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나 중국의 수많은 왕들 중에 가장 흥미로운 인물중 한명이 명나라 영락제라 생각해서 관심갖고 본 영상인데 참 재밌어요 ^^ 한 가지 추가하자면 명나라 영락제 시대의 환관이던 정화 라는 사람이 큰 배를 만들어 먼땅으로 향하고 세계를 돌던 이유중 하나가 황제의 조카이자 2대 황제였던 건문제를 찾게 하기 위함이란 말도 있죠.. 불에 타 죽었단 소문만큼이나 어디 숨었다는 소문도 있었다면서..
@@기쁨조최고아웃풋리설 이방원과 주체는 실제로 만난 적은 있긴 합니다. 드라마 처럼 만난 것도 아니고 둘이 엄청 친해졌다는 것도 사실은 아니지만요. 그걸 보고 둘이 친해졌다고 하면 엄청 웃긴 건 맞네요. 여하튼 둘은 베이징 근방에서 우연히 만나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내용이 실록에 있습니다.
당시 여진은 아직 세력이 한미해서 조선급 정도나 되는 약소부족이었고 몽골(원)은 명태조 홍무제 시기 서달 등 한족군대에 털려서 카라코룸으로 밀려났습니다. 지금처럼 중국 내 한족에게 철저히 지배당해서 소수민족화된 내몽골이나 만주계만큼은 아니지만, 영락제 시기에도 세력이 축소되어 침략은 꿈꾸기도 어려웠던게 몽골 여진계입니다
서달 상우춘같은 공신들 사후, 홍무제의 숙청과 건문제 시기 삭번정책을 거치면서 군에 대한 중앙의 통제는 강화되었지만 필연적으로 변경 군사력의 약화를 불러오게 됩니다. 마치 송태조의 배주석병권 이후 문치주의로 빵셔틀이 되버린 송나라와 유사한 테크죠 북방 이민족을 견제하던 번왕부의 군사력을 바탕으로 찬탈에 성공한 영락제는 아이러니하게도 군에대한 문민통제를 강화합니다. 자신의 집권에 큰 도움을 주었고 이후 절대황제권 강화의 기반이 된 환관세력을 대대적으로 키워주게 되는데 문제는 환관인 이 태감들에게 감군지위까지 부여해 군에 대한 통제권 일부를 쥐어주게 됩니다. 군에 대한 문민통제야 고대 이래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나타나는 문제이고 이런 문민통제가 군에 대해 잘 알고 현장 지휘권은 전문 무관에게 일임하는 바로된 문관에 의해 수행되면 북경성 포위전의 우겸, 요동 방어선의 손승종이나 웅정필, 영원성 전투의 원숭환같은 좋은 결과를 보여줄 수 있지만 그게 아니라면 토목의 참변을 부른 왕진같은 대참사가 일어납니다. 실제로 환관인 왕진은 전술적 측면에서 대실책을 범해 50만의 정예병을 말아먹고 황제까지 포로로 잡히게 만들었고 이후 청과의 결전에서 청태종의 반간계의 매개로 이용된것 또한 군에 파견나왔다가 포로로 잡혔던 환관들이죠 여기에 더해 건국초기의 위소제에 의한 상비군체제는 사실상 후기 왜구가 준동하고 오이라트나 타타르부같은 몽골제부족들이 흥기하는 시기에 가면 붕괴되어 사실상 용병화된 자경단 성격을 가진 각지의 지방군위주로 군대가 재편되고(기효신서의 저자이자 북로남왜의 준동을 막아낸 명장 척계광의 척가군이 대표적 사례) 이러한 지방군들은 부임해온 총병관이나 도독첨사등 현지 고위장교들이 각지의 전선에서 길러낸 사병인 가정들로 채워지게 됩니다(척가군은 가정의 효시였고 임진왜란에 참전한 명군의 상당수도 이러한 가정이었습니다, 누르하치 또한 그 커리어의 시작은 요동전선의 책임자였던 이성량의 가정에서부터였습니다) 물론 명청결전은 믿을 수 없을정도로 엄청난 행운들이 청측에 연이어 발생하고 명측은 자살수준의 실책을 연달아 하지만 근본적으로 명군이 허무하게 무너진건 시스템적 측면이 크다고 봐야합니다.
원래 어느 나라던간에 건국초에는 나라를 지키기위해 군사력에 초점을 맞추지만 안정화되면 문치주의로 바뀌어집니다 그래서 초기에는 중앙을 보호하기위한 지방 번왕을 왕자들로 세우지만 나라가 안정화되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왕자들은 반대로 왕권에 도전할수있는 위협이 될수있기에 주원장죽고 그 작업을 하다가 반대로 역공당한거죠 북원을 막기 위해서는 연왕 주체를 어찌하기 어려웠던게 화근이지 않았을까 생각되네요
10만이라도 금나라(청나라)는 태어날때부터 말타는법을 배우고 자란 기병들이었고 중국에서도 북방민족들이 10만이 모이면 전 중국영토가 유린된다고도 했음 그만큼 당시 중국도 그들을 완전히 이길수도 지배하는것도 힘들어 했다는거임 그래서 "이이제이"라는게 나온거고 서로 이간질하고 뭉치지 못 하게 할러고 한건데 그것이 실패하면 중국은 항상 망했음
건문제가 자기 발에 덫을 놓는 어리석은 판단을 했군요. 게다가 주원장은 나름대로 자기 손자를 엿먹게 하는 숙청을 해버렸네요. 공신을 숙청할 거였으면 주체까지 죽여야 했습니다. 생각대로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결국 주체를 확실하게 막을 수 있는 장수는 없었고 심지어 기회가 왔어도 황제의 칙서 때문에 건문제 입장에서는 후환을 알아서 남겨둔 셈이네요
유럽의 영국에도 영국의 수양대군이라 불리는 리처드3세가 있죠. 리처드3세의 형인 에드워드4세가 죽고 리처드3세에겐 조카가 되는 에드워드4세의 어린 아들이 에드워드5세로 왕위에 올랐는데 리처드3세는 섭정을 맏았다가 어느날 조카인 에드워드5세와 그의 동생인 리차드를 런던탑에 감금하고 권자에 오릅니다. 기록에 따르면 런던탑에 갇혀있던 리처드3세의 두 조카는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서 사람들은 리처드3세가 두 어린 조카를 죽이고 남들 몰래 둘의 시신을 내다버린 것으로 생각하여 영국의 역사기록과 당시 일을 묘사한 문학작품에도 리처드3세는 악한으로 묘사됩니다. 내용은 분명 조선의 수양대군과 단종의 이야기와 같습니다. 런던탑은 많은 유령이 나오는 곳으로도 유명한데 런던탑에 나오는 유령중 리처드3세의 조카인 두 어린왕자의 유령도 나온다는 말도 있습니다. 훗날 리처드3세는 튜터가문과 내전을 벌이다 죽고 영국은 튜터왕조를 열게되니 리처드3세를 이어 헨리7세가 왕위에 오릅니다. 이가 바로 훗낳 6명의 부인을 두고 영국국교를 가톨릭에서 영국국교회로 바꾼 것으로 유명한 헨리8세의 아버지 헨리7세 입니다. 하지만 최근엔 리처드3세의 두 조카를 죽인게 리처드3세가 아니라 헨리7세란 주장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리처드3세가 죽었을 때 왕의계승의 적통인 두 소년이 살아있으면 왕위를 노리던 튜터가문에도 위협이 된다는 이유죠. 그래서 최근 영국에선 에드워드4세의 아들이자 리처드3세의 조카인 두 어린왕자를 죽인게 리처드3세인지 헨리7세 인지를 조사하는 일이 활발히 벌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건 1674년 런던탑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두 어린왕자의 것으로 보리는 유골 두구가 발견되어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보관되어 왔는데 최근 과학기술을 통해 이 두구의 유골이 죽은게 언젠지 조사하기로 결정 됨으로서 시작된 연구활동이라 합니다. 그래서 영국에선 두 어린왕자를 죽인게 리처드3세가 맞는지 아님 다른 주장대로 헨리7세로 밝혀저 리처드3세가 두 조카를 죽였다는 누명을 벗게될지 관심이 크다고합니다.
떠돌이 중국에 통일왕국 들어서면 걍 털렸는데 뭘 고구려가 700년이나 버텨? 수나라싸움때 이미 국력 다 털렸어. 그래서 당이랑 잘 지내볼려했는데 연개소문 임마가 엎어버려서 결국 멸망. 중국에 통일왕조 들어서면 답 없었거던? 역사가 증명하는데 뭔 조선이 중원을 도모해? 지나가던 개가 웃겠다.
떠돌이 님의 지적이 바른 인간의 도리이며 옳습니다. 인류사에 멸망 왕조들은 어떤 이유든 다 내부의 부패와 비리로 망하게 됩니다. 사회학 논리 중에, 현존하는 한국인의 30% 정도는 사대주의로 최적화된, 비굴한 기회주의로 살아 남은 유전자들이란 말이 정확하다고 봅니다. 강성한 고구려도 내분으로 멸망했죠. ㅡ 중국이 강성하면 주변국이 쪼그라든다고 사대주의자 시각으로 볼 수 있으나, // 중국이 강해서 통일 국가로 해 먹은 것이 아니라, 주변국이 저질이라서 중국이 강해진 것 뿐임이 옳습니다. // 근거는 중원의 통일 죄국인 한나라 유방이는 흉노에게 패해 항복하고/ 제 딸을 바쳤고/ 조공했으며, ㅡㅡ이후로도 주변국이 강해지면, 어김 없이 중국은 망했죠. ㅡㅡ 금나라, 등과, / 원나라 몽고/ 청나라 여진/ 고구려가 더 강했다면 중국의 주인임이 정답이고/ 현대엔 해적에 불과한 영국놈들과ㅡ 야만종인 왜구에게 깨졌죠/ 지금도 겨우 3억 남짓한 양키에게 발리는 중이고요. ㅡ 이런 증거가 중국이 강해서 대국이 아니고!! 주변국이 약할 때만 강자 행세를 한 것이 역사죠.ㅡㅡ 조선의 윤봉길 의사와 안중근 의사는 중국군 100만 명도 못하는 전과를 올린 민족이 한국 민족입니다. // 단체전인 중국 축구를 보면 중국인이 근본적으로 약체족임을 잘 나타내죠. ㅡ 1980년엔가 중월 전쟁은 중국이 얼마나 무능한 집단인지를 잘 보여 주죠. ㅡ 숫자만 믿고 행세하려는 중국이라고 봅니다.
gmk s 역사에 대한 해석이 다른걸 갖고 뭔 인간의 도리가 나옵니까? 어이가 없네. 강성한 고구려? 한반도 삼국중에선 젤 강했겠죠. 고구려도 중국과의 계속된 전쟁으로 이미 국력 다 털린상태서 내분난건데 뭔 소립니까? 인원빨로 조진다는데 그 인원빨에 밀린건 과거 왕조들인데 뭔 말도 안돼는 괘변을 길게도 늘어 놓으시네요
@@떠돌이-i8i 건문제 측이 병크에 병크를 되풀이하고, 주체는 운빨 오지게 받았기에 천운으로 가능했던 거에요. 정상적으로는 무조건 지는 각이었죠. 글구 고려말은 왜구들 분탕질 땜에 요동까지 보급능력도 없었는데 불가능해요. 최영의 요동정벌 주장 전에 이미 고려군이 요동성을 점거하긴 했었죠. 당시 장수가 지용수, 이성계 등이 원정갔었죠. 근데 이 때도 보급이 없어서 유지할 수 없는 형편이었기에 우리 영토로 할 수 없었던 거죠. 글구 님의 논리가 바로 1930년대 말 일본 내의 또라이들이 미국과의 전쟁을 주장하던 논리에요.
황제는 오직 하늘의 천명을 받아야 만들어지는 법이쥬. 여러번 남경과의 전투의 고비끝에서도, 북방에서도 수백번, 수천번 위기를 넘기면서도 끝까지 살아남고, 버텨내고, 이겨내서 마침내는 건문제 일파를 쓸어버리고 영락제로 즉위하죠. 하늘은 건문제에게 아주 잠시 천명을 허락했을 뿐입니다. 주체에게 주기전 잠시 가지고있으라고.
이 때 조선에서 쳐들어갔으면 적어도 요동반도는 먹을 수 있었겠네.. 요동반도를 점령하고 북원과 연합해서 명과 대항했으면 충분히 지킬 수도 있지 않았을까?? 명이 덩치크고 힘세다고 지레짐작하고 쫄아서 아무것도 못한 한심한 이씨조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겠지.. 만약에 고려였다면 충분히 그리 했을 것이다.. 그런 명의 빈틈이 없었어도 요동정벌군이 불과 10여년 전에도 있지 않았던가.. 남의 사직을 빼앗고 내부 정비를 하느라 이런 절호의 기회도 놓치고 그 후500여년을 공맹 타령 사대 뻘짓이나 하다가 왜놈들에게 전쟁도 없이 나라를 넘겨준 귀태의 나라.. 조선.. 쪽팔린다..
최영이 문하시중이 되기 전에 지용수, 이성계 등이 군을 이끌고 요동성을 점령했었어요. 근데, 그 보급선 유지 능력이 왜구들 분탕질로 인해 똥망이어서 그걸 유지할 수 없어서 철수할 수 밖에 없었어요. 최영 때도 사실 그 보급 능력은 크게 개선된 건 아니고요. 보급능력 없이 나라의 전체 운명을 건 도박을 하는 건 결코 합리적인 선택일 수 없죠.
요동 정벌이야 사대 소중화만 자처하지 않고 고려처럼 고구려 고토회복과 같은 진취적인 정신만 갖고 있었어도 언제라도 기회만 되면 시도할 수도 있었는데 조선이라는 나라는 애초에 사대 소중화를 표방해 그럴 수 없었다는 것이 더 큰 문제라는 겁니다.. 자주적인 고려를 무너뜨리고 권력의 정당성을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에서 찾고 진취적인 국가목표를 포기하고 공자왈맹자왈하며 부국강병, 민생과는 하등 상관없는 양반계층만의 형이상학적 말장난이나 하며 힘없는 백성들 고혈이나 빨아먹다가 임진왜란, 병자호란같은 굴욕이나 겪고 끝내는 일본에 허무한 멸망을 당한 것이죠.. 일본에 멸망을 당할때도 양반계급,지방 유지라는 작자들은 그 와중에도 대부분 또 일본에 붙었다지요..어차피 주체성 없이 중국에 사대하다가 새로운 강자 일본으로 그 대상을 바꾸는 것 뿐이니 별 정신적 갈등도 없었겠지요..요동정벌 포기도 문제지만 그것이 신호탄이 되어 자주 정신이 없는 넋빠진 국가를 만들었다는 것이 더 큰 문제라는 것이죠..
뭐 논건 아닌게 조공사신으로 정안군이 남경 갈 때 연경서 주체 보고 서로 호감 이상을 가졌으며 정안군은 주체를 결코 연왕에 만족할 사람이 아니라 평했죠. 결국 정안군 말 대로 주체가 먼저 정변에 성공했고, 정안군도 뒤따라 왕자의 난에 승자가 되면서 명 영락-조선 태종의 밀착외교가 성립합니다. 태종이 괜히 공신숙청을 할 수 있었을까요? 태종의 이런 외교력이 내정을 강화하는 큰 힘이 된 거죠.
저때 요동먹었다고해도 인구수가 딸려서 완전한 우리땅으로 만들수가없어 언젠가는 뺏기게되었있는 수순이였죠 최악의 상황이믄 한반도까지 통째로 몽골이 세계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의 제국을 만들어놓고 지금은 이 모양인 이유가 뭐겠어요 애초부터 북방의 소수민족에 불가하였기에 그 복속지역을 완전한 자기땅으로 만들힘은 부족했기에 그렇게된것이죠 저 중세시대는인구수는 국력과 정비례하던 시대입니다
반역자에게 숙부라서 죽이지 말라고 했다니...건문제황제가 큰땅을 통치하기엔 마음이 너무여렸네...
공시시절 피곤해서 한국사 책 펴놓고 조의제문 읽던거 생각나노
명나라나 중국의 수많은 왕들 중에 가장 흥미로운 인물중 한명이 명나라 영락제라 생각해서 관심갖고 본 영상인데 참 재밌어요 ^^ 한 가지 추가하자면 명나라 영락제 시대의 환관이던 정화 라는 사람이 큰 배를 만들어 먼땅으로 향하고 세계를 돌던 이유중 하나가 황제의 조카이자 2대 황제였던 건문제를 찾게 하기 위함이란 말도 있죠.. 불에 타 죽었단 소문만큼이나 어디 숨었다는 소문도 있었다면서..
오 정화의 대원정이 이렇게 생각될수도있군요?ㅋㅋㅋ재밌는 가설이네요
설명 해주시는게 동화책 읽어주는 느낌드네요ㅎㅎ
이금희씨라서 그래요..
@@tssam3843 무슨 이금희씨래요 ㅎㅎ
역사채널중 최고다!목소리좋아서 귀에쏙쏙들어옴!
원에 대항한 홍건적(후한말 황건적 아님)과 명나라의 연관성도 영상 만들어 주실 수 있을까요? 이 부분이 가설이나 해석이 생각보다 다양하던데
상황이 계유정난과는 전혀 다르네요
저런것이 황제감인가 싶네요
빠른 판단과 결단력 물러서지 않는 배짱
강인함 이런것들이 지도자의 자격인것 같습니다
명나라 관련 영화 리뷰를 했는데, 추천영상으로 이 영상이 뜨네요. 잘 봤습니다 ~^^
황제정도 되려면 실력+운빨 모든게 완벽해야 하는 구나
목소리 넘 이뿌네요.
매력 짱입니다.
성우니깐요.ㅎ
당태종 영락제 강희제 중국의 3대황제..
이 중 영락제 주체의 제위과정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하네요. 영락제의 남방원정으로 현재 동남아 경제를 주름잡는 화교의 진출이 본격적으로 이뤄졌다고 볼 수 있죠. 대단한 인물이네요
이런것 보면 황제는 하늘이 낸다는 것도 맞는 듯 객관적 열세에 여러번 북을 고비와 패배를 하고서도 세력을 보존하고 이긴것 보면
확실히 중국이란 나라는 스케일이 정말 어마어마 하군요.....
영상잘봤습니다..그리고 공감합니다...ㅠㅠㅜ
30만이고 50만이고 권력을 위해 한 가정의 가장들이 절대 쓸데없이 죽었네.
이게 팩트다
ㅋㅋ 명나라 안에 있는 개미새끼 한마리도 황제 개인 꺼임 우리가 체스둘때 폰하나 희생한다고 상관없는 것 처럼 황제도 똑같음ㅋㅋ
권세와 부귀영화는 즤들이 누리고 죽는건 병사들
명나라가 조선 의 도움 얼마나 줫는데 ㅋㅋ
@@아닌데-w9u 그거랑 뭔상관????
이방원과 주체는 황제가 된배경도 비슷해서 둘이 엄청친해짐
개소리야 만난적없더
무슨 만난적이 없어 명나라 사신가다가 만낫구만
@@원혁-r6s 역사를 드라마로 배웠네 ㅋㅋㅋ
역사기록에 그런거 없어
유아인이랑은 만났겠지 ㅋㅋㅋㅋ
@@기쁨조최고아웃풋리설 이방원과 주체는 실제로 만난 적은 있긴 합니다. 드라마 처럼 만난 것도 아니고 둘이 엄청 친해졌다는 것도 사실은 아니지만요. 그걸 보고 둘이 친해졌다고 하면 엄청 웃긴 건 맞네요. 여하튼 둘은 베이징 근방에서 우연히 만나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내용이 실록에 있습니다.
@@기쁨조최고아웃풋리설 태조실록 6권 태조 3년 11월 19일을 보시면 됩니다
듣기로는 주체도 죽을 위기 많았는데 주윤문이 삼촌이라고 죽이진 말라헸다는데
명나라 역사 재밌게 잘 하셨네요!
건문제가 너무 안이한것같아요
혹시 궁금해서 그런데 마지막에 나온 OST 제목이 뭔가요?
세조는 정난이라고하기엔 좀 민망하지ㅋㅋ 술쏜다고 동네 무인들부터 낮게는 한량들이나 건달들 모아놓고 잔치때 거사계획 밝히니깐 겁먹고 도망간 사람들이 다수ㅋㅋ 이때 세조도 쫄았는데 한명회가 멘탈 잡아줘서 망정이지ㅋㅋ
도대체 왕실의 군사는 수양의 오합지졸들을 왜 못막는지 궁금~세조의 군사도 보통 군사는 아니었을듯
이후 영락제에 의하 자금성이 만들어지지않나요~
공신들을 제거했죠 세조는 못했고요
세조가 딱 태종 반쪽짜리...
당시 신하들이 주체가 아닌 주윤문을 선택한건 주원장이나 주체나 둘다 폭력적이라 좀 유한 성품의 주윤문을 원한거
5:34 쟁반에 옥구슬 구르는 듯한, 소녀의 낭랑한
목소리로
천하를 일도양단할 의지가 담긴
강력한 결의를 선포하니
너무나 귀엽네요.
강력한 결의가 담긴, 나레이션의 목소리가
뇌리에서 잊히지 않을 것 같아요 ^^;
저때에 몽골이나 여진족이 대규모로 공격안해온게 천만다행이였는지도.. ㅋㅋ
당시 여진은 아직 세력이 한미해서 조선급 정도나 되는 약소부족이었고 몽골(원)은 명태조 홍무제 시기 서달 등 한족군대에 털려서 카라코룸으로 밀려났습니다. 지금처럼 중국 내 한족에게 철저히 지배당해서 소수민족화된 내몽골이나 만주계만큼은 아니지만, 영락제 시기에도 세력이 축소되어 침략은 꿈꾸기도 어려웠던게 몽골 여진계입니다
역시 역사랑놀자는 재밌습니다 그리고
공부도하고갑니다.
삼국지5 BGM좋네요 ㅎㅎ
저때 50만까지 우습게 모병하던 명나라가 어떻게 금나라 10만명한테 무너진거지?
저런 쿠데타가 못일어나게 하두 별의 별짓을 다하다보니 나중에는 10만명도 오합지졸로 모이는 상황이 오게됩니다.....
서달 상우춘같은 공신들 사후, 홍무제의 숙청과 건문제 시기 삭번정책을 거치면서 군에 대한 중앙의 통제는 강화되었지만 필연적으로 변경 군사력의 약화를 불러오게 됩니다.
마치 송태조의 배주석병권 이후 문치주의로 빵셔틀이 되버린 송나라와 유사한 테크죠
북방 이민족을 견제하던 번왕부의 군사력을 바탕으로 찬탈에 성공한 영락제는 아이러니하게도 군에대한 문민통제를 강화합니다.
자신의 집권에 큰 도움을 주었고 이후 절대황제권 강화의 기반이 된 환관세력을 대대적으로 키워주게 되는데 문제는 환관인 이 태감들에게 감군지위까지 부여해 군에 대한 통제권 일부를 쥐어주게 됩니다.
군에 대한 문민통제야 고대 이래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나타나는 문제이고 이런 문민통제가 군에 대해 잘 알고 현장 지휘권은 전문 무관에게 일임하는 바로된 문관에 의해 수행되면 북경성 포위전의 우겸, 요동 방어선의 손승종이나 웅정필, 영원성 전투의 원숭환같은 좋은 결과를 보여줄 수 있지만 그게 아니라면 토목의 참변을 부른 왕진같은 대참사가 일어납니다.
실제로 환관인 왕진은 전술적 측면에서 대실책을 범해 50만의 정예병을 말아먹고 황제까지 포로로 잡히게 만들었고 이후 청과의 결전에서 청태종의 반간계의 매개로 이용된것 또한 군에 파견나왔다가 포로로 잡혔던 환관들이죠
여기에 더해 건국초기의 위소제에 의한 상비군체제는 사실상 후기 왜구가 준동하고 오이라트나 타타르부같은 몽골제부족들이 흥기하는 시기에 가면 붕괴되어 사실상 용병화된 자경단 성격을 가진 각지의 지방군위주로 군대가 재편되고(기효신서의 저자이자 북로남왜의 준동을 막아낸 명장 척계광의 척가군이 대표적 사례) 이러한 지방군들은 부임해온 총병관이나 도독첨사등 현지 고위장교들이 각지의 전선에서 길러낸 사병인 가정들로 채워지게 됩니다(척가군은 가정의 효시였고 임진왜란에 참전한 명군의 상당수도 이러한 가정이었습니다, 누르하치 또한 그 커리어의 시작은 요동전선의 책임자였던 이성량의 가정에서부터였습니다)
물론 명청결전은 믿을 수 없을정도로 엄청난 행운들이 청측에 연이어 발생하고 명측은 자살수준의 실책을 연달아 하지만 근본적으로 명군이 허무하게 무너진건 시스템적 측면이 크다고 봐야합니다.
명장 원숭환을 사형시킨게 가장 큰 타격이죠
원래 어느 나라던간에 건국초에는 나라를 지키기위해 군사력에 초점을 맞추지만 안정화되면 문치주의로 바뀌어집니다 그래서 초기에는 중앙을 보호하기위한 지방 번왕을 왕자들로 세우지만 나라가 안정화되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왕자들은 반대로 왕권에 도전할수있는 위협이 될수있기에 주원장죽고 그 작업을 하다가 반대로 역공당한거죠 북원을 막기 위해서는 연왕 주체를 어찌하기 어려웠던게 화근이지 않았을까 생각되네요
10만이라도 금나라(청나라)는
태어날때부터 말타는법을 배우고 자란 기병들이었고
중국에서도 북방민족들이 10만이 모이면 전 중국영토가 유린된다고도 했음
그만큼 당시 중국도 그들을 완전히 이길수도 지배하는것도 힘들어 했다는거임 그래서 "이이제이"라는게 나온거고 서로 이간질하고 뭉치지 못 하게 할러고 한건데 그것이 실패하면
중국은 항상 망했음
정도전이 1차 왕자의 난으로 제거 되지 않았다면 명에서 정남의 변이 일어 났다면 조선 태조가 된 이성계와 함께 요동정벌을 진짜로 했을까요?
이 채널 너무 쪼아! 🥰❤️👍👍👍👍
와~ 결국엔 주체가 패퇴하고 끝나나부다... 인 줄 알았더니 막판 대역전에 성공해서 황위를 찬탈하다니 ㄷㄷㄷㄷ
역사를이리모르다니..애초에 주체가 영락제인것을 모르고있었나요
@@구독하면이번주로또1 모를수도있지;;누구는태어나면서 역사배우고 태어나나....
님은 대영제국 28대왕 누군지압니까?
역사를 이리모르다니...헛살았군요
@SM J 너 찐이지? ㅋㅋ 작성자비꼴려고 일부러 없는사람 말한거잖아. 이상하게 나대네. 너도 허겁지겁 검색해보고 안거같은데? 최소한 너보단 내가 역알인듯.ㅋㅋ 플러스로 너의 찐인증 잘봤다 ㅉ
너도 눈치없어도 당당한 모습 멋있다야
건문제가 걍 황제할만큼 마음이 독한사람이 아니었음
건문제가 자기 발에 덫을 놓는 어리석은 판단을 했군요. 게다가 주원장은 나름대로 자기 손자를 엿먹게 하는 숙청을 해버렸네요. 공신을 숙청할 거였으면 주체까지 죽여야 했습니다. 생각대로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결국 주체를 확실하게 막을 수 있는 장수는 없었고 심지어 기회가 왔어도 황제의 칙서 때문에 건문제 입장에서는 후환을 알아서 남겨둔 셈이네요
주체한테요 물려줄려했는데 죽일수없지 신하들말듣고 안물려준게다 망조만들없지 그개국공신들다 죽이면서는 왜주체한테 못물려주냐
그리고 누가 왕이 되든 주원장이야 잃을게 없죠 황제가 아들이든 손자든... 아마도 주체를 살려 둔 건 하늘에 운명을 맡긴 결정을 한듯 지가 황제가 될 상이면 살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죽을 것이다...
에듀카님 고맙습니다
나중에 영락제의 둘째 아들 주고후가 아버지를 본따 반란을 일으켰는데 첫째 아들 주고치(홍희제)의 아들 선덕제가 건문제의 교훈을 보고 처음부터 확실히 밟아서 죽여버립니다
정말 스케일이 어마어마 하네요.
우리나라는 수백명? 잘해야 천명 되려나...
그런데 저 나라는 집안싸움에 수십만명이 죽거나 다치네요.
역사적으로 그리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데 지금 인구가 13억 정도니...
저 나라 사람들은 애 낳는 기계인지.
황제든 누구든 가오잡다 인생종치는 사람이 대부분이구나..
잘보고가여 삼국지 브금 좋네여
이방원 주체는비슷하지만 스케일다름
주체가 고려출신 공비한테 태어났다는 설도 있고 원나라 여인에게서 태어났다는 설도 있는데 훌륭한 황제가 되다니 역시 영락제
명태조 주원장과 조선공비 사이에서 태여났습니다.
개소리ㄴㄴ영락제 엄마는 효자고황후인데 중국사람임.
한반도도 그렇고 중국도 그렇고 서양도 그렇고 항상 장성한 아들 냅누고 갓난이를 왕으로 세우다 일이 터지네요..
그놈의 장자승계타령땜시
이래서 인조가 봉림대군한테 왕위줌
@@gogoyogi5377 인조는그전 아들전부다 죽여버렸잖아
잘 보고 갑니다!!
브금이 익숙하다 했는데 '판다리아의 안개' 브금이었군요
그래서 저 당시 원래 친하고 성격도 비슷한 둘이 다 쿠테타 성공해서
조선과 명나라 사이가 좋았지..
잼있게 잘보고있어요~
왕족이면 혈통이 아니라 능력위주로 줘야된다
명나라가 대단한건 맞지만 청나라한테 박살나고 노예로 살았잖아..
조선도 일본에..
조선이 당시 청 한족 신사층들 노예로 살고 명 숭정제 만력제 제사 20세기까지 지내던 유사인종 노예 씨받이였지 바친 공물 인적이 얼마인데 어딜 노예 타령을 하냐 이 노예야
남경에 명나라 궁궐 남아있나요
백온 유기의 조언이 딱 맞지 금릉 성벽은 넘을수 있는건 제비밖에 없다고 한...제비 연..연왕 주체
백온 유기는 천재인듯요
이거 영상속 브금좀 알려주세요 ㅠ
유럽의 영국에도 영국의 수양대군이라 불리는 리처드3세가 있죠. 리처드3세의 형인 에드워드4세가 죽고 리처드3세에겐 조카가 되는 에드워드4세의 어린 아들이 에드워드5세로 왕위에 올랐는데 리처드3세는 섭정을 맏았다가 어느날 조카인 에드워드5세와 그의 동생인 리차드를 런던탑에 감금하고 권자에 오릅니다. 기록에 따르면 런던탑에 갇혀있던 리처드3세의 두 조카는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서 사람들은 리처드3세가 두 어린 조카를 죽이고 남들 몰래 둘의 시신을 내다버린 것으로 생각하여 영국의 역사기록과 당시 일을 묘사한 문학작품에도 리처드3세는 악한으로 묘사됩니다. 내용은 분명 조선의 수양대군과 단종의 이야기와 같습니다. 런던탑은 많은 유령이 나오는 곳으로도 유명한데 런던탑에 나오는 유령중 리처드3세의 조카인 두 어린왕자의 유령도 나온다는 말도 있습니다. 훗날 리처드3세는 튜터가문과 내전을 벌이다 죽고 영국은 튜터왕조를 열게되니 리처드3세를 이어 헨리7세가 왕위에 오릅니다. 이가 바로 훗낳 6명의 부인을 두고 영국국교를 가톨릭에서 영국국교회로 바꾼 것으로 유명한 헨리8세의 아버지 헨리7세 입니다. 하지만 최근엔 리처드3세의 두 조카를 죽인게 리처드3세가 아니라 헨리7세란 주장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리처드3세가 죽었을 때 왕의계승의 적통인 두 소년이 살아있으면 왕위를 노리던 튜터가문에도 위협이 된다는 이유죠. 그래서 최근 영국에선 에드워드4세의 아들이자 리처드3세의 조카인 두 어린왕자를 죽인게 리처드3세인지 헨리7세 인지를 조사하는 일이 활발히 벌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건 1674년 런던탑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두 어린왕자의 것으로 보리는 유골 두구가 발견되어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보관되어 왔는데 최근 과학기술을 통해 이 두구의 유골이 죽은게 언젠지 조사하기로 결정 됨으로서 시작된 연구활동이라 합니다. 그래서 영국에선 두 어린왕자를 죽인게 리처드3세가 맞는지 아님 다른 주장대로 헨리7세로 밝혀저 리처드3세가 두 조카를 죽였다는 누명을 벗게될지 관심이 크다고합니다.
Edward 5세와 동생이 어떻게 죽었는지는 몰라도, 그들을 강금한 사람은 Richard 3세인 것은 분명합니다. 최소한도 간접적으로 죽인 것입니다.
이방원이능 주체에 비하면 쉽게 왕 됐네
그나저나 저런 명나라를 상대로 요동을 치겠다고 했다라..;; 흠
사극으로만 보니 그렇게 보이는 거임
떠돌이 중국에 통일왕국 들어서면 걍 털렸는데 뭘 고구려가 700년이나 버텨? 수나라싸움때 이미 국력 다 털렸어. 그래서 당이랑 잘 지내볼려했는데 연개소문 임마가 엎어버려서 결국 멸망. 중국에 통일왕조 들어서면 답 없었거던? 역사가 증명하는데 뭔 조선이 중원을 도모해? 지나가던 개가 웃겠다.
떠돌이 님의 지적이 바른 인간의 도리이며 옳습니다. 인류사에 멸망 왕조들은 어떤 이유든 다 내부의 부패와 비리로 망하게 됩니다. 사회학 논리 중에, 현존하는 한국인의 30% 정도는 사대주의로 최적화된, 비굴한 기회주의로 살아 남은 유전자들이란 말이 정확하다고 봅니다. 강성한 고구려도 내분으로 멸망했죠. ㅡ 중국이 강성하면 주변국이 쪼그라든다고 사대주의자 시각으로 볼 수 있으나, // 중국이 강해서 통일 국가로 해 먹은 것이 아니라, 주변국이 저질이라서 중국이 강해진 것 뿐임이 옳습니다. // 근거는 중원의 통일 죄국인 한나라 유방이는 흉노에게 패해 항복하고/ 제 딸을 바쳤고/ 조공했으며, ㅡㅡ이후로도 주변국이 강해지면, 어김 없이 중국은 망했죠. ㅡㅡ 금나라, 등과, / 원나라 몽고/ 청나라 여진/ 고구려가 더 강했다면 중국의 주인임이 정답이고/ 현대엔 해적에 불과한 영국놈들과ㅡ 야만종인 왜구에게 깨졌죠/ 지금도 겨우 3억 남짓한 양키에게 발리는 중이고요. ㅡ 이런 증거가 중국이 강해서 대국이 아니고!! 주변국이 약할 때만 강자 행세를 한 것이 역사죠.ㅡㅡ 조선의 윤봉길 의사와 안중근 의사는 중국군 100만 명도 못하는 전과를 올린 민족이 한국 민족입니다. // 단체전인 중국 축구를 보면 중국인이 근본적으로 약체족임을 잘 나타내죠. ㅡ 1980년엔가 중월 전쟁은 중국이 얼마나 무능한 집단인지를 잘 보여 주죠. ㅡ 숫자만 믿고 행세하려는 중국이라고 봅니다.
gmk s 역사에 대한 해석이 다른걸 갖고 뭔 인간의 도리가 나옵니까? 어이가 없네. 강성한 고구려? 한반도 삼국중에선 젤 강했겠죠. 고구려도 중국과의 계속된 전쟁으로 이미 국력 다 털린상태서 내분난건데 뭔 소립니까? 인원빨로 조진다는데 그 인원빨에 밀린건 과거 왕조들인데 뭔 말도 안돼는 괘변을 길게도 늘어 놓으시네요
@@떠돌이-i8i 건문제 측이 병크에 병크를 되풀이하고, 주체는 운빨 오지게 받았기에 천운으로 가능했던 거에요. 정상적으로는 무조건 지는 각이었죠. 글구 고려말은 왜구들 분탕질 땜에 요동까지 보급능력도 없었는데 불가능해요.
최영의 요동정벌 주장 전에 이미 고려군이 요동성을 점거하긴 했었죠. 당시 장수가 지용수, 이성계 등이 원정갔었죠. 근데 이 때도 보급이 없어서 유지할 수 없는 형편이었기에 우리 영토로 할 수 없었던 거죠.
글구 님의 논리가 바로 1930년대 말 일본 내의 또라이들이 미국과의 전쟁을 주장하던 논리에요.
결론은 건문제가 주체한테 쫄아버려서 이길수없는거였음
왕자의난이랑 비교해서 누가 먼저죠?
주체가 저기서 죽어버리고 견문제가 자리를 유지했어야 명나라가 더 오래버텼을듯
저 주체가 명나라의 최전성기 이끈 영락제인데...?
이 때 조선에서 요동을 수복했어야했는데...
이후 영락제 손자는 숙부 반역 하자마자 몸소 군 이끌고 친정해서 가뿐 조기진압함 ㅋㅋ
역사의 교훈 ㅋㅋㅋㅋㅋ
선덕제 때 한왕 주고후의 반란
다시 황제로 복위
참고(그뒤에 주고후는 면회온황제의 발을 거는 장난을 쳐서 화가 난 황제에 의해 솥에 삶아졌다
역전패는 무조건 방심 때문임 ㅋ
역사는 역시 승자의 편.. 연왕 주체가 역전할때 나레이터 너무 즐거워하는거 아니냐...
잘봤습니다
목소리좋다
아나운선가
하지만 영락제의 후손들은 무능한 황제들만 줄줄이 나와버리죠........
그렇진 않습니다. 후대 명황제 중 홍치제 등도 명군으로 평가받습니다
영락제 장남 홍희제는 재위기간이 짧아서 그렇지 아버지가 죽인 건문제 세력을 복권시키는 문화군주였고 손자 선덕제도 잦은 원정으로 피폐해진 내정을 잘 다스렸음. 정통제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을뿐
명나라 때는 몇 살부터 성인으로 인정했나요?
연왕이 승리한 것은 항복한 원나라(몽골) 군대를 휘하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몽골기병의 힘으로 왕이 됩니다.
하늘이 도왔군요...
주체의 장인은
주원장의 오른팔 서달
이방원은 비교도 못할 클라스.........
번짓수를 잘못 골랐네요. 비교할 걸 비교하셔야지!
황제는 오직 하늘의 천명을 받아야 만들어지는 법이쥬.
여러번 남경과의 전투의 고비끝에서도, 북방에서도 수백번, 수천번 위기를 넘기면서도 끝까지 살아남고, 버텨내고, 이겨내서
마침내는 건문제 일파를 쓸어버리고 영락제로 즉위하죠. 하늘은 건문제에게 아주 잠시 천명을 허락했을 뿐입니다.
주체에게 주기전 잠시 가지고있으라고.
아깝. 저당시 조선이 북벌했으면 요동 먹었을듯 ㅠㅜ.
+ 어느나라 간에 2대 군주 태종은 쿠데타로 형제들 죽이고 즉위하네요;;
당 태종 이세민도 그랬던 걸 보니 그러네요
이 때 조선에서 쳐들어갔으면 적어도 요동반도는 먹을 수 있었겠네.. 요동반도를 점령하고 북원과 연합해서 명과 대항했으면 충분히 지킬 수도 있지 않았을까?? 명이 덩치크고 힘세다고 지레짐작하고 쫄아서 아무것도 못한 한심한 이씨조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겠지.. 만약에 고려였다면 충분히 그리 했을 것이다.. 그런 명의 빈틈이 없었어도 요동정벌군이 불과 10여년 전에도 있지 않았던가.. 남의 사직을 빼앗고 내부 정비를 하느라 이런 절호의 기회도 놓치고 그 후500여년을 공맹 타령 사대 뻘짓이나 하다가 왜놈들에게 전쟁도 없이 나라를 넘겨준 귀태의 나라.. 조선.. 쪽팔린다..
결과론적인 생각... 의미없슴다~
동감입니다.
북원과 조선의 힘이 약해도 양면 공격은 막기가 힘이 들었을 것입니다.
북방 민족이 중원을 먹기 전에 한반도를 먼저 정리를 한 이유입니다. 서희 이외에는 정작 본인은 그 장점을 잘 사용을 못 했습니다.
어차피 명이 안정화되면 그날로 조선은 끝장납니다.그리고 조선하고 북원은 사이도 안 좋았는데 무슨.요동 먹어본다는거 조선 초기에도 논의 있었음.국력차가 너무 나서 안한거지
최영이 문하시중이 되기 전에 지용수, 이성계 등이 군을 이끌고 요동성을 점령했었어요. 근데, 그 보급선 유지 능력이 왜구들 분탕질로 인해 똥망이어서 그걸 유지할 수 없어서 철수할 수 밖에 없었어요. 최영 때도 사실 그 보급 능력은 크게 개선된 건 아니고요. 보급능력 없이 나라의 전체 운명을 건 도박을 하는 건 결코 합리적인 선택일 수 없죠.
요동 정벌이야 사대 소중화만 자처하지 않고 고려처럼 고구려 고토회복과 같은 진취적인 정신만 갖고 있었어도 언제라도 기회만 되면 시도할 수도 있었는데 조선이라는 나라는 애초에 사대 소중화를 표방해 그럴 수 없었다는 것이 더 큰 문제라는 겁니다.. 자주적인 고려를 무너뜨리고 권력의 정당성을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에서 찾고 진취적인 국가목표를 포기하고 공자왈맹자왈하며 부국강병, 민생과는 하등 상관없는 양반계층만의 형이상학적 말장난이나 하며 힘없는 백성들 고혈이나 빨아먹다가 임진왜란, 병자호란같은 굴욕이나 겪고 끝내는 일본에 허무한 멸망을 당한 것이죠.. 일본에 멸망을 당할때도 양반계급,지방 유지라는 작자들은 그 와중에도 대부분 또 일본에 붙었다지요..어차피 주체성 없이 중국에 사대하다가 새로운 강자 일본으로 그 대상을 바꾸는 것 뿐이니 별 정신적 갈등도 없었겠지요..요동정벌 포기도 문제지만 그것이 신호탄이 되어 자주 정신이 없는 넋빠진 국가를 만들었다는 것이 더 큰 문제라는 것이죠..
목소리좋다..
주체 대체 어떻게 이겼누 ㄷㄷ
이때 조선이 안정된 상태였다면~~ 북벌도 가능했을텐데
육룡이 나르샤에서 방원이랑 무휼이 칼로 붙었던...?
정난은 난,
장난 아니네. 2대가 숙부에게 질려 불길속으로 뛰어든게야~
삼촌이라서 죽이진 못해도 체포라도 했으면 진작에 끝났을 일임
도대체 몇번을 싸운거야!
거지새끼엿던. 주군은훗날왕이되었다
지구촌흙수저 최고의반전
대륙 top5 안에 드는 황제 ㅎㄷㄷ
원래 남자분이 나레이터 하시지 않았나요? 여자분으로 바뀌셨네요.
원래 여자분이셨던걸로 아는데..
주윤문이 멍청했다는게 정설 아닌가요? 글고 적통장손도 아닙니다 황장손은 주윤문의 형인 주웅영이구요 여로모로 멍청한짓을 주원장이 한거죠 건국 초기에는 황권이 강해야 나라가 굳건한건데 ㅠ ㅠ
갱스터들의 싸움 ㅋ ㅋ 말이 황제지 쌈잘하는너미 왕이 되는거지, 초상화 원본보면 구렜나루나고 흐 ㄷ ㄷ 하지 자식이야 천하미인 얻어 자식 낳으니 업그레이드 된 잘쇙긴 넘이 태어나는거고 공주도 이쁜게 나오는거고
오초칠국 아니고 오호칠국 입니다
개판이야 중국왕조들은 .. 우리도 뭐 ㅋㅋㅋㅋㅋㅋ
주윤문하면 황제의검
대충조사한거 같은데 여러군데 틀렷서요.
띨띨한 건문제 바보네요 정말로
꼭 내전은 적통 문제... 적당히 싸지르지..
그러다 찬탈당하는거임
연왕 주체 별거 아닌데~~저때 요동정벌을 했어야 하는데 안타깝네요~
외교와 군사력을 이용해서 감행했어야 했는데....
발연기만 빼면 좋은 영상
주체가 왕감이네ᆞ
강한자가 군주가되여야만 국민이 평화스럽게살수있다, 명분에만 사로잡혀 현실을 외면하면, 그 결과는 참담합니다.
이때 조선은 뭐했냐. 주체를 도왔던 아니면 요동을 먹었던 절호의 찬스였는데.. 조선은 스케일이 작은 놈들이 나라를 세운게 문제였다
뭐 논건 아닌게 조공사신으로 정안군이 남경 갈 때 연경서 주체 보고 서로 호감 이상을 가졌으며 정안군은 주체를 결코 연왕에 만족할 사람이 아니라 평했죠. 결국 정안군 말 대로 주체가 먼저 정변에 성공했고, 정안군도 뒤따라 왕자의 난에 승자가 되면서 명 영락-조선 태종의 밀착외교가 성립합니다. 태종이 괜히 공신숙청을 할 수 있었을까요? 태종의 이런 외교력이 내정을 강화하는 큰 힘이 된 거죠.
저때 요동먹었다고해도 인구수가 딸려서 완전한 우리땅으로 만들수가없어 언젠가는 뺏기게되었있는 수순이였죠 최악의 상황이믄 한반도까지 통째로
몽골이 세계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의 제국을 만들어놓고 지금은 이 모양인 이유가 뭐겠어요 애초부터 북방의 소수민족에 불가하였기에 그 복속지역을 완전한 자기땅으로 만들힘은 부족했기에 그렇게된것이죠 저 중세시대는인구수는 국력과 정비례하던 시대입니다
아 깜짝이야
저기 중국애들 기록이니만큼 30만명, 50만명 등에서 0을 하나 빼야하지 않을까요?
저때 충분히 저정도는 모음ㅋㅋㅋ
명나라땐 가능함
일족을 살해했다는 내용은 없네
중국판 세조
세조는아님 원래가자리 물려받는건데 대신들반대 못받은거고 세조는그냥 빼앗은거고
운이 억수로 좋네
그때 요동만 정벌했어도
영상내용에 반박합니다. 애초에 신하들 말을 그렇게 잘 따른 주원장이였다면 숙청을 안했겠죠. 즉 주표의 아들을 태자로 세운건 순수하게 주원장 본인의 의지입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이런 유튜버는 진실이 아니라 조회수 먹고 사는 직업입니다.
그 의견에 반박합니다. 토사구팽이란 말이 왜 존재하나요? 목적을 달성하기까지 실컷 부려먹은 뒤 얼마든지 버릴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한 의견 역시 헛점이 있습니다.
브금 뭔가 익숙한 음이라 집중해서 들어 봤는데 와우 판다리아 배경음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