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29 인과응보에 대하여 귀 있는 자는 들으라 (계13: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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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Опубликовано: 9 фев 2025
- 인과응보에 대하여 귀 있는 자는 들으라 (계13:9-10)
인과응보만 잘 이루어져도 세상은 살만합니다. 내게 잘못이 없다는 전제입니다. 내게 잘못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인과응보는 무서운 제도입니다.
이스라엘을 보호하시기 위해 인과응보는 꼭 필요했습니다. 태어나는 아기가 남자이면 모두 죽이려는 바로의 계획은(출1:22) 결국 애굽의 젊은 군사들이 홍해에 빠져 죽는 일로 마무리 됩니다.(출14:27) 바벨론 시대 이후 바사의 아하수에로 왕의 신하 하만은 왕후 에스더의 사촌 오빠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고 이십 미터나 되는 높은 나무를 준비하였으나 결국 그 나무에 하만이 달려 죽고 맙니다.(에7:9-10) 이스라엘의 가장 악한 왕 아합의 죽음과 부인 이세벨의 죽음도 인과응보의 전형적인 사건입니다.(왕하9:36) 그나마 인과응보가 작동하기에 이 세상은 더 악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과응보의 원칙이 제대로 작동하는 일에 환영하는 우리의 심리는 ‘나는 선한 사람이다.’라는 잘못된 전제에서입니다. 유대 왕 중에 선한 왕 여호사밧은 종교개혁을 통하여 우상숭배를 금지시키고 산헤드린 조직의 근간이 되는 사법개혁을 이룬 덕망 있는 왕 이였지만, 이세벨의 딸을 며느리로 삼은 일로 결국 왕궁의 피바람이 잘날 없게 되었습니다.(대하18:1, 21:4, 22:10) 그가 행한 선한 일에 비하면 그의 잘못은 작은 실수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인과응보의 결국은 피바람이었습니다.
인과응보하시는 하나님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요? 다행히 하나님은 인과응보를 초월하십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덮으시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대신 돌아가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