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보았을 때, 현대인들은 자존감이 낮아서 문제가 아니라 자기를 사랑하기 때문에 문제가 됩니다. 오히려 자신의 현주소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겸손할 수도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는 거라고 믿습니다. 오히려 거룩한 자기절망에 빠져야, 자기숭배와 지극한 자기애에서, 겸손하지 못하고 지기자신에게 집착하는 것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인정과 만족만을 바라보며 나아갈 수 있습니다. 자기를 성경적으로 존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는 현대인만큼 잘아는 시대가 또 있을까요? 자존감의 문제라 아니라, 자기애의 문제입니다. 본인이 불결하여 하나님께 근본적으로 사랑받을만한 명분이 없다는 것을 계속해서 알면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알아야 자신의 가치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거룩하신지, 그리고 나는 얼마나 거룩하지 못한지를 보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완전함을 발견하는 것, 제가 보기에는 이 영상이 오히려 기본적인 교리가 베이스가 되지 않으면 잘못되게 오해할 여지가 있는 가르침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기 때문에 문제지 자신을 사랑하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교회에서 잘못된 믿음이 나오는 이유는 성경적인 교리에 대한 무지와 잘못된 적용때문이라고 믿습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 없다는 말을 하고 있는것이 아닙니다. 근본적으로 ‘자존감’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 1-3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여기에 답글 다시는 분들 중, 제대로 신학적으로 이야기 하시는 분이 없어서 정말 놀랍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신학이 중요치 않다고 대부분 말합니다. 그것은 정말 어리석고 무지한 이야기입니다. 신학이 없다면 제대로 분별할 수도, 성경을 바르게 해석할 수도, 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존경하는 18세기의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 ‘조나단 에드워즈’는 신학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일단 ‘사랑’ 이 무엇인지부터 정의가 다시 되어야 할 거 같네요. 오늘 날 한국교회의 근본적 문제로 교리가 없고 무지하다는 폴 워셔 목사님의 말이 생각나네요. 특별히 특출나게 교만한 자들만이 자기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아담이 죄로 육과 영이 죽고 난 후 인간 자체가 이미 교만한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면 모두다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아닌가요? 제가 본 하나님의 사람들은 자존감이 낮아서 고생하지 않았습니다. 본인의 불결함 때문에 늘 주 안에서 고민하였죠. 요즘은 이런 자각도 없이, 마냥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하나님도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고 있지만 그것은 완전한 착각입니다. 진정으로 회심한 자는, 자기 자신에 대한 마태복음 팔복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있는 자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약함 잘알고 마음이 상해 있습니다. 자신의 죄성과 무가치함을 잘안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불행하다고 말하나요? 복이 있습니다. 그들은 진정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알아서 주 안에서 기뻐하고 겸손하고 온유하며 사랑합니다. 천국이 그들의 것임을 삶 속에서 나타내 보입니다. 더이상 논쟁하고 싶지 않습니다. 마지막 성경구절로 이 글을 마무리 지으려고 합니다. 저는 이 성경구절을 믿습니다. 지금이 말세 중에 말세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것을 알라. 즉 마지막 날들에 위험한 때가 이르리라.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탐욕을 부리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신성모독하며 부모에게 불순종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본성의 애정이 없으며 협정을 어기며 거짓 고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자들을 멸시하며 배신하며 고집이 세며 높은 마음을 품으며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는 쾌락들을 더 사랑하며 하나님의 성품의 모양은 있으나 그것의 능력은 부인하리니 너는 이런 자들에게서 돌아서라. 딤후 3:1~5 그럼에도 다시 “현대에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 있다.” 라고 말씀하시려면 제가 쓴 글 위에를 다시 봐주십시오. 성경적으로 자기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우리안에 옛사람과 속사람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한 말들입니다 이 말을 들으면 우리는 매우 존귀한 사람이라고 들립니다 그러나 이러한 말들조차 옛사람이 자기를 높이는데 써먹는 우리안에 죄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방법은 항상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코람데오의 신앙이 우리를 진정으로 낮추고 겸손한 사람으로 바꾸어 주시지요~
고린도전서 13장 1-3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저 자신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하고 싶어요.. 이 영상보며 기도합니다.
간결하고 명쾌해요. 주님 감사합니다.
귀한 말씀 입니다
사랑의 하나님 감사합니다
제 자신을 사랑하고
사람들도 사랑할 수 있길 소망합니다…
대박이네요..... 나의 가치는 하나님의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사랑하는분이라는부분에서 진짜 눈물날뻔했네요.... 진짜 ......대박이네요
할렐루야!!아멘아멘아멘 🙋♀️👍✌🙏
겸손은 주눅들고 찌그러지는것이 아닙니다
어깨를피고
하늘로 눈을 들어 기도해보세요
성도는 하늘의 강한자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아멘
감사❤ 합니다
🕊🕊☕🍒🌲
와우 데이빗씨맨즈 넘멋지다!!^^
겸손 과 낮은자존감 을 잘 구분 못하는 사람 정말 많은데.
질문을 던지다 보니 새롭게 깨닫게 되는 내용들이 많습니다. 좋은 내용 오늘도 잘 보고 갑니다.
자존감이 낮으면 자존심이 세진다. 겸손과 비굴을 혼돈한다.
목사님들이 어릴 때부터 이렇게 바로 가르쳐만 줬어도 젊은 시절 비천에 집중하던 시간을 많이 줄였을텐데
제가 보았을 때, 현대인들은 자존감이 낮아서 문제가 아니라 자기를 사랑하기 때문에 문제가 됩니다. 오히려 자신의 현주소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겸손할 수도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는 거라고 믿습니다. 오히려 거룩한 자기절망에 빠져야, 자기숭배와 지극한 자기애에서, 겸손하지 못하고 지기자신에게 집착하는 것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인정과 만족만을 바라보며 나아갈 수 있습니다.
자기를 성경적으로 존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는 현대인만큼 잘아는 시대가 또 있을까요? 자존감의 문제라 아니라, 자기애의 문제입니다. 본인이 불결하여 하나님께 근본적으로 사랑받을만한 명분이 없다는 것을 계속해서 알면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알아야 자신의 가치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거룩하신지, 그리고 나는 얼마나 거룩하지 못한지를 보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완전함을 발견하는 것, 제가 보기에는 이 영상이 오히려 기본적인 교리가 베이스가 되지 않으면 잘못되게 오해할 여지가 있는 가르침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기 때문에 문제지 자신을 사랑하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교회에서 잘못된 믿음이 나오는 이유는 성경적인 교리에 대한 무지와 잘못된 적용때문이라고 믿습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 없다는 말을 하고 있는것이 아닙니다. 근본적으로 ‘자존감’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보통 자신을 사랑하지 못해요...
교만한 사람들이 자신을 너무 많이 사랑하죠
실제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 있읍니다
맞다 틀리다 하지마시고 그냥 들으세요.
겸손은 주눅들고 찌그러지는것이 아닙니다
당당하세요
어깨를 피고 걸어가세요
성도는 하늘의 강한자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주님안에서 자존감을 찾으면 자신도 이웃도 아름답게 사랑하지요.ㅎ
생명 바쳐 사랑하신
주님 자녀들의 자존감 회복을 바라며
감사 찬양드립니다.
고린도전서 13장 1-3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여기에 답글 다시는 분들 중, 제대로 신학적으로 이야기 하시는 분이 없어서 정말 놀랍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신학이 중요치 않다고 대부분 말합니다. 그것은 정말 어리석고 무지한 이야기입니다. 신학이 없다면 제대로 분별할 수도, 성경을 바르게 해석할 수도, 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존경하는 18세기의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 ‘조나단 에드워즈’는 신학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일단 ‘사랑’ 이 무엇인지부터 정의가 다시 되어야 할 거 같네요.
오늘 날 한국교회의 근본적 문제로 교리가 없고 무지하다는 폴 워셔 목사님의 말이 생각나네요.
특별히 특출나게 교만한 자들만이 자기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아담이 죄로 육과 영이 죽고 난 후 인간 자체가 이미 교만한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면 모두다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아닌가요?
제가 본 하나님의 사람들은 자존감이 낮아서 고생하지 않았습니다. 본인의 불결함 때문에 늘 주 안에서 고민하였죠. 요즘은 이런 자각도 없이, 마냥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하나님도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고 있지만 그것은 완전한 착각입니다. 진정으로 회심한 자는, 자기 자신에 대한 마태복음 팔복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있는 자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약함 잘알고 마음이 상해 있습니다. 자신의 죄성과 무가치함을 잘안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불행하다고 말하나요? 복이 있습니다. 그들은 진정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알아서 주 안에서 기뻐하고 겸손하고 온유하며 사랑합니다. 천국이 그들의 것임을 삶 속에서 나타내 보입니다.
더이상 논쟁하고 싶지 않습니다. 마지막 성경구절로 이 글을 마무리 지으려고 합니다. 저는 이 성경구절을 믿습니다. 지금이 말세 중에 말세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것을 알라. 즉 마지막 날들에 위험한 때가 이르리라.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탐욕을 부리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신성모독하며 부모에게 불순종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본성의 애정이 없으며 협정을 어기며 거짓 고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자들을 멸시하며
배신하며 고집이 세며 높은 마음을 품으며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는 쾌락들을 더 사랑하며
하나님의 성품의 모양은 있으나 그것의 능력은 부인하리니 너는 이런 자들에게서 돌아서라.
딤후 3:1~5
그럼에도 다시 “현대에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 있다.” 라고 말씀하시려면 제가 쓴 글 위에를 다시 봐주십시오. 성경적으로 자기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우리안에 옛사람과 속사람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한 말들입니다
이 말을 들으면 우리는 매우 존귀한 사람이라고 들립니다
그러나 이러한 말들조차
옛사람이 자기를 높이는데
써먹는 우리안에 죄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방법은 항상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코람데오의 신앙이
우리를 진정으로 낮추고
겸손한 사람으로 바꾸어 주시지요~
고린도전서 13장 1-3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