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ory of the most famous general in Korea, Yi Sunsin.

Поделиться
HTML-код
  • Опубликовано: 11 сен 2024

Комментарии • 247

  • @Martin8Kelly
    @Martin8Kelly 2 года назад +81

    역사를 보면 진린이 포악하고 무서웠던 장수여서 조정에서 진린이 파견됐다고 했을 때 많이 걱정했다고 하는데 오히려 이순신 장군의 능숙한 대처로 둘이 신뢰관계를 구축했다는 것이 참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마지막 진린이 장군의 죽음을 두고 우는 장면이 더욱 극적이게 느껴지는 것은 선량한 사람 뿐 아닌 아닌 포악한 사람 조차 원칙과 신뢰에서 감동받음을 느낀 것 같습니다. 현대 사회에도 많은 이순신 장군 같은 분들 덕분에 저희가 잘 살고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늘도 유익하고 감동적인 영상 감사합니다.

    • @jsm9252
      @jsm9252 2 года назад +6

      훗날 진린의 손자가 명나라가 망한뒤 조선으로 건너가서 광동진씨라는 집성촌을 이루었죠

    • @user-jx5dq2xt8g
      @user-jx5dq2xt8g 2 года назад +1

      외교를 잘해 누구랑 닮은 ..ㅎ

    • @ghossnary3177
      @ghossnary3177 8 месяцев назад

      말을 이쁘게 잘하셔요^^ 좋은 하루 되세요!

  • @xnclsien
    @xnclsien 2 года назад +56

    개인적인 생각으로 인류역사 전체를 통틀어도 충무공만한 사람이 없다 생각함. 온갖 음해와 역경을 극복한 인간승리의 표본이자 성품, 인성 어디 하나 빠지지 않고 인간이라면 배워야 될 모든 것을 갖추고 있는 분. 게다가 구국의 영웅.
    7년 전쟁에서 정부에게 손 벌린 건 역병이 돌 때 의원 보내달라고 한거 딱 하나. 군량도 스스로 자급하고.. 알면 알 수록 말이 안되는게 너무 많음

    • @hiroono1
      @hiroono1 2 года назад

      1592년 4월 12일 오전 8시, 일본군의 제일대는 700종의 대소군선으로 쓰시마·오우라를 출발해 오후 2시 지나 부산에 상륙했다. 부산을 지키고 있던 조선군은 하루 만에 괴멸했다.
      일본군이 육로 북상하자 조선군은 공포에 몰려 잇달아 도망쳤다. 조선귀족(양반)에 의한 통치에 불만을 갖고 있던 조선민중은 일본군을 환영하며 식량을 헌상했다.
      4월 29일 조선왕인 선조는 밤이 밝아지자 서울을 버리고 출발했다. 해가 뜨고 뒤를 돌아보니 성 곳곳에서 화염과 연기가 오르고 있었다. 일본군의 도착 전에 조선인민중이 폭도화한 것이다. 도망하는 선조를 본 민중은 자신의 국왕에게 돌을 던졌다.
      5월 2일 일본군은 10만명 이상의 무리였지만 민중의 협력으로 행군이 원활하게 진행돼 부산 상륙 후 불과 3주 만에 서울을 함락했다. 육군도 수군도 조선군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5월 7일 이순신은 드디어 수군을 다시 세워 일본을 기습했다. 그리고 7월 7일 한산도 해전까지 이순신은 몇 차례만 일본군을 기습해 성과를 거뒀다. 단, 조선군의 전술은 화살에 의한 방화이며, 검을 가진 백병전이 아니다. 한국인은 거북선이 사용되었다고 주장하지만, 전혀 근거가 없고, 또 화살을 쏘는데 거북선은 불리하기 때문에, 전술상도 거북선의 참전은 의미가 없다. 거북선을 탄 이순신의 이미지는 한국인에 의한 날조이다.
      일본이 출격 전술에서 수륙 공동 방어 전술로 방침을 변경하자 조선군의 전략은 전혀 작동하지 않게 되었다. 일본은 당초 독점적으로 수송용이었던 배에 대철포를 갖추어 중요 지점에 포대를 세웠다. 이후 이순신에 의한 일본 측 공격은 부산포 공격, 쿠마가와 공격 등 조선수군의 피해를 많이 낼 뿐 성과가 오르지 못해 조선수군의 출격횟수는 격감했다. 그 후 이순신은 적전 도망의 죄로 부하가 없는 병사에게 강등됐다.
      조선 수군의 그 후의 싸움은 모두 패전이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병에 의한 사망에 따른 평화가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체결되어 전쟁은 끝났다. 조선은 중국의 속국이었기 때문에 이 평화조약에 따른 의무가 있었다. 그러나 이순신은 평화 후에 귀국하는 일본군을 비겁하게도 배후에서 덮쳐 반대로 총격을 받고 죽었다.
      이상이 이순신과 일본군의 전투의 개요이다. 한국인에 의한 역사의 날조가 얼마나 심한지 알 것이다.

    • @비트마스터
      @비트마스터 2 года назад +2

      @@hiroono1 소설쓰고 앉아있네

    • @hiroono1
      @hiroono1 2 года назад

      @@비트마스터 조선의 정식 역사서인 선조실록을 소설이라고 말합니까? 거북선으로 일본군을 격파하는 이순신은 데타라메 만화입니다.

    • @primehunter627
      @primehunter627 2 года назад

      @@hiroono1 여기서도 이러고 있네 짠할 정도다... 그 선조실록을 편찬한 이들이 이순신 장군에 대해 극찬하고 있는 것이 진실이건만... 이순신 장군에게 가장 비판적인 기록은 이순신 장군 본인이 전쟁 중에 직접 쓴 난중일기에서 스스로를 낮추며 쓴 부분입니다
      Extra credits같은 외국의 유튜버는 물론 미국의 체스터 니미츠 제독, 영국의 조지 알렉산더 발라드 제독과 버나드 몽고메리 장군 같은 서양의 장군들도 고평가한 명장이 바로 이순신 장군입니다
      당신이 아무리 깎아내리려 해도 이순신 장군은 한국인들의 성웅이시며 인류 역사 전체를 통틀어도 손에 꼽을만한 위인이십니다 나라로부터 마땅한 지원도 받지 못하는 가운데 단 한 번의 패전도 포기도 없이 나라와 백성을 구한 분이 성웅이요 위인이 아니라면 뭐란 말입니까

    • @primehunter627
      @primehunter627 2 года назад +2

      실로 하늘이 내린 성웅이시죠 이런 분이 우리 역사의 인물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울 따름입니다

  • @user-sk6ci8ty2g
    @user-sk6ci8ty2g 2 года назад +78

    전쟁중임에도 일기쓰는 습관이 있다는게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 @hiroono1
      @hiroono1 2 года назад

      1592년 4월 12일 오전 8시, 일본군의 제일대는 700종의 대소군선으로 쓰시마·오우라를 출발해 오후 2시 지나 부산에 상륙했다. 부산을 지키고 있던 조선군은 하루 만에 괴멸했다.
      일본군이 육로 북상하자 조선군은 공포에 몰려 잇달아 도망쳤다. 조선귀족(양반)에 의한 통치에 불만을 갖고 있던 조선민중은 일본군을 환영하며 식량을 헌상했다.
      4월 29일 조선왕인 선조는 밤이 밝아지자 서울을 버리고 출발했다. 해가 뜨고 뒤를 돌아보니 성 곳곳에서 화염과 연기가 오르고 있었다. 일본군의 도착 전에 조선인민중이 폭도화한 것이다. 도망하는 선조를 본 민중은 자신의 국왕에게 돌을 던졌다.
      5월 2일 일본군은 10만명 이상의 무리였지만 민중의 협력으로 행군이 원활하게 진행돼 부산 상륙 후 불과 3주 만에 서울을 함락했다. 육군도 수군도 조선군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5월 7일 이순신은 드디어 수군을 다시 세워 일본을 기습했다. 그리고 7월 7일 한산도 해전까지 이순신은 몇 차례만 일본군을 기습해 성과를 거뒀다. 단, 조선군의 전술은 화살에 의한 방화이며, 검을 가진 백병전이 아니다. 한국인은 거북선이 사용되었다고 주장하지만, 전혀 근거가 없고, 또 화살을 쏘는데 거북선은 불리하기 때문에, 전술상도 거북선의 참전은 의미가 없다. 거북선을 탄 이순신의 이미지는 한국인에 의한 날조이다.
      일본이 출격 전술에서 수륙 공동 방어 전술로 방침을 변경하자 조선군의 전략은 전혀 작동하지 않게 되었다. 일본은 당초 독점적으로 수송용이었던 배에 대철포를 갖추어 중요 지점에 포대를 세웠다. 이후 이순신에 의한 일본 측 공격은 부산포 공격, 쿠마가와 공격 등 조선수군의 피해를 많이 낼 뿐 성과가 오르지 못해 조선수군의 출격횟수는 격감했다. 그 후 이순신은 적전 도망의 죄로 부하가 없는 병사에게 강등됐다.
      조선 수군의 그 후의 싸움은 모두 패전이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병에 의한 사망에 따른 평화가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체결되어 전쟁은 끝났다. 조선은 중국의 속국이었기 때문에 이 평화조약에 따른 의무가 있었다. 그러나 이순신은 평화 후에 귀국하는 일본군을 비겁하게도 배후에서 덮쳐 반대로 총격을 받고 죽었다.
      이상이 이순신과 일본군의 전투의 개요이다. 한국인에 의한 역사의 날조가 얼마나 심한지 알 것이다.

    • @user-rl1jk1ky1d
      @user-rl1jk1ky1d 2 года назад +1

      @@hiroono1 대체 어디가 날조라는거지
      명과 일본의 평화조약도 멍청한 선조가 군사권을 명에 받쳐서 조선이 낄자리가 없던거지 우리 조상 20%~50%인구를 학살한 일본군을 그냥 도망치는걸을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냥 참으라는건가??
      그리고 명과 일본의 평화체약엔 수군은 예외여서 이순신 장군님이 약속을 어건것도 아니며 일본군 노량해전에서 학살당한것은 정당한 처벌 아닌가?

    • @user-rl1jk1ky1d
      @user-rl1jk1ky1d 2 года назад +1

      @@hiroono1 일본수군이 조선수군에 개털려서 도망만친건 맞는데 어느 부분에 날조가 있는거지

    • @hiroono1
      @hiroono1 2 года назад

      @@user-rl1jk1ky1d 한국인은 근거를 확인하는 습관이 없기 때문에 망상을 진실로 생각한다.
      일본군의 침공 전후로 인구동태기록에서 조선 인구의 20%가 감소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50%라는 숫자는 한국인의 날조이다.
      Tony Michell, “Fact and Hypothesis in Yi Dynasty Economic History: The Demographic Dimension,” Korean Studies Forum, no. 6 (Winter-Spring 1979/1980), p. 66 pp. 77-79
      그 중에는 조선정부에 절망해 일본으로 이주한 10만명의 조선인도 포함돼 있기 때문에 전쟁으로 죽은 조선인은 90만명 정도로 추계되고 있다.
      당시 조선은 중국의 속국이며 외교권이 없었다. 이는 일본에 대해서 뿐만이 아니라 서양 모두 조선은 조약을 체결한 적이 없다. 한국인은 외교권이 있었다고 지금도 주장하지만, 그것을 인정하는 외국이 없기 때문에 주장은 성립하지 않는다. 매년 종주국에 성노예의 헌상을 계속하는 나라에 외교권이 있을 리가 없다. 한국인에게 인기가 있는 세종이 가장 많은 성노예를 헌상했다. 따라서 조선은 중국이 타국과 체결한 조약을 받아들일 의무가 있었다. 실제로 일본군 침공 겨우 30년 만에 중국에서 청이 세력을 늘리자 조선은 당초 반공하고 있었지만 곧바로 항복하고 인조는 '삼호구 두두'를 벌였다. 조선의 마음대로 행동은 중국에서 징계되는 것이다.
      실제로 일청전쟁, 러일전쟁, 제2차 세계대전, 베트남전쟁과 조선인은 근대만으로도 많은 전쟁과 관련하여 많은 전쟁범죄를 저지르고 있었지만 평화조약을 체결했다. 일이 전혀 없다. 한국은 독립국으로 인정받지 못한 것이다. 한국이 국제사회에 참여한 것은 1991년 유엔 가맹의 해이다. 드디어 최근이다.
      또 일본과 중국에서 체결된 조약에 조선수군이 예외라고 하는 것은 어떤 근거에 근거하는 것인가? 대답하십시오.

    • @hiroono1
      @hiroono1 2 года назад

      @@user-rl1jk1ky1d 조선의 수군이 일본군에 대해 우세했던 것은 일본군이 충분한 장비를 하고 있지 않은 7월 7일까지의 2개월만이다. 그 이후에는 조선군은 모든 전투에 패배하고 있다. 거북선이 실전에 출격한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출격하지 않은 거북선이 일본선과 충돌할 리가 없고, 이 영화의 대부분의 장면은 날조이다.

  • @zhaoyunzulong
    @zhaoyunzulong 2 года назад +8

    우리나라에도 전세계에 내놓아도 통할만한 위인이 문/무에 각 한 명이 있다는 게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이순신 제독과 세종 대왕.
    개인적으론 한국 역사상 최초로 외국을 쳐들어간 연개소문도 꼽긴 합니다.

  • @seunghwanhong6061
    @seunghwanhong6061 Год назад +2

    충무공 여해 이순신 장군을 마음속 깊이 존경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충무공의 마음에 감명 깊습니다.참으로

  • @westmead4975
    @westmead4975 2 года назад +7

    2000년도 초반..호주에서 유학생활 할당시 동부아시아권 역사시간에 이순신이 나와서 놀란적이;;;
    그선생 애기가 최초의 동아시아 대전이었고 이순신이라는 인물이 이 전쟁에서 결정적인 활약을 했던 사람이라고
    거북선까지 애기합디다...
    한국에만 알려진게 아니라 많은 나라에서도 이순신을 안다는 사실에 상당히 놀랬던 기억이 ㅎ

  • @just_turn_back_to_my_name
    @just_turn_back_to_my_name 2 года назад +32

    12척의 배로 200척이 넘는 적들과 싸웠다!라고 배웠지만 사실상 1척으로 선봉들을 상대로 분전하신 킹갓제너럴엠퍼러충무공 이순신..

    • @yhanjisu3534
      @yhanjisu3534 2 года назад +2

      ㅇㅇ. 여차하면 튈라고 햇던 장수들이었죠.

    • @hiroono1
      @hiroono1 2 года назад

      1592년 4월 12일 오전 8시, 일본군의 제일대는 700종의 대소군선으로 쓰시마·오우라를 출발해 오후 2시 지나 부산에 상륙했다. 부산을 지키고 있던 조선군은 하루 만에 괴멸했다.
      일본군이 육로 북상하자 조선군은 공포에 몰려 잇달아 도망쳤다. 조선귀족(양반)에 의한 통치에 불만을 갖고 있던 조선민중은 일본군을 환영하며 식량을 헌상했다.
      4월 29일 조선왕인 선조는 밤이 밝아지자 서울을 버리고 출발했다. 해가 뜨고 뒤를 돌아보니 성 곳곳에서 화염과 연기가 오르고 있었다. 일본군의 도착 전에 조선인민중이 폭도화한 것이다. 도망하는 선조를 본 민중은 자신의 국왕에게 돌을 던졌다.
      5월 2일 일본군은 10만명 이상의 무리였지만 민중의 협력으로 행군이 원활하게 진행돼 부산 상륙 후 불과 3주 만에 서울을 함락했다. 육군도 수군도 조선군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5월 7일 이순신은 드디어 수군을 다시 세워 일본을 기습했다. 그리고 7월 7일 한산도 해전까지 이순신은 몇 차례만 일본군을 기습해 성과를 거뒀다. 단, 조선군의 전술은 화살에 의한 방화이며, 검을 가진 백병전이 아니다. 한국인은 거북선이 사용되었다고 주장하지만, 전혀 근거가 없고, 또 화살을 쏘는데 거북선은 불리하기 때문에, 전술상도 거북선의 참전은 의미가 없다. 거북선을 탄 이순신의 이미지는 한국인에 의한 날조이다.
      일본이 출격 전술에서 수륙 공동 방어 전술로 방침을 변경하자 조선군의 전략은 전혀 작동하지 않게 되었다. 일본은 당초 독점적으로 수송용이었던 배에 대철포를 갖추어 중요 지점에 포대를 세웠다. 이후 이순신에 의한 일본 측 공격은 부산포 공격, 쿠마가와 공격 등 조선수군의 피해를 많이 낼 뿐 성과가 오르지 못해 조선수군의 출격횟수는 격감했다. 그 후 이순신은 적전 도망의 죄로 부하가 없는 병사에게 강등됐다.
      조선 수군의 그 후의 싸움은 모두 패전이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병에 의한 사망에 따른 평화가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체결되어 전쟁은 끝났다. 조선은 중국의 속국이었기 때문에 이 평화조약에 따른 의무가 있었다. 그러나 이순신은 평화 후에 귀국하는 일본군을 비겁하게도 배후에서 덮쳐 반대로 총격을 받고 죽었다.
      이상이 이순신과 일본군의 전투의 개요이다. 한국인에 의한 역사의 날조가 얼마나 심한지 알 것이다.

    • @just_turn_back_to_my_name
      @just_turn_back_to_my_name 2 года назад

      @@hiroono1 ㅋㅋㅋㅋㅋ 코미디 소설 잘 보고간다 ㅋㅋㅋ 조선수군의 피해가 크고 일본수군의 공격이 성공하고 효과가 있었다면 대체 왜 일본이 서해쪽으로 배를 이용한 물자수송이 진행되지 않았는지 너어어무나도 궁금하네?? ㅋㅋㅋㅋㅋ

    • @hiroono1
      @hiroono1 2 года назад

      @@just_turn_back_to_my_name 식량을 조선인 민중이 기꺼이 헌상했기 때문에 수송이 필요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군은 육로로 나아가 불과 3주 만에 서울을 함락했다. 일본은 부산을 지키는 것만으로 충분했던 것이다.

    • @just_turn_back_to_my_name
      @just_turn_back_to_my_name 2 года назад +1

      @@hiroono1 그래서 일본군 보급이 부족해서 평양에서 진격을 멈추고 굶어죽는 사람이 많았던 거군요? 조선 민중들이 독을 탄 음식을 줬나봄ㅋ

  • @ct9831
    @ct9831 2 года назад +17

    영화 명량을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마지막즈음 수봉(박보검)이 들고온 토란을 나눠 먹으며 ..
    이순신 : .... 이 쌓인 원한들을 .. 어찌할꼬..
    이 대사가 그때 와 지금 . . 미래를 말해주는것 같아 너무 와 닿았던것 같네요.

  • @user-zf6om5ce8s
    @user-zf6om5ce8s 2 года назад +32

    역시 심용환작가님은 감상(개인적주관)에 빠지지않고 객관적으로 설명해주셔서...역사를 제대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돼요.(이순신장군의 상황이 쉽게 이해되네요)감사^^
    참..매불쇼에 오늘 나오셔서 너무 반가웠어요 꺄악~
    그전에 나오시고 계속 안나오셔서 맘상한줄 알고 무척 속상했거든요. 매불쇼 시청자들은 좀 흥미로운걸 좋아해요 잼난 에피같은~~난이도 중하.. 또 그걸 써먹으며 우쭐할수 있는 소재요.
    자주 나오셔서 해박한 지식 풀어주세요!!응원합니다~~

    • @hiroono1
      @hiroono1 2 года назад

      1592년 4월 12일 오전 8시, 일본군의 제일대는 700종의 대소군선으로 쓰시마·오우라를 출발해 오후 2시 지나 부산에 상륙했다. 부산을 지키고 있던 조선군은 하루 만에 괴멸했다.
      일본군이 육로 북상하자 조선군은 공포에 몰려 잇달아 도망쳤다. 조선귀족(양반)에 의한 통치에 불만을 갖고 있던 조선민중은 일본군을 환영하며 식량을 헌상했다.
      4월 29일 조선왕인 선조는 밤이 밝아지자 서울을 버리고 출발했다. 해가 뜨고 뒤를 돌아보니 성 곳곳에서 화염과 연기가 오르고 있었다. 일본군의 도착 전에 조선인민중이 폭도화한 것이다. 도망하는 선조를 본 민중은 자신의 국왕에게 돌을 던졌다.
      5월 2일 일본군은 10만명 이상의 무리였지만 민중의 협력으로 행군이 원활하게 진행돼 부산 상륙 후 불과 3주 만에 서울을 함락했다. 육군도 수군도 조선군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5월 7일 이순신은 드디어 수군을 다시 세워 일본을 기습했다. 그리고 7월 7일 한산도 해전까지 이순신은 몇 차례만 일본군을 기습해 성과를 거뒀다. 단, 조선군의 전술은 화살에 의한 방화이며, 검을 가진 백병전이 아니다. 한국인은 거북선이 사용되었다고 주장하지만, 전혀 근거가 없고, 또 화살을 쏘는데 거북선은 불리하기 때문에, 전술상도 거북선의 참전은 의미가 없다. 거북선을 탄 이순신의 이미지는 한국인에 의한 날조이다.
      일본이 출격 전술에서 수륙 공동 방어 전술로 방침을 변경하자 조선군의 전략은 전혀 작동하지 않게 되었다. 일본은 당초 독점적으로 수송용이었던 배에 대철포를 갖추어 중요 지점에 포대를 세웠다. 이후 이순신에 의한 일본 측 공격은 부산포 공격, 쿠마가와 공격 등 조선수군의 피해를 많이 낼 뿐 성과가 오르지 못해 조선수군의 출격횟수는 격감했다. 그 후 이순신은 적전 도망의 죄로 부하가 없는 병사에게 강등됐다.
      조선 수군의 그 후의 싸움은 모두 패전이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병에 의한 사망에 따른 평화가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체결되어 전쟁은 끝났다. 조선은 중국의 속국이었기 때문에 이 평화조약에 따른 의무가 있었다. 그러나 이순신은 평화 후에 귀국하는 일본군을 비겁하게도 배후에서 덮쳐 반대로 총격을 받고 죽었다.
      이상이 이순신과 일본군의 전투의 개요이다. 한국인에 의한 역사의 날조가 얼마나 심한지 알 것이다.

  • @Elsa0709
    @Elsa0709 2 года назад +8

    난중일기가 소실되지 않고 전해 내려온게 기적에 가깝단 생각이 들어요

    • @timij7757
      @timij7757 Год назад

      요즘말로 정조대왕이 소위 이순신장군 덕후였다고 하네요.
      흩어져있던 이순신장군 일기들을 난중일기로 수합 및 편찬지시 했다고하니, 영웅이 영웅을 알아본다는 말이 괜히 나온게 아닌듯 합니다.

    • @user-mh7wd7lg5c
      @user-mh7wd7lg5c Год назад

      기적은 아님 이순신 집안이 여러 인재를 양성했고 후손들도 이순신의 후손이라는 것에 책임감을 느껴서 평판 좋았음

    • @h.s.2494
      @h.s.2494 Год назад

      이 댓글에 좋아요를 안 줄수가 없네요

  • @user-ei5li2yb4g
    @user-ei5li2yb4g 2 года назад +6

    이순신의 눈부시게 찬란했던 일생과 그가 너무나 사랑했던 조선의 바다

  • @rapha1031
    @rapha1031 2 года назад +7

    저 노량해전이 끝나고 이순신 전사 소식 듣고 병사들 얼마나 슬펐을까요

  • @user-mt6uo4sx2u
    @user-mt6uo4sx2u 2 года назад +9

    왜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어릴때부터 이순신 장군님 얘기만 들으면 저도 모르게 우울해지고 한숨만 나왔었고 오늘도 또 그러네요.. 다른 선조분들도 그랬겠지만 유독 더 힘든 싸움을 하셨던 분인거 같아요 오늘도 감사합니다!!

  • @user-gz5gl8mz2k
    @user-gz5gl8mz2k 2 года назад +20

    원균의 얼굴에서
    원유철이 보인다ㅋㅋㅋ

  • @hole.see-withbaram
    @hole.see-withbaram 2 года назад +13

    작가님의 영상은 꼭 속이 뻥 뚫리듯 시원해여... 꼭꼭 챙겨보는 채널이예여~~~^^

    • @nowstory
      @nowstory  2 года назад +4

      앞으로도 여러분의 소화제가 될 수 있도록...☆

  • @mmimipopo
    @mmimipopo 2 года назад +21

    영상에 영어 자막이 들어가 있어서 더욱 좋아요! 역사를 감정에 호소하는것이아니라 객관적으로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daewookkim4795
    @daewookkim4795 2 года назад +5

    진짜 이순신 장군님은 전시에는 성웅으로 불리실 수 있는 분이지만
    평화시에는 아마 골칫거리로 분류되셨을 겁니다.
    지금 이순신 장군님께서 해군에 계셨다면
    일본과 전쟁을 하는 상황이 아닌 이상
    상부에 단단히 찍혀서
    조기 퇴역당하셔서 치킨집을 하셨을 지도........
    진짜 과거나 지금이나 똥별들이 문제인지도 모릅니다.

  • @hanbangsabjill
    @hanbangsabjill 2 года назад +5

    명량해전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이순신도 그 전투만큼은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없었던 거 같음
    난중일기에 전투에서 이긴 건 천운이었다 라고 이순신 본인이 쓸 정도였으니
    그래서 더 대단한 거 같음 그걸 이겨냈으니

    • @yhanjisu3534
      @yhanjisu3534 2 года назад +2

      부하들은 다 도망갈 생각밖에 없엇죠. 13척밖에 없으니 무조건 진다고.
      전투가 일어낫슴에도 이순신 혼자 싸우고 잇엇고,
      부하장수들은 여차하면 튈려고 뒤에서 대기타고 잇엇는데,
      몇시간이나 이순신이 분전하니 나중에 합류함.

  • @travelbuddy7252
    @travelbuddy7252 2 года назад +23

    Thank you for the English Subtitles!
    I really like all your content :)

  • @user-kn9vr4pl4t
    @user-kn9vr4pl4t 2 года назад +25

    이 영상을 보면서 느낀 건 쌤 말씀대로 진짜로 이순신 장군님이 안 계셨다면 정말 우리나라(조선)가 살아남을 수가 없었을 것 같아요. 이순신 장군님 너무 대단하시고 최고이신 거 같아용❤️. 지금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도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쌤 사모합니다. 다음 영상도 기대하겠습니다.

    • @user-kt3zk9ly6p
      @user-kt3zk9ly6p 2 года назад

      그이전에 명나라가 없었으면 수백년전에 일본의 노예로 살았을거요 그러니 중국한테 감사히여겨함

    • @Jabberblabla
      @Jabberblabla 2 года назад +1

      @@user-kt3zk9ly6p 바보같은 소리인게 당시 여진에서도 지원군을 보낸다 하였으나 조정에서 거부하였고 명은 척계광과 장수 본진에서 와야 할 정도로 일본 해적에게 애를 먹고 있었으며 조선이 점령되었다면
      명이 그 다음이란걸 알아야지
      그리고 그 은혜는 인조반정이면 갚은것 아닌가,

    • @jeni774
      @jeni774 2 года назад

      프본이신가요

    • @user-lv6jy2in8u
      @user-lv6jy2in8u 2 года назад +2

      @붸재현 만력제한테 감사할 수 있고, 실제로 조선 후기까지도 만력제에게 조선 왕이 제사를 지냈죠. 그 정도로 충분하다 생각합니다.

    • @yhanjisu3534
      @yhanjisu3534 2 года назад +1

      고니시가 평양에서 버로우한 이유가
      병력 보급 이엇슴.
      한양에 잇던 병력들도 당장 보급없는데 무조건 올라갈수도 없고...
      그걸 막은게 이순신.
      참고로 조선도로는 진짜 개판이엇슴.
      우마차도 쉽게 못지나다닐정도로.

  • @user-vt4tp2qr2d
    @user-vt4tp2qr2d 2 года назад +20

    모든 공무원이 본받아야 할, 청렴결백의 자세가 되어있으셨던 분.. 이순신 장군님의 이야기는 정말 어느 매체에서 몇 번을 듣든 새롭고 흥미로워요😆 근데 저만 느낀 건지 모르겠는데 중간중간 나오는 배경음에 비해 선생님 목소리가 조금 작게 들려요ㅠㅠㅠ 유독 이 채널 영상은 볼륨을 3~4 정도는 더 키워야 잘 들리는데 저만 그렇게 느낀 거일 수도 있으니 그냥 이런 의견도 있다 참고만 해주세요 편집자님ㅎㅎ 항상 영상 잘 보고 있어요!

    • @nowstory
      @nowstory  2 года назад +2

      의견 감사합니다! 반영할 수 있도록 전달할게요^^

  • @user-uj9gk9jg4q
    @user-uj9gk9jg4q 2 года назад +8

    임용한박사님이 하신말씀이있지 "왕이 무슨 신하를 질투하고 미워해"

    • @user-vo6cz3nw7t
      @user-vo6cz3nw7t 2 года назад

      그런디 미워할 수는 있더라구요. 기껏 왕이 새싹 때부터 밀어줬더니 패라는 애는 안 패고 지 키워준 왕한테 딜하는 조광조라느니,
      에이, 조선은 왕이나 조정 신료나 다 같은 사대부죠~라며 성리학 교조화의 살아있는 횃불이던 꼰대 오브 꼰대 마인드의 송시열이라느니...

  • @Horang2.
    @Horang2. 2 года назад +16

    12척 대 133 이라고 하는데 아닙니다
    총 13척에서 나머지 12척은 이순신이 승기를 잡기
    전까지 멀리서 바라만 봤습니다
    대장선혼자서 31척을 박살낼때까지요
    1대 133척이라고 보는게 맞습니다

    • @yhanjisu3534
      @yhanjisu3534 2 года назад +3

      부하장수들은 전투전에도 이미 진다고 튀자고 햇엇죠.
      판옥선은 13척뿐이고, 일본 왜선은 수백척이니...
      "이순신의 분전"이 잇엇기에 나중에 그들도 합류한거니
      "이순신" 킹왕짱 맞음.
      이순신 졋으면 뒤도 안돌아보고 튀엇을테죠

    • @music-ist
      @music-ist 2 года назад

      @@yhanjisu3534 끝까지 합류 안 한 부하도 있었다고 하죠. 알면 알수록 대단한 분이세요

  • @renaigo8232
    @renaigo8232 2 года назад +55

    Thank you so much for the English subtitles! I have watched several times because there is so much to learn. I too have become an admirer of General Yi Sunsin!

    • @nowstory
      @nowstory  2 года назад +14

      You have finally opened your eyes to Korean history!!!
      welcome hahaha
      We are proud and grateful that you are still with us.
      It's late, but Happy New Year and see you with another fun content! :)

    • @hanun114
      @hanun114 2 года назад +1

      🌟👍Awesome great!

  • @doubletrouble3241
    @doubletrouble3241 Год назад +1

    "장군으로 세상에 태어나 나라에 쓰인다면 죽기로써 최선을 다 할 것이며
    쓰이지 않으면 들에서 농사짓는 것으로 충분하다." - 충무공 이순신.
    이래서 충무공을 영웅이 아니라 성웅, 즉 성스러운 영웅이라고 부르는가 보다. 개인주의, 향략주의, 물질만능주의가 만연한 현대의 우리사회에 충무공과 같은 인물이 나올 수 있도록 교육제도가 개선되었으면 좋겠다.

  • @user-wh4yh8ul6d
    @user-wh4yh8ul6d 2 года назад +4

    이순신은 과거의 조국을 구하기 위한 현재인이었을지 모른다
    극장에서 한산을 보았는데
    나와같은 공간에서 자신이 이루었던
    신화와 같은 이야기를 그영웅도
    함께 보고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든다

  • @estest82
    @estest82 2 года назад +2

    분명 이순신장군이 청렴하지만, 청빈하다고는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이순신장군은 형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형수님과 그 자식들(조카들), 어머니, 자신의 처자 등 대가족을 함께 데리고 다녀서 인원이 좀 많다는 구설?아닌 구설도 있었지만 그게 법에 어긋나지 않으니 내가 받을만큼의 권리는 받겠다는 당당함도 있으셨어요. 이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청렴이 중요한것이지, 청빈할 필요는 없는데 뉴스를 보거나 댓글을 보면 그 이상의 전부를 다 내놓아야만 진심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아서 굳이 글 답니다.

  • @user-ch4vx3nu7j
    @user-ch4vx3nu7j 2 года назад +12

    충무공 할아버지 후손이라는게 자랑스럽습니다. 전략, 전술도 중요하지만 요즘 이슈가 되는 소통을 통한 정확한 정보들의 취합을 통해 가급적 바른 판단을 한다는게 쉬운일은 아닌거 같습니다. 저도 이러한 부분을 많이 슥듭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명재상 서애 류성룡 선생님과 같이 이끌어주는 분이 있으셨기에 가능했던 부분도 있고요. 또한, 개인적으로 저 같으면 율곡 선생님의 라인이 있었다면 왜 마다해(?) 이랬을텐데 그러한 처세가 부당하단 굳은 신념이 있으셨기에 충무공 할아버지의 업적이 더 빛을 내는거 같습니다.

    • @KIM_HS_0228
      @KIM_HS_0228 2 года назад +2

      덕수 이씨이세요? 직계 아니면 방계인가요?

    • @user-ch4vx3nu7j
      @user-ch4vx3nu7j 2 года назад +5

      @@KIM_HS_0228 네. 덕수이씨이고, 방계입니다. 예부터 충무공 할아버지 후손들은 아들들이 귀해서 많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 @jsl8821
      @jsl8821 2 года назад +3

      캬 자랑스러우시겠습니다. 이순신 장군님 이후로도 후손 중에 무관, 독립운동가들도 많으셨다고 배웠습니다.

    • @user-ch4vx3nu7j
      @user-ch4vx3nu7j 2 года назад +6

      @@jsl8821 네. 일가분들 중 훌륭하신 분들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저도 훌륭해지기 위해 하루하루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 @yhanjisu3534
      @yhanjisu3534 2 года назад +2

      @@jsl8821 위키에 의하면,
      원래 덕수이씨는 문관집안이지만,
      이순신 이후 관료를 133배출.
      그중 한명만 문관이고 전부 무관으로 진출햇다네요.
      옛날이나 지금이나...
      후손들이 비교도 많이 당햇다고 합니다.
      어허 예전 충무공께서는....라고

  • @이팔팔-v5h
    @이팔팔-v5h 2 года назад +8

    우리에겐 멋진 선배, 멋진 리더가 있었다..
    이말 너무 좋네요...

  • @boxmoney-sc8wf
    @boxmoney-sc8wf 2 года назад +5

    청렴하고 능력있는 관료가 나라를 살렸네

  • @Na-nl8pj
    @Na-nl8pj 2 года назад +6

    사피엔스에서 첨 뵈고 더 많은 강의를 보고 싶었지만 정보를 알 수 없어 늘 아쉬웠었는데 유튜브를 시작하셨었네요.
    좋은 영상 감사하고 오늘부터 정주행 들어갑니다🤙

  • @Runlight
    @Runlight 2 года назад +4

    땡큐 만력제!!!!!!!!!!!!!!!!!!

  • @koreaskki
    @koreaskki 2 года назад +7

    조선은 망할수밖에 없는 나라였구나
    그나마 저리 정직하고 청렴한 성웅을 내려주신
    이는 한 나라를 구원한거와 같다ㅜㅜ

  • @user-vq5xq3ng7p
    @user-vq5xq3ng7p 2 года назад +5

    역사관한 재미난이야기해서 시사교양쪽으로 티비방송안하나 심용환 선생님너무좋다

  • @user-go8jf5sy5n
    @user-go8jf5sy5n 2 года назад +4

    보급의 신 이순신장군 전쟁에서 제일 중요한 보급을 자체적으로 해결햇다니 정말대단하심

    • @timij7757
      @timij7757 Год назад +1

      초창기 함경도 녹둔도에서의 둔전관 경험이 큰 도움이 된것 같습니다. 이런걸 보면 사람의 다양한 경험과 도전이 실력을 쌓게 하는것같아 한 수 배우고 갑니다.

  • @ninasuoth5430
    @ninasuoth5430 2 года назад +19

    Thank you so much for the english subtittle and thank you so much for sharing this knowledge! I really love your youtube video content! 🥺

  • @happynessdog
    @happynessdog 2 года назад +2

    와~ 생각하지도 못했던 부분까지 설명해주시고 쌍둥이 아들한테 상세하게 설명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 @jaemookjung
    @jaemookjung 2 года назад +4

    멋진 선배라는 표현 !! 정말 멋진 표현이군요

  • @geunho__
    @geunho__ Год назад +1

    노량해전에서 진린 이야기는 처음 들어봤네요
    그래서 이순신장군의 마지막 해전이였구나... ㅠ

  • @ppangzac
    @ppangzac 2 года назад +5

    쌤 오늘 매불쇼 봤어요,,!,!

    • @user-xd4nj8pq3e
      @user-xd4nj8pq3e 2 года назад

      오. 매불쇼도 보러가야겠네용. 정보 감사해융

  • @mtbikerFelix
    @mtbikerFelix 2 года назад +2

    작가님의 통찰력 있는 해설이 좋네요 저서를 구입해야 겠습니다. : )

  • @BAZZI83
    @BAZZI83 2 года назад +5

    철갑선이 일본에서 이야기가 나온 배경에 대해 조금더 생각해보자면 일본은 예나 지금이나 패한 역사에 무엇때문이다 라고하는 약간의 변명 또는 근거를 만들고 이야기 하는것을 많이 해욌기 때문에 우리는 철갑선 같은 강력한 전함에 진것이고 이순신은 엉청난 사람으로 우리가 대적할수 없었기 때문에 진것이다 결코 우리가 약해서 진것이 아니다 라는 식의 생각이 지배적이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 @sunyujin8032
    @sunyujin8032 2 года назад +4

    심쌤의 강의는 항상 뭔가를 생각하고 얻어 갈수 있게 하네요. 감사합니다~

  • @rorang31
    @rorang31 2 года назад +2

    하필 이순신이랑 같은 시대 같은 상황에 놓여서 아직도 욕먹는 원균 ㅋㅋㅋ

  • @user-qw8zl4rz5m
    @user-qw8zl4rz5m 2 года назад

    충무공 이야기는 들을때마다 짜릿해 새로워 놀라워....

  • @user-rn5xr9kh4c
    @user-rn5xr9kh4c 2 года назад +3

    심용환 선생님의 알기쉽게 설명해주시는 역사강의 팬입니다

  • @doroshi99
    @doroshi99 2 года назад +3

    이순신이 영웅이 될 수 있었던 이유)선조의 지리는 픽업.
    원균의 개빡치는 트롤링.
    그걸 이겨낸 이순신의 원맨 하드캐리.

  • @qowo2616
    @qowo2616 2 года назад +2

    작가님 채널을 이제서야 발견한 제자신을 반성하고 구독 박구 갑니다

  • @jonghoonkim8688
    @jonghoonkim8688 2 года назад +4

    이순신 같은 군인은 오늘날에도 출세하기는 힘들 듯….. 짜웅도 못하고 상관 잘못까지 지적하는데 출세 불가능하지. 임란이라는 국난을 맞이하여 능력 그 자체로 고위직까지 단기간에 올라간 사례

  • @seolyh4129
    @seolyh4129 2 года назад

    이런내용을 듣고 유적지를 탐방 하니까
    새롭네요~~~^^

  • @77taegukgi
    @77taegukgi 2 года назад +1

    그냥 눈물밖에 안나옴...

  • @user-ec8yd3sz8c
    @user-ec8yd3sz8c 2 года назад +6

    아 진짜 신사임당이랑 자리바꿔드리고싶다

    • @timij7757
      @timij7757 Год назад

      동감합니다. 후손된 도리로서 백원은 아니라고 봅니다.

  • @JPark-hz8oy
    @JPark-hz8oy 2 года назад +1

    이 시대로 가서 한 번이라도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갑자기 훅;;

    • @timij7757
      @timij7757 Год назад

      저도 동감합니다. 진심 타임머신이 있다면 한 번 뵙고 싶을정도입니다.

  • @user-by6xz8eg3u
    @user-by6xz8eg3u 2 года назад +5

    9:28 왜군이 외군으로 나와 있네요.
    그전에 일본식 한자 발음이자 술자리 언어인 분빠이→뿜빠이가 나와서 순간 당혹했습니다.

  • @MeaByeouk
    @MeaByeouk 2 года назад +3

    솔직히 부하였으면 전쟁 이기기 전까지 싫었을꺼 같음 너무 힘들어서 ㅋㅋㅋㅋㅋ

  • @user-jm5gi4fg2m
    @user-jm5gi4fg2m 2 года назад +1

    호란과 왜란의 차이를 군대의 입장에서 생각해본 적은 없었는데 오늘 컨텐츠를 보니 상대의 역량을 파악하고 자신의 한계를 객관화시키는 것이 성공과 실패를 기르는 가장 중요한 근거 아니었을까 싶네요. 심용환 쌤의 한국사 군대 컨텐츠도 보고 싶네요!!! 의병이나, 계백, 군역 등 역사책에선 한 두줄로 쓱 넘어가는 문장을 개인의 이야기나 특징으로도 만나보고 싶어요

    • @hiroono1
      @hiroono1 2 года назад

      1592년 4월 12일 오전 8시, 일본군의 제일대는 700종의 대소군선으로 쓰시마·오우라를 출발해 오후 2시 지나 부산에 상륙했다. 부산을 지키고 있던 조선군은 하루 만에 괴멸했다.
      일본군이 육로 북상하자 조선군은 공포에 몰려 잇달아 도망쳤다. 조선귀족(양반)에 의한 통치에 불만을 갖고 있던 조선민중은 일본군을 환영하며 식량을 헌상했다.
      4월 29일 조선왕인 선조는 밤이 밝아지자 서울을 버리고 출발했다. 해가 뜨고 뒤를 돌아보니 성 곳곳에서 화염과 연기가 오르고 있었다. 일본군의 도착 전에 조선인민중이 폭도화한 것이다. 도망하는 선조를 본 민중은 자신의 국왕에게 돌을 던졌다.
      5월 2일 일본군은 10만명 이상의 무리였지만 민중의 협력으로 행군이 원활하게 진행돼 부산 상륙 후 불과 3주 만에 서울을 함락했다. 육군도 수군도 조선군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5월 7일 이순신은 드디어 수군을 다시 세워 일본을 기습했다. 그리고 7월 7일 한산도 해전까지 이순신은 몇 차례만 일본군을 기습해 성과를 거뒀다. 단, 조선군의 전술은 화살에 의한 방화이며, 검을 가진 백병전이 아니다. 한국인은 거북선이 사용되었다고 주장하지만, 전혀 근거가 없고, 또 화살을 쏘는데 거북선은 불리하기 때문에, 전술상도 거북선의 참전은 의미가 없다. 거북선을 탄 이순신의 이미지는 한국인에 의한 날조이다.
      일본이 출격 전술에서 수륙 공동 방어 전술로 방침을 변경하자 조선군의 전략은 전혀 작동하지 않게 되었다. 일본은 당초 독점적으로 수송용이었던 배에 대철포를 갖추어 중요 지점에 포대를 세웠다. 이후 이순신에 의한 일본 측 공격은 부산포 공격, 쿠마가와 공격 등 조선수군의 피해를 많이 낼 뿐 성과가 오르지 못해 조선수군의 출격횟수는 격감했다. 그 후 이순신은 적전 도망의 죄로 부하가 없는 병사에게 강등됐다.
      조선 수군의 그 후의 싸움은 모두 패전이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병에 의한 사망에 따른 평화가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체결되어 전쟁은 끝났다. 조선은 중국의 속국이었기 때문에 이 평화조약에 따른 의무가 있었다. 그러나 이순신은 평화 후에 귀국하는 일본군을 비겁하게도 배후에서 덮쳐 반대로 총격을 받고 죽었다.
      이상이 이순신과 일본군의 전투의 개요이다. 한국인에 의한 역사의 날조가 얼마나 심한지 알 것이다.

  • @yuncheollee3559
    @yuncheollee3559 2 года назад

    아들과 같이 볼 수 있는 채널 발견했네요. 앞으로 다 봐버리겠습니다. ㅎ

  • @marecha9408
    @marecha9408 2 года назад +1

    이순신 장군님.. 더 말해 무엇하리오

  • @user-yg4vk3mm1d
    @user-yg4vk3mm1d 2 года назад +3

    용환이형님 아니 작가님 벌써 만명이라니요 :):)

  • @K시고르자브종
    @K시고르자브종 2 года назад +1

    이순신 장군께서 도망가는 일본군을 무리하게 쫓아가다가 전사하셨다는 얘기가 꽤 많이 돌았고, 아직도 그렇게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은데, 왜 그런가 가만히 생각하다가 어느 인간의 얼굴이 떠올랐다.

  • @user-nv2zk2ic1f
    @user-nv2zk2ic1f 2 года назад +3

    결론 원균이라는 자는 한마디로 적폐중의 적폐였음.

  • @user-je8xx4if1y
    @user-je8xx4if1y 2 года назад

    우와,,, 너무 멋지자나

  • @user-yqosnbu
    @user-yqosnbu 2 года назад +2

    이순신장군배만 전투 중반까지 혼자 싸우다가 중반되서야 안위오고 그남에 김응함오고 3척 외에 나머지 배들은 구경만 하다가 물길 바뀐담에 오고 심지어 끝까지 안온 배도 있다고 하던데 잘못들은 건가요?

  • @user-mz4gk2uf4o
    @user-mz4gk2uf4o 2 года назад +3

    이순신의 킹메이커 유성룡 정탁이 공무시할수 없네

    • @timij7757
      @timij7757 Год назад

      정탁님 상소 아니었으면 아마 의금부 2차고문때 견디지못하고 돌아가셨을거라고 하던데, 정말 천운이 발생했습니다.

  • @saera5725
    @saera5725 2 года наза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위대한 인물 중 한분이 이 순신 장군님이신데
    이분의 업적이야 말할것도 없겠으나 가장 좋은 부분이
    우리이웃을 챙기고, 나라를 위해 기꺼이 희생하신 성품을 갖추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순신 장군님이 그당시 권력자들에게 천대 받으셨던 일들이 너무 속상해서 항상 마음에 남았는데
    이런 분이셨기에 오늘날까지도 우리가 기억하고, 참다운 인간의 자세에 대해 배우고 있구나.. 생각합니다.
    심용환 작가님덕에 우리의 올바른 역사 많이 배우고 가겠습니다.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jiujitsubranding
    @jiujitsubranding 2 года назад +1

    진짜 시간 너무 빨리가는거아닌가요??ㅠ 더보고싶어~~~!!!!!!! 너무재밌습니다

  • @user-ye1ms6rn4r
    @user-ye1ms6rn4r 2 года назад +2

    어지간하면 우리나라 역사관련 기록물에 욕설이 잘 없는거로 가는데 원균은 그냥 "원흉" 으로 까디 나온거보면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timij7757
      @timij7757 Год назад +1

      그렇죠! 초창기엔 원수사 원수사 하다가....

  • @jeongmo16
    @jeongmo16 2 года назад +2

    , , ,채널이랑 편집스타일이 비슷해요

  • @dior1518
    @dior1518 2 года назад +3

    한국 역사가가 일본 잔재어
    뿜빠이 단어를 쓴다.
    이순신 장군이 자다 깨긋다

  • @zlwon83
    @zlwon83 2 года назад +1

    제갈공명은...신출귀몰보단 오히려 이순신과 라고 생각하네요...철저히 안전주의자이고 철저하게 준비한뒤 북벌을 강행하죠....위연주장은 누른거만봐도 안전주의같습니다...그리고 이순신과 제갈량의 공통점이라면 둘다 없는자원으로 싸우죠 둘다 자기의 군세가 망하면 나라가 망하는상황이라....더욱더 철저하게 안전주의로 전쟁을 임한거같다 라고 하더군요...

  • @lovelyday3082
    @lovelyday3082 2 года назад +1

    4:16 뿜빠이데스까?

  • @martincho7398
    @martincho7398 2 года назад

    👍👍👍

  • @user-yd3kv6kj3r
    @user-yd3kv6kj3r 2 года назад +3

    새로운 컨텐츠 추천드립니다. 바다에 이충무공이 계시다면 육지에는 황진장수가 계십니다. 이충무공께서도 극찬하셨던 우리 역사교과서에는 나오지도 못했던
    하지만 그분이 없었다면 전라도 또한 점령당했다고 확신합니다.

  • @user-cw5px8fl5x
    @user-cw5px8fl5x 2 года назад

    웃긴게 저시대나 지금이나 정치인들하는짓은똑같은거같다....역사 진짜필수과목으로해야된다

  • @이인호-w7g
    @이인호-w7g 2 года назад

    크~~~

  • @user-jn1od6fo7t
    @user-jn1od6fo7t 2 года назад

    쌤! 장군님이라고 해주세요!
    저에겐 영웅이십니다!

  • @germaniscake
    @germaniscake 2 года назад +1

    개인적으로 선조가 왜 그렇게 이순신을 견제했는지 이해가 됨. 한반도 일부 지역을 아우르는 민중의 지지, 강력한 군권, 뛰어난 무공과 선전
    이거 완전 이성계 건국 신화의 재현이잖아

    • @user-bw8hg5xz5w
      @user-bw8hg5xz5w 2 года назад

      세계전사연구박사님이신 임용한교수님께서 유튭에서 잠깐 언급하셨죠! 500년조선역사상 단한명의야전지휘관에게 조선전체전력의60%의군권이 주어진역사가없었답니다.게다가 전체전력의 대부분이 수군이였고 수많은전투에서 갈고닥은 정예병력이였으며, 절대적으로 이순신장군을신뢰하고 따르고있으니 왕입장에서는 불안한게 당연한듯합니다.뭐 선조와이순신장군은 얼굴대면도 없었답니다.
      칠천량때 수군전력이 판옥대선만160척에 대소선합쳐서200척의 대함대였고 판옥선 한척당150명승선인원잡으면 무려3만의 대병력입니다. 아 그리고 참고로 이순신장군께서는 판옥선400척에 6만의 군사를 키워서 부산포를 한방에 접수하고 전란을끝낼려는 작전을 세우고있었는데, ㅠ.ㅠ 암균이가 칠첝량에서 다말아쳐먹어서 노량해전때는 겨우100여척까지 다시키우셨다는

    • @user-xu5mz2xq8x
      @user-xu5mz2xq8x 2 года назад

      이순신 할아버지 역모죄로 엮겨서 파직당함서울서 살다가 아산으로 이사가는계기 선조가 이순신장군 견제하는게 이것때문 아닐까요,고등학교 역사 시간에이리 배워는데요

    • @user-xu5mz2xq8x
      @user-xu5mz2xq8x 2 года назад

      이순신 집안 금수저 집안 나라에서 지원 못받고 자기 재산 털어서 배 함선 만드는데 다씀

  • @user-jx5dq2xt8g
    @user-jx5dq2xt8g 2 года назад +1

    굳히 학익진을 쓴 이유가 바로 근접거리를 허용하지 않기 위해서군요 ㅎ지피지기면 백전백승

    • @user-ye1ms6rn4r
      @user-ye1ms6rn4r 2 года назад +1

      지피지기면 백전불"태" 입니다. 위태롭지 않은 거지 지지않는게 아닙니다. 항우 vs 유방만 보더라도 지피지기였지만 개 박살납니다.

  • @user-fo8vk7vp7d
    @user-fo8vk7vp7d 7 месяцев назад

    이순신이 100원짜리에 있다는게 아이러니하죠....10만원현금 나오면 그게 이순신이여야할듯해요.

  • @user-kt8yp5ho2y
    @user-kt8yp5ho2y 2 года назад +3

    연은분리법과 페스트가 동아시아에 끼친 영향에 대해서 다뤄주세요. :)

  • @user-rg7mo8ec2t
    @user-rg7mo8ec2t 2 года назад +2

    이순신 얘기하시면서 뿜빠이

  • @hectorlombard5291
    @hectorlombard5291 2 года назад +1

    이순신 장군이 마지막까지 살아서 역성혁명으로 저때 조선을 무너뜨리고 왕이 됐어야 했는데...

  • @dudrak7575
    @dudrak7575 2 года назад

    화포의 발전은 태종 때라기보다는
    세종 때 조선에 적합한 화포의 제원을 마련한 총통등록 부터 이닐까 합니다.

  • @ljm1234ify
    @ljm1234ify 2 года назад +2

    덕수이씨 27세손 입니다. 전국 5만명 밖에 없는데 사회 나와서 처음 만난 덕수이씨가 아내가 되었네요.

  • @kelinzer
    @kelinzer 2 года назад

    용환이형 잘 볼게요

  • @user-bx6rt6mr7i
    @user-bx6rt6mr7i 2 года назад

    가만 생각해보면, 선조가 원균 말을 들은게 이해가 되기도 하네요. 이순신은 장계로 승리를 전했고 원균은 수급으로 승리를 전했잖아요. 위성이 없는 그 시절 판단을 내려야 하는 결재권자라면 선조와 같은 판단을 내릴 확률이 충분히 있어요. 글쓰는 저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도 선조와 같은 판단을 내릴 확률이 높다고 보여지네요. 역사를 통해 타인을 비난하기 보다, 이 사람이 왜 이런 실수를 했고 그러지 않도록 교훈을 얻는게 역사의 참된 접근방법인 것 같아요. 이순신과 원균 선조임금을 통해 '현장에 대한 보고를 분석하는 능력' .. 이 점을 어떻게 키울까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 @yhanjisu3534
      @yhanjisu3534 2 года назад

      이순신이 수군통제사, 원균은 부하임.
      원균은 이순신을 통제사 대우도 안해줫고,
      지휘계통 어기고 지 맘대로 장계 올린것임.

  • @user-jk6ey3ib3j
    @user-jk6ey3ib3j 2 года назад +8

    안녕하세요 선생님, 늘 영상 잘 보고 있습니다. 나중에 '민초'에 대해서도 한번 다뤄주셨으면 좋겠어요. 개인적으로 역사 영화에서 민중들의 활약을 눈여겨보는데 자세히 다뤄준 영상이 없어서요.

    • @nowstory
      @nowstory  2 года назад +2

      의견 감사합니다^^!

  • @longswordparkour511
    @longswordparkour511 2 года назад +1

    영상 잘봤습니다 ㅎㅎ 혹시... 곽재우 장군님이나 다른 의병장들도 다루어 주실수있으신가요? ㅎㅎ 궁금해서요 ㅜㅜ

    • @timij7757
      @timij7757 Год назад

      곽재우장군도 이순신 몫지않은 넘사벽이라노 들었는데.....
      잘 안알려져서 아쉽네요

  • @bunningshouse
    @bunningshouse 2 года назад +2

    류성룡 인맥라인 없었으면 초창기부터 억울하게 관직 끝냇을거라 보는데...

    • @timij7757
      @timij7757 Год назад

      류성룡이 사람보는 눈이 탁월한듯.

  • @user-hn6hh9hb9x
    @user-hn6hh9hb9x 2 года назад

    안경이 잘 어울리시네요^^

  • @zzang_go
    @zzang_go 2 года назад

    선견지명이 있으셨던 것 같아요 장군님은👍

  • @user-rb8hv7zq1b
    @user-rb8hv7zq1b 2 года назад

    개인적인 생각으로 우리나라 단군왕검 이래로 이땅에 나고자란 사람중에 위대한 인물 딱 한 명 꼽으라면 '이순신'

  • @yosuppark7659
    @yosuppark7659 2 года назад +1

    선조와 이순신의 결정적인 차이

  • @user-st2my4yr7d
    @user-st2my4yr7d 2 года назад

    6:10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쌤 반응=내 반응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user-ow7ze1qn3g
    @user-ow7ze1qn3g 2 года назад +3

    선조 시기에 사람이 있어서 위기를 넘겼고 인조 시기에 그나마 있던 사람들도 모함으로 죽고 무능력한 사람들이 권력을 잡았네요

  • @user-qt2ib7dj1e
    @user-qt2ib7dj1e 2 года назад

    작가님 배우 류수영님 닮으셨어요~^^
    제 개인적인생각이지만요 ㅎㅎ
    좋은 영상감사합니다

  • @user-gl6js2ge8m
    @user-gl6js2ge8m 2 года назад +2

    그거아셈?
    순신이형 육군 소위출신이야
    이 형은 지금태어나도 육해공 어딜가도 잘할사람이지

  • @user-lb5qj1nu5s
    @user-lb5qj1nu5s 2 года назад

    예외ㅡ알렉산더, 항우
    인간병기는 역사서에 남음

  • @user-vi9yp9br5h
    @user-vi9yp9br5h 2 года назад

    이제서야 구독했네요

  • @Hyuchan1002
    @Hyuchan1002 2 года назад +1

    오늘 날에도 저렇게 청렴하게 공무원을 해서 빛 볼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본다면 오늘날이 되려 조선시대만도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