면 약해진 고구려인들로 인해 여진족의 입김이 강해진듯 하고 이후 거란에 의해 발해가 멸망한후 그들을 통치할 고구려인이 사라지자 그때부터 독자적인 국가를 이룩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거란의 침입으로 여진족들에게 피해를 입혔고 이전의 발해가 있었을때처럼 방어를 해주는 방패막이가 없었으므로 여진이 직접 방어를 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군사를 기르고 행정을 하게되면서 국가의 기틀이 잡힌거지요. 이때 고려는 거란과의 관계로 인해 여진을 돌볼 여력이 안되었고 이후 여진의 힘이 커져서 금나라를 세운후에는 금나라와도 전쟁을 하게되면서 지금의 만주라고 불리는 지역에 대한 종주권을 우리민족이 완전히 잃어버린거죠. 물론 고려후기에 이성계에 의한 1차요동정벌때 잠시 절반정도의 국토를 되찾은적은 있습니다.
@@백수현-k1p 여진족도 정주민족입니다. 흔히 여진족을 유목민족이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여진족은 거란족과 달리 고구려치하에서 이민족으로 오래 살면서 정주민족으로 토착화되어 농업을 기반으로 하여서 가축도 기르고 살았습니다. 현재의 동북삼성지역은 밀림이 적고 수풀이 많은 지역이라 말을 기르고 타고 다니기에 좋았기에 여진족들 대부분이 말을 기르고 운행수단으로 삼았고 여진족 모두가 말타기에 익숙해서 기병육성이 쉬웠습니다. 그래서 여진족을 유목민처럼 여기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는 농업이 다수를 차지하고 유목은 일부였습니다. 고구려와 발해멸망후 거란의 침입을 막아줄 국가가 없었기때문에 여진족은 일종의 민병대를 조직할수밖에 없었고 이것이 발달하면서 큰 세력을 이루어 거란을 물리치고 금나라를 세운후 송나라의 절반을 집어삼켜 제국을 이룬거지요. 조선에서 여진을 정벌할때마다 밭과 토지를 태우고 집을 무너뜨리고 불태웠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여진족이 정주민족임을 입증하는 자료가 됩니다. 몽골족의 경우 밭을 경작하는 경우가 없고 집도 짓지 않았습니다.
영국 ITV의 중국 역사 관련 다큐를 봤는데 후금의 정치 체제가 거의 명나라의 몽골 지역의 정치 체제와 대체로 비슷했고, 여진족 주류 인구에서 만주족으로 개명했던 이유가 한족 문화와의 관계를 갑을 관계로 재정립할려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아는 여진족 후손들은 야인여진인 Nanai족 등이 있습니다. 후대의 만주족 입김에 덜 영향 받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여진족들은 유목민이 아니었습니다. 어업과 농업 위주로 했습니다. 우리가 아는 (야인여진을 제외한) 여진족은 명나라 시대 몽골의 통치 지식과 한족의 문화를 조금씩 받아온 퉁그스어 집단이라고 봐도 문제 없습니다. 즉 우리가 아는 만주어가 예전 여진어에 비해서 몽골어 단어가 갑자기 많아졌죠. 제가 느낀점이 있다면 우리가 아는 만주족은 몽골일부 문화와 많은 사상을 받았기 때문에 한국의 민족 연관이 없어졌다고 보시면 됩니다. 우리가 아는 '만주족이 한민족이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대체로 친일 역사관을 가졌기 때문이죠. 전통 조선시대 후기 역사관이 아닙니다.
우리와 여진족은 고조선에서 시작해서 부여, 고구려, 발해를 거쳐 금나라에서도 같은 나라 사람들 이였습니다. 근 4천년이 넘는 기간동안 같은 나라 사람이였던 거죠. 금나라 황제도 신라 혈통이란건 이미 만주족도 인정한 사실이죠. 금나라를 우리나라 역사에 넣지 않는게 이상한 일이죠. 아마 미래엔 우리 역사로 편입될겁니다.
고구려가 거대제국일때 구성원이 한반도인만으로만 이루어졌을 까 싶네요. 다른 부족들도 있었으리라 봅니다. 결국 다민족 사회로 가야 대국이 되리라 봅니다. 만주땅 회복을 야망하는 민족이라면 호의적으로 이민족을 바라봐야 합니다. 단일민족 한국가는 당시 권력집단이 처지에 맞게 한 이데올로기 입니다. 북한은 이미 타민족을 포함하고 있으리라 봅니다.
우선 삼국시대를 봐.....고구려 백제 신라...당시엔 각자 독립된 나라였잖아.....서로 얼마나 정복할려고 피터지게 싸웠는데......이미 여기서 부터 한민족은 다른 나라를 침략하지 않았다 라는 개소리는 앞뒤가 안맞는다는 거지....침략을 안하면 뭐 디게 착한 나라 이미지를 씌울려고 그딴 개소리를 하는데 착하긴 개뿔....... 국내 역사내에서도 서로 피비린내 나는 싸움들 투성이었는데....조선시대 당파싸움 봐라.....글쟁이들이 얼마나 권모술수 써가면서 피비린내 나는 살육을 벌였는지...
@@user-jjy1015 우리가 고구려라고 말하는 적통은 고구려의 지배층을 말하는 거.....대다수 이루었던 만주개떼놈들을 말하는게 아님.....고구려 나라에 속한 백성일지 몰라도 그들까지 우리의 적통으로 생각하는게 아님....지금 역사가 그리 말해......고구려의 피지배층....발해의 피지배층인 말갈 숙신 이런 애들을 우리 조상으로 연결짓지 않는다고.
여진은 단순 유목이 아니니까요 만주는 유목민과 정주민 사이 그 어딘가로 부족이라는 단어를 쓰지만 생활상 등을 보면 한반도 북쪽 주민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자체 문자도 있고 체계도 있었죠 말씀하시는 늬앙스로 봐서는 고대의 문명국가와 비문명국가의 차이정도가 있다고 착각하시는것 같습니다
잘 보고 있습니다. 평소 관심이 있던 말갈/여진/만주족을 어떻게 공부해야 하나 했는데 덕분에 이렇게 시작하게 되는군요.
굳이 하나 언급하면 이제는 수렵민은 유목민과 구별하는 듯합니다. 많은 공통점이 있긴 하지만 숲에 사는지라 유목민보다는 배타적이고, 사냥감 따라 이동도 하지만 어렵처럼 거의 정주하기도 하구요. 사냥활동이 주업이니 전투력은 더 강하다고 합니다. 다만 생산성이 떨어지니 인구가 적은 편이고, 유목민, 농경민보다 중심세력의 주변부 장악력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합니다.
역사돋보기님 ㅋㅋㅋ 곧 로마 도 다뤄주세요 항상 잘 보고있습니다
저도 로마사를 기대하고 있긴한데 역사돋보기님은 동아시아사만 다루지 않나요?
두 번이나 제국을 건설하고 대륙을 제패... 독보적이긴 하네요.
열등 종자 반도인들보다 훨씬 나음.^^
@@배달의기수-w7e 한반도는 고조선 부터 시작한 긴 역사를 가진 민족이고 동북아시아 역사에서 항상 중요한 한 축을 담당했다. 열등하다고 보는 건 부적절함
궁금한게 여진 만주족이 고구려 유민들과는 관계가 없나요? 이에관해 영상 만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고구려는 다민족국가라던데.
고구려는 좀 애매함 일단 부여라는 나라 자체가 농업 기반의 정주 민족임.그 부여계의 한 부류가 고구려임.근데 고구려 건국 당시는 고구려라는 국명이 아니고 부여계 주몽과 졸본 토착 세력의 연합 독립체 인데 얘네 주 생산 활동이 유목이 아니고 약탈임.조공 약탈 그리고 일부 농업.고구려는 문명도 그렇코 정통 유목 국가는 아님.성을 쌓코 거주하는 정주 민족임.
고구려가 요동요서를 장악할때는 만주족은 고구려에 속한 여러 이민족중 하나였습니다. 원래부터 요동요서지방에 있었다기 보다는 지금의 몽골지역에 살다가 이주해온것으로 보입니다. 이들이 크게 거란과 여진족으로 나뉘어 고구려에 속했있었는데 이때는 고구려는 행정체계도 국가로서 부합하고 국가제도와 군대의 규모, 학문등 하나의 국가기능을 하였지만 거란,여진족은 일개 부족에 불과하여 나라를 이루기 보다는 고구려에 속해 살았던겁니다. 즉, 몽골초원에서 고구려로 이주하여 살았고 이후 고구려가 여진족을 군댈 양성하여 파견하는 내용도 있는걸 보면 한번도 국가를 이루지 못했던 여진족은 일종의 고구려내의 일반백성으로 여겨져 순명하여 살았던듯합니다. 하지만 고구려가 멸망후 거란족은 그 영향에서 벗어났고 대진국(발해)가 들어서면 약해진 고구려인들로 인해 여진족의 입김이 강해진듯 하고 이후 거란에 의해 발해가 멸망한후 그들을 통치할 고구려인이 사라지자 그때부터 독자적인 국가를 이룩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거란의 침입으로 여진족들에게 피해를 입혔고 이전의 발해가 있었을때처럼 방어를 해주는 방패막이가 없었으므로 여진이 직접 방어를 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군사를 기르고 행정을 하게되면서 국가의 기틀이 잡힌거지요. 이때 고려는 거란과의 관계로 인해 여진을 돌볼 여력이 안되었고 이후 여진의 힘이 커져서 금나라를 세운후에는 금나라와도 전쟁을 하게되면서 지금의 만주라고 불리는 지역에 대한 종주권을 우리민족이 완전히 잃어버린거죠. 물론 고려후기에 이성계에 의한 1차요동정벌때 잠시 절반정도의 국토를 되찾은적은 있습니다.
@@백수현-k1p 여진족도 정주민족입니다. 흔히 여진족을 유목민족이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여진족은 거란족과 달리 고구려치하에서 이민족으로 오래 살면서 정주민족으로 토착화되어 농업을 기반으로 하여서 가축도 기르고 살았습니다. 현재의 동북삼성지역은 밀림이 적고 수풀이 많은 지역이라 말을 기르고 타고 다니기에 좋았기에 여진족들 대부분이 말을 기르고 운행수단으로 삼았고 여진족 모두가 말타기에 익숙해서 기병육성이 쉬웠습니다. 그래서 여진족을 유목민처럼 여기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는 농업이 다수를 차지하고 유목은 일부였습니다. 고구려와 발해멸망후 거란의 침입을 막아줄 국가가 없었기때문에 여진족은 일종의 민병대를 조직할수밖에 없었고 이것이 발달하면서 큰 세력을 이루어 거란을 물리치고 금나라를 세운후 송나라의 절반을 집어삼켜 제국을 이룬거지요. 조선에서 여진을 정벌할때마다 밭과 토지를 태우고 집을 무너뜨리고 불태웠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여진족이 정주민족임을 입증하는 자료가 됩니다. 몽골족의 경우 밭을 경작하는 경우가 없고 집도 짓지 않았습니다.
사실 여진이 고구려임
영국 ITV의 중국 역사 관련 다큐를 봤는데 후금의 정치 체제가 거의 명나라의 몽골 지역의 정치 체제와 대체로 비슷했고, 여진족 주류 인구에서 만주족으로 개명했던 이유가 한족 문화와의 관계를 갑을 관계로 재정립할려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아는 여진족 후손들은 야인여진인 Nanai족 등이 있습니다. 후대의 만주족 입김에 덜 영향 받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여진족들은 유목민이 아니었습니다. 어업과 농업 위주로 했습니다.
우리가 아는 (야인여진을 제외한) 여진족은 명나라 시대 몽골의 통치 지식과 한족의 문화를 조금씩 받아온 퉁그스어 집단이라고 봐도 문제 없습니다. 즉 우리가 아는 만주어가 예전 여진어에 비해서 몽골어 단어가 갑자기 많아졌죠.
제가 느낀점이 있다면 우리가 아는 만주족은 몽골일부 문화와 많은 사상을 받았기 때문에 한국의 민족 연관이 없어졌다고 보시면 됩니다. 우리가 아는 '만주족이 한민족이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대체로 친일 역사관을 가졌기 때문이죠. 전통 조선시대 후기 역사관이 아닙니다.
1:30 조인사&퉁소
역시 세종대왕은 과학 농업 국방 문화 모든방면에 천재적이였네.
노비종모법
그런데 마오쩌둥보다 형편없어
@@trader1693그거 아버지가 노비가 아니면 자식은 신분이 노비가 아니니까 이를 악용해서 사회적 병폐가 심각해서 바꾼거지. 앞맥략다자르고 그것만 보면 뭔의미가 있냐...
@@춘원이광수-y9s????
적어도 수천만을 굶겨죽이진 않으셨다.
@@춘원이광수-y9s조선족
흉노 돌궐 몽고 거란 여진 등등 수많은 북방 기마민족들이 유라시아나 중국에 거대제국을 세웠는데 유독 조선민족 만이 그렇지 못한 이유를 역사학자들은 시원하게 밝혀주시요?
우리와 여진족은 고조선에서 시작해서 부여, 고구려, 발해를 거쳐 금나라에서도 같은 나라 사람들 이였습니다. 근 4천년이 넘는 기간동안 같은 나라 사람이였던 거죠. 금나라 황제도 신라 혈통이란건 이미 만주족도 인정한 사실이죠. 금나라를 우리나라 역사에 넣지 않는게 이상한 일이죠. 아마 미래엔 우리 역사로 편입될겁니다.
고조선 부여 고구려 터전인 만주를 여진족이 자신들의 고향이라 부르니? 어찌된 말인가? 같은 조상? 아니면 이민족으로서 함께 섞여 살았던 말인가?
그 당시에는 만주라는 말 대신 심요라고 불림
여진족들 이름은 참 특이해
한자로 이름을 안지으니 당연한거지...우리도 원래 저런 이름이었을텐데 중국식 한자명칭을 써서 이모냥 요꼴이 된거잖아.....
@@centurionrome8161 나도 알아 걍 느낀점 말한거임 ㅋ 애초에 우리나라 고대인들 이름부터가 특이한데
0:09 만주족이 중국사라고 하면 심요-말갈-여진-만주족이 다 중국사가 되는거고
그럼 연방으로 같이 있던 고구려, 말갈인들과 고구려인들이 주를 이뤘던 발해까지 다 중국이라는 터무니 없는 주장이 진실이라는것과 다름이 없지 ㅋㅋ
고구려가 거대제국일때 구성원이 한반도인만으로만 이루어졌을 까 싶네요. 다른 부족들도 있었으리라 봅니다. 결국 다민족 사회로 가야 대국이 되리라 봅니다. 만주땅 회복을 야망하는 민족이라면 호의적으로 이민족을 바라봐야 합니다. 단일민족 한국가는 당시 권력집단이 처지에 맞게 한 이데올로기 입니다. 북한은 이미 타민족을 포함하고 있으리라 봅니다.
애초에 고구려는 한반도인 역사라고 볼수 없음. 왕족 부터가 부여에서 남하한 세력인데 우리 한국사람중에 부여 사람 몇명이나 됨? 그냥 중국 지방 정권. 혹은 만주의 역사라고 보면 됨. 우리 한민족은 한반도 중남부의 마한 진한 변한의 후예들이고
중국을 먹으면 제국이 된다. 중국엔 먹을게많고 조선은 먹을건없는데 귀찮은 일은 많아.이런생각이 북방민족의 기본생각이야
중국사도 유목민족사도 아님 여진족은 수렵 농업 어로 민족에 더 가까움
여진족이 한반도만 정벌을하여 옛 고구려영광을 살렸어야했는데
여진족은 유목 민족이 아님
정확히 반유목정주민족이지.
그래서 중국에서도 여진이10만명만 있어도 중원이 날라간다고 두려워 했음
@@user-jjy1015 '여진족 1만명이 모이면 대적할수가 없다' 이고 중국에서 한말도 아니고 거란족이 여진족 보고 한 말인데
왜 자꾸 중국 + 10만이라고 그러는지 모르겠네
여진족은 여진을 주센으로 발음해요.
조선과 아주 비슷하죠.
우리도 저들도 고조선의 후예로 생각하고 사실상 그 지역적으로 여진족, 만주족은 고구려죠.
위키피디아 참조, 도올 김용옥 유투브 강의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라메? 평화는 개뿔.
우선 삼국시대를 봐.....고구려 백제 신라...당시엔 각자 독립된 나라였잖아.....서로 얼마나 정복할려고 피터지게 싸웠는데......이미 여기서 부터 한민족은 다른 나라를 침략하지 않았다 라는 개소리는 앞뒤가 안맞는다는 거지....침략을 안하면 뭐 디게 착한 나라 이미지를 씌울려고 그딴 개소리를 하는데 착하긴 개뿔.......
국내 역사내에서도 서로 피비린내 나는 싸움들 투성이었는데....조선시대 당파싸움 봐라.....글쟁이들이 얼마나 권모술수 써가면서 피비린내 나는 살육을 벌였는지...
?
농경 유목 민족 ㅡㅡ
우리고대중세 상위호환
조선군사 최전성기 시절이 세조때구나. 그때 요동정벌만 했더라면ᆢ
명나라가 멀쩡히 있어서 요동은 절대 불가능이죠 ㅋㅋㅋㅋㅋ
그때는 명나라도 조선도 한창 전성기시절이라 요동을 어케먹음ㅋㅋㅋㅋ
이성량은 조선출신
그게 영토확장이냐?😂😂
여진족이 곧 지금의 중국인이니 만주 역사는 중국역사
말이 각각의 여진이지 고구려의 후손의 민족임.
환빠
@@삼한고구려 후손이긴 함.
대신 고구려가 연방제였다는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지.
그뿐만아니라 고구려의 후계국인 발해에서도 만주의 선조인 말갈족도 다수 있었고.
@@user-jjy1015 우리가 고구려라고 말하는 적통은 고구려의 지배층을 말하는 거.....대다수 이루었던 만주개떼놈들을 말하는게 아님.....고구려 나라에 속한 백성일지 몰라도
그들까지 우리의 적통으로 생각하는게 아님....지금 역사가 그리 말해......고구려의 피지배층....발해의 피지배층인 말갈 숙신 이런 애들을 우리 조상으로 연결짓지 않는다고.
그는 남방 객가 모택동 호남성 장사출신
고조선 건국 신화 호랑이 토템 종족
=예족=여진족
만주 역사중에 진짜 궁금한게 고구려가 망한후에 고려유민+말갈족으로 발해가 됐잖아요? 근데 발해가 망했다고 그 지배층이 흩어졌다고 해도 어떻게 야인여진 같이 무식한 집단이 그쪽땅을 지배할수있었을까요? 문명이란게 있는데 지배층 없어졌다고. 문명이 그렇게 퇴보하나요?
여진은 단순 유목이 아니니까요 만주는 유목민과 정주민 사이 그 어딘가로 부족이라는 단어를 쓰지만 생활상 등을 보면 한반도 북쪽 주민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자체 문자도 있고 체계도 있었죠 말씀하시는 늬앙스로 봐서는 고대의 문명국가와 비문명국가의 차이정도가 있다고 착각하시는것 같습니다
여진은 원래 흑수말갈이었고 속말말갈 지배층인 발해에 속한 나라였습니다. 문화적으로 당시 거란만큼 무지한게 아니었습니다.
무슨 고구려가 초고대문명 정도 되는줄 아는가? 국뽕도 적당히
ㅉ
그때 신라 유민이 완안부를 장악 했고, 여러 명장들이 몰빵해서 나타나서 그래 ㅋㅋㅋ
청나라에 병자호란이후 고두배이후 반도는 청조에 속한 나라이다. 사찰 지주 당간에 모두 순치. 강희. 건륭 연호를 흔것으로 보아 한반도는 이씨조선의 영멱에서 벗어나 청의 지배지가 되었다.
그는 한때 북경대 사서 직원으로 있엏다.진독수의 영향 받앟고 평생 목욕을 하지 않은 외골수 사이코 였다.
봉쇄의 문화혁명기간 대륙 고려 몬홰재 60프로 파괴했지. 하늘과 땅과 사람의 정신을 오영시키며 크게 ㅋ뻐햇지
고구려 신라의 백성들 = 여진 = 만주 한민족 이런 내용 부탁해요!! 국뽕 차고 싶어요!!!🤣🤣🤣🤣🤣🤣🤣
역사돋보기는 여진 신라인설 부정했을 걸요..?
환빠 버러지들 말고 그거 인정하는사람 있냐?
국뽕은 정신병. Period.
환빠버러지들은 환빠버러지들 모여잇는 체널로
고구려 발해시절에 같은나라로 같이산적은 있어도 같은민족은아님ㅋㅋㅋ
그냥 우리랑 같은 지붕아래서 살았던 적 있는 다른 민족인거지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