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germsk 님 말씀대로 실제 인구는 영상 속 인구인 750만 정도보다 많을 거에요. '세금을 거둘 수 있는 호구 수'만 포함된거라 포함 안 된 인구의 추정치까지 포함하면 통계가 들쭉날쭉 해질 거에요 역사학자들도 세종시기, 고려시대 실제 인구는 구체적으로 모른다고 할 정도니까요.
하도 엉터리 국뽕 유튜브나 좌파들이 가짜 주장을 하여 고구려 인구가 600만명이나 하는 황당한 헛소리들이 난무해서 삼국시대의 고구려나 조선이 대단한 나라인줄 알겠지만 실상은 인구도 얼마 안되는 작은 나라 였습니다 조선의 경우 임진왜란 이후 8도인구가 400만명선 까지 줄 어들기도 하였구요 그이유는 임진왜란당시 전라도를 제외한 여러지역에서 농사를 못지은곳이 많아 굶어죽은 사람들도 많았고 전쟁통에 죽은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조선말기 겨우1200만명 까지 증가하였지만 인구만 그정도였지 상당수는 굶주림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나 일제시대 36 년동안 미친듯이 인구가 폭팔적으로 증가합니다 1945년 해방당시 조선인구는 3천만명으로 두배 반이상 증가 합니다 일본에도 엄청난 조선인 들이 남았고 만주나 러시아의 고려인들 하와이 멕시코 브라질 등으로 간사람들을 빼고서도 말입니다 그만큼 일제시대때 농업기술 전수와 볍 씨 개량종자 보급 및 비료보급이 획기적으로 쌀과 모든곡물 생산량을 비약적으로 증대시켰으며 고구마 감자 옥수수의 재배도 증가 하였기 때문 입니다 고구려 시대에는150만명을 넘은적이 없었고 그것도 습족해족 말갈 거란 등 수많은 부족들 포함한연맹체 여서 결속력이 낮았습니다
문뜩 저 시대는 교통수단도 말, 사람다리 밖에 없었고 저렇게 다양하게 분포 하며 사니까 사화나 난 같은 대역죄 사건 일어났을때 체포하고 의금부 압송하고 추국하는 것도 엄청 시간이 오래 걸렸을 것 같습니다. 뭐든 사극에서 나오듯 갑작스럽게 챠르르 전개되는 건 불가능이었겠네요.
호구에 잡힌 인구가 기준이라면, 저기에 잡히지 않은 인구가 방대할겁니다. 유교 왕조 국가들에서 호구를 세세하게 조사해서 세금을 철저히 걷는것을 꺼리는 풍토도 제법 있어서, 각 지역의 호구조사를 할때 기존의 호구수에 맞춰서 조사해 올리는게 보통이었습니다. 예를들면 경상도 단성현의 경우, 4,000명의 호구상의 인구가 임진왜란 직후부터 구한말까지 유지가 됐습니다.
경상남도를 제외한 경상북도 면적만 해도 충청남도와 충청북도 면적을 합친것과 비슷합니다 지도상으로 봐도 그렇듯이 과거에는 농사도 못짓는 산이 많아서 그렇긴 하지만 일제시대 수많은 신작로(지금의 국도) 건설과 댐 및 저수지와 보를 건설하고 하천제방을 쌓아서 홍수를 막고 사방공사로 산사태를 방지하고 수많 은 야산들을 개간하여 논과 밭으로 만들었으며 비료공장을 지어 비료보급과 볍씨개량 농업기술 보급 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전국의 크고작은 항만과 공 항(활주로가 짧은 구식공항)을 전국에 수십개를 만든것이 일제시대 였습니다 물론 지금은 여객기의 활주로가 길어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 사라졌지만 ...그래서 농수산 및 임산물 축산물을 다른지역으로 수송과 이동이 편리해져서 생산이 증가한 것입니다 홍수방지로 토양이 장마와 폭우에 싯겨 떠내려 가는것도 막았고 ...
영광군은 6.25당시 북괴군이 인천상륙작전 으로 북으로 도주하면서 현지의 빨치산이나 남로당원들과 함께 지역주민들을 시켜서 군인 경찰 공무원 가족들과 우파 정치인들을 3만명을 잡아서 영광군에서 처형을 하여 영광군 전체에 핏물이 흘렀습니다 여기저기 파묻고 기관총을 난사하고 수류탄을 던지고 죽창과 칼로서 죽이고 ... 역사교과서에 기록조차 빼버렸습니다 민00 사람들이 .. 그때이후 인구가 감소하였지요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조리 좌익들과 그가족들뿐 ..
저당시에 100만 넘는도시가 어케 3개나 있어요 ㅋㅋ 산업화 되고 도시화가 돼야 도시에 사람들이 몰릴 수가 있는거지 농경시대에 무슨 말도 안되는 개소리를 하고 있어ㅋㅋ 전국적으로는 땅덩어리가 더 크니까 인구는 일본이 더 많을 수 있겠지 근데 그 때까진 문화적으로 등 여러 면에서 우리나라가 좀 더 발전돼있었던 걸로아는데 여자들은 지금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더 이쁨 그리고 ㅋㅋ ㅈ같은 근거도 없는 일본 억빠 개소리 댓글 자제좀
고려시대 까지는 경주는 평양과 더불어 최고의 지방도시 였습니다 경주는 동경이라 불리었고 평양은 서경이라 불리웠으며 개경은 송도라 불리우며 고려의 수도였죠 몽골이 일부러 경주를 박살내서 강화도로 들어간 고려무신정권을 끌어 내려고 경주까지 내려갈정도 였습니다 그때 황룡사 9층탑과 경주 전체가 불바다가 되어 소실되 었고 임진왜란때 경주가 또한번 박살나서 그뒤로는 중소도시가 되었음
@@이상한앨리원래 부산은 동래라는 지역에 포함된 작은 어촌 지역이었습니다. 지금처럼 커진 건 625 이후부터죠. 대전도 근혀대에 들어 부각된 지역이지 원래 유서 깊은 지역은 아니었습니다. 근현대에 와서 기술 발달과 산업화·도시화로 인해 지역 입지가 역전된 곳이 여럿 있다고 합니다.
경상남도를 제외한 경상북도 면적만 해도 충청남도와 충청북도 면적을 합친것과 비슷합니다 지도상으로 봐도 그렇듯이 과거에는 농사도 못짓는 산이 많아서 그렇긴 하지만 일제시대 수많은 신작로(지금의 국도) 건설과 댐 및 저수지와 보를 건설하고 하천제방을 쌓아서 홍수를 막고 사방공사로 산사태를 방지하고 수많 은 야산들을 개간하여 논과 밭으로 만들었으며 비료공장을 지어 비료보급과 볍씨개량 농업기술 보급 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전국의 크고작은 항만과 공 항(활주로가 짧은 구식공항)을 전국에 수십개를 만든것이 일제시대 였습니다 물론 지금은 여객기의 활주로가 길어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 사라졌지만 ...그래서 농수산 및 임산물 축산물을 다른지역으로 수송과 이동이 편리해져서 생산이 증가한 것입니다 홍수방지로 토양이 장마와 폭우에 싯겨 떠내려 가는것도 막았고 ...
경상남도를 제외한 경상북도 면적만 해도 충청남도와 충청북도 면적을 합친것과 비슷합니다 지도상으로 봐도 그렇듯이 과거에는 농사도 못짓는 산이 많아서 그렇긴 하지만 일제시대 수많은 신작로(지금의 국도) 건설과 댐 및 저수지와 보를 건설하고 하천제방을 쌓아서 홍수를 막고 사방공사로 산사태를 방지하고 수많 은 야산들을 개간하여 논과 밭으로 만들었으며 비료공장을 지어 비료보급과 볍씨개량 농업기술 보급 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전국의 크고작은 항만과 공 항(활주로가 짧은 구식공항)을 전국에 수십개를 만든것이 일제시대 였습니다 물론 지금은 여객기의 활주로가 길어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 사라졌지만 ...그래서 농수산 및 임산물 축산물을 다른지역으로 수송과 이동이 편리해져서 생산이 증가한 것입니다 홍수방지로 토양이 장마와 폭우에 싯겨 떠내려 가는것도 막았고 ...
이 영상에서 내가 말 하고 싶은건 , 1위가 경상도 인데, 부산이 없는게 보일 거임. 부산은 조선시대에 그저그런 어촌마을에 불과했다 . 오히려 진주가 더 큰 대도시였제 . 그러나 . 대일본제국 시절 . 일제시대 때 부산은 급속도로 발전한다 . 일본본토 내지에서 오는 물동량의 거점도시로 일본과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일본은 부산을 전략적으로 도시화 시켰음 . . 일본이 깐 경부선도 종착역을 부산으로 할만큼 . 일본이 부산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다 육이오 전쟁때 오만 어중이 떠중이들이 부산에 몰려 들면서 피난민 이랍시고 부산은 더욱더 큰 대도시가 되고 . 한국 제2의 도시갇 되는 거임 . . 참고로 . 대일본제국이 조선이란 땅에 해수욕장을 최초로 만드는데 그게 바로 부산 송도 해수욕장임 . 송도는 일본의 군함 마쯔시마를 기념하기 위해 붙인 이름임 . 소나무를 심었다 .
통일신라의 영향임 통일 신라때 9주5소경으로 주요행정구역을 나누었음 예를 들면 무진주라 하면 지금의 전라도 광주 뿐 아니라 남원 주위의 몇개군과 도시를 합친것 이었음 통일신라의 영토는 지금의 황해도나 북한쪽 강원도와 평안남도 일부 까지였음 평양 은 당연히 통일신라의 영토 일부였음
광주 나주 전주 진주 청주처럼 주가 끝에 붙은 고을은 평야가 넓었고 부산 익산 울산 마산 처럼 산이 들어가는 고을은 산이 많은 지역이었죠. 목포 부산포 영산포 같은 고을은 항구가 있는 고을이었습니다. 각 지역의 특성에 맞는 고을이름을 갖고 있었죠 인천 부천 홍천 같은 지역에는 큰 강이 있었고 오히려 대구 함흥 대전 남원 같은 고을은 특색있는 이름이었다고 봐야죠. 평양, 광양, 담양 같은 지역은 기후가 따뜻하고 온화한 지역인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더 잘나가는 지역이 주변의 다른 지역까지 통합해서 명칭을 대표하는 경우도 많아서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경남 통영 같은 경우에는 이순신장군의 삼도수군 통제영이 자리잡은 이후로 통영이라는 명칭을 갖게 되었다고 하죠
tigermsk 님 말씀대로 실제 인구는 영상 속 인구인 750만 정도보다 많을 거에요.
'세금을 거둘 수 있는 호구 수'만 포함된거라 포함 안 된 인구의 추정치까지 포함하면 통계가 들쭉날쭉 해질 거에요
역사학자들도 세종시기, 고려시대 실제 인구는 구체적으로 모른다고 할 정도니까요.
조선시대 인구 보면 솔직히 저출산으로 인구가 현재의 절반으로 떨어져야 엇비슷해질 거 같음...
하도 엉터리 국뽕 유튜브나 좌파들이 가짜 주장을 하여 고구려 인구가 600만명이나 하는 황당한 헛소리들이 난무해서 삼국시대의 고구려나
조선이 대단한 나라인줄 알겠지만 실상은 인구도 얼마 안되는 작은 나라 였습니다 조선의 경우 임진왜란 이후 8도인구가 400만명선 까지 줄
어들기도 하였구요 그이유는 임진왜란당시 전라도를 제외한 여러지역에서 농사를 못지은곳이 많아 굶어죽은 사람들도 많았고 전쟁통에 죽은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조선말기 겨우1200만명 까지 증가하였지만 인구만 그정도였지 상당수는 굶주림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나 일제시대 36
년동안 미친듯이 인구가 폭팔적으로 증가합니다 1945년 해방당시 조선인구는 3천만명으로 두배 반이상 증가 합니다 일본에도 엄청난 조선인
들이 남았고 만주나 러시아의 고려인들 하와이 멕시코 브라질 등으로 간사람들을 빼고서도 말입니다 그만큼 일제시대때 농업기술 전수와 볍
씨 개량종자 보급 및 비료보급이 획기적으로 쌀과 모든곡물 생산량을 비약적으로 증대시켰으며 고구마 감자 옥수수의 재배도 증가 하였기 때문
입니다 고구려 시대에는150만명을 넘은적이 없었고 그것도 습족해족 말갈 거란 등 수많은 부족들 포함한연맹체 여서 결속력이 낮았습니다
문뜩 저 시대는 교통수단도 말, 사람다리 밖에 없었고 저렇게 다양하게 분포 하며 사니까 사화나 난 같은 대역죄 사건 일어났을때 체포하고 의금부 압송하고 추국하는 것도 엄청 시간이 오래 걸렸을 것 같습니다. 뭐든 사극에서 나오듯 갑작스럽게 챠르르 전개되는 건 불가능이었겠네요.
중부지방 경기도 충청도 황해도가 의외로 인구가 적다는게 신기하고..
변경백인 함경에 인구가 많은 것도 의외.
남부지방 전라 와 경상에 인구가 많은건 예상했던 일.
아마도 조선시대는 농경사회라서 더 많은 평야와 곡물생산이 가능한 지역에
인구가 집중된 면이 있는것 같음.
평안도도 추워서 그렇지 평양평야가 엄청 넓은 평야라 인구부양력이 높음. 조선후기쯤 되면 평양의 건조기후 극복하고 논농사 성공시키는 정도는 조선농민들에게 일도 아니었고.
@@인도양의제왕나갈플 만주에서도 쌀을 키우는 미친 쌀박이 민족...
함경 평안은 중국과 연계되는 곳이라 인구가 많음.
함경도 땅덩어리가 너무 커서 그렇지 사람이 많은건 아님 충청도 넓이의 세배가 넘는데 ㅋㅋ
경기 충청 황해는 다 면적이 다른데보다 더 작음. 그래서 인구 적어보이는거, 실제로 인구밀도로 따져보면 그렇진 않음
조선전기때 각도 인구수 많은지역두개 앞자두개로 도이름지었는데 평안도의 안주랑 충청도 청주는 2순위도시에서 밀려났고 황해도 황주해주 강원도 강릉 원주는 일이등 인구수가 바낀거 보니잼네여 함길도는 길주반란때문인지 빠지고 경성 들어갓는데 경성이 다시 길주 영흥햐테 밀려있고
되게 유익하네요
호구에 잡힌 인구가 기준이라면, 저기에 잡히지 않은 인구가 방대할겁니다. 유교 왕조 국가들에서 호구를 세세하게 조사해서 세금을 철저히 걷는것을 꺼리는 풍토도 제법 있어서, 각 지역의 호구조사를 할때 기존의 호구수에 맞춰서 조사해 올리는게 보통이었습니다. 예를들면 경상도 단성현의 경우, 4,000명의 호구상의 인구가 임진왜란 직후부터 구한말까지 유지가 됐습니다.
그런 일도 있었군요. 여기에 노비들은 또 제외되었울테고.
그게 맞나요? 저는 반대로 보는데.
저때 영광 인구 많았네
남원시보다 많았구나
8도 비단장수가 영광장에서 못팔면 운다고...
경상남도를 제외한 경상북도 면적만 해도 충청남도와 충청북도 면적을 합친것과 비슷합니다 지도상으로 봐도 그렇듯이 과거에는 농사도 못짓는 산이 많아서
그렇긴 하지만 일제시대 수많은 신작로(지금의 국도) 건설과 댐 및 저수지와 보를 건설하고 하천제방을 쌓아서 홍수를 막고 사방공사로 산사태를 방지하고 수많
은 야산들을 개간하여 논과 밭으로 만들었으며 비료공장을 지어 비료보급과 볍씨개량 농업기술 보급 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전국의 크고작은 항만과 공
항(활주로가 짧은 구식공항)을 전국에 수십개를 만든것이 일제시대 였습니다 물론 지금은 여객기의 활주로가 길어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 사라졌지만 ...그래서
농수산 및 임산물 축산물을 다른지역으로 수송과 이동이 편리해져서 생산이 증가한 것입니다 홍수방지로 토양이 장마와 폭우에 싯겨 떠내려 가는것도 막았고 ...
영광군은 6.25당시 북괴군이 인천상륙작전 으로 북으로 도주하면서 현지의 빨치산이나 남로당원들과 함께 지역주민들을 시켜서 군인 경찰 공무원
가족들과 우파 정치인들을 3만명을 잡아서 영광군에서 처형을 하여 영광군 전체에 핏물이 흘렀습니다 여기저기 파묻고 기관총을 난사하고 수류탄을
던지고 죽창과 칼로서 죽이고 ... 역사교과서에 기록조차 빼버렸습니다 민00 사람들이 .. 그때이후 인구가 감소하였지요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조리
좌익들과 그가족들뿐 ..
충청도의 홍주(현홍성)이 두번째로 큰 지역이었구나..홍성이라는 지명이 일제시대때 공주와 이름이 헷갈려 변경된 지역임.홍주+결성 이렇게 해서 홍성으로 변경됨.
함경도가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살았군요. 무엇보다 산악이 유독 많은 곳이라 강원도처럼 많은 사람이 살기 힘들었을 것 같은데...
땅덩어리가 크잖아요 인구밀도로 따져보면 많이 산건 절대 아님
함경도 전체 면적이 네덜란드 + 벨기에 합친 면적보다 약간 작은 크기
1910년 일본이 한국 식민지시킨후 인구조사가 2천만이라던데 1945년 해방후 조선 인구조사가 3천만 가까이 된다는데 어찌 조선이 이리 36년사이 인구가 급증했는지 도 알고싶네요ㆍ
해방 후 또한 2천만입니다 잘못 알고 계시네요 ^^
이게 일제가 잘한거라고 절대 말할순 없지만 현대의학, 상하수도 같은 것들이 구한말~ 일제강점기에 많이 들어왔죠. 기계화, 산업화가 되면서 인구가 폭증하고 영아사망률이 줄어드는건 어느나라나 마찬가지 였습니다.
저때 일본은 100만명 넘는 도시가 3개나 있었다던데...후덜덜
농업생산력과 인구에서 조선을 완전 압도했음.
조선통신사 기록에도 일본이 너무 잘살고 여자들이 이뻐서 완전 개깜놀하고 분해(?)하는 기록이 존재함.
저당시에 100만 넘는도시가 어케 3개나 있어요 ㅋㅋ 산업화 되고 도시화가 돼야 도시에 사람들이 몰릴 수가 있는거지 농경시대에 무슨 말도 안되는 개소리를 하고 있어ㅋㅋ
전국적으로는 땅덩어리가 더 크니까 인구는 일본이 더 많을 수 있겠지 근데 그 때까진 문화적으로 등 여러 면에서 우리나라가 좀 더 발전돼있었던 걸로아는데
여자들은 지금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더 이쁨 그리고 ㅋㅋ ㅈ같은 근거도 없는 일본 억빠 개소리 댓글 자제좀
@@ejc9461넘 모르고 하는 말쌈이네요.
@@ejc9461 중국 동부해안 도시들이랑 일본의 간토지방은 평야가 엄청나게 많아서 가능
신라의 서울에는 17만호가 넘는 주택이 있었다는데.. 후대의 조선에서는 오히려 인구 밀집도가 더 떨어졌네요
@@ejc9461예 이미 일본은 인구수 경제력 을 임진왜란 전부터 고려때부터 한국을 넘어섰습니다... 자료찾아보고 인터넷 뒤져보세요
호구총수에는 솔거노비 인구는 포함된건가요? 솔거노비는 그렇다쳐도 외거노비는 세금을 내지 않았지만 사실상 지역민처럼 자유롭게 활동했는데 외거노비 인구가 포함된 통계인지 궁금하네요.
신분에 따른 포함 범위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아서 어느 정도의 인구가 수치에서 누락되었는지는 여러 추측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저 당시 인구조사는 과세의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거라 노비와는 관련이 없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조사를 했다고 해도 따로 집계되었을 거고요.
강원도는 산간에 더럽게 춥다보니 옛날부터 사람들이 잘 안살았네
경주, 상주 인구 보니까 왜 경상도라고 했는지 알겠네요....
지금은 대구하고 비교도 안되는데;;ㅎㅎ
대구는 순위권에는 있지만 부산 대전은 순위권에도 없네요 ㅎㅎ
고려시대 까지는 경주는 평양과 더불어 최고의 지방도시 였습니다
경주는 동경이라 불리었고 평양은 서경이라 불리웠으며 개경은
송도라 불리우며 고려의 수도였죠 몽골이 일부러 경주를 박살내서
강화도로 들어간 고려무신정권을 끌어 내려고 경주까지 내려갈정도
였습니다 그때 황룡사 9층탑과 경주 전체가 불바다가 되어 소실되
었고 임진왜란때 경주가 또한번 박살나서 그뒤로는 중소도시가
되었음
@@jeonggeunkim6002
불리우며(x)-이중피동
불리며(o), 불러지며(o)
@@이상한앨리원래 부산은 동래라는 지역에 포함된 작은 어촌 지역이었습니다. 지금처럼 커진 건 625 이후부터죠. 대전도 근혀대에 들어 부각된 지역이지 원래 유서 깊은 지역은 아니었습니다. 근현대에 와서 기술 발달과 산업화·도시화로 인해 지역 입지가 역전된 곳이 여럿 있다고 합니다.
@@이상한앨리광주도
경상도는 그 옛날에도 인구가 많았네요
경상남도를 제외한 경상북도 면적만 해도 충청남도와 충청북도 면적을 합친것과 비슷합니다 지도상으로 봐도 그렇듯이 과거에는 농사도 못짓는 산이 많아서
그렇긴 하지만 일제시대 수많은 신작로(지금의 국도) 건설과 댐 및 저수지와 보를 건설하고 하천제방을 쌓아서 홍수를 막고 사방공사로 산사태를 방지하고 수많
은 야산들을 개간하여 논과 밭으로 만들었으며 비료공장을 지어 비료보급과 볍씨개량 농업기술 보급 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전국의 크고작은 항만과 공
항(활주로가 짧은 구식공항)을 전국에 수십개를 만든것이 일제시대 였습니다 물론 지금은 여객기의 활주로가 길어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 사라졌지만 ...그래서
농수산 및 임산물 축산물을 다른지역으로 수송과 이동이 편리해져서 생산이 증가한 것입니다 홍수방지로 토양이 장마와 폭우에 싯겨 떠내려 가는것도 막았고 ...
이때가 전국 균형적이고 좋았던듯
농사짓던 시절이라...
도시화가 하나도 안됐으니까 당연히 균형적일 수 밖에 없게 되는거지
뭐가 좋다는거임?
경상남도를 제외한 경상북도 면적만 해도 충청남도와 충청북도 면적을 합친것과 비슷합니다 지도상으로 봐도 그렇듯이 과거에는 농사도 못짓는 산이 많아서
그렇긴 하지만 일제시대 수많은 신작로(지금의 국도) 건설과 댐 및 저수지와 보를 건설하고 하천제방을 쌓아서 홍수를 막고 사방공사로 산사태를 방지하고 수많
은 야산들을 개간하여 논과 밭으로 만들었으며 비료공장을 지어 비료보급과 볍씨개량 농업기술 보급 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전국의 크고작은 항만과 공
항(활주로가 짧은 구식공항)을 전국에 수십개를 만든것이 일제시대 였습니다 물론 지금은 여객기의 활주로가 길어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 사라졌지만 ...그래서
농수산 및 임산물 축산물을 다른지역으로 수송과 이동이 편리해져서 생산이 증가한 것입니다 홍수방지로 토양이 장마와 폭우에 싯겨 떠내려 가는것도 막았고 ...
이 영상에서 내가 말 하고 싶은건 , 1위가 경상도 인데, 부산이 없는게 보일 거임. 부산은 조선시대에 그저그런 어촌마을에 불과했다 . 오히려 진주가 더 큰 대도시였제 . 그러나 . 대일본제국 시절 . 일제시대 때 부산은 급속도로 발전한다 . 일본본토 내지에서 오는 물동량의 거점도시로 일본과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일본은 부산을 전략적으로 도시화 시켰음 . . 일본이 깐 경부선도 종착역을 부산으로 할만큼 . 일본이 부산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다 육이오 전쟁때 오만 어중이 떠중이들이 부산에 몰려 들면서 피난민 이랍시고 부산은 더욱더 큰 대도시가 되고 . 한국 제2의 도시갇 되는 거임 . . 참고로 . 대일본제국이 조선이란 땅에 해수욕장을 최초로 만드는데 그게 바로 부산 송도 해수욕장임 . 송도는 일본의 군함 마쯔시마를 기념하기 위해 붙인 이름임 . 소나무를 심었다 .
함경도가 충청도 면적의 세배가 넘는데 함경도에 사람 많이 살아서 신기하다 이러네
경기도가 의외로 없군요
한성도 경기도입니다.
산업화 되면서 인구가 몰린거지
당시는 상업은 천시하고 농업위주라 정치인 빼고는 한성은 별로 인기가 없었다고 보임.
우선 먹고 살것이 없음.
지금 강남이 인기인 이유 가운데 it를 비롯한 직장(먹거리)이 풍족하기 때문임. 예나 지금이나 그 시대의 먹거리가 풍족한 곳에 사람이 모이게 되어 있음.
경기도는 1975년 초반까지 전라남도보다 인구가 작았습니다 경기도가 본격적으로 커진건 80년대 들어서부터 입니다
한양은 빼고 조사한거 같은데요 한양은 경기도가 아니예요
경제의 핵심에 사람이 몰린다
농경국가에서 당연히 전라도가 풍요롭고
예외적으로 함경도는 국제도시라
함경도가 국제도시 헛소리하고 있네. 지도볼줄도 모르나
조선시대 5대 도시 서울 평양 의주 충주 전주
역참?의 기능도시로서 문경새제 경상도의 상주 충청도 충주. 국경교역도시 의주 인구가 눈에 띄네요. 함경도에도 생각보다 꽤 많은 인구가 거주 했네요. 항상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충주는 한양으로 가는 세곡선이 모이는 중간 기착지 였습니다..
충주가 평양,의주 다음 네번째로 큰 도시였구나 몰랐네
춘천은 강릉 ㆍ원주보다도 적었군ㆍㆍㆍ
조선팔도 나눌때 도 최고대도시 앞글자 이름 2개씩 따서 이름 지은거에요 강릉+원주=강원도
전주+나주=전라도 경주+상주=경상도
그러니 당연히 인구 춘천이적었겠죠 많았음
춘강도 뭐이랫겠죠ㅋㅋㅋ
춘천은 지금도 원주보다 인구가 적죠
23년12월기준 원주36만>춘천29만>강릉21만
본래의 도시보다 일제 이후로 새로운 대체도시가 만들어진 이유는 토착민들이 일제에 협조를 않으니까 그 세력을 죽이기 위해 근처의 다른 지역에 행정도시를 건설한 것임.
지역균형발전 지리네
이렇게 인구가 고루 분포되어야 나라가사는데.. 요즘은 수도권 집중때문에 나라 곳곳이 텅텅 빈곳이 많다..
네맞는
말씀입니다.
인구거주 불균형심하죠
그러기에 글쓴이님
께서 강원도나 전라도오지에
들어가서 국토거주
불균형을 해소해주세요
@@kime0078 라도삽니다.
@@jehoonlee-n1n 굿입니다.
그래서 조선시대가 살기좋은 시대였냐? 생각좀 하고 살아라
@@elvischo9397조선 초중후반 초반에는 잘살았습니다.
남북 다 합쳐도 700 만 정도네...
1789년 한반도 인구는 약 팔백만명 이었나보군요. 240년간 인구가 10배 증가 했네요...
그럼 8000천만 인데요!?!?
@@TV-ib2lk남북합쳐서
@@TV-ib2lk북한 인구는 모름
극비라서
미국은 북한인구 1800만 보고 있습니다
@@TV-ib2lk주성하씨는 500만 기만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윤성민-y1k500만이 아니라 2500만에서 500만이 적은 2000만이라고 주장했음
암만 그래도 500만으론 지금만한 국력도 유지가 안될걸요?
와 이 때는 진짜 경상 강원 전라 황해 명칭이
대체로 제일 대표 되는 2도시 앞글자 따서 지은게 맞았네
그럼 조선시대에 지은 이름인데 당연한거 아니냐
@@ejc9461 지금은 다르니깐 그렇지 ㅋㅋㅋ
역시부산은 전쟁덕에 커졌네
충주는 유사이래 한반도 5위권인구의 도시였는데 최근 100년사이에 이렇게나 ㅋ
지금 현재 대한민국 저출산+성비불균형도 심각합니다.
30대-남자 36만명 초과
20대-남자 42만명 초과
10대-남자 16만명 초과
외노자 인구 300만명 >> 10살~19살 여자수 224만명
원래 자연 성비가 105:100으로 남성이 더 많이 태어남. 8~90년대에는 남아선호 사상으로 성비가 극단적으로 높아지긴 했지만 10대 성비는 정상임.
엄청난 수의 영아살해가 있었군요
이당시에도 10만 넘는 곳은 평양과 한양(서울) 있었네요.
예전부터 경상도인구가 압도적이네.
전라도는 경상도의 2/3 수준이고,
경기 서울은 생각보다 적네.
평안도 인구가 생각보다 많네요
평안도가 전라도보다 많네
이천은 저당시 강원도 이었군요
북한에 강원도 이천이 따로 있습니다.
하지만 경상도의 면적은 전라도 면적의 1.5배 전라남북도+충청남도권 합쳐야 거의 비슷하니까 밀도면에서는 전라도가 더 높긴 하죠
경상도 총인구 159만. 전라도 122만 충청도87만. 인구수 와 땅 크기비교 해 보면 답 나옴.
@@적빛세상 지금은 밀도면에서 경상도가 압도. 1300만. 500만. 충남 대전400만.
그이천이 아니라 강원도 이천이 따로 있어요
지금충청도는 천안이 인구젤많은데 30만정도?아산이15만인가?ㅋ 저땐천안아산은 순위에도없네
청주 다음으로 천안 인구가 제일 많아요
천안이 66만 아산이 33만입니다.
합치면800만이니 저시대치곤 많은편
총 인구수는 합산을 안하셨네.... ㅎㅎ
강원도는 인구가 진짜 적구나 북한보다 더하네
한반도에서 제일 인구적게사는 지역이네
농사짓던 때엔 평야땜에 경상,호남이 탑이네
틀렸네요..호남ㅡㅡ>전라도
평안도인구가 전라도보다 많네요
그리고 전라도는 경상도인구의 70%수준밖에 안되네요
경상도는 평야 때문은 아니지 않나
해방된 직후 수도권, 경상도 위주의 경제개발 전 보면 전라 경상 비중이 상당함
@@user-kv7vy7kq5r 항구도 있긴하죠
@@user-kv7vy7kq5r경상도가 평야는 아니지만 부산에서 낙동강따라 경북까지 올라가면 강가에 농경지가 상당합니다.
북한3500만명 한국5000만명 이스라엘도 인구수적고 전세계적인 인구감소추세❤ 잠시살다가는거죠 한세상 잠시머물다가는세상😮😅
저 많은 인구를 가지고도 우물안 개구리로 농사만 지었으니 참으로 조선이란 왕국은 답답한 양반 사회이구 지금의 북한처럼 자신들의 백성만 달달볶는 압제 농경사회임 . 명나라에 스스로 매어서 섬에 살던 백성도 불러들이고 사농공상이란 계급만 목숨걸고 지키려던 ....
합해 1000만이 안되네요
저거는 가옥수로 본거라 정확하이않고, 노비신분은 제외된거..실제 조선 노비비율이 높았으므로 2천만정도는되었음
오히려 실제보다 많지 않았을까요?관리들이 세금을 더 걷으려고 죽은자에게도 세금을 걷었다고 하니까요.
실제로는 저것보다 많았을 겁니다 아직 공노비 사노비의 해방이 이뤄지지 않은 때입니다 1910년 경술국치때도 1300만이아니라 실제로는 1742만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yttst7110무슨 이천만? 그럼 거의 일본 인구에요 저게 거의 맞다고 봅니다
지명에 왤케 주가 많지 ㅋㅋㅋ
통일신라의 영향임 통일 신라때 9주5소경으로 주요행정구역을
나누었음 예를 들면 무진주라 하면 지금의 전라도 광주 뿐 아니라
남원 주위의 몇개군과 도시를 합친것 이었음 통일신라의 영토는
지금의 황해도나 북한쪽 강원도와 평안남도 일부 까지였음 평양
은 당연히 통일신라의 영토 일부였음
그래도 주가 붙은곳은 나름 네임드 지역임 작은 지역은 천으로 바뀜
고을주 고을이란뜻이니까요
광주 나주 전주 진주 청주처럼 주가 끝에 붙은 고을은 평야가 넓었고 부산 익산 울산 마산 처럼 산이 들어가는 고을은 산이 많은 지역이었죠. 목포 부산포 영산포 같은 고을은 항구가 있는 고을이었습니다. 각 지역의 특성에 맞는 고을이름을 갖고 있었죠 인천 부천 홍천 같은 지역에는 큰 강이 있었고 오히려 대구 함흥 대전 남원 같은 고을은 특색있는 이름이었다고 봐야죠. 평양, 광양, 담양 같은 지역은 기후가 따뜻하고 온화한 지역인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더 잘나가는 지역이 주변의 다른 지역까지 통합해서 명칭을 대표하는 경우도 많아서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경남 통영 같은 경우에는 이순신장군의 삼도수군 통제영이 자리잡은 이후로 통영이라는 명칭을 갖게 되었다고 하죠
정조는 없었어
김해는 없네
김해는 당시 인구 36000 여명 가량으로 경상도 군현 중 11위에 해당하는 것을 경상도 71개 군현인구 편 영상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그때는 양강도,자강도가 없었나보네요
양강도 자강도의 행정구역이 신설된 것은 1950년 전후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김일성이가 남한 행정구역을 본떠서 만든 행정구역입니다.황해도(황남,황북) =충청도(충남,충북),제주도,경기도=양강도,자강도 함냄,함북=경북,경남 전남,전북=평남,평북 강원도(남)=강원도(북)대한민국과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죠.북한김일성은 남한한테 행정구역도 지기싫었던거죠.
인구가 골고루 분포되있었구요.
좁은땅에 바글바글 많이도 살았다
일본 인구의 3분의 1이네...
제주가 왜 전라도?
1789년 편찬된 호구총수에 제주를 전라도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제주 전라도 관할이었어요 몰랐음??
어차피 제주도는 전라도랑 같진 않지만, 그나마 언어, 문화가 그나마 쬐금이라도 비슷한곳이 전라도임.
1783년도가 조선중기이지 왜 후기이냐 이양반아
일반적으로 임진왜란(1592년)을 기준으로 조선시대를 전기/후기로 나눕니다.
1300년대 후반 조선 건국 후 약 500년간 존속하여 대한제국 시절까지 포함하여 1900년대 초반에 국권이 넘어감.
1783년도면 조선 건국 후 약 400년 정도 되는 때로 후기라고 보는게 맞음. 조선 정조 때면 조선 후기의 중흥기를 이끌던 왕임.
한국사 양대 학맥을 서울대/고대 학맥으로 치는데 서울대는 전후기, 고대는 전중후기로 구분했음
근데 서울대가 워낙 압도적이기도 하고 요즘엔 고대 학계도 주로 전후기로 구 분함
사적 사료는 없나요?
따질려고 작정하고 쓰는건 아닙니다만, 근거는 대고 씁시다! 씁...읍.
영상에 나오듯이, 1789년에 편찬된 '호구총수'를 참고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