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으로 조선은 망했는데 일본은 억만금을 벌 수 있었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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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22 окт 2024

Комментарии • 359

  • @Joseon-Dynasty
    @Joseon-Dynasty  Год назад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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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tivejin9281
    @stivejin9281 Год назад +285

    웃긴건 잡혀간 도공들이 나중에 조선으로 돌아가길 거부했다는거죠.. 돌아가면 다시 관노비생활, 일본에선 장인대접 받으며 사니...

    • @xzxzxzxz9892
      @xzxzxzxz9892 Год назад +79

      도자기 도공들 일본에서 가문까지 차림ㅋㅋ 애휴

    • @gayile5351
      @gayile5351 Год назад +65

      이삼평이 한국에선 걍 잡혀간 불쌍한 도공 취급인데
      알고보면 나베시마 가문에서 도자기 만들라고 아리타에서 공방까지 차려준거임ㅋㅋㅋㅋㅋ

    • @먹고싶어고기가
      @먹고싶어고기가 Год назад +62

      이후 조선도공들이 밀항까지 해서 일본을 들어갔다네요.

    • @조선의절반은노비
      @조선의절반은노비 Год назад

      지금도 유튜브보면 외국인출연자들보고
      ~~~씨 한국 귀화해줘서 고마워요~~ 하잖아. 그거랑 똑같은거임.
      개백정 노비 인간쓰레기였던 내가 이세계에선 장인대접?!?!?!
      평생 일본충성한다

    • @김백작-p9w
      @김백작-p9w Год назад

      지금의 그도공 들이 일본 정치와 경제를 이끌고 있슴~~

  • @jhs2645
    @jhs2645 Год назад +328

    ㄹㅇ 조선은 상처 뿐이었던 승리. 상처가 그렇게 많이 났으면 싹 갈아엎기라도 했어야 했는데 그마저도 못하고 그대로 다른 의미로 전설인 시대 '조선 후기'로 넘어가버림

    • @only2sea
      @only2sea Год назад +68

      조선 왕들은 도공들 반환해 달라고 요청 안 하고 조선 임금 묘에 침범한 일본인들 보내달라고 함. ㅋㅋㅋ

    • @xzxzxzxz9892
      @xzxzxzxz9892 Год назад +36

      @@only2sea 10선비 그자체ㄷㄷ

    • @only2sea
      @only2sea Год назад +4

      @@xzxzxzxz9892 나더러 욕하는 줄 알았네 ㅋㅋㅋ

    • @only2sea
      @only2sea Год назад +35

      하긴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 이전에는 왕가가 더 중요하지 국가 경제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의 전환이 잘 안 이루어졌다고 봐서 이해할 수는 있지만, 맨날 백성 타령하는 맹자 민본주의 유교사상이라는 것도 그냥 말 뿐이라는 걸 보여줌.

    • @Tyrantiousion
      @Tyrantiousion Год назад +13

      그나마 붕당으로 조선 전기보다 발전했지만 그걸 숙종이 환국정치하면서 '세도정치' 헬게이트 열리면서 나라가 망할 직전으로 감ㅋㅋ

  • @ciaosoyeon
    @ciaosoyeon 9 месяцев назад +3

    재미있게 잘보고있어요. 초등 아들과 역사 책 보고 여기와서 영상도봅니다 한중일 세나라가 긴밀히 엮여있어 책으로 임진왜란 읽고 여기와서 영상을 통해 각국의 입장에서 전쟁을 바라보게되고, 또다른 시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댓글들도 열심히 아이랑 봅니다. 이런영상을 보고 비평적인댓글 달거나 식견을 나누는 귀한 자리라 댓글로도 어른세상을 배웁니다. 아이랑 베스트 댓글찾고 이유 생각해봅니다. 정말 유익한영상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jftyu6729
    @jftyu6729 Год назад +80

    옛 네델란드 지역인 현재 벨기에 지방에 가보니 17세기에 일본에서 도자기 수입했다는 기록이 도시에 있었던 이유를 이제 알겠네요
    국적이 달라도 신분차별하지 않고 재능을 귀하게 여기고 알맞은 보상이 있으니 국가적으로 부유하게 되었나봐요

    • @야생의호잇
      @야생의호잇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11

      일본만큼 신분으로 차별받은 나라가 극히 드뭄 거의 인도의 카스트 제도급으로 일본의 장인정신이라는건 태어날때부터 부모의 직업을 이어받지 않으면 살아갈수가 없었음

    • @starfishtouge
      @starfishtouge 9 месяцев назад +3

      봉건신분제 때문에 영주계급들이 영유하는 사치품교역과 사교가 발달한건데요; 봉건제요 봉건..

    • @크립토사무라이
      @크립토사무라이 9 месяцев назад +5

      @@야생의호잇 천민출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최고의 자리에 앉은것만 봐도 신분차별이 얼마나 심한지 알수가있지

    • @지승혁-p3t
      @지승혁-p3t 9 месяцев назад +9

      ⁠@@naidoku5334사람들이 오해하는게 있는게 일본 전국시대가 진행되던 전란의 시기에는 재능이 있으면 얼마든지 신분차별에 탈출할수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도요토미도 출세할수 있었던거구요
      전국시대 이후 평화기인 에도막부에 들어서면서 다시 신분 이동이 불가능 하도록 억제하였습니다

    • @지승혁-p3t
      @지승혁-p3t 9 месяцев назад

      어찌보면 둘다 맞는 말인데 일본 역사적 기간을 따져 신분이동을 억제한쪽이 많았더나 아니면 자유로운 신분 차별이 많았더냐를 구분한다면 신분이동이 안된쪽이 많았습니다 각자 자기 자리를 지키며 맡은 바에만 최선을 다하는거밖에 할수 없었기에 장인정신이 나올수 있었다고 봅니다

  • @dominion8998
    @dominion8998 Год назад +26

    정말 잘봤습니다 고려의 도자기 제작기술이 일본에 흘러들어가서 많은일본이 많은 이득을 봣지만 조선은 별 이득을 보지 못한게 아쉽네요
    현대의 한국도 기술발전과 기술자 대우에 많은 투자를 하여 더 나은 한국이 되길 빕니다

  • @conut933
    @conut933 Год назад +18

    좋고 유익한 영상
    美친 퀄리티
    깜칙한 캐릭터
    좋은 목소리
    오늘도 영상 잘보고 감니당

  • @Moresteponemore
    @Moresteponemore Год назад +23

    저 발전 된 도자기를 해외로 수출하면서 거기에 포장된 우키요에를 보고, 고흐, 마네 등이 큰 감명을 받아 자포니즘이라는 하나의 양식을 만들어 냄.

  • @D0ne000
    @D0ne000 Год назад +24

    완성도 대박이엥요
    적지않은 분량인데 삼일만에 업데이트
    어떻게 올리신거에옄ㅋㅋㅋㅋ
    내용 대본 화면 등등
    피땀정성들여 만드신게 다 느껴져요
    학부시절 공모전했던게 떠오르네요 ㅠㅠ
    무엇보다 이해하기 쉬워서 감동❤
    숙종 영조 파트도 기다릴게요

    • @Joseon-Dynasty
      @Joseon-Dynasty  Год назад +4

      노고를 알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ㅠ
      덕분에 힘 내서 더 재밌는 영상 만들어볼게요!

  • @minahlee5363
    @minahlee5363 Год назад +10

    기술자들과 무신들 박대하더니, 한일 합방은 안일어날 수가 없었네요. 구국영웅도 매번 나타나주는것도 아닐테고, 나타나더라도 나라가 너무 심하게 기울어지면, 구하기 힘들겠죠.

  • @shkang8058
    @shkang8058 Год назад +7

    일본에서 다도 문화에 쓰이는 식기가 우리나라에서 개밥그릇으로 쓰는 막사발이였는데 일본은 도자기를 만들 능력이 없어서 우리나라에서 거져 주는 걸 일본에서 엄청 비싸게 팔아서 귀족 아니면 도자기는 구경도 못했죠.
    그래서 임진왜란 때 도자기 장인들 납치 해서 자기나라로 데려 가서 장인 취급하면서 극존중을 해줬고 우리나라에서 천대만 받던 도자기 장인들이 일본에 눌러 살면서 지금 동양의 도자기하면 일본을 떠올리게 됐죠.
    오늘날에도 똑같이 기술자들은 노가다꾼으로 천대하고 영어 잘하면 똑똑한 사람 취급하는 dna가 아직 남아 있죠. 기술자 천대 하다가 지금 어떻게 됐는지 겪어 놓고도 뿌리깊게 박힌 사대 주의 사상은 벗어 날 수가 없나봅니다.

  • @홍동백서-z7w
    @홍동백서-z7w Год назад +23

    너무 아쉽다..
    또 한가지 연은분리법이 있었죠..
    조선실록에 기록된 화학실험중 하나였죠
    연은분리법을 통해 조선에서 은이 대량으로 유통되었고
    실록에서도 "조선 명 국경일대 은이 대량유통되었다"
    "연은 분리법으로 북경의 물가와 비슷해졌다"
    "명나라 사신들이 은을 수레에 가득담아 간다"등등
    허나 연산군의 폐위와 함께 조선역사에서 사라지면 이 기술은 1526년 일본으로 넘어감으로써 일본을 세계2위 은생산국을 만들어주고 그 은의 생산량을 바탕으로 도요토미는 군자금 , 국고 재정을 확충함과 동시에 서양과의 무역을 통해 일본을 통일하고 임진왜란을 일으킬수있는 원동력이 되었죠..
    이미 중국은 송-명-청때만 하더라도 은본위제도로 은의 중요성을 알고 심지어 아편전쟁또한 영국의 은이 중국으로 대량유출되는 사태가 발생하니 일으킨 전쟁인데 조선은 약 300년후에나 갑오개혁때 은본위제...
    얼마나 시대에 뒤떨어지고 국제정세가 없었던 국가인지
    개인적으로 연은분리법을 통해 상공업을 발전과 함께 세수확충을 할수 있었더라면 역사가 바뀌었을꺼라 생각함..
    정복전쟁이라던지 또는 기득권을 달달볶으면서 라던지 정책적으로도 큰 부담없이 국가재정을 확충할수있는거였는데..
    무에서 유를 창조한 신기술이였는데..

    • @JK-xy3zn
      @JK-xy3zn 8 месяцев назад

      이 얘기를 많은분들이 모르심 ㅠ너무나 안타까운일인데. 현재의 우리도 정신차려야합니다 ㅠ

    • @수집쟁이드라하카
      @수집쟁이드라하카 7 месяцев назад

      조선도 아주 허접은 아닌긴 한데
      참 갈수록 가관인게 삼치 문약 조선이라
      군사는 약해
      기술과 가능성이 있어도 그냥 썩혀
      부유함은 떨어져
      외교는 그냥 명나라만 최고라 생각하고 태평무사해
      집권자들은 솔선수범은 고사하고 자기 안위만 챙겨
      신분제는 상대적으로 가장 단단해
      학문이라곤 성리학 원툴에 다른걸로도 생각도 안하고
      사고관이 그냥 거대담론만 이야기 하고 행동이 없고 같은 성리학이라 해도 타국과 비교되고
      밖으로 큰소리 내지 못하고 자국내에서 자기보다 약한 백성들에게 갑질만 일삼아
      그냥 안정적인걸 안주만 하고 태평무사하죠
      쯧 장점보단 단점이 더 많죠

    • @PunchCat-i5j
      @PunchCat-i5j 6 дней назад

      이거 ㄹㅇ 이게 일본이 조선을 뛰어넘는 큰 변환점이됨

  • @sedumits8231
    @sedumits8231 Год назад +28

    애초에 임란때 망했어야할 나라임

  • @상승-z2q
    @상승-z2q Год назад +20

    당시 조선은 도공들을 천민취급했고, 일본은 데려가서 좋은대접에 벼슬도 주니 나중엔 끌려갔던 동생이 형을 데리러 온 사건도 있었죠,,
    높은 예술적 가치를 가지고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서 답답 했었는데, 요즘 k팝 드라마로 인정 받고 있는 시점에 잘 지키고 가꿔야 할듯 합니다..

    • @상곤이-c5l
      @상곤이-c5l 9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제가 이런 글을 올리려고 했는데 먼저 올리셨네요.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그 능력과 가치를 알아주는 곳에서 빛을 발휘합니다. 조선시대때 도공들에 대한 대접은 많이 아쉽지만 옛일을 거울 삼아 오늘과 내일을 위해 능력있는 사람들이 충분히 그 것을 발휘하도록 대접하는 우리나라가 되기를. . .그렇게 된다면 우리나라만세입니다.

  • @가민-w8z
    @가민-w8z 9 месяцев назад +7

    근데 도자기 장인 입장에서는 최고의 기회이지 않았을까.. 조선에서는 천대받던 직업인데 일본에서는 좋아했으니깐…

  • @후라이팬-x3e
    @후라이팬-x3e Год назад +60

    나라가 강해지려면 경제력이 있어야 되는데 상업을 천시하고 주구장창 성리학이랑 농업에만 목메고 있으니 나라가 잘될리가

    • @GYAV
      @GYAV Год назад +6

      그것도 오늘날 시각이지요
      당시에는 상업이 결국 돈을 밝히게 되고 돈때문에 죽냐 사냐, 빈부격차도 심해지고, 조선정부는 이거 싫다 이렇게 하지 말자 해서 상업을 등한시한거죠. 농업은 당장 먹고 살 문제, 성리학은 집권기득권들의 명분을 제공하는 이데올로기였

    • @afta-u8g
      @afta-u8g Год назад +5

      당장 먹고살기 힘든데 뭘하라는 건가요? 농업은 당연히 1순위이고 특히 이모작도 하삼도 한정으로 겨우하는 한반도에서는 농업 문제는 심각합니다.
      고려말에 산에 올라가 도토리를 주워먹으며 연명했던 시절은 전혀 모르니까 농업을 천시하는 겁니다. 당시 삼모작 안되는 동아시아 국가는 조선과 만주 둘뿐입니다.
      어떤 산업을 하든 자원과 기술이 있어야하는데 기후가 사납고 자원이 풍족하지 않은 한반도는 결국 한계가 있어요. 활과 화약조차 재료는 자급자족이 불가능하고 수입해서 만듬.

    • @자라라모발아
      @자라라모발아 Год назад +3

      신분제 유지하기 위해선 정당화 할 명분이 필요했죠.
      그 명분이 성리학이고, 그 성리학을 유지시킬 수 있는 정책이 중농억상이죠.
      상업활동으로 신분을 무시할 정도로 돈을 벌면, 성리학 사회가 유지되기 힘들죠.

    • @hsh6036
      @hsh6036 Год назад +2

      일단 잉여생산물이 넉넉해야 상업이고 뭐고가 가능한겁니다. 근데 조선 초기는 인구수에 비해 농사가 안돼서 잉여생산물이 넉넉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명나라가 해금령 때리고 바다를 걸어잠군 상황이니 상업을 어떻게 살리나요
      조선후기 상업이 조금씩 살아난 이유도 모내기로 인해 2모작이 가능해져 농업생산량이 급증해서 가능한거였습니다. 그리고 모내기는 물을 엄청나게 잡아먹는 농법이라 수리시설을 진짜 대규모로 지어도 가뭄 크게 터지면 농사 망해서 대기근 터지는 리스크 큰 농법이였습니다

    • @hsh6036
      @hsh6036 Год назад +4

      ​@@afta-u8g ㄹㅇ 일본과 비교하면서 조선은 왜 상업 안키움 ㅇㅈㄹ히는데
      일본은 대부분 지역이 부산과 비슷하거나 부산 이남의 따뜻한 지역이라 이모작이 가능한데 한국은 하삼도에서조차 모내기라는 신 농법을 써야 될까말까한 척박한 환경이라는 것을 고려를 안함

  • @좋아요-g8o
    @좋아요-g8o Год назад +7

    잘 보고 있어요

  • @paxyujina2024
    @paxyujina2024 Год назад +16

    도자기 뿐만 아니라 조선이중종때 자체개발하여내다 버린 세계최초은제련기술 가져다 엄청벌었으요 얄본이16~17세기 은생산 점유율 세계 40%차지 이당시 은제련기술은 얄본이 유일했음 후에 스페인이 받아들여 스페인이 비약적으로 발전😢

    • @xzxzxzxz9892
      @xzxzxzxz9892 Год назад

      @춘 식 연은 분리법 넘어갔죠 애휴

    • @dominion8998
      @dominion8998 Год назад +1

      연은 분리법도 안타깝습니다

    • @뇌피셜을팩트인냥
      @뇌피셜을팩트인냥 9 месяцев назад

      연산군때 개발돼서 장녹수 측근들이 은광사업 독점하고 연산군이 사치를 해서 중종때 금지한 기술입니다 그걸 한 대신이 일본에 건네주고 하필 일본에 세계 최대 미나미 은광이 있어서 일본은 떼돈을 벌어서 무기사서 임진왜란 일으키고 메이지 유신 성공해서 조선을 침략하죠 일본은 625때도 그렇고 역사적으로 조선을 발판삼아 일어난 나라죠

  • @연자강-k6q
    @연자강-k6q Год назад +7

    이번편 퀄리티 대박이네요😊
    감사히 잘보겠습니다

  • @이름성-c1o
    @이름성-c1o Год назад +6

    나레이션이 챡챡 감기네요ㅋㅋㅋ인여상&왕즐 일러스트 넘 귀엽습니다
    채널 더 커졌으면 좋겠네요😌

  • @dexter8820
    @dexter8820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8

    일본은 통일신라 시대부터 인구가 3배나 많았습니다.
    왜냐하면 일본은 벼농사가 잘되는 여름에는 덥고 비도 많이 내리는 지역이었습니다.
    대항해 시대때 일본은 은도 엄청나게 많이 생산되는 지역이었습니다.
    그당시 멕시코와 더불어 세계 2대 은생산지였습니다.

    • @dexter8820
      @dexter8820 9 месяцев назад

      @@가불-w1k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 @식칼리오
      @식칼리오 9 месяцев назад +4

      신라의 삼국 통일 전쟁 때 백제가 황산벌에서 계백이 5 천 결사대로 나당 연합군에 맞섰는 데 이후 백제를 구원하기 위해서 일본이 백제에 보내준 군사가 삼만명 이었다..그것도 배로 보내준 군사가.......임진왜란 때 일본이 보유한 조총의 숫자가 이미 전유럽 보다 많았음. 이미 넘사벽 강데국

    • @PunchCat-i5j
      @PunchCat-i5j 6 дней назад

      당시 일본이 막대한 은자를 뽑아낼 수 있던건 단순히 은이 많기 때문이 아니라 조선에서 건너간 연은분리법으로 자연상태에서 납과 결합된 은 혼합물에서 순도높은 은을 높은 수율로 뽑아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임.
      정작 조선은 이걸 개발해놓고도 은 생산을 장려하던 연산군이 폐위되자 사치를 장려한다며 은광을 폐광시키고 이 기술을 소홀히 여기다가 기술자들이 일본으로 넘어가서 망한거임.

  • @궁물에밥한끼
    @궁물에밥한끼 Год назад +17

    16세기까지 도자기를 만들수잇는 나라는 중국 조선 베트남 밖에 없었는고 이게 임진왜란으로 일본에 넘어갔고 유럽은 18세기에 가서 만들수있엇음 그래서 18세기 이전 유럽에서는 그집에 도자기를 얼마나 가지고가 있는가가 부의 가치가되었죠

    • @afta-u8g
      @afta-u8g Год назад +5

      그 시대면 유럽이 기술이랑 생산설비 둘다 최강으로 거듭났고 중국, 일본산은 골동품으로서의 가치밖에 없어요. 진품명품에 나오는 물건들처럼요. 생활용품에서 졸업당함.

    • @조세현-d2x
      @조세현-d2x Год назад +2

      저기요 19세기면 1800년대에요 ㅋㅋㅋ 비행기가 19세기에 떳습니다 무슨 도자기를 19세기까지 못만듭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궁물에밥한끼
      @궁물에밥한끼 Год назад +1

      1600년대 말 네덜란드 등에서 중국 도자기를 똑같이 만들려고 했지만 수많은 시도 끝에 1709년 독일에서 도자기의 핵심 원료인 고령토를 발견해 단단하고 하얀 자기의 몸통을 빚는데 성공했습니다

    • @후앙-i9v
      @후앙-i9v Год назад +3

      1800년대 들어서야 가마온도를 올리는데 성공함

    • @jskim8418
      @jskim8418 9 месяцев назад +2

      1800년대 영국에선 지하철이 개통되는데 한국선 구석기시대처럼 흙으로 도자기를 굽고있음

  • @백경-u8t
    @백경-u8t 24 дня назад +1

    지금도 중국은 최고위층에 이과, 공대 출신이 많음. 습근평도, 호금도도

  • @afta-u8g
    @afta-u8g Год назад +9

    한반도는 예나 지금이나 기술이 가져다주는 혜택이 컸습니다.
    농경국가시절에 주변 국가랑 비교하면 생산의 포텐셜은 지극히 낮습니다. 하삼도 이모작이 겨우 가능했던 조선이 삼모작이 되는 이웃국가들과의 격차가 벌어졌으면 벌어졌지... 세종대왕이 농사직설을 보급하고 온갖 노력을 다해도 그 혜택 온전히 못받습니다. 이유? 기후의 유불리 때문입니다.
    상공업으로 가기에는 명나라의 해금령의 영향이 컸고요. 공산품 무역으로 가면 중국에게 처발립니다. 그 중국산이 나중에 유럽 공산품에 처발리고요.

    • @xzxzxzxz9892
      @xzxzxzxz9892 Год назад +7

      도자기,조선 완전 특산품인 인삼만 팔아도 돈 ㅈㄴ벌었겠구만 무슨 걍 10선비라 다뺏기고 아무것도 안한거지

    • @수은-i5w
      @수은-i5w Год назад +4

      유럽에서 죽어라 기술투자해서 가격 낮춘 물건보다 중국에서 그냥 가내수공업으로 만든 물건이 더 싸고, 없는 물건이 없다보니 유럽이 중국에 팔 게 없었음
      중국애들이 직접 만들거나 구할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영국이 오히려 비단과 자기 수입비용 때문에 은이 유출되고 적자가 나니까 고민하다가 마약을 가져다 팔기 시작한거임
      유럽 공산품이 경쟁력을 가진 건 가격경쟁력이 아니라 기술격차가 중국 스스로는 넘어설 수 없을 만큼 벌어졌을 때의 일이라 대항해시대보다 뒤인 근대시대의 일임

    • @afta-u8g
      @afta-u8g Год назад

      @@xzxzxzxz9892 도자기는 구하기 힘든 아라비아산 비싼염료를 국산화 할려고 국가에서 꾸준히 지원하다가 왜란-호란-대기근 3단콤보 맞고 절명했지. 기술, 생산설비랑 같이... 그래서 철화백자가 나왔고.
      인삼농사 하면 토양 작살나는거 상식인데 당연히 확장에 한계가 있지. 대량생산은 당연히 무리고 대신에 기술발전, 품질관리 꾸준히 해서 인삼이 유일하게 세계에서 브랜드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사실은 외면하는건 아니지 않나?
      돈벌기가 쉬운줄 아는 모양인데 돈버는 만큼 나가는 비용이 있고 조선은 그외에 수입하는게 많았어. 특히 물소뿔, 유황, 주석은 국가 안보랑 관련있는 항목이지.
      도자기에 대해 빨간약 하나 먹을 차례인데 17C에 조선이 이리저리 치이고 18C 안정기에 유럽산 청화가 싸게 수입되어서 조선 도자기 사업이 다시 발전하는데 유럽은 이미 도자기 산업 강국이 되었지. 거긴 원하는 염료를 마음껏 쓰니까... 이게 불과 100년차이다. 17C의 조선을 탓하는건 자유인데 앞뒤는 구별해야하지 않을까? 도자기 연구 총책임자는 왕자들이 할 정도로 도자기는 조선에서 특별취급 받은 항목이지. 결코 소홀하게 대한게 아니다.
      16C이전의 도자기 산업은 중국과 조선이 각각 평화스러울때 발전했다가 암흑기에 접어들면서 사양길로 가는건 당연하다고 봐야한다.

    • @dominion8998
      @dominion8998 Год назад +5

      기술이 가져다 주는 혜택이 큰데도 기술자들 대우가 현재도 박한 경우가 많은게 아쉽습니다

    • @afta-u8g
      @afta-u8g Год назад +2

      @@dominion8998 현대 기술자, 연구자들에 대한 대우를 생각하면 우리가 조선을 욕하는게 내로남불이죠. 조선도 기술자에 대한 대우가 박해도 도자기 산업에 존망을 걸었거든요. 연구 총책임자가 왕자들이고 청자에서 백자로 넘어갔다는게 기술의 유의미한 발전을 말하죠. 염료도 국산화에 힘썼고요.
      전근대 노동자 인권을 말하는거 자체가 문제가 아닐까 그 영역이기도 합니다.

  • @냐옹-y6e
    @냐옹-y6e Год назад +14

    일본 아직도 백화점 제일 비싼데 가면 기모노하고 도자기 판다 우리는 우리의 것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알아야함

  • @HyungnamGu
    @HyungnamGu Год назад +3

    The popular narrative was questioned by the Japanese historian Nakamura Tadashi in 1992. The stories of founding fathers of early modern pottery including Yi Sam-pyeong's are not confirmed by contemporary sources but were formed as late as the second half of the 18th century. Komiya Kiyora further analyzed the origin of the narrative, largely dismissing it.
    No contemporary Korean source mentioned him. In fact, historical sources, all in Japanese, never refer to him as Yi Sam-pyeong. The alleged Korean name was coined in the late 19th century, as described below. No contemporary source claims that he was hunted for his talent during the Korean campaign, or even that he took part in pottery in Korea. It is as late as circa 1843 that the official documents of the Saga Domain started to claim that the virtual founder of the domain Nabeshima Naoshige brought six or seven talented potters as "living treasures of Japan." This account was taken from a biography of a local governor of western Saga including Arita, written by his son Yamamoto Tsunetomo in 1707. The historical accuracy of his account is questionable as a mountain, where artisans supposedly started pottery, has no known remains of kilns. These records made no mention of Kanagae Sanbee or the names of other potters.
    The earliest known source of Kanagae Sanbee was of circa 1653, more than half a century after his arrival in Japan and only few years before his death. It was written by Kanagae Sanbee himself and given to Taku, the ruling family of the region of Taku. In this memorandum, he claimed that after the arrival in Japan, he had taken service with Taku Yasutoshi "for few years," and then had moved with some 18 people, mostly children, from Taku to Arita in 1616. It is not clear how he earned his living for nearly 20 years, between the end of his service and the supposed migration of 1616. A more interesting fact is that he did not claim that he had been a potter before his arrival or brought to Japan for his talent. He claimed that he carried (kiln) cars in his supposed migration of 1616. Also he noted that his men had included three of the "original potters of Taku" (多久本皿屋), whose identity is unclear.
    The historian Komiya Kiyora points to the existence of earlier pottery even before the Korean campaign of 1592-98. A considerable number of Korean potters were patronized by the Hata clan of Karatsu in northern Saga, who was destroyed by Toyotomi Hideyoshi in 1593. It is known that the kilns in its territory subsequently disappeared. Apparently potters became refugees because the war prevented them from returning to Korea. Komiya presumes that the "original potters of Taku" were one of these refugee groups and that Kanagae Sanbee learned pottery from them for survival.
    Komiya also questions his alleged discovery of a kaolin deposit in Arita and its supposed date of 1616 since the earliest known porcelain from Arita is of the 1630s and 40s. He points to the fact that the Saga domain tried for a short period of time to launch gold and silver mining. He raised the possibility that the thorough search for the ore body might have resulted in the discovery of kaolin.
    Komiya presumes that in 1616 Kanagae Sanbee was actually "banished" from Taku. It is confirmed by historical sources that authorities frequently cast out potters. As pottery was accompanied by forest destruction, they faced serious conflicts of interest with farmers. Early potteries were not profitable enough for authorities to protect because they were poor articles for daily use and lacked artistic merit. It seems around the 1630s that technological innovation enabled them to produce profitable, Chinese-like ceramics, and as a result, they got exempted from banishment.

  • @HA-ie4cf
    @HA-ie4cf Год назад +10

    조선의 도자기공들은 돼지목의 진주목걸이에 불과했다. 진주목걸이가 돼지목에 걸려 있는 한 그 가치를 제대로 발휘할 수는 없다. 일본이 도자기공들을 돼지목에 걸린 진주목걸이 취급을 하지 않고 그 가치를 제대로 발휘했기 때문에 노리다케와 같은 도자기가 세계적이 될 수 있던 것이고, 조선의 도자기공들은 대대손손 천대의 운명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한국의 천재들이 의대를 지원하니깐 의대를 강제적으로 지원못하게 외고나 과고 영재고에 입학하면 의대지원을 못하는 제도나 만드는 아이큐 낮은 정책이나 하고 있다. 한국에 천재들이 왜 의대를 가려고 하고 과학기술쪽으로 가지 않는지 우리는 모두 그 원인을 안다. 대우가 뭣같으니 누가 가냐!! 과학자들에게 금전적 정치적으로 전관 변호사 판검사를 능가하는 대우가 되도록 제도적으로 만들면 과학자 된다. 그러나 일부러 그렇게 하지 않고 국민들도 천재들이 과학자가 되어 낮은 임금으로 혹사당하면서 봉사하기만 원하지 그들이 나라에 기여하고 그 기여에 대한 대가를 누리는 것을 배아파만 한다. 그래서 조선시대고 그렇고 지금도 미래도 안 바뀐다. 일제강정기, 2차대전, 625, IMF 등 외국의 힘에 의한 강제적인 개혁은 있었지만 스스로 한 개혁은 끝없는 데모뿐이었다.

  • @cloudrain6440
    @cloudrain6440 Год назад +6

    광주국립박물관에 도자기관한 역사가 주로 전시되어있구 남겨있습니다. 거기서 이 도자기전쟁 자세히 알수있습니다.

  • @수집쟁이드라하카
    @수집쟁이드라하카 7 месяцев назад

    이책 한번 읽어 봐야겠네요 흥미로워 보입니다

  • @곰돌이-x6n
    @곰돌이-x6n Год назад +3

    잘 보고 있어요😂

  • @옿홓홓-r5s
    @옿홓홓-r5s Год назад +7

    조선은 전군 백성 총동원+ 명군합세 해야했는데
    일본은 걍 갈아버려도되는인력 ㅅㅂㅋㅋㅋ
    그 ㅈㄹ하고도 도쿠가와병력은 그대로
    다른 지역 병력도 굳이동원안함
    ㅅㅂ..

    • @PrettyT-rex
      @PrettyT-rex Год назад +1

      걍 갈아버려도 되는 인력?ㅋㅋㅋㅋ망상이 심하시네

  • @김팝팝팝쿤
    @김팝팝팝쿤 Год назад +5

    잘 보고있어요!🎉❤

  • @sainttongpha3980
    @sainttongpha3980 Год назад +2

    구독꾹누르고 갑니다. 다른나라역사도 많이 올려주세요.

  • @killyark
    @killyark 9 месяцев назад +2

    공격이 아닌 방어전만 하니까 승전해도 피해만 보는거. 지금 현대에 와서도 똑같은 실수만 반복할 한심한 나라임

  • @samgukjilover
    @samgukjilover Год назад +6

    4:18 인상여는 조나라의 명장이었던 염파와의 ‘문경지교’로도 유명한 인물입니다. 추가로 문경지교 뜻은 목을 자르라고 해도 기꺼이 자를 만큼 깊은 우정을 뜻합니다.
    13:50 ~13:54 그리고는 중국(청)을 반식민지 상태로 만들어버리고 조선은…..을사늑약 체결한 뒤 결국 나라를 꿀꺽해버렸죠….ㅎ…ㅎㅎㅎㅎㅎㅎ….(먼산)

  • @강태윤-j4u
    @강태윤-j4u Год назад +9

    개인적으로 임진왜란과 도자기의 연관성을 다룬 책들을 서점에서 본 적이 있는데요. 읽지는 않았기에 내용은 잘 몰랐는데 운영자님의 설명을 통해 그 이유를 어느 정도 알 수 있게 되었네요. 또한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완벽)이라는 단어의 유래까지 알려주시는 본 채널은 너무나 배울 점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번 제목의 (임진왜란으로 조선은 망했는데)라는 표현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일본과의 7년 전쟁 (임진왜란, 정유재란)은 분명 우리 민족에게 큰 상처를 주었습니다. 수난의 역사이긴 하지만 국난 극복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우리 민족은 한 치의 땅도 빼앗기지 않고 왜적을
    몰아냈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본 채널 임진왜란 시리즈가 마무리 될 즈음에 제 의견을 정리해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일본은 오래 전부터 유럽, 즉 서양 세력과 교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사용했던 (조총)도 서양 세력을 통해 전래된 무기이니까요. 조선 도공들의 눈물과 능력, 명나라 멸망으로 인해 망명했다고 볼 수 있는 중국 출신 도공들의
    능력까지, 어찌 보면 우리 민족과 중국 민족의 수난사가 일본의 도자기 산업을 발전시키고 기존에 유지되고 있던 서양 세력과의 교역을 확대하는데 큰 역할을 한 것은 물론이고 도자기 제작 고급
    원료인 고령토까지 일본 땅에서 발견된 것을 보면 그 시대의 일본은 운이 좋았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네요. 이번 영상도 잘봤습니다.

    • @Joseon-Dynasty
      @Joseon-Dynasty  Год назад +5

      ‘조선은 망했는데’ 는 일본이 많은 이득을 본 것과 대비시키기 위해 자극적으로 제목을 짜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ㅠ
      유튜버의 숙명인지라 너그럽게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강태윤-j4u
      @강태윤-j4u Год назад

      @@Joseon-Dynasty충분히 이해합니다 언제나 재미와 함께 지식을 주셔서 늘 감사할 뿐입니다 ^^

    • @inkorearetrothex-japantrib7583
      @inkorearetrothex-japantrib7583 Год назад +1

      임란후 조선의 여유를 즐기는 고급문화는 내리막길 걷습니다 도기가 귀하게되어 차문화가 사라지죠 지금으로 치면 커피숍이 다 사라진거에요

  • @gimgankoomg4168
    @gimgankoomg4168 Год назад +2

    일본이 도자기 무역의 탓은 발판이 되었고, 실질적으로 청나라를 넘어선 가장 큰 이유로는 청의 자만심과 특히 서태후 끝판왕 삽질을 꼽을 만 합니다. 그 시기도 당연히 청일전쟁 무렵이고 그것도 총력전이나 전면전으로 이길 정도로 총 국력이 넘어섰다고 보기는 어렵죠. 조건의 경우 초기의 안정적 정치가 문종이후에 세조와 인조를 거쳐 오히려 후퇴하는 도중에 벌어진 사건이 임란이죠. 임란으로 크게 후퇴했다가 숙종에서 정조를 거치며 회복해 갔지만 다시 세도정치로 철저하게 망가진 거죠. 임진왜란을 극복하지 못하고 조선이 망조가 든 가장 큰 이유는 이렇게 세도 정치이고 또 다른 이유는 일본과 중국에 막혀버린 교역통로 탓입니다. 아무리 조선이 겉으로 청을 형님으로 모셨다고 해도 활발한 교역만 있었다면 배울 것을 웬만큼은 따라갔을 정도의 의지나 판단력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청을 통해 간접적으로 찔끔 들어오는 것이 전부였고 그나마 청을 속으로 무시한 탓에 청의 서구 문물까지도 무시했던 거죠.

  • @suntongmax9115
    @suntongmax9115 Год назад +3

    여기 유튜브 퀄리티가 진짜 말이 안되네 ㄷㄷ

  • @waxihangolang
    @waxihangolang Год назад +4

    잘 보고 있어요❤

  • @rogue2586
    @rogue2586 Год назад +11

    조선의 공업,상업 천시에 대해 다루지 않았군요. 조선의 도자기가 쇠퇴한 직접적인 원인은 힘든 도공일이 힘들고 열악한 처우 였습니다. 태종역시 요업 기피 문제로 고민했고 병역면제를 제시했으나 아무도 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일본에 끌려간 도공들은 조선의 열악한 처우가 싫어서 돌아가기 싫다고 하여 영주들과 짜고 사망처리 하는 경우도 다반사 였습니다. 이삼평은 조선에 비해 제작환경이 열악한데도 불구 하고 고령토를 찾기 위해 견마노고를 아끼지 않았고 겨우 찾아 세계적인 수준의 아리타 도자기를 만들었죠.

    • @좋은생각-h3k
      @좋은생각-h3k Год назад +1

      지금도 똑같

    • @dominion8998
      @dominion8998 Год назад +3

      선조실록을 보면 도공들중에 일본의 스파이가 된 이가 있어서 처형당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또한 일본에서도 열악한 대우를 받은 도공들도 많았습니다

    • @afta-u8g
      @afta-u8g Год назад +2

      전형적인 왜곡이죠. 일본으로 건너간 도공이라고 전부 해피엔딩으로 끝난거 아닙니다. 황금알 낳는 거위 배가르듯이 최후를 맞이한 도공도 있죠.
      기술자라는 직업이 고려시대에 어디 소속인지 알고는 있나요? 향-소 소속의 법제적으로는 평민인 사람들 입니다. 거주이전, 직업선택의 자유를 비롯해서 이것저것 박탈 당한채 오로지 국가에서 요구하는 물건만 만들어내는 인간들이요.
      수탈당하던 사람들의 처우문제에 대한 사료고 애초에 고려시대에도 수탈당하는게 당연한 사람들이에요. 그게 전근대시대고요.
      노동자 멸시는 현대에도 똑같음. 기술훔쳐서 외국으로 도망가도 할말 없음.

    • @tlerset6244
      @tlerset6244 9 месяцев назад

      @@dominion8998 ㅋㅋㅋ 예외를 전부처럼이야기하네
      조선에서는 전부 천시받았단다. 비교가능?
      100%노예될래? 아니면 평범한사람들처럼 살더라고 잘하면 신으로 숭배받을 정도의 직업을 할래?
      지능이 있다면 비교조차 불가능하다는건 바로 알텐데 예외들먹이네

    • @dominion8998
      @dominion8998 9 месяцев назад

      @@tlerset6244 비율이 적어도 심각하니까 언급한건데 전부처럼 이야기한다뇨? 님이 이삼평이 예외인건지 스파이짓한 도공들이 예외인건지 사료 열심히 전수조사해보세요. 임진왜란전 사료들은 일본에게 불탄것도 많구만;;;

  • @kimchi_taco
    @kimchi_taco 8 месяцев назад +5

    르브르 같은데서 일본 도자기 보면 퀄리티가 국사책에서 보던 조선 백자를 아득히 뛰어넘음. 시작이 조선 백자였을수 있지만, 서구에서 열풍이 불만큼 고도화 시킨건 조선같은 나라는 죽어다 깨도 못함.

  • @user-patyokt
    @user-patyokt Год назад +2

    성리학의 교조화랑 상공업의 천시 + 양란으로 인한 피해와 경신대기근까지 겹치면서 망한거죠.

  • @혁최-y2g
    @혁최-y2g Год назад +4

    국력에 자신이 있으니 타국 침략을 하는 거죠..

    • @PunchCat-i5j
      @PunchCat-i5j 6 дней назад

      애초에 일본에서 임란을 결심한 계기가 조선내부에 군대라는것 자체가 거의 없다는걸 깨닫고 일으킴.

  • @bw-ee2of
    @bw-ee2of 4 месяца назад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가 세계최초 주식회사고 세계최초 은행또한 네덜란드에서 만들어져 동양과의 무역은 네덜란드를 부국으로 만들었죠 또한 일본과의 무역을 통해 일본에 서구적인 지식을 가르쳐 줌으로써 일본이 제국이 될수있게 도와줬고 심지어 서양의 여러 정치적 정보들을 일본에 알려주기까지 했습니다

  • @방송개노잼
    @방송개노잼 Год назад +3

    아이러니하게 잡혀간 노비출신 도공들은 사무라이 직위도 받고 귀히 대접받았음

  • @gazuaaaa4840
    @gazuaaaa4840 9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제가 아는것과 조금 다른게, 임진왜란 터지기전부터 일본은 서양과 교류해서 선진문물을 받아들였고
    노부나가가 서양에서 조총을 통해 일본 전국을 통일한것임. 그이후 임진왜란이 발생한거고

  • @홍도현-e4y
    @홍도현-e4y Год назад +3

    운칠기삼...준비하고 기다린자 때를 만난다

  • @하하하하하하-s8q
    @하하하하하하-s8q 9 месяцев назад +2

    분로쿠의 원정이라는 말을 쓰는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 분로쿠의 역(役) 또는 게이초의 역 또는 분로쿠 게이초의 역 이라고 쓰는데요? 그냥 전쟁이라는 뜻으로요.

  • @shl9877
    @shl9877 8 месяцев назад

    군사적으로도 조선에서 싸웠기 때문에 전 국토가 쑥대밭이 됐죠. 일본은 병사는 좀 잃었어도 그외에는 아무 타격이 없었죠. 미국이 절대 본토에서 전쟁을 안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2차대전 패전 이후에도 도쿄, 나가사키, 히로시마 빼고는 멀쩡했죠. 아마 미국과 일본본토에서 전면전을 했다면 회생불가였을지도 모르겠네요. 지금 남북이 사이가 안좋아 전쟁을 하니마니 하고 있는데 누가 이기든 결국 우리만 손해입니다. 한반도내에서는 전쟁하면 안됩니다. 주변국들에게만 어부지리입니다.

  • @royalfrigern5297
    @royalfrigern5297 Год назад +6

    백자를 화려한 고려시대랑 조선시대엔 달리 검소한걸 좋아하는 문화로 바뀌어 만들게 되었다는 교과서 서술을 몇번 봤는데, 그냥 당시 패권국이던 몽골제국에서 유행하니 따라하게 된것 뿐이네요

    • @보리문디-s9r
      @보리문디-s9r 9 месяцев назад +3

      그건 개소립니다. 조선이 백자 뿐인 이유는 자기에 필요한 안료를 수입할 돈이 없어서 입니다. 백의민족 이라서 힌색옷 입었다? 정말 그말을 믿습니까?

    • @식칼리오
      @식칼리오 9 месяцев назад +1

      ​@@보리문디-s9r조선의 기와집 기와 크기가 통일 신라 시대 기와집의 기와보다 크기가 더 작다....고려 사대 고려 청자는 지금의 에르메스급이지만 조선 막사발은 ㅋ

    • @un3532
      @un3532 2 месяца назад

      ​@@보리문디-s9r흰백을 만드는게 더욱 어려울텐대?

  • @주도로
    @주도로 8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상식적인 국가와 비상식적인 국가가 보일뿐.

  • @크리에이터조제
    @크리에이터조제 Год назад +19

    한반도에 전쟁을 낼 때마다 별 보복이나 응징없이
    개꿀을 빨다보니 일본의 한반도침략은 주기적으로 반복될 수밖에

    • @ELBUG-ku1iq
      @ELBUG-ku1iq Год назад +11

      국가적으로 한반도에 전쟁낸건 임진왜란 뿐인데 무슨말하는거임?

    • @rogue2586
      @rogue2586 Год назад +3

      국토의 대부분이 산지인 한반도와 평지인 일본이라 경쟉면적, 인구수 부터 기본적으로 차이 나니 국력차이 나는건 당연하죠. 조선 이래 국럭은 역전되어 단 한번도 추월 하지 못했습니다.

    • @전병건-l8u
      @전병건-l8u Год назад +2

      ​@@ELBUG-ku1iq 임진왜란 말고도 잔잔하게 게속 침략함요 일본뿐만 아니라 오랑캐들 하고도 게속 전쟁 했어요

    • @PrettyT-rex
      @PrettyT-rex Год назад +4

      보복이나 응징도 능력이 이썽야 가능한 것임. 약하면 후드러 맞기만 할 뿐이지

    • @PrettyT-rex
      @PrettyT-rex Год назад +2

      @@rogue2586 일본도 산지면적이 80%임. 무슨 대부분이 평지?ㅋ

  • @road_star_go_로스고
    @road_star_go_로스고 8 месяцев назад +1

    당시 얼마나 대우가 안 좋았으면 가서 안 오겠어요? 잘 한 것이라 봅니다. 현재도 반도체 과학자들에 대한 대우가 안 좋은 경유가 있는지 가끔 지나부족에게 기술 정보를 팔아 먹는 애들이 있죠.

  • @user-jjy1015
    @user-jjy1015 Год назад

    5:39
    금은 가치를 매길수 있으나
    옥은 가치를 매길수 없고
    그옥중에서 으뜸은 비취라....

  • @훠훠-b6u
    @훠훠-b6u Год назад +2

    임진왜란 6.25 모두가 일본의 초성장의 밑거름이된 사건..

  • @NoName-vm8zq
    @NoName-vm8zq 9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천한 관노비였던 내가 이세계에선 도공 사무라이였던 건에 대하여*

  • @재주조왕
    @재주조왕 9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와... 결과적으로 임진왜란으로 2차대전의 기틀을 마련했던건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소름...

  • @이경연-e4l
    @이경연-e4l Год назад +7

    현재의 최첨단 기술은 전기차, 반도체, 조선, 통신, 발전소 정말 많은 기술들이 있는데
    고대에는 최첨단 문물이 도자기가 그중 하나이기는 하지요.
    도자기가 참 재밌는게 파키스탄, 이란과 같은 중동에서는 토양이 도자기를 만들어 낼수 있는 환경이 아니어서 일회용 도자기 컵도 있다고 하니
    도자기는 누구나 만들어 낼수 있는 기술은 아니었지요.

    • @afta-u8g
      @afta-u8g Год назад +3

      조선이 도자기 종주국 자리를 지키기에는 경제사정과 자원이 문제였어요. 아라비아산 청화 염료는 비싼데다 중국이 수출통제를 해온 품목이었습니다. 염료 국산화를 위해 연구를 꾸준히 했지만 완벽한 대체는 불가능했고 왜란-호란-대기근 3단콤보로 도자기 산업이 박살난 뒤 화려하고 비싼 염료 대신에 철분을 염료로 쓰기 시작합니다.
      화려한 도자기가 아니라 부족함을 채우는 도자기를 만드는 것이죠.

  • @캡틴후크-h2v
    @캡틴후크-h2v 9 месяцев назад

    마치 유투브같데
    엄청난 기술 지식 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유튜브 영업질을 하지 않은 사람과
    남보다 좀더 나은 것밖에 없어도 유튜브 영업질로 유명해지면서 발전을 거듭하여 위의 대단한 사람을 뛰어넘어버리는거...

  • @척준경-q8m
    @척준경-q8m 9 месяцев назад

    뿌리깊은 사농공상. . 지금도 문제죠

  • @kairos560
    @kairos560 Год назад +2

    6. 25전쟁을 계기로 2차 대전 패망 일본이 재기해서 세계 최강국이 될 수 있는 계기가 됐음. 이것도 씁쓸하죠.

  • @hsk2614
    @hsk2614 9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인신매매로도 많이 벌었죠..포르투칼상인에게 그렇게 많이 팔앗다더라구요 조선사람들을요

    • @ChunSik262
      @ChunSik262 8 месяцев назад

      일본은 자국민도 팔아넘김…

  • @스카벨
    @스카벨 9 месяцев назад

    이렇게 시각이 넓은 역사 교육이 필요하다

  • @시대가원하는자
    @시대가원하는자 9 месяцев назад

    진짜 조상들의 저 생존본능은 후대인 우리에게 물려줬으니 이 나라는 절대 안망한다 라고 생각된다

  • @김선생-y2r
    @김선생-y2r 9 месяцев назад +1

    합당한 대우해주고 인종차별 멊으면 나 같아도 득달같이 국접 갈아타겠다! 게다가 치안까지 좋으면 금상첨화지! ㅋㅋㅋㅋㅋ

  • @JK-xy3zn
    @JK-xy3zn 8 месяцев назад

    이거는 ㅠ 교훈으로삼고 개선해나가야하는데
    현재도 멍청한 짓거리 똑같이 하고있음

  • @yongvesterkimtallone
    @yongvesterkimtallone 8 месяцев назад

    조선은 기술공을 가짠게 대우 해줬고, 왜나라는 기술공을 귀족 대우 해줬으니.. 당연 일본이 더 발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봅니다.

  • @익명맨-y1p
    @익명맨-y1p Год назад +4

    정작저때 일본으로간 도공들 대부분은 조선오기를 꺼려했음 조선에서는 사농공상 이라하여 천시했던
    기술인들은 일본에선 기술자로 우대해주었기때문 허구헌날 성리학만
    최고라며 점점더 절대화시키며
    상복몇년입는거 가지고
    파벌나눠서 정치질하는데만
    열중하고 기술이 발전될리가 있나 결국 망할나라였음 ..

  • @가나다-p2s9d
    @가나다-p2s9d 9 месяцев назад

    일본에서는 일본도자기 의 발전은 중국에서 도자기 기술을 직도입 하였다고 하죠.조선도공 과 관련된건 전혀 가르치지 않아요...

  • @whctjsdlfqhrlfprl
    @whctjsdlfqhrlfprl 9 месяцев назад

    조선 중기부터는 정말 답이없는 사대부 들임...

  • @wsk-k2i
    @wsk-k2i 9 месяцев назад +1

    7살 쯤 때부터 수직서열관계를 강조하는 공맹의 책을 탈탈 외워, 30대 쯤에 한시 시험치고 관료하는 시쟁이들의 국가, 유교근본주의 국가에서 무엇을 기대하나. 지금이라도 그런 식으로 운영하면 (북)조선 꼴난다.

  • @김창우-t2v
    @김창우-t2v 9 месяцев назад

    전리품을 엄청 가져갔지~노예 귀금속 도자기 숙련공등

  • @못쓸신잡
    @못쓸신잡 Год назад +3

    애보고 있어요 !

  • @지훈-f6s
    @지훈-f6s Год назад +1

    이것도 맞지만 도고을 업신여겼던 조선의 유교 사상이 제일문제이죠.,.

  • @지석강-l6u
    @지석강-l6u 9 месяцев назад

    이때 도자기는 현재 반도체기술이였다지

  • @Studio-letterforyou
    @Studio-letterforyou Год назад +2

    두번다시 우리땅에서 전쟁은 안된다. 전쟁은 다른나라땅에서

  • @송명진-q1l
    @송명진-q1l 6 месяцев назад

    제목에 낚였어..

  • @잉-x1q
    @잉-x1q 9 месяцев назад

    이거 브금이 메이플 브금이네...

  • @andrewoh7360
    @andrewoh7360 9 месяцев назад +1

    文禄慶長の役

  • @sungjoohan1316
    @sungjoohan1316 9 месяцев назад

    참 답답한게 왜 조선은 저 도자기 만드는 기술을 이용해 서양과 무역을 하지 않았을까요?
    끝까지 우물안에 갇혀 쇄국정책을 하니 고립되는 거지...
    그 쇄국정책이 결국 조선을 낙후되게 만들고 일본의 식민지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이 아니었어도 어차피 망할 나라였고 러시아나 청나라 식민지 될 운명이었죠

    • @un3532
      @un3532 2 месяца назад

      중국이 무역 안하니까 못한거죠 중국 눈치 보느라 나라 성장도 눈치 보면서 하는데 무역이 될리가 일본은 섬이고 조선보다 멀리 있으니 행동에 자유가 있죠 애초에 명 때도 정화의 원정으로 아프리카까지 가서 조공 받아온거 보면 명이 바다 열었으면 조선도 똑같이 따라했을꺼임

  • @cisab7075
    @cisab7075 8 месяцев назад

    우리가 진거지...

  • @okay-----
    @okay----- 9 месяцев назад

    원래 싸움은 누구 집에서 하느냐에 따라 손익이 크게 갈림

  • @막시무스스
    @막시무스스 9 месяцев назад

    조선은 사농공상땜시 도공들이 천대받다
    일본에서 환영받고 환대를 받으니
    절대 안돌아간다 했음

  • @두두-k7o
    @두두-k7o 8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조선 참 노답이다

  • @달달허네-o5f
    @달달허네-o5f 9 месяцев назад

    노예만해도 10만명이 끌려갂으니까..

  • @changhwadaang
    @changhwadaang 9 месяцев назад

    도요토미가 조선건국 200주년 기념해서 축하사절보내준거ㅋㅋ

  • @fhdebosdl1812
    @fhdebosdl1812 9 месяцев назад

    동아역사법칙: 한반도에 전쟁은 번마다 일본에는 복음이다

  • @최태민-v3p
    @최태민-v3p 8 месяцев назад

    공무원이 판을 치면 나라가 이꼴이 나는구나........교과서가 여기 있었네요 ㅋ

  • @네메시스86
    @네메시스86 4 месяца назад

    오디오북은 너무 아무것도 없던데...뭐 이솝우화정도만 잇는 듯

  • @Freedom-re5kl
    @Freedom-re5kl 8 месяцев назад

    제목에 대한 나의 답. 우리는 사농공상으로 상업을 천시 했고 일본은 상업이 발전하고 무역을 했다는 것 ㅋ

  • @차다니엘-d9l
    @차다니엘-d9l 9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애초에 일본은 바다로 둘러쌓여있고, 신라 같은 약소국만이 주변에 있어서 국력을 보전 할 수 있어서 이미 고대부터 한반도 약소국들을 거느리던 강대국이었음..

  • @jayjeong209
    @jayjeong209 Год назад +1

    조선이 승리? ㅋㅋㅋㅋ

  • @형성실
    @형성실 Год назад +2

    0:11 6년 아니에요?

    • @roachmaxbang
      @roachmaxbang 9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자, 세어보세요.
      1592, 3, 4, 5, 6, 7, 8
      숫자가 몇 개인가요.

  • @랑-k3u
    @랑-k3u 8 месяцев назад

    빌어먹을 성리학때문에 한국이 이꼴났지

  • @해인-e8e
    @해인-e8e Год назад +5

    임진왜란 전에도 조선은 극빈국이었음.

    • @PrettyT-rex
      @PrettyT-rex Год назад +4

      극빈국인데 어떻게 인구가 많을 수 있지

    • @happy-nb9jd
      @happy-nb9jd Год назад +4

      왜란 전에는 극빈국 아니였다. 역사 알고 말해라.

    • @해인-e8e
      @해인-e8e Год назад

      @@happy-nb9jd 아~ 증말? 참도 잘살아서 봄마다 보리고개 때 백성들이 죽어나가냐? 역사를 좀 알고 아는척 해라~ 왜란때 일본군들이 훔쳐갈께 없더란다~

    • @진우-q7d
      @진우-q7d Год назад +4

      임진왜란 터진 16세기까지만 해도 인구 1,000만 명이 넘는 국가는 조선 포함 10개국도 안됐고, 1인당 소득은 유럽, 아시아 포함해서 세계가 평균적으로 5~700$ 선에서 형성되어있음. 이중에서 조선은 평균 600$ 정도였고.
      당시 조선은 세계적으로도 큰 나라였음

    • @해인-e8e
      @해인-e8e Год назад

      @@진우-q7d ㅍㅎㅎ~ 방글라데시 인구 1억7295만4319명~ 세계 10대 강국이냐? 닭대가리야^^

  • @stylerkr2487
    @stylerkr2487 8 месяцев назад

    일본은 뭘 홈치기 위해서 전댕을 함

  • @노마드노마드-d5c
    @노마드노마드-d5c Год назад +1

    ㅋㅋㅋㅋㅋㅋㅋ

  • @방배동아이버슨
    @방배동아이버슨 9 месяцев назад

    배울건 배우자

  • @닷짜
    @닷짜 8 месяцев назад

    거뱅

  • @사랑의불댓글
    @사랑의불댓글 8 месяцев назад

    어떻게 보면 임진왜란의 나비효과 가 지금까지 온게 아닐까?

    • @4885-i5r
      @4885-i5r 8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수백년 전에 있었던 전쟁 후유증을 아직도 극복 못한 민족이 있다면 그 민족은 망하는게 맞을듯 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