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몇 가지 기록으로 궁예를 비하하는데 그 배경을 잘 살펴봅시다. 궁예는 지지기반이 약했고, 왕건은 상권을 바탕으로 한 대호족 출신입니다. 장사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처지를 잘 아는 인물이 상권 보호 해주길 원했을 겁니다. 그래서 각종 날조된 얘기로 왕건을 높이고, 그 정당성을 강화하기 위해 궁예를 미친 황제로 몰았을 가능성이 더 큽니다. 왕건이 실제로 상인 출신들 여식들과 연달아 결혼하지요. 왕건이 반역하자 이에 반기를 드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점, 왕건이 죽자 그 후손들이 개판인 점등이 그 결과를 말해주죠.
영화 태조왕건에서 궁예의 부인 강씨가 다른 남자와 간통을 했던 걸로 기억함. 그래서 이걸 빌미로 왕건이 군사를 일으켜서 나라를 세운다는 내용이었던가 ;;; 드라마 태조왕건에서는 궁예의 아버지를 경문왕설을 택해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귀 설화까지 넣어서 각색한건 좋은 아이디어였음.
태봉의 국호는..모두가 평등한 국가를 의미하죠.. 또 후삼국중 유일하게 북방을 이야기하고 자주성을 강조한 국가였구요.. 태봉국의 성은 토성으로 지어져있습니다 백성들과 함께 하려했던 궁예대왕의 의지표현이었겠죠.. 청주의 1천가구를 이주는 어떻게 보면 새로운 세력의 형성으로 볼수있을거같구요..그렇다면..기득권들에겐..상당히..껄그러운.. 그런상황일태니..ㅜㅜ
고려의 창업군주 왕건의 재위기간때는 왕건이 뛰어난 정치력과 외교술, 카리스마로 호족들을 통제해서 괜찮았지만 왕건이 죽은후에 일이 터지게 됨. 다음 2대 왕 혜종은 지지기반이 튼실하지 않아서 그때부터 호족들이 날뛰기 시작했고 왕권을 둘러싼 호족들의 발호 등 무질서한 혼란스러운 시간이 흐르게 됨.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4대 왕인 광종이 여러개혁 추진과 호족 대숙청을 벌이면서 질서를 회복하게 된거고.
통일신라도 그렇고(부여는 있지만) 후고구려도 그렇고 고려도 그렇고 조선도 그러했죠 그나마 말들이 전승이 되어서 지금까지 온것이죠(역사 고려 조선실록 같은게 있었으나 이성계가 지웠다하죠 결국 국민의 말과 책으로 이어져온게 우리 역사 그나마 짱국 역사서나 우리 유물로 역사를 알아가는거죠) 그래도 그나마 나쁘게 간것도 아니죠 조선시대 비하하는 사람이 많지만 아시아에 그만큼 나라가 유지한 나라도 없었죠;; 개화도 어찌보면 시대의 흐름을 못잡았을뿐 그만큼 반발이 강하다보니 개화도 못한것이지 일본은 이도 저도 아니다보니 개화가 빠르게 시행된게 이득인듯(우리도 기회는 몇번 있었으나..) 어차피 모두 하나의 한민족 아닌가요 저도 개성 왕씨에 대한 자긍심이 있지만 그것도 한민족으로써 자긍심같음
개인적으로 이런 외모표현도 나쁠건 없다고 봅니다. 일단 기록에서 나온 궁예는 국호를 몇번 바꾸던 시절엔 자신을 미륵으로 말하는 개인숭배 사상을 보인다거나 자신의 아들인 청강이나 신강도 아미타불이나 관음보살에서 따온 이름이니까 궁예의 국가 체제 방식은 신정체계를 기반으로 햇다보니까 평소 입던 복장은 당연히 종교적일태니 그럼 가사나 장삼을 주로 입엇겟고(원소도 자신은 정치가라는 이미지를 포장하기 위해서 전장에서도 투구는 거부하고 두무나 두건을 선호하면 선호햇지 투구는 죽어라고 거부하는 둥 지금으로 치면 페도라에 정장차림을 무조건적으로 고수를 햇던 식이라 궁예라고 해도 평소 입던 복장은 별 차이가 없엇을거임.) 뭐 전장에서는 안전을 이유로 투구를 썻을태지만 신정체제를 고집햇기 때문에 최대한 승려처럼 입고 지냇을태니 수염이나 머리도 밀엇을거고.
왕건이 고려를 건국한 시조고 궁예는 태봉을 건국한 인물임. 궁예는 고려란 국호를 고작 3년만 유지하다 버리고 마진으로 바꾸어서 7년간 유지하다 마지막에 태봉으로 바꾸어 7년동안 유지한 시점에서 절대로 고려의 시조가 될수없음. 역성혁명으로 태봉을 무너뜨리고 고려를 건국한 왕건이 고려의 시조임.
석총도 왕건 편이었다 볼 수 있을듯. 왕건은 친불교정책을 해서 스님들의 지지를 많이 얻었고, 궁예는 기존불교세력을 견제하는 방식으로 나름 자신만의 불교정책을 만들라고 했으나 반발이 매우 강했다고 볼 수 있음. 궁예의 초창기 지지세력은 고려계인 패서 호족으로 그 방안 중 하나로 패서 호족 출신인 강비(왕비)를 들였으나, 세력이 커질수록 패서호족(왕건을 중심으로 한)의 파벌이 더욱 강해졌고, 추정은 강비도 그 세력 중 하나였었기에, 결국은 강비를 죽이는 것으로 패서호족에 대한 굉장히 큰 액션을 취한 것임. 국호를 계속 바꾸고 도읍을 바꾸는 것도, 초기 패서호족들이 원하는 고구려의 부활을 위해 고구려라 이름지었지만, 고구려 이상의 나라를 건국하기 위해서 고구려라는 이름을 버림. 도읍도 패서호족의 세력을 약화시키기위해서 철원으로 바꿈.
하지만 궁예가 없었다면 왕건이 왕의 자리에 오를수가 없음 애초에 나라를 건국한것도 전부다 궁예가 한거지만 만약에 궁예가 통일한다면 신라왕족과 신라인들을 왕건처럼 포용한것이 아니라 이성계처럼 완전히 멸족시켰을떼가지 전부다 죽였을 거임 결국 이렇게 평가가 이렇게 갈린 궁예지만 한국사 중간에 없으면 안되는 중요한 인물임
일설에는 궁예가 장보고의 외손자가 아닌가 하는 설이 있습니다 장보고의 딸이 신라 왕가에 시집 (약속보다 늦게 갔습니다) 장보고 아명이 궁복 궁파였다는 점 궁예가 왕족이지만 왕위계승서열이 높아보진 않아보이는 점 그리하여 순식이 압도적인 전력을 가지고도 항복하면서 동질감을 가진점 (순식은 왕위계승서열 1~2위였던집안)
궁예가 신라 왕족이라는 건 어쩌면 고려 왕실에서 날조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사견을 해봅니다. 궁예는 패망 후에도 특정 지역에서 영웅이나 신령으로 섬겨질 정도로 대단한 명성을 유지하고 있었던 인물이었으니 승자인 왕건으로서도 여전히 힘들게 하는 인물이었을 겁니다. 한편 궁예가 그간 신라에 대해 적대적인 노선을 취한 것도 어쩌면 고구려를 계승하다는 취지를 가지고 일어난 후고구려인 만큼 당군과 연합해서 고구려를 정복한 신라와 적대 노선을 취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국가를 유지할 재간이 없었기 때문이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후 그는 마진, 태봉 등으로 국호를 바꾸는 행보를 보이는데 이게 그간 고구려계의 토착 세력과 호족들을 휘어잡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행동이 아닌가 싶습니다. 더구나 그간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폴리시 때문에 별 이유도 없이 신라와 적대관계를 보이던 것도 이제 새로이 관계를 정립해야 겠다는 생각했기에 이런 행동이 절실했을 수도 있겠습니다.(신라가 쇠하는 중이니 잘만 외교행보를 이어가다 보면 훗날 고려가 그랬듯이 무혈입성도 기대해볼 만하고.) 이 때문에 왕건은 그가 고구려를 계승하는 게 아니라 신라의 왕족이라고 프로파간다를 해서 여전히 왕건을 인정하지 않는 세력들이 궁예를 기치로 쓰지 못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만약 실제로 신라와 관계를 새로 하려고 했던 행보를 보였다면 당대 사람들의 시선으로는 한층 더 심증(신라 왕족이니까 신라와 관계개선을 모색하는 구나!)이 갈 만하니까요.
날조했다고 보기엔 삼국사기를 쓴 신라김씨 세력인 김부식의 말은 대체적으로 믿을만합니다. 스타일도 기전체서술인데다가 자신의 " 김씨를 흉노족인 김일제의 후손이니" 하는걸보면 너무 잘 알고 있는사람이 1000년전 왕가 계보 또한 알고 있었을수 있고요. 또한 삼국사기의 기반 이전에 경주와 남도에서 도는 사산아 , 사생아 이야기는 너무 당연시 되던 이야기이자 전설이지요 .. 진실일 확률이 높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드라마 태조왕건의 이야기처럼 경문왕의 아이일 확률도 높다고 봅니다.
사람은누구나일단일장인것같아요 근데 멋있었네요 비록마지막은비참했지만 멋있던사람이네요
지금도 한겨울에 영하 20도까지 내려가는 철원에서 기침소리좀 내었다고 때려죽이는 궁예 ㅋㅋ
그렇게 추우니 몸관리 잘하고 조심하라는 참 군주님이셨음 ㅠㅠㅠ
마구니까 끼었으니 기침을하죠 ㅋㅋㅋ ㅋㅋㅋ ㅋㅋㅋ ㅋㅋㅋ
그 시절에도 추웠는지가 궁금
@@yoshitsune1184 남북국기에 신라가 발해 공격하려다 눈보라 맞고 철수했다 하니 춥긴 했을듯
@@쉴레이만은솔로몬유수 그렇군요 그 생각은 못했군요
난 왜 까마귀가 🚘위에 💩을 싸놓을까,?
물론 몇 가지 기록으로 궁예를 비하하는데 그 배경을 잘 살펴봅시다. 궁예는 지지기반이 약했고, 왕건은 상권을 바탕으로 한 대호족 출신입니다. 장사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처지를 잘 아는 인물이 상권 보호 해주길 원했을 겁니다. 그래서 각종 날조된 얘기로 왕건을 높이고, 그 정당성을 강화하기 위해 궁예를 미친 황제로 몰았을 가능성이 더 큽니다. 왕건이 실제로 상인 출신들 여식들과 연달아 결혼하지요.
왕건이 반역하자 이에 반기를 드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점, 왕건이 죽자 그 후손들이 개판인 점등이 그 결과를 말해주죠.
후손이 개판이라고요?
이 채널 왤케 구독자수가 낮을까 ㅋㅋㅋㅋㅋㅋ 이렇게 유익하고 재밌는데 ㅋㅋㅋㅋ
암만생각해도 궁예 스스로 다 지어낸얘기같다
2:32 혹시 브금 정보좀 알 수 있을까용???
영화 태조왕건에서 궁예의 부인 강씨가 다른 남자와 간통을 했던 걸로 기억함.
그래서 이걸 빌미로 왕건이 군사를 일으켜서 나라를 세운다는 내용이었던가 ;;;
드라마 태조왕건에서는 궁예의 아버지를 경문왕설을 택해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귀 설화까지 넣어서 각색한건 좋은 아이디어였음.
누구인가? 누가 지금 기침소리를 내었어?
재밌네요~ ㅎㅎㅎ
저는 궁예팬입니다.
드라마 태조왕건때도 끝까지 궁예 편이었구요 ㅋㅋ
궁예가 왕비 하나만 뒀는지 후궁들도 뒀는지에 따라서 왕건의 난은 혁명이 될수도 역적모의가 될수도있음 왕건의 난에 동참했던 환선길,이흔암이 반란 성공 후 얼마 안가 왕건을 죽이려고 돌변한거보면 왕건이 아니라 궁예의 아들을 왕으로 앉히려고 했던걸수도
태조왕건 드라마는 모르지만,,,, 드라마속 명대사 "누구인가~?"........는 요즘 초등생들도 알더군요.........궁예 = 김영철을 떠올리며 영상을 시청하니 집중이 더 잘되는군요~~~
1부는 김영철이 하드캐리했고
2부는 서인석이 하드캐리했지
허준 mbc 태조왕건kbs 야인시대sbs 4년동안 순서대로 3년타로 대박치니 당시엔 싱심할 텀이 없었어요.
썸네일에 왼쪽 궁예는 오른쪽 눈에 안대를 했고 오른쪽 궁예는 왼쪽 눈에 안대를 했네요? ㅋㅋ
누가 기침소리를 내었어?
다시 하나도 안어울리잖아 누가 개소리를내었는가
드라마 태조왕건의 궁예 = 명대사 제조기
진짜 드라마틱하게 살다 갔던 궁예
태봉의 국호는..모두가 평등한 국가를 의미하죠.. 또 후삼국중 유일하게 북방을 이야기하고 자주성을 강조한 국가였구요.. 태봉국의 성은 토성으로 지어져있습니다 백성들과 함께 하려했던 궁예대왕의 의지표현이었겠죠.. 청주의 1천가구를 이주는 어떻게 보면 새로운 세력의 형성으로 볼수있을거같구요..그렇다면..기득권들에겐..상당히..껄그러운.. 그런상황일태니..ㅜㅜ
궁예가 멀정한 송악을두고 철원천도 왕건이 통일직후 호족부인 29명과 장가.. 왕건사후 광종까지 피비린내는 왕권쟁탈..즉 말이 왕이지 신라말부터 지방 호족이 나라의 주인이고 중앙정부는 없었다고 보는게 합리적이겠죠..궁예 열전은 왕건에 의해 90%이상 날조라 봅니다..
솔까 삼국사기 최고영웅은 궁예아입니까
궁예:짐은 미륵이니라 누구인가 지금 누가 기침소리를 내었어
시 시 시시시시시 신이옵니다 폐하 쿨럭 쿨럭
참으로 딱하구나!
짐이 지금 관심법을 하고 있는데 어찌 기침을 할 수 있느냐, 이 미련한 것아!
저놈의 머리 속에는 마구니가 그득하다. 그 마구니를 때려 죽여라 !
코로나 걸린 마구니들을 철퇴로 때려라
딱하구나. 미륵인 나는 달리려고 하고 있는데 너희 x막대기들 이 ....
콜록 콜록
누구인가? 누가 감히 기침소리를 내었는가?
궁예가 하고자한건 강력한 왕권 그에따른 강력한 호족들 정리때문에 자꾸 미륵이니 이런걸로 호족 조지기 들어간것이라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왕건이 호족들과 다 결혼한거 보면 호족들이 왕건을 세운것이겠지요
궁예가 왕건의숙부인 왕평달을 숙청하고 왕씨가문을 위협하면서 왕건과 관계가 틀어진거죠
호족들이 세운게 아니라 평민출신인 신숭겸, 복지겸, 배현경, 홍유(유일하게 호족출신) 고려 건국 1등공신인 4기장들이 왕건을 추대해서 왕건이 역성혁명을 일으켜 궁예를 끌어내리고 왕이 된거임.
왕건의 역성혁명때 호족들이 참여했다는 기록이 없음.
이해관계 조율에 실패한, 실패한 정치가라고 보는게 타당하겠죠.
와이프랑 자식들도 역모사건 관련 정치숙청을 한것으로 보여지고...
어떤 상황이던 자신을 위해서는 되려 가족은 손대면 안되는데, 참 바보같은 사람입니다.
궁예가 집필한 경전이 기존 가치관에서 "해괴망측"이란 평가를 받았던걸 보면 얼마나 파격적이었을지 궁금합니다. 남아있지 않다니..
삼국사기에 의하면
불도에 법에 맞지않는 귀신의 법(?)을 가르쳤고 도가나 유가도 아닌
자신만의 법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저시절에 만명이면 중국 삼국지로 치면 십만 대군임
하지만 수나라는 실제 100만대군 찍음.
고려초기에도 중앙집권이 제대로 되지않고 외척호족들의 힘이 황제보다 강했습니다. 궁예는 미륵관심법등 종교적인 억지를 부려서 자신의 권력을 위협하는 왕비와 호족외척을 처단하려던것 아닐까 생각됩니다.
고려의 창업군주 왕건의 재위기간때는 왕건이 뛰어난 정치력과 외교술, 카리스마로 호족들을 통제해서 괜찮았지만 왕건이 죽은후에 일이 터지게 됨. 다음 2대 왕 혜종은 지지기반이 튼실하지 않아서 그때부터 호족들이 날뛰기 시작했고 왕권을 둘러싼 호족들의 발호 등 무질서한 혼란스러운 시간이 흐르게 됨.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4대 왕인 광종이 여러개혁 추진과 호족 대숙청을 벌이면서 질서를 회복하게 된거고.
궁예의 안대는 스위치 히턴가보네요
7:01 선 넘기 시작 ㅋㅋ
어릴때 '슬픈 궁예'라는 책을 통해서 관심이 많은 인물인데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 궁예의 기록이 빈약하게 남겨진게 아쉬운 인물인거 같습니다 순천 김씨가 궁예의 후손이라는 썰도 있고요
통일신라도 그렇고(부여는 있지만) 후고구려도 그렇고 고려도 그렇고 조선도 그러했죠 그나마 말들이 전승이 되어서 지금까지 온것이죠(역사 고려 조선실록 같은게 있었으나 이성계가 지웠다하죠 결국 국민의 말과 책으로 이어져온게 우리 역사 그나마 짱국 역사서나 우리 유물로 역사를 알아가는거죠) 그래도 그나마 나쁘게 간것도 아니죠 조선시대 비하하는 사람이 많지만 아시아에 그만큼 나라가 유지한 나라도 없었죠;; 개화도 어찌보면 시대의 흐름을 못잡았을뿐 그만큼 반발이 강하다보니 개화도 못한것이지 일본은 이도 저도 아니다보니 개화가 빠르게 시행된게 이득인듯(우리도 기회는 몇번 있었으나..) 어차피 모두 하나의 한민족 아닌가요 저도 개성 왕씨에 대한 자긍심이 있지만 그것도 한민족으로써 자긍심같음
그런데 궁예가 인생파탄자일 확률이 높습니다.(조선 태종만 하더라도 싸이코패스적인 기질이 있었습니다. 자신 친동생인 방석을 죽인것만 보더라도...) 애초에 혁명이 성공하려면 명분이 있어야하는데 안좋은 인성을 들먹이는것만큼 좋은것이 없거든요.
@@mickymouse80 방석은 태종의 이복 동생이고 친형제들은 죽이지 않았습니다.
@@mickymouse80 추가로 이방원과 새어머니 사이는 굉장히 안좋....
궁예가 왕비 하나만 뒀는지 후궁들도 뒀는지에 따라서 왕건의 난은 혁명이 될수도 역적모의가 될수도있음 왕건의 난에 동참했던 환선길,이흔암이 반란 성공 후 얼마 안가 왕건을 죽이려고 돌변한거보면 왕건이 아니라 궁예의 아들을 왕으로 앉히려고 했던걸수도
환본기에 이르면 궁예 종간 왕건이 도선대사의 제자였다고 함.
이제 태조왕건엔 궁예랑 수달 밖에 생각나지 않네
또졌어
썸네일 개웃겨ㅋㅋ
후궁, 구멍공동체 !!
개족보 지요..ㅎㅎ
드라마에서는 경문왕의 아들로 나왔었죠
누가 기침소리를 내었는가 말이야
저 자의 Mㅓ릿속에는 Mㅏ구니가 가득하구나.
넘모 재밌어요 ㅋㅋㅋ
ㅋㅋㅋㄱ 스스로가 경전을 만들다니..
썸네일보고 궁예너무귀엽게 그려서 들어옴
8:10 너는거짓미륵이야 가짜야
진정한메친넘이였구나
개인적으로 이런 외모표현도 나쁠건 없다고 봅니다. 일단 기록에서 나온 궁예는 국호를 몇번 바꾸던 시절엔 자신을 미륵으로 말하는 개인숭배 사상을 보인다거나 자신의 아들인 청강이나 신강도 아미타불이나 관음보살에서 따온 이름이니까 궁예의 국가 체제 방식은 신정체계를 기반으로 햇다보니까 평소 입던 복장은 당연히 종교적일태니 그럼 가사나 장삼을 주로 입엇겟고(원소도 자신은 정치가라는 이미지를 포장하기 위해서 전장에서도 투구는 거부하고 두무나 두건을 선호하면 선호햇지 투구는 죽어라고 거부하는 둥 지금으로 치면 페도라에 정장차림을 무조건적으로 고수를 햇던 식이라 궁예라고 해도 평소 입던 복장은 별 차이가 없엇을거임.) 뭐 전장에서는 안전을 이유로 투구를 썻을태지만 신정체제를 고집햇기 때문에 최대한 승려처럼 입고 지냇을태니 수염이나 머리도 밀엇을거고.
옴마니반메흠
이젠 김영철밖에 안떠오른다ㅋㅋㅋㅋ
악!! ㅅㅂ 눈부셔..ㅋㅋㅋㅋ
사실 고려의 진짜 시조는 왕건보다 궁예라 봐야하는게 아닌가 싶음
사울과 다윗의 관계 한국버전이라 봐야 될려나
장보고입니다
고려를 건국한건 궁예가 맞는데 마진 태봉으로 계속 나라이름을 바꾸어서 고구려의 정체성을 스스로 버림 나라이름 안바꾸고 계속 고려로 유지했으면 고려의시조가 맞지
왕건이 고려를 건국한 시조고
궁예는 태봉을 건국한 인물임.
궁예는 고려란 국호를 고작 3년만 유지하다 버리고 마진으로 바꾸어서 7년간 유지하다 마지막에 태봉으로 바꾸어 7년동안 유지한 시점에서 절대로 고려의 시조가 될수없음.
역성혁명으로 태봉을 무너뜨리고 고려를 건국한 왕건이 고려의 시조임.
노부나가 포지션
재밌네요 굿
석총도 왕건 편이었다 볼 수 있을듯. 왕건은 친불교정책을 해서 스님들의 지지를 많이 얻었고, 궁예는 기존불교세력을 견제하는 방식으로 나름 자신만의 불교정책을 만들라고 했으나 반발이 매우 강했다고 볼 수 있음. 궁예의 초창기 지지세력은 고려계인 패서 호족으로 그 방안 중 하나로 패서 호족 출신인 강비(왕비)를 들였으나, 세력이 커질수록 패서호족(왕건을 중심으로 한)의 파벌이 더욱 강해졌고, 추정은 강비도 그 세력 중 하나였었기에, 결국은 강비를 죽이는 것으로 패서호족에 대한 굉장히 큰 액션을 취한 것임. 국호를 계속 바꾸고 도읍을 바꾸는 것도, 초기 패서호족들이 원하는 고구려의 부활을 위해 고구려라 이름지었지만, 고구려 이상의 나라를 건국하기 위해서 고구려라는 이름을 버림. 도읍도 패서호족의 세력을 약화시키기위해서 철원으로 바꿈.
승자의 기록이라 보기엔 애매한게 궁예 휘하 장수들이 들고 일어나 왕건을
지지한거 보면 궁예가 성군이였으면 그랬을까 싶기도 함.
왕건이 정치에서 한수위같음. 호족의 시대에서 호족의 몸으로 호족들의 권력다툼을 조율하는거보면 정말 500년에 1번 나온 창업군주임
개성에서 후고구려 건국때 궁예가 개성세력을 압도하는 수준이 아니라 비등한 수준이라 세력숙청은 필수기는 했음.
다만 실패했을뿐
관심법 ....
짐은 미륵이니라~
하지만 궁예가 없었다면 왕건이 왕의 자리에 오를수가 없음 애초에 나라를 건국한것도 전부다 궁예가 한거지만
만약에 궁예가 통일한다면 신라왕족과 신라인들을 왕건처럼 포용한것이 아니라 이성계처럼 완전히 멸족시켰을떼가지 전부다 죽였을 거임
결국 이렇게 평가가 이렇게 갈린 궁예지만 한국사 중간에 없으면 안되는 중요한 인물임
고려의 창업군주 왕건도 나라를 건국해 왕이 된거임.
역성혁명을 일으겨 궁예를 끌어내려 태봉을 무너뜨린다음 고려를 건국해서 왕이 되었음.
한마디로 기존의 왕조 및 나라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왕조 및 나라를 건국한것.
금. 자 나왔을때
바로 튀어야 살아남은
나중에 한국무쌍이 나온다면 아마 후삼국을 배경으로 나올 듯..
한국 무쌍은 안나오고 일단 태조왕건 STR은 있었으나, 토탈워시리즈에 후삼국모드를 누군가가 만들어줬으면 좋겠네요.
@@doulk2476 전국무쌍 삼국무쌍 다 있는데 한국무쌍만 없음.
@@일차원-r4f 일본 코에이 가 한국무쌍만들 메리트가없죠.....
@@킴키류 전국무쌍에서 이순신 DLC 같은 거라도 나오면 좋으련만.
@@일차원-r4f 전국무쌍에서 임진왜란 부분은 거의 가록말살형급으로 언급조차 안하는 흑역사라서 그냥 히데요시 가 죽엇다 로 끝내는데 더더욱더 나올리가....
안대가 좌우가 바뀌네ㅋㅋ
궁예가 신라 왕이 되었다면 관심법으로 신라가 망했을 것 같아요 ㅎ
김영철이 겹쳐 보이네 ㅋㅋ
그림체 다시 병맛으로 해줘여 ㅜㅜ 어색해
어우ㅋㅋ 썸내일 무섭네ㅋㅋ
상남자 궁예 이시대에 꼭 필요한 위인이다
ㅇㅇ 데모하는곳에 가서 누가 소리를 내었는가 해야함
옴마니반메옴
누구인가
두 얼굴을 가진 군주.
호족과 왕권강화 세력의 다툼 임
하... 신하1 그인간이 기침만 안했어도 ㅠㅠ
일설에는 궁예가 장보고의 외손자가 아닌가 하는 설이 있습니다
장보고의 딸이 신라 왕가에 시집
(약속보다 늦게 갔습니다)
장보고 아명이 궁복 궁파였다는 점
궁예가 왕족이지만 왕위계승서열이 높아보진 않아보이는 점
그리하여 순식이 압도적인 전력을 가지고도 항복하면서
동질감을 가진점 (순식은 왕위계승서열 1~2위였던집안)
신라귀족들이 염장을 사주해서 장보고를 죽였는데 장보고딸이 신라왕가에 시집가서 살아남는게 가능할까요?
누구인가?
궁예는 못참지 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짐은 미륵이니라~~~
4달라
궁예가 신라 왕족이라는 건 어쩌면 고려 왕실에서 날조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사견을 해봅니다. 궁예는 패망 후에도 특정 지역에서 영웅이나 신령으로 섬겨질 정도로 대단한 명성을 유지하고 있었던 인물이었으니 승자인 왕건으로서도 여전히 힘들게 하는 인물이었을 겁니다. 한편 궁예가 그간 신라에 대해 적대적인 노선을 취한 것도 어쩌면 고구려를 계승하다는 취지를 가지고 일어난 후고구려인 만큼 당군과 연합해서 고구려를 정복한 신라와 적대 노선을 취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국가를 유지할 재간이 없었기 때문이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후 그는 마진, 태봉 등으로 국호를 바꾸는 행보를 보이는데 이게 그간 고구려계의 토착 세력과 호족들을 휘어잡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행동이 아닌가 싶습니다. 더구나 그간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폴리시 때문에 별 이유도 없이 신라와 적대관계를 보이던 것도 이제 새로이 관계를 정립해야 겠다는 생각했기에 이런 행동이 절실했을 수도 있겠습니다.(신라가 쇠하는 중이니 잘만 외교행보를 이어가다 보면 훗날 고려가 그랬듯이 무혈입성도 기대해볼 만하고.) 이 때문에 왕건은 그가 고구려를 계승하는 게 아니라 신라의 왕족이라고 프로파간다를 해서 여전히 왕건을 인정하지 않는 세력들이 궁예를 기치로 쓰지 못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만약 실제로 신라와 관계를 새로 하려고 했던 행보를 보였다면 당대 사람들의 시선으로는 한층 더 심증(신라 왕족이니까 신라와 관계개선을 모색하는 구나!)이 갈 만하니까요.
날조했다고 보기엔 삼국사기를 쓴
신라김씨 세력인 김부식의 말은 대체적으로 믿을만합니다.
스타일도 기전체서술인데다가
자신의 " 김씨를 흉노족인 김일제의 후손이니" 하는걸보면 너무 잘 알고 있는사람이
1000년전 왕가 계보 또한
알고 있었을수 있고요.
또한 삼국사기의 기반 이전에
경주와 남도에서 도는 사산아 , 사생아 이야기는
너무 당연시 되던 이야기이자 전설이지요 ..
진실일 확률이 높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드라마 태조왕건의 이야기처럼
경문왕의 아이일 확률도 높다고 봅니다.
역사의 승자이기에 왕건에 유리하게 기록되었을 것이고, 궁예는 사실과 왜곡된 사실이 많았으리라 생각된다.
더우기 고려건국의 시조라는 점에서 철저하게 궁예를 천하의 몹쓸 놈에 미친광이로 만들으리라 추측된다.
역사는 항상 승자의 편이니까!
무조건 승자가 조작한거라는 병신
궁예나 동탁이나 충혜왕이나 연산군이나 수양제 같은 인간들 희한하게 합리화하는 애들 특: 정작 그 시대로 보내 놓으면 한 달도 못 돼 처형 당함.ㅋㅋㅋ
이환경과 김영철.. 그가 만들어논 유행어가 대체 몇개인 것인가
콜록 콜록
곰삶아먹자
틀니딱딱 채널 부활좀 해주세요
엉터리 소설ㅋ
9분 존나웃기네 ㅋㅋㅋ
별로;;;
페미 때려잡는데 일가견이 있었군요.
무서워
난 궁예가 이렇게 까지 비판받을 폭군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네..그러므로 이 영상의 내용에 반대의견일세...그러하니 구독과 좋아요는 누르지 않겠네..그럼2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