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친 Moonma님이 H교수의 중개로 안익태=에키타이 안의 1942년 9월 '만주환상곡' 장면을 다시 편집해서 유튜브에 성공적으로 복원시켜 놓으셨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이미 밝힌 대로 이 40초가량의 연주회 클라이막스 장면은 프랑스국립영상원(INA)이 소장한 나치독일 점령기인 1942년 10월 2일자 전쟁뉴스의 후반부에 실려 있다. 당시 전황이 추축국에 불리하지 않았던 때문인지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톤이다. 화면의 연주장 맨 앞에 앉아 있는 자는 당시 주독 일본대사였던 육군중장 오시마 히로시이고 그 옆은 만주국 공사 루에 이- 웬(Lue I-Wen)이 아닌가 싶다. 현재 파리에 사시는 Y-L R.선생이 통역해준 아나운서 멘트의 내용은 이렇다. "A Berlin, le célèbre chef d'orchestre japonais Ekitai Ahn dirige lui - même l'exécution d'une de ses oeuvres qui révèle l'influence occidentale sur la musique nippone d'aujourd'hui. 옮기자면 "베를린에서는 유명한 일본인 지휘자 에키타이 안이 그의 작품 중 한 곡을 직접 지휘 연주하는데, 이 곡은 오늘날 일본 음악에 미친 서양의 영향을 보여준다." 이 시기는 1941년 12월 7일 일본의 진주만공습이후 아시아 태평양 전쟁이 한 창인 시점이었다. 당시 상해 임정은 진주만 공습 직후 대일 선전포고를 발동해 조선과 일본은 전쟁상태였다. 일본의 놀라운 전과를 목격한 독일 전역은 당시 일본붐이 불고 있었다. 안익태가 본격적인 친일 행각을 벌이기 시작한 것은 대략 이 시기였고, 독-일문화협정에 따라 독, 일 양국은 프로파간다 활동을 상호지원하고 있었다. 그 일환으로 반관반민의 가 독일 전역에, 그리고 는 일본전역에 조직되어 있었다. 바로 이 협회의 지원으로 에키타이는 어떤 인생의 절정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물론 에키타이 안이 재독 일본음악인의 선두 혹은 일진은 아니었다. 당시 전시 일본 수상의 친동생이자 일본귀족으로서 에키타이와 마찬가지 지휘자이자 작곡가이기도 했던 고노에가 먼저고 그 다음이 에키타이였다. 이 영상에서 연주되는 곡은 '만주환상곡'이다. 내가 누차 말한 바 있지만 에키타이는 1936년 전후 작곡했던 '코리아 환상곡'을 일종의 자기표절(우라까이?)해서, 바로 만주곡 건국 10주년을 기념 1942년 9월 18일에 맞추어 '만주환상곡'을 지휘했고, 에키타이는 독일점령국이거나 추축국을 중심으로 유럽 곳곳에서 자신의 이 곡 만주환상곡을 주로 지휘했다. 이 곡과 더불어 에키타이는 나중에 1950년대 들어 한국에서 '강천성악'이라는 이름으로 바꿔치기한, 일본궁중음악을 주제로 한 '에텐라쿠'도 당시 즐겨 연주했다. 그러다 1944년 연합군이 노르망디에 상륙한 뒤 당시 파리에 베에토벤 페스티벌을 위해 연주여행중이던 에키타이는 프랑코 파시스트정권이 집권한 스페인으로 도피한다. 일본인이지만 일본으로, 조선인이지만 조선으로도 가지 못한, 그렇다고 독일에 남을 수도 미국으로 갈 수도 없는 처지에서 그의 스페인행은 그의 친일행적을 은폐하기에 나름 '잘 된(?)' 선택일 지 모르겠다. 논란의 핵심은 지금 한 40초 정도 나오는 만주환상곡이 과연 애국가가 포함된 코리아환상곡이냐 아니냐다. 영상에 담긴 클라이막스 약 40초가 코리아환타지중 애국가 부분의 '싱크로율'은 상당히 높아 보인다. 그리고 이 합창의 가사는 당연 '대한사람 대한으로'가 아니다. 이 대사는 에키타이의 독일내 '스폰'이자 만주국 공사관의 참사관(councillor) 에하라 고이치가 쓴 만주국과 오족협화를 찬양하는 그런 내용이다. 현재 에키타이 본인이 만주환상곡의 악보를 폐기처분했고, 영상속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사용했을 악보는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지금 독립기념관에 남아 있는 코리아환상곡의 가장 오래된 버전은 에키타이가 스페인 도피중 가지고 있던 만주환상곡 악보를 폐기하고 이를 이보한 바로 그 것이다 훗날 에키타이는 이 악보를 '민족의 영도자' 이승만에게 헌정했다. 그리고 이 곡이 음반으로 제작된 것은 확실하다. 44년 말이후 전황이 추축국에 불리해지자, 사실상 추축국편이었던 스페인의 프랑코정권은 추축국을 지원하기 위해 에키타이의 '만주국'을 수차례 방송한 사실이 바르셀로나 라디오 방송국 편성표에 그 일자, 시간과 더불어 고스란히 나와 있다. 그리고 이 방송이 '음반'을 통해 나간 것도 기재되어 있다. 이 편성표는 내가 이미 포스팅한 바 있다. 바로 이 SP음반을 찾아 낸다면, 애국가 논쟁은 전혀 새로운 국면으로 갈 것으로 본다. 그때는 누구도 이 문제를 소닭보듯 할 수는 없을 게다. 안익태의 친일부역 행위 여부는 이제 전혀 논란거리가 될 수 없다고 나는 본다. 그저 이 동영상을 딱 한 번 보는 것만으로도 답변은 충분하다. 그리고 베를린 필름아카이브에 있어 접근이 힘들지만 7분짜리 영상도 이미 공개된 바 있다. 흔히 혹은 안익태의 '공식'(?)전기에는1942년 안익태가 베를린필을 지휘해 '코리아'를 연주했다고 되어 있다. 이 날조된 기록은 이제 정정됨이 마땅하다. 1942년, 안익태가 아니라 에키타이 안이, '코리아'가 아니라 '만주국'을 지휘했다고 말이다.
안녕하세요. 이해영 교수님. 저는 연세대학교 사학과 석사생 석지훈이라고 합니다. 지금 쓰신 코멘트를 보고 몇 자 남깁니다. 혹시 당시 방송 편성표를 제가 확인해 볼 수 있을지요? 일단 제가 보유하고 있는 당시 독일괴 스페인에서 제작된 시판음반 디스코그라피 자료에는 안익태나 이들 곡이 담겨있지 않습니다. 당시 방송용으로는 소위 SP음반이 아니라 특수제작된 33회전 16인치 반이 자주 쓰였는데, 아마 방송이었다면 이런 음반이 한번 제작되어 방송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 독일의 경우 이미 1930년대부터 테이프 녹음이 시판되어 방송에 많이 사용되었구요. 방송일자와 관련 자료만 조금 알려주시면 제가 알고 지내는 독일 지역 음반연구자들과 수집가들 가운데 이와 관련한 자료를 많이 보유하고 있는 이들이 있어서, 한번 물어볼 까 합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은 일본인 키테이 손이 탄 것이죠. 일본 식민지 시대를 살다간 문화예술인 들은 대부분 현실 순응을 하였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구체적인 정치적 신념이나 이데올로기를 선택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분야에서 개인적 영달을 추구한 그들을 현재의 잣대로만 보아서는 안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에키타이 안이 무슨 창씨개명한 것처럼 이야기하는 사람들 있는데 안익태를 한자로 번역기 돌려서 일본어로 어떻게 발음되는지 들어보세요. 전혀 달라요... 애초에 정말 창씨개명을 했다면 성을 안을 도요다나 무라야마 같은 정말 일본식 성으로 바꿨겠죠... 애초에 40년대 일본이 내선일체 앞세우기 전에 당시 조선사람들 일본식 이름으로 바꾸라고 하지도 않았고요... 그저 지금의 여권에 해당하는 도항증에 일본인 관리들이 익태를 제대로 발음도 못했는데 그걸 또 자기 멋대로 영문표기하면서 생긴 사례입니다...
★결론: 애국가를 바꿔야 한다★ 사람의 직업 때문에 어쩔수 없는 친일... 손기정과 안익태가 뭐가 틀린가? 라는 전제 때문에 참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불가리아 민요 ..오 도브루잔스키 크라이 ..곡을 애국가로 58%표절했다는 사실을 알았을때....이건...안익태의 뻔뻔함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애국가공청회 ..비전문가가 아닌 우리나라 최고의 전문가가 나와서 왜 표절인지 확실히 설명해 줍니다. 밑에 링크를 걸어놨으니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ruclips.net/video/ghj-7WXzanE/видео.html
한 가지 알아둬야 할 것이 애국가는 1935~36년 사이에 만들어졌으며 적어도 그 이후인 37년까지 안익태의 행적 중 친일로 단정할 만한 것이 발견된 적이 없다는 것인데요, 그렇지 않았다면 애초에 임시정부와 광복군에서 애국가를 국가로 선정하지 않았을 것인 만큼, 애국가까지도 '친일적이다'라는 표현은 조금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네요. 한국환상곡은 36년에 작곡되었습니다. 이후 수정 및 추가되는 부분은 있었지만. 단 하나의 사료를 가지고 물고 뜯고 씹고 즐기는건 아니라고 보여지구요, 밑에서 이 영상의 출처가 프랑스 국립영상원이라고 하는데, 다른 글에서는 헝가리 쪽이다 하는 확실하게 밝혀진것 같지도 않네요. 특히 애국가를 까면서 새로운 애국가 만들자, 임을 위한 행진곡을 국가로 지정하자는 헛소리는 자제를..... 정작 애국가, 한국환상곡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던 사람은 좀 더 면밀히 살펴봐야한다고 주장했는데, 이건 뭐 맹신해버리는 사람이 많으니 기가 차네요. 선동력이 장난이 아닙니다ㅎㅎ 끝으로 애국가의 작사자가 윤치호라는 설이 알려져 있고 그 분 또한 친일행적에서 자유로울 순 없죠 하지만 김구선생께서 '우리가 3·1운동을 무엇으로 했는가. 태극기, 선언서, 애국가로 했는데 그 작사자가 왜 문제인가?'라고 일갈했습니다. 애국가 폐지는 결국 임시정부의 국가였던, 정체성의 한부분이었던 것도 지워버리자는 것과 다름이 있나요..?
솔직히 우리가 왜 친일파인 안익태가 만든 곡으로 애국가를 불러야만 하는가? 일제시대 때 우리나라에서 퍼진 Auld Lang Syne(올드 랭 사인)으로 부른 애국가도 있는데 굳이 친일파인 안익태가 만든 곡으로 애국가를 불러야만 하는가? 물론 Auld Lang Syne(올드 랭 사인)은 외국 곡이긴 하지만 그래도 친일파인 안익태가 만든 곡 보단 스코틀랜드의 민요인 Auld Lang Syne(올드 랭 사인)으로 부르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No estoy de acuerdo con esa vision desde una perspectiva tan partisista, no saben el momento histórico que vivia ekitay ahn, fue el discipulo de Richard strauss hasta que Strauss murió, y todo el mundo sabe que Strauss y los músicos de esa epoca estaban muyvigilados. Ekitay Ahn mantuvo su nombre coreano, a pesar de que estaba prohibido tener nombres coreanos, esos años corea era todavia colonia japonesa, y Strauss mandaba a su amigo Ahn a dirigir las mejores orquestas europeas con solistas muy mayores, como emil sauer, disci pulo de Listz, quien sabe si entre los músicos, que es una teoria escrita por el gran S.Sweigt, se iban apoyando y protwgiendo? El joven Ahn podia moverse librevemwnte por europa, y siempre en comunicacion con grandes musicos. POR FAvoR, NO INTENTEN COLOCAR A Ahn, dentro de un marco político, un musico como el, que podia dirigir las 9 sinfonias de Beetoven sin partituras, es porque su mente y su corazón era solo musica y devoción, El decia que su musica bajaba del cielo y que el era solo un canal,no entendia la maldad, era un angel.
+Leonor Ahn No se la politica. Solo soy musico. Pienso que era una epoca muy dificil para los coreanos, todos los coreanos Ahn incluso. Hay un legado musical suo a pesar de las differentes opiniones de algunos. Io estoy aqui simplemente porque escucho la musica de Ahn. Quand era joven, no realizaba sus logros musicales. No hubia mucha informacion. Pero los entiendo mejor ahora porque hago musica desde mas tiempo y hay internet. De esa epoca, dirigir las mejores orquestas europeas es algo de muy special. No se preocupe. Siempre hay opiniones differentes. Algunos escriben y algunos no escriben. Personalmente, no tiene opinion politica. Para mi, lo importante es musica. Y Ahn era gran musico.
@@polska9333 거꾸로 알고 있음 만주환상곡이 먼저임. 그걸 표절해서 다시 만든게 한국환상곡이고.. 시대적으로 봐도 친일하면서 만주 환상곡을 만들고 나중에 세탁하면서 그걸 표절해서 6.25 이후에 만든게 한국환상곡인데 625때면 만주국 없어진지 오래인데. 한국 환상곡을 먼저 만들어졌다고 오해하는 부분은 36년에 독일에서 초연한 만주 환상곡을 이후 세대들이 한국환상곡으로 오해하고 있었다가 사실은 만주 환상곡이었다는 걸 나중에 알아서 생긴 오해... 상식적으로도 당시 일본과 동맹국인 나치 독일에서 한국 사람이 한국환상곡을 초연하는 게 어불성설이지.
친일부역자가 작곡 했다고 뭐라고 하는게 아니라 애초에 애국가 자체가 한국환상곡에서 따온 곡이고, 한국 환상곡은 만주 환상곡을 편곡한 곡이고 만주 환상곡은 일본 제국의 만주국을 위해서 헌상한 곡임.. 만주국에 헌상된 곡을 가져다가 애국가로 쓰는 꼴인데.. 이게 쉴드가 되는 한국 현실이 진짜 자존심도 없는 거지.
파파고 일본어 번역기에 ...안익태의 일본식 발음은 아이야레꾸시 ..입니다....★에키타이안은 독일어 공부를 안한 기자가 일본식 이름이라고 헛소리 한것이고...에키타이안은 안익태의 독일식 발음입니다..★★표절 논란...나는 비음악가라 비슷한 점을 못 찾겠고..설사 표절했다 치더라도..코리아 환타지가 먼저 작곡 (1935년)되었으며.만주국 환상곡(1942)이 표절했으므로 ..오히려 애국가가 피해자가 아닌가요?★ 안익태는 삼일운동도 참가 했으며 ,코리아 환타지 작곡했을때의 안익태는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작곡 했으므로 애국가를 굳이 바꿀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고 일본이 미국까지 쳐들어가니....가망 없는 한국 보다 강대국 일본에 붙어 같이 살아보자는 식으로 많은 변절자가 생겼듯이 예술활동을 하고 싶은 안익태는 돈과 권력이 필요 했겠지요....★ 안익태 스파이 설에 관한...내 상상력을 말하자면.....안익태는 돈이 필요 했고...일본 고관은 자식들 음악선생이 필요했겠죠...★잠시 변절한것은 배고픈 예술가가 잠시 양심을 팔았을 뿐.....이게 나쁜짓이라 생각하면 나쁜 짓이겠죠?..각자 가치관이 있으니 말입니다...★그러나...안익태 ... 에키타이 안.... 끝까지 한국 이름을 지켰듯이........어느 마음 한구석은 ...한국이 잘되기를 바라고 있었다고 상상해봅니다..★ 위 내용을 요약해 보면...애국가가 .. 잠시 다른곡으로 표절되었다고 애국가를 버린다는 것은....방탄 소년단의 다이나믹을 ..일본 그룹 아라시가 표절 했다고...방탄 소년단 곡을 버리자는 소리와 뭐가 틀린가요? ★국가가 없다고 자기 자신의 천직을 포기해야 합니까??? 손기정과 안익태의 차이점을 모르겠네요
이런 답답이들 때문에 역사가 왜곡되는 거임. 일단 한국 환상곡이 먼저다? 그러면 안익태는 오히려 처음에는 독립운동가이다가 나중에 친일로 바꿨다는 소리인데 . 그건 먼저 만주환상곡을 만들고 나중에 전향해서 한국환상곡을 만들었다는 소리보다 더 고인 모독임. 그리고 35년이 한국환상곡이 작곡된 해라고 잘못 알고 있는데 한국 환상곡의 2절은 일제치하의 고통 3절은 광복의 기쁨 4절은 6.25를 표현하는 내용임. 광복과 6.25가 35년에 벌어졌음? 36년에 독일 에서 안익태는 해당 곡으로 초연을 했는데 당시 독일은 나치 독일로 일본의 동맹국임. 한국환상곡으로 독일과 일본앞에서 일제치하의 압박과 광복을 기뻐하는 곡을 초연을 했으면 독일과 일본이 천사지. 시대적으로 보나 시간순으로 보나 만주 환상곡 -> 한국환상곡(표절) -> 애국가(발췌) 인데. 단순히 친일파가 작곡을 했다고 곡을 비판하는 게 아니라 애초에 곡 자체가 일본제국의 만주국에 헌상된 곳을 가져다가 애국가로 쓰고 있으니 문제 제기를 하는 거고.. 친일하다가 스페인으로 도망간 사람하고 손기정 선생님을 비교하다니 방탄 소년단은 왜 끌어다가 욕을 먹이는지도 모르겠고 전혀 방탄 안되고 있음.
폐친 Moonma님이 H교수의 중개로 안익태=에키타이 안의 1942년 9월 '만주환상곡' 장면을 다시 편집해서 유튜브에 성공적으로 복원시켜 놓으셨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이미 밝힌 대로 이 40초가량의 연주회 클라이막스 장면은 프랑스국립영상원(INA)이 소장한 나치독일 점령기인 1942년 10월 2일자 전쟁뉴스의 후반부에 실려 있다. 당시 전황이 추축국에 불리하지 않았던 때문인지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톤이다.
화면의 연주장 맨 앞에 앉아 있는 자는 당시 주독 일본대사였던 육군중장 오시마 히로시이고 그 옆은 만주국 공사 루에 이- 웬(Lue I-Wen)이 아닌가 싶다. 현재 파리에 사시는 Y-L R.선생이 통역해준 아나운서 멘트의 내용은 이렇다. "A Berlin, le célèbre chef d'orchestre japonais Ekitai Ahn dirige lui - même l'exécution d'une de ses oeuvres qui révèle l'influence occidentale sur la musique nippone d'aujourd'hui. 옮기자면 "베를린에서는 유명한 일본인 지휘자 에키타이 안이 그의 작품 중 한 곡을 직접 지휘 연주하는데, 이 곡은 오늘날 일본 음악에 미친 서양의 영향을 보여준다."
이 시기는 1941년 12월 7일 일본의 진주만공습이후 아시아 태평양 전쟁이 한 창인 시점이었다. 당시 상해 임정은 진주만 공습 직후 대일 선전포고를 발동해 조선과 일본은 전쟁상태였다. 일본의 놀라운 전과를 목격한 독일 전역은 당시 일본붐이 불고 있었다. 안익태가 본격적인 친일 행각을 벌이기 시작한 것은 대략 이 시기였고, 독-일문화협정에 따라 독, 일 양국은 프로파간다 활동을 상호지원하고 있었다. 그 일환으로 반관반민의 가 독일 전역에, 그리고 는 일본전역에 조직되어 있었다. 바로 이 협회의 지원으로 에키타이는 어떤 인생의 절정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물론 에키타이 안이 재독 일본음악인의 선두 혹은 일진은 아니었다. 당시 전시 일본 수상의 친동생이자 일본귀족으로서 에키타이와 마찬가지 지휘자이자 작곡가이기도 했던 고노에가 먼저고 그 다음이 에키타이였다.
이 영상에서 연주되는 곡은 '만주환상곡'이다. 내가 누차 말한 바 있지만 에키타이는 1936년 전후 작곡했던 '코리아 환상곡'을 일종의 자기표절(우라까이?)해서, 바로 만주곡 건국 10주년을 기념 1942년 9월 18일에 맞추어 '만주환상곡'을 지휘했고, 에키타이는 독일점령국이거나 추축국을 중심으로 유럽 곳곳에서 자신의 이 곡 만주환상곡을 주로 지휘했다. 이 곡과 더불어 에키타이는 나중에 1950년대 들어 한국에서 '강천성악'이라는 이름으로 바꿔치기한, 일본궁중음악을 주제로 한 '에텐라쿠'도 당시 즐겨 연주했다. 그러다 1944년 연합군이 노르망디에 상륙한 뒤 당시 파리에 베에토벤 페스티벌을 위해 연주여행중이던 에키타이는 프랑코 파시스트정권이 집권한 스페인으로 도피한다. 일본인이지만 일본으로, 조선인이지만 조선으로도 가지 못한, 그렇다고 독일에 남을 수도 미국으로 갈 수도 없는 처지에서 그의 스페인행은 그의 친일행적을 은폐하기에 나름 '잘 된(?)' 선택일 지 모르겠다.
논란의 핵심은 지금 한 40초 정도 나오는 만주환상곡이 과연 애국가가 포함된 코리아환상곡이냐 아니냐다. 영상에 담긴 클라이막스 약 40초가 코리아환타지중 애국가 부분의 '싱크로율'은 상당히 높아 보인다. 그리고 이 합창의 가사는 당연 '대한사람 대한으로'가 아니다. 이 대사는 에키타이의 독일내 '스폰'이자 만주국 공사관의 참사관(councillor) 에하라 고이치가 쓴 만주국과 오족협화를 찬양하는 그런 내용이다. 현재 에키타이 본인이 만주환상곡의 악보를 폐기처분했고, 영상속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사용했을 악보는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지금 독립기념관에 남아 있는 코리아환상곡의 가장 오래된 버전은 에키타이가 스페인 도피중 가지고 있던 만주환상곡 악보를 폐기하고 이를 이보한 바로 그 것이다 훗날 에키타이는 이 악보를 '민족의 영도자' 이승만에게 헌정했다.
그리고 이 곡이 음반으로 제작된 것은 확실하다. 44년 말이후 전황이 추축국에 불리해지자, 사실상 추축국편이었던 스페인의 프랑코정권은 추축국을 지원하기 위해 에키타이의 '만주국'을 수차례 방송한 사실이 바르셀로나 라디오 방송국 편성표에 그 일자, 시간과 더불어 고스란히 나와 있다. 그리고 이 방송이 '음반'을 통해 나간 것도 기재되어 있다. 이 편성표는 내가 이미 포스팅한 바 있다. 바로 이 SP음반을 찾아 낸다면, 애국가 논쟁은 전혀 새로운 국면으로 갈 것으로 본다. 그때는 누구도 이 문제를 소닭보듯 할 수는 없을 게다. 안익태의 친일부역 행위 여부는 이제 전혀 논란거리가 될 수 없다고 나는 본다. 그저 이 동영상을 딱 한 번 보는 것만으로도 답변은 충분하다. 그리고 베를린 필름아카이브에 있어 접근이 힘들지만 7분짜리 영상도 이미 공개된 바 있다.
흔히 혹은 안익태의 '공식'(?)전기에는1942년 안익태가 베를린필을 지휘해 '코리아'를 연주했다고 되어 있다. 이 날조된 기록은 이제 정정됨이 마땅하다. 1942년, 안익태가 아니라 에키타이 안이, '코리아'가 아니라 '만주국'을 지휘했다고 말이다.
안녕하세요. 이해영 교수님. 저는 연세대학교 사학과 석사생 석지훈이라고 합니다. 지금 쓰신 코멘트를 보고 몇 자 남깁니다. 혹시 당시 방송 편성표를 제가 확인해 볼 수 있을지요? 일단 제가 보유하고 있는 당시 독일괴 스페인에서 제작된 시판음반 디스코그라피 자료에는 안익태나 이들 곡이 담겨있지 않습니다. 당시 방송용으로는 소위 SP음반이 아니라 특수제작된 33회전 16인치 반이 자주 쓰였는데, 아마 방송이었다면 이런 음반이 한번 제작되어 방송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 독일의 경우 이미 1930년대부터 테이프 녹음이 시판되어 방송에 많이 사용되었구요. 방송일자와 관련 자료만 조금 알려주시면 제가 알고 지내는 독일 지역 음반연구자들과 수집가들 가운데 이와 관련한 자료를 많이 보유하고 있는 이들이 있어서, 한번 물어볼 까 합니다.
아 반갑습니다 이메일 주소를 알려주십시오 2haeyoung@gmail.com
Hae-Young Lee 4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은 일본인 키테이 손이 탄 것이죠. 일본 식민지 시대를 살다간 문화예술인 들은 대부분 현실 순응을 하였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구체적인 정치적 신념이나 이데올로기를 선택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분야에서 개인적 영달을 추구한 그들을 현재의 잣대로만 보아서는 안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anomimo tierra 근데 안익태는 자발적 친일파였으니 문제지.
안익태가 작곡하여 만주국에 헌정한 곡인데, 해방후 그 일부분을 따서 오늘날의 애국가로 다시 부르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니, 애국가를 바꾸자는 의견이 설득력이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대체할 곡이 없어서 쓰이는 실정
만주환상곡 전곡을 공개해 정황학 비교가 필요합니다.
안익태가 독일서 스페인으로 튄 이유가 있었구나 ㅋㅋ
어쩐지 국가까지 만든분이 왜 해방후 스페인에서 죽었지? 하면서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그는 나치와 협력한 파시스트 정권이였지만 공식 참전은 안해서 연합국의 점령은 피한 스페인이 유일한 탈출구라 생각했을것.
국제적으로 활동하긴 했지만 스페인 귀화까지 했으니...
안익태 선생의 부인인 로리타 안 여사가 스페인, 그것도 귀족가문 출신입니다...
그냥 부인따라 처가에 가서 산거죠...
그리고 정말 독일 나치들은 스페인이 아니라 주로 아르헨티나 같은 남미지역으로 도주했습니다...
만주환상곡 -> 한국환상곡(애국가)
만주 민주 공화국이 중국으로 부터 독립해 중국에서 금지곡인 안익태 만주환상곡을 듣는 그날이 빨리 오길바란다
무슨 얼빠지 소리를 !
친 나찌 겸 친일 군국주의자다.
일본에 충성하는 나라에 반역자가 애국훈장받으면서 국립묘지에 있다는게 잘못된 역사....애국자란 도대체 무엇을 정의하는가??
안익태는 좌파성향을 가진 인물이었는데요?
@@dahdah5510 안익태의 반민족 행위에 대해 이야기 하는데 좌우파 따지는건 의도가 있나요?
네다음 에키타이 안
에키타이 안이 무슨 창씨개명한 것처럼 이야기하는 사람들 있는데 안익태를 한자로 번역기 돌려서 일본어로 어떻게 발음되는지 들어보세요. 전혀 달라요...
애초에 정말 창씨개명을 했다면 성을 안을 도요다나 무라야마 같은 정말 일본식 성으로 바꿨겠죠...
애초에 40년대 일본이 내선일체 앞세우기 전에 당시 조선사람들 일본식 이름으로 바꾸라고 하지도 않았고요...
그저 지금의 여권에 해당하는 도항증에 일본인 관리들이 익태를 제대로 발음도 못했는데 그걸 또 자기 멋대로 영문표기하면서 생긴 사례입니다...
★결론: 애국가를 바꿔야 한다★
사람의 직업 때문에 어쩔수 없는 친일...
손기정과 안익태가 뭐가 틀린가?
라는 전제 때문에 참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불가리아 민요 ..오 도브루잔스키 크라이 ..곡을 애국가로 58%표절했다는 사실을 알았을때....이건...안익태의 뻔뻔함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애국가공청회 ..비전문가가 아닌 우리나라 최고의 전문가가 나와서 왜 표절인지 확실히 설명해 줍니다.
밑에 링크를 걸어놨으니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ruclips.net/video/ghj-7WXzanE/видео.html
이동영상를 어떻게 구하셧죠........?
왜 전곡을 공개 못 하나요? 처음부터 다 듣고 싶은데.
彼は日本人だ。
@@호성-p1v 그사람은 일본인이다 彼=그 사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어휴ㅠ
그냥 일본인이네요
친일파 안익태의 애국가를 과감히
폐기처분합시다!
우리의 후손들에게 창피해지지 맙시다!
아리랑겨레.
아름다운 나라.
이리 좋은 곡들도 있습니다!
안챙피함
@@Haggy_oficial 창피함
@@호성-p1v 한국인들은 살아있는게 창피한일이다.
아리랑 겨레 뛰면서 부르면 사람 죽어요
@@까고보니진주나옴 지는
브라보!!! 에키타이 안!!!
아 이새끼 지랄하네
ㄴㄴ이렇게 해줘야지 ブラボ!!!!
@@주정중 안익태 친일파 새끼
우리나라는 민족 반역자의 노래를
국가로 쓰고있다는 것이 한심하다...
그리고 해외에서 온갖 친일행동을 해놓고
몇십년 뒤에 한국에 와서 뻔뻔하게 이승만
전(고)대통령 앞에서 노래 지휘 했다죠
@@whyunnn1 그건 그나마가사는 바꾸었다고하네요.
@@JunHyeon 안바꾸는게 이상한거죠;;;;
정식국가 아니레요
애국가든 만주국이든간에 작곡실력이 별로구만
애국가?....요즘 취미로 미디음악하는 학생들이 지어도 그보단 나을듯
그기다가 이걸 또 코리아 환상곡에 또 써먹었다지...
친 나찌 겸...친일 군국주의자 안익태다.
애국가를 당장 바꾸자.
한 가지 알아둬야 할 것이 애국가는 1935~36년 사이에 만들어졌으며 적어도 그 이후인 37년까지 안익태의 행적 중 친일로 단정할 만한 것이 발견된 적이 없다는 것인데요, 그렇지 않았다면 애초에 임시정부와 광복군에서 애국가를 국가로 선정하지 않았을 것인 만큼, 애국가까지도 '친일적이다'라는 표현은 조금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네요. 한국환상곡은 36년에 작곡되었습니다. 이후 수정 및 추가되는 부분은 있었지만.
단 하나의 사료를 가지고 물고 뜯고 씹고 즐기는건 아니라고 보여지구요, 밑에서 이 영상의 출처가 프랑스 국립영상원이라고 하는데, 다른 글에서는 헝가리 쪽이다 하는 확실하게 밝혀진것 같지도 않네요.
특히 애국가를 까면서 새로운 애국가 만들자, 임을 위한 행진곡을 국가로 지정하자는 헛소리는 자제를.....
정작 애국가, 한국환상곡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던 사람은 좀 더 면밀히 살펴봐야한다고 주장했는데, 이건 뭐 맹신해버리는 사람이 많으니 기가 차네요. 선동력이 장난이 아닙니다ㅎㅎ
끝으로 애국가의 작사자가 윤치호라는 설이 알려져 있고 그 분 또한 친일행적에서 자유로울 순 없죠
하지만 김구선생께서 '우리가 3·1운동을 무엇으로 했는가. 태극기, 선언서, 애국가로 했는데 그 작사자가 왜 문제인가?'라고 일갈했습니다.
애국가 폐지는 결국 임시정부의 국가였던, 정체성의 한부분이었던 것도 지워버리자는 것과 다름이 있나요..?
M1 Garand 작곡자만 변경하면 된다는 부분인가요?
안익태는 소년 시절부터 일본 이탈리아 독일등 2차대전 전범 동맹국가 지역이 활동영역이었으며, 스페인으로 도망간 시점도 이탈리아에 연합군이 상륙한 이후이다. 에키타이 안은 변절한 친일파가 아니라 애초부터 쭈욱 친일파인 사람
강한
그래도 나치와 주축국 부여했죠
그분도 어쩔수 없는 힘없는 지식인
고려조의 이규보 같은
애국가 작사가는 도산 안창호선생님
그분은 애국가 작사가 임을 숨긴 이유는 자신 회유될수 있의 니까
그것이 두려워 애국가 누가될수 있으니 누가 누구를 비판하자는 이야기
안임
아이가 학교에서 안익태는 친일파
애국가는 없어져야할 노래라는
역사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와서 말하더군요.전교조..ㅠㅠ
강한 님 조삼모사라는 고사성어 아나요?? 언제 했든 친일행적이 분명하다면, 그 사람은 친일파가 맞는 거지요. 친일파를 보호해 줄 필요도 없고, 감싸주려고 해서도 더더욱 안됩니다. 그의 창작물도 마찬가지죠.
솔직히 우리가 왜 친일파인 안익태가 만든 곡으로 애국가를 불러야만 하는가?
일제시대 때 우리나라에서 퍼진 Auld Lang Syne(올드 랭 사인)으로 부른 애국가도 있는데 굳이 친일파인 안익태가 만든 곡으로 애국가를 불러야만 하는가? 물론 Auld Lang Syne(올드 랭 사인)은 외국 곡이긴 하지만 그래도 친일파인 안익태가 만든 곡 보단 스코틀랜드의 민요인 Auld Lang Syne(올드 랭 사인)으로 부르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안익태가 친일파라 싫죠? 현재는 물론 그때의 애국가의 작사가는 친일파 윤치호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시용 아저씨 니나 올드랭사인으로 부르세요 ㅋㅋㅋ 글고 그 역겨운 역사관으로 문재인 이재명이나 지지하고 앉았을듯 ㅋㅋ
혹시 매국노?
No estoy de acuerdo con esa vision desde una perspectiva tan partisista, no saben el momento histórico que vivia ekitay ahn, fue el discipulo de Richard strauss hasta que Strauss murió, y todo el mundo sabe que Strauss y los músicos de esa epoca estaban muyvigilados. Ekitay Ahn mantuvo su nombre coreano, a pesar de que estaba prohibido tener nombres coreanos, esos años corea era todavia colonia japonesa, y Strauss mandaba a su amigo Ahn a dirigir las mejores orquestas europeas con solistas muy mayores, como emil sauer, disci
pulo de Listz, quien sabe si entre los músicos, que es una teoria escrita por el gran S.Sweigt, se iban apoyando y protwgiendo? El joven Ahn podia moverse librevemwnte por europa, y siempre en comunicacion con grandes musicos. POR FAvoR, NO INTENTEN COLOCAR A Ahn, dentro de un marco político, un musico como el, que podia dirigir las 9 sinfonias de Beetoven sin partituras, es porque su mente y su corazón era solo musica y devoción, El decia que su musica bajaba del cielo y que el era solo un canal,no entendia la maldad, era un angel.
+Leonor Ahn No se la politica. Solo soy musico. Pienso que era una epoca muy dificil para los coreanos, todos los coreanos Ahn incluso. Hay un legado musical suo a pesar de las differentes opiniones de algunos.
Io estoy aqui simplemente porque escucho la musica de Ahn. Quand era joven, no realizaba sus logros musicales. No hubia mucha informacion. Pero los entiendo mejor ahora porque hago musica desde mas tiempo y hay internet. De esa epoca, dirigir las mejores orquestas europeas es algo de muy special. No se preocupe. Siempre hay opiniones differentes. Algunos escriben y algunos no escriben. Personalmente, no tiene opinion politica. Para mi, lo importante es musica. Y Ahn era gran musico.
Gracias amigo.
일부로 만주환상곡을 끝나는 부분만 나오게 올렸네.. 옛날에 들어보니 남한 애국가와 거의 비슷하던데..사대매국노들... 남한애국가가 만주환상국을 모체로 탄생한것이 확실하다. 그것을 부정하고 싶어 각종 개소리가 난무하는데 그것은 사기다.
한국환상곡을 먼저 만든뒤에 그 곡을 자기 표절해서 만든게 만주환상곡 이라고 하네요
@@polska9333 거꾸로 알고 있음 만주환상곡이 먼저임. 그걸 표절해서 다시 만든게 한국환상곡이고.. 시대적으로 봐도 친일하면서 만주 환상곡을 만들고 나중에 세탁하면서 그걸 표절해서 6.25 이후에 만든게 한국환상곡인데 625때면 만주국 없어진지 오래인데. 한국 환상곡을 먼저 만들어졌다고 오해하는 부분은 36년에 독일에서 초연한 만주 환상곡을 이후 세대들이 한국환상곡으로 오해하고 있었다가 사실은 만주 환상곡이었다는 걸 나중에 알아서 생긴 오해... 상식적으로도 당시 일본과 동맹국인 나치 독일에서 한국 사람이 한국환상곡을 초연하는 게 어불성설이지.
자랑스러운 위인이다
안익태-에키타이안. 친일파 작곡가이자 유일한 조선인 나치당원. 그의 표절곡을 '애국가'란 이름으로 우리가 불러야 하는가.
네 맞아요~
우리의애국가 가 친일부역자가 작사작곡을했다고
우리가 안부을수는
없잖아요 악익태그사람은친일
을했어도 우리의애국가에
대한 사랑을 국가을사랑하는마음
은언제나 잃치말고
안익태그사람을머릿
속에서지웁시다
친일부역자가 작곡 했다고 뭐라고 하는게 아니라 애초에 애국가 자체가 한국환상곡에서 따온 곡이고, 한국 환상곡은 만주 환상곡을 편곡한 곡이고 만주 환상곡은 일본 제국의 만주국을 위해서 헌상한 곡임.. 만주국에 헌상된 곡을 가져다가 애국가로 쓰는 꼴인데.. 이게 쉴드가 되는 한국 현실이 진짜 자존심도 없는 거지.
만주국 황제폐하 만세!! 오족협화 만세!!
파파고 일본어 번역기에 ...안익태의 일본식 발음은 아이야레꾸시 ..입니다....★에키타이안은 독일어 공부를 안한 기자가 일본식 이름이라고 헛소리 한것이고...에키타이안은 안익태의 독일식 발음입니다..★★표절 논란...나는 비음악가라 비슷한 점을 못 찾겠고..설사 표절했다 치더라도..코리아 환타지가 먼저 작곡 (1935년)되었으며.만주국 환상곡(1942)이 표절했으므로 ..오히려 애국가가 피해자가 아닌가요?★ 안익태는 삼일운동도 참가 했으며 ,코리아 환타지 작곡했을때의 안익태는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작곡 했으므로 애국가를 굳이 바꿀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고 일본이 미국까지 쳐들어가니....가망 없는 한국 보다 강대국 일본에 붙어 같이 살아보자는 식으로 많은 변절자가 생겼듯이 예술활동을 하고 싶은 안익태는 돈과 권력이 필요 했겠지요....★ 안익태 스파이 설에 관한...내 상상력을 말하자면.....안익태는 돈이 필요 했고...일본 고관은 자식들 음악선생이 필요했겠죠...★잠시 변절한것은 배고픈 예술가가 잠시 양심을 팔았을 뿐.....이게 나쁜짓이라 생각하면 나쁜 짓이겠죠?..각자 가치관이 있으니 말입니다...★그러나...안익태 ... 에키타이 안.... 끝까지 한국 이름을 지켰듯이........어느 마음 한구석은 ...한국이 잘되기를 바라고 있었다고 상상해봅니다..★ 위 내용을 요약해 보면...애국가가 .. 잠시 다른곡으로 표절되었다고 애국가를 버린다는 것은....방탄 소년단의 다이나믹을 ..일본 그룹 아라시가 표절 했다고...방탄 소년단 곡을 버리자는 소리와 뭐가 틀린가요? ★국가가 없다고 자기 자신의 천직을 포기해야 합니까??? 손기정과 안익태의 차이점을 모르겠네요
이런 답답이들 때문에 역사가 왜곡되는 거임. 일단 한국 환상곡이 먼저다? 그러면 안익태는 오히려 처음에는 독립운동가이다가 나중에 친일로 바꿨다는 소리인데 . 그건 먼저 만주환상곡을 만들고 나중에 전향해서 한국환상곡을 만들었다는 소리보다 더 고인 모독임.
그리고 35년이 한국환상곡이 작곡된 해라고 잘못 알고 있는데 한국 환상곡의 2절은 일제치하의 고통 3절은 광복의 기쁨 4절은 6.25를 표현하는 내용임. 광복과 6.25가 35년에 벌어졌음? 36년에 독일 에서 안익태는 해당 곡으로 초연을 했는데 당시 독일은 나치 독일로 일본의 동맹국임. 한국환상곡으로 독일과 일본앞에서 일제치하의 압박과 광복을 기뻐하는 곡을 초연을 했으면 독일과 일본이 천사지. 시대적으로 보나 시간순으로 보나 만주 환상곡 -> 한국환상곡(표절) -> 애국가(발췌) 인데. 단순히 친일파가 작곡을 했다고 곡을 비판하는 게 아니라 애초에 곡 자체가 일본제국의 만주국에 헌상된 곳을 가져다가 애국가로 쓰고 있으니 문제 제기를 하는 거고.. 친일하다가 스페인으로 도망간 사람하고 손기정 선생님을 비교하다니 방탄 소년단은 왜 끌어다가 욕을 먹이는지도 모르겠고 전혀 방탄 안되고 있음.
민족반역자
잘보고갑니다
왜요 임의 행진곡 애국가 만들고
싶은가봐요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