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봤습니다. 영상 보기도 전에 을지문덕 얘기가 댓글에 엄청 많아서 뭔가 하고 봤더니, 이름 실수를 좀 하신거네요. 영상 뒤에서 정정도 하고 정보란에도 써져 있는데 다들 사는게 빡빡한가 봅니다. 영화 본 후 좋은 공부가 되었고, 앞으로 더욱 좋은 영상으로 찾아와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래 바로 이거야... 이순신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시시때때로 기회가 닿는 대로 서양 같으면 "이순신" 하나로 100편의 영화가 나왔을 거라는 고언을 했었는데... 그것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듯 여기겠다. 지금의 한국인들이 서구식 직접화법을 흔하게 쓰면서 어휘 이해력은 50년 전과 비교조차 할 수 없이 낮아졌다. 그래서 부족한 학교 역사교육을 영화로 보완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과거 광개토대왕, 이순신처럼 연표나열식 드라마는 관심과 기억소재 부족으로 역사 상식과 의식 제고와 문화국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명량대첩도 해전위주만이 아니라 서양처럼 사슬 설치 픽션을 더하면 한편의 영화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한산, 부산포, 노량 등 수십 수백 편의 영화가 될 수 잇지 않을까? 진시황, 한고조, 한무제, 당태종 등 픽션이 더해진 무수한 중국 드라마가 참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에서 인문학을 대표하는 문사철을 외면하는 나라는 모두 서서히 쇠퇴와 망국의 길을 걸었다. - 먼저 조선까지 학문이란 인문학을 뜻해서 문과 과거시험 또한 인문학을 기반으로 한 학문들이었다. 세상만사 과유불급이라 사농공상 신분제의 이보다 해가 커져 정신과 인륜은 높았지만 실질에 취약해 오늘날 망국의 패악으로 매도되고 있는 것이다. - 이에 반해 서양의 학문은 인문학보다는 장사치들의 중상주의가 주도하는 학문이어서 실질에는 밝았지만 정신과 인륜은 낮았다. 중세 이후 라틴문화가 쇠퇴하고 특히 변방이었던 영국, 프랑스, 독일 등 게르만족들의 해적문화가 현대에 미국으로 이어졌다. - 이들은 우리를 세뇌한 서구사대주의와 달리 문화적 열등감이 극심해서약탈문화재로 경쟁적으로 대영박물관 루브루박물관 등을 세우는 문화사치로 채웠다. 왜구들이 끈질기게 문화재 약탈을 기도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래서 그 시대 고고학자들은 거의 도굴꾼이었고 서구문화계조차 "문화의 장물창고"라고 부르고 다만 긍정적인 부분을 낳을 수 있었던 것은 유럽, 백인우월주의 횡포와 만행을 저지르는 한편 문화적 비교열위를 인정하고 동양을 배웠다는 것이다. - 약 100년 전 미국의 원로 철학자가 죽으면서 미국 철학은 프랑스 철학을 부러워하고 프랑스 철학은 일본 철학을 부러워하는데...일본 철학은 중국 철학을 부러워 한다고 했다고 한다. - 너무나 구구하고 상투적인 말이지만 역사를 모르는 민족은 필연적으로 소멸한다. 하늘 아래 살아도 하늘을 모르고 사람 속에 살아도 사람을 모른다... 지금의 돈 안되는 역사 외면이 곧 민족의 위기를 암시한다는 것을 정작 우리 한국인만 모르는 것 아닐까?... 그나마 이런 방법으로라도 역사가 일반에게 다가가는 것이 무척 반갑다.
이름이 그렇게 중요한가요 조선후기에 양만춘이라고 했다면 양만춘이라고 부르면 되는것이죠 당나라 대군을 막아낸 역사적 사실이 중요한거지 이름이 중요한가요? 실제이름이 양만춘이 아니면 어떻습니까 안시성 성주라고만 칭하기엔 공이 약해보이네요 양만춘이라고 부르고 그의 공덕을 칭송하면 되는것이죠 조선시대에 양만춘이라고 한것도 아주 지어낸건 아닌것 같아요 중국의 어느 책에서라도 보고 쓴거겠죠
@@앤드류존슨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름이 조선시대밖에는 나오지 않으니 책이나 영화에서도 양만춘이라고 하지 말고 그냥 안시성 성주라고만 배워야 할까요? 이름을 기억하면 그 사람의 공적에 대해 기억하고 각인하기 쉽기 때문에 조선시대에 양만춘이라고 기록했으니 그렇게 부르면 되는거 아닌가요?
국사시간에 배우길... 고구려는 땅이 비옥하지 않아서 힘써 일구어도 먹고살기 힘들어서 옆나라에 가서 약탈을 했어야됐었음.. 그 약탈한 곡물을 저장하는 창고를 부경이라고 했고...그러다 보니 상무적 기풍이 있었고.. 걷는것이 뛰는듯 했다고 들었음.. 고구려가 부여에서 나온 나라인걸 감안할때 중국측이 부여와 고구려의 비교는 극과극 부여는 성격이 후덕해서 노략을 하지않는다고하고 고구려는 그 반대로 흉포하다고 기록!!
동방견문록에 마르코가 원나라 황실에서 경극을 관람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경극 내용은 없지만 한족을 ㅈ으로 보는 몽골족 입장에서 지금 우리가 알고있는 경극 내용은 아닌듯 합니다..요약하면 경극은 북방 민족(금나라.글안)의 문화가 아닌가 합니다. 여진. 경극의 주요내용은 대부분은 고구려 (연개속문.강이식.양만춘또는 치우)을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지금 한족 중심 경극이 안니고.. 참고로 조선말 까지도 의주 정주 에서는 잔치날 만족 경극을 했습니다. 지면상 많은 이야기 하기가 힘드네요. 한가지 더 말하면. 임진왜란때 이여송은 관왕이 아닌 치우 사당을 원했는데.... 선조. 진유격?이 관왕묘로 고집합니다...(실록에 없소) 그리고 서태후는 자신의 조상중에 양만춘을 가장 존경 하는듯 하고 ..서태후는 나쁜여자임. 한가지만더 말하면 보시라이 백부가 서태후의 총애을 받는 유명 경극 배우 였습니다. 연개속문역을 기가막히게 했다는설.
역사에서 수십만번 전쟁에서 손까락으로 셀수잇는 전쟁을 이긴거로 우려먹고 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 참 피곤하구나 소국이니 별 내세울 역사가 없으니 참 불쌍하다 !
고구려가 몽고의 초원의 다양한 목축을 하는 이들이 아닌데 약탈을 하여서 먹고 살고 한반도의 여러 곳을 약탈 한다 라는 것은 참 일리가 있네요. 말을 타고 다니면 멀리 갈수 있는데 한달아면 동남아의 바다 까지 진출 할수 있는데 한반도의 산수를 벗 삼아 산옆의 농토를 약탈 하면 정말 가슴 뿌듯 하겠읍니다.국토가 70프로가 산이라 온갖 나물을 캐면 그것을 약탈하는 재미 또한 정말 짭짤 하겠읍니다.고구려는 상나라와 연관이 있읍니다. 움직이는 자는 움직이지 않는 좌식 집단과 머리를 맞대고 대륙을 넘나들며 다양한 정보를 교환하며 무역을 하게 되어 있읍니다. 코리아,고려,고구려는 그때쯤 빙초산과 같은 것 들을 개발 하여서 전세계를 상대로 무역을 하던때 입니다.조선 이라는 말도 사실은 초를 선보였다 라는 말에서 나왔다고 보면 됩니다.빙초산을 대량으로 만들어서 전세계에 판매 하기 시작 한 것 이죠. 바이킹이 영국에서 다양한 곳을 넘나들며 나중에 전세계를 항행하는 시스템을 갖추었듯이 코리아는 전세계를 상대로 무역을 하였다 라고 보면 됩니다.고구려는 요나라로 연결 되고 요동은 요나라의 중앙의 동쪽 입니다.그러면 요서는 어디 일가요?
고구려 900년동안 황하유역에서는 50여개 왕조가 명멸하였는데 지나놈들은 고구려가 중국의 지방정권이라고 우긴다 고려는 고구려의 초기 국가명이며 이것을 계승한다고 왕건이 명시 하였으므로 고구려 중국 동북삼성과 연해주 시베리아 몽골등 전체 600만 평방킬로미터는 수복해야할 한민족 영토다
참역사입니다. 잘 봤구요 수고하셨습니다. 물론,나름대로 이해는 갑니다만 실사(당시 실재)를 잘 파악해야합니다. 예를들어 누가 아니라고 했다는 말의 글(한자)을 근거로 아니라한다든가 또,반대로 그렇다고 한다면 말은 되지만 사실과 거리가 멀다는 말씀입니다. 안시성 양만춘은 고려사와 당사에 양쪽다 기록되어있는 실존인물입니다. 우리나라 역사개념이 조선왕조시대 중국유교사상과 중국삼국지(소설) 중심 개념이다보니 오늘날 서울대 韓사학과나 재야 한단고기 모두 종교식으로 발달해있고 사이비종교화되어 혹세무민 하고있는데다 동영상시대를 맞아 관심을 끌고자 이런저런식 논리가 많은데 우리는 40년 간 세계사와 한국사를 전체적으로 연구해온만큼 참고해주시기바랍니다. 추가로 동북공정의 진정한 문제는,중국보다는,바로 우리 내부문제란 사실 점을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단순히 사대사상(유교사상) 문제가 아니라, 국내 중국인들(현재 623만명/조선왕손李씨들) 이 핵심으로 주도세력(동북공정 주범)이란 실체,정체 입니다. 일례들 봅시다. 이들 화교가 중국외 건국한 대표적 나라가 바로 조선(李조선왕조)이고,최근 국가는 싱가폴(이광요/화교) 란 사실입니다.(이성계,이방원등은 이광요 부자보다 저질 임) 먼저,현재 우리나라이름 韓은 중국지방이름이란 점 입니다. 현재 韓은 조선(기자조선/단군조선)에 이은 중국이름입니다. 현재 국사가 워낙 중국과 조선중심이라 알기어려운데요 깊이 생각해보면,하나는 분명하죠.중국중심이라는 맥락입니다 한의 우리말은 하늘(天=千=汗)입니다. 물론,조선왕손으로 중국계후손인 이병도는 삼한의 한을 韓으로 바꿔치기했는데 본래 汗(본래,클한=칸=큰)입니다. (중국사서 모두,후대에 중국중심(중화사상)으로 각색되 편찬됨) 왜 고구려는 이름을 구려(고려의 본래 우리말)라 했으며 한자로 고려(高麗)라 기록되어있을까 또,궁예는 왜 대진(=발해=큰해) 왕건은 고려(金=해/최강)라 했을까?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고구려나 고려 당시 역사학자들은 분명히 현재 서울대 교수나 존경하는 진명씨등보다 더 많은 자료와 지식을 갖고있었다는점 깊이 생각해봐야합니다.당시 더많은 기록자료들과 실증적 사관 이 단군신화와 같이 국호에 담겨진채 지금까지 전해져오고있다 는 역사적 팩트! 사실 점을 다시한번 고찰해 봐야 하겠습니다. 당신이 중국계 李씨라면 중국식으로,유교탈레반이라면 중국식 그러나 코리언이라면..,더구나 이땅의 역사,국사학자들이라면 이 점 좀 더 깊이 고찰 해봐야 할 대목이라고 사료됩니다. 감사합니다. 다른 내용은 아래 참역사동영상등을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ruclips.net/channel/UCXaf5_6wwFHhRxQMw9PLpeg?view_as=subscriber
패배하고 가는 적국의 왕이 비단을 하사했다는 것도 믿을 수 없는 중국의 기록일 뿐이다. 그것은 사실인양 말하고 화살에 맞아 도망갖다는 기록은 믿기가 어렵다는 것이 중국 기록의 대변인 인듯 말을 하고 있다. 시작에서부터 고구려가 약탈자이기 때문에 싸움을 잘한다는 말도 참 가당치 않은 말이다.
화살에 맞아 도망갔다는 기록은 없거든요. 그건 경극 내용에 나오는 야사일뿐이고 신채호가 지어낸 헛소리일 뿐입니다. 삼국사기에도 당서의 내용에도 그런 구절은 없습니다. 그게 사실이면 화살 맞은 당태종이 고구려원정에서 곧바로 설연타 원정을 가서 설연타를 멸망시켰다는 이야기인데 말이 되는 소리겠어요? 애초 고구려 원정에서 어떤 피해도 없었기 때문에 그 병력 그대로 설연타를 쳐들어가서 멸망시킬 수 있었던거죠.
중간에 정정했음에도 겁나깐다... 이걸까는 인간들은 얼마나 지식이 겁나 풍부하면 남의 유투브와서 까냐? 볼꺼면 영화사홍보해주는거 같은 설씨꺼 보러가지 왜 여기서 난리인거임? 학생들이 많이 보는데 야설이라든가 욕설쓰는 인성들보니 우리학생들도 이정도 인성은 아닌데 어른들은 댓글 알바들인가? 어른들 인성 참 별로네요... 이쌤은 시작하신지 얼마안됬는데 그리 견제세력이 많은건가?
아니라고 할 수 없으면 할 수 있는 근거를 대요. 기록이 없으니 아니라고 하느건데 무슨 아니라고 할 수 없다는 정신나간 소리를 합니까? 역사를 누가 그런식으로 이야기를 합니까? 무엇보다 양씨 자체가 한반도에 들어온게 금나라와 몽골제국의 송나라 한족들을 몰살시키면서 양씨들이 대거 고려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이들이 어떻게 고구려의 성주의 성씨가 될 수 있습니까? 몽골제국이 고려를 침략한게 송나라 인들을 송환하라는 요구를 거절해서라는 것도 모릅니까? 그 당시 고려로 피난온 송나라 사라들의 숫자만 100만명 이상인 것으로 봅니다. 일본으로도 50만명 이상이 피난간 것으로 추정을 하고 있어요. 중국에서 전쟁이 벌어졌다 하면 기본 10만단위 이상으로 한반도로 이주를 해왔습니다. 내가 풍씨였으면 믿을만하다고 하는건 북연이 멸망당하고 한족계 선비족인 풍소불이 북연 유민 수십만명, 삼국사기의 기록으로는 70리, 오늘날 거리 지표로 21키로에 달하는 엄청난 선비족 유민들을 데리고 고구려에 들어왔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입니다. 기존 고구려 인구의 4배 이상의 인구가 고구려에 유입이 되었고 그들 태반이 선비족입니다. 개로왕이 북위에 보낸 국서에 풍씨가 고구려에 들어간 이후 강성해져서 교만해졌다는 기록도 함께 나오죠. 이 사실로 풍씨가 고구려의 유력성씨였다고 보는 것이고, 차라리 중국의 기록에서 풍만춘이라고 했으면 믿을만했다고 이야기를 하는겁니다.
고구려는 천손을 주장하는 자주국가이며 주변 서토와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유일하게 굴복하지 않고 싸우며 이겨낸 국가입니다. 또 철이 많이 나오는 지역이기 때문에 전쟁물자 무기 그리고 무역에서도 이득을 볼수 있었고, 주변국들의 침략에서 싸워야 자신들을 지킬수 있었기에 용맹해야하며 싸움또한 잘했습니다. 농사지을땅이 별로없고 약탈을 해야해서 용맹해졌다? 고구려가 오랑케들 수준은 아닙니다. 지금 이 강의는 전반적으로 당신의 생각주장을 얘기하는거 같네요. 좀 아닌것 같습니다. 수정을 권합니다.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말씀하신 고구려의 특징이 맞습니다.하지만 영상을 잘 보시면 주몽이 세웠던 초기 고구려의 상황을 설명한 내용으로, 전체 고구려 특징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고구려의 용맹함이 어디서 나오는지, 가족에 대한 책임감과 끈끈한 정, 끈질긴 노력을 강조하고자 하였는데, 조금 더 강조를 하지 못해 오해를 산 것 같습니다.그리고 제 강의이기 때문에 당연히 제 생각을 말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자연황경 때문에가 아닌 '덕분에'일 테고, '교과서'발음은 '교꽈서'가 아니라 '교과서'입니다. '하구요'가 뭡니까... '하고요'겠죠.. '죽기 살기로 싸우는거죠'라고 썼는데 '싸우는 거죠'라고 띄어쓰기를 해야 했습니다... 정말 ㅡ.ㅡ 자막을 올바르게 적는 방법을 공부한 뒤 방송을 하시면 좋겠네요,, 그것만이 아니라 '살수대첩'을 '연개소문'이라고 하는 거 참 그래요... 절레절레
당신은 주인없는 집없고 리더없는 성이 없다. 그게 누구나고 .. 밝혀보시길 .. 그당시 안시성 성주가 누구인지... 의도적으로 이름이 삭제되었다면 그 이유 가 있을것이고 .. 그것을 밝히는 자가 바로 당신의 역활이 아닌가... 여기서 떠들시간에 그런 연구하는게 당신의 소임아닌가요 ?
근데..저 역사적으로 좀 에러 있는거 아닌가? 토성이 성쪽으로 무너지면 당나라쪽이 훨 유리한거 아냐? 졸라 사다리 걸쳐서 올라가야 하는데 토성으로 이어져 있으면 좀 경사가 있더라도 사다리타고 올라가는거보다야 경사진 언덕을 올라가는게 더 편하지 ㅋㅋ 토산을 고구려군이 선점하더라도 쪽수많은 당군이 밀고 올라가면 당군이 결국 점령할건데 뭔가 앞뒤가 안맞음 그리고 20만 대군이 2달이나 토산 쌓느라고 시간을 낭비한다? 이건 아니지...식량보충은 대체 어떻게 할건데 전투병만 20만이라고 하면 딸려온 인원만 엄청나다고 봐야함...그 많은 인원을 먹일 식량이 2달동안 버텨내질 못함 당태종이 ㅂ ㅅ이 아닌이상 토산이나 쌓고 있었을것 같진 않음...천하의 당태종이 안시성 점령못한걸 어떻게든 좀 무마해야 하는데 그걸 중국역사에서 안시성을 대단한걸로 좀 부풀려서 기록했을 가능성이 있음...그래야 점령못한게 덜 쪽팔리니까
흠... 당태종이 바보도 이니고 첨부터 토성을 쌓았겠냐고;; 공성무기로 존나 때리고 성벽도 넘어보려고 했는데 막혀서 당태종이 최후의 수단으로 그작전을 사용한거고 갑자기 토산이 안시성쪽으로 쏠린거고 안시성 정예부대가 빠르게 토산점령을 하고 당태종이 개빡쳐서 바로 토산책임자 조지고 3일동안 밤낮할꺼 없이 계속 몰아쳐서 공격했는데 안시성의 군사들이 진짜 각성해서 죽기살기로 막은거임 ㅇㅋ?
음.. 정말이지 못봐주겠네요.. 선조 때 중국쪽 역사서라고 하셨는데, 양만춘이라는 이름은 역사서가 아니라 명 나라의 소설 당서연의에서 처음 나옵니다. 그 소설에 나온 이름을 가지고 조선 후기 학자 송준길이 '동춘당선생별집'을 쓰게 되는 것이구요. 제대로 알고 비판을 하셨으면 좋겠네요.
양만춘 이름은 모르겟지만 안시성 성주가 이세민을 즉 당나라를 격퇴한건 확실한 사실 입니다
이름을 확실히 못알았기 때문일까요?팩트로만 본다면 거의 이순신급에 오를만한 장군인데 어쩐지 양만춘이란 이름이 유명하지 않은게 다 이유가있었네요...
안시성 전쟁차체가 조작한 역사다 .
조선에 책에서 "안시성 성주는 양만춘"이라 나옴
하늘아 안녕! 대학 선배 김지은이야. 완전 한번에 딱 알아봤네. 의젓하게 멋진 선생님이 되었네. 응원해!!
누나~!! 진짜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시죠?? 우와~~
박하사탐 서울이지? 나도 ㅋㅋㅋ 언제 차한잔 마시자:)
네~~ 연락주세요~!
자주 뵙네요 구독중이라서 재미있게 듣습니다 ♡♡
양만춘이란 이름이 중요한게 아니죠. 이름이 남지않은 아쉬움은 있지만, 성에 성주가 있었고 백성이 함께 대항해 이긴, 성을 지킨 사실이 중요하지요.
5:34 수나라의 수양제(양광)가 이끈 고구려 정벌은 2차가 아니라 3차 입니다.
나 2차인줄 알았는데 의도치 않게 알게됬네ㅋㅋ
2차야 무뇌야 2차침공할때 112만대군을 이끌고갔다고 기록으로나와있어
2차맞아요
@@hihi_you 원래는 4차 원정 까지다 무뇌야
네가 말한 기록은 어디서 보구 이야기 하는거니? 그리고 보이지 않는다고 말 함부로 하지마라
13:30 토산 입니다.
이거보구 영화가 이해가 잘됐네요
잘 봤습니다. 영상 보기도 전에 을지문덕 얘기가 댓글에 엄청 많아서 뭔가 하고 봤더니, 이름 실수를 좀 하신거네요. 영상 뒤에서 정정도 하고 정보란에도 써져 있는데 다들 사는게 빡빡한가 봅니다. 영화 본 후 좋은 공부가 되었고, 앞으로 더욱 좋은 영상으로 찾아와 주시면 좋겠습니다.
근데 토산은 왜 무너진거예요? 바람때문에? 아니면 영화처럼 광질하는 사람들이 희생해서?
중국의 기록에는 자기들이 무너뜨렸다고 나와 있습니다. 한국의 기록에서는 부실 공사로인해 무너졌다고 나와 있고요. 상황을 놓고 보면 부실로 인해 무너졌을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싶습니다.
재밌게 잘봤습니다
설명너무잘되요
흉노족 몽골족이 그랬다면
무도하고 잔인한 족속이라고
했을텐데, 고구려가 다른 족속을 침범하고 약탈했다고
하니까 용감하고 씩씩한 기상을 가졌다고 하네.
그 막강한 고구려가 멸망했다고 했을 때 이유를 납득하기 어려웠는데 이제야 시원하네요!!
선생님 이제 영상 안올리세요?
안시성 보기 전에 시청합니다.^^
과학 선생이지만, 역사에도 관심 많아서 재미있습니다.♡
샘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강의 쏙쏙 잘들어와요!!! 제가 지금 중학교2학년이여서 우연히 조선왕들영상으로 선생님을 알게되었어요!!! 더 재미있는 강의 많이 올려주세요!!ㅎㅎ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올라갈거에요~
싫어요 왜케많아 ㅠ 선생님 좋아용
살수대첩은 을지장군아닌가요??!!
영상 조금만 더 보시면 뒷부분에 을지문덕으로 정정합니다.. ㅠㅠ
재밌당!
어디서 보니깐 안시성으로 인해서 이세민이 퇴각 했고 안시성의 성주 이름이 양만춘이라고 간결하게 기록 되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실존 인물이다
인물은 실존한게 맞음. 헌데 그 이름이 양만춘이 아니라는 것임. 양씨는 고구려와는 상관없는 성씨임. 차라리 풍씨엿으면 믿을만했음.
혹시 지금 어딘가에 안시성전투에 대한 진실이적혀있는 책이있을지도..??!
은나아♥♥♥
정보석!
그래 바로 이거야...
이순신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시시때때로 기회가 닿는 대로 서양 같으면 "이순신" 하나로 100편의 영화가 나왔을 거라는 고언을 했었는데... 그것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듯 여기겠다.
지금의 한국인들이 서구식 직접화법을 흔하게 쓰면서 어휘 이해력은 50년 전과 비교조차 할 수 없이 낮아졌다.
그래서 부족한 학교 역사교육을 영화로 보완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과거 광개토대왕, 이순신처럼 연표나열식 드라마는 관심과 기억소재 부족으로 역사 상식과 의식 제고와 문화국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명량대첩도 해전위주만이 아니라 서양처럼 사슬 설치 픽션을 더하면 한편의 영화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한산, 부산포, 노량 등 수십 수백 편의 영화가 될 수 잇지 않을까?
진시황, 한고조, 한무제, 당태종 등 픽션이 더해진 무수한 중국 드라마가 참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에서 인문학을 대표하는 문사철을 외면하는 나라는 모두 서서히 쇠퇴와 망국의 길을 걸었다.
- 먼저 조선까지 학문이란 인문학을 뜻해서 문과 과거시험 또한 인문학을 기반으로 한 학문들이었다.
세상만사 과유불급이라 사농공상 신분제의 이보다 해가 커져 정신과 인륜은 높았지만 실질에 취약해 오늘날 망국의 패악으로 매도되고 있는 것이다.
- 이에 반해 서양의 학문은 인문학보다는 장사치들의 중상주의가 주도하는 학문이어서 실질에는 밝았지만 정신과 인륜은 낮았다.
중세 이후 라틴문화가 쇠퇴하고 특히 변방이었던 영국, 프랑스, 독일 등 게르만족들의 해적문화가 현대에 미국으로 이어졌다.
- 이들은 우리를 세뇌한 서구사대주의와 달리 문화적 열등감이 극심해서약탈문화재로 경쟁적으로 대영박물관 루브루박물관 등을 세우는 문화사치로 채웠다. 왜구들이 끈질기게 문화재 약탈을 기도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래서 그 시대 고고학자들은 거의 도굴꾼이었고 서구문화계조차 "문화의 장물창고"라고 부르고
다만 긍정적인 부분을 낳을 수 있었던 것은 유럽, 백인우월주의 횡포와 만행을 저지르는 한편 문화적 비교열위를 인정하고 동양을 배웠다는 것이다.
- 약 100년 전 미국의 원로 철학자가 죽으면서 미국 철학은 프랑스 철학을 부러워하고 프랑스 철학은 일본 철학을 부러워하는데...일본 철학은 중국 철학을 부러워 한다고 했다고 한다.
- 너무나 구구하고 상투적인 말이지만 역사를 모르는 민족은 필연적으로 소멸한다.
하늘 아래 살아도 하늘을 모르고 사람 속에 살아도 사람을 모른다...
지금의 돈 안되는 역사 외면이 곧 민족의 위기를 암시한다는 것을 정작 우리 한국인만 모르는 것 아닐까?...
그나마 이런 방법으로라도 역사가 일반에게 다가가는 것이 무척 반갑다.
징키스칸, 로마제국,약탈국가 이들국가도 약탈국가이다.
고구려는 900년의 역사를 지녔다.약탈로만 생활한것이 아니라 무역을 통한 부강한 국가가 되었다.
무역을 한 흔적은 없습니다.
@@fuckingkoreahell 여기또있네 물타기 알바
@@fuckingkoreahell 그쪽은 흉노족이면 그냥 중국으로 가세요 ㅋㅋㅋ그쪽하고 같은 흉노족들이 많으니까 ㅋㄱㅋ
공부 잘 했습니다..
삼국 통일을 신라가 아닌 고구려가 했어야 했는데~~~~
양만춘은 중국의 한 소설에서 나타난 이름일 뿐이지요.
우리는 그냥 안시성주라고 해야 합니다.
고구려의 영웅께서 얼마나 화가 나겠습니까.
5:40 연개소문의 살수대첩 ㅋㅋㅋㅋㅋㅋㅋ
양만춘 은 실존인물 입니다
원래 양만춘이라는이름이않아려져있었데요 그렇다가 조선쯤에서알려졌대요
디스하려는 움직임을 보니,,,대한국 영화 잘 뽑았나보네 다들 많이 봐주시면 좋을듯
썸네일보고 안시성은 실존인물이 아니다? 라고 잃음ㅋ
설민석님이 양만춘은 현존인물 이였단던데
설민석이 누구길래요? 역사학자는 아니라는 이야기네요.
선생님! 동영상을 보고 안시성 봤더니!! 너무 이해가 잘되었어요!! 좋은 강의 감사해요!!^^
하긴 기록에 의하면 김부식의 삼국사기에서는 그냥 안시성주라는 이름으로만 언급되어 있을 뿐이고 언제 태어나고 언제 죽었는지 조차도 기록에 남아있지를 않으니 ...
그걸 남길만한 가치도 없습니다. 안시성이 잘한게 아니라 당태종이 설연타의 반란소식을 듣고 애초 고구려원정을 중단한 상황있으니까요.
이름이 그렇게 중요한가요 조선후기에 양만춘이라고 했다면 양만춘이라고 부르면 되는것이죠 당나라 대군을 막아낸 역사적 사실이 중요한거지 이름이 중요한가요? 실제이름이 양만춘이 아니면 어떻습니까 안시성 성주라고만 칭하기엔 공이 약해보이네요 양만춘이라고 부르고 그의 공덕을 칭송하면 되는것이죠 조선시대에 양만춘이라고 한것도 아주 지어낸건 아닌것 같아요 중국의 어느 책에서라도 보고 쓴거겠죠
이런 태도가 역사를 접할때 가장 먼저 버려야 하는 태도.
@@앤드류존슨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름이 조선시대밖에는 나오지 않으니 책이나 영화에서도 양만춘이라고 하지 말고 그냥 안시성 성주라고만 배워야 할까요? 이름을 기억하면 그 사람의 공적에 대해 기억하고 각인하기 쉽기 때문에 조선시대에 양만춘이라고 기록했으니 그렇게 부르면 되는거 아닌가요?
양만춘이 아니였을 확률이 사실 높지만(양만춘은 신라식 이름이며 이어온 조선시대 스타일 이름, 연개소문 을지문덕 등이 고구려식 이름) 어쨌거나 안시성주의 업적은 팩트
신당서에는 안시성주라고 나옵니다 양만춘은 당나라연의 즉,그냥 소설책에서 지어낸 이름입니다 그런데 그걸 역사책에 써놓자?진짜 소름 돋는 발상이네요 전형적으로 인터넷으로 역사 주워들은 케이스.제발 폰 할 시간에 역사책 좀 보세요...
@@조건우-o3w 아 그래요? 근데 역사책에서 본것 같은 느낌이 들까요 암튼 양만춘이라는 이름이 확실치 않으니 부르지도 쓰지도 말고 안시성의 이름없는 성주라고만 알면 되겠네요? 잘 알겠습니다
이세적이 이름을 이적으로 바꿔서 다행이다
양만춘이라 안불르면 뭐라할껀데요?
안시성주라고 표현하는게 정확할겁니다.
국사시간에 배우길... 고구려는 땅이 비옥하지 않아서 힘써 일구어도 먹고살기 힘들어서 옆나라에 가서 약탈을 했어야됐었음.. 그 약탈한 곡물을 저장하는 창고를 부경이라고 했고...그러다 보니 상무적 기풍이 있었고.. 걷는것이 뛰는듯 했다고 들었음.. 고구려가 부여에서 나온 나라인걸 감안할때 중국측이 부여와 고구려의 비교는 극과극 부여는 성격이 후덕해서 노략을 하지않는다고하고 고구려는 그 반대로 흉포하다고 기록!!
동방견문록에 마르코가 원나라 황실에서 경극을 관람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경극 내용은 없지만 한족을 ㅈ으로 보는 몽골족 입장에서 지금 우리가 알고있는 경극 내용은 아닌듯 합니다..요약하면 경극은 북방 민족(금나라.글안)의 문화가 아닌가 합니다. 여진. 경극의 주요내용은 대부분은 고구려 (연개속문.강이식.양만춘또는 치우)을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지금 한족 중심 경극이 안니고.. 참고로 조선말 까지도 의주 정주 에서는 잔치날 만족 경극을 했습니다. 지면상 많은 이야기 하기가 힘드네요. 한가지 더 말하면. 임진왜란때 이여송은 관왕이 아닌 치우 사당을 원했는데.... 선조. 진유격?이 관왕묘로 고집합니다...(실록에 없소) 그리고 서태후는 자신의 조상중에 양만춘을 가장 존경 하는듯 하고 ..서태후는 나쁜여자임. 한가지만더 말하면 보시라이 백부가 서태후의 총애을 받는 유명 경극 배우 였습니다. 연개속문역을 기가막히게 했다는설.
양만춘 실존인물이다...
호태왕때
거란 정벌 비려 정벌 숙신 조공관개 후연 멸명시킴 동부여정벌
연호를 사용햇죠 "영락 "
북부여의 전신이 고구며이고 200년 700년 합치면
900년의 역사를 가지게 돕니다.
양만춘이라는 이름이 중요한것이 아니라 안시성의 성주가 당태종을 물리쳤다는 사실이 중요하지요,,
물리쳤으면 대단한건데 당태종 스스로가 회군을 한거라서 대단하지가 않죠. 안시성에서 후퇴한 당태종이 바로 설연타로 원정을 갔으니까요. 즉, 설연타 때문에 회군을 한거지, 안시성이 잘 싸워서 회군한게 아닙니다.
님 ,,혹시 일본사람이지요?
신라인입니다.
신라인으로 살지 마시고 대한민국사람으로 사세요,,
해상왕 장보고도 중국사서에서 찾아내었죠 묻혀질 뻔 했던 인물
일제시대 없애버린 2만여점의 크고작은 사서들
역사에서 수십만번 전쟁에서 손까락으로 셀수잇는 전쟁을 이긴거로 우려먹고 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우려먹고 참 피곤하구나 소국이니 별 내세울 역사가 없으니 참 불쌍하다 !
고구려는 우리나라 역사 아닌가요?
내공이 부족하네요
학자들도 다들 식민사관에 빠져있어가꼬 그리거 친일파들 때문에 역사가 되풀이 되고 있네요 안티깝네요
근데요 저렇게 큰 제국이 약탈을 통해 경제를 끌어 갔다고요?
그런데, 조금 있다가, 고구려가 당나라 공격에 망하는데.....
약탈로 가족을 먹여살려 치부해버리다니 답답갑갑하네요
정확히 알고나 역사를 말합니다 양만춘이 맞습니다
고구려가 몽고의 초원의 다양한 목축을 하는 이들이 아닌데 약탈을 하여서 먹고 살고 한반도의 여러 곳을 약탈 한다 라는 것은 참 일리가 있네요. 말을 타고 다니면 멀리 갈수 있는데 한달아면 동남아의 바다 까지 진출 할수 있는데 한반도의 산수를 벗 삼아 산옆의 농토를 약탈 하면 정말 가슴 뿌듯 하겠읍니다.국토가 70프로가 산이라 온갖 나물을 캐면 그것을 약탈하는 재미 또한 정말 짭짤 하겠읍니다.고구려는 상나라와 연관이 있읍니다. 움직이는 자는 움직이지 않는 좌식 집단과 머리를 맞대고 대륙을 넘나들며 다양한 정보를 교환하며 무역을 하게 되어 있읍니다. 코리아,고려,고구려는 그때쯤 빙초산과 같은 것 들을 개발 하여서 전세계를 상대로 무역을 하던때 입니다.조선 이라는 말도 사실은 초를 선보였다 라는 말에서 나왔다고 보면 됩니다.빙초산을 대량으로 만들어서 전세계에 판매 하기 시작 한 것 이죠. 바이킹이 영국에서 다양한 곳을 넘나들며 나중에 전세계를 항행하는 시스템을 갖추었듯이 코리아는 전세계를 상대로 무역을 하였다 라고 보면 됩니다.고구려는 요나라로 연결 되고 요동은 요나라의 중앙의 동쪽 입니다.그러면 요서는 어디 일가요?
안시성 성주는 양만춘입니다
성주는 실존했으나 이름은 양만춘이 아님. 양씨 자체가 고구려와 관계가 없는 성시임. 차라리 풍씨로 했으면 믿을만했음.
양만춘이라는 이름라 없을 순 없을텐데....
정사와 야사의 차이는 국가와 개인일 뿐 시대적 상황과 편찬하는 자의 성향으로 인해 왜곡되는 것은 똑같다 신라계 김부식이나 중국 춘추필법 이나 다를게 없다 그나마 있는 우리나라 정식 고대 역사서가 삼국사기 라는게 웃프다
여기서 더어이없는건 건안성이 안시성보다 더군사가많았고 큰성이였다는것.. 안시성보다약해서 공격한게아님
선생님 결혼 하셨어요?
당태종이 언제 항복을 했었는지 궁금하네요 함락시킬 수 없어서 퇴각을 한 것인데
항복한적도 없고 함락시킬 수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애초 공략할 의지가 없었으니까요. 후퇴를 해야 했거든요. 설연타가 장안성을 쳐들어오는데 안시성을 치는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큰 불이 반대편에서 일어났는데요.
백암성도 합락 됐고
고구려 900년동안 황하유역에서는 50여개 왕조가 명멸하였는데 지나놈들은 고구려가 중국의 지방정권이라고 우긴다 고려는 고구려의 초기 국가명이며 이것을 계승한다고 왕건이 명시 하였으므로 고구려 중국 동북삼성과 연해주 시베리아 몽골등 전체 600만 평방킬로미터는 수복해야할 한민족 영토다
량 만춘이라 해야 맞을 것입니다..ㅎㅎ
참역사입니다.
잘 봤구요 수고하셨습니다.
물론,나름대로 이해는 갑니다만 실사(당시 실재)를 잘 파악해야합니다.
예를들어 누가 아니라고 했다는 말의 글(한자)을 근거로 아니라한다든가
또,반대로 그렇다고 한다면 말은 되지만 사실과 거리가 멀다는 말씀입니다.
안시성 양만춘은 고려사와 당사에 양쪽다 기록되어있는 실존인물입니다.
우리나라 역사개념이 조선왕조시대 중국유교사상과 중국삼국지(소설)
중심 개념이다보니 오늘날 서울대 韓사학과나 재야 한단고기 모두
종교식으로 발달해있고 사이비종교화되어 혹세무민 하고있는데다
동영상시대를 맞아 관심을 끌고자 이런저런식 논리가 많은데 우리는 40년
간 세계사와 한국사를 전체적으로 연구해온만큼 참고해주시기바랍니다.
추가로
동북공정의 진정한 문제는,중국보다는,바로 우리 내부문제란
사실 점을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단순히 사대사상(유교사상)
문제가 아니라, 국내 중국인들(현재 623만명/조선왕손李씨들)
이 핵심으로 주도세력(동북공정 주범)이란 실체,정체 입니다.
일례들 봅시다. 이들 화교가 중국외 건국한 대표적 나라가
바로 조선(李조선왕조)이고,최근 국가는 싱가폴(이광요/화교)
란 사실입니다.(이성계,이방원등은 이광요 부자보다 저질 임)
먼저,현재 우리나라이름 韓은 중국지방이름이란 점 입니다.
현재 韓은 조선(기자조선/단군조선)에 이은 중국이름입니다.
현재 국사가 워낙 중국과 조선중심이라 알기어려운데요
깊이 생각해보면,하나는 분명하죠.중국중심이라는 맥락입니다
한의 우리말은 하늘(天=千=汗)입니다.
물론,조선왕손으로 중국계후손인 이병도는 삼한의 한을 韓으로
바꿔치기했는데 본래 汗(본래,클한=칸=큰)입니다.
(중국사서 모두,후대에 중국중심(중화사상)으로 각색되 편찬됨)
왜 고구려는 이름을 구려(고려의 본래 우리말)라 했으며 한자로
고려(高麗)라 기록되어있을까 또,궁예는 왜 대진(=발해=큰해)
왕건은 고려(金=해/최강)라 했을까?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고구려나 고려 당시 역사학자들은 분명히 현재 서울대 교수나
존경하는 진명씨등보다 더 많은 자료와 지식을 갖고있었다는점
깊이 생각해봐야합니다.당시 더많은 기록자료들과 실증적 사관
이 단군신화와 같이 국호에 담겨진채 지금까지 전해져오고있다
는 역사적 팩트! 사실 점을 다시한번 고찰해 봐야 하겠습니다.
당신이 중국계 李씨라면 중국식으로,유교탈레반이라면 중국식
그러나 코리언이라면..,더구나 이땅의 역사,국사학자들이라면
이 점 좀 더 깊이 고찰 해봐야 할 대목이라고 사료됩니다.
감사합니다.
다른 내용은 아래 참역사동영상등을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ruclips.net/channel/UCXaf5_6wwFHhRxQMw9PLpeg?view_as=subscriber
패배하고 가는 적국의 왕이 비단을 하사했다는 것도 믿을 수 없는 중국의 기록일 뿐이다. 그것은 사실인양 말하고 화살에 맞아 도망갖다는 기록은 믿기가 어렵다는 것이 중국 기록의 대변인 인듯 말을 하고 있다. 시작에서부터 고구려가 약탈자이기 때문에 싸움을 잘한다는 말도 참 가당치 않은 말이다.
화살에 맞아 도망갔다는 기록은 없거든요. 그건 경극 내용에 나오는 야사일뿐이고 신채호가 지어낸 헛소리일 뿐입니다. 삼국사기에도 당서의 내용에도 그런 구절은 없습니다. 그게 사실이면 화살 맞은 당태종이 고구려원정에서 곧바로 설연타 원정을 가서 설연타를 멸망시켰다는 이야기인데 말이 되는 소리겠어요? 애초 고구려 원정에서 어떤 피해도 없었기 때문에 그 병력 그대로 설연타를 쳐들어가서 멸망시킬 수 있었던거죠.
고구려영토가 왜저거지 지금요서가 고대요동인데
연개소문의살수대첩이아니라 을지문덕이고 연개소문은 사수대첩임 그리고 수나라는 고구려를 4차례침략한뒤 내부분열로 멸망 즉 살수대첩후 멸망한게아님 삼국사기에서 안시성 성주를몰랐다는데 그게아니라 자료부족으로 중국의서적을배껴서그런거임
광고...
싸우지 말고 그냥 보삼 댓글에서 겁나 싸우네;;;
중간에 정정했음에도 겁나깐다... 이걸까는 인간들은 얼마나 지식이 겁나 풍부하면 남의 유투브와서 까냐? 볼꺼면 영화사홍보해주는거 같은 설씨꺼 보러가지 왜 여기서 난리인거임?
학생들이 많이 보는데 야설이라든가 욕설쓰는 인성들보니 우리학생들도 이정도 인성은 아닌데 어른들은 댓글 알바들인가?
어른들 인성 참 별로네요...
이쌤은 시작하신지 얼마안됬는데 그리 견제세력이 많은건가?
왜 양만춘이 실존인물이 아니에요. 어이없는 소리를 하시네요...
안시성주는 실존했으나 그 이름이 양만춘이 아님. 양씨와 고구려는 아무 관계가 없음. 차라리 풍씨였으면 믿을만 했음. 풍씨는 고구려의 유력 성씨였음.
@@fuckingkoreahell 아니라고는 할수없지... 확실히 모를뿐이지... 당시 기록자체가 없으니...
아니라고 할 수 없으면 할 수 있는 근거를 대요. 기록이 없으니 아니라고 하느건데 무슨 아니라고 할 수 없다는 정신나간 소리를 합니까? 역사를 누가 그런식으로 이야기를 합니까? 무엇보다 양씨 자체가 한반도에 들어온게 금나라와 몽골제국의 송나라 한족들을 몰살시키면서 양씨들이 대거 고려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이들이 어떻게 고구려의 성주의 성씨가 될 수 있습니까?
몽골제국이 고려를 침략한게 송나라 인들을 송환하라는 요구를 거절해서라는 것도 모릅니까? 그 당시 고려로 피난온 송나라 사라들의 숫자만 100만명 이상인 것으로 봅니다. 일본으로도 50만명 이상이 피난간 것으로 추정을 하고 있어요.
중국에서 전쟁이 벌어졌다 하면 기본 10만단위 이상으로 한반도로 이주를 해왔습니다.
내가 풍씨였으면 믿을만하다고 하는건 북연이 멸망당하고 한족계 선비족인 풍소불이 북연 유민 수십만명, 삼국사기의 기록으로는 70리, 오늘날 거리 지표로 21키로에 달하는 엄청난 선비족 유민들을 데리고 고구려에 들어왔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입니다. 기존 고구려 인구의 4배 이상의 인구가 고구려에 유입이 되었고 그들 태반이 선비족입니다.
개로왕이 북위에 보낸 국서에 풍씨가 고구려에 들어간 이후 강성해져서 교만해졌다는 기록도 함께 나오죠. 이 사실로 풍씨가 고구려의 유력성씨였다고 보는 것이고, 차라리 중국의 기록에서 풍만춘이라고 했으면 믿을만했다고 이야기를 하는겁니다.
@@fuckingkoreahell 그것도 하나의 썰이죠~
알수없다는 말의 근거를 어찌댑니까 ㅋㅋ 당시 기록에 없으니 알수없다는거지...
@@fuckingkoreahell 풍씨 말하는거면 풍홍사건 말하는거 같은데... 내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는데 걔들 다 제거되지않았나?
고구려는 망한이유는 종교와 관련된것 같습니다. 고구려는 하늘에 제사를 지냈습니다. 결국 시간이 지나가면서 불교등 여러 종교들이 휩슬어서 고구려가 망한것입니다.
고구려는 천손을 주장하는 자주국가이며 주변 서토와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유일하게 굴복하지 않고 싸우며 이겨낸 국가입니다. 또 철이 많이 나오는 지역이기 때문에 전쟁물자 무기 그리고 무역에서도 이득을 볼수 있었고, 주변국들의 침략에서 싸워야 자신들을 지킬수 있었기에 용맹해야하며 싸움또한 잘했습니다. 농사지을땅이 별로없고 약탈을 해야해서 용맹해졌다? 고구려가 오랑케들 수준은 아닙니다. 지금 이 강의는 전반적으로 당신의 생각주장을 얘기하는거 같네요. 좀 아닌것 같습니다. 수정을 권합니다.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말씀하신 고구려의 특징이 맞습니다.하지만 영상을 잘 보시면 주몽이 세웠던 초기 고구려의 상황을 설명한 내용으로, 전체 고구려 특징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고구려의 용맹함이 어디서 나오는지, 가족에 대한 책임감과 끈끈한 정, 끈질긴 노력을 강조하고자 하였는데, 조금 더 강조를 하지 못해 오해를 산 것 같습니다.그리고 제 강의이기 때문에 당연히 제 생각을 말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설민석씨 알바 풀었나? 견제 세력 많네 ㅎㅎ
자연황경 때문에가 아닌 '덕분에'일 테고, '교과서'발음은 '교꽈서'가 아니라 '교과서'입니다. '하구요'가 뭡니까... '하고요'겠죠.. '죽기 살기로 싸우는거죠'라고 썼는데 '싸우는 거죠'라고 띄어쓰기를 해야 했습니다... 정말 ㅡ.ㅡ 자막을 올바르게 적는 방법을 공부한 뒤 방송을 하시면 좋겠네요,, 그것만이 아니라 '살수대첩'을 '연개소문'이라고 하는 거 참 그래요... 절레절레
때문에는 긍정.부정 둘다 쓰임...
띨망입니다
그럼 안시성주는 조인성이라 캅시다
당신은 주인없는 집없고 리더없는 성이 없다. 그게 누구나고 .. 밝혀보시길 .. 그당시 안시성 성주가 누구인지... 의도적으로 이름이 삭제되었다면 그 이유 가 있을것이고 .. 그것을 밝히는 자가 바로 당신의 역활이 아닌가... 여기서 떠들시간에 그런 연구하는게 당신의 소임아닌가요 ?
그떄 안 남긴 이름을 지금 무슨 수로 알 수 있습니까? 밝히고 싶어도 밝힐 방법이 없어요.
근데..저 역사적으로 좀 에러 있는거 아닌가?
토성이 성쪽으로 무너지면 당나라쪽이 훨 유리한거 아냐? 졸라 사다리 걸쳐서 올라가야 하는데 토성으로 이어져 있으면 좀 경사가 있더라도 사다리타고 올라가는거보다야 경사진 언덕을 올라가는게 더 편하지 ㅋㅋ
토산을 고구려군이 선점하더라도 쪽수많은 당군이 밀고 올라가면 당군이 결국 점령할건데 뭔가 앞뒤가 안맞음
그리고 20만 대군이 2달이나 토산 쌓느라고 시간을 낭비한다? 이건 아니지...식량보충은 대체 어떻게 할건데
전투병만 20만이라고 하면 딸려온 인원만 엄청나다고 봐야함...그 많은 인원을 먹일 식량이 2달동안 버텨내질 못함 당태종이 ㅂ ㅅ이 아닌이상 토산이나 쌓고 있었을것 같진 않음...천하의 당태종이 안시성 점령못한걸 어떻게든 좀 무마해야 하는데 그걸 중국역사에서 안시성을 대단한걸로 좀 부풀려서 기록했을 가능성이 있음...그래야 점령못한게 덜 쪽팔리니까
흠... 당태종이 바보도 이니고 첨부터 토성을 쌓았겠냐고;; 공성무기로 존나 때리고 성벽도 넘어보려고 했는데 막혀서 당태종이 최후의 수단으로 그작전을 사용한거고 갑자기 토산이 안시성쪽으로 쏠린거고 안시성 정예부대가 빠르게 토산점령을 하고 당태종이 개빡쳐서 바로 토산책임자 조지고 3일동안 밤낮할꺼 없이 계속 몰아쳐서 공격했는데 안시성의 군사들이 진짜 각성해서 죽기살기로 막은거임 ㅇㅋ?
@@김민상-g3j 그건아니구요 안시성전투에도 공백기가있습니다 한달동안 안시성공격안하고 주필산에서 주둔하다 내려와 그제서야 안시성을공격하다 토산을쌓게됩니다 그리고 토산이 점령당한 결정적이유는 부복애가 그-자리에없었습니다 그래서 고구려몇백명이점령했는데도 반격을못하고 우왕좌왕하다 패합니다 그때 부복애가있엇으면 반격을당해 오히려 고구려군이 무너졌을겁니다
@@Ryujinmm1 역사에 만약은 없음 결과만 있을뿐...
그건 대고구려인 조선족 백성들만 안다.
이방윈동간다
정치경제사회가 무너진거죠
역사 제대로 공부하고 가르치세요~에휴~각 성의 위치부터가 틀렸어요~ 에휴..
바른 설명을 하지 못하는군요~
수준저하 영상
야이 양반아 알려면 제대로 알고해 파급력큰 유튜브에서... 선조때 중국쪽 역사서에 양만춘이라는게 적혀있는걸 알고 그때부터 안시성주가 양만춘이라는게 정설인데 어디서 괘변을?
음.. 정말이지 못봐주겠네요.. 선조 때 중국쪽 역사서라고 하셨는데, 양만춘이라는 이름은 역사서가 아니라 명 나라의 소설 당서연의에서 처음 나옵니다. 그 소설에 나온 이름을 가지고 조선 후기 학자 송준길이 '동춘당선생별집'을 쓰게 되는 것이구요. 제대로 알고 비판을 하셨으면 좋겠네요.
정설은 개뿔. 으디에서 정설인지 ㅋㅋㅋㅋㅋㅋㅋㅋ 적어도 한국역사학계는 아니라고 본다
괘변이 아니라 궤변입니다.
중국쪽 역사서가 현재 현존하는 것도 아니고 말로 전해져 내려오는 것들뿐이고. 그것도 윤근수가 명나라 장수 말을 인용한 거고... 게다가 그 인용한 중국쪽 역사서는 다 '연의'가 붙은 소설책이라지? 당연히 불확실한게 당연 ㅋㅋㅋㅋㅋ
ㅁ
너는 빵점
고구려는 한국이랑 아무런 상관이 없다 망상하지말라
정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