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용도 같은 심정이었을거라고 생각함. 청일전쟁 러일전쟁에서 일본의 힘을 바로 앞에서 목격하면서 그리고 순수한 조선의 아이들을 보면서 차마 이들을 죽게 놔둘수는 없었던거임. 인조 선조처럼 알량한 자존심으로 백성을 죽게 놔둘 순 없었던것. 일본과의 전쟁을 피하려면 어쩔수 없었음. 고려때도 원의 부마국이었다고 정신승리할 수 있었듯이 충선왕 충렬왕처럼 이왕도 일본황실에 밑으로 들어가서 친족이 되면 그나마 위안이 되는거임. 전쟁해서 일본군한테 붙잡혀서 왕과 세자가 참수당하는 수치를 겪는것보다는 낫잖아
@@fox01y80 본인이 똥물을 맞는 것을 알면서도 가는 것과 모르고 갔다가 똥물을 맞는 것은 틀린 법이지요. 훌륭한 장군이지만 동시에 반역자의 멍에를 짊어져야만 했던 그런 불쌍한 사람........ 그렇지만 본인의 마지막을 알면서도 기꺼이 그 길을 갈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
@@준삼-s8q 동아시아 역사랑 유럽 역사랑은 결이 다른데 그대로 가져오는건 말이 안 된다고 봅니다. 유럽 역사를 통틀어도 페탱은 무척이나 특이한 케이스고요. 일제의 지배를 인정하고 와신상담하자->20년대 문화통치 들어와서 전향했다가 30년대 민족말살통치 들어갔을 때 다시 변했다면 그러려니 할 법 해도, 그런 사람이 얼마나 있었나 모르겠네요. 대부분은 20년대에 이득본거 때문인지 입 싹 닫거나, 30년대 철권에 끝내 굴종하게 된다거나 했던 걸로 압니다. 일제 패망 후에 '그렇게 된' 사람들이야 많지만요.
@@준삼-s8q현시점에서 친일반민족자로 분류된 사람 중에서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일단 자료가 부족해서 모호한 사람들은 명단 자체가 안올라갔고, 와신상담의 자세로 뒤에서 독립군을 도운 사람도 명단에 안올라갔습니다. 정말 매국,반민족 행위를 본격적으로하고 몰래몰래 독립군을 돕더라도 결국 스파이처럼 일본제국을 배불린 사람들만 명단에 올라가있어요
패텡은 저리 될걸 알고 있었을 겁니다. 프랑스패전이 스페인 대사때 벌어진 일들인데 안가도 되고 가면 본인한테 죄가 전부 뒤집어 씌어질걸 알면서도 프랑스로 가서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을 했습니다. 영화 마지막 말대로 패탱은 방패였고 드골은 검이었습니다. 패탱이 없었다면 드골의 저항도 의미가 없었을겁니다.
페텡의 이야기를 들으니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죽음을 불사한 저항이라는 말은 아름답지만 대중의 희생이 반드시 요구된다는 점에 있어 순간의 굴욕이지만 대다수 국민들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었던 그의 선택이 마냥 비난 받을수는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른 분들은 일제시대의 친일을 비유로 드시지만 저는 명분을 위한 항전과 실리를 위해 항복의 굴욕 사이에서의 고뇌했던 병자호란 때의 조선이 떠오릅니다. 이러한 고민을 주제로한 한국영화 ‘남한산성’ 역시 너무 좋은 영화라 혹시 시간되시면 감상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자세한 배경이 궁금해서 그런데 이 상황이 맞나여? 페탱 원수가 스페인에서 대사로 있다 조국의 부름을 받고 귀국하여 본 프랑스 상황 1. 제1(북부)집단군이 낫질 작전으로 포위섬멸되어 와해됨 수도 파리가 점령 당했으며 마지노선에 제2(중부)집단군이 포위 되어 포로가 되고 와해 됨 3개 집단군 중 사실상 미편성의 예비인 제3(남동부)집단군만 남음 전쟁 시작시 약150개 사단 이었던 편제가 현재는 가용 사단 약 60여개 사단(남동부 사단+와해된 사단 재편성)인 상태 > 현재 병력으론 전선 유지도 불가능한 상황 2. 이탈리아가 참전 하여 양면 전선 상황에 도와줄 수 있는 영국은 덩케르크 겪으면서 오늘내일 하고 있음 이상황에서 자신을 부총리로 부른 제 3공화국은 정부를 외국(식민지)에 옮긴 후 국내외로 싸워야 한다고 말함
반대로 폴 레노 또한 총리가 된 상황 1. 프랑스 의회는 독일유화정책을 펼치는 정치분위기 2. 1차세계대전의 상흔(초토화된 국토, 전쟁 참여세대 증발, 내 아들들은 그 지옥을 겪게 할 수 없다는 인식)으로 인해 전쟁을 꺼리는 사회 분위기 3. 대공황으로 인한 경제 혼란 및 군비 축소 > 종합하면 19세기부터 저출산/고령화로 인구가 감소하는 통에 1차대전을 치르며 20-40대의 한창때인 경제노동인구가 30% 갈려나간지 20년도 지나지 않았고 대공황으로 유럽 전체가 다 난리인데 1차대전 패전으로 더 심각한 독일이 미쳤다고 전쟁을 일으키겠음? 하하 게다가 마지노선도 지어놨잖아? 란 상황에서 독일강경책과 군비증가(드골이 주장한 기계화/현대화 군대 개혁)를 주장해오던 강경파 폴 레노. 결국 폴란드,핀란드가 침공되어 초토화되고 2차대전 발발 후에 서야 급하게 총리가 됨. 그 이후 1. 서로 니탓내탓 싸우는 의회를 조율 2. 영국과의 전쟁동맹을 재공고히하고(단독종전금지!) 3. 전시체제 전환으로 민간 산업을 군수 산업으로 전환하여 군수 생산품 증가 4. 병력 모집 및 동원 훈련 등 재무장 시행 하지만 독일의 프랑스 침공은 총리가 된지 2달도 되지 않아 일어나고 믿었던 마지노선은... 벨기에와 마지노선 사이의 전투지경선인 아르덴숲으로 허를 찔려 돌파당하면서 무력화 되어 버린다. (벨기에-프랑스 가 서로 잘 지키겠지..? 했다고) 이로인해 1주일만에 전선이 돌파 양분되며 3개 집단군 중 북부의 제 1집단군이 포위 와해되고 영국군은 덩케르크로 철수 해버리며 전선의 돌파를 막기 급급해진다. 이 후 프랑스 수도인 파리가 한 달만에 무저항 도시 선언 및 함랑당함 (프랑스 파리는 오늘날에도 우리나라 서울이 형님 할 정도로 모든 사회/경제/정치 인프라가 집중 되어 있다) 또한 수도를 잃는단 것은 어느나라나 정신적 타격이 심함. 그로부터 약 3주 뒤 제 2 집단군의마지노선이 독일 공군에 의해 점령되며 결국 프랑스는 항복을 선언한다. 분주히 움직였으나 전쟁 준비에 부족했던 시간, 6주만에 프랑스군 주전력에 2/3이 와해되고 항복 조건으로 수도 파리를 포함한 프랑스 국토 절반을 내주게 된 폴 레노는 정부를 북아프리카로 옮겨 항전을 계속하려 했으나 결국 체포 되어 2차대전 내내 정치 인사 포로로 수감되어 생활하였다...
@@User0083rrt5vxssoervzjkboz 이완용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듬. 만약 그때 인조처럼 같잖은 자존심으로 버티다가 일본하고 전쟁했으면 조선들 수백만이 죽고 문화재 불탔음. 삼고구두례보다 더한 치욕을 겪었을거임. 고종 순종은 참수당했을거고. 이완용도 재평가해야할 시기임. 이제 국민들도 성숙해지고 민족주의 세뇌에서 벗어날만큼 시대가 변했음
프랑스의 나치협력자 청산은 속전속결이 특징이다. 최고재판소가 형식적이나마 1960년까지 운용되었지만 대부분의 숙청은 1951년에 종지부를 찍어 단 6년 만에 숙청재판을 종결했다. 프랑스의 연감 『퀴드』 2003년 판은 나치협력자 청산결과를 다음과 같이 적었다. ‘나치협력자 조사대상 150만~200만 명, 체포되어 조사 받은 자 99만 명, 최고재판소와 숙청재판소에서 재판된 사건은 57,100여 건, 6,766명에 사형선고, 782명 사형집행, 2,802명에게 유기징역형, 3,578명에 공민권 박탈했고 시민재판소에서 11만5천 건을 재판에 9만5천 명에게 부역죄을 선고받았고 공직자 12만여 명은 시민재판소에서 행정처분을 받았다. 재판 받은 사람들은 군대 장교 42,000여 명, 정부 관료 28,750명, 경찰간부 170명, 판검사 334명, 헌법위원 18명이다.‘ 그러나 나치협력자 숙청결과는 이보다 더 많다는 것은 정설 아닌 정설이며 드골도 『회고록』회고록에서 적어도 1만 명 이상 사망했다고 기록했다. 물론 서슬이 시퍼랬던 나치협력자 청산도 시간이 지나면서 부드러워져 최초에 선고된 형량을 모두 채우는 나치협력자들은 점차 줄어들었다. 1951년에 이미 강제노동형 수형자 406명이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그러나 나치협력자들이 일부 가석방의 은전을 받아 풀려났더라도 사회에서 부역죄라는 형벌이 계속 발목을 잡아 정상 활동이 불가능했다. 피선거권은 말할 것도 없고 투표권도 박탈당했으며, 공직은 물론 언론이나 국영기업체에도 진출이 차단됐다. 프랑스는 조선이 아닙니다;
@@User0083rrt5vxssoervzjkboz 보통 프랑스 주둔 독일군이랑 붙어먹었단 혐의로 애꿎은 아녀자들 좀 린치하고, 드골 집권의 정당성과 레지스탕스 신화에 도움되게 본보기로 피에르 라발같은 상징적인 부류들 좀 족치기나 했지, 그 시절에 비시 부역자 이력 가지고도 살아남은 이들이 좀 있긴 하죠. 당장 프랑스 사회당의 거두 미테랑 전 대통령도 좌익으로 전향 전, 젊었을 때 비시 정권에서 일한 적도 있고.
결과론적으로 본다면 프랑스는 어쨌거나 페탱 덕분에 피해도 적었고 드골 망명정부가 솔까 별 기여는 없었어도 승전국 포지션을 가져갈 수 있는 명분을 얻었지.... 처칠의 캐터펄트 작전으로 프랑스 해군 수장시킨 보상심리도 작용했고 프랑스는 진짜 개막장짓 존나게 하고도 이미지 관리 진짜 잘된 국가임!
페탱이 없었다면 프랑스는 독일한테 일방적으로 개 털려서 전후 복구에 더 힘들었을 거고 체임벌린의 시간 벌기가 없었다면 영국도 개 털렸을 가능성이 많음. 뭰헨협정후 체임벌린이 한 일이 영국 공군 강화였으니.. 역사는 영웅과 반역자를 원해서 처칠과 드골이 영웅으로 남고 페탱과 체임벌린은 반역자 역활로 남죠..
참고로 패탱이라는 인물은 단순히 전쟁영웅으로 평가하면 안됨 당시 유럽은 아직까지 귀족의 영향역이 남아있어서 유럽군대의 고위층이다? 귀족출신일 확율이 높고 귀족끼리는 유럽에서는 국가를 초월하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음 설령 귀족이 아니더라도 군대의 고위직이면 상당한 영향력이 존재했음 당시 패탱의 영향력은 독일측에도 상당해서 나치 치하 프랑스는 다른 나라 점령지보다 상황이 상당히 좋았음
저때 보면 개판인게 프랑스 공산당들은 코민테른의 지령을 받고 있었어서, 스탈린이 독소불가침조약 이후로 무저항 명령을 하니까 나치가 지네 조국에 쳐들어오는데 내부에서 사보타주해서 나치 도와줬던 놈들임ㅋㅋㅋㅋ 그리고 저런 복고주의자 성향의 인물들은 영상에 나왔다시피 나라 망해가는데도 좌파 꼴보기 싫다고 그래도 같은 (극)우파인 독일의 나치랑 협력해서 우파국가를 세우는게 낫지 않을까 이러고 있었고.. 그 와중에 나라 뺏기고 나니 드골이랑 레지스탕스 같은 사람들이 또 등장해서 목숨걸고 저항활동은 하고.. 그런 거 보면 난 프랑스 근현대사 정치가 우리나라 정치랑 정말 닮은 것 같음. 평소에는 분열해서 싸우다가 크게 데이고 나라 넘어가고 나서야 정신차리고 단합하고 또 좀 살만해지면 분열해서 싸우고..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팔순이 넘은 나이에 무슨 부귀영화를 바라고 독일에 항복한 프랑스의 수장이 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1차대전 구국의 영웅으로서 내가 지킨 국가, 국민들이 적국의 군화발에 짓밟히는 수모는 차마 볼 수 없었던 노 장군의 뼈를 깎는 아픔과 같은 결정이었을겁니다 해가 있으면 그림자가 생기듯 드골이 해의 역할을 맡아주고 페탱은 그림자가 되어 각자의 위치에서 조국을 살릴 방법을 찾았을 뿐...페탱 그 또한 힘없는 국가의 국민이자 피해자..
페탱은 상당히 억울한 인물입니다. 페탱이 프랑스로 왔을때는 이미 전황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였고, 무책임하고 무능한 정치인들은 자기 대신 항복 문서에 서명하고 매국노의 오명을 쓸 인물을 모색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총대를 맨 인물이 페탱이였습니다. 당시 결사 항전을 주장한 측의 항전 계획이라는 건 프랑스 본토는 포기하고 알제리로 정부를 옮겨서, 해외 식민지를 근거지 삼아 장기 항전을 하자는 건데 현실성 없는 것이였습니다. 1차 세계 대전 이후 알제리에는 독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세어졌고 본토를 잃고 망명해온 프랑스 정부를 알제리인들이 인정하고 따를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았으며 나찌와 싸움 이전에 알제리 독립 세력과 싸우기에 더 급급했을 겁니다. 결국 항복 이외 다른 선택이 없는 상황에서 누군가는 해야할 일을 페탱이 했던 겁니다.
심지어 권력욕 이나 일신의 안위를 위해 프랑스로 온건 아니죠 1940년 당시 스페인 프랑스대사로 있었고 당시 정권을 잡은 프랑코는 만약 프랑스로 돌아가게 된다면 패전의 실책을 페탱하게 다 뒤집어 씌울려고 부르는 거라며 극구 만류했지만 페탱은 알고있다며 그래도 내 조국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며 돌아갔습니다 만약 개인의 영달을 추구했다면 그냥 스페인에 머물거나 드골처럼 망명을 떠나 비교적 안전한곳에서 대독전을 부르짖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지 않았죠 그 결과 프랑스가 해방 된 후 페탱은 프랑코와 자신의 예측대로 명예는 실추되었고 심지어 사형판결까지 받고 말았죠
헌데 프랑스정부에서도 페탱을 진짜 많이 봐준거임 나치부역자들은 별 이유 갖다대면서 대부분 처형 당했는데 정작 수장급인 페탱은 종신형으로 감형해준거 자체가 프랑스정부가 어느정도는 이해해준거임 사면해주자니 나치청산에 문제 생기고 하고 게다가 말만 종신형이지 사실상 편의제공 다 해준 유배형 정도 됨
@@user-ew7hu4be6h 제가 아는 바론 그닥 봐준게 아니였어요. 당시 나찌 부역 혐의를 받던 정 재계 거물급들이 요리조리 빠져나간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패탱은 비시정부 수반이였기 때문에 그렇게 빠져나갈 수가 없었지요. 기를 쓰고 그를 처형하려 했었지요. 문제는 그의 변호론이 프랑스내에서 크게 호응을 얻었다는 겁니다. 패탱은 재판장에서 자신은 프랑스의 파괴를 막기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라고 열정적으로 변론을 폈고, 그를 처벌하려던 이들은 이걸 반박할 수가 없었어요. 대중들 사이에서 패탱은 애국자, 무죄라는 여론이 일어났고 그를 처벌하려던 프랑스 정부는 당황했었습니다. 결국 사형이 아닌 종신형을 선언하는 선에서 매듭지을 수 밖에 없었던 겁니다. 봐준게 아니라 패탱 옹호론에 밀린거라고 봅니다.
패탱을 진심으로 존경했던 스페인의 독재자 프랑코가 패탱이 프랑스로 가겠다고 하니까 (그 당시 패탱은 스페인 주재 프랑스 대사였음) '장군님 가지 마세요. 지금 프랑스의 정치가들이라는 것들은 지들 잘못을 다 장군님보고 떠맡으라고 하는 겁니다.' 하고 말리니까 패탱 왈 '그래도 프랑스는 나의 조국이고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오.' 하고 말하며 프랑스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아마도 본인도 자신이 어떤 운명을 겪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스스로 흙탕물을 뒤집어 쓸 각오를 하고 가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드골 조차도 나중에 패탱에게 무기형이라는 관대한 처벌을 받게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실제로도 패탱의 마지막은 적어도 목이 매달리는 교수형이 아닌 노환으로 침대에 누워서 죽었으니까 말입니다.
페탱포함 1차대전을 겪은사람 대부분은 반전주의가 강했음. 그래서 히틀러가 폴란드침공해도 전쟁하기 싫어서 폴란드 통수치고 싸우는 시늉도 안했었고. 반전주의는 독일군 장성들도 일부 가지고 있어서 전쟁을 결정하니깐 하나님이 보고있다 또 천만명 죽는 전쟁을 할것이냐? 란 말도 나왔음. 근데 히틀러는 1차대전때 참호 뛰댕겼던 병사출신인데도 전쟁광이니 참;;
히틀러도 군인으로서 보면 당연히 전쟁을 원치않앗겟죠 오스트리아 빈 예술대학에서 떨어지고 건축학 추천받다가 중졸이란 이유로 컷당하고 정치인 생활에들어갓는대 정치인돼면서 순수한 사람이 어디어디있겟습니다 당시 독일은 상황이 암담햇고 하이임플레이션에 치안도 그렇게 좋은상황도아니고 프로이센출신에 융커들이 개난리를 첫고 히틀러도 결국엔 군인출신이고 외교관출신이 아니엿습니다 그러니 전쟁으로 굴복시켜서 독일에 지위를 얻고자 한거죠 물론 경제키워가지고 전쟁으로 손해먹는 군비지출을 유지할생각이죠 정치인돼면서 정상인으로 변하는사람 거이 본적이없습니다 히틀러가 가정환경도 막장이엇고 건축에서도 컷당하면서 우울증걸리게 됀는대 정상으로 돌아가릴가없음 사람이 우울증걸리면 많이찾는게 정치임 여기서 현대인들이 주목해야할건 예술대학을 떨어뜨리지 말라는게 아니라 그사람에 갖고있는 한분야를 다른곳에서도 안정적으로 써먹을수있도록 나아가야하는겁니다 여태동안 미술로 경험을쌓앗고 미술에대한 자부심이 큰대 사회에서 이게 박탈당하면 우울증에 얻게돼고 많은것을 잃게돼엇다고 생각하게돼는거죠 결국엔 어떻게든 히틀러가 자신에 그림으로 먹고살수있게 도와줫다면 히틀러가 정치인길을 걷지않앗겟죠 히틀러가아니더라도 누군가가 나서서 대전쟁을 일으켯겟죠 베르사유조약이 결국엔 원인이지뭐
페탱을 보니 영화 변호인의 박도원이 연기했던 고문 공안경찰이 생각나네요. "내가 판단하는게 아니라 국가가 판답합니다." 잘못된 신념이 '조국을 위한 판단과 선택'으로 포장되었을 때.... 그때 내 조국은 망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되는 영상입니다. 1905년에 19010년에 그들도 '조선을 위한 판단과 선택'이었다라고 했었다지요. 일요일 아침 주인장 드립에 밥을 할 요량으로 틀었는데.... 감사합니다.
결과적으로 페탱 원수가 한 선택 덕분에 프랑스는 여타 유럽국가들과 비교하면 독일에게 수난을 덜 받았고 프랑스 군인도 국민도 덜 죽었습니다. 항복한것은 치욕스럽지만 당시 나치 독일은 곧 전 유럽을 정복할것처럼 보였고 현시대의 우리는 이미 망할 결과에 베팅한것처럼 보일지라도 나치의 정복이 진행형이었던 저 당시에는 무의미한 저항보다는 프랑스인들을 보호하고 프랑스를 구하는것이라는 페탱의 판단이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희망없는 전쟁으로 국민 죄다 희생시키면 전후 복구는 어떻게 할 겁니까? 군대의 절반 이상은 날아갔고, 적인 독일군 숫자는 자국 프랑스의 세배 이상이면서, 이미 체코와 폴란드 상대로 전쟁을 수행한 독일의 정예병력들 상대로 보급도, 방어 이점도, 수도도 전부 날려먹은 상황에서조차 서로 싸우는 바쁜 프랑스 정부와 군이 독일 상대로 뭘 할수 있는데요 ㅋㅋ 저항도 가능성이 있을 때에나 하는거죠. 예를 들어 아군이 버틸 만 하거나, 아군의 동맹으로 참전할 가능성 있는 국가들이 있는 경우 말입니다... 당시 프랑스 동맹국이래봤자 영국인데, 영국은 이미 포위당해서 철수한 상황이었고 자국군은 무너지는데 전후 복구를 포기하면서까지 전쟁 할 이유 없습니다. 복구할 때 쓰일 인력과 자원들이 전쟁을 오래 할 수록 더 없어집니다. 채권까지 얹으면 더 심각하죠. 당시 프랑스 상황은 현재 우크라이나보다도 절망적이었습니다.
방패와 검. 후대의 공화국을 세운 나라들에게 패탱과 드골의 일대기는 정말 뼈저린 교훈을 남겨줄 것입니다.무엇이 나라를 힘들게하고 무엇이 나라를 지키고 무엇이 나라를 되살리는지...그리고 스스로 정하고 지킬수있는 나라가 된다는게 얼마나 어려운건지 알려주는듯 합니다.
양측 다 필요한 사람들이죠
어쩌면 1차대전때 무의미하게 쓰러져 갔던 병사들과 그 병사들을 지휘해본 사람으로써 느끼는 진정한 전쟁의 공포를 알고 있기에....저런 행보를 보인거 아니였을까.....
어찌보면 진짜 불쌍한 사람같음
이완용도 같은 심정이었을거라고 생각함. 청일전쟁 러일전쟁에서 일본의 힘을 바로 앞에서 목격하면서 그리고 순수한 조선의 아이들을 보면서 차마 이들을 죽게 놔둘수는 없었던거임. 인조 선조처럼 알량한 자존심으로 백성을 죽게 놔둘 순 없었던것. 일본과의 전쟁을 피하려면 어쩔수 없었음. 고려때도 원의 부마국이었다고 정신승리할 수 있었듯이 충선왕 충렬왕처럼 이왕도 일본황실에 밑으로 들어가서 친족이 되면 그나마 위안이 되는거임. 전쟁해서 일본군한테 붙잡혀서 왕과 세자가 참수당하는 수치를 겪는것보다는 낫잖아
@@fox01y80 본인이 똥물을 맞는 것을 알면서도 가는 것과
모르고 갔다가 똥물을 맞는 것은 틀린 법이지요.
훌륭한 장군이지만
동시에 반역자의 멍에를 짊어져야만 했던
그런 불쌍한 사람........
그렇지만 본인의 마지막을 알면서도 기꺼이 그 길을 갈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
@@daewookkim4795 뭐 솔직히 결과는 1차대전 프랑스보다 2차대전은 피해를 덜입어서
페탱 바람대로 피해를 많이 입지않은건 팩트죠
어쩌면이아니라 그게 정답
삶의 석양이 불운했다는 표현이 대단하네요
멋지네요!!
후대의 우리야 나치의 막장짓들을 알고 역사적 평가도 내려졌지만 당시에는 본인들의 역할을 보불전쟁 패전 직후에 굴욕을 감수하며 항복해서 혼란을 수습하고 기어이 1차대전때 복수에 성공했었던 선대 정치인들의 그것을 생각했었다고 하더군요.
이거 말되네요
이런거 보면 친일파로 분류되신 분들 중에도 분명히 일제의 지배를 인정하고 와신상담하자는 사람도 있었을텐데.. 국가마다 이런 사람들을 바라보는 관점이 완전히 상반된다는게 아이러니하긴 하네요
@@준삼-s8q 동아시아 역사랑 유럽 역사랑은 결이 다른데 그대로 가져오는건 말이 안 된다고 봅니다. 유럽 역사를 통틀어도 페탱은 무척이나 특이한 케이스고요.
일제의 지배를 인정하고 와신상담하자->20년대 문화통치 들어와서 전향했다가 30년대 민족말살통치 들어갔을 때 다시 변했다면 그러려니 할 법 해도, 그런 사람이 얼마나 있었나 모르겠네요. 대부분은 20년대에 이득본거 때문인지 입 싹 닫거나, 30년대 철권에 끝내 굴종하게 된다거나 했던 걸로 압니다.
일제 패망 후에 '그렇게 된' 사람들이야 많지만요.
@@준삼-s8q 와신상담하자고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을지 모르나 결국은 포기하고 일제에게 순응해갔죠. 암살의 이정재처럼 한국이 독립할지 몰랐다는 핑계로 말이죠
@@준삼-s8q현시점에서 친일반민족자로 분류된 사람 중에서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일단 자료가 부족해서 모호한 사람들은 명단 자체가 안올라갔고, 와신상담의 자세로 뒤에서 독립군을 도운 사람도 명단에 안올라갔습니다. 정말 매국,반민족 행위를 본격적으로하고 몰래몰래 독립군을 돕더라도 결국 스파이처럼 일본제국을 배불린 사람들만 명단에 올라가있어요
패텡은 저리 될걸 알고 있었을 겁니다. 프랑스패전이 스페인 대사때 벌어진 일들인데 안가도 되고 가면 본인한테 죄가 전부 뒤집어 씌어질걸 알면서도 프랑스로 가서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을 했습니다. 영화 마지막 말대로 패탱은 방패였고 드골은 검이었습니다. 패탱이 없었다면 드골의 저항도 의미가 없었을겁니다.
@하은섭 ㅈㅅ
정치충들이 댓을 많이 달아서 예민해짐
드골도 비시시절 페탱 비난했는데 뭔 방패야 ㅋㅋㅋㅋㅋㅋㅋ 비시정부도 허수아비인거 차치해도 프랑스 인구 80퍼는 나치 지배하에 있었는데.
프랑코 장군이 은사인 페텡에게 '원수님, 가지 마십시오. 가신다면 저들은 모든 책임을 원수님께 뒤집어 씌울 겁니다.' 라며 만류하기도 했지요...
타지서 싸울 용기는 젊은 드골이
노련함으로 자국민의 희생을 막은건 선임 페탱이..
히틀러도 나이90넘은 양반이라 많이봐준듯
그래서 패탱에게 사형선고를 내렸지만 드골이 자기 정치적 생명을 걸고 살려줬음.
뭘 정치적생명이야ㅋㅋ 드골걔는 연합따까리고 ㅋㅋ 패탱 지지하는 프랑스인들도 많아서 못죽인거임 그리고 영상대로 찔리는구석도있고
@@نملنملة 애초에 드골상관이 패탱이었는데?
@@최진호-v9k 동문서답이냐?
@@동글이저장소 아 실수
@@نملنملة 근데 드골이 전쟁전까지는 패탱존경하기도 했고 또 패팅이 1차 세계대전때 크게 활약해서 패탱사형시키는걸 1차세계대전 참전자들이 개지랄하면서 반대한면도 있음 그래서 드골이 패팅 사형 못하게한듯
페텡의 이야기를 들으니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죽음을 불사한 저항이라는 말은 아름답지만 대중의 희생이 반드시 요구된다는 점에 있어 순간의 굴욕이지만 대다수 국민들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었던 그의 선택이 마냥 비난 받을수는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른 분들은 일제시대의 친일을 비유로 드시지만 저는 명분을 위한 항전과 실리를 위해 항복의 굴욕 사이에서의 고뇌했던 병자호란 때의 조선이 떠오릅니다. 이러한 고민을 주제로한 한국영화 ‘남한산성’ 역시 너무 좋은 영화라 혹시 시간되시면 감상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막연히 조금은 부정적으로 생각해왔던 페탱의 인생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됐네요.
뽑히는 것 보다 밟혀서 꺾여 있는 풀처럼 존재는 해야한다는 생각으로 프랑스를 유지시키고자 한 것 같습니다. 비록 그 방법은 잘못 되었을지 몰라도 프랑스를 누구보다 사랑한 페탱 장군의 마음을 이해해줬으면 좋겠네요.
전에는 그냥 단지 민족반역자인줄 알았는데 이런 많은 사연이 있는 분이였군요 또 하나 배우고 갑니다
자세한 배경이 궁금해서 그런데 이 상황이 맞나여?
페탱 원수가 스페인에서 대사로 있다 조국의 부름을 받고 귀국하여 본 프랑스 상황
1. 제1(북부)집단군이 낫질 작전으로 포위섬멸되어 와해됨
수도 파리가 점령 당했으며 마지노선에 제2(중부)집단군이 포위 되어 포로가 되고 와해 됨
3개 집단군 중 사실상 미편성의 예비인 제3(남동부)집단군만 남음
전쟁 시작시 약150개 사단 이었던 편제가 현재는 가용 사단 약 60여개 사단(남동부 사단+와해된 사단 재편성)인 상태
> 현재 병력으론 전선 유지도 불가능한 상황
2. 이탈리아가 참전 하여 양면 전선 상황에 도와줄 수 있는 영국은 덩케르크 겪으면서 오늘내일 하고 있음
이상황에서 자신을 부총리로 부른 제 3공화국은 정부를 외국(식민지)에 옮긴 후 국내외로 싸워야 한다고 말함
반대로 폴 레노 또한 총리가 된 상황
1. 프랑스 의회는 독일유화정책을 펼치는 정치분위기
2. 1차세계대전의 상흔(초토화된 국토, 전쟁 참여세대 증발, 내 아들들은 그 지옥을 겪게 할 수 없다는 인식)으로 인해 전쟁을 꺼리는 사회 분위기
3. 대공황으로 인한 경제 혼란 및 군비 축소
> 종합하면 19세기부터 저출산/고령화로 인구가 감소하는 통에 1차대전을 치르며 20-40대의 한창때인 경제노동인구가 30% 갈려나간지 20년도 지나지 않았고 대공황으로 유럽 전체가 다 난리인데 1차대전 패전으로 더 심각한 독일이 미쳤다고 전쟁을 일으키겠음? 하하 게다가 마지노선도 지어놨잖아?
란 상황에서 독일강경책과 군비증가(드골이 주장한 기계화/현대화 군대 개혁)를 주장해오던 강경파 폴 레노.
결국 폴란드,핀란드가 침공되어 초토화되고 2차대전 발발 후에 서야 급하게 총리가 됨.
그 이후
1. 서로 니탓내탓 싸우는 의회를 조율
2. 영국과의 전쟁동맹을 재공고히하고(단독종전금지!)
3. 전시체제 전환으로 민간 산업을 군수 산업으로 전환하여 군수 생산품 증가
4. 병력 모집 및 동원 훈련 등 재무장 시행
하지만 독일의 프랑스 침공은 총리가 된지 2달도 되지 않아 일어나고
믿었던 마지노선은...
벨기에와 마지노선 사이의 전투지경선인 아르덴숲으로 허를 찔려 돌파당하면서 무력화 되어 버린다.
(벨기에-프랑스 가 서로 잘 지키겠지..? 했다고)
이로인해 1주일만에 전선이 돌파 양분되며 3개 집단군 중 북부의 제 1집단군이 포위 와해되고 영국군은 덩케르크로 철수 해버리며 전선의 돌파를 막기 급급해진다.
이 후 프랑스 수도인 파리가 한 달만에 무저항 도시 선언 및 함랑당함
(프랑스 파리는 오늘날에도 우리나라 서울이 형님 할 정도로 모든 사회/경제/정치 인프라가 집중 되어 있다) 또한 수도를 잃는단 것은 어느나라나 정신적 타격이 심함.
그로부터 약 3주 뒤 제 2 집단군의마지노선이 독일 공군에 의해 점령되며 결국 프랑스는 항복을 선언한다.
분주히 움직였으나 전쟁 준비에 부족했던 시간, 6주만에 프랑스군 주전력에 2/3이 와해되고 항복 조건으로 수도 파리를 포함한 프랑스 국토 절반을 내주게 된 폴 레노는 정부를 북아프리카로 옮겨 항전을 계속하려 했으나 결국 체포 되어 2차대전 내내 정치 인사 포로로 수감되어 생활하였다...
비시 프랑스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아무것도 몰랐는데, 좋은 영화 추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참고로 20세기 초의 프랑스는 주입식 교육, 자격증/공무원 열풍도 불었습니다. 지금의 한국과 같은 문제를 1세기 전에 겪은 나라입니다.
뻘짓도 비슷
공무원열풍을 불러온게 누구인게 ㅋㅋ 다 405060 때문에 일어난일이다
3회 초에 10:0으로 지고 있고 우리 팀 타선은 살아날 가망이 없어 보여도 누군가는 9회까지 공을 던져 줘야 한다. 20:0이 되더라도.....
이렇게 진 경기에 투입된 패전조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 애국심이라는 감독이 패탱을 패전처리용으로 내보낸 것이다.
역시 감독은 안감독이야
반백년이 훌쩍지난 지금도 프랑스인들의 페탱에대한 평가는 극과극이죠 특히나 정치인들은 페탱에 대해 그냥 침묵하는 경우가 많아요 몇년전에 마크롱이 위대한 군인이였다고 말했다가 욕을 오지게 먹기도함ㅋㅋ
모든 영웅이 잔다르크 같을수는 없으니까요...
우리나라와 비슷하네요. 리승만 대통령처럼
마크롱은 워낙 밉상이라 뭔말을 해도 욕먹을거임ㅋㅋㅋㅋ
@@Medi747 리승만 사키는 초반, 후반이 불량한 사키라 중반 조금 활약한 건 운이 좋아서지. 인성은 쓰레기 맞음
@@Medi747 이승만과는 반대인듯 승만이는 드골과긴함
흔히들 알려진 것과 달리 프랑스도 부역자 대다수가 면피식 처벌만 받고나서 본래의 행정직/사회적 지위를 유지해왔습니다. 페탱의 재판에서 미적지근한 스탠스를 취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이러한 연유도 한 몫을 했겠지요.
근거는?? 바로바로 확인못한다고 넷상에서 유언비어 날포하지마시죠...대다수가 면피식 처벌?? 기존에 알려진 주류이야기가 아닌 말을 하려면 말하는사람이 근거와 사례를 제시해야죠
@@User0083rrt5vxssoervzjkboz 이완용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듬. 만약 그때 인조처럼 같잖은 자존심으로 버티다가 일본하고 전쟁했으면 조선들 수백만이 죽고 문화재 불탔음. 삼고구두례보다 더한 치욕을 겪었을거임. 고종 순종은 참수당했을거고. 이완용도 재평가해야할 시기임. 이제 국민들도 성숙해지고 민족주의 세뇌에서 벗어날만큼 시대가 변했음
프랑스의 나치협력자 청산은 속전속결이 특징이다. 최고재판소가 형식적이나마 1960년까지 운용되었지만 대부분의 숙청은 1951년에 종지부를 찍어 단 6년 만에 숙청재판을 종결했다.
프랑스의 연감 『퀴드』 2003년 판은 나치협력자 청산결과를 다음과 같이 적었다.
‘나치협력자 조사대상 150만~200만 명, 체포되어 조사 받은 자 99만 명, 최고재판소와 숙청재판소에서 재판된 사건은 57,100여 건, 6,766명에 사형선고, 782명 사형집행, 2,802명에게 유기징역형, 3,578명에 공민권 박탈했고 시민재판소에서 11만5천 건을 재판에 9만5천 명에게 부역죄을 선고받았고 공직자 12만여 명은 시민재판소에서 행정처분을 받았다.
재판 받은 사람들은 군대 장교 42,000여 명, 정부 관료 28,750명, 경찰간부 170명, 판검사 334명, 헌법위원 18명이다.‘
그러나 나치협력자 숙청결과는 이보다 더 많다는 것은 정설 아닌 정설이며 드골도 『회고록』회고록에서 적어도 1만 명 이상 사망했다고 기록했다. 물론 서슬이 시퍼랬던 나치협력자 청산도 시간이 지나면서 부드러워져 최초에 선고된 형량을 모두 채우는 나치협력자들은 점차 줄어들었다. 1951년에 이미 강제노동형 수형자 406명이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그러나 나치협력자들이 일부 가석방의 은전을 받아 풀려났더라도 사회에서 부역죄라는 형벌이 계속 발목을 잡아 정상 활동이 불가능했다. 피선거권은 말할 것도 없고 투표권도 박탈당했으며, 공직은 물론 언론이나 국영기업체에도 진출이 차단됐다.
프랑스는 조선이 아닙니다;
@@User0083rrt5vxssoervzjkboz 보통 프랑스 주둔 독일군이랑 붙어먹었단 혐의로 애꿎은 아녀자들 좀 린치하고, 드골 집권의 정당성과 레지스탕스 신화에 도움되게 본보기로 피에르 라발같은 상징적인 부류들 좀 족치기나 했지, 그 시절에 비시 부역자 이력 가지고도 살아남은 이들이 좀 있긴 하죠. 당장 프랑스 사회당의 거두 미테랑 전 대통령도 좌익으로 전향 전, 젊었을 때 비시 정권에서 일한 적도 있고.
@@User0083rrt5vxssoervzjkboz 그럼 님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는? 근거 없는건 매한가지면서 뭔 ㅋㅋㅋㅋ
결과는 달랐지만 두 지도자 전부 '조국 프랑스를 위한 선택' 이었다는 아이러니한 점... 오늘도 잘 봤습니다
우리도 북한을 중국한테 주면 전쟁은 없을것입니다
@@춘원이광수-y9s ㅈㄹ
@@춘원이광수-y9s 북한 주면 그 다음 어디 일까..?
혹시 중국인..?
@@춘원이광수-y9s 너네가 북한을 넘겨주면 전쟁은 없음
@@춘원이광수-y9s 우리가 북한보단 쌔고 동맹국들도 ㅈㄴ많은데 왜? ㅋㅋ 선족아 vpn꺼라
결과론적으로 본다면 프랑스는 어쨌거나 페탱 덕분에 피해도 적었고
드골 망명정부가 솔까 별 기여는 없었어도 승전국 포지션을 가져갈 수 있는 명분을 얻었지....
처칠의 캐터펄트 작전으로 프랑스 해군 수장시킨 보상심리도 작용했고
프랑스는 진짜 개막장짓 존나게 하고도 이미지 관리 진짜 잘된 국가임!
가장 잔인하게 식민지를 경영했던 국가가 프랑스였다죠!
페탱이 없었다면 프랑스는 독일한테 일방적으로 개 털려서
전후 복구에 더 힘들었을 거고
체임벌린의 시간 벌기가 없었다면 영국도 개 털렸을 가능성이 많음.
뭰헨협정후 체임벌린이 한 일이 영국 공군 강화였으니..
역사는 영웅과 반역자를 원해서 처칠과 드골이 영웅으로 남고
페탱과 체임벌린은 반역자 역활로 남죠..
@@생각중-w3k 사실 영국의 진짜 개트롤은 애틀리 이전 노동당이었음 전세계 비무장화 같은 ㅄ 같은 꿈이나 꾸고
체임벌린 재무장에도 반대함
@@gammalee2685 ㄲㄸㄲㄸ
@@gammalee2685 식민지 가장 잔인하게 경영한 국가는 독일임
프랑스는 나름 교육시키고 동화정책 펼쳐서 괜찮았음
어떻게 한 사람 팔자가 저렇게 기구하냐 사람 인생은 한날 한치 앞을 알 수 없다 더니 오래 살면 못 볼 꼴 다 본다는 말이 이런 말이군요...
1-2차 세계대전의 중심에 서서 모두 겪으면서 95세 나이에 죽었다는게 더 대단한거 같아요 ㅎ
보불전쟁 때 나이가 15세였으니 그 전쟁 참전은 안 했어도 생생히 기억할 나이이고 1951년 사망했으니 한국전쟁 소식도 듣고 죽은 셈이니 그러기도 쉽지 않네요.
@@joshuakim1317 18세기 스타일의 기마부대 돌격에서 원자폭탄, 제트기까지 봤으니 뭐 ㅎ 저 분 속으로 세상 진짜 빨리 변한다고 생각할 것 같아요 ㅎ
저라도 페탱처럼 선택했을겁니다.
예전에는 그냥 드골은 훌륭하고, 패탱은 나쁜놈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는데,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는 영화네요. 씨네모리님의 멋진 설명에
많은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항상 재밌게 잘 보고 있어용 얼른 10만명 되셨으면 좋겠습니당! 파이팅!!😊😊
항상 고맙습니다 ❤️ 😊 💕
프랑코가 말렸고 앞날을 예언했죠...프랑코라는 인물의 평가는 논외로 보더라도 정치적인 능력은 당시 세계에서도 탑이었으니까요
참고로 패탱이라는 인물은 단순히 전쟁영웅으로 평가하면 안됨 당시 유럽은 아직까지 귀족의 영향역이 남아있어서 유럽군대의 고위층이다? 귀족출신일 확율이 높고 귀족끼리는 유럽에서는 국가를 초월하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음 설령 귀족이 아니더라도 군대의 고위직이면 상당한 영향력이 존재했음 당시 패탱의 영향력은 독일측에도 상당해서 나치 치하 프랑스는 다른 나라 점령지보다 상황이 상당히 좋았음
진짜 배신자는 비시가 아니라 파리에 있었다
6:55 기름장어를 위한 "거목 반기문"송이 생각나네 ㅋㅋㅋ
욕먹으면서도 자기가 총대매고 본토에 남아서 끝까지 프랑스 국민들을 지켰고 전후에도 망명가서 살수있었는데 자진해서 재판 출석함 저 사람은 영웅임 그 모든걸 자기가 총대매고 희생한거임
나는 방패였네. 드골은 칼이었지.
프랑코도 페탱에게 프랑스 돌아가면 이용만 당할거라고 귀국을 말렸더랬죠
1:09 왜 호이에서 프랑스가 시작부터 온갖 디버프를 먹고 있는지 다시금 알겠네요.... '분열된 정부'
괜히 엘랑스라 불리는게 아님
걸판의 모 학원도
저때 보면 개판인게 프랑스 공산당들은 코민테른의 지령을 받고 있었어서, 스탈린이 독소불가침조약 이후로 무저항 명령을 하니까 나치가 지네 조국에 쳐들어오는데 내부에서 사보타주해서 나치 도와줬던 놈들임ㅋㅋㅋㅋ 그리고 저런 복고주의자 성향의 인물들은 영상에 나왔다시피 나라 망해가는데도 좌파 꼴보기 싫다고 그래도 같은 (극)우파인 독일의 나치랑 협력해서 우파국가를 세우는게 낫지 않을까 이러고 있었고.. 그 와중에 나라 뺏기고 나니 드골이랑 레지스탕스 같은 사람들이 또 등장해서 목숨걸고 저항활동은 하고.. 그런 거 보면 난 프랑스 근현대사 정치가 우리나라 정치랑 정말 닮은 것 같음. 평소에는 분열해서 싸우다가 크게 데이고 나라 넘어가고 나서야 정신차리고 단합하고 또 좀 살만해지면 분열해서 싸우고..
나폴레옹이 옳았던걸까
영화를 보면서 역사 까지 ㅋㅋㅋ
역쉬 씨네모리님 ㅎ
항상 잘보고 갑니다 씨네모리님
페텡생각에선 모든 전쟁이 끝나고서 알자스 로렌만 띄어주고 다시 프랑스를 재건할라고 한거 같은데, 나치가 망해버리면서 반역자가 되버렸지
서두에 언급된 프랑스 3공화국 모습이 21세기 한국에 그대로 겹쳐지는군요.
저 당시 프랑스사회는 오늘날 한국하고 비슷하네요
지금 일본이 한국을 먹을려고 계획중인데 윤모시기는 좋다고? 오무라이스 쳐먹고옴 😊
분열된 정부?
나라를 말아먹고 있는 좌익?
항상 마무리 표현력에 감탄하고 갑니다.
업로드 주기가 길어도 올라오는 영상의 퀄리티가 항상 만족스러워서 재밌게 보고 있어요!!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팔순이 넘은 나이에 무슨 부귀영화를 바라고 독일에 항복한 프랑스의 수장이 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1차대전 구국의 영웅으로서 내가 지킨 국가, 국민들이 적국의 군화발에 짓밟히는 수모는 차마 볼 수 없었던 노 장군의 뼈를 깎는 아픔과 같은 결정이었을겁니다 해가 있으면 그림자가 생기듯 드골이 해의 역할을 맡아주고 페탱은 그림자가 되어 각자의 위치에서 조국을 살릴 방법을 찾았을 뿐...페탱 그 또한 힘없는 국가의 국민이자 피해자..
과연 그 어느누구도 자기부하 백만명정도 잃은적이있다면 과감하게 싸우자고 말할사람이 몇이나됄까?
1:20 현재의 헬조선 상황이네요;;;; ㄷㄷㄷ
오늘도 영상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역사의 모순에 빠지지 않게
미리미리 준비.
저때 프랑스 싱황이 ㄹㅇ 우리나라 현재와 똑같다
프랑스3공화국,서로마제국,장평에서 개박살난 조나라
딱 이꼴인듯
패탱 또한 영웅이네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는 지도자인거지요.
조금만 생각해봐도 패탱이 없었다면 더 심각한상황까지 몰렸겠는데요?
지금 한국 이야기 인데요?
역시 씨네모리 강추입니다.
페탱은 상당히 억울한 인물입니다.
페탱이 프랑스로 왔을때는 이미 전황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였고, 무책임하고 무능한 정치인들은 자기 대신 항복 문서에 서명하고 매국노의 오명을 쓸 인물을 모색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총대를 맨 인물이 페탱이였습니다.
당시 결사 항전을 주장한 측의 항전 계획이라는 건 프랑스 본토는 포기하고 알제리로 정부를 옮겨서, 해외 식민지를 근거지 삼아 장기 항전을 하자는 건데 현실성 없는 것이였습니다. 1차 세계 대전 이후 알제리에는 독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세어졌고 본토를 잃고 망명해온 프랑스 정부를 알제리인들이 인정하고 따를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았으며 나찌와 싸움 이전에 알제리 독립 세력과 싸우기에 더 급급했을 겁니다.
결국 항복 이외 다른 선택이 없는 상황에서 누군가는 해야할 일을 페탱이 했던 겁니다.
심지어 권력욕 이나 일신의 안위를 위해 프랑스로 온건 아니죠
1940년 당시 스페인 프랑스대사로 있었고 당시 정권을 잡은 프랑코는
만약 프랑스로 돌아가게 된다면 패전의 실책을 페탱하게 다 뒤집어 씌울려고 부르는 거라며 극구 만류했지만
페탱은 알고있다며 그래도 내 조국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며 돌아갔습니다
만약 개인의 영달을 추구했다면 그냥 스페인에 머물거나 드골처럼 망명을 떠나
비교적 안전한곳에서 대독전을 부르짖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지 않았죠
그 결과 프랑스가 해방 된 후 페탱은 프랑코와 자신의 예측대로 명예는 실추되었고 심지어 사형판결까지 받고 말았죠
헌데 프랑스정부에서도 페탱을 진짜 많이 봐준거임 나치부역자들은 별 이유 갖다대면서 대부분 처형 당했는데 정작 수장급인 페탱은 종신형으로 감형해준거 자체가 프랑스정부가 어느정도는 이해해준거임 사면해주자니 나치청산에 문제 생기고 하고 게다가 말만 종신형이지 사실상 편의제공 다 해준 유배형 정도 됨
@@user-ew7hu4be6h 글쵸 명분때문에 그런거긴 한데 그래도 안타까운건 사실입니다
누군가는 그 책임을 져야했기 때문에
페탱이 십자가를 진거죠
@@user-ew7hu4be6h 제가 아는 바론 그닥 봐준게 아니였어요. 당시 나찌 부역 혐의를 받던 정 재계 거물급들이 요리조리 빠져나간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패탱은 비시정부 수반이였기 때문에 그렇게 빠져나갈 수가 없었지요. 기를 쓰고 그를 처형하려 했었지요.
문제는 그의 변호론이 프랑스내에서 크게 호응을 얻었다는 겁니다. 패탱은 재판장에서 자신은 프랑스의 파괴를 막기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라고 열정적으로 변론을 폈고, 그를 처벌하려던 이들은 이걸 반박할 수가 없었어요.
대중들 사이에서 패탱은 애국자, 무죄라는 여론이 일어났고 그를 처벌하려던 프랑스 정부는 당황했었습니다.
결국 사형이 아닌 종신형을 선언하는 선에서 매듭지을 수 밖에 없었던 겁니다. 봐준게 아니라 패탱 옹호론에 밀린거라고 봅니다.
유대계들 수용소로 보낸건 도저히 쉴드쳐지지가 않네만...
협력과 부역의 차이라...골치아프긴하네요
👍 감사하게 잘보고있어요
의미있게 보았습니다
2차대전 당시 프랑스는 진짜 추풍낙엽처럼 무너져서 대전초기 연합군에게 개똥을 싸질렀죠.
당신은 시인
95세면 정말 오래 살았네요.
오래 산게 이분에겐 좋은일이 아니었던듯 싶네요 80에 돌아가셨으면 민족의영웅으로 프랑스 역사에 이름을 남겼겠지만, 총리를 맡으면서 민족반역자 논란에 감옥생활까지 하시다 생을 마감..
패탱처럼 굴욕을 감내하고 그 책임과 비난을 자기가 지겠다하는 사람이 진정한 지도자.
패탱을 진심으로 존경했던 스페인의 독재자 프랑코가
패탱이 프랑스로 가겠다고 하니까 (그 당시 패탱은 스페인 주재 프랑스 대사였음)
'장군님 가지 마세요.
지금 프랑스의 정치가들이라는 것들은
지들 잘못을 다 장군님보고 떠맡으라고 하는 겁니다.'
하고 말리니까
패탱 왈
'그래도 프랑스는 나의 조국이고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오.'
하고 말하며
프랑스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아마도 본인도 자신이 어떤 운명을 겪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스스로 흙탕물을 뒤집어 쓸 각오를 하고 가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드골 조차도
나중에 패탱에게 무기형이라는 관대한 처벌을 받게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실제로도 패탱의 마지막은
적어도 목이 매달리는 교수형이 아닌
노환으로 침대에 누워서 죽었으니까 말입니다.
윤완용인가? ㅋ
@@hesperides6292 역사는 영웅과 배신자가 동시에 필요한 법이지요.
그 자리에 있을 수 밖에 없었던 불행한 분이라고나 할까요?
결국 드골은 영웅
패탱은 반역자로 역사에 이름이 남게 되었으니까 말입니다.
@@daewookkim4795 그 어떤 근현대사회의 영웅이 자국민을 학살한답니까 . 아무리 좋게 보려해도 김일성이나 이승만정도 밖에 안보이는데요
@@hesperides6292 그것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어느 누구도 말입니다.
차라리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에 대한
답이 더 쉬울 겁니다.
페탱은 진짜 불쌍한 사람임
그 사람이 진짜 매국노라서 독일과 타협을 했겠냐고...
프랑스 영화 쥐트코트의 주말이 생각나는 영화네요. 똑같은 덩케르크 철수를 다뤘죠.
악화된 현실에서 최선의 선택이 아니었을까?
저때독일은 프랑스한테 당한거 복수하겠단독일이라서지들이 당한 10만명 똑같이 갚아준거임 당시에도 독일쥐어짤려고했던게프랑스라서 지가자초한일이긴함
저도 2차대전사를 너무 좋아하고 수십번씩 보는데도 비시정권의 페탱영감에 대해선 처음 알았습니다. 미화가 되었는지 몰라도 너무 잘한 선택인거 같네요.
와중에 예전 영상에서 숟가락들고 나타난 드골이란 표현이 생각났어요
역시 라발은 프랑스판 이완용이 따로없어
3:40 하아...21세기를 살고있는 20세기 지도자...아...
리짜이밍 …
재인the예거
패탱VS드골 이거 프랑스에서 토론주제로 던지면 거의 5대5로 비등해서 무조껀 개싸움납니다
페탱측: 우리 없었음 프랑스 국민들 나치에게 유린당하고 보다 많은 이들이 죽었을것이고 지금의 파리또한 어쩌면 없을수도 있었다
드골측: 우리없었음 프랑스는 부역국으로 낙인찍혀 유럽의 상임이사국 대표도 못하고 남들 눈치보느라 핵도 못만들것이고 알자스 로렌지방도 못찾았을거다
그때 당시 프랑스의 상황이 지금의 한국의 상황이랑 매우 흡사합니다.
ㅋㅋ 아니지 북조선괴 비슷함
북괴에 부역하고 있는 민주당을 일컫는 건가
그래서 이런말이 생겨난거구나~
주뎅이 라발~라발 거리지 말라고...
아주 잘 봤습니다. 너무 유익한 정보였습니다
전쟁에 젊은이 목숨이아닌 늙은이가 책임진 몇 안되는 사례
1930년대 프랑스가 우리나라랑 상황이 똑같네
좌익들이 나라를 군대를 망치고 있는 상황? 너무닮음 곧 프랑스 처럼 절대존엄 김틀러에게 패하고 폭망 직전.
@@HotSoil510 병역회피자 알콜중독 치킨호크 수퇘지가 멸굥놀이에 빠져 똥오줌 못가리는게 한심 할 뿐...
저 시기의 프랑스는 그 정도의 급이 달랐어요, 정치적인 폭력이 난무하고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대규모 파업이 일어났죠.
드골이 성공한 김상현이라면 패탱은 실패한 최명길이었을까
적절하네요.
상헌
독불종전조건이 불식민지와 해군 전부보장. 블육군은 대전종전시까지 10만 제한. 북부점령지는 차후 반납받고.. 로렌알자스는 독일에 합병. 북부점령지내 독일징병징용금지. 인데 징용은 2차협상때 협력.. 패전종전조건이 좋은 편이었음..
협상의 대상이 정상적인 정부였다면 그럴만한데 상대가 히틀러였다는게 문제지 그리고 그에대한 죗값을 치뤄야할뿐
빼앗긴 나라는 되찿을수 있지만 갖다바친 나라는 역사에서 사라집니다..
드골: 프랑스의 애국자
페텡: 프랑스 국민의 애국자
역사적 인물들은 단순 소설이나 영화 속 캐릭터가 아니다, 수 많은 인간적 고뇌와 실수, 모순으로 이뤄져 있다. 한국 근현대사의 수 많은 인물들도 페탱과 같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드골이 빛이라면 패탱은 그림자아니었을까
프랑스가 나치 독일에 점령 당한 이유가 다 있었네😅
죽어야 할때는 죽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어려운 상황에서 타협을 하더라도 최후의 선은 있어야죠. 죽어야 할 때 죽을 각오를 하지 못했으니 저리 된것이죠. 물론 어려운 선택입니다만 국가지도자의 자리는 어려운게 당연한 것이죠.
2차 대전직전의 프랑스가 지금 우리나라가 처한 상황이랑 너무나 비슷해서 놀랐고 한편으로는 암울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드골은 존속과 의지를, 페탱은 시민과 역사를 지켰다. 둘 다 프랑스에게 있어 필연적이고 영웅적인 존재.
자동생성 자막 ㄷㄷ 아나운서 하셔도 될듯
8:15 만주국이네요
지금의 우리나라네..역사는 돌고 돈다는데..
객관적인 제 3자입장에서야 이해가가지만 프랑스인입장에서 페탱같은 거물이 죄가 없다고는 할 수 없겠죠.
4:34
독일: ㅋㅋㅋㅋㅋㅋㅋ
프랑스: 하아아.....
2:14,9:01
진정한 늙은 수탉의 이야기
보로사의 1차 엘랑
나치의 2차 엘랑
여든넘은 노인네한테 나라의 존망을 맡길정도면 망할나라라는거지
페탱포함 1차대전을 겪은사람 대부분은 반전주의가 강했음. 그래서 히틀러가 폴란드침공해도 전쟁하기 싫어서 폴란드 통수치고 싸우는 시늉도 안했었고.
반전주의는 독일군 장성들도 일부 가지고 있어서 전쟁을 결정하니깐 하나님이 보고있다 또 천만명 죽는 전쟁을 할것이냐? 란 말도 나왔음.
근데 히틀러는 1차대전때 참호 뛰댕겼던 병사출신인데도 전쟁광이니 참;;
히틀러도 군인으로서 보면 당연히 전쟁을 원치않앗겟죠 오스트리아 빈 예술대학에서 떨어지고 건축학 추천받다가 중졸이란 이유로 컷당하고 정치인 생활에들어갓는대 정치인돼면서 순수한 사람이 어디어디있겟습니다 당시 독일은 상황이 암담햇고 하이임플레이션에 치안도 그렇게 좋은상황도아니고 프로이센출신에 융커들이 개난리를 첫고 히틀러도 결국엔 군인출신이고 외교관출신이 아니엿습니다 그러니 전쟁으로 굴복시켜서 독일에 지위를 얻고자 한거죠 물론 경제키워가지고 전쟁으로 손해먹는 군비지출을 유지할생각이죠 정치인돼면서 정상인으로 변하는사람 거이 본적이없습니다 히틀러가 가정환경도 막장이엇고 건축에서도 컷당하면서 우울증걸리게 됀는대 정상으로 돌아가릴가없음 사람이 우울증걸리면 많이찾는게 정치임 여기서 현대인들이 주목해야할건 예술대학을 떨어뜨리지 말라는게 아니라 그사람에 갖고있는 한분야를 다른곳에서도 안정적으로 써먹을수있도록 나아가야하는겁니다 여태동안 미술로 경험을쌓앗고 미술에대한 자부심이 큰대 사회에서 이게 박탈당하면 우울증에 얻게돼고 많은것을 잃게돼엇다고 생각하게돼는거죠 결국엔 어떻게든 히틀러가 자신에 그림으로 먹고살수있게 도와줫다면 히틀러가 정치인길을 걷지않앗겟죠 히틀러가아니더라도 누군가가 나서서 대전쟁을 일으켯겟죠 베르사유조약이 결국엔 원인이지뭐
어찌 남한산성에서의 논쟁과 비슷한 이야디....
비시 프랑스때 정치재판같은 논란될만한 행동도 많이 했지만 적어도 스페인에서 프랑스 보호하겠다고 돌아오거나 전후 스위스에서 재판받겠다고 프랑스로 돌아온 모습을 보면 어떤 사람인지는 알겠더라구요
밴드오브브라더스에서 전시중에 휴가로 프랑스 파리로 간 장면이 이제 이해가네요
"원수여 우린 여기에 있습니다"
페탱을 보니 영화 변호인의 박도원이 연기했던 고문 공안경찰이 생각나네요.
"내가 판단하는게 아니라 국가가 판답합니다."
잘못된 신념이 '조국을 위한 판단과 선택'으로 포장되었을 때....
그때 내 조국은 망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되는 영상입니다.
1905년에 19010년에 그들도 '조선을 위한 판단과 선택'이었다라고 했었다지요.
일요일 아침 주인장 드립에 밥을 할 요량으로 틀었는데....
감사합니다.
매국노는 절대존엄 왕국의 조선왕 고종임. 1910년 을사오적드립은 가짜력사.
결과적으로 페탱 원수가 한 선택 덕분에 프랑스는 여타 유럽국가들과 비교하면 독일에게 수난을 덜 받았고 프랑스 군인도 국민도 덜 죽었습니다.
항복한것은 치욕스럽지만 당시 나치 독일은 곧 전 유럽을 정복할것처럼 보였고 현시대의 우리는 이미 망할 결과에 베팅한것처럼 보일지라도 나치의 정복이 진행형이었던 저 당시에는 무의미한 저항보다는 프랑스인들을 보호하고 프랑스를 구하는것이라는 페탱의 판단이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박도원이 누구야 ㅋㅋㅋㅋㅋㅋㅋ
@@kkoonn_ 곽도원인가봐요 ㅎㅎ
프랑스인이 독일군과 같은 편에서 전쟁참여는 막아냈네요.
어떤 역사던 정점찍으면 끝은 망하더라. 좋게 죽어도 침뱉는 인간은 분명 존재하는게 이치인가
희망없는 전쟁으로 국민 죄다 희생시키면 전후 복구는 어떻게 할 겁니까? 군대의 절반 이상은 날아갔고, 적인 독일군 숫자는 자국 프랑스의 세배 이상이면서, 이미 체코와 폴란드 상대로 전쟁을 수행한 독일의 정예병력들 상대로 보급도, 방어 이점도, 수도도 전부 날려먹은 상황에서조차 서로 싸우는 바쁜 프랑스 정부와 군이 독일 상대로 뭘 할수 있는데요 ㅋㅋ
저항도 가능성이 있을 때에나 하는거죠. 예를 들어 아군이 버틸 만 하거나, 아군의 동맹으로 참전할 가능성 있는 국가들이 있는 경우 말입니다... 당시 프랑스 동맹국이래봤자 영국인데, 영국은 이미 포위당해서 철수한 상황이었고 자국군은 무너지는데 전후 복구를 포기하면서까지 전쟁 할 이유 없습니다. 복구할 때 쓰일 인력과 자원들이 전쟁을 오래 할 수록 더 없어집니다. 채권까지 얹으면 더 심각하죠.
당시 프랑스 상황은 현재 우크라이나보다도 절망적이었습니다.
홀로 바람부는 언덕에 서 있던 윤치호가 생각나네
진정한 애국자 😊😊😊
북한이 쳐들어오면 정부가 항복하는거랑 똑같은 뭐가 애국자야 ㅋㅋㅋ
@@user-el9vv6cg8n패탱은 독일이라는 거인을 못 이긴다는겋 아니까 항복한거지 북한이 우리를 이기겠냐? 비유 할 거면 제대로 하자
독일이 이길줄 알았겠지
배우들이 실제 인물들과 진짜 닮았네요.
참 암흑기네요!
죽어서도 욕먹을거 알면서 진행하신 페탱 원수 존경합니다.
어느정도 프랑스가 보존이 되어있었으니 레지스탕스도 활동하고 했겠죠...ㅋㅋㅋ
1930년대 프랑스가 딱 현재의 우리나라이네요.. 경제력 비교는 그만하고... 경제력만으로 전쟁하면 중세때까지 중국을 누가 이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