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얘깁니다만, 아시아에서 축구 종주국인 영국의 식민지배를 가장 광범위하고 가장 오래 받은 국가가 인도였기 때문에 초창기에는 축구에서도 실력으로는 아시아 최정상권이 분명했죠. 특히 1950년대~1960년대 초까지는 인도의 최전성기로, 이 시기 아시안게임 2회 금메달(1951,1962), 1956년 멜버른 올림픽 4강 진출(8강에서 주최국 호주를 4-2로 격파), 1964년 아시안컵 준우승, 올림픽 4회 연속 본선행(1948~60) 등의 업적이 있죠. 특히, 상대국들의 기권으로 얻은 것이긴 하지만 1950년 브라질 월드컵 본선진출권도 얻어서, 아시아 독립국으로는 첫 출전이 가능했지만 헬싱키 올림픽에 집중한다는 명목으로 기권했죠. 물론, 영국은 축구 뿐 아니라 여타 주요 스포츠의 종주국이기도 해서 그중 인도에서는 그들의 특색에 맞는 크리킷이 최고 인기 종목이 되었기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축구가 중심에서 밀려나긴 했습니다. 실제로 1980년대에 한국이 인도 대표팀과 원정에서 두번 제대로 된 대결을 벌였는데, 1982년 네루컵에서는 페널티킥 2번을 선방당한 끝에 2-2로 비겼고, 1984년 아시안컵 지역예선에서도 1-0으로 신승했죠.
@@sanmicheal6754 사실...기록상 4강이 맞긴 합니다만 뒷얘기가 좀 있죠. 본디 FIFA는 1956년부터 올림픽 본선을 16개팀(1956년 대회는 조별예선 없이 바로 16강 토너먼트로 진행)으로 제한해서 지역예선을 편성했는데, 대회 직전 16팀중 5팀이 기권합니다. 인도의 16강 상대는 헝가리(!)였습니다만, 올림픽 개막 한달전인 1956년 10월 일어난 헝가리 사태를 소련이 무력진압한데 따른 항의 표시로 기권합니다. 그리하야...인도는 헝가리에 기권승을 거두고 8강에 올라서 주최국 호주와 만난 것이었죠. 당시 호주는 대회 개막전에 가진 소련과의 친선경기에서 1-15로 대패하는 등 지금의 전력과는 큰 차이를 보였지만, 그래도 16강에서 일본을 2-0으로 제쳤으니 아주 수준 낮은 팀은 아니었습니다. 여담으로 한국은 일본과의 지역예선에서 1승 1패(0-2,2-0)를 거둔 후 추첨으로 패해 본선이 좌절되었는데, 대회 개막을 앞두고 기권국이 속출하자 한국에게 그 지위를 승계할 기회를 FIFA가 줬다고 합니다. 그러나...출전신청서 제출 기한을 못지켜(혹은 FIFA 공문 내용을 정확히 이해 못해서) 무산되었다는 야사가...ㅠㅠ
곽태휘는 웃긴게 한국축구 레전드 박지성,이영표의 국가대표 마지막 대회이자 마지막 a매치를 본인에 의해 망치더니 노장이 된 차기 대회인 2015 아시안컵 대회에서는 벽수비를 보여주면서 결승에서는 손흥민의 동점골에 기여를 하는 등 대활약을 하면서 대회 베스트일레븐에도 등극했죠
인도한테 좀 더 큰 골차이로 이기지 못하는 바람에 8강에서 이란을 만나게 됐고 항상 이란한테 이기더라도 그 다음은 무조건 지는 결과로 갔는데 인도한테 이것밖에 못이긴게 아시안컵 우승을 못이룬 단초가 된 거네요
그것보다 2차전 호주전에서 경기내용에서 월등히 앞서고도 무승부를 거둔게 캈다고 생각합니다
@@혜바라기-g8h그것보단 조광래가 근시안적으로 대회를 운영했죠.
호주전 비긴시점부터는 조2위 각오하고 로테이션 돌리며 체력안배하고 8강이란 4강일본 생각하고 준비해야했음.
국내감독 종특인데 지나치게 최선을 다해서 판을 넓게 못 보더라구요.
오히려 로테돌렸다면 의욕넘치는 후보멤버들이 학살해서 득실 이길수도 있었을거에요.
@@종국-j8k무조건 1위해서 이란 일본 호주 대진은 피하고 이라크 우즈벡 호주 대진을 하기 위한 거였음 계획대로 돼지 않아 우승을 못했지만
대진표 잘못나왔네 일본 카타르 승자와 준결승 치루는 건데
@@동호한-k3p 결국에는 후보선수들을 조광래가 못믿었다는거지.
상대는 인도였고 후보선수 내도 충분히 3점이상 낼수있었음.
오히려 주전을 3경기 연속내니 체력과 집중력이 저하되어서 후반전엔 1골밖에 못 넣었음.
저런경기에 주전들을 쉬게해주고 후보선수를 내오면 동기부여 만땅 충전되어서 오히려 좋은결과가 나왔을듯 싶다.
설사 조2위로 가더라도 주전들 체력아꼈으니 8강 4강 총력전 가능.
01:30:06 데뷔골 그리고 전설의시작
인도 영광스러운줄 알어라 ㅎㅎ
10년 뒤 손흥민은 이라크를 상대로 데뷔골을 넣은 이 경기장에서 30번째 a매치 골을 만들어낸다
2:20 인디아 국가
1:27:13 바이충 부티아
조1위로 못갈거면 로테나 처돌리던가 풀주전 다돌리고 인도한테 한골처먹히고 골득실밀려서 2위로 이란만남 ㅋㅋㅋㅋㅋㅋㅋ
이때 인도 골키퍼 존나 잘막았던걸로 기억하는데
인도 1 : 4 대한민국
1:11
2011아시안컵축구C조예선
한국 대 인도
2011.1.18 도하알가라파스타디움
캐스터 김정근 동국대학교경영학과96학번
해설 서형욱
성균관대학교체육학과93학번
막는건산이거든무느곤못가랴 파도건눈보라건박차헤치자 끓는땀부어서일일이다진터 희망은솟는다조선대학 끓는땀부어서일일이다진터 희망은솟는다조선대학
득실차 1골차로
호주 1위 대한민국 2위 ㄷㄷ
대한민국 이란 만남 징크스 ㄷㄷ
호주 이란 만났으면 한데.. 아쉽
4년뒤에는 호주에서 조별리그 순위는 뒤집혔는데 최종전 순위는 결국 못 뒤집었지
1:35:10 이 슛이 안들어간 순간 또 이란 만날거라고 직감했습니다
1:43:10 서형욱 "바레인이 페널티킥을 얻었네요" AFC의 절묘한 화면제공과 1:45:02 MBC의 토너먼트 대진표 축구팬들을 두번 모두 낚였죠
저는 이때 인도가 축구하는거 처음 봤어요. 인도네시아가 아니고 인도가 축구를?
인도는 크리킷 하는 나라인데 축구도 할줄 몰랐습니다.
당연한 얘깁니다만, 아시아에서 축구 종주국인 영국의 식민지배를 가장 광범위하고 가장 오래 받은 국가가 인도였기 때문에 초창기에는 축구에서도 실력으로는 아시아 최정상권이 분명했죠. 특히 1950년대~1960년대 초까지는 인도의 최전성기로, 이 시기 아시안게임 2회 금메달(1951,1962), 1956년 멜버른 올림픽 4강 진출(8강에서 주최국 호주를 4-2로 격파), 1964년 아시안컵 준우승, 올림픽 4회 연속 본선행(1948~60) 등의 업적이 있죠. 특히, 상대국들의 기권으로 얻은 것이긴 하지만 1950년 브라질 월드컵 본선진출권도 얻어서, 아시아 독립국으로는 첫 출전이 가능했지만 헬싱키 올림픽에 집중한다는 명목으로 기권했죠. 물론, 영국은 축구 뿐 아니라 여타 주요 스포츠의 종주국이기도 해서 그중 인도에서는 그들의 특색에 맞는 크리킷이 최고 인기 종목이 되었기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축구가 중심에서 밀려나긴 했습니다.
실제로 1980년대에 한국이 인도 대표팀과 원정에서 두번 제대로 된 대결을 벌였는데, 1982년 네루컵에서는 페널티킥 2번을 선방당한 끝에 2-2로 비겼고, 1984년 아시안컵 지역예선에서도 1-0으로 신승했죠.
@@janislam11 헐 56년 올림픽 4강... 미얀마 저리가라 였네요
@@sanmicheal6754 사실...기록상 4강이 맞긴 합니다만 뒷얘기가 좀 있죠. 본디 FIFA는 1956년부터 올림픽 본선을 16개팀(1956년 대회는 조별예선 없이 바로 16강 토너먼트로 진행)으로 제한해서 지역예선을 편성했는데, 대회 직전 16팀중 5팀이 기권합니다. 인도의 16강 상대는 헝가리(!)였습니다만, 올림픽 개막 한달전인 1956년 10월 일어난 헝가리 사태를 소련이 무력진압한데 따른 항의 표시로 기권합니다. 그리하야...인도는 헝가리에 기권승을 거두고 8강에 올라서 주최국 호주와 만난 것이었죠. 당시 호주는 대회 개막전에 가진 소련과의 친선경기에서 1-15로 대패하는 등 지금의 전력과는 큰 차이를 보였지만, 그래도 16강에서 일본을 2-0으로 제쳤으니 아주 수준 낮은 팀은 아니었습니다.
여담으로 한국은 일본과의 지역예선에서 1승 1패(0-2,2-0)를 거둔 후 추첨으로 패해 본선이 좌절되었는데, 대회 개막을 앞두고 기권국이 속출하자 한국에게 그 지위를 승계할 기회를 FIFA가 줬다고 합니다. 그러나...출전신청서 제출 기한을 못지켜(혹은 FIFA 공문 내용을 정확히 이해 못해서) 무산되었다는 야사가...ㅠㅠ
@@janislam11 혼란하고 사정 어두운 1950년대라 그런지 협회의 삽질이 많네요. 54년 월드컵 출전수당이 있는줄도 모르고 그냥 돌아오질 않나.. 58년 월드컵 출전 신청서를 분실해서 54년때 안 찾아간 수당으로 벌금을 내질 않나...
곽태휘는 웃긴게 한국축구 레전드 박지성,이영표의 국가대표 마지막 대회이자 마지막 a매치를 본인에 의해 망치더니 노장이 된 차기 대회인 2015 아시안컵 대회에서는 벽수비를 보여주면서 결승에서는 손흥민의 동점골에 기여를 하는 등 대활약을 하면서 대회 베스트일레븐에도 등극했죠
11년과 15년의 활약도가 바뀌었다면...ㅋㅋㅋㅋㅋ
차두리도 나이 점점 먹어가면서 역으로 15년도에 활약이 좋았죠 ㅋㅋ
그게 웃겨?
2011년 아시안컵때 이동국을 기용해야 했습니다.
지동원으로 원톱 세우며 아시안컵 우승은 솔직히 어려웠죠.
손흥민은 아직 미완의 대기였고요.
조광래의 고집과 편견이 상당했나 봅니다.
만화축구에 이동국은 안 어울리긴 함 ㅋㅋㅋㅋ
저때 지동원 구자철이랑 날라댕겼는데 축구보긴했음?ㅋㅋㅋ
이동국을 패스축구에?????????????
인도한테 골도먹히나여
1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