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같은 것에 대해서도 표현을 달리하여 다양한 관점으로 교훈을 주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인식 제한으로 부분적으로 설명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 부자와 거지 나사로 예를 통해서도 죽어서 낙원과 음부로 대조되며 갈라졌을 때 음부에서 불로 고통받아서 혀에 물을 적셔달라고 간구합니다. 그러나 최후심판 이전까지는 사후세계에서 오직 영혼으로만 존재합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에서는 사후세계 음부에서의 묘사를 육체적 모습으로 비유하여 불로 고통받는 것을 교훈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가 육신을 입고 살아가니 육체적 고통으로 설명해야 이해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성의 바깥에 쫓겨나 어둠 가운데서 슬피 울며 이를 간다는 것도 새 예루살렘 성 ( 교회 ) 에 참여하지 못한 악인들이 심판을 받음으로 고통스러워 하게 될 것을 어둠 가운데서 슬퍼하며 이를 갈게된다고 비유한 것입니다. 그것이 불못에 던져져서 받는 고통에 대한 비유적 묘사입니다. 같은 내용에 대해 관점을 다르게 묘사하여 교훈을 주는 것 뿐입니다.
주님~~제을 고치시고 새롭게 하소서😂😂😂
'바깥 어두운 데'는 천국이 절대 아니지만 그렇다고 뜨거운 불못도 아닌 다른 곳입니다.
정확히 어떤 곳인지는 더 연구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성경은 같은 것에 대해서도 표현을 달리하여 다양한 관점으로 교훈을 주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인식 제한으로 부분적으로 설명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 부자와 거지 나사로 예를 통해서도 죽어서 낙원과 음부로 대조되며 갈라졌을 때 음부에서 불로 고통받아서 혀에 물을 적셔달라고 간구합니다. 그러나 최후심판 이전까지는 사후세계에서 오직 영혼으로만 존재합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에서는 사후세계 음부에서의 묘사를 육체적 모습으로 비유하여 불로 고통받는 것을 교훈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가 육신을 입고 살아가니 육체적 고통으로 설명해야 이해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성의 바깥에 쫓겨나 어둠 가운데서 슬피 울며 이를 간다는 것도 새 예루살렘 성 ( 교회 ) 에 참여하지 못한 악인들이 심판을 받음으로 고통스러워 하게 될 것을 어둠 가운데서 슬퍼하며 이를 갈게된다고 비유한 것입니다. 그것이 불못에 던져져서 받는 고통에 대한 비유적 묘사입니다. 같은 내용에 대해 관점을 다르게 묘사하여 교훈을 주는 것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