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태까지 날 보호해주고 지켜준 부정적인 마음아 인제라도 알게 해주어서 넘 고마워. 여태까지 싫어하고 미워해서 넘 미안해, 정말 미안해, 와주어서 정말 환영해, 인제라도 와주어서 고마워. 그냥 그 반대마음이 내가원하는것이니 내가 원하는것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려고 온것뿐인데. 오늘도 난 모든사물과 사람들의 좋은 면만을 본다-설마 그것이 부정적이것이여도 그것은 우리를 보호하고 지켜주려고 그러는것이니 다 허용하고 환영하고 흘려보내고 놓아버린다. 모든것에 무한한 사랑과 감사를 보냅니다.
11:24 긍정성 부정성 모두 전체성, 동시성 안에서 서로가 서로의 존재근거가 되어주지 않으면 나타날 수 없다. 모두 각자의 역할이 있다. 나의 부정성의 역할을 살펴봐라. 온전히 허용해주어라. 부정적인 대상을 바꿔버려야만 하는 대상으로 규정하는 순간 부정성이 오히려 탄력을 받는다.
악역이 못될수록 주인공이 더 돋보이듯이.. 어느순간 살만하면 다시 거지같아지는 반복되는 메비우스의띠같은 삶을 살아간다고 느낀게 제가 부정성을 강화시키고있엇던거네요 살만해질수록 전 불안했거든요 다시 거지같아질까봐.. 그리고 꼭 다시 거지같은 삶이 다시 찾아오고 ..아.. 그렇구나.. 거지같은 삶에서 살만한삶으로 변해간건 거지같은 삶에서 제가 그 삶을 허용했기때문이군요 거기서 더이상 더 거지같아질수없엇고 불안할일이 없으니 허용하고 열씸히 살앗고 그로인해 내 삶이 나아지면 나아질수록 전 불안해졋으니 그 불안이 부정성을 부정시켜서 다시 진흙탕에 쳐박앗군요 그래서 내가 계속 반복됏구나 다시 진흙탕에 쳐박혓는대 이 기회에 반복되는 뫼비우스의띠를 끊어야겠네요
욕하는 타인을 계속 허용하면 계속 욕하지않을까요??? 이런 경험도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보셔요?? 물론 부정을 부정하면 부정성이 더 강화된다는 설명도 이해가 되긴하는데요. 현실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을 계속 허용해준다면 동물학대자들 강간범들 온갖 짐승같은 인간들을 계속 허용한다??? 쉽사리 이해가 안되는데 여기에 대해 알려주실수있을까요?? 이 질문에 답해주시면 정말 도움이 되겠습니다. 정말 이해하고 싶습니다 선생님의 설명을...
“보복하지 말라.” 고 가르치셨는데 그것은 보복이 나의 자유로 상대를 훼손하는 행위가 되기에 금지시키신것 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을 살리시는 분이신데 우리가 당신 닮기를 바라시며 상대를 훼손하지 않게 가르치시려는 의도 입니다. 다만, 당신이 영혼을 제일 잘 다루시기에 “나에게 맡겨라.” 하신 것이구요.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잘못된 부분을 그 순간만 보고 판단하지 원래 시작된 마음의 뒤틀린 부분에 대해서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전부 아시죠. 그러기에 당신이 사랑과 정의로 책벌하시겠다고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입니다. 많은 이들의 미움은 많은 이들의 마음에 악, 어둠이 있기에 좋은 것에 대한 시기 질투가 있습니다. 오로지 예수님과 성모님만 어둠이 없으시기에 핍박을 받으신거죠. 사탄의 탄생도 ‘루시퍼’ 라는 천사인데 피조물인 입장에서 (그도 지능이 좋죠.) 창조주의 위대함을 알아보고 ‘저 분이 나보다 훨씬 아름다우시고 권능자이다.’라고 인정하지 않아 질서를 교란시켰습니다. 그 행위가 하느님께 미움 핍박 훼손을 가져왔습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모든 행위에 불완전이 없으시기에 천사나 인간에게 준 자유를 거두어 들이시지 않으시고 지혜로 영원히 다스리시는 선택을 하셨고 앞으로도 계속 그러실 것입니다.
여태까지 날 보호해주고 지켜준 부정적인 마음아 인제라도 알게 해주어서 넘 고마워. 여태까지 싫어하고 미워해서 넘 미안해, 정말 미안해, 와주어서 정말 환영해, 인제라도 와주어서 고마워. 그냥 그 반대마음이 내가원하는것이니 내가 원하는것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려고 온것뿐인데.
오늘도 난 모든사물과 사람들의 좋은 면만을 본다-설마 그것이 부정적이것이여도 그것은 우리를 보호하고 지켜주려고 그러는것이니 다 허용하고 환영하고 흘려보내고 놓아버린다. 모든것에 무한한 사랑과 감사를 보냅니다.
외면받고 배척받음으로서 더욱 존재할 수 잇던 부정이들을 인정,받아들임을 통해 그 부정성이 변해버리기 시작한다. 인정이 중요한 열쇠군요.
부정성으로 에너지가 전환되게 되는 것. 그런 관념이 그대로 현실로 나타나는 거엿고.
지금 나의 현실을출력해내는 나의관념들 = 카르마 (선생님의표현,해석 멋져요!)
낡은관념들= 부정성,부정의감정,생각 에너지들
나의 모든부정성 ♡ 사랑 허용 끌어안기
요즘 마음공부 이후 좀 힘들었는데, 제가 바른 길로 가고 있었던 듯하네요. 너무 감사드립니다ㅠ
11:24
긍정성 부정성 모두 전체성, 동시성 안에서 서로가 서로의 존재근거가 되어주지 않으면 나타날 수 없다.
모두 각자의 역할이 있다.
나의 부정성의 역할을 살펴봐라.
온전히 허용해주어라.
부정적인 대상을 바꿔버려야만 하는 대상으로 규정하는 순간 부정성이 오히려 탄력을 받는다.
오늘 하루 일용할 양식이 있고
비바람을 피할 잠자리가 있고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다면
당신은 엄청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할 일입니다.
악역이 못될수록 주인공이 더 돋보이듯이.. 어느순간 살만하면 다시 거지같아지는 반복되는 메비우스의띠같은 삶을 살아간다고 느낀게 제가 부정성을 강화시키고있엇던거네요 살만해질수록 전 불안했거든요 다시 거지같아질까봐.. 그리고 꼭 다시 거지같은 삶이 다시 찾아오고 ..아.. 그렇구나.. 거지같은 삶에서 살만한삶으로 변해간건 거지같은 삶에서 제가 그 삶을 허용했기때문이군요 거기서 더이상 더 거지같아질수없엇고 불안할일이 없으니 허용하고 열씸히 살앗고 그로인해 내 삶이 나아지면 나아질수록 전 불안해졋으니 그 불안이 부정성을 부정시켜서 다시 진흙탕에 쳐박앗군요 그래서 내가 계속 반복됏구나 다시 진흙탕에 쳐박혓는대 이 기회에 반복되는 뫼비우스의띠를 끊어야겠네요
자신한테 맞는 방법을 수정해가고 찾는다. 라는 말이 참 와닿네요. 그래서 시간이 걸린거였어요😯
큰 깨달음을 얻고 갑니다. 좋은 말씀 너무 감사해요
낡은 관념들은 어떤 취급을 받을까요?란 질문에 바로 떠오르는 생각이
고마운 가르침이란 생각이네요
마음공부하면서 관념을 알게되고 이제까지 낡은 관념을 믿었음도 알게되고
이제 새로운 관념으로 그것을 품을수 있음을 알게 해준 그냥 고마운존재..
다시보니 또 다른 앎이 펼쳐집니다.
감사합니당
흥미로워요~ 인정해주면 반대모습으로 변화한다니 좋네요^^
"저항하는 것은 그것을 더욱 단단하게 고정시킨다" 라는 말이 실감 나는군요
부정적인 것을 부정해선 변하지 않는다
부정이들을 다방면으로 허용 해 주려 하는데 순간순간 배척 하고 있는 나를 발견 합니다
그림도 참 잘그리셔요.
가르침 감사합니다 ^^
안녕하세요. 마음공부를 듣기만 해서인지 오랫동안 바뀌지않는 자신이 정말 힘이 듭니다. 힘들거나 피곤하고 싫은일을 해야할때 짜증을 아이들에게 잘 냅니다. 머리로는 너무나 잘알고 지나면 후회하면서도 바뀌지가 않아 너무 마음이 아파요. 어떻게 멈출수 있을까요?
무시당하면 악발치는 것처럼.. 부정성을 배척하면 더 힘이 세질 거 같아요
감사합니다
24.05.08 북마크
실시간 때도 좋았는데
이렇게 주제별로 끊어주시니,
또다른 깊이와 감동에 푹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지금 듣다가
연결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십자가의 신비..구절이
떠올라 뭉클해지네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욕하는 타인을 계속 허용하면 계속 욕하지않을까요??? 이런 경험도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보셔요?? 물론 부정을 부정하면 부정성이 더 강화된다는 설명도 이해가 되긴하는데요. 현실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을 계속 허용해준다면 동물학대자들 강간범들 온갖 짐승같은 인간들을 계속 허용한다??? 쉽사리 이해가 안되는데 여기에 대해 알려주실수있을까요?? 이 질문에 답해주시면 정말 도움이 되겠습니다. 정말 이해하고 싶습니다 선생님의 설명을...
마른선생님같네요 ..해골그림 인상이깊네요 ^^ 농담입니다 ㅠㅠ
ㅎㅎㅎ
그런데 예수님은 왜 세상을 바꾸지 않고, 십자가에 매달리는 현실을 만드셨을까요...왜 많은이들의 미움을 받으셨을까요..성경내용을 볼수록 뭔가 이상해요....예수님은 어쩌면 전형적인 에고의 모습같거든요.
예수님을 우리가 너무 크게 생각하고 있을뿐 아닐까요? 한 명의 깨달은 사람인데.
사랑과 희생의 상징적존재로 생각합니다 엄청 의미있는 존재가아닐까요 기독교는 아닙니다만..
세상을 바꾸는 것에 대한 기준을 어떻게 내리느냐에 따라 예수는 진한 에고이스트 혹은 자신의 욕망을 극복하고 관념적인 사랑을 몸소 실천한 놀라운 인격체가 되기도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보복하지 말라.” 고 가르치셨는데 그것은 보복이 나의 자유로 상대를 훼손하는 행위가 되기에 금지시키신것 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을 살리시는 분이신데 우리가 당신 닮기를 바라시며 상대를 훼손하지 않게 가르치시려는 의도 입니다. 다만, 당신이 영혼을 제일 잘 다루시기에 “나에게 맡겨라.” 하신 것이구요.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잘못된 부분을 그 순간만 보고 판단하지 원래 시작된 마음의 뒤틀린 부분에 대해서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전부 아시죠. 그러기에 당신이 사랑과 정의로 책벌하시겠다고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입니다.
많은 이들의 미움은 많은 이들의 마음에 악, 어둠이 있기에 좋은 것에 대한 시기 질투가 있습니다. 오로지 예수님과 성모님만 어둠이 없으시기에 핍박을 받으신거죠.
사탄의 탄생도 ‘루시퍼’ 라는 천사인데 피조물인 입장에서 (그도 지능이 좋죠.) 창조주의 위대함을 알아보고 ‘저 분이 나보다 훨씬 아름다우시고 권능자이다.’라고 인정하지 않아 질서를 교란시켰습니다. 그 행위가 하느님께 미움 핍박 훼손을 가져왔습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모든 행위에 불완전이 없으시기에 천사나 인간에게 준 자유를 거두어 들이시지 않으시고 지혜로 영원히 다스리시는 선택을 하셨고 앞으로도 계속 그러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