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저는 지난 2년동안 선생님의 수많은 역사 이야기를 듣고 공부한 학생중 하나입니다. 뒤늦게 이 나라의 역사 이야기를 듣다가 충격을 받은데다 직업이 자유로운 직업이다 보니 시간을 생각보다 많이 투자했습니다. 저는 지난 2년동안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 고려사절요 조선왕조실록을 읽어보고 내린 결론이 하나 있습니다. 최근엔 고려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명사 청사 일본의 역사서들도 AI의 도움을 받아 읽어보고 있는 중이기도 합니다. AI의 번역과 해석은 그 어떤 역사학자들이나 한문학자들보다 더 뛰어나게 번역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도구들로 인해 역사가 역사학자들의 전유물에서 일반인들의 손으로 넘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젠가 송사부터 크게 왜곡되기 시작한 동아시아 역사이야기도 할 기회가 생길지도 모르겠지만 그 이야긴 너무 길어 여기선 이 정도로 갈무리 합니다. 그러한 공부 끝에 나온 저의 생각을 지금부터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에 대한 깊은 이해와 해설 없이 논하는 고대사는 모두 사상누각입니다. 세종대왕은 에 우리의 수많은 고대 역사의 비밀을 비밀코드로 수없이 남겨 놓았습니다. 아직도 풍부한 기록이 남아 있는 그런 고려의 역사에 대해 공부도 하지 않고 제대로 이해도 하지 못하면서 우리의 고대사와 를 논한다는 것은 우리의 삼국사를 크게 왜곡 시킬 가능성도 많고 본질을 벗어난 논의만 이어갈 가능성도 많습니다. 에 나와 있는 고려는 이렇습니다. 고려의 번국은 셋이다. 서번(서여진) 동번(동여진) 탐라국(대만)... 이 이야기가 어쩌면 고려의 초기 강역을 잘 이해하는 첫번째가 될지도 모릅니다. 왕건의 후삼국 시대에 벌어진 수많은 전투 기록을 보면 주로 북쪽보다는 남쪽에서 대부분 벌인 전투입니다. 그 북쪽의 땅은 발해가 멸망하면서 발해의 유민들이 들고 고려에 귀부한 땅들입니다. 그곳이 서번(서여진) 동번(동여진)이 된 것입니다. 발해의 유민들이자 고려의 번국으로 남아 있었던 서여진 동여진이 다시 그들의 땅에 윤관이 동북9성을 쌓자 독립을 하고 금나라를 다시 세웠습니다. 그리고 순식간에 거란과 북송을 멸망시키고 중원을 장악하면서 고려와의 서열도 뒤바뀌게 됩니다. 그런 금나라도 몽골에 또다시 멸망을 당합니다. 고려는 이런 몽골과 42년을 전쟁을 했어요. 그리고 두 나라는 승패도 결정짓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고려의 왕이 쿨하게 몽골왕에게 찾아가서 절 한 번 하고 39년동아 이어지던 전쟁을 끝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에 반발한 삼별초군들이 또 다시 3년동안 저항을 이어갔던 것입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몽골은 고려의 예전 강토를 대부분 회복시켜주고 그대로 인정도 해줬습니다. 고려의 이 강역은 홍건적 무리가 명나라을 만들어 북상하게 되고 이성계가 군사반란을 통해 고려의 마지막 숨통을 끊고 조선을 건국하면서 사라지게 된 겁니다. 이게 500년 고려의 대강의 역사예요. 그래서 명나라가 남긴 의 고려편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탐라에 대한 이야기도 고려국을 말하면서 따로 두었는데 이 글로부터 시작합니다. 탐라는 고려의 부용국이다. 서번(서여진) 동번(동여진)은 발해의 땅이였고 발해국의 유민들로 고려초 200년동안 조선의 제후국으로 남아 있었지만, 또 다시 금나라를 세우고 몽골에 멸망당하면서 몽골의 직접 통치 하에 들어갔던 것이고, 고려의 제후국은 마지막까지 만 남았던 것입니다. 삼별초의 난이 벌어지고 난 뒤 고려사엔 또 탐라를 제주로 바꾸고 고려의 직접 통치 하에 둔다. 이런 내용도 있습니다. 탐라왕국(대만)에서 탐라(제주)를 떼어내 고려가 직접 통치하게 한다는 내용입니다. 우리의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 고려사절요엔 탐라에 대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 내용을 읽어보면 탐라국은 대만이라는 기록을 수없이 남겨 놓았습니다. 그리고 원사 고려사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탐라왕국은 대만 제주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여러 섬을 거느리고 있다는 이야기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들 해보세요. 고려의 강역이 절강성이나 복건성에까지 미치지 못했다면 이런 탐라(대만)에 대한 지배력을 행사나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리고 어느 순간 대만의 17세기 이전의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만의 역사는 17세기부터 시작한다. 이렇게 한중일 삼국의 역사서들은 적어 놓기 시작했습니다. 동아시아 중세 고대 역사의 비밀을 풀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키가 이고 입니다. 대만의 모든 역사에서 우리의 고려사 삼국사기 삼국유사에만 존재하는 탐라(대만)의 역사조차도 한중일 삼국이 모두 지워버렸습니다. 공백의 200년이 생긴 것입니다. 요즘은 탐라(대만)을 중심으로 고려의 잔존세력들의 고려부흥운동이 200년 이상 계속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그 흔적들을 찾느라 명사 청사 조선왕조실록 일본의 역사 등을 찾아보고 있는 중 입니다. 지금은 어떤 역사도 감출 수 없습니다. 이미 그런 시대로 접어들어 버린 것인지도 모릅니다. 저는 삼국사를 읽고 고려사를 공부하면서 옥저는 과연 어디로 갔는가? 하는 의문으로 많은 옥저 관련한 논문도 뒤져봤습니다. 그런데 결론은 아 정보가 부족하던 시절의 학자들의 논문은 너무도 많은 잘못을 내포하고 있고, 이 나라의 역사를 밝히는게 아니라 오히려 더욱 왜곡을 시키거나 중국 등 외부세력들의 한국사의 왜곡을 시키는 빌미만 제공하고 있구나 하는 걸 절감하고 있습니다. 부터 공부들 하시고 부터 해설을 하세요. 그러면 그 이전의 역사가 자연스럽게 풀리고 우리 역사의 오류를 줄일 수 있을겁니다.
김창록 /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그렇습니다. 일본의 시각에서 서지 않으면 그렇게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 입장에 따르면 1910년 조약은 원천 무효예요. 한반도가 일본 영토가 된 적이 없고, 한반도의 인민이 일본 국민이 된 적이 없습니다. 따라서 일제강점기 때 한반도의 사람들은 전부 다 일본 국적자이다, 일본 국민이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일본의 입장에서 이야기한 겁니다.] [앵커] 일본이 주장하는 바에 따른 철저한 일본 시각이네요. 김창록 /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어떤 쟁점에 대해서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의 입장이 달라요. 정면으로 충돌해요. 그럼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어느 쪽을 선택해야 됩니까? 한국 정부 쪽을 선택해야죠. 김문수 지사의 그 발언은 일본 정부의 논리를 전제로 할 때에만 가능한 얘기입니다.] [앵커] 그리고 우리 어떤 정부든 간에 그동안 지속적으로 일관되게 취해 왔던 우리가 정립했던 사실관계와 전혀 맞지 않는 주장이다라고 볼 수 있는 거네요. [김창록 /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대한민국 헌법의 정신에 반하는 주장입니다.] 1910년 국권피탈당시 고종은 사인을 하지도않았서 .불법찬탕이지. 이흐 한일회담에서도 과거의 불법적적인 조약은 모두 무효로 한다고 동의했지.
경원씨, 한국사 관련 영상에 광우병 운운하는 수준이 참으로 한심하다. 그래서 어디 물어보자. 그럼 대만, 홍콩에서조차도 수입거부한 냄새풀풀 나는 36개월 이상된 수입산 쇠고기를 직접 먹을 자신이 있기나 하냐? 후쿠시마 인근해역에서 잡은 해산물도 가져와서 먹으라고 하면 즉시 망설이지 않고 먹을 수 있냐? 생각 좀 하면서 댓글들을 달아라.
책보고의 주장이 제도권에 들어올려면 단순 옛지명에 치우친 사고가 아닌 다각적인 자료로 교차 검증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즉 일차 사료와 유물 유적등이 기본적으로 맞아 떨어져야 하고 논리 구성이 일목요연해야죠 대륙 백제나 신라가 중국 내륙에 수도를 가지며 거대하게 수백년간 존속했다면 유물이 다량으로 나와야 하는것이고 한반도내 유물 유적도 설명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역사는 아직 독립을 못했다는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하루빨리 역사 독립도 이룩해야 겠습니다.
시급히 기존의 식민사관에 오염된 한국사를 바로잡고 새롭게 발간해야겠습니다.
소장님 늘 응원합니다 ㅎㅎ
이덕일소장님 존경합니다
역사교과서를 바꿔야하는 이유를 확실히 알게되었습니다
조선총독부로부터 지령을 받고 역사 외곡한 학자들 모두 반역죄로 처단하여야합니다.
대한사랑 고맙습니다.
교수님 우리나라 교육도 고등교육 이상되고 이제부터 역사를 바르게 알았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역사교과서 바꾸고
황국신민사관학자들 공직에서 배제해야 맞습니다
요즘 사료들 보니까 대륙 삼국설이 더 맞아보입니다. 이거 기존 역사학자들과 새 역사학자들이 토론하셔야 함
정말 귀중한 말씀 잘 들었습니다^^
선생님 저는 지난 2년동안 선생님의 수많은 역사 이야기를 듣고 공부한 학생중 하나입니다.
뒤늦게 이 나라의 역사 이야기를 듣다가 충격을 받은데다 직업이 자유로운 직업이다 보니 시간을 생각보다 많이 투자했습니다.
저는 지난 2년동안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 고려사절요 조선왕조실록을 읽어보고 내린 결론이 하나 있습니다.
최근엔 고려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명사 청사 일본의 역사서들도 AI의 도움을 받아 읽어보고 있는 중이기도 합니다.
AI의 번역과 해석은 그 어떤 역사학자들이나 한문학자들보다 더 뛰어나게 번역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도구들로 인해 역사가 역사학자들의 전유물에서 일반인들의 손으로 넘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젠가 송사부터 크게 왜곡되기 시작한 동아시아 역사이야기도 할 기회가 생길지도 모르겠지만 그 이야긴 너무 길어 여기선 이 정도로 갈무리 합니다.
그러한 공부 끝에 나온 저의 생각을 지금부터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에 대한 깊은 이해와 해설 없이 논하는 고대사는 모두 사상누각입니다.
세종대왕은 에 우리의 수많은 고대 역사의 비밀을 비밀코드로 수없이 남겨 놓았습니다.
아직도 풍부한 기록이 남아 있는 그런 고려의 역사에 대해 공부도 하지 않고 제대로 이해도 하지 못하면서 우리의 고대사와 를 논한다는 것은 우리의 삼국사를 크게 왜곡 시킬 가능성도 많고 본질을 벗어난 논의만 이어갈 가능성도 많습니다.
에 나와 있는 고려는 이렇습니다.
고려의 번국은 셋이다. 서번(서여진) 동번(동여진) 탐라국(대만)... 이 이야기가 어쩌면 고려의 초기 강역을 잘 이해하는 첫번째가 될지도 모릅니다.
왕건의 후삼국 시대에 벌어진 수많은 전투 기록을 보면 주로 북쪽보다는 남쪽에서 대부분 벌인 전투입니다. 그 북쪽의 땅은 발해가 멸망하면서 발해의 유민들이 들고 고려에 귀부한 땅들입니다.
그곳이 서번(서여진) 동번(동여진)이 된 것입니다.
발해의 유민들이자 고려의 번국으로 남아 있었던 서여진 동여진이 다시 그들의 땅에 윤관이 동북9성을 쌓자 독립을 하고 금나라를 다시 세웠습니다.
그리고 순식간에 거란과 북송을 멸망시키고 중원을 장악하면서 고려와의 서열도 뒤바뀌게 됩니다.
그런 금나라도 몽골에 또다시 멸망을 당합니다.
고려는 이런 몽골과 42년을 전쟁을 했어요. 그리고 두 나라는 승패도 결정짓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고려의 왕이 쿨하게 몽골왕에게 찾아가서 절 한 번 하고 39년동아 이어지던 전쟁을 끝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에 반발한 삼별초군들이 또 다시 3년동안 저항을 이어갔던 것입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몽골은 고려의 예전 강토를 대부분 회복시켜주고 그대로 인정도 해줬습니다.
고려의 이 강역은 홍건적 무리가 명나라을 만들어 북상하게 되고 이성계가 군사반란을 통해 고려의 마지막 숨통을 끊고 조선을 건국하면서 사라지게 된 겁니다.
이게 500년 고려의 대강의 역사예요.
그래서 명나라가 남긴 의 고려편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탐라에 대한 이야기도 고려국을 말하면서 따로 두었는데 이 글로부터 시작합니다.
탐라는 고려의 부용국이다.
서번(서여진) 동번(동여진)은 발해의 땅이였고 발해국의 유민들로 고려초 200년동안 조선의 제후국으로 남아 있었지만, 또 다시 금나라를 세우고 몽골에 멸망당하면서 몽골의 직접 통치 하에 들어갔던 것이고, 고려의 제후국은 마지막까지 만 남았던 것입니다.
삼별초의 난이 벌어지고 난 뒤 고려사엔 또 탐라를 제주로 바꾸고 고려의 직접 통치 하에 둔다. 이런 내용도 있습니다.
탐라왕국(대만)에서 탐라(제주)를 떼어내 고려가 직접 통치하게 한다는 내용입니다.
우리의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 고려사절요엔 탐라에 대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 내용을 읽어보면 탐라국은 대만이라는 기록을 수없이 남겨 놓았습니다.
그리고 원사 고려사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탐라왕국은 대만 제주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여러 섬을 거느리고 있다는 이야기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들 해보세요. 고려의 강역이 절강성이나 복건성에까지 미치지 못했다면 이런 탐라(대만)에 대한 지배력을 행사나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리고 어느 순간 대만의 17세기 이전의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만의 역사는 17세기부터 시작한다.
이렇게 한중일 삼국의 역사서들은 적어 놓기 시작했습니다.
동아시아 중세 고대 역사의 비밀을 풀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키가 이고 입니다.
대만의 모든 역사에서 우리의 고려사 삼국사기 삼국유사에만 존재하는 탐라(대만)의 역사조차도 한중일 삼국이 모두 지워버렸습니다. 공백의 200년이 생긴 것입니다.
요즘은 탐라(대만)을 중심으로 고려의 잔존세력들의 고려부흥운동이 200년 이상 계속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그 흔적들을 찾느라 명사 청사 조선왕조실록 일본의 역사 등을 찾아보고 있는 중 입니다.
지금은 어떤 역사도 감출 수 없습니다. 이미 그런 시대로 접어들어 버린 것인지도 모릅니다.
저는 삼국사를 읽고 고려사를 공부하면서 옥저는 과연 어디로 갔는가? 하는 의문으로 많은 옥저 관련한 논문도 뒤져봤습니다. 그런데 결론은 아 정보가 부족하던 시절의 학자들의 논문은 너무도 많은 잘못을 내포하고 있고, 이 나라의 역사를 밝히는게 아니라 오히려 더욱 왜곡을 시키거나 중국 등 외부세력들의 한국사의 왜곡을 시키는 빌미만 제공하고 있구나 하는 걸 절감하고 있습니다.
부터 공부들 하시고 부터 해설을 하세요. 그러면 그 이전의 역사가 자연스럽게 풀리고 우리 역사의 오류를 줄일 수 있을겁니다.
대만이 탐라라는것을 이글로 인해 알앗음니다 항상 궁금햇는데 왕조가 있으면 궁성지가 있어야하는데 한번도 궁성지에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볼수없엇는데 궁금증이 풀렷음니다 새로운지식 감사함니다
이덕일 교수님 돌아가시기전에 해결되야될텐데
김창록 /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그렇습니다. 일본의 시각에서 서지 않으면 그렇게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 입장에 따르면 1910년 조약은 원천 무효예요. 한반도가 일본 영토가 된 적이 없고, 한반도의 인민이 일본 국민이 된 적이 없습니다. 따라서 일제강점기 때 한반도의 사람들은 전부 다 일본 국적자이다, 일본 국민이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일본의 입장에서 이야기한 겁니다.]
[앵커]
일본이 주장하는 바에 따른 철저한 일본 시각이네요.
김창록 /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어떤 쟁점에 대해서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의 입장이 달라요. 정면으로 충돌해요. 그럼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어느 쪽을 선택해야 됩니까? 한국 정부 쪽을 선택해야죠. 김문수 지사의 그 발언은 일본 정부의 논리를 전제로 할 때에만 가능한 얘기입니다.]
[앵커]
그리고 우리 어떤 정부든 간에 그동안 지속적으로 일관되게 취해 왔던 우리가 정립했던 사실관계와 전혀 맞지 않는 주장이다라고 볼 수 있는 거네요.
[김창록 /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대한민국 헌법의 정신에 반하는 주장입니다.] 1910년 국권피탈당시 고종은 사인을 하지도않았서 .불법찬탕이지. 이흐 한일회담에서도 과거의 불법적적인 조약은 모두 무효로 한다고 동의했지.
친일 식민사관 처벌법제정과 사형법도입
이게 급한것 같습니다
가야가 임나가라라고 친일역사가들이 조작햇다는 것만 강조할것이 아니라 대마도가 임나가라엿다는 것을 사료적사실에대한 근거로 강의가 필요하다 봄니다
책 구입을 어디서 해요
알려 주세요
알라딘에서 "대한민국 역사교과서"라고 치면 나옵니다^^
낙랑군 등 한사군을
얘기할 때 '서한군국도'
'서진군국도' 라는 당시
저들이 만든 지도를
왜 인용하지 않아요?
이 지도들 보면 한사군
위치가 하북성 고죽지역
이라는게 명료한데~~???
40:35 일본서기 좋아하는 양반들은 왜 이건 말안하나?
♥『주서』,『북사』의 백제시조 구태가 『후한서』, 『삼국지』,『진서』 의 부여이고, 부여의 (위)구태니, 비류백제다 ♥ 삼국지와 후한서 진서의 부여는 비류백제로 예(濊) 땅인 하북성 창주시에 있었으니, 연나라 장성(현도) 북쪽의 사방 2천리 부여는 북부여로 졸본부여, 고구려가 계승했다
1) 후한서 부여의 위치는 2개로 나누어서 봐야 한다.
●첫째는) 북부여의 위치로
" 부여는 현도의 북쪽 천리 쯤에 있다 남쪽은 고구려와, 동쪽은 읍루와, 서쪽은 선비와 접해 있고, 북쪽에는 약수가 있다. 국토의 면적은 방 2천리다"
후한서 부여의 위치중 첫째의 북부여 다음으로 바로 나오는 내용이
●둘째는) 졸본부여 적통을 이어 받은 위구태의 부여인 비류백제 위치로
"(부여 영토는) 원래 예=동예=예맥의 땅이다" 니 창해군이 설치되었던 하북성 동부 창주시 지역이다
[후한서 동이열전 부여夫餘國 한자 원문]
夫餘國, 在玄菟北千里. 南與高句驪, 東與挹婁, 西與鮮卑接, 北有弱水. 地方二千里. (여기까지가 북부여 위치임)
本濊地也.(이 내용은 후한시대 부여-비류백제 위치임)
조위 전후의 부여가 비류백제? 하북성 창주?가 비류백제? 창주가 예땅?
무지무식한 망상 말라.
♥삼국지 위서동이전(AD 280년경 편찬)에 없는♥ " 本濊地也.(부여의 위치는 본래 예濊 땅이다)" 내용이 「후한서 동이열전(AD 450년 경 편찬)에 추가되었으니 후한시대의 부여인 비류백제 위치로 봐야 한다.」
헬조선 주장하면 식민사관이라고 몰이하시는 분들?
여기 좋다고 댓글 써는 사람들이 광우병 시위 참여자들인거죠?
경원씨, 한국사 관련 영상에 광우병 운운하는 수준이 참으로 한심하다. 그래서 어디 물어보자. 그럼 대만, 홍콩에서조차도 수입거부한 냄새풀풀 나는 36개월 이상된 수입산 쇠고기를 직접 먹을 자신이 있기나 하냐? 후쿠시마 인근해역에서 잡은 해산물도 가져와서 먹으라고 하면 즉시 망설이지 않고 먹을 수 있냐? 생각 좀 하면서 댓글들을 달아라.
너 친일파지
댓글이 어이없네요 ㅠ
백신거부 시위는 안나가셨어요?
이덕일교수님 건강하세요 우리동이족의 진정한 력사 학자 이십니다 존경함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저도 역사교과서 구입했습니다
그런데 이덕일박사님은
유투버 책보고님과 왜 화합되지 않아요?
내부 단합이 이렇게 안되는데....
그들만의 리그
책보고의 주장이 제도권에 들어올려면 단순 옛지명에 치우친 사고가 아닌 다각적인 자료로 교차 검증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즉 일차 사료와 유물 유적등이 기본적으로 맞아 떨어져야 하고 논리 구성이 일목요연해야죠
대륙 백제나 신라가 중국 내륙에 수도를 가지며 거대하게 수백년간 존속했다면 유물이 다량으로 나와야 하는것이고
한반도내 유물 유적도 설명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책보고는 자신이 옳고 다르다를 떠나서 같은 자신과다르면 재야민족사관도 그냥 욕하고그러더라고요
한마디로 자신감이없고 기본이안되어있는사람 그냥 유튜버해서 돈버는데 지도파려는사람
대부분다아는데 님만모르시나 ???
@@isjoo6501 서로들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아시고 상대가 이해를 못해도 상대가 하는 말을 좀 들어주셔야죠.... 맞고 틀리고가 아니라 자신은 이 정도 알고 있다 로 해석하시면서요.....
우리가 뭉치지 못하면 일본과 중국이 좋아한다는 것을 아시잖아요?
@@마라도나-d6b 모르는 것을 나무라시면 곤란해요 내가 아는 지식을 님도 모르는 것이 많은 거 잖아요 알고 모르고가 문제가 아니에요 서로 이해하지 못하면 일본과 중국이 좋아해요 우리속에서도 혹시???
라는 생각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