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종 드라마를 봤지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삼촌과 형님의 딸 관계. 현종어머니가 어릴때 아버지 즉 외할아버지가 일찍 소천하여 삼촌인 현종아버지가 보살펴 주었고 이때 어머니는 현종아버지를 사랑했다고 해요. 왕족친근 결혼이 성할때 왕과 결혼했지만 왕이 바로 죽자 키워준 삼촌집에 돌아와 동거하면서 왕후가 외삼촌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혼자살던 삼촌과 정사를 치룬결과 현종을 낳다가 죽자 사생아로 자랐지요. 현종아버지도 현종이 어릴때 소천 했지요 절에서 자라다가 사촌형 목종이 강조의 반란으로 죽고 왕씨가 메아른 때라 현종이 되었지요. 고려성군으로 추대받기도 했지만 왕실을 강건하게 했답니다
교수님 질문을 여기다 남겨도 되는지 모르겠네요 현종 즉위까지 이루어지던 왕실족내혼의 전통이 족외혼으로 바뀌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방 정비 과정에서 잡음과 반발이 없을 수 없다고는 하나 사서에는 드라마처럼 극단적 갈등양상으로 기록되지는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이 두 가지가 연결될 수 있을까요? 태조 왕건이 그랬던 것처럼, 김은부와 같은 절도사로 지방을 컨트롤 하는 관리나 지방의 유력 호족가문과의 혼맥을 통해 지방을 중앙의 통제하에 넣기 위한 과정을 부드럽게 가져갔을 가능성은 없는지 궁금합니다. 김은부가 청렴하고 부지런했기 때문에 대단한 가문의 사람은 아니라고 해석할 수도 있으나, 김은부의 장인의 집안을 보면 원래 유력한 세력이었던 것 같은데, 김은부의 집안이 한미했다면 이루어지지 않았을 혼맥 같습니다. 그로 추론해보면 김은부의 절도사라는 직책과 별도로 김은부의 가문 역시도 유력한 호족가문이었다고 추론할 수 있을 것 같고, 현종과 혼인한 일부 여인들의 아버지나 그 가문들에 대해 자세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것을 보면 중앙의 관리나 수도 인근의 귀족이 아니라 지방의 호족가문이었을 가능성도 있을지 궁금합니다
아버지가 왕족인 경우 어머니 혹은 조모의 성을 따름. 근친혼을 숨기려고 그랬다 라는 설도 있지만 어차피 누구 딸인지 다 아는 왕후가 근친혼 숨기려고 성을 모계 따라 가는 것은 근거가 없고 애초에 왕건때 부터 부인들은 호족 세력의 딸들.. 일종의 정략적 결혼 이었죠..호족 세력의 힘을 얻기 위해 결혼. 왕족을 유지 하기 위해 근친혼을 한다 해도 호족과의 관계를 계속 유지할 수단으로 왕족의 딸의 경우 외가의 여결 고리를 만들려고 외가 성을 유지 한 것이 아닌가 추정 하고 있죠. 실제로 원정왕후만 봐도 궁에서만 살아서 사실상 외가 호족들과는 전혀 관계가 없을진대 김씨라 하니 문화왕후의 본가인 김씨 선산 호족의 끈을 이은 것. 그래서 드라마가 내용이 이상한 것이 성이 같다고 사실 왕후가 호족 세력을 비호 했다고 보기는 힘들죠. 왕실에서 관계를 유지 하게 하는 거지 정작 본인은 왕실에서 자라 왕실에 시잡가 호족과는 전혀 상관이 없어 왕실을 강화 하려는 현종에 반대할 근거가 전혀 없다는....오히려 외부에서 시집온 문화왕후 같은 경우라면 호족 세력을 약화 시키려는 현종의 군현제에 문제 삼겠지만 원정왕후는 그랬다는 기록도 없고 그럴 이유도 상식적으론 없어요.
📌이익주는 역사 고려거란전쟁 라이브방송 공지사항📌
일시 : 3월 4일 (월) 밤 10시🌙
이익주 교수님과 함께하는 라이브 방송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평소 궁금하셨던 것들을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많은 참여 부탁드리겠습니다!! 😊
권력을 가진 자가 겸손을 겸비하니 모든 일이 대대손손 순조롭게 잘 풀린 것 같습니다
교수님강의 들으면서
오늘날 김은부 공주절도사 같은분 간절히 생각 나네요
권력과 겸손 갗추면
얼마나 바른일들 많이할까 깊이 생각 하게 되고요 큰 교훈 얻습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ㅁ
역사적 사실 알고싶을땐 여기로~~!!! 오늘은 김은부 실제 최후 알고싶어졌어요~
어렸을때 국사수업이 이렇게 재미있었으면... ^^
참으로 오랫만에 들어 보는 말입니다 "다 좋은 것도 다 나쁜 것도 없다 " 학창시절 아버지께서 해주시던 말씀인데 벌써 반세기가 훌쩍 지났네요
깊이 있는 강의를 차분하게 알아듣기 쉽게해주시네요. 고맙습니다
교수님 너무 딱 제 스딸~이에요~^^ 너무 재밌고 유익해요~^^ 교수님은 천상 이야기꾼이세요~^^ 최고예요~
잘보고 있습니다 진짜 전문가 같습니다
설명을 들으니까
이자연, 이자겸과 김은부의 관계를 알게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외척에 있어 출발점인 것 같기도 하고 고려 왕실의 근친혼 전통을 바꾸는데 기여를 한 인물로서도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네요.
드라마를 훨씬 유익하게 보면서 역사공부를 하게 되어 너무 좋네요
몰랐던 역사 공부 제대로 알고 갑니다
요즘 고.거 전쟁 말도많고 탈도 많은데 드라마. 보는것 보다 역사 유튜브. 해설이 훨 좋으네요.
자주 듣고. 싶어요
많이 우려주세요!
부탁입니다!
너무 감사해요 궁금한 고려역사공부 하게 해주셔서
역사를 좋아 했네요
역시 박사 네요
감사합니다
교수님 감사합니다
쵝오임 역사영상으론 드라마랑 역사 설명이 겹치니 더 쏙쏙 들어오는거 같고 그러네요
감사합니다. 요즘 드라마 내용 때문에 더더욱 무삭제판을 기다렸습니다.
영상 감사합니다 교수님
맞는말이다 현종의 장인이되고 자신의딸이낳은 아들들이 현종이후 황위를 이으니 진정 승리자다
너 재밌어요❤ 재업 안했으면 못 봤을뻔
풀영상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양면성을 갖는다😊
감사합니다 ^^
😢
옛날 우리나라 IMF 때 이삿짐 센타가 갑자기 잘됐고, 간판업자 들이 잘됐었어요.
저희집안 안산김씨의 시조 김은부 할아버지 반갑습니다
반가요,종씨 저는사직공파33대입니다
저도 안산김가 32대 판서공파입니다
전 의주파에요!
@@Jio._.o 저도 의주파
@@김도협-y5u 오.. 먼친척이겠네요 할아버지가 신의주 사람이시라던뎅
경기가 불황일 때는 간판 하시는 분들이 돈을 번다고 하드군요.
현종 드라마를 봤지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삼촌과 형님의 딸 관계.
현종어머니가 어릴때 아버지 즉 외할아버지가 일찍 소천하여 삼촌인 현종아버지가 보살펴 주었고 이때 어머니는 현종아버지를 사랑했다고 해요.
왕족친근 결혼이 성할때 왕과 결혼했지만 왕이 바로 죽자 키워준 삼촌집에 돌아와 동거하면서 왕후가 외삼촌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혼자살던 삼촌과 정사를 치룬결과 현종을 낳다가 죽자 사생아로 자랐지요.
현종아버지도 현종이 어릴때 소천 했지요
절에서 자라다가 사촌형 목종이 강조의 반란으로 죽고 왕씨가 메아른 때라 현종이 되었지요.
고려성군으로 추대받기도 했지만 왕실을 강건하게 했답니다
그러면 공양왕까지 현종이후의 왕은 모두 안산이씨 김은 1:13:06 부의 자손들이네요?
😊😊😊
교수님 진도가 너무 빨라요!!😂
하하하 제가 "공주"... 유머를 좋아합니다~
피디님 목소리가 어딘가 낯이 익다 ㅋ 사건의뢰 박피디님 아니신지? ㅋ
맞아요
역사의 쥬인공
교수님 질문을 여기다 남겨도 되는지 모르겠네요 현종 즉위까지 이루어지던 왕실족내혼의 전통이 족외혼으로 바뀌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방 정비 과정에서 잡음과 반발이 없을 수 없다고는 하나 사서에는 드라마처럼 극단적 갈등양상으로 기록되지는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이 두 가지가 연결될 수 있을까요? 태조 왕건이 그랬던 것처럼, 김은부와 같은 절도사로 지방을 컨트롤 하는 관리나 지방의 유력 호족가문과의 혼맥을 통해 지방을 중앙의 통제하에 넣기 위한 과정을 부드럽게 가져갔을 가능성은 없는지 궁금합니다. 김은부가 청렴하고 부지런했기 때문에 대단한 가문의 사람은 아니라고 해석할 수도 있으나, 김은부의 장인의 집안을 보면 원래 유력한 세력이었던 것 같은데, 김은부의 집안이 한미했다면 이루어지지 않았을 혼맥 같습니다. 그로 추론해보면 김은부의 절도사라는 직책과 별도로 김은부의 가문 역시도 유력한 호족가문이었다고 추론할 수 있을 것 같고, 현종과 혼인한 일부 여인들의 아버지나 그 가문들에 대해 자세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것을 보면 중앙의 관리나 수도 인근의 귀족이 아니라 지방의 호족가문이었을 가능성도 있을지 궁금합니다
1등!!!! 1등이요 교수님!
견관승 ㅡ 왕실의 지방의 특산물에 해당하는 옷감이나 식량을 조달자?
어주사 ㅡ 왕의 먹을거리를 책임지는 관리?
고려는 약하고 나쁘고
잘못되었다 말하고
조선은 강하고 바르고
크다고 한다면 편향
이라고 해석됩니다
고려때가 더 강하
고 조선은 넘 약했 던 것이아닌감요.
제가 이해 못하는 점은 왜 육로로 피난을 갔느냐입니다. 해로가 더 수월하고 위험도 덜하지 않았을까요!
태조 왕건도 나주를 확보할 때 수군을 동원하지 않았나요! 게다가 왕씨 문중이 원래 무역으로 부를 쌓은 해상세력으로 알고 있어요!
더 위험합니다. 옛날 배 지금 배처럼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나주까지 가는데 좌초 겁나게 되는 구간 몇 군데 있고 폭풍 만나 운 좋으면 강제 외국 여행 운 나쁘면 용궁 여행입니다.
박찬호 엘리자베스여왕 드립ㅋㅋㅋㅋㅋ
음과 양, 빨리 아셨네요😂
김은부는 원래 본관이 경주 김씨 인데~~ 현종때 큰 공 세워~ 현종이 김은부에게 안산김씨 새로운 본관 만들어 준것이 아닌가요??
근데 김은부는 반짝였을뿐이고~ 진짜 수혜는 김은부와 사돈이었던 경원 이씨 가문이 개꿀빨았죠
트랜드 따라가야지 교수님이 하자고 했겠어요? 박pd님이 요즘 고려거란드라마 주재로 가보시는건어떨까요? 하고 기획안을 드렸겠지요.
듣기싫으면 안보면되는거지 인간들이 적당히 해야지
어주사는어죽을조리한것일것입니다
무삭제판이라고 하니 야동을 보는 듯....ㅋㅋ
유익보다는 옳음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 없으면 공동체가 다 흔들리죠 그 장본인들이 본디오빌라도 어중이 떠중이 문뚱이
유트버방송에서*김은부의모든것*하고서는주제인김은부의얘기보다다른얘기만하니지루해서시간낭비만하는것하게되고역사강의를듣는수강생아니라는것을아시키바랍니다
선생님이
고려 조선시대를 가 보셨나요
집안에 서 의 이야기를사닐로 보아야지
요
꾸며진애기라면안되지요
당신이이야기를만들고있네요
김은부 무삭제판이라니 김은부가 야동 찍은 줄.....야동세계에서나 쓰는 단어를 역사에...ㅋㅋ
질문: 현종의 두 황후의 어머니가 김씨, 최씨였다면 이미 성종이 왕씨가 아닌 다른 성씨와 결혼했다는 말인데. 그럼 이것도 이미 근친혼이 아니고.
천추태후가 왕건의 손녀지만 성은 어머니의 성을 써서 황보씨입니다
이런 케이스 아닐까요?
아버지가 왕족인 경우 어머니 혹은 조모의 성을 따름. 근친혼을 숨기려고 그랬다 라는 설도 있지만 어차피 누구 딸인지 다 아는 왕후가 근친혼 숨기려고 성을 모계 따라 가는 것은 근거가 없고 애초에 왕건때 부터 부인들은 호족 세력의 딸들.. 일종의 정략적 결혼 이었죠..호족 세력의 힘을 얻기 위해 결혼. 왕족을 유지 하기 위해 근친혼을 한다 해도 호족과의 관계를 계속 유지할 수단으로 왕족의 딸의 경우 외가의 여결 고리를 만들려고 외가 성을 유지 한 것이 아닌가 추정 하고 있죠. 실제로 원정왕후만 봐도 궁에서만 살아서 사실상 외가 호족들과는 전혀 관계가 없을진대 김씨라 하니 문화왕후의 본가인 김씨 선산 호족의 끈을 이은 것. 그래서 드라마가 내용이 이상한 것이 성이 같다고 사실 왕후가 호족 세력을 비호 했다고 보기는 힘들죠. 왕실에서 관계를 유지 하게 하는 거지 정작 본인은 왕실에서 자라 왕실에 시잡가 호족과는 전혀 상관이 없어 왕실을 강화 하려는 현종에 반대할 근거가 전혀 없다는....오히려 외부에서 시집온 문화왕후 같은 경우라면 호족 세력을 약화 시키려는 현종의 군현제에 문제 삼겠지만 원정왕후는 그랬다는 기록도 없고 그럴 이유도 상식적으론 없어요.
현종의 두 왕후는 성종의 후궁 소생입니다. 첫 왕후는 광종의 딸로 경종의 누이였고요. 원정왕후의 모후인 김씨는 연흥궁주로 불리다가 사후에 문화왕후로 추존됩니다
감사해요.
좀더자극적으로
님이야기자제요ㅋㅋ
하승리
"KBS 드라마 고려거란전쟁" 시청자소감에..
귀하가 평생토록 쌓아올린 역사가 날조되고 조작된 식민지 역사가 아님을..
증명하는 공개요청을 하였습니다!
공개게시판에 나오셔서.. 질문에 답변하여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김은부 자기 권세을 위해 딸셋을 희생양으로 만든것은 아비라고 할수없다
덕종이 현종 자식 김은부때문에 현종이 살수 있었음
어향 나주.. 그래서 태조의 훈요10조가 후대에 날조된 증거입니다. 왕위를 물려주는 태자의 정치적 고향이 나주인데, 호남을 배척한다? 그리고도 급할때 나주로 피난간다? 배척한 지역이라면, 그냥 현종을 잡아서 거란에 바쳤겠죠.
배척하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오죽 했으면... ㅊㅊ
개나소나 모두 왕이 됄수있다..
기회주의자의 표본으로 보임
진짜 고려궐안전쟁 지겹다. 거란이여 오라
맞습니다~
고려 내부갈등 너무 깊게 들여볼필요없습니다~
몰입도만 떨어져요~
김은부가 조국으로 보이네
그게 어린 나이에 느낀거냐!
김은부 드라마만 보고 느끼는건 얌생이 같네...전장 앞선에서 목숨바친 사람들도 있는데 저 아랫지방 안전한 곳에서 임금눈에 들어서 딸 바치고 출세한 얍삽이...김은부 성품이 어찌 되었든 기회 잘 타서 출세한 인물로 생각됨
원래 기회는 왔을때 잡는법이죠 못잡는게 바보
왕실 근친혼이면 자식도 없었음
김은부 손자가 다음 왕이 되었음 제1왕후 2왕후 모두 아이가 없거나 공주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