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줄 수 있는 권세를 갖으신 분인데 불세례(심판)을 우리에게 주시지 않고 스스로 십자가에서 받으셨기 때문에 믿는(혹은 회개한) 우리에게는 성령세례만 임합니다. 요한의 물세례와 예수님의 불세례, 성령세례의 공통점은, "세례를 주는 것은 하나님께 받은 권세"라는 것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세례요한이 했던 가장 대표적인 일이 세례였는데, 사람들은 세례요한의 세례가 하나님께 받은 권세라고 여겼습니다. 특히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요한의 권세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물으신 것을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세례가 하나님의 사역인 것은 명확합니다. 고린도전서 10장을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홍해 바다를 건너며 구름기둥 아래서 세례를 받았다는 내용을 볼 때 세례는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것입니다. (고전 10:1)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고전 10: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즉, 하나님의 사역인 세례를 세례요한이 주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받은 권세입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주시는 것도 하나님께 받은 권세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예수님이 하나님이십니다). 세례요한은 물세례를 할 수 있었고, 예수님의 제자들도 물로 세례를 할 수 있었습니다. (요 4:1) 예수의 제자를 삼고 세례를 주는 것이 요한보다 많다 하는 말을 바리새인들이 들은 줄을 주께서 아신지라 (요 4:2) 예수께서 친히 세례를 주신 것이 아니요 제자들이 준 것이라 예수님은 성령과 불세례를 하시는데(마 3:11-12, 인용은 밑에 있습니다), 성령세례는 사도행전처럼 성령을 부이심 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받은 권세이고(요한복음 14장부터 이에 대해 언급하십니다. 예수님이 가심으로 성령이 오는 것이라고, 성령을 보내시겠다고요) 예수님께서 성령세례를 우리에게 하십니다. (요 14: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요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반면에 불세례는 세례요한의 말대로 회개치 않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심판입니다(특히 마 3:10; 12). (마 3:9)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마 3:10)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마 3:11)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마 3:12)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누가복음 12장에서도 예수님은 자신이 불세례를 받는 것을 말하셨습니다. (눅 12:49)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눅 12:50)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와서 예수님의 좌우편에 아들들을 앉게 해달라고 했을 때도 예수님은 "예수님이 받을 세례"를 십자가와 연결시키십니다. (막 10:37) 여짜오되 주의 영광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막 10:3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즉 예수님께서 불세례를 직접 받으신 것이고, 그 불세례는 십자가에서 받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령이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들"의 형체로 임하는 사도행전은 무엇인가를 생각하면,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형체로 임한 것이지 불이 성령이 아닙니다. 이는 예수님이 세례 받으실때 비둘기의 형체로 오신 성령을 생각하면 됩니다. 비둘기의 형체로 성경이 오신 것이지 "비둘기=성령"이 아니듯이요. 놀랍게도 "불 받아라= 성령 받아라"고 생각하는데, "비둘기 받아라= 성령받아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불의 혀같이 "갈라졌다"는 것도 "각 사람에게 하나씩 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즉 "성령 = 불과 같다"가 중심이 아니라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했다"가 강조점입니다. (행 2: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일단은 성령의 이미지에 대해 오해를 주는 구절중 하나인 성령을(혹은 성령의 불을) 소멸치 말라는 데살로니가전서 5:19는 헬라어를 보면 불이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그래서 일부 영어 성경에 성령의 불을 소멸치 말라고 표현한 번역은 좀 아쉬움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오순절을 보면 오히려 성령은 바람에 표현됩니다. (행 2:2) (행 2: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행 2: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행 2: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조금 내용이 다른 구절이긴 하지만 성령과 바람의 연관성 이미지만 생각할때, 예수님도 성령으로 난 사람을 바람과 연관시켜 이야기 하십니다. (요 3: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 구약에서도 성령이라는 단어 자체가 바람으로 보여집니다(민11장을 보면 사람들에게 부어진 영과 메추라기를 모는 바람이 같은 단어입니다, 성령은 히브리어로 루아흐입니다. 이는 바람을 뜻하기도 합니다, 히브리어 루아흐의 마지막 "흐"를 묵음 처리해야 하는지 발음해야 하는지도 말이 많습니다만....아무튼 히브리어로 성령과 바람은 같은 단어입니다). 또한 성령은 부어지는 기름으로 구약에서 정말 많이 표현됩니다. 이 예는 너무 많아서 요엘서만 인용하겠습니다. (욜 2:28)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모든 육체 (욜 2:29)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결국은 성령은 불의 이미지라기보다는 (그런 이미지가 있을 수도 있지만) 성경을 통해보면 바람이나 부어지는 기름 같은 이미지가 많습니다. 이를 생각해보면 불세례를 성령과 연관시키는 것은 (그럴수도 있겠습니다만 딱히 연관이 없어 보입니다) 좀 무리가 있습니다. 불세례는 심판이고 성령세례는 성령의 임함 입니다. 즉, 예수님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줄 수 있는 권세를 갖으신 분인데 불세례(심판)을 우리에게 주시지 않고 스스로 십자가에서 받으셨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성령세례만 임했던 것 입니다.
예수님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줄 수 있는 권세를 갖으신 분인데 불세례(심판)을 우리에게 주시지 않고 스스로 십자가에서 받으셨기 때문에 믿는(혹은 회개한) 우리에게는 성령세례만 임합니다.
요한의 물세례와 예수님의 불세례, 성령세례의 공통점은, "세례를 주는 것은 하나님께 받은 권세"라는 것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세례요한이 했던 가장 대표적인 일이 세례였는데, 사람들은 세례요한의 세례가 하나님께 받은 권세라고 여겼습니다. 특히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요한의 권세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물으신 것을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세례가 하나님의 사역인 것은 명확합니다. 고린도전서 10장을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홍해 바다를 건너며 구름기둥 아래서 세례를 받았다는 내용을 볼 때 세례는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것입니다.
(고전 10:1)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고전 10: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즉, 하나님의 사역인 세례를 세례요한이 주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받은 권세입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주시는 것도 하나님께 받은 권세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예수님이 하나님이십니다).
세례요한은 물세례를 할 수 있었고, 예수님의 제자들도 물로 세례를 할 수 있었습니다.
(요 4:1) 예수의 제자를 삼고 세례를 주는 것이 요한보다 많다 하는 말을 바리새인들이 들은 줄을 주께서 아신지라
(요 4:2) 예수께서 친히 세례를 주신 것이 아니요 제자들이 준 것이라
예수님은 성령과 불세례를 하시는데(마 3:11-12, 인용은 밑에 있습니다), 성령세례는 사도행전처럼 성령을 부이심 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받은 권세이고(요한복음 14장부터 이에 대해 언급하십니다. 예수님이 가심으로 성령이 오는 것이라고, 성령을 보내시겠다고요) 예수님께서 성령세례를 우리에게 하십니다.
(요 14: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요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반면에 불세례는 세례요한의 말대로 회개치 않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심판입니다(특히 마 3:10; 12).
(마 3:9)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마 3:10)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마 3:11)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마 3:12)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누가복음 12장에서도 예수님은 자신이 불세례를 받는 것을 말하셨습니다.
(눅 12:49)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눅 12:50)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와서 예수님의 좌우편에 아들들을 앉게 해달라고 했을 때도 예수님은 "예수님이 받을 세례"를 십자가와 연결시키십니다.
(막 10:37) 여짜오되 주의 영광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막 10:3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즉 예수님께서 불세례를 직접 받으신 것이고, 그 불세례는 십자가에서 받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령이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들"의 형체로 임하는 사도행전은 무엇인가를 생각하면,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형체로 임한 것이지 불이 성령이 아닙니다. 이는 예수님이 세례 받으실때 비둘기의 형체로 오신 성령을 생각하면 됩니다. 비둘기의 형체로 성경이 오신 것이지 "비둘기=성령"이 아니듯이요.
놀랍게도 "불 받아라= 성령 받아라"고 생각하는데, "비둘기 받아라= 성령받아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불의 혀같이 "갈라졌다"는 것도 "각 사람에게 하나씩 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즉 "성령 = 불과 같다"가 중심이 아니라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했다"가 강조점입니다.
(행 2: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일단은 성령의 이미지에 대해 오해를 주는 구절중 하나인 성령을(혹은 성령의 불을) 소멸치 말라는 데살로니가전서 5:19는 헬라어를 보면 불이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그래서 일부 영어 성경에 성령의 불을 소멸치 말라고 표현한 번역은 좀 아쉬움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오순절을 보면 오히려 성령은 바람에 표현됩니다. (행 2:2)
(행 2: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행 2: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행 2: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조금 내용이 다른 구절이긴 하지만 성령과 바람의 연관성 이미지만 생각할때, 예수님도 성령으로 난 사람을 바람과 연관시켜 이야기 하십니다.
(요 3: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
구약에서도 성령이라는 단어 자체가 바람으로 보여집니다(민11장을 보면 사람들에게 부어진 영과 메추라기를 모는 바람이 같은 단어입니다, 성령은 히브리어로 루아흐입니다. 이는 바람을 뜻하기도 합니다, 히브리어 루아흐의 마지막 "흐"를 묵음 처리해야 하는지 발음해야 하는지도 말이 많습니다만....아무튼 히브리어로 성령과 바람은 같은 단어입니다).
또한 성령은 부어지는 기름으로 구약에서 정말 많이 표현됩니다. 이 예는 너무 많아서 요엘서만 인용하겠습니다.
(욜 2:28)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모든 육체
(욜 2:29)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결국은 성령은 불의 이미지라기보다는 (그런 이미지가 있을 수도 있지만) 성경을 통해보면 바람이나 부어지는 기름 같은 이미지가 많습니다. 이를 생각해보면 불세례를 성령과 연관시키는 것은 (그럴수도 있겠습니다만 딱히 연관이 없어 보입니다) 좀 무리가 있습니다. 불세례는 심판이고 성령세례는 성령의 임함 입니다.
즉, 예수님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줄 수 있는 권세를 갖으신 분인데 불세례(심판)을 우리에게 주시지 않고 스스로 십자가에서 받으셨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성령세례만 임했던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