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후반의 유럽 정세와 러시아-튀르크 전쟁(1877-1878): Part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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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10 сен 2018
  • Hungarians in the Ballhausplatz: Studies on the Austro-Hungarian Common Foreign Policy
    [Book by István Diószegi]
    모순의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외교사
    European Situation in the Late 19th Century and the Russo-Turkish War (1877-1878)
    19세기에 들어오면서 자유주의와 민족주의가 확산됨에 따라 오스만 제국은 점점 더 쇠약해졌다. 특히 민족적, 종교적, 문화적으로 매우 복잡한 구성을 가지고 있었던 발칸 반도에서의 민족주의 사상의 확산은 더욱 큰 파급효과를 가지고 오스만 제국의 지배력을 약화시켰다. 그리스인들이 술탄의 지배에 대항하여 일어나 1821년 독립을 쟁취했으며, 슬라브인들 역시 범슬라브주의를 주장하며 유럽에서 오스만 제국을 몰아내어 이탈리아나 독일과 같이 남슬라브족의 통일 단일국가를 형성하고자 시도했다. 그 중심에는 세르비아가 있었다.
    세계 최대의 슬라브 국가인 러시아 제국의 입장에서 범슬라브주의 운동의 성공은 곧 발칸 반도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을 의미했고, 이에 따라 러시아 역시 범슬라브주의를 지원한다.
    러시아는 19세기에 오스만 제국을 1806~1812년, 1828~1829년, 1853~1856년, 1877~1878년의 4차례에 걸쳐 공격한다. 이 같은 러시아-튀르크 전쟁의 목표로는 범슬라브주의 외에도 남하정책의 실현이 있었다.
    러시아 제국은 추운 기후 때문에 변변한 항구가 없어, 대양 진출을 위한 부동항 확보를 지상 최대의 과제로 삼았다. 이를 위해 1783년 크림 반도를 병합하고 흑해로 진출했으며, 오스만 제국과 끊임없이 전쟁을 하며 남하정책을 추진해왔다. 이 같은 러시아 제국의 정책은 1853년부터 1856년 사이의 크림 전쟁의 예와 같이 때때로 다른 열강들에 의해 저지되기도 했지만, 1877년부터 1878년 사이의 전쟁에서 오스만 제국을 완파함으로써 러시아는 이스탄불을 제외한 오스만 제국의 모든 유럽영토를 장악했다. 러시아는 오스만 제국에 굴욕적인 산스테파노 조약을 강요하고, 오스만 제국은 이를 받아들였다.
    러시아가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에서 결정적 승리를 거두면서 1878년 3월 3일 산스테파노 조약이 체결되었다.
    조약은 발칸 반도 전역이 러시아 제국의 영향권 아래 놓이도록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오스만 제국은 사실상 이스탄불을 제외한 모든 발칸 지역의 영토를 상실함으로써, 발칸 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완전히 상실토록 규정되었다.
    오스만 제국은 이전까지는 자신의 속국 또는 자치령이던 몬테네그로, 세르비아, 루마니아를 독립국으로 인정해야 했고, 이들 국가에게 영토를 할양해야 했다.
    또한 오스만 제국이 지배하던 불가리아는 불가리아 공국이 되어 자치권을 얻었다. 물론 명목상은 여전히 오스만 제국이 종주권을 가졌지만, 사실상 러시아 제국의 위성국이었다. 불가리아 공국은 모이시아, 트라키아, 마케도니아를 포함하는 거대한 영토를 가지도록 규정되어, 그 영역이 두나야에서 에게해에 이르렀다.
    또한 오스만 제국은 러시아에게 1조 4100억 루블을 배상금으로 지불해야 했다.
    산스테파노 조약으로 러시아가 지나치게 강대해지자, 여러 열강들은 이에 반발하고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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Комментарии • 1

  • @NihilsineDeo1866.
    @NihilsineDeo1866. 6 лет назад +2

    After war Romania Serbia and Montenegto become independece , cyprus give to uk, bosnia and herzegovino to austro hungaria ( iam a big fan of h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