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역에서 오래동안 살아 온 제 경험과 제가 애정을 가지고 있는 이 나라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를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Bart는 한국을 위해 정말 훌륭한 일을 하고 있으며 저도 그 일부가 될 수 있어 기쁩니다. 역사라는 것은 때로는 꽤 어려울 수 있고, 많은 사람들은 각기 다른 의견도 가지고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 정확히 전달하려고 했습니다. 제 말이 최종 의견이 아닌 토론의 시작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언제든지 경청하고 배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While it's true our neighborhood isn't much for pubs, we are lucky to have some of the best cafes, least I think so, in all of Seoul. Ironically the railroad park is so nice usually that I don't have much reason to get out and about that much because all of my favorite places are already close by for the most part. Lately the district has been putting on some festivals in the area as well with insight from the businesses to some degree. Overall a neat idea. As you mentioned, our quiet neighborhood is one of its best perks though.
Great as usual 😊 as a suggestion if you know of any historic restaurants or stores in any neighborhood they may be good for visiting in future videos! The Oraegage and Seoul Future Heritage lists are useful for finding these
Professor Tizzard could drag me all around Seoul and talk to me about whatever and it would be the most fascinating day of my life haha I really love the Korea Deconstructed podcast and all the various topics & guests he brings on. I am really amazed that he could read such old texts to delve into the history of the Hwarang Boys. I only heard of them because of the Drama title, but I never watched it. When you two do videos/podcasts together I just have to drop what I am doing to listen to it because it really just intrigues me so much to learn about Korean history.
공릉동 토박이입니다. 아기 때 이사와서 40년 훨씬 넘게 살았으니까요. 우리 동네 오셨는지는 몰랐네요. 과거 공릉동은 육군사관학교, 선수촌, 태릉, 갈비, 먹골배 이정도로 인식되던 지역이었어요. 태릉이란 유적과 육군사관학교 이외에는 사실상 다 사라져버리고 거의 완벽한 베드타운처럼 보이는 곳이 되었지요. 촬영이 진행되던 육군사관학교 반대쪽 길을 건너면 과거 그쪽은 모두 야산과 배밭이었다고 보면 됩니다. 재미있는 건 그 배밭 한가운데에 갈비집들이 몇 군데 있었고 그것이 소위 태릉갈비를 파는 곳이었죠. 대부분 90년대 초반까지 존재했고 재개발로 인해 배밭이 모두 사라지면서 먹골배의 명맥도 사실상 끊어지고 자연스레 갈비집들도 다 뿔뿔히 그곳을 떠나고 말았어요. 공릉동 여저저기 태릉갈비 간판을 내건 식당은 아직 존재합니다. 사람들은 태릉갈비가 특이한 점이 있다고는 하는데 저는 잘 모르겠네요. 공릉동이란 지명도 사실 그렇게 오래된 편은 아니랍니다. 60년대에 들어서야 공덕동의 공과 태릉과 정릉의 능동의 능을 합쳐 공릉동이 되거든요. 그래서 정식명칭은 공릉동인데 아직도 연세 높으신 동네 어르신들은 공릉동이 아닌 공능동이라고 쓰시는 경우가 가끔씩 있습니다. 과거 경춘선이 폐선 되었고 그 선로는 공원화 되고 그 주위로 젊은 상권이 많이 들어섰지요. 과거에 비하면 정말 상전벽해입니다. 괜찮은 카페와 식당이 꽤 많답니다. 시간 나시는 분들은 경춘선 공원도 산책하시면서 식사도 하시고 과거 화랑대역부지는 저녁에 조명이 꽤 재미있게 설치되어서 아이들이 많이 좋아합니다. 경춘선 공원부터 화랑대역사 까지 시간 나시는 어린이 동반 가족이나 연인들은 오후부터 저녁시간까지 둘러보시기 괜찮습니다.
직접 거주하셨거나 기억이 있는 분들께서도 더러 있으셔서 더 자세하고 정확한 설명이 달리리라 봅니다만 태릉 인근의 '~(배밭)갈비' 등과 같은 소위 '가든'형 음식점들은 인근 배밭을 유원지 삼아 놀러오거나 서울여대 인근에 있던 '푸른동산'과 같은 위락시설을 이용하는 도시민들을 위한 장소였다고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들 음식점들이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 옮겨간 이유는 재개발 때문이라는 설명이 설득력 있고, 지금의 화랑로를 따라 동쪽으로 넘어가거나 중화동 쪽으로 넘어가곤 했습니다. 화랑로를 따라 넘어간 음식점들을 중심으로 남양주시가 테마거리처럼 조성하려는 움직임도 이러한 전사에서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영상에 나오는 태릉 일대 음식점 역사에 해서는 태릉입구역 근처에 있는 서울생활사박물관에서 서울 시민의 의식주를 포함한 여러 일상, 생활사 관련 연구, 전시들을 진행하고 있으니 참고하시면 좋을 듯합니다.
Great bite-sized interview! I enjoy learning these wee bits of history and culture. I’ve learned much about Korea from Professor Izzard’s YT channel. He has a relaxed yet focused style of interviewing as well as a wide range of fascinating guests. I’m still working through a stack of books I’ve come by through his interviews.
공릉동 30년 넘게 살았는데, 육사나 화랑에 대한 이야기는 잘 몰랐네요. 재밌게 잘 봤습니다! 근데 화랑대 쪽은 사실 공릉동에서 약간 외진 곳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경춘선이 기찻길 공원으로 바뀐 이후에 형성된 식당, 카페 등이 연트럴파크와 흡사하게 번화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동네에서는 공트럴파크로 불립니다. 화랑대에서부터 기찻길을 따라오시면서 과기대 쪽으로 쭉 걸어오셨으면 서울과 춘천을 잇는 경춘선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더 많은 그림을 담을 수 있었을 텐데 아쉽네요. 또한, 서울과기대 정문부터 공릉역까지가 학생들이 가는 술집도 많고 유동 인구가 많은 대학가라고 볼 수 있습니다. 건대, 홍대 등 서울 주요 번화가처럼 크고 화려하진 않지만, 대학교가 많아 맛집도 많고 경춘선 숲길이 완성된 이후로는 자연과 어우러진 정말 매력적인 동네가 되었습니다. 계절에 따라 벚꽃부터 낙엽까지 정말 예쁘고, 기찻길 감성 사진 찍기도 좋습니다. 서울의 숨겨진 보석(a hidden gem)이란 표현이 정말 맞습니다!
태릉갈비 상권이라고 해야하나? 당시에 있던 갈비집들은 태릉에서 더 서울 외곽으로 빠져서 별내에 가면 맛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태릉갈비의 유래를 육사와 연관지어서 설명한 건 약간 잘못된 거 같습니다. 육사 때문에 태릉갈비가 있었던 게 아니라 애초에 한국 xx릉 근처엔 오리고기집이나 갈비집들이 많은 거 같아요. 그렇게 된 이유는... 오리고기, 갈비를 굽기 위한 숯불 혹은 장작들을 시내에 위치한 요리집에서 맘껏 쓰기 힘들었고.. 시외의 요리집에서 땔감 문제나 조리시 냄새에 자유롭게 쓸 수 있어서 그런 거 아닐까 싶습니다.
@@Hanfugirl_Hanzi 옛날 역사와 연결 지으려면 그 사람의 본관을 기준으로 생각해야겠죠. 그런 의미에서 강호동의 본관은 진주 강씨입니다. 진주가 포함된 남해 지역의 중간 부분은 신라가 아닌 가야가 오랜 기간 통치했지요. 그러다가 가야가 신라에 복속되었지만 가야라고 생각한 지역이 모두 신라 땅은 아닙니다. 그리고 고대 진주의 역사에 대한 것은 밑에 달린 Q&A 글을 참고 바랍니다. 기록에 나오는 것으로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Q. 그럼 고려 때 진주목이 되기전 진주는 어떤 도시였나요 A. 진주는 본래 백제의 거열성(居列城)이었습니다. 663년 신라 문무왕이 삼국통일후 거열주(州)를 설치하였다가 신문왕 5년(685)에는 정주(菁州), 경덕왕 16년(757) 강주(康州)라고 고쳤습니다. 그리고 고려 성종 2년(983) 목(牧)을 설치한 것입니다.
Q. 우리는 진주하면 가야나 신라 영토일 것이라고 알고 있는데, 백제 영토라니 의외이군요 A. 진주는 신라영토였다기 보다 백제 지역이었습니다. 실제로 옛날 기록을 보면 [삼국사기 6권 신라본기] 663년조 (신라 문무왕3). 거열주 설치 라는 항목에, 신라 장군 흠순(欽純)과 천존(天存)이 백제의 거열성을 비롯한 여러 성을 점령함으로써 진주는 신라에 속해졌고, 명칭도 거열주(居列州)로 되었다. 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는 통일신라시대 이전에는 백제 땅이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죠, 또 고려사 936(고려태조19)년 조에 보면. 후백제의 신검이 강주도독 양검과 무주도독 용검과 함께 왕건에게 항복하여 강주는 고려에 영속되었다. 라는 기록도 있습니다. 이는 통일신라시대 에도 후백제의 영향권에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광주 시민입니다♥ 당시 유신헌법을 선언 안했었다면 지금처럼 공 산 민 주 화 당들 에게 발목잡혀서 산업화는 어림도 없었고 한강의 기적도 없었을 것이며,오늘의 대한민국도 없었을 것입니다. 더불어,수 십년 전 삼청교육대학교 설립하시고, 무장한 퐝주 푹도들로부터 선량한 광주시민들을 지켜주신 전두환 전 대통령님과 계엄군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5,18은 북한 교과서에 버젓이 김일성 지시로 김대중이 사주하여 일으킨 푹동입니다
광주 시민입니다♥ 당시 유신헌법을 선언 안했었다면 지금처럼 공 산 민 주 화 당들 에게 발목잡혀서 산업화는 어림도 없었고 한강의 기적도 없었을 것이며,오늘의 대한민국도 없었을 것입니다. 더불어,수 십년 전 삼청교육대학교 설립하시고, 무장한 퐝주 푹도들로부터 선량한 광주시민들을 지켜주신 전두환 전 대통령님과 계엄군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5,18은 북한 교과서에 버젓이 김일성 지시로 김대중이 사주하여 일으킨 푹동입니다
광주 시민입니다♥ 당시 유신헌법을 선언 안했었다면 지금처럼 공 산 민 주 화 당들 에게 발목잡혀서 산업화는 어림도 없었고 한강의 기적도 없었을 것이며,오늘의 대한민국도 없었을 것입니다. 더불어,수 십년 전 삼청교육대학교 설립하시고, 무장한 퐝주 푹도들로부터 선량한 광주시민들을 지켜주신 전두환 전 대통령님과 계엄군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5,18은 북한 교과서에 버젓이 김일성 지시로 김대중이 사주하여 일으킨 푹동입니다
광주 시민입니다♥ 당시 유신헌법을 선언 안했었다면 지금처럼 공 산 민 주 화 당들 에게 발목잡혀서 산업화는 어림도 없었고 한강의 기적도 없었을 것이며,오늘의 대한민국도 없었을 것입니다. 더불어,수 십년 전 삼청교육대학교 설립하시고, 무장한 퐝주 푹도들로부터 선량한 광주시민들을 지켜주신 전두환 전 대통령님과 계엄군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5,18은 북한 교과서에 버젓이 김일성 지시로 김대중이 사주하여 일으킨 푹동입니다
이 지역에서 오래동안 살아 온 제 경험과 제가 애정을 가지고 있는 이 나라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를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Bart는 한국을 위해 정말 훌륭한 일을 하고 있으며 저도 그 일부가 될 수 있어 기쁩니다. 역사라는 것은 때로는 꽤 어려울 수 있고, 많은 사람들은 각기 다른 의견도 가지고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 정확히 전달하려고 했습니다. 제 말이 최종 의견이 아닌 토론의 시작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언제든지 경청하고 배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크~ 댓글에서도 품위가 느껴집니다. 화랑의 기품을 지닌 데이비드 티저드 교수님!! 응원합니다.
아니 한국인보다 한국어를 더 정갈하게 사용하시네요! 대단하십니다!
While it's true our neighborhood isn't much for pubs, we are lucky to have some of the best cafes, least I think so, in all of Seoul. Ironically the railroad park is so nice usually that I don't have much reason to get out and about that much because all of my favorite places are already close by for the most part. Lately the district has been putting on some festivals in the area as well with insight from the businesses to some degree. Overall a neat idea. As you mentioned, our quiet neighborhood is one of its best perks though.
교수님 너무 멋있으십니다.
Hello Professor! Nice to meet you in this side of youtube!
Miss those days I spent there in my early 20s😢
Great as usual 😊 as a suggestion if you know of any historic restaurants or stores in any neighborhood they may be good for visiting in future videos! The Oraegage and Seoul Future Heritage lists are useful for finding these
제목 네이밍 미쳤다... 공릉역으로 출근하는 1인 감명받고 갑니다
Thanks for the great info! Much appreciated!👏
Your contents are so beautiful ❤ Thank you
That hat on Hwarangs statue reminds me Asterix
Professor Tizzard could drag me all around Seoul and talk to me about whatever and it would be the most fascinating day of my life haha I really love the Korea Deconstructed podcast and all the various topics & guests he brings on. I am really amazed that he could read such old texts to delve into the history of the Hwarang Boys. I only heard of them because of the Drama title, but I never watched it.
When you two do videos/podcasts together I just have to drop what I am doing to listen to it because it really just intrigues me so much to learn about Korean history.
Thank you! Was sooo cool to be able to do this with Bart.
공릉동 토박이입니다. 아기 때 이사와서 40년 훨씬 넘게 살았으니까요. 우리 동네 오셨는지는 몰랐네요. 과거 공릉동은 육군사관학교, 선수촌, 태릉, 갈비, 먹골배 이정도로 인식되던 지역이었어요. 태릉이란 유적과 육군사관학교 이외에는 사실상 다 사라져버리고 거의 완벽한 베드타운처럼 보이는 곳이 되었지요. 촬영이 진행되던 육군사관학교 반대쪽 길을 건너면 과거 그쪽은 모두 야산과 배밭이었다고 보면 됩니다. 재미있는 건 그 배밭 한가운데에 갈비집들이 몇 군데 있었고 그것이 소위 태릉갈비를 파는 곳이었죠. 대부분 90년대 초반까지 존재했고 재개발로 인해 배밭이 모두 사라지면서 먹골배의 명맥도 사실상 끊어지고 자연스레 갈비집들도 다 뿔뿔히 그곳을 떠나고 말았어요. 공릉동 여저저기 태릉갈비 간판을 내건 식당은 아직 존재합니다. 사람들은 태릉갈비가 특이한 점이 있다고는 하는데 저는 잘 모르겠네요.
공릉동이란 지명도 사실 그렇게 오래된 편은 아니랍니다. 60년대에 들어서야 공덕동의 공과 태릉과 정릉의 능동의 능을 합쳐 공릉동이 되거든요. 그래서 정식명칭은 공릉동인데 아직도 연세 높으신 동네 어르신들은 공릉동이 아닌 공능동이라고 쓰시는 경우가 가끔씩 있습니다. 과거 경춘선이 폐선 되었고 그 선로는 공원화 되고 그 주위로 젊은 상권이 많이 들어섰지요. 과거에 비하면 정말 상전벽해입니다. 괜찮은 카페와 식당이 꽤 많답니다. 시간 나시는 분들은 경춘선 공원도 산책하시면서 식사도 하시고 과거 화랑대역부지는 저녁에 조명이 꽤 재미있게 설치되어서 아이들이 많이 좋아합니다. 경춘선 공원부터 화랑대역사 까지 시간 나시는 어린이 동반 가족이나 연인들은 오후부터 저녁시간까지 둘러보시기 괜찮습니다.
와 자주가는데 전혀몰랐던 내용이라 알차고좋습니다👍🏻
화랑 자랑스러워요 ♥
대박 언제 온거에요! 우리동네잖아!!
오오오! 1분전!! 잘 볼게요!
직접 거주하셨거나 기억이 있는 분들께서도 더러 있으셔서 더 자세하고 정확한 설명이 달리리라 봅니다만 태릉 인근의 '~(배밭)갈비' 등과 같은 소위 '가든'형 음식점들은 인근 배밭을 유원지 삼아 놀러오거나 서울여대 인근에 있던 '푸른동산'과 같은 위락시설을 이용하는 도시민들을 위한 장소였다고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들 음식점들이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 옮겨간 이유는 재개발 때문이라는 설명이 설득력 있고, 지금의 화랑로를 따라 동쪽으로 넘어가거나 중화동 쪽으로 넘어가곤 했습니다. 화랑로를 따라 넘어간 음식점들을 중심으로 남양주시가 테마거리처럼 조성하려는 움직임도 이러한 전사에서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영상에 나오는 태릉 일대 음식점 역사에 해서는 태릉입구역 근처에 있는 서울생활사박물관에서 서울 시민의 의식주를 포함한 여러 일상, 생활사 관련 연구, 전시들을 진행하고 있으니 참고하시면 좋을 듯합니다.
푸른동산! 진짜 오랫만에 들어보는 이름이네요...
너무 좋네요
공릉은 서울의 남동쪽이 아니고 북동쪽 입니다.
제가 살고있는 저의 고향이네요 기다렸는데…ㅎㅎ 재밌게 보겠습니다
헉 제가 졸업한 학교 교수님이시네요 ! 공릉동 넘 한적하니 좋아요 ㅎㅎ
Great bite-sized interview! I enjoy learning these wee bits of history and culture. I’ve learned much about Korea from Professor Izzard’s YT channel. He has a relaxed yet focused style of interviewing as well as a wide range of fascinating guests. I’m still working through a stack of books I’ve come by through his interviews.
공릉동은 서울의 북동쪽이지 않을까요? 라는 생각으로 시작 해서 봤습니다.
그리고, 육군사관학교에 있는 화랑들 뿐만 아니라 의무 복무를 하고 있는 대한민국 모든 젊은이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부족한게 맞는거 같다는 생각으로 마쳤습니다.
즐겁고 재밌게 잘 봤습니다.
태릉갈비 2000년대 초반에도 삼육대 근처에 있었어요. 별내에 아파트단지 생기며 대부분 사라진것
저희 동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공릉동!
0:30 - Hahahahaha! Instant death.
공릉동 30년 넘게 살았는데, 육사나 화랑에 대한 이야기는 잘 몰랐네요. 재밌게 잘 봤습니다! 근데 화랑대 쪽은 사실 공릉동에서 약간 외진 곳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경춘선이 기찻길 공원으로 바뀐 이후에 형성된 식당, 카페 등이 연트럴파크와 흡사하게 번화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동네에서는 공트럴파크로 불립니다.
화랑대에서부터 기찻길을 따라오시면서 과기대 쪽으로 쭉 걸어오셨으면 서울과 춘천을 잇는 경춘선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더 많은 그림을 담을 수 있었을 텐데 아쉽네요.
또한, 서울과기대 정문부터 공릉역까지가 학생들이 가는 술집도 많고 유동 인구가 많은 대학가라고 볼 수 있습니다.
건대, 홍대 등 서울 주요 번화가처럼 크고 화려하진 않지만, 대학교가 많아 맛집도 많고 경춘선 숲길이 완성된 이후로는 자연과 어우러진 정말 매력적인 동네가 되었습니다.
계절에 따라 벚꽃부터 낙엽까지 정말 예쁘고, 기찻길 감성 사진 찍기도 좋습니다.
서울의 숨겨진 보석(a hidden gem)이란 표현이 정말 맞습니다!
저도 대진고 나오고 지금까지 공릉에서 13년 살았는데 반갑네요 ㅎㅎ
3:41 fall prey calamity
Whoa I want to go there now. Interesting video about the mysterious Hwarang, which sadly there is little information on.
태릉갈비 상권이라고 해야하나? 당시에 있던 갈비집들은 태릉에서 더 서울 외곽으로 빠져서 별내에 가면 맛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태릉갈비의 유래를 육사와 연관지어서 설명한 건 약간 잘못된 거 같습니다.
육사 때문에 태릉갈비가 있었던 게 아니라 애초에 한국 xx릉 근처엔 오리고기집이나 갈비집들이 많은 거 같아요.
그렇게 된 이유는... 오리고기, 갈비를 굽기 위한 숯불 혹은 장작들을 시내에 위치한 요리집에서 맘껏 쓰기 힘들었고..
시외의 요리집에서 땔감 문제나 조리시 냄새에 자유롭게 쓸 수 있어서 그런 거 아닐까 싶습니다.
영상을 잘 보시면 육사 떄문에 태릉갈비가 있었다고 하지 않았어요. 원래 있던 태릉갈비가 육사 출신인 전두환이 사관생도들이 정신 팔릴까봐 옮겼다는 설이 있다고 얘기한겁니다.
후원한게 아깝지 않네요. 저도 몰랐던 정보를 알게되어 유익했습니다. 최근 안좋은일이 있던것으로 알고있는데 모든 한국인이 그런것은 아닙니다. 당신의 노력에 항상 응원합니다. 감사해요.
저 외국인교수가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거임...
실제로 한반도를 최초로 통일한 국가는 신라이며 그 중심에는 화랑들이 있었습니다. 당의 도움도 분명히 있었지만 화랑들이 통일신라의 주역들이죠.
통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의 남한 지역만 차지하였습니다
신라가 외세를 등에업고 뒷통수를 쳐 차지했던 땅 중에 고구려 땅은 없습니다
@Hanfugirl_Hanzi 한반도라고 했잖아요
@@whentheygolow_wegohigh7306 한반도 절반만이죠
평양도 못얻었잖아요 그들만의 가짜통일입니다
@@Hanfugirl_Hanzi 그 당시엔 민족이라는 개념이 없던 시대인데 통수는 또 뭔가요 ㅋㅋ 마치 무슨 같은 민족이라서 통수쳤다는식으로 말씀하시네요
@@KoreanBigMan 백제가 겨우 단신으로 승리해서 한강 되찾았을 때 동맹 통수 때리고 진홍왕이 통수친 거 맞아요 역사 잘 모르시네요
신라만 흉노김씨 피이기도 하고요 김일제
나의 학번은 84 년 입니다. 나의 나라의 젊은 세대가 하지 않고있는 일을 젊은 외국인 Bart가 해주고 있어서 고마워요. 그리고 데이빗 티사드 교수님 에게도 감사합니다.
좋은 말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대만 쪽인가 어디 박물관가면
1000여년전 외국사신들은 그린 그림이 있는데 당시 신라 사신이 현대에 봐도 꽃미남으로 그려져 있어서
아마도 신라 화랑이 갔을 것으로 추측 되는 그림이 있어요
성수동 다음 핫플은 공릉동이 될 가능성이 높음
앗 공릉동 우리 동네
요즘은 공트럴파크라고 커피숍들 즐비한 곳으로 바뀌는 중
Go to Seoul worldcup stadium at 16:30 on 2nd November. This Saturday.. FC Seoul vs Pohang steelers match.. Don't miss it.
토니 스타크인줄 알았어요😂
ㅎㅎㅎㅎㅎ 사실 옛날에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Silla is homeland of Kang Ho Dong, who is hwarang's descendent! Gyeongsang Do
진주는 통일 신라 이전에는 백제 땅이었습니다.
그러니 강호동은 화랑의 후손이 될 수 없습니다.
통일 신라 시대에는 족보 따져 봐야겠지만 타국 유민의 후손이 아니라면 전부 신라인이니 누구나 화랑의 후손이 될 수 있고요. ㅋㅋㅋ.
@ 강호동은 경상도 고향 마산 사람입니다 변한계 ㅎㅎ 강씨도 경상도 고향 토착 성씨고요
백제는 서쪽이기에 신라 경상도 지방이랑 전혀 관련이 없어요
@@Hanfugirl_Hanzi 옛날 역사와 연결 지으려면 그 사람의 본관을 기준으로 생각해야겠죠. 그런 의미에서 강호동의 본관은 진주 강씨입니다. 진주가 포함된 남해 지역의 중간 부분은 신라가 아닌 가야가 오랜 기간 통치했지요. 그러다가 가야가 신라에 복속되었지만 가야라고 생각한 지역이 모두 신라 땅은 아닙니다.
그리고 고대 진주의 역사에 대한 것은 밑에 달린 Q&A 글을 참고 바랍니다. 기록에 나오는 것으로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Q. 그럼 고려 때 진주목이 되기전 진주는 어떤 도시였나요
A. 진주는 본래 백제의 거열성(居列城)이었습니다. 663년 신라 문무왕이 삼국통일후 거열주(州)를 설치하였다가 신문왕 5년(685)에는 정주(菁州), 경덕왕 16년(757) 강주(康州)라고 고쳤습니다. 그리고 고려 성종 2년(983) 목(牧)을 설치한 것입니다.
Q. 우리는 진주하면 가야나 신라 영토일 것이라고 알고 있는데, 백제 영토라니 의외이군요
A. 진주는 신라영토였다기 보다 백제 지역이었습니다. 실제로 옛날 기록을 보면 [삼국사기 6권 신라본기] 663년조 (신라 문무왕3). 거열주 설치 라는 항목에, 신라 장군 흠순(欽純)과 천존(天存)이 백제의 거열성을 비롯한 여러 성을 점령함으로써 진주는 신라에 속해졌고, 명칭도 거열주(居列州)로 되었다. 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는 통일신라시대 이전에는 백제 땅이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죠,
또 고려사 936(고려태조19)년 조에 보면. 후백제의 신검이 강주도독 양검과 무주도독 용검과 함께 왕건에게 항복하여 강주는 고려에 영속되었다. 라는 기록도 있습니다. 이는 통일신라시대 에도 후백제의 영향권에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qndhctsienfklr She is Chinese.
@@qndhctsienfklr She is Chinese.
Gyeongsang Do, Silla, Hwarang
vs Jeolla Do, Baekjae, Saulabi
싸울아비는 나중에 이름 붙혀진거라. 아마 고구려랑 같은 조의선인 이었을 수도 있음
백제꺼는 헛소리임ㅋㅋ 그런거 없었음
@@범희이-b1k그리고 조의선인도 마찬가지임 그건 존재는 했지만 화랑같은 무력집단 양성기관이라고 보기엔 역사적 근거가 없음.
@@범희이-b1k She is Chinese.
@@asdr-ty2qv She is Chinese.
신라의 화랑은 다양하게 얘기될 수 있는 존재지요. 1차적으로는 국가가 등용하려는 인재.
그러나 불교 수행자, 무장한 노예주, 애국정신의 화신, 그리고 연애와 섹스에 뛰어난 얼짱으로도 얘기 가능.
맞는 말씀입니다~
맞아요~ 광주엔폭도들이 무기고 습격해서 총기탈취,군경 학살하다가 민주화되어 착해져서 많이들 흰 천에 덮여 길바닥에 천박하게 널부러졌어요.ㅠㅠ
서해는 동해와 달리 매우 험난한 바닷길입니다. 백제가 신ㄹr에게쳐망할때, 동맹이었던 일본군이 도와주러 왔다가(그 유명한 백강전투) 풍랑 만나 몰살당한 바다입니다. 서해 바다가 얼마나 위험한 바다인가는 서해에 산 사람들은 너무도 잘 압니다.
광주 시민입니다♥
당시 유신헌법을 선언 안했었다면 지금처럼
공 산 민 주 화 당들 에게 발목잡혀서 산업화는 어림도
없었고 한강의 기적도 없었을 것이며,오늘의 대한민국도 없었을 것입니다.
더불어,수 십년 전 삼청교육대학교 설립하시고, 무장한 퐝주 푹도들로부터 선량한 광주시민들을 지켜주신
전두환 전 대통령님과 계엄군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5,18은 북한 교과서에 버젓이 김일성 지시로 김대중이 사주하여 일으킨 푹동입니다
재학중 연애가 금지였던 육사가 현대의 화랑이라니 웃기는군. TK 쿠데타 세력의 산실이었으니 그냥 경상도 오리진을 강조한거 같은데..
맞아요~ 광주엔폭도들이 무기고 습격해서 총기탈취,군경 학살하다가 민주화되어 착해져서 많이들 흰 천에 덮여 길바닥에 천박하게 널부러졌어요.ㅠㅠ
서해는 동해와 달리 매우 험난한 바닷길입니다. 백제가 신ㄹr에게쳐망할때, 동맹이었던 일본군이 도와주러 왔다가(그 유명한 백강전투) 풍랑 만나 몰살당한 바다입니다. 서해 바다가 얼마나 위험한 바다인가는 서해에 산 사람들은 너무도 잘 압니다.
광주 시민입니다♥
당시 유신헌법을 선언 안했었다면 지금처럼
공 산 민 주 화 당들 에게 발목잡혀서 산업화는 어림도
없었고 한강의 기적도 없었을 것이며,오늘의 대한민국도 없었을 것입니다.
더불어,수 십년 전 삼청교육대학교 설립하시고, 무장한 퐝주 푹도들로부터 선량한 광주시민들을 지켜주신
전두환 전 대통령님과 계엄군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5,18은 북한 교과서에 버젓이 김일성 지시로 김대중이 사주하여 일으킨 푹동입니다
@@광주폭동-u4h ㄱㄱ ㅓ 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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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은 초스카이를 잘 쓰는 맴버가 주로 센터에 섰죠.
화랑을 영어로 적절히 번역하면 뭘까?
저기 태릉에 있는 배나무 밭에서 염소탕? 먹었던...
경상도 고향 문화 입니다 환단고기
동쪽 동남쪽 신라 지방의 문화이죠
서울은 서쪽 백제이기에 전혀 다른 문화입니다
광주 시민입니다♥
당시 유신헌법을 선언 안했었다면 지금처럼
공 산 민 주 화 당들 에게 발목잡혀서 산업화는 어림도
없었고 한강의 기적도 없었을 것이며,오늘의 대한민국도 없었을 것입니다.
더불어,수 십년 전 삼청교육대학교 설립하시고, 무장한 퐝주 푹도들로부터 선량한 광주시민들을 지켜주신
전두환 전 대통령님과 계엄군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5,18은 북한 교과서에 버젓이 김일성 지시로 김대중이 사주하여 일으킨 푹동입니다
맞아요~ 광주엔폭도들이 무기고 습격해서 총기탈취,군경 학살하다가 민주화되어 착해져서 많이들 흰 천에 덮여 길바닥에 천박하게 널부러졌어요.ㅠㅠ
서해는 동해와 달리 매우 험난한 바닷길입니다. 백제가 신ㄹr에게쳐망할때, 동맹이었던 일본군이 도와주러 왔다가(그 유명한 백강전투) 풍랑 만나 몰살당한 바다입니다. 서해 바다가 얼마나 위험한 바다인가는 서해에 산 사람들은 너무도 잘 압니다.
Go to watch FC Seoul vs Pohang steelers in Seoul worldcup stadium at 16:30 this Saturday(2nd November).
Go to Seoul worldcup stadium because FC Seoul vs Pohang steelers match will be hosted there at 16:30 tomorrow(this Saturday). Go go
There should have been a South Korea Military propoganada warrning before this video lol
광주 시민입니다♥
당시 유신헌법을 선언 안했었다면 지금처럼
공 산 민 주 화 당들 에게 발목잡혀서 산업화는 어림도
없었고 한강의 기적도 없었을 것이며,오늘의 대한민국도 없었을 것입니다.
더불어,수 십년 전 삼청교육대학교 설립하시고, 무장한 퐝주 푹도들로부터 선량한 광주시민들을 지켜주신
전두환 전 대통령님과 계엄군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5,18은 북한 교과서에 버젓이 김일성 지시로 김대중이 사주하여 일으킨 푹동입니다
맞아요~ 광주엔폭도들이 무기고 습격해서 총기탈취,군경 학살하다가 민주화되어 착해져서 많이들 흰 천에 덮여 길바닥에 천박하게 널부러졌어요.ㅠㅠ
서해는 동해와 달리 매우 험난한 바닷길입니다. 백제가 신ㄹr에게쳐망할때, 동맹이었던 일본군이 도와주러 왔다가(그 유명한 백강전투) 풍랑 만나 몰살당한 바다입니다. 서해 바다가 얼마나 위험한 바다인가는 서해에 산 사람들은 너무도 잘 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