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를 좌지우지한 조선의 여인 한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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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14 ноя 2024

Комментарии • 49

  • @무인도-c8r
    @무인도-c8r Год назад +36

    성종의 어머니 인수대비가 한계란을 명으로 보낸 한확의 따님이죠. 지독한건 부녀가 똑같아요.

  • @설부용-j7j
    @설부용-j7j Год назад +7

    주말인데 쉬지 않고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새로운 사실을 공부합니다.

  • @박태옥-h2u
    @박태옥-h2u Год назад +14

    한계란.
    영특하긴하지만
    너무슬픈역사이야기네요 ..ㅠ.

  • @하종송
    @하종송 Год назад +12

    네 이런 놀라운 궁중역사가 있었군요. 가슴이 뭉클해지고 큰 감동이 옵니다. 선덕제, 정통제, 경태제, 성화제로 이어지는 명초기 역사와 우리의 세조, 성종, 연산군으로 이어지는 조선초기 역사에 이렇게 깊이 있게 관여한 고려때의 기황후와 비슷한 우리 조선의 여인이 있었다니요. 놀랍습니다. 좋은 영상 좋은 내용 잘 봤습니다. 감사~~^^

    • @섭섭-b6l
      @섭섭-b6l Год назад +10

      기황후보다 훌륭한 거죠. 기황후는 고려에 악영향만 끼쳤는데, 한씨는 조선의 이익을 위해 명과 중재를 해준 거니...

  • @jinsajin4850
    @jinsajin4850 Год назад +5

    탕웨이가 주연한 대명풍화란 작품이
    딱 이시기를 배경으로한 드라마

  • @mochalatte04
    @mochalatte04 Год назад +14

    와 74세. 사람이 처세를 조심히, 둥글게 지혜롭게 하면, 사사로운 상처조차 비껴가며, 몸을 지키고 수명까지 보존할수 있는듯함.

  • @yune5597
    @yune5597 Год назад +15

    탐욕스러운 오라비보다 백만배 낫네

  • @상문노
    @상문노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인수대비의 고모

  • @에르브
    @에르브 Год назад +2

    원나라때부터 공녀로 많이 끌려감 그래서 조혼풍습이 생겨버림 그리고 잘 풀려서 황제총애받는 후궁이되면 친정가문이 덕을 보고살았음 그래서 고려때 기황후도 그친정가문이 세도부리고 조선때는 한계란이 명나라후궁되면서 그오빠랑그조카도 세도부림

  • @타키수녀님
    @타키수녀님 Год назад

    혹시 영상 썸네일에있는 한계란은 어느 드라마 한계란인가요 ?

  • @로버트레드포드-p6y
    @로버트레드포드-p6y Год назад +1

    인수대비 의. 아비
    한확. 지독한 인간일쎄

  • @jaehoonjun1278
    @jaehoonjun1278 Год назад +2

    두계란? 세계란 네계란.,계란한판..

    • @nakamura139
      @nakamura139 Год назад +3

      나도 계란2개 달고다니는데

  • @lovepeace123
    @lovepeace123 Год назад +1

    중국인이나 일본인 중에 유독 한국인같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여러 이유로 그 곳에 끌려간 한국인들의 후손이라 믿는다. 다신 이렇게 사람 뻬앗기는 역사 없기를...

    • @ssidgythi6400
      @ssidgythi6400 Год назад +1

      베트남 갔더니 꼭 한국인 같은 여자들이 있던데 우찌된거냐?

  • @Mystic86_7
    @Mystic86_7 Год назад

    헬스계를 좌지우지 하는 김계란

  • @user-lg7vj9bk5h
    @user-lg7vj9bk5h Год назад +1

    한국에는 김계란이 있다.

    • @nakamura139
      @nakamura139 Год назад

      나는 파이어에그있는데

  • @gyeongjahan6982
    @gyeongjahan6982 Год назад +3

    역시삼한갑족 의
    후손이라 남다름니다....

    • @mini01-n6i
      @mini01-n6i Год назад +4

      오라비가 권력에 눈이 멀어 동생판게 그것도 둘이나 팔아먹는 그런 가문의 삼한갑족 후손이 자랑이다

  • @감기조심-k2s
    @감기조심-k2s Год назад

    명나라까지 순장을 있었다니 그래도 문물이 동아시아에서 제일 발전했을 중국에서 그 때까지 미개한 풍습 중의 하나인 순장이 있었다는 것은 좀 깨는데?

  • @yune5597
    @yune5597 Год назад +12

    💥세상에 당시엔 여자가 그냥 물건이었구나
    황제죽는다고 순장시키고 노리개로 공녀로 보내고 맙소사

    • @리도나-e4v
      @리도나-e4v Год назад +2

      여자는 그나마 노리개 였지만, 남자는 개(집지키기, 일하기, 신부름꾼, 앞잡이..등)로 쓸모가 다하면 잡아 먹었지요!
      (그게 아니라면, 공기 맑고.. 천국이었겠죠)

    • @sugukaeruname
      @sugukaeruname Год назад +6

      @@리도나-e4v 노리개를 갖고 노는것도 개를 잡아 먹는것도 다 남자였어요. 아무리 집안이 좋고 능력이 있어도 신분질서의 정점에 서려면 남자가 아니면 불가능했습니다. 지금도 남자는 1등시민 여자는 2등시민 취급인데 저땐 어땠겠어요. 인정할건 인정하고 삽시다.

    • @김여름-u4k
      @김여름-u4k Год назад +1

      아직도 남자가 우세하다 하는 사람이 있네 모든 사람은 평등합니다

    • @sohuhwhat1702
      @sohuhwhat1702 Год назад +1

      ​@@sugukaeruname 무슨 지금 여자가 2등 시민 입니까? 당당히 시험 통과해서 각종 전문직에 종사하는 여자비율이 얼마나 높아졌는데요. 여자라서 안되는 게 아니라 그냥 노력부족, 능력부족인 겁니다.

    • @감기조심-k2s
      @감기조심-k2s Год назад

      @@sugukaeruname 그 말도 안되는 소리 좀 그만하쇼. 남자가 1등시민 여자가 2등시민 취급이라니 어떤 경우가 그렇단 말입니까?

  • @공순정-i9k
    @공순정-i9k Год назад +2

    청주한씨 양절공파 확 할아버지 지금 시대에 보더라도 현명한 결단이었군요 상세한 내용 감사합니다

    • @mini01-n6i
      @mini01-n6i Год назад

      현명한판단 좋아하네 권력에 눈이 멀어 피붙이 팔아 넘긴게 현명한 결단이여 한씨 집안에 남자가 귀한 이유가 여기에 있네 피붙이도 아무렇지않게 팔아 넘기는 파렴치한 집안에 삼신할매가 아들을 잘 점지할리가 있나 스스로 노력해서 권력잡을 생각은 안하고 동생이나 팔아넘기니 남자새끼들이 기가 약해서 남자가 귀한거야

    • @인생나락랄라라랄라이
      @인생나락랄라라랄라이 Год назад +1

      공안공파 이거든요 모르면서 아는척 하시는???

    • @로미-h1m
      @로미-h1m Год назад +1

      양절공이 맞아요.

  • @ginger5717
    @ginger5717 Год назад +1

    성노리개 .... 본질은
    조선은 진작 망했어야 함
    짜증

  • @VGAXPGIMMIN
    @VGAXPGIMMIN Год назад

    이름부터 (계란)

  • @박지희-z4n
    @박지희-z4n Год назад +2

    선덕제의 다른 후궁들은 입궐 20일 만에도 순장 된 자가 있다고 하는데, 무슨이유로 공신태비는 순장을 피 할 수 있었을까요?
    토목의 변은 정통제 즉위 이후이니 성화제양육은 그이후의 일 인것으로 보이는데,,,
    궁금합니다!

    • @EldoradoHistory
      @EldoradoHistory  Год назад +1

      수준 높은 질문에 저도 다양한 자료를 찾아보았습니다~ 명나라에서 순장이 금지된 것은 정통제 이후이고, 선덕제 사망 때는 10여명의 비빈들을 순장했지만, 거기에 왜 공신부인 한계란이 포함되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는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성화제 양육은 토목보의 변 이후가 맞습니다.

    • @박지희-z4n
      @박지희-z4n Год назад +2

      @@EldoradoHistory 저도 궁금해서 찾아보았지만 자료가 없네요 . 역사속 묻혀진 이야기가 더 궁금 해지네요:)
      남겨진 자료를 토대로
      언니 한규란(여비한씨) 의 순장 -
      1424년(조선 세종 6년, 명나라 영락 22년)
      동생 한계란(공신태비)의 명나라 입궐-
      1427년(조선 세종 9년, 명나라 선덕 2년)
      선덕제 졸 -
      1435년 1월 31일
      여비 한씨 유모 김흑 -
      한 씨순장 11년 후 인 세종 17년(1435년) 조선 귀환
      유모 김흑이 돌아온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조선과의 외교 / 조선인을 좋게 본 황실의 여인 /
      순장 당한 친언니 …
      아마도 추측 건데 이 사이 어딘가 순장을 면할 일화가 숨어 있지 않을까 … 조심스레 추측 해봅니다 !

    • @박지희-z4n
      @박지희-z4n Год назад +1

      추가로 찾은 내용에 의하면,
      김흑의 조선 귀환에 대한 내용이
      35년 4월 26일 기록된 세종실록에 적혀 있으니… 아마도 선덕제 죽기 전에 귀환을 시작 하였을 확율이 높다고 생각됩니다!
      조선까지 3-달 정도 소요 됬을테니까요^^

    • @감기조심-k2s
      @감기조심-k2s Год назад +1

      개인적인 추측인데 순장이 법도인 시절에도 최고권력자가 힘을 쓰면 피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물론 그 뒷이야기가 있긴하겠지요.

  • @신승희-m8d
    @신승희-m8d Год назад +1

    한계란두계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