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법정과 방통이 살아 있고 관우와 장비가 본인 성격 컨트롤 잘해서 제갈량 북벌 때 까지 살아 있었다면 그래도 나름 어떻게 커버는 했을 꺼 같은데 법정&방통&관우&장비&황충 등의 유명 인재들이 운명을 달리하게 되고 그와 동시에 유비 개빡쳐 개돌 전략으로 오나라로 칠려 했으나 수 많은 군세를 손실 보면서 촉 나라 대 위기를 자초해 버렸고 덕분에 제갈량 북벌 과정에 있어서 많은 애를 먹었었죠.
결과론적인 이야기긴하죠..다만 장안이라는 성의 규모가 매우 크고, 먹었다고 하더라도 이후 보급 문제와 뒤에서 2차로 때릴 위의 군사들을 막아낼 방법이 없었다는게 문제. 제갈량이 선호한 천수를 포함한 3군을 먹고 기반을 다진 후 장안을 때리는게 가장 좋은 선택이였고, 마속이 실패만 안했어도 사실상 성공에 대한 확신이 있었던 전술이였죠. 등애의 전술이 통했던 이유도 물론 엄청난 도박수였습니다. 강유성에 남은 병력들이 극렬히 저항했다면 등애 병력들은 후퇴할 길도 없기 때문에 전원 몰살이였을 겁니다.. 그러나 운 좋게 먹었고, 촉군은 검각에 거의 몰빵 수비 중이였기 때문에 후속으로 등애를 칠 병력이 없었기에 성도까지 입성하게 된거죠.. 상황이 많이 틀립니다..사실 수비는 할 수 있었지만.. 그마저도 수비할 의지가 없었던거죠... 성도에 도달하자. 너도나도 도망갈 생각만 했기에....실제로 황제 유선은 싸워보지도 않고 항복해버렸습니다..
그 험하디 험한 진령산맥 넘어가서 잘도 싸우겠네. 왜 자오곡에 위의 척후병들이 포진해 있을거라는 생각은 안함? 진창과 형주쪽에 각각 포진해 있는 수만명의 위군은 허수아비임? 설사 점령한다고 해도 5천명의 병력이 온전할 거라고 보나? 지치고 지친 상태이고 그 넓은 장안성을 상처투성이의 5천도 안되는 병력이 수비를 한다고? 아무런 보급도 없이? 그리고 장안성의 주민들이 침략군인 촉군을 도울거라고 생각해? 마속이 가정성에 못 들어간채로 등산을 한 이유중 하나가 수십년을 위나라의 통치 아래에 전란없이 편안하게 살던 가정을 전쟁터로 만든 침략군인 촉군에 대해 협조하지 않고 저항했기 때문인데 그보다 훨씬 인구도 많은 대도시이고 마찬가지로 동탁, 이각+곽사 이후로 수십년간 전란에 휘말린 적이 없이 편안하게 살던 장안의 주민들이 자신의 주거지를 전쟁터로 만든 촉군을 그대로 놔둘것 같아? 코에이 삼국지 게임하니?
서한과 동한이 좀 다릅니다. 서한은 힌무제이후론 호족과 거대 상인에 대한 무자비한 견제와 타격이 있었습니다. 다만 후한이 왕망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호족들의 힘을 빌렸기 때문에(유수 본인도 호족이지요) 후한은 호적의 나리기 되어 버립니다. 즉 서한은 강한 황권을 가진 중앙집권적 국가이지만(유가와 법가가 균형을 이루는 성공한 진나라죠) 후한은 그야말로 유가와 청류호족이 발호하는 호족의 나라였습니다.
유비와 제갈량의 그릇을 잘못보셨습니다,,정몽주 같은 충신으로 한나라 제건? 아닙니다,,, 유비는 천하통일 황제의 꿈을 ~ 제갈량 역시 그런 유비를 따른 겁니다..유비의 단점은 다른 호족들 처럼 기반이 없었으나 장점은 그 기반을 뛰어넘는 명분을 가지고 있었죠.,,, 바로 황실의 핏줄,,이 잇점을 살리려면 한나라 제건과 맞물립니다,, 유비가 황제가 되어도 황족이니 한나라를 계승하는 것이 되니 다른 호족들 보다 민심을 다스리기가 훨씬 더 유리 했던겁니다,,
훌륭한 동영상을 잘봤습니다 어린시절에 삼국지에 심취했었는데 더 성장해서보니 그 무대가 한국인이었어야 했었구나하는 생각이듭니다 우리민족에게도 삼국지 정도의 역사소설이 있어야할 것입니다 동아시아역사는 중국의 역사는 아닙니다 이를 잘 인식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현대 중국과는 다릅니다 중국은 역사를 자기의 것으로 차용하고 쇠뇌시키는데 성공하려고 합니다
오장원에서 공명이 수명이 얼마되지 않음을 느끼고 하늘에 제사를 지냅니다 "촛불 12개를 켜고 한달인가 지나면 자기 수명이 늘어난다 그러니 한달동안 아무도 들이지 말라" 라고 합니다 근대 한달째 되기 전날인가 사마의군이 쳐들어오는대 위연이 공명막사에 들어왔다가 촛불을 끄게되죠 그래서 공명이 탄식했다는대 이건 정사에 없는 내용인가요?
중달은 공명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몇 번 있었던 것 같지만 그러지 않았고, 공명을 죽이고 난 후가 되면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울 것 같았고, 공명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절때 중달이 자신을 죽이지 않고 도망갈 길을 열어 줄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은 정황이 보이던데요... 공명을 죽이고 난 후라면, 조조나 그의 아들이 중달과 그를 따르는 장수들을 가만히 놔 둘 것 같지는 않은데요... 중달은 살기 위해서 공명을 이용했고, 공명 또한 그 상황을 이용하면서 서로 정이 든 사이 아닐까요?
연의 기준으로 촉의 입장에서 보면 통일을 못한것이 아쉬움이 많죠,, 다른 호족들과 비교해서 기반이 없던 유비가 촉을 차지하고부터는 황실종친이란 명분으로 통일에 가장 가가운 인물이였으나..실패의 요인으로는 첫번쩨가 방통의 죽음,, 바로 촉을 먹었으면 됫으나 명분을 중시 여긴 유비의 뜻을 알아차린 방통이 스스로 목슴을 던저 유비에게 명분을 만들어 주죠,,방통같이 뛰어난 인물이 그런 자잘한 실수로 큰일을 그르칠 인물이 아니라 유비에게 촉을 취할 가장큰 명분으로 자신의 목숨을 던저준 것이고 말을 바꾸어 탈때 유비역시 알고 있었을 껍니다,,,,,방통이 살아 있었다면 제갈량이 북벌할때 촉의 유선이 간신들에 놀아나지도 않았을 테고 보급에도 차질이 없었을 뿐더러 오나라 정벌하던 유비가 육손에게 패할일도 없었겠죠,, 두번쩨가 관우의 오만방자한 성격,, 관우가 제갈량의 말대로 오와 잘지넸다면 형주를 잃지 않았을 테고 형주는 오와 촉 위를 연결하는 삼국지의 가장 중요한 요충지인데 이것을 잃어 제갈량의 북벌계획은 보급이 어려운 함한 한중을 거치게 된것이 두번쩨 요인이죠,,,형주가 있었다면 제갈량은 협공으로 쉽게 위를 정벌 했을 껍니다,, 연의기준으로 삼국지 영웅중 관우가 가장 안하무인의 성격을 가진 졸장입니다,,
@@야마니뇨 정사로 가면 방통의 죽음이야 쟁하다 죽은 거니 그렇다 처도 관우가 등신짓 한 것은 사실입니다 관우의 죽음은 촉의 운명을 망조의 길로 갈라 놓은 중요한 사건이죠.. 삼국지 최고 요충지 형주를 잃음으로 촉의 삼국통일은 사실상 제갈량의 능력을 넘어선 것이 되어 버렸죠
@@charliecho5392 뭔 소리 하심? 내가 정사 삼국지나 중국 역사 이야기 한 거 아니며 연의 기준이라고 틀림없이 써 놓았죠 그런데 나관중의 삼국지를 이야기 하는데 왠 역사를 ? 삼국지 연의에 대해 이야기 한 거니 님은 연의를 토대로 님의 논리를 말씀 하셔야 맞아요
동탁의 근거지였죠 서량에서 나오는 준마들은 춥고 차가운 기후에서 오래도록 달릴수 있게 육성되어 말의 질이 중원의 여타 마종들과는 달랐죠 그 유명한 천리마도 서량마입니다. 그 예전 이 시기 기병 하나의 전투력과 비용을 생각해보면 동탁이 어떻게 정권을 잡았고 조조가 마등을 왜 무서워했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죠
복원요청주신 제갈량북벌시리즈를 다 복원하였습니다. 조만간 늦지 않게 또 새로운 시리즈 새로운 편도 올리겠습니다. 널리 양해 구합니다. 부족한데 봐주셔서 늘 너무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존경합니다♧
최후의 이야기라고 하시니 괜스레 마음이 찡해지네요..............환절기 늘 건강하시길.......
디테일한 설명 정말 다른 데서는 들을 수 없는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삼국지 특히 제갈량,관우편은 두고두고 보고 있습니다. 본질을 꿰뚫는 새로운 관점이 항상 좋네요ㅎㅎ 청화수님의 영상을 통해서 단순히 역사를 공부해서 사실을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더 많은것을 배울수 있는거 같습니다!!
깊은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앞으로도 더 좋은 영상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늘 감사하게 보고 있습니다!
너무 잘봤습니다 감사합니다!!! 강유편이나 초한지내용도 볼수있으면 너무 좋을것같습니다!!!
잘 들었습니다
만약에 법정과 방통이 살아 있고 관우와 장비가 본인 성격 컨트롤 잘해서 제갈량 북벌 때 까지 살아 있었다면 그래도 나름 어떻게 커버는 했을 꺼 같은데 법정&방통&관우&장비&황충 등의 유명 인재들이 운명을 달리하게 되고 그와 동시에 유비 개빡쳐 개돌 전략으로 오나라로 칠려 했으나 수 많은 군세를 손실 보면서 촉 나라 대 위기를 자초해 버렸고 덕분에 제갈량 북벌 과정에 있어서 많은 애를 먹었었죠.
촉은 인재들이 많았는데 그 많은 인재들이 너무 순신각에 다 날아가버려서 ㅠㅠㅠㅠ
아이구 고갱님 2트하시려구요? 2트는 초기화해서 시작합니다^^
220년 전후로 순삭
위연이 말한대로 진령산맥 타고 넘어가서 장안기습을 하였으면 더 승산이 있었을듯
실제로 등애가 산 타고 넘어와서 강유 뒤통수 노리고 성도까지 처들어 갔는데 제갈량의 그 완벽함이 미묘하게 완벽하지 못해 북벌실패로 이어진거라 봅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긴하죠..다만 장안이라는 성의 규모가 매우 크고, 먹었다고 하더라도 이후 보급 문제와 뒤에서 2차로 때릴 위의 군사들을 막아낼 방법이 없었다는게 문제. 제갈량이 선호한 천수를 포함한 3군을 먹고 기반을 다진 후 장안을 때리는게 가장 좋은 선택이였고, 마속이 실패만 안했어도 사실상 성공에 대한 확신이 있었던 전술이였죠. 등애의 전술이 통했던 이유도 물론 엄청난 도박수였습니다. 강유성에 남은 병력들이 극렬히 저항했다면 등애 병력들은 후퇴할 길도 없기 때문에 전원 몰살이였을 겁니다.. 그러나 운 좋게 먹었고, 촉군은 검각에 거의 몰빵 수비 중이였기 때문에 후속으로 등애를 칠 병력이 없었기에 성도까지 입성하게 된거죠.. 상황이 많이 틀립니다..사실 수비는 할 수 있었지만.. 그마저도 수비할 의지가 없었던거죠... 성도에 도달하자. 너도나도 도망갈 생각만 했기에....실제로 황제 유선은 싸워보지도 않고 항복해버렸습니다..
자오곡 계책은 이미 역사적으로도 평가가 끝난 계책입니다. 그 전에도 사용됐었고, 후에도 사용됐으니 말이죠.
물이 없어서 망한마속이 지금껏 까이는데 물뿐만 아니라 모든 보급이 없는 루트로??
그 험하디 험한 진령산맥 넘어가서 잘도 싸우겠네.
왜 자오곡에 위의 척후병들이 포진해 있을거라는 생각은 안함?
진창과 형주쪽에 각각 포진해 있는 수만명의 위군은 허수아비임?
설사 점령한다고 해도 5천명의 병력이 온전할 거라고 보나?
지치고 지친 상태이고 그 넓은 장안성을 상처투성이의 5천도 안되는 병력이 수비를 한다고? 아무런 보급도 없이?
그리고 장안성의 주민들이 침략군인 촉군을 도울거라고 생각해?
마속이 가정성에 못 들어간채로 등산을 한 이유중 하나가 수십년을 위나라의 통치 아래에 전란없이 편안하게 살던 가정을 전쟁터로 만든 침략군인 촉군에 대해 협조하지 않고 저항했기 때문인데 그보다 훨씬 인구도 많은 대도시이고 마찬가지로 동탁, 이각+곽사 이후로 수십년간 전란에 휘말린 적이 없이 편안하게 살던 장안의 주민들이 자신의 주거지를 전쟁터로 만든 촉군을 그대로 놔둘것 같아?
코에이 삼국지 게임하니?
매번 잘 보고 갑니다 ^^ 기분좋은 하루 즐겁게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
이걸보니까 제갈량이 얼마나 고심하고 또 고심해서 북벌을 시도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제갈량 인품이 정말 대단한 분이셨군 존경 스러운 사람은 확실하네요
저런 곽회를 탈탈 털어버린 위연의 전투력은....
위연.삼국지의 사기영웅의 마지막시즌캐릭이죠.솔직히 유관장 시즌1들땜에 너무 이름이묻혔죠..
93요
@@名前苗字 94로 알고 있는데요?
이게 좀 상성빨도 있는듯
국력으로 보면 족히 10배는 되는 위나라를 상대로 험준한 산맥을 넘어서 맞서 싸웠다는 자체가 공명이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증거죠. 국력이 엇비슷 했다면 결과가 어찌됐을지는 사실 뻔하다고 봅니다. 대단한 인물이네요.
형주 땅만 그리 잃지 않았다면 정말 위와 한판 해볼만 했을거 같습니다.
형주가 너무 아쉬울듯해요.
아마 공명도 북벌하면서
형주 관우를 엄청 원망했을듯
해요.
@@최승규-u8p 그래도 선주의 유언이 무거우니
가을바람 부는 오장원의 별이 될수밖에...ㅜ
흥미롭네요 혹시 이게 정사내용인가요?
곽회 참 대단한 장수인듯
생각만해도 가슴이 벅차는 추풍오장원 이렇게 재밌고 흥미롭게 해설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ㅠㅠ
학소를 걷어내면 장합이 단단히 막고,
장합을 걷어내면 사마의가 막아서고,
사마의를 제치는 신통한 전략을 쓰면
곽회가 알아채고,
한신도 이런 상황은 못 뚫는다
그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화공으로 잡았다 싶었더니 비가내리죠;;
@@Horang2. 그건 연의 얘기라서
그만큼 위에 인재가많았다는거죠 반면 촉은 인재가부족했구요 제갈량은 진짜 열악한상황에서 고군분투한거죠
인재가 없었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제갈량은 한신이자 소하, 장량이 되어야 했지만 위나라의 인재들은 그렇지 않았죠.
@@홍이-k5y 그인재말아먹은게 유비죠..관우의죽음으로일어난 오와의전투에서 무리한진격으로 마량등 인재풀 싸그리전사시킴..
서한과 동한이 좀 다릅니다. 서한은 힌무제이후론 호족과 거대 상인에 대한 무자비한 견제와 타격이 있었습니다. 다만 후한이 왕망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호족들의 힘을 빌렸기 때문에(유수 본인도 호족이지요) 후한은 호적의 나리기 되어 버립니다. 즉 서한은 강한 황권을 가진 중앙집권적 국가이지만(유가와 법가가 균형을 이루는 성공한 진나라죠) 후한은 그야말로 유가와 청류호족이 발호하는 호족의 나라였습니다.
형주와 이릉전투
촉은 천지인중 지와 인을 망실했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천도 결국 제갈량의 편이 아니었다고 하네요
사람이 도모하는 일이 명분과 정의로워도 천지가 조우치 않으면 분명한 한계가 드러난다고도 하네요
영웅이 시대를 만들지 않는다.
시대가 영웅을 만드는 것이다.
는 격언이 떠오르네요...
삼국지 중에서도청렴결백하고 신출귀몰이라고하나요 충신인 제갈공명을제일좋아합니다
저는 북벌 마지막때 농서지역시 촉의 영역이라서 오장원에서 붙은줄 알았는데 아직 위나라 영역이었나보네요 잘못알고있었는데 감사해요~
보기좋게 제갈량 엿 먹인 곽회의 혜안과 제갈량이 제일 싫어할 만한 움직임을 고수하여 제갈량을 말려죽인 사마의의 멘탈과 지략, 명제 조예의 혜안과 신비의 노련함 등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돋보이는 것이 오장원 대치죠. 영상 잘 봤습니다.
재밌게 잘봤습니다
짠하다 제갈량
항상 기재를 가진 누군가가 공명의 계책을 막아내니..참 공명 입장에서는 북벌은 이룰 수 없는 운명이라고 느꼈을듯.
개인적으로는 제갈량과 유비는 정몽주같은 인물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한나라를 재건해서 옛날의 문제점을 고치자는 느낌으로 말이죠.
유비와 제갈량의 그릇을 잘못보셨습니다,,정몽주 같은 충신으로 한나라 제건? 아닙니다,,, 유비는 천하통일 황제의 꿈을 ~ 제갈량 역시 그런 유비를 따른 겁니다..유비의 단점은 다른 호족들 처럼 기반이 없었으나 장점은 그 기반을 뛰어넘는 명분을 가지고 있었죠.,,, 바로 황실의 핏줄,,이 잇점을 살리려면 한나라 제건과 맞물립니다,, 유비가 황제가 되어도 황족이니 한나라를 계승하는 것이 되니 다른 호족들 보다 민심을 다스리기가 훨씬 더 유리 했던겁니다,,
승상
그립읍니다..
8왕의난 도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오장원에 지는 별. . ㅜ
좋은 내용 잘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게가 아니고 대개입니다. 오타를 치셨길래...
존경 받을만 하네요 제갈공명님. 비록 중국인 이었지만
훌륭한 동영상을 잘봤습니다
어린시절에 삼국지에 심취했었는데
더 성장해서보니
그 무대가 한국인이었어야 했었구나하는 생각이듭니다 우리민족에게도 삼국지 정도의 역사소설이 있어야할 것입니다
동아시아역사는 중국의 역사는 아닙니다
이를 잘 인식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현대 중국과는 다릅니다
중국은 역사를 자기의 것으로 차용하고 쇠뇌시키는데 성공하려고 합니다
오장원에서 공명이 수명이 얼마되지 않음을 느끼고 하늘에 제사를 지냅니다 "촛불 12개를 켜고 한달인가 지나면 자기 수명이 늘어난다 그러니 한달동안 아무도 들이지 말라" 라고 합니다 근대 한달째 되기 전날인가 사마의군이
쳐들어오는대 위연이 공명막사에 들어왔다가 촛불을 끄게되죠 그래서 공명이 탄식했다는대
이건 정사에 없는 내용인가요?
네 해당 내용은 픽션입니다. 역사적 사실은 아니라고 보시면 될거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제갈량은 어려서도 고생했고 , 늙어서도 고생했으며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조조사후 사마의 아니여도 유능한 장수들이 많아네
조조 유비 손권 사후의 인재차이가 위촉오의 명암을 가르게 되죠.
아 제갈량 존나 멋있어
이럴 줄 알고~ 내가 안한다 했잖아~~ 왜3번씩이나 찾아와서 그랭~
공명이 좀더 살았다면 역사는 바꼈을까
고대 전쟁 냉병기 싸움이라 사기 맹장 버프 있으면 기적의 무쌍 난무 기적승리 있는게 중국 역사 많아는데 사마의가 우주 디펜드 모드 들어가니까 국력이 몇배대 사마의 없더라도 일반 장수들이 공격모드 들어가도 할까 말까데 제갈량도 대단하네
유마 하니 아사미 유마가 생각하네요
4차북벌때 퇴각이유는 이엄의 가짜편지
중달은 공명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몇 번 있었던 것 같지만 그러지 않았고, 공명을 죽이고 난 후가 되면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울 것 같았고, 공명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절때 중달이 자신을 죽이지 않고 도망갈 길을 열어 줄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은 정황이 보이던데요...
공명을 죽이고 난 후라면, 조조나 그의 아들이 중달과 그를 따르는 장수들을 가만히 놔 둘 것 같지는 않은데요...
중달은 살기 위해서 공명을 이용했고, 공명 또한 그 상황을 이용하면서 서로 정이 든 사이 아닐까요?
영화보신 것 같은데 사마의는 전투로 제갈량에게 이긴적이 없습니다.
연의 기준으로 촉의 입장에서 보면 통일을 못한것이 아쉬움이 많죠,, 다른 호족들과 비교해서 기반이 없던 유비가 촉을 차지하고부터는 황실종친이란 명분으로 통일에 가장 가가운 인물이였으나..실패의 요인으로는 첫번쩨가 방통의 죽음,, 바로 촉을 먹었으면 됫으나 명분을 중시 여긴 유비의 뜻을 알아차린 방통이 스스로 목슴을 던저 유비에게 명분을 만들어 주죠,,방통같이 뛰어난 인물이 그런 자잘한 실수로 큰일을 그르칠 인물이 아니라 유비에게 촉을 취할 가장큰 명분으로 자신의 목숨을 던저준 것이고 말을 바꾸어 탈때 유비역시 알고 있었을 껍니다,,,,,방통이 살아 있었다면 제갈량이 북벌할때 촉의 유선이 간신들에 놀아나지도 않았을 테고 보급에도 차질이 없었을 뿐더러 오나라 정벌하던 유비가 육손에게 패할일도 없었겠죠,, 두번쩨가 관우의 오만방자한 성격,, 관우가 제갈량의 말대로 오와 잘지넸다면 형주를 잃지 않았을 테고 형주는 오와 촉 위를 연결하는 삼국지의 가장 중요한 요충지인데 이것을 잃어 제갈량의 북벌계획은 보급이 어려운 함한 한중을 거치게 된것이 두번쩨 요인이죠,,,형주가 있었다면 제갈량은 협공으로 쉽게 위를 정벌 했을 껍니다,, 연의기준으로 삼국지 영웅중 관우가 가장 안하무인의 성격을 가진 졸장입니다,,
연의는 2차 창작물인 소설이라 역사적인 사실의미가 없어요
@@야마니뇨 정사로 가면 방통의 죽음이야 쟁하다 죽은 거니 그렇다 처도 관우가 등신짓 한 것은 사실입니다
관우의 죽음은 촉의 운명을 망조의 길로 갈라 놓은 중요한 사건이죠..
삼국지 최고 요충지 형주를 잃음으로 촉의 삼국통일은 사실상 제갈량의 능력을 넘어선 것이 되어 버렸죠
@@진격의다마네기센세 그건 기본적으로 다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허나, 글쓴이분께서는 연의를 기준으로 역사적 근거를 말씀하고 계셔서 연의는 창작물인 허구일 뿐이므로 역사적 사실이 전혀 없다라고 말씀드리고 있는겁니다.
@@charliecho5392 뭔 소리 하심?
내가 정사 삼국지나 중국 역사 이야기 한 거 아니며 연의 기준이라고 틀림없이 써 놓았죠
그런데 나관중의 삼국지를 이야기 하는데 왠 역사를 ? 삼국지 연의에 대해 이야기 한 거니 님은 연의를 토대로 님의 논리를 말씀 하셔야 맞아요
곽회가 질못했네 제갈량 안녕
밥그릇 크게..급성 당뇨로 갔구만
화수야 고생했다 돈 좀 끌어 모아라 이제
아 서북이 기병이 강하구나..
동탁의 근거지였죠 서량에서 나오는 준마들은 춥고 차가운 기후에서 오래도록 달릴수 있게 육성되어 말의 질이 중원의 여타 마종들과는 달랐죠
그 유명한 천리마도 서량마입니다.
그 예전 이 시기 기병 하나의 전투력과 비용을 생각해보면 동탁이 어떻게 정권을 잡았고 조조가 마등을 왜 무서워했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죠
적토마도 그쪽말들인가요@@꼬꼬마명태
근데 이렇게 공명의 전략이 예상되는거보면 공명보다 훌륭한 군사는 많았던거 같습니다
죄다~~~ 키보드 조조들이 모였군 ㄷㄷ
저 사신놈이 만악의 근원이다!
참....야속할정도로 잘막네
간신히 화공쓰니 비오고 ㅜㅜ
암 걸릴만하네
그건연의
제갈량이 왜 뛰어나냐고 묻는 친구에게 이렇게 답해줘라.
'넌 롤에서 전라인 1~2차 다 터지고
팀은 미드 한명 빼고 다 병신인 상태에서
서폿잡고 씹캐리 하면서 판 역전할수 있어?
그걸 역전직전까지 갔던게 제갈량이다'
뚜릅 뚜릅 급식이여서 행복함 ㅎㅎ
이타치 ㅋㅋㅋ
유비가 조금 일찍죽기만했어도 이릉대전은 안일어났겠지
제갈량 스고이
922
매일 ㅂrㅂrㅌIㅂI 보다가 존슨 딱딱해져서 터질거같네 ㅋㅋㅋㅋㅋ
제갈량 별것도 아니지.개우낀다.
위연의인성과 세력만 올바랐어도 촉이 더오래버티거나 통일했을거다.사마의생전이면어렵겠지만.
역사는승자의기록이라하니 위연의세가 불안했을거고..
삼국지의수많은 사기캐의마지막시즌영웅 중하나가 위연이었으니까.
곽희도 그중하나지만 유관장조조및 시즌1의 명성에묻힌게아쉽네.
산악왕등애도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