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적의 딸이라는 오명에도 왕후의 자리를 지키며 최선을 다한 소헌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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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4 ноя 2024

Комментарии • 13

  • @enjoypanda
    @enjoypanda Месяц назад +33

    어찌 세종 치세에 화려한 업적과 성과와 훌륭한 후계자가 세종만의 힘으로 나왔겠는가 소헌왕후에 내조 없이는 불가능 했으니 어머니가 노비가 되는것도 자기 딸이 그런 할머니를 위해 눈물 흘리다 병에 결려 죽는 것도 가족들이 죽고 다치는 아픔도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소헌에 마음이 어찌 하루도 편할날 있으리오 그럼에도 훌륭한 조선의 어머니 였으니 참으로 마황후에 비견될만 하다 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 입니다

    • @ooooo-p1f
      @ooooo-p1f Месяц назад +2

      진짜 한글을 만든 공로는 인정하나 남편으로선 쓰레기짓을 했네요. 한 여자를 진짜 철저히 돌부처로 깎아버렸네요. 그 아버지 태종의 자식다워요. 왕세자 자리를 위해 꾹꾹 참았다가 왕의 자리에 들어서자마자. 태종도 장인가문 무서워 바람 안피다가 왕이 되니 조강지처 괴롭히고 못되게 굴더니.

    • @공라헬
      @공라헬 Месяц назад +1

      쓰레기짓이 아니라 왕으로선 당연했던 것 ​@@ooooo-p1f

    • @공라헬
      @공라헬 Месяц назад

      ​@@ooooo-p1f결국 조선후기의 역사를 보면 태종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 외척이 득세하여 나라가 망했기에

  • @유나예-r6c
    @유나예-r6c Месяц назад +7

    소헌왕후 본인의 개인적 의지가 아닌 상
    황에 따라 세자빈 왕비가 됐지요 하지만
    외척의 득세를 경계한 시아버지 때문에
    아버지와 숙부는 죽고 집안도 풍비박산
    났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남편이 한국사
    에 손꼽히는 성군이 된 건 소헌왕후의 공
    이 있다 할 정도로 내조의 공이 크고 내
    명부 수장으로써 통솔도 잘하고 자녀들
    도 잘 키워 뛰어난 인재로 만드는 등 모
    든 왕비들의 롤모델이라 할만하네요

  • @둘리-p1f
    @둘리-p1f Месяц назад +2

    청송의 자랑 소헌왕후마마 참... 이런곳에서 자신의 길을 꿋꿋히 가신분

  • @역설남
    @역설남 Месяц назад +12

    어떻게 보면 소헌왕후가 세종을 대신해서 국정운영을 잘한것이고 무조건 아들,딸들이 잘못하면 회초리를 쳐서라도 사람 만들고 심지어 후궁들이 왕비한테 도전하지 못하도록 만든거지 소헌왕후의 카리스마 있는 모습은 시어머니 원경왕후를 닮았다고 해도 되니까 원경왕후는 남편 이방원을 조선 3대 임금 태종으로 만들고 1등공신은 커녕 남동생 4명 민무질,민무구,민무휼,민무회 잃고 심지어 아버지 민제마저 병으로 사망하고 그래서 원경왕후가 남편 태종을 원망하면서 살았다고 하지 그래서 태종이 장남 양녕대군을 세자에서 폐위시키고 셋째 충녕대군 세종을 세자로 책봉하고 바로 왕위를 물려주고 충녕대군이 조선 4대 임금 세종이 된거지 근데 원경왕후가 세종과 소헌왕후가 말했지 양녕대군 처가는 권력이 약한 집안이라 너희 시아버지가 건들지는 않지만 언젠가 너희 가문에도 위기는 찾아온다 했지 그래서 태종이 상왕이 되고 나서 국방을 책임지고 진두지휘하는 와중에 본인의 가신이자 지금 국방부 차관인 병조참판 강상인이 상소문을 올리지 않자 태종은 박은,조말생,유정현을 시켜 강상인을 심문하라고 하지 그래서 강상인은 박은이 심문하면서 거짓으로 소헌왕후의 아버지 심온이 시켰다고 말하면서 태종은 결국 사돈인 심온을 제거하고 심온의 동생 심정도 끝내 제거하게 되지 그리고 소헌왕후의 어머니와 동생들도 관노비가 된거고 그래서 신하들은 소헌왕후 폐위를 주장했는데 태종이 세종한테 소헌왕후 폐위하지 말라고 한거고 그래서 소헌왕후는 끝까지 살아남아 시아버지 태종이 사망하면서 남편 세종한테 건의해서 본인 어머니와 동생들 다시 신분을 복권시킨거지 그래서 소헌왕후도 세종의 옆에서 지원군 역할을 계속해왔고 세종이 궁에 없거나 지방에 내려가있으면 본인이 직접 나서서 아들 세자 문종과 함께 국정운영을 한거지 그리고 소헌왕후는 둘째아들 수양대군 세조를 불러 이렇게 말하지 너는 어떠한 이유로도 왕권을 넘봐서는 안된다,니가 아무리 열심히 한들 절대로 니 형 세자를 꺾지마라 말한거지 그리고 소헌왕후가 세종이 죽기 5년전에 사망하면서 더이상 문종,단종을 지지해줄 세력이 없는거지 심지어 단종을 낳아준 현덕왕후도 단종과 경혜공주를 낳고 사망을 했으니까 끝내 소헌왕후가 사망하고 5년뒤에 세종이 사망하고 아들 문종이 임금이 되지만 여진족 호랑이 김종서는 3정승중 우의정이란 관직에 있으면서 측근 민신을 병조판서에 임명하고 군사들로 하여금 대궐을 지키게 하고 수양대군을 가택연금까지 시키는 사태까지 벌어진거지 근데 문종이 왕이 된지 2년만에 사망하고 아들 단종이 어린나이 12살에 임금이 되지만 단종은 정치를 모르니 김종서,황보인,정분등이 각각 영의정,좌의정,우의정으로써 황표정사를 만들어 단종 대신 국정을 운영한거지 그리고 김종서는 국정관련해서 논의는 세종의 셋째아들 안평대군과 의논한거고 그래서 수양대군 세조가 빡친 나머지 한명회,권람,홍달손,홍윤성,신숙주등과 함께 사병을 양성하고 끝내 단종1년에 계유정난을 일으켜 황보인,정분,민신,조극관,김종서를 제거하고 동생 안평대군을 강화도로 귀양보내 제거하고 본인이 집권하고 영의정이 되어 정치를 한거지 그리고 단종도 너무나도 두려우니 왕이 된지 3년만에 물러나고 그렇다고 엄마 말안듣고 왕권을 차지한 수양대군이 조선 7대 임금 세조가 되지 세조는 오히려 살생정치를 자행함 제일먼저 본인이 왕이 되는걸 반대한 사육신 성삼문,박팽년,이개,하위지,유성원,유응부등을 고문으로 죽이고 동생 금성대군을 죽이고 단종의 후견인 역할했던 세종의 후궁 혜빈양씨와 그 아들 한남군,수춘군,영풍군등을 죽이고 그리고 간신 내관 엄자치를 죽이고 마지막 표적이 조카 단종을 죽인거지 그래서 세조가 단종 죽이고 매일 꿈에서 형수 현덕왕후가 나타나 저주를 퍼부었다고함 그래서 장남 의경세자가 병으로 죽게되고 인수대비는 과부가 되어 아들 월산군,자을산군(성종)과 함께 수양대군 사저에서 살게됨 수양대군 세조가 저지른 행동이 결국 아들까지 비참하게 죽게하고 며느리마저 과부만들게 된거다.

    • @공라헬
      @공라헬 Месяц назад

      소헌왕후가 죽고난후 문종시절에 복권되요 소헌왕후의 친정은

  • @Youngz111
    @Youngz111 Месяц назад +6

    즈그 애비가 외척 걱정에 마누라,며느리 집안을 개박살 내놨더니 후궁을 줄줄줄 에라이ㅋㅋㅋ

  • @릴리-z6k
    @릴리-z6k Месяц назад +2

    얼마나 마음 고생했을까 소헌황후가 극심한 스트레스로 빨리 죽었겠지 후궁을 얼마나 많이 들였나 황후가 죽고 싶었을까 에고 마음이 찢어졌을까 그래서 일찍 가버렸겠지 세종 저인간도 쓰레기지

  • @고그
    @고그 Месяц назад +11

    정말 소헌왕후가 더 오래 장수했다면 계유정난도 없었을것이고 문종이 요절했더라도 단종은 성군이 되었을수도 그냥 역사 자체가 바뀌었겠지

    • @역설남
      @역설남 Месяц назад +1

      만약에 소헌왕후가 세종이 사망하고 오래살았다면 아마 권력을 더 강하게 만들었겠지 집현전 학자들중에 개혁적인 인물을 3정승중에 우의정으로 임명해서 조선의 개혁을 추구했고 국방과 안보를 더욱 튼튼히 했지 그리고 함길도 호랑이 김종서가 우의정이 아니고 영중추부사에 임명해서 조선 조정의 고문 역할 해달라고 하지 그리고 아들 문종과 단종이 정치하기는 어려우니 본인이 나서서 수렴청정을 하고 정치를 하고 국정을 운영했겠지 그리고 수양대군 세조는 어머니 소헌왕후가 계속 견제하려 할거고 그래서 내생각은 소헌왕후는 조선 무신들한테 권력이양 안해줄거고 집현전 학사 출신 성삼문을 이조판서겸 병조판서에 임명해서 행정,국방,안보를 챙기라고 했을것이다.

  • @jaewon-gv7uf
    @jaewon-gv7uf Месяц назад +4

    시아버지가 친정 아버지 죽이고 집안 박살 냈는데 살아남기 위해서 ... 현대 배경으로 드라마 만들면 개막장 드라마일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