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GATE_SGC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황금인간 투구 처럼 신라 금관도 옷감이나 가죽등으로 안감이 되어 있었을것 같아요 오래 되서 그건 다 썩어 없어졌을거고요 금관 안쪽 마감된 부분을 보면 이해가 갈겁니다 금관들의 평균 둘레도 생각보다 큰 이유도 이것이구요 데드마스크가 아닌 큰 행사나 제사때 가끔 사용했을겁니다 평상시 쓰지 않는 장신구들을 망자에게만 쓰고 뭍는다는게 너무 낭비라 생각 됩니다 화려한 만큼 과시용으로 썼을겁니다
넷플릭스와 계약이 시급합니다ㅠ 역사스페셜 자료들 영어 자막 작업해서 넷플릭스에 올라오면 참 좋겠어요.. 모든 자료를 다 못 올리더라도 중요했던 내용들만이라도... 세계인들과 공유하고싶어요.. 죄다 우리가 일본한테 배운건중 알아서 열받아요.. 일본이 우리의 속국이었는데... 그런 자료를 좀 널리 알렸으면... 우리나라 문화유산의 힘을... 역사의 힘을...
Japan has never obeyed you. Yes, there were Korean women in the harem of the Yamato emperors. For example, the last princess of Baekje - but nothing more.
한국은 삼국시대 까지는 몽고 거란, 위구르 과 같이 중앙아시아(페르시아) 문화에 영향을 많이 받았으니까요. 지도자 이름부터가 어라하, 한지, 마립간, 태왕 등 "칸 Khan" 이였으니 그때만 왕관이 존재하죠. 나말여초 때부터 급격한로 한화(漢化)정책으로 익선관과 면류관을 쓰면서 왕관문화가 사라진건 뼈아픈 문화적 손실입니다.
@J U S T I C E First, Lord Silla was from en.wikipedia.org/wiki/Qi_(state) Secondly, Isagym is the title of the ruler of Silla until 500 in Chinese it is 干 Gan is NOT Khan which is Kaan, Kagan, Gaan. Isagym is a tribal title - as the high priest of the Koreans - i.e. shamanic. And the Chinese title placed him 干 Gan lower than 王 Wang. They gave such a title to inferior Wans. Those whom, according to the concept of the Middle State, they did not recognize as spiritually full-value - i.e. not Confucians. Although in the 17th century they gave the Russian tsar the title of Wang despite the fact that he rejected Confucianism. But these were already the Manchus who did not really believe in the Chinese religion.
흉노라는건 중국이 비하해서 쓰는 말이고 스키타이족이란게 바른 표현인거 같네요 신라 지배층은 스키타이족인거 같고 차라리 삼국시대는 전세계랑 교류하고 자유롭고 패기 넘치는 기상이 있어 보이는데 조선 시대 와서 지나친 성리학 숭상으로 쇄국 정책에 꽉막힌 나라가 된거 같아서 답답해요 그나마 한글 만든것도 큰 수확인거 같고 나머지는 너무 답답함
부여도 흉노입니다 유물보면 가야신라와 같이 동복이 쏟아져나오져 부여 가야 신라가 똑같은 흉노적유물이 나오죠 부여에서 고려 백제가 나왔으니 같은 유목민족인데요 흉노는 조선에서나왔으니 다 단군의 자손이요 신라만 흉노라고 말하는이가 많은데 그럼부여는 부여유물도 온통 흉노유물이구만
@J U S T I C E 동서고금을 통틀어 금을 좋아하지 않은 인종이나 문화는 없다. 하지만 유목민들의 금 사랑은 유별난 데가 있다.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스키타이인들은 금을 특별히 좋아한다고 기록해놓았다. 지금도 스키타이인들의 부장품에는 금이 쏟아져 나온다. 흉노인들도 마찬가지다. 금관이 출토되는 문화는 스키타이, 흉노, 신라에서만 나온다. 백제는 금동관이 나올 뿐이다. 유목민과 금의 특별한 상관관계는 역사학계에서는 일반론이다.
아시아에서 금관 문화를 가진 유일한 나라가 신라 뿐이라 비교할 대상도 없어요. 로마, 스키타이제국 외에는 금관이 나온 국가들도 없어요. 전세계 금관의 80%가 신라에서만 있다잖아요. 그래서 일본 학자가 이걸 신기하게 생각해서 쓴 책이 로마 문화왕국 신라라고 하는 책인데 신라 고고학에 대해 관심있는 사람들이라면 구입해서 읽어볼만 합니다. 로마제국의 유물과 신라의 유물을 일대일로 비교해서 신라의 유물이 로마제국에서 왔을 가능성을 제기를 하고 있죠. 이걸 보고 본인이 주장하는게 신라의 금 유물이 아틸라 훈제국을 통해 유입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거죠. 아틸라 훈 제국이 로마제국을 쳐들어가면서 식민통치를 했는데 이때 로마제국으로부터 인질과 매년 120키로의 금을 조공으로 받았거든요. 그 금이 신라에 들어왔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거죠. 신라의 황금보검도 그걸 뒷받침하는 주요유물중의 하나일 것으로 보고요.
만리장성 북쪽은 중국땅이 아니다.몽골족 만주족 한국인들이 지배하던 곳이다.진시황이 소위 북방오랑캐를 막겠다고 만리장성을 만들었지만 이후로 여러번 정복됐으며 청나라도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하고 300년간 통치한거다.중국사관놈들이 조작 왜곡 숨겼던 한민족역사를 새로 쓰고 교육 시켜아함
분석이야 따로 하겠지만 신라 금관의 정통이 끊긴건 금의 유입이 끊긴 것에 의한 것으로 추정이 됨. 신라에서 순금관이 출토가 되던 시기에는 유럽에서 아틸라 훈제국이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기임 아틸라 훈 제국은 로마제국을 식민통치하면서 그들로부터 인질과 막대한 금을 매년 조공으로 받았는데 이 금이 신라에 유입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음. 참고로 아틸라의 한자 음차가 아달라임. 신라의 이사금중에 아달라 이사금이 있는데 아틸라 칸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음. 그러다가 아틸라의 사망으로 훈제국이 사라지고 이때부터 신라에 금 유입이 끊기면서 금제 유물 역시도 사라졌던 것으로 보면 정확함. 불교는 금을 중심으로 하는 종교이기 때문에 불교 도입과 금 문화의 증발은 전혀 상관이 없음
this is unscientific nonsense. Xuantao was never ruled no one - the word itself means the unfortunate. They were one of the multitude of the Polovets tribes and later mixed with the Russians and Tatars. Disappeared due to assimilation. This people is unknown in terms of its genetic makeup. No corpses were found because they were feeding them to animals. They just threw the corpse in the steppe.
현생인류는 깨달음과 지혜를 무기로 삼습니다. 공포를 극복하고, 최고의 지혜를 얻기 위한 방법으로 불교나 과학등 다른 이념이 등장하기 전 까지는 사회를 움직인 이념으로 사용된 무엇이 있다고 봐야지요. 무리를 지어사는 큰 사슴류중에 뿔이 9가지로 뻗은 연장자 사슴이 왕노릇한다고 합니다. 나무 형상은 신인은 나무를 타고 내려오기 때문 이고요. 그때의 이념을 쇠퇴한 지금의 무속으로 비교하는 일은 잘못된 지적입니다. 문명사적으로 현대의 사람다운 인류가 있기까지 인간답게 만드는 중요한 담당을 해온 것입니다. 지금의 무당이 왕관을 쓴다고 국가를 움직이겠습니까. 당시의 백성도 바보들이 아니죠. 지배층이 통찰의 지혜를 얻는 방법의 하나중 유력했겠죠.
수공애자도 나이먹고 국보급 금관의 수공애 기술자도 인간도 사람인지라 사람과 금관과 같이 갔을겁니다.그래서 국보급기술은 보존하기위해서 노력 하고 계승자가 있어야 합니다.그래서 기술자가 기술을 물려주지안으면 영원히 사라지는겁니다.기록도 만드는것은 사람마다 달라서 똑같은 것을 여러사람보고 만들어보라고 하면 전부다른 모양과 느낌이 오는겁니다.그래서 죽을때 싸가는것이 바로 기술입니다.역사도 마찬가지고요.건강들하시고요 애국이 무엇이고 조상이 남긴것을 기리보존하는 것이 민족성입니다.고조선 민족들이요.화이딩합시다.
참 아이러니하네요..ㅎㅎ 일반적으로 생각할때 법과 율이 발전하면 더 합리적인 사회가 되어 보통 "발전한다"는 생각이 드는데(고대로부터 지금까지 매 사회가 이전보다는 발전하고있으니)찬란한 문화유산은 왠지 줄어드는듯한 느낌.. 마치 과학이 발전할수록 종교나 예술이 비과학적으로 치부되어 쇠퇴되듯이 말이죠
전혀. 백제도 당나라에 붙고 있었음. 신라는 고구려 먼저 가서 백제치자 했는데 고구려가 기회 놓치는 거고, 그 뒤로 김춘추는 당과 왜에 갔는데 5촌사이에서 태어난 미남으로 왜도 칭찬 일색에 당나라는 아예 신라로 가지 말고 직급 줄 테니 내 옆에 있어라하는 등등. (신라는 왜 이렇게 꽃미남 꽃미녀가 많은 거야?!) 당나라가 결국 신라 선택했고, 신라는 삼국의 주인이 되었고, 당나라에게 지지 않았음. 마지막 왕은 독재같은 후백제에겐 끝까지 저항하고 떠오른 해 고려를 이길 수 없다는 걸 인정하고 피를 안보고 자진 투항함. 현명한 거임. 부끄러울 건 없음. 어느 왕조나 폭군과 나라가 거덜나는 것이 있어왔고, 신라는 자신을 죽이는 백제가 아닌 받아들이는 고려에 투항하는 것도 현명함. 그래서 지금까지 후손이 살아남은 거고. 오히려 고구려와 백제는 그 실책이 너무 컸음. 측천무후조차 뛰어난 백제 장수 흑치상지 보고 왜 백제가 멸망했는지 몰랐고, 고구려는 연남 형재들의 내분으로 망한 거고. 이런게 진짜 수치스러운 일인 거임. 인재가 있어도 살아남지 못하고, 나라를 스스로 어지럽혀 나라망하게 하는 것.
신라 금관에 대해서 말하자면 금관에 달려있는 곡옥은 김알지 신화의 상징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나뭇가지의 황금궤 안에 들어있던 아기를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 바로 곡옥입니다. 곡옥의 형상은 태아의 모습과 일치합니다. 사람을 비롯한 포유동물은 물론 다른 동물의 태아도 곡옥과 같은 모습입니다. 곡옥은 왕권의 상징이었기 때문에 왕족이나 귀족 모두가 몸에 지니고 다니던 부적과도 같은 것이었으며, 특히 신라에서는 왕족이나 귀족들 사이에 즐겨 사용하였습니다. 금관 이외의 목걸이, 귀걸이, 허리띠 등에 달개와 함께 매달아 화려하게 장식하였습니다. 그 속에는 신라의 정신이 배어있으며, 신라인의 꿈과 염원이 담겨있습니다. 즉, 나뭇가지 끝에 돋아있는 '움'이 식물의 태아이자 생명력을 나타내며, 인간의 태아를 상징하는 곡옥은 동물의 태아이자 생명력을 나타내 둘 다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한 그루의 나무마다 몇 개의 가지가 쭉쭉 뻗어있고 그 가지 끝에는 '♤' 모양을 띄고 있습니다. '♤' 모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을 때,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카드놀이 할 때 봤었던 '♤' 모양이나 복숭아 또는 하트를 거꾸로 뒤집어 놓은 모양으로 봤을 것입니다. 또는 불꽃이나 알라딘 궁전 지붕 모습 등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나뭇가지 줄기의 끝 부분인 경정과 나무 뿌리인 근단에는 생장점이 있는데, 생장점 부분이 나무의 생장에 중심 역할을 합니다. 나뭇가지 끝마다 화살 촉 모양으로 도톰하면서 뾰족하게 올라 온 움의 모습을 금관의 세움장식 끝 부분에 표현한 것입니다. 즉, 나뭇가지 끝에 돋아있는 '움'이 식물의 태아이자 생명력을 나타냅니다.따라서 김알지 신화의 무대이자 신라의 국호인 계림의 신성한 숲을 상징한 것입니다. 따라서 세움장식의 형상은 사슴뿔이 아니라 나무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초기의 금관이나 금동관은 대부분 세그루의 나무로 장식되었으며, 그 세그루로 숲을 상징하기에 충분하지만, 초기와 달리, 금을 다루는 기술이 더 발달하고 국력이 축적되자 더 정교하고 더 상징적이며 더 화려한 금관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먼 소리 ? 먼 소설을 쓰는가? 곡옥은 신라에서 비롯된 유물이 아님 곡옥은 먼 고대에서 부터 이미 존재되어 있었으며 곡옥은 (본진 불함 3엽영역의 정통-한민족계열에만 존재되어온 유물로써 존재하는데) 그래서 다른 곳에는 곡옥유물이 존재되지 않음. 곡옥의 분포도는 불함 3엽역역지대외 이들이 이동한 루투일부에도 존재되는데 오츠크,,시베리아 ,베링해 ,캄차가반도,알라스카,북미,중미,남미(아메리카)등에 존재됨. ■불함 3엽 영역은 7만년전부터 [(삼신문화+장승+봉황족) 마문명이 거대하게 시작되었으며 (이 당시는 서해가 바다상태가 아니였고 큰 호수들과 큰 강줄기들이 있었던 각종 큰 물고기와 동식물들이 풍부했던 비욕한 벌판으로 뽕나무가가 끝없이 펼쳐졌으며 연꽃도 즐비했던) 빙하기 시절이였지만 빙하기속 4계절중에한 겨울 이외는 기후가 그리 춥지않았던 지대였으며/겨울이면 가정마다 스키타고 마실다님] 곳곳 먹거리가 풍부에서 동물들의 낙원이기도 했음 이후 해빙기시절이 오면서 마문명 맥통을 환국에서 이어 받고 역과 역법을 다시 재 정립하게됨 그리고 환국+부상국, 배달국 진단국(고조선) 시절로 정통 맥통이 이어지게됨 서해가 상전벽해되어 가면서 왕성하고 부흠했던 신선들이 직접 운영했던 부상국이 없어지게되었고 배달국이 맥통을 같이 이어가게됨 (고구려 백제 신라) 왕관들은 부상국시절에 디자인 되었던 유물들임 각종 금유물들도 ■곡옥은 홍산에도 많이 유물이 놔왔데 한반도에도 탐라(제주도)에도 곡옥유물이 있음 곡옥은 뽕나무와도 관련이 있으며 당시 뽕나무에또는 신단수에 누에고치들이 주렁주렁 열였으며 배달국시절에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아서 실크로 옷을 처음으로 만들어 입게됨 이로써 용봉문명이 시작되게 되었으며 (애초 봉황이 먼저고 용이 나중에 놔옴) 부상국시절때의 운영하고자 했던 방식과 그 이후 역사들이 백제황로유자세히 형상화되어 기록되어 있음 동이(東夷) 의 각각 문자들이 이와 연관된 상형문자임 한자자체가 본래 동이족들이 만들 상형문자에서 비롯되었음
탐라(제주도)는 본래섬인 적이 없었고 본래 육지상태였음 서해가 상전벽해시 바다로 되었으며 *(본래 제주도는 산둥반도을 제주도라불렀음/조선시절때 탐라를 제주도로 명칭했을뿐임 ) 서해가 상전벽해 되기 전에 부안 서쪽 매우 큰 호수가와 큰 강줄기가 모여드는 제주도 주변은 매우 번화가 지대였으며 먹거리가 풍부했고 영향력도 컸으며 -------------------------------------------- 탐라(제주도) 돌 하루방은 제주도가 원형이며 이 원형모양에서 각각 형태로 곳곳으로 파생되어나갔지만 형상은 대동소이함 탐라하루방은 특히 남미에 많으며 남미돌 하루방이 탐라 돌하루방과 가장 비슷함. 동남아 각 섬에도 돌하루방들이 세워져있음
금관이 사라진 것은 금관을 만들만큼 대량의 금을 채굴 할.수 없었기 때문이다. 과거 조선조까지 금을 채굴한 금광은 없다. 일제.강점기 이후 채굴기계가 도입 되기 전까진 한반도에 광산은 없었다. 신라 금관은 중앙 아시아에서 수입된 금이었다. 사금 채취가 금채굴의 전부였는데 그 양이 한정적이었다
제정일치를 상징하는 금관이 사라진 것은 불교라는 고등종교의 유입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요? 연나라가 망하고 그 유민들이 고구려에 투항하고 신라에 왜(예, 부여)가 쳐들어왔을 때 광개토대왕이 이들을 물리치기 위해 정병 5만을 파견했는데 ,파견된 군대는 광개토대왕의 고구려군대가 아니라 바로 연나라의 군대였고....연나라는 고조선이래 문화의 핵심강역으로 찬란한 문명을 보지한 황룡의 나라 천자의 나라였죠...문명의 핵심강역에서 유구한 문화와 문명을 이엇던 거대한 황룡국 연나라는 일찌기 불교를 받아들였고 고구려나 백제에 비해 일찍 거대제제국의 기틀을 마련한 국가였습니다. 그 연나라의 후예들이 금성으로 흘러들어와 예전의 김씨세력들을 제압하고 고도로 정비된 문물과 제도, 그리고 고등종교인 불교를 공인하여 촌구석의 신라를 비약적으로 발전시키게 된 것이죠. 그래서 왕이 제정일치를 담당했던 것에서 벗어나 제정일치는 분리되고 왕권이 강화되는 제국의 시대가 되었고 샤먼이 섬기던 신의 역할이 축소되는 대신 외부에서 들여온 더 쎈 부처가 그 자리를 메우게 된 것이 아닐까요? 이 때 중국식 제도를 채택했다고 하는 데 그 중국식 제도가 바로 연나라가 중국대륙을 지배할 때 쓰던 제도라는 것이죠. 신라의 비약적인 발전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를 해야 된다고 봅니다.
금관은 신라시대 때 것이 가장 화려하게보이네...
금 공예의 극치를 보는거 같다..
해외반출문화재인 뉴욕 신라금관을 정부가 하루라도 빨리 환수해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KBS에서 한 이프로그림은 잠으로 길이남을 역사적 기록이될겁니다. 수고들하셨고 감사드립니다. 이런 프로 화이딩 합니다.건강들하시고요 .
이 프로 넘 재밌음
금 면류관 이네요 너무 멋지고 갔고 싶어요 꼼꼼하고 손을 못될 정도로 멋 있습니다
저 금관은 망자가 생전에 사용을 하던 것이 아니라 사후에 망자의 머리에 고깔모양으로 씌여졌던 것입니다. 저 금관은 실제로 산 사람이 머리에 착용을 하면 저런 모양이 안 나오고 너무 약해서 금관의 가지들이 막 내려앉아요! 박물관에 저렇게 있는 건 각을 잡은 모양이고요!
@@STARGATE_SGC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황금인간 투구 처럼 신라 금관도 옷감이나 가죽등으로 안감이 되어 있었을것 같아요
오래 되서 그건 다 썩어 없어졌을거고요
금관 안쪽 마감된 부분을 보면 이해가 갈겁니다
금관들의 평균 둘레도 생각보다 큰 이유도 이것이구요
데드마스크가 아닌 큰 행사나 제사때 가끔 사용했을겁니다
평상시 쓰지 않는 장신구들을 망자에게만 쓰고 뭍는다는게 너무 낭비라 생각 됩니다
화려한 만큼 과시용으로 썼을겁니다
참신기하고 아름답습니다 역사조상님들의 지혜이렇게찬란함이
경주박물관에 직접 가서 금제장식품들을 보니까 지금 팔아도 손색없을 정도로 디자인이 세련된 것들이 많더라고요.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그거 다 후대에 복원(새로만듬)이니까요 ㅋ ㅋ
뭐 유럽 미술품도 오십년에한번씩 보수하니(보수라적고덧빵)
@@hihappy82 복원하면 세련되지나요?
뭔소리 ㅋㅋㅋ 고려시대 신라신대 유물은 금,은 이라 원본도 많아요 ㅋㅋㅋ 금동이나 철기만 레프리카가 인거지
@@benmantaray8437 금관은 흉노족의 유물이라는 이야기많아요 여기 역사스폐셜에도 나오는데 흥미롭죠 이편에서도 중앙아시아 비슷한 유물이 많다하는데 사실이고요
@@왓더쿼카 뭔소리는 뭔소리인지 복원이라고하는게 대부분 모양만 기존걸가지고 새롭게 복원한게 대부분인데 그걸말하는데 딴지걸면 대화가안되지
너무 너무 재미있게 보고있습니다.
역사저널방송은계속해서 해주세요 재밋네요 역사에관심많아요
수천년 보존돼다 현대에 발굴돼서 정말 다행임.
신기하기도 하고..
특히 일제시대 발굴되지 않아서 너무 다행.
한상권아나운서님과 성우님도 넘 멋집니다. 좋은방송을 더 돋보이게해주시는듯
금관의 의미는 자연을 아끼고 자유를 자랑스러와하는 우리민족의 마음이.보입니다
우리민족이 아니라 이민족..
넷플릭스와 계약이 시급합니다ㅠ 역사스페셜 자료들 영어 자막 작업해서 넷플릭스에 올라오면 참 좋겠어요.. 모든 자료를 다 못 올리더라도 중요했던 내용들만이라도... 세계인들과 공유하고싶어요.. 죄다 우리가 일본한테 배운건중 알아서 열받아요.. 일본이 우리의 속국이었는데... 그런 자료를 좀 널리 알렸으면... 우리나라 문화유산의 힘을... 역사의 힘을...
일본이 뭔 우리 속국임? 진짜 환빠 지긋지긋하다
@@etoilli 속국은 아니었죠.
단지 인간취급 안하고 개무시하다
임진왜란때 당한거지
Japan has never obeyed you.
Yes, there were Korean women in the harem of the Yamato emperors. For example, the last princess of Baekje - but nothing more.
백제와의 관계를 말하는거 같은데 선진 문물은 전파해준건 맞지만 속국은 아니었어요. 거의 대등한 관계였죠. 하물며 자기네 나라를 속국 취급했던 백제가 나당 연합군에게 패해 망해가는데 그걸 살려보겠다고 대규모 군대를 파견하지는 않았겠지요.
@@etoilli
옛날에 백제속국이긴 했음ㅇㅇ
백제면 완전 떠받아드리고 그랬으니까.
옷만드는 기술 다 알려줬거든.
그때당시 삼국시대때 일본한테는 백제는 거의 신이었음.
역사저널 덕에 역사를 깊이 있게 알게 돼 고맙습니다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유라시아 대륙에 같은 형태의 금관중 압도적으로 수준이 높고 많은게 신라 금관 . 원류라 할수있는 왕가가 신라왕가. 북유럽 ,유라시아 , 한국 신화까지
t
한국은 삼국시대 까지는 몽고 거란, 위구르 과 같이 중앙아시아(페르시아) 문화에 영향을 많이 받았으니까요. 지도자 이름부터가 어라하, 한지, 마립간, 태왕 등 "칸 Khan" 이였으니 그때만 왕관이 존재하죠. 나말여초 때부터 급격한로 한화(漢化)정책으로 익선관과 면류관을 쓰면서 왕관문화가 사라진건 뼈아픈 문화적 손실입니다.
@J U S T I C E 이건 맞는말
@J U S T I C E First, Lord Silla was from
en.wikipedia.org/wiki/Qi_(state)
Secondly, Isagym is the title of the ruler of Silla until 500 in Chinese it is 干 Gan is NOT Khan which is Kaan, Kagan, Gaan.
Isagym is a tribal title - as the high priest of the Koreans - i.e. shamanic. And the Chinese title placed him 干 Gan lower than 王 Wang. They gave such a title to inferior Wans. Those whom, according to the concept of the Middle State, they did not recognize as spiritually full-value - i.e. not Confucians.
Although in the 17th century they gave the Russian tsar the title of Wang despite the fact that he rejected Confucianism. But these were already the Manchus who did not really believe in the Chinese religion.
참우리말 지명이나 인명이 한화되고 한자의 훈독체계가 사라져서 언어적 단절이 생겨난 것도 큰 손실이죠.
중동 이집트 메포타미아 그쪽문화를 사실 유목민이 흡수한것
원래 유목민은 문화를 창조해낼수없음
아주 일부분 창조해내겠지만
유목민은 기록를 하지 않기때문
문화를 창조해내는거 자체가 불가능함
페르시아는 나중에 제국으로 성장하고 페르시아도 아님
안타깝네요 ㅠㅜ
저런 엄청난 유물이 나온 무덤주인이 누군지 모른다는게 정말 아쉽네요
어제 경주박물관 몇년만에 가서 오랫만에
금관들 다시 보고왔는데
볼때마다 묘하고 아름답고 신비로움
삼국에서 문화하면 신라와 백제!
신라 김씨왕족들 정말 대단했네요👍
정말 신비롭고 멋진거 같아요❤
우리 문화가 아닙니다. 유럽계 유목민족 문화예요.
신라 스키타이라고 검색해보시면 나옵니다. 신라 지배세력은 유럽계통의 이주민들입니다.
@@user-123uzud
신라는 우리나라 민족 아님?
@@용가리-x3l 신라 초기왕조가 백인들입니다. 후에 고조선 유민들하고 섞였어요.
@@용가리-x3l 문화 자체는 페르시아쪽 문화라고 보시면 됩니다.
황금인간 너무 정교하고 멋있어요 누가이시대에 저렇게 만들수있을까요
법흥왕 때부터 불교가 공인되어 샤먼이 이끄는 무속신앙은 더는 왕족과 가까울 수 없었죠. 왕관이 사라진 원인이라고 봅니다.
오호 아주명괘하고지적인말씀이네
법흥왕이전은 이슬람교였습니다
@대 신라후예 진흥 매금대왕 인도 드라비다 지방 출신이고 이동 중에 보주에 머물렀음.
@대 신라후예 진흥 매금대왕 인도공주와 결혼한 김수로는 가야 아니누?
개솔 ㅋㅋㅋ 몽고조차 이슬람을 받아들인적이없고 티베트 불교인데 ㅋㅋㅋ
카자흐스탄의 황금인간 처럼 신라 금관도 왕관 내부쪽을 어두운 색 계통의 천이나 가죽으로 덧대어 착용감도 높이고 황금의 화려함을 더 돋보이게 하지 않았을까 상상해 봅니다.
맞아요 천은 삭아버렸지만 십자형의 테는 남아있죠. 실제로 백제의 금동관 발굴중에는 중에는 천조각이 발견되기도 했구요
Well, you bought this hat from us - the Tokhars sold them throughout the region.
@@ЗенюсЯнулявичус 엯삿챗넔듨엣섯 럿싯앗인인첛 홠동핫는 톳찫왯굯인 껏졋랏. 닷른 챗넔엣섯 럿싯앗엇롯 댔긄 젃은것 봤는뎃 정잓 진짯 럿싯앗인듨은 몼앐앗듨음 ㅋㅋㅋㅋ 갓생잇닸컴엣돗 댔긄썼던뎃 럿싯앗인잇 갓생잇닸컴읈 왯 앗는뎃 ㅋㅋㅋ
저도 동감입니다
신라모조편도 올려주세요ㅠㅠ 신라시대 양탄자 궁금합니다!
일본 궁내청에서 보관중이라고 하던데 한번 볼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신라 관련 유물이 상당히 많이 보존되어 있다는데 궁금하긴 하네요.
아 재밌어요 얼마전 경주국립박물관 갔었는데 다시 가여겠어요 이거 보고 갔으면 좋았겠다 싶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17:46에 석씨 한자가 石(돌 석)으로 나옵니다. 신라 석씨는 鵲(까치 작)에서 鳥(새 조)를 제외한 昔(옛 석)을 한자로 사용한 걸로 알고 있는데, 이 부분이 방송사의 실수인지 아니면 石과 昔을 혼용한 것인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흉노라는건 중국이 비하해서 쓰는 말이고 스키타이족이란게 바른 표현인거 같네요 신라 지배층은 스키타이족인거 같고 차라리 삼국시대는 전세계랑 교류하고 자유롭고 패기 넘치는 기상이 있어 보이는데 조선 시대 와서 지나친 성리학 숭상으로 쇄국 정책에 꽉막힌 나라가 된거 같아서 답답해요 그나마 한글 만든것도 큰 수확인거 같고 나머지는 너무 답답함
확실히 경쟁국가가 있어야하네요
맞아요. 성리학이 나라망침
부여도 흉노입니다 유물보면 가야신라와 같이 동복이 쏟아져나오져 부여 가야 신라가 똑같은 흉노적유물이 나오죠 부여에서 고려 백제가 나왔으니 같은 유목민족인데요 흉노는 조선에서나왔으니 다 단군의 자손이요 신라만 흉노라고 말하는이가 많은데 그럼부여는 부여유물도 온통 흉노유물이구만
@@HJYoo-w4q 유교는 공자이전부터 있었어요 유불선이 아주상고시대부터 있었죠 유교를 폄하하지마세요 우리가 한족한테 가르껴준 문화이구만
Do you think that you are our slaves? No thanks - we don't need you.
재밌게 잘 봤습니다
KBs 신라역사 천마총 궁금했는데 잘봤음니다
당시 시대에 남아있는 금관이 전세계를 통틀어 10개 뿐인데 그중 신라 것이 6개입니다.
잘 보겠습니다
북방 유목민들은 금을 좋아한다. 이동하면서 살기 때문에 환금성이 뛰어난 금을 좋아한다.
@J U S T I C E 동서고금을 통틀어 금을 좋아하지 않은 인종이나 문화는 없다.
하지만 유목민들의 금 사랑은 유별난 데가 있다.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스키타이인들은
금을 특별히 좋아한다고 기록해놓았다. 지금도 스키타이인들의 부장품에는 금이 쏟아져
나온다. 흉노인들도 마찬가지다. 금관이 출토되는 문화는 스키타이, 흉노, 신라에서만 나온다.
백제는 금동관이 나올 뿐이다. 유목민과 금의 특별한 상관관계는 역사학계에서는 일반론이다.
삼국은 말 할거도 없고 극동아에서도 왕관은 신라가 제일 아름다움
응 니취향
아시아에서 금관 문화를 가진 유일한 나라가 신라 뿐이라 비교할 대상도 없어요. 로마, 스키타이제국 외에는 금관이 나온 국가들도 없어요. 전세계 금관의 80%가 신라에서만 있다잖아요. 그래서 일본 학자가 이걸 신기하게 생각해서 쓴 책이 로마 문화왕국 신라라고 하는 책인데 신라 고고학에 대해 관심있는 사람들이라면 구입해서 읽어볼만 합니다. 로마제국의 유물과 신라의 유물을 일대일로 비교해서 신라의 유물이 로마제국에서 왔을 가능성을 제기를 하고 있죠.
이걸 보고 본인이 주장하는게 신라의 금 유물이 아틸라 훈제국을 통해 유입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거죠. 아틸라 훈 제국이 로마제국을 쳐들어가면서 식민통치를 했는데 이때 로마제국으로부터 인질과 매년 120키로의 금을 조공으로 받았거든요. 그 금이 신라에 들어왔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거죠. 신라의 황금보검도 그걸 뒷받침하는 주요유물중의 하나일 것으로 보고요.
@@大신라혼 저랑 똑같은 생각하시네?? 혹시 연락처있으면 남겨주세요. 신라는 우리가 생각했던것보다 상상이상으로 강력한 대제국이였습니다. 무슨 고구려 광개토따위가 비빌 나라가 아니죠.
만리장성 북쪽은 중국땅이 아니다.몽골족 만주족 한국인들이 지배하던 곳이다.진시황이 소위 북방오랑캐를 막겠다고 만리장성을 만들었지만 이후로 여러번 정복됐으며 청나라도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하고 300년간 통치한거다.중국사관놈들이 조작 왜곡 숨겼던 한민족역사를 새로 쓰고 교육 시켜아함
ᆞ
금관의 안쪽에 천을 대고 출자형의 가지들을 한데 모으면 북방 스텝샤먼들의 고깔모자가 됩니다.
뒤쪽의 사슴뿔이 남아서 사먼의 모자의 사슴뿔 형상을 하죠.
오호 그렇겠네요👍
소호금천(소고 알튼 = 황금 사슴)
감사합니다 잘보고갑니다
신라 나의고향
신라의 금속세공 기술이 대단하긴 대단했구나...
원래 스키타이계 민족들이 금속세공 잘함
너무 빛나네요 정말 천마총과 앞에 쌍둥이고분 열때....금이 하나도변하지않고 빛나네요...사람은 가고 금만남았네...죽어서도 못가져가는 금은 덩어리...그냥 온백성에게 팔아서 베풀고 떠나지...
@@dreameroh4819 베풀었으면 저런 유물이 없었겠죠. 그리고 우린 신라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을겁니다.
수학여행가서 경주 박물관에서 금관하고 황금 칼보고 뿅갔음.
1600년전에 어떻게 그렇게 찬란 하게 만들수있었는지 신기했음.
삼국지에서도 나오는 말인데.. 사슴은 천자를 뜻해요.. 그래서 사슴을 쫒는다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
신라금관이 제일 낫네요 근데 금관은 저렇게 화려하고 멋있는데 황금그릇이나 잔은 왜 저리 디자인이 겸손하고 여러군데가 찌그러져있는지 궁금
감은사지 사리장엄구 보셨나요?
정말 아름다운 유물입니다.
스키타이의 유물과 많이 비슷하더군요.
이러한 역사를 공영방송에서 종종 알려야합니다~ 역사를 모르면 나라가망한다!!??
31:55 유라시아 금관들
영화보다 더 재밌어요~^^
오늘 저녁은 이거 보면서 때워야겠다... 저녁에 볼 거리 감사합니다~ ㅎㅎ
얃옹?
사슴이 아니고 순록 아닐까요? 유목민족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식량이자 단백질 공급원이였으니까요
사슴이 아니고 순록이많았다 했어요
아이러니 하게도 그 금관 문화도 신라가 약소국일 때 존속하던 문화 아닌가? 마립간 칭호 시절... 신라가 제도를 정비하고 불교를 받아들이고 중흥을 맞이할 때는 오히려 사라졌던...고분형태도 변화하고 말이죠...
27:02 틸리테페 금관 실용적이고 이뿌다. 현대 아트상품 같네요.
감사합니다
금관은 왕과 왕비및 그 자녀만 쓴 걸로 사료됨. 김일제의 아들이 김씨의 신라의 시조. 그러니 김일제 할배를 원조 김씨로 문무왕 비문에도 새김. 유라시아쪽 김가들과 유전자 검사하면 똑같을 것.
와 김씨가 북방기마민족 흉노왕 김일제의 후손인건 알았지만
마립간의 '간`이 '칸`을 의미하는거였다니 충격이다
삐야뀨 그걸 이제 알았다는게 더 충격...
우훗그런깊은뜻이 역시신라는수수께끼에스키타이 유목족이확실했어 마립칸
@대 신라후예 진흥 매금대왕 지 인생도 모르는 놈이
@대 신라후예 진흥 매금대왕 크 이맛이지ㅋㅋㄲㅋㅋㅋㅋㅋ
@대 신라후예 진흥 매금대왕 그러게 일어로 한국이 칸코쿠인데 확실히 이건 일리가 있네
돈이 될만한 황금덩어리는 사라지기마련.
와 두개골하고 치아가 아직도 남아있다는게 충격
구석기 시대 인골도 많습니다.
기초 자료 조사를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석씨 한자가 돌석으로 되어 있네요. 옛석 또는 경주석 입니다. 😅
오 김씨라는 것도 쇠 금이니까 우연이 아닐 수 있겠네요
신라시대 다른왕들 무덤에도 금관이 나올 수 있잖아요??
발굴안된 무덤속엔 뭐가 들어있는지 너무 궁금합니다
분석이야 따로 하겠지만 신라 금관의 정통이 끊긴건 금의 유입이 끊긴 것에 의한 것으로 추정이 됨. 신라에서 순금관이 출토가 되던 시기에는 유럽에서 아틸라 훈제국이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기임 아틸라 훈 제국은 로마제국을 식민통치하면서 그들로부터 인질과 막대한 금을 매년 조공으로 받았는데 이 금이 신라에 유입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음. 참고로 아틸라의 한자 음차가 아달라임. 신라의 이사금중에 아달라 이사금이 있는데 아틸라 칸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음.
그러다가 아틸라의 사망으로 훈제국이 사라지고 이때부터 신라에 금 유입이 끊기면서 금제 유물 역시도 사라졌던 것으로 보면 정확함. 불교는 금을 중심으로 하는 종교이기 때문에 불교 도입과 금 문화의 증발은 전혀 상관이 없음
좋은 정보네요
8:52 이빨 -> 이, 치아
금관이 사라진게 아니고 묻지 않은거 아니야 초장에는 모든 살림살이에 수발들 사람들까지 묻었다가 점점 물질에 중요도를 두면서 안묻기 시작한거 아닌가 싶은데
사라진이유는 한반도에 적응한것 농경문화인이 되었다는것
초원의 길은 말타고 다닐 수 있는 길이라서 멀리까지 갈 수 있었다
북반구에 치우쳐 있어서 적도보다는 서양까지의 길이 짧앗다
신라왕족 김씨는 청나라, 금나라 왕족의역사로 이어진다
지배층이 바꼈으니까 사라진거죠!
13:02 부터 무덤구조 설명
15:36 신라 무덤구조 시뮬레이션
하늘이 내린 신라 선택 받은 나라감네
한반도만 내려오면 왤케 디자인이 세련되질까. 한반도 토착민들 농경만 잘할줄 알았는데 손재주도 뛰어난걸까 ㅋ
한반도가 고대문명의 발상지인까요
@Glorious Wolf 댓글 수준 참....
@Glorious Wolf 어디서 일베나 하는 소리를 교양 프로그램 와서 하고있어
사슴뿔을 그대로 쓰면 지저분해보이니까 기술이 발전하면서 형상화했겠죠
사슴이 아니고 순록
척추동물 > 포유강 > 소목 > 사슴과 > 순록속; 순록은 사슴과입니다.
순록은 시베리아에 살고 있으며, 흉노와 한반도와 연관이 없음니다
그들은 하늘과 가까워 지기를 바랬으며,
해가 뜨는 동쪽으로 이동합니다
38:56 경악. .소장된 유물취급을 '냉장고안의 음식을 꺼내듯' 뭐 저래요 ? 밑받침도 없이. .저런 작업인경우 보통 두사람이상은 필요하죠. .우리나란 유적지.유물취급은 선진국 근처에도 못감 그냥 동떨어짐. 캄보디아 수준이에요.
불교와 유교가 들어오면서 샤만의 제사장을 상징하던 금관이 사라진 거였구나
저기 성리학식으로 절하시는 분들은 다른 회차에서 보니 신라와 서역과 기마민족과의 연관성 이야기를 하면 싫어히더라.. 중국쪽 이야기하면 좋아하시려나..
신라는 스키타이.... 고구려 백제와는 또다른...
뭘모르면 가만히나 있으면 중간이나 갑니다.. 이미 학계에서도 다 일반화된사실을.. ㅋㅋㅋㅋ
모르면 가만히계시는게 좋습니다 무슨 80년대는 ㅋㅋㅋㅋㅋ 이제 랜선연결하셨나..
금관의 모양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아는가요/
유래는 사슴뿔 모양이고
사슴뿔 그냥 쓰면 지저분해보이니까 기술발전하면서 뿔을 그대로 안쓰고 금으로 만들면서 형상화한거겠죠
지금 몽골인 얼굴과 한국인 얼굴은 거의 같다 스키타이 피가흐르고 있는것같다 중국인은 언어와 얼굴 거의 남방계다 일본인도 남방계 혼열이 많다
카자크 터어키 헝가리까지 지배했던 흉노족후예
@J U S T I C E 몽골에는 동복문홰가 없단다 가야 부여 신라에서 나타나지 공부좀해라
this is unscientific nonsense.
Xuantao was never ruled
no one - the word itself means the unfortunate. They were one of the multitude of the Polovets tribes and later mixed with the Russians and Tatars. Disappeared due to assimilation.
This people is unknown in terms of its genetic makeup. No corpses were found because they were feeding them to animals. They just threw the corpse in the steppe.
@@sang-hoonkim7733 부여에 나오니 찾아보세요
@@sang-hoonkim7733 아니요 많이나오고요 중공에서 인정한거네요
@@sang-hoonkim7733 부여가 유목민족입니다
현생인류는 깨달음과 지혜를 무기로 삼습니다. 공포를 극복하고, 최고의 지혜를 얻기 위한 방법으로 불교나 과학등 다른 이념이 등장하기 전 까지는
사회를 움직인 이념으로 사용된 무엇이 있다고 봐야지요.
무리를 지어사는 큰 사슴류중에
뿔이 9가지로 뻗은 연장자 사슴이 왕노릇한다고 합니다.
나무 형상은 신인은 나무를 타고 내려오기 때문 이고요.
그때의 이념을 쇠퇴한 지금의 무속으로 비교하는 일은 잘못된 지적입니다. 문명사적으로 현대의 사람다운 인류가 있기까지 인간답게 만드는 중요한 담당을 해온 것입니다.
지금의 무당이 왕관을 쓴다고
국가를 움직이겠습니까.
당시의 백성도 바보들이 아니죠.
지배층이 통찰의 지혜를 얻는 방법의 하나중 유력했겠죠.
수공애자도 나이먹고 국보급 금관의 수공애 기술자도 인간도 사람인지라 사람과 금관과 같이 갔을겁니다.그래서 국보급기술은 보존하기위해서 노력 하고 계승자가 있어야 합니다.그래서 기술자가 기술을 물려주지안으면 영원히 사라지는겁니다.기록도 만드는것은 사람마다 달라서 똑같은 것을 여러사람보고 만들어보라고 하면 전부다른 모양과 느낌이 오는겁니다.그래서 죽을때 싸가는것이 바로 기술입니다.역사도 마찬가지고요.건강들하시고요 애국이 무엇이고 조상이 남긴것을 기리보존하는 것이 민족성입니다.고조선 민족들이요.화이딩합시다.
참 아이러니하네요..ㅎㅎ 일반적으로 생각할때 법과 율이 발전하면 더 합리적인 사회가 되어 보통 "발전한다"는 생각이 드는데(고대로부터 지금까지 매 사회가 이전보다는 발전하고있으니)찬란한 문화유산은 왠지 줄어드는듯한 느낌.. 마치 과학이 발전할수록 종교나 예술이 비과학적으로 치부되어 쇠퇴되듯이 말이죠
신라에서 샤머니즘은 쇠퇴했지만 대신 불교예술이 발달했죠
자랑스럽다
경주김씨 후손으로
부끄러운 역사도 있어으나
그건 그때 시간으로 서로의 대립관계였으니 어쩔수없는것으로
우리역사는 살아있읍니다
전혀.
백제도 당나라에 붙고 있었음.
신라는 고구려 먼저 가서 백제치자 했는데 고구려가 기회 놓치는 거고, 그 뒤로 김춘추는 당과 왜에 갔는데 5촌사이에서 태어난 미남으로 왜도 칭찬 일색에 당나라는 아예 신라로 가지 말고 직급 줄 테니 내 옆에 있어라하는 등등.
(신라는 왜 이렇게 꽃미남 꽃미녀가 많은 거야?!)
당나라가 결국 신라 선택했고,
신라는 삼국의 주인이 되었고,
당나라에게 지지 않았음.
마지막 왕은 독재같은 후백제에겐 끝까지 저항하고 떠오른 해 고려를 이길 수 없다는 걸 인정하고 피를 안보고 자진 투항함. 현명한 거임.
부끄러울 건 없음.
어느 왕조나 폭군과 나라가 거덜나는 것이 있어왔고, 신라는 자신을 죽이는 백제가 아닌 받아들이는 고려에 투항하는 것도 현명함.
그래서 지금까지 후손이 살아남은 거고. 오히려 고구려와 백제는 그 실책이 너무 컸음.
측천무후조차 뛰어난 백제 장수 흑치상지 보고 왜 백제가 멸망했는지 몰랐고, 고구려는 연남 형재들의 내분으로 망한 거고.
이런게 진짜 수치스러운 일인 거임.
인재가 있어도 살아남지 못하고, 나라를 스스로 어지럽혀 나라망하게 하는 것.
잠자기 좋은 영상 목소리 굿굿
신라금관은 관이 아니라 가죽모자에 금장을 꿰메어 모자이고 가죽은 썩어서 사라지고 금관에 남은 여러 금시로 역은 장식은 금장을 모자에 꿰메어 역은 금실과 좌장시인데. 기마민족의 수장이 쓰는 금장모자 말타고 달릴때 도 쓴
신라 금관에 대해서 말하자면 금관에 달려있는 곡옥은 김알지 신화의 상징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나뭇가지의 황금궤 안에 들어있던 아기를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 바로 곡옥입니다. 곡옥의 형상은 태아의 모습과 일치합니다.
사람을 비롯한 포유동물은 물론 다른 동물의 태아도 곡옥과 같은 모습입니다. 곡옥은 왕권의 상징이었기 때문에 왕족이나 귀족 모두가 몸에 지니고 다니던 부적과도 같은 것이었으며, 특히 신라에서는 왕족이나 귀족들 사이에 즐겨 사용하였습니다. 금관 이외의 목걸이, 귀걸이, 허리띠 등에 달개와 함께 매달아 화려하게 장식하였습니다. 그 속에는 신라의 정신이 배어있으며, 신라인의 꿈과 염원이 담겨있습니다.
즉, 나뭇가지 끝에 돋아있는 '움'이 식물의 태아이자 생명력을 나타내며, 인간의 태아를 상징하는 곡옥은 동물의 태아이자 생명력을 나타내 둘 다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한 그루의 나무마다 몇 개의 가지가 쭉쭉 뻗어있고 그 가지 끝에는 '♤' 모양을 띄고 있습니다. '♤' 모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을 때,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카드놀이 할 때 봤었던 '♤' 모양이나 복숭아 또는 하트를 거꾸로 뒤집어 놓은 모양으로 봤을 것입니다. 또는 불꽃이나 알라딘 궁전 지붕 모습 등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나뭇가지 줄기의 끝 부분인 경정과 나무 뿌리인 근단에는 생장점이 있는데, 생장점 부분이 나무의 생장에 중심 역할을 합니다.
나뭇가지 끝마다 화살 촉 모양으로 도톰하면서 뾰족하게 올라 온 움의 모습을 금관의 세움장식 끝 부분에 표현한 것입니다.
즉, 나뭇가지 끝에 돋아있는 '움'이 식물의 태아이자 생명력을 나타냅니다.따라서 김알지 신화의 무대이자 신라의 국호인 계림의 신성한 숲을 상징한 것입니다. 따라서 세움장식의 형상은 사슴뿔이 아니라 나무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초기의 금관이나 금동관은 대부분 세그루의 나무로 장식되었으며, 그 세그루로 숲을 상징하기에 충분하지만, 초기와 달리, 금을 다루는 기술이 더 발달하고 국력이 축적되자 더 정교하고 더 상징적이며 더 화려한 금관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먼 소리 ? 먼 소설을 쓰는가?
곡옥은 신라에서 비롯된 유물이 아님
곡옥은 먼 고대에서 부터 이미 존재되어 있었으며
곡옥은 (본진 불함 3엽영역의 정통-한민족계열에만 존재되어온 유물로써 존재하는데) 그래서 다른 곳에는 곡옥유물이 존재되지 않음.
곡옥의 분포도는
불함 3엽역역지대외 이들이 이동한 루투일부에도 존재되는데
오츠크,,시베리아 ,베링해 ,캄차가반도,알라스카,북미,중미,남미(아메리카)등에 존재됨.
■불함 3엽 영역은 7만년전부터
[(삼신문화+장승+봉황족) 마문명이 거대하게 시작되었으며
(이 당시는 서해가 바다상태가 아니였고 큰 호수들과 큰 강줄기들이 있었던 각종 큰 물고기와 동식물들이 풍부했던 비욕한 벌판으로 뽕나무가가 끝없이 펼쳐졌으며 연꽃도 즐비했던)
빙하기 시절이였지만 빙하기속
4계절중에한 겨울 이외는 기후가 그리 춥지않았던 지대였으며/겨울이면 가정마다 스키타고 마실다님]
곳곳 먹거리가 풍부에서 동물들의 낙원이기도 했음
이후 해빙기시절이 오면서
마문명 맥통을 환국에서 이어 받고 역과 역법을 다시 재 정립하게됨 그리고
환국+부상국, 배달국 진단국(고조선)
시절로 정통 맥통이 이어지게됨
서해가 상전벽해되어 가면서 왕성하고 부흠했던 신선들이 직접 운영했던 부상국이 없어지게되었고
배달국이 맥통을 같이 이어가게됨
(고구려 백제 신라) 왕관들은 부상국시절에 디자인 되었던 유물들임
각종 금유물들도
■곡옥은 홍산에도 많이 유물이 놔왔데
한반도에도 탐라(제주도)에도 곡옥유물이 있음
곡옥은 뽕나무와도 관련이 있으며
당시 뽕나무에또는 신단수에 누에고치들이 주렁주렁 열였으며
배달국시절에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아서 실크로 옷을 처음으로 만들어 입게됨
이로써 용봉문명이 시작되게 되었으며
(애초 봉황이 먼저고 용이 나중에 놔옴)
부상국시절때의 운영하고자 했던 방식과 그 이후 역사들이 백제황로유자세히 형상화되어 기록되어 있음
동이(東夷) 의 각각 문자들이 이와 연관된 상형문자임
한자자체가 본래 동이족들이 만들 상형문자에서 비롯되었음
탐라(제주도)는 본래섬인 적이 없었고
본래 육지상태였음 서해가 상전벽해시 바다로 되었으며
*(본래 제주도는 산둥반도을 제주도라불렀음/조선시절때 탐라를 제주도로 명칭했을뿐임 )
서해가 상전벽해 되기 전에 부안 서쪽 매우 큰 호수가와 큰 강줄기가 모여드는 제주도 주변은 매우 번화가 지대였으며 먹거리가 풍부했고 영향력도 컸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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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제주도) 돌 하루방은 제주도가 원형이며
이 원형모양에서 각각 형태로 곳곳으로 파생되어나갔지만 형상은 대동소이함
탐라하루방은 특히 남미에 많으며 남미돌 하루방이 탐라 돌하루방과 가장 비슷함.
동남아 각 섬에도 돌하루방들이 세워져있음
한반도는 유래, 뜻 그리고 고대적과 신성함이 깃든 땅입니다. 소중히여겨야합니다.
역사추적 '문무왕비문'편 보면 연결이 잘 됩니다. 흉노족 태자 투후 김일제로 부터 7대를 내려온 성한왕(김알지로 추정)이 신라 김씨왕족의 출발점으로 이후 김씨가 신라의 지배층을 굳건히 하고 삼국통일을 이룬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도굴 당했을지 모릅니다. 더 많은 금관이 있었을듯!
신라가 그대로 이어져 내려왔어야 했는데 ...
이거 보다가 자면 개꿀 수면제 필요없다
ㅍㅎㅎㅎㅎㅎㅎ; 재밌네요🤗
ㄹㅇㅋㅋㅋㅋㅋ전 하필 과제가 이거보고 글쓰는거라서 보다가 2시간잠 ㄷㄷ
ㅋㅋ ㅋ
토악질나게생겨처먹엇네
나는 경주 김씨 상촌공파 경순대왕님의 23대째 후손으로 족보까지 받았는데...
잘 간직하고 있어야겠네 ㅎㅎ
28:00 사슴이 식량원이자 숭배대상이었댘ㅋㅋㅋ 뭐지 이 공존하는 상반된 개념은?
선생님 사슴 숭배의대상 의문풀어드릴깨요 전세계로 책이 낳아값니다
흉노인 신라 경주김씨가왕족인 자랑스럽 네요😂
사슴뿔관을 쓴 사람은 제사장이자 왕이죠 제정일치사회. 신라도 사슴뿔금관이니 제정일치사회의 수장이었겟져
이런 걸 볼 때마다 신라는 정말 흉노족이 한반도에 자리 잡아서 만든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항상 백제, 고구려와는 다른 문화를 보여주고 있으니
백제랑 고구려금관도 당연히 출토 되었음 다 같은 문화권사람들임; 신라 금관이 가장 많이 출토되는 이유는 삼국싸움에서 승리자가 신라였으니까 비교적 고분이 온전하게 보존된것뿐
신라만 금관이고 백제는 금동관 일것임. 알타이산이 금으로 유명하다고 들었어요. 흉노족이 신라김씨 조상이 맞습니다 ( 2년전 영상이네요)
기린이 아니라 순록이죠. 신라 금관이 순록의 뿔을 상징한것을 보면 정확하죠
저쪽 전문가들만큼 전공하고 연구하시고 나서 말씀하시는거라면 신뢰하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ㅎㅎ 그냥 개인 상상이죠
신라김씨가 스키타이로 나온 이상 순록이 맞음
신라김씨는 흉노가 아니라 스키타이 이다
김일제 쪽은 김알지 김씨이고
내물왕김씨는 스키타이인이라서 금가공술이 당대 최고고, 기마문화도 당대 최고임
금관이 사라진 것은 금관을 만들만큼 대량의 금을 채굴 할.수 없었기 때문이다. 과거 조선조까지 금을 채굴한 금광은 없다. 일제.강점기 이후 채굴기계가 도입 되기 전까진 한반도에 광산은 없었다. 신라 금관은 중앙 아시아에서 수입된 금이었다. 사금 채취가 금채굴의 전부였는데 그 양이 한정적이었다
페르시아에서 유리잔을 수입할 정도로 무역에 적극적인 나라가 금을 수입 못 했겠어요? 금이 못 구한 게 아니라 당문화에 빠져들면서 지명도 한자로 바꾸고, 관복도 당나라식으로 바꾸면서 금관도 사라졌겠죠.
금을 ㅈ ㅗㅎ아해서 몸에 달고 다니면서 소리가 나는 것을 즐겼다 보요관 모용씨선비가 북흉노고 스키타이인이 석임
금관으로 신라에대해서 알 수 있는 부분들은 무었일까
기술력?
어떤 특별한 상황에서 쓰는것이 아닐까
왕위 계승식이라든가 .
금관문화까지가 진짜 우리 고조선 문화의 맥이라고 봅니다 이후에는 불교나 유교 중화풍에 잠식 당하죠 고려때는 원나라풍도있고요
우리 5천년 역사 중에 1천년정도네요 이질적인건 사실 그 1천년입니다 4천년 우리역사를 찾아야죠
이사금은 (검)=샤머니즘 제사장 뜻
馬立干ㅡ(마리:頭)(ㅂㅡㅎ간:칸:王)ㅡ왕중의 우두머리 音借 ㅡ
금진은 신라에 진흥왕과 유모 금진은 보배진을 사용하는데 나는 참진을사용한다 진흥왕도 한자로 참진 을사용하고 일본은보배진 을 사용한다 참의원 똑같은 한자 표기아니다 ㅡ 금진에얽힌사연을방송하는데
금진에 뜻은 고려 백제신라 조선이 다담긴 이름이다 신라와 고려가 합친이름이다
제정일치를 상징하는 금관이 사라진 것은 불교라는 고등종교의 유입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요? 연나라가 망하고 그 유민들이 고구려에 투항하고 신라에 왜(예, 부여)가 쳐들어왔을 때 광개토대왕이 이들을 물리치기 위해 정병 5만을 파견했는데 ,파견된 군대는 광개토대왕의 고구려군대가 아니라 바로 연나라의 군대였고....연나라는 고조선이래 문화의 핵심강역으로 찬란한 문명을 보지한 황룡의 나라 천자의 나라였죠...문명의 핵심강역에서 유구한 문화와 문명을 이엇던 거대한 황룡국 연나라는 일찌기 불교를 받아들였고 고구려나 백제에 비해 일찍 거대제제국의 기틀을 마련한 국가였습니다. 그 연나라의 후예들이 금성으로 흘러들어와 예전의 김씨세력들을 제압하고 고도로 정비된 문물과 제도, 그리고 고등종교인 불교를 공인하여 촌구석의 신라를 비약적으로 발전시키게 된 것이죠. 그래서 왕이 제정일치를 담당했던 것에서 벗어나 제정일치는 분리되고 왕권이 강화되는 제국의 시대가 되었고 샤먼이 섬기던 신의 역할이 축소되는 대신 외부에서 들여온 더 쎈 부처가 그 자리를 메우게 된 것이 아닐까요? 이 때 중국식 제도를 채택했다고 하는 데 그 중국식 제도가 바로 연나라가 중국대륙을 지배할 때 쓰던 제도라는 것이죠. 신라의 비약적인 발전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를 해야 된다고 봅니다.
금관이 사슴뿔모양이 선우를 뜻하는거 아녀요?
사슴뿔은 Tree...우리말로 터와리(마을), 그러니까...땅과 마을로 이지구를 뜻하는거고 이지구의 새로운 주인님이 나왔다는건데...
서양에서는 티아라 라고도 하는데 연관성이 있어보임 ♡
금관은 여자꺼고 은관이나 동관이 남자꺼임
신라 왕족은 파미르 고원에서 왔다...
신라는 조선의 적통국가입니다 오히려 여기에서 파미르로 문화가 전해진거죠
@@강치우-c3s 개소리
@@imgoing1606 니아바이 이름이 개소리나
@@강치우-c3s 코딱지만한 반도의 구석에서 대륙의 대초원으로 문화가 간게 맞겠냐 그 반대가 맞겠냐
아닙니다 신라 왕실은 환국의 후예입니다 이상한 식민사관에 빠진 사람들이 많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