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북카페 시즌2] EP 06. 성석제 산문집 "소풍" ㅣ1화: 소년시절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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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27 дек 2024

Комментарии • 2

  • @Kyokwan
    @Kyokwan 3 года назад +3

    내가 어린 시절에 회사원이었던 아버지는 늘 새벽 5시면 일어나서 회사로 갔다. 그 시간에 어머니가 일어나서 아침밥을 차리고 반찬을 만들고 할 수 없기에 아버지는 라면을 끓여서 먹고 나갔다. 나가면서 나를 위해 라면 한 그릇을 떠 놓곤 했다. 내가 눈을 뜨면 이미 라면은 불어 터지고 식어버려서 계란과 면과 국물이 한 몸이 되어 푸딩화 되어 있었다.
    어릴 때는 그것이 먹기 싫었다. 식었고 젓가락질로는 도저히 먹을 수 없고, 숟가락으로 이렇게 탁탁 갈라서 뜨면 떠지는,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그런 라면은 먹기 싫었다. 중학생이 된 어느 날인가, 후루룩하는 소리가 들려 눈을 뜨니 새벽 5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아버지는 라면을 드시고 있었다. 이미 한 그릇을 나를 위해 떠 놓았다. 그때 이렇게 보니, 내 그릇에 담긴 라면이 뜨거우니까 아버지는 계속 젓가락으로 들었다 놨다 하면서 식히는 것이다.
    나는 날 때부터 좋지 못한 위를 달고 태어나서 뜨겁거나, 급하게 먹거나, 많이 먹으면 소화가 되지 않는다. 소화가 되지 않으면 속만 거북한 것이 아니라 머리도 아프고 이상해진다. 아버지는 그게 미안해서인지 그냥 놔두면 식어버릴 라면을 후후 불면서 식히고 있었다. 식어빠지고 불어 터진 라면에 마법이 걸렸는지 그 뒤로 그 라면이 맛있었다.
    제대 후 아버지는 이런저런 안부도 없이, 인사도 없이 먼지가 되었고 나는 순천으로 여행을 갔다가 오리 고기 집에 저녁 늦게 들어갔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고 우리가 마지막 손님이었는데 카운터에서 나이 든 주인장이 늦은 저녁을 먹고 있었다. 우리는 여행객인데 같이 먹자고 하니 괜찮다시며 혼자서 카운터에서 식사를 하셨다. 이렇게 보니 냄비에는 식어 빠지고 불어 터진 라면이었다. 나는 실례를 무릅쓰고 조금 달라고 했다. 주인장은 난처해했지만 한 그릇을 떠 주었다. 그것을 숟가락으로 한 입 퍼먹었는데 뭔가 손끝으로 코끝을 띵하게 때리는 기분이 들었다.
    음식을 먹는다는 건 생존에 관여된 부분이 크지만 그 음식점에 너와 함께 가서 음악을 들으며 같이 먹었다는 추억, 그 추억이 고스란히 음식의 맛을 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삼대 천왕에서 하니는 시장표 고로케를 한 입 먹는 순간 아주 작았던 하니가 힘든 시기에 고생하며 만든 엄마의 고로케를 먹었던 추억이 밀려왔을 것이다.
    추억의 맛은 위에서 말한 것처럼 자주 해 먹을 수는 없다. 추억에 기인한 음식이 있다. 그런 음식은 추억의 맛으로 먹게 된다. 추억의 맛에 빠지면 그 음식을 일부러 찾기도 한다. 추억으로만 먹게 되는 맛은 마치 달력의 뒤편처럼 늘 가까이 있지만 달력을 넘기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아름답지만 안타깝고 쓸쓸한 맛이기도 하다.
    잘 들었습니다. 성석제 소설가의 소설을 참 좋아하는데 투명인간의 한 부분이 확 밀려옵니다. 저도 라면에 관한 추억과 기억이 있어서 한 번 적어 봤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 @2ne421
      @2ne421  3 года назад +2

      콧 끝이 찡해지는 추억 나눠주셔서
      감사해요! 항상 좋은 글 남겨주시는
      것도 감사드립니다, 좋은 밤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