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중반까지는 북한국이 우리나라 보다 경제적으로 더 발전했었어요. (미국 CIA 보고서에 그렇게 다 나와있어요.) 70년대 후반부터 우리나라가 북한국 경제를 앞지르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80년대 중반까지는 별 차이가 없었어요. 하지만 사회주의 체제의 근본적 한계로 인하여, 80년대 중반 이후 쏘련과 동구권 국가들의 경제가 급격하게 악화되었고, 그래서 북한국으로의 경제적 지원은 중단되었어요. 그러자, 북한국 경제는 점점 어려워지다가, 90년을 전후로 쏘련과 동구권이 모두 폭망하자, 북한국 경제도 폭망 직전까지 몰린거죠. 하지만, 김일성 살아 생전에는, 등소평 장쩌민 등 중국 공산당 지도자들과 김일성 사이의 관계가 매우 돈독했기 때문에, 중국으로부터 최소한의 지원을 받았을테지만, 충분하지 못했을거에요. 당시 우리나라의 상황은. 87년까지만 해도 대기업 노동자 월급이 20만원 수준이었어요. 그런데, 87년 민주화 이후 90년때 초반까지 소위 노동자대투쟁을 거치면서, 노동자 월급이 급격히 올라서 100만원이 넘어갔어요. 그러다가, 94년도 김영삼 정부는 해외투자 자유화조치를 발표하는데. 인건비가 급격하게 오르자, 기업들이 인건비가 저렴한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준거죠. 당시 중국 인건비는 우리나라의 10분의 1도 안되던 시절이었어요. 그러자, 부산 등의 신발 공장, 대구 등의 섬유 공장 등이 대거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하면서, 우리나라에서 달러가 빠져나갔고, 그것이 98년 IMF 금융위기를 유발한 원인 중 하나에요 당시 이런 상황들을 감안해보면. 김일성이 3년 정도만 더 살아서, 94년 7.27 김영삼-김일성 정상회담이 성사되었더라면, 2004년부터 시작된 개성공단 가동은 10년 정도 빨라졌을거에요. 그랬으면, 최대 300만명이 굶어죽었던 고난의 행군도 겪지 않았을거에요. 북한국이 고난의 행군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는, 2001년부터 우리나라 정부가 북한국에 연간 40만톤씩 쌀을 지원해주었고, 비료 역시 그때부터 해마다 30-50만톤씩 지원해주었기 때문에, 식량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거에요. 즉, 김일성이 3년만 더 살았더라면, 남북 경제 협력은 94년부터 시작되었을 것이고, 95년부터 시작된 고난의 행군으로, 북한국 주민 수 백만명이 굶어죽는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거에요.
맞습니다
독재자.
전쟁으로 민족상쟁
범인
정적들 다 뒤집어씌우고 죽인 범죄자
주둥이로만 하지 않고 실천을 했으면,
거기다 김일성 일족의 독재만 안했더라면 최소한 아사는 피했을텐데.
도대체 이런 엉터리를 신격화했다니, 아직도 착각하고 있는 임슈괭 임죙셕 같은 외물들이 많다니?
저 때 공급도 안 된다는 것도 인지 못할 정도의 현실감 제로 뻥쟁이.
지금
북한 정치경제상황
사면초가
곧
붕괴
못사는가 봐라 더 못산다😢
개그맨 이경규 아저씨가 그러더라고요 무지한게 잘못된 신념을 가지면 그것이 제일 무섭다 라고요
축지법 쓰면될걸 실행도 안될 지령만하지 ? 축지법은 사기인가?
제재 받기전에는 왜 못살았누!
영감쟁이 똥고집에....북한주민들이 죽어났네...
김부자들은 이밥에고기국 먹잔아요 북한주민이 신으로생각하는데 신은 당연히 좋은것만먹고 좋은것만해야죠
진짜 희귀 영상이네요
저렇게 무서울 게 없던 악마도 결국 저승사자한테는 꼼짝 못하고 끌려갔네요
뜬금없지만 목소리가 배우 이순재님이랑 거의 비슷해서 웃겼어요ㅋㅋ
지영씨 영상 잘봤어여 김일성 정부때 대단 했네요 *^^*
와 알고보니 그냥 동네 술취한 할배였네 수준하고는 ㅉㅉ
와 진짜 우리나라로 따지면 국무회의 일텐데 수준 자체가 너무 낮네, 계획경제라면서, 계획성은 없고 시멘트 만들라 비료만들라 이지랄만하고 있네 수준 ㅋㅋ
김일성은 말련에 그렇게 안죽었으면 후회하고 예수 믿고 통일 했겠지?
김정일이가 죽인거야!
열받게해서
정항상보면 그래요.
이름은 잘 생각이 안나는데 김일성이가 미국 어떤 목사님도 만날려고 했어던 모양인것 같했어요.
94년도 김일성 죽기 몇 달전 영상이네여
목소리가 너무 쉬고 걸걸해서 비서들 받아 적기 힘들겠네 ㅜㅜ
송지영 화이팅!!
지영님 응원해요
행복하세요
북한 수재민 40대 여성이 텐트속에서 러시아에서 받은 구호 물품 버터를 먹고 푸틴 만세 외쳤다가 끌려가서
조사 받고 하루만에 풀려났다고 하네요
항상응원합니다....영상이 늘짧아서 아쉽네요 참고해주시고.무더운날씨 건강하게잘지내세요!
지영님 요즘 두루 활동 많이하는게 좋아 보입니다...응원합니다 😅
이때가 최악인줄 알았겠지.
최악은 맞지..저 혹부리영감이 애새끼 까질러 낳아서 지속되고 있으니까...
지금 평양말씨가 하나도 없는게 신기하네요. 옛날말씨는 남이나 우엣동네나 꽤 비슷했던것 같군요.
송여사님 안녕하세요! 1등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일성아 ᆢ너를지키는 홍위병들과 간신배들은 이밥에고깃국 처먹고 나머지 인민들은 뭘먹고사는지 봤네 ? 참 ᆢ옛날이야기네 지금은더굶주리는데 ? 불쌍한건 무매몽지한 인민들뿐이로다 아 ㅡㅡㅡㅡㅡ
응원합니다.
70년대 중반까지는 북한국이 우리나라 보다 경제적으로 더 발전했었어요. (미국 CIA 보고서에 그렇게 다 나와있어요.) 70년대 후반부터 우리나라가 북한국 경제를 앞지르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80년대 중반까지는 별 차이가 없었어요. 하지만 사회주의 체제의 근본적 한계로 인하여, 80년대 중반 이후 쏘련과 동구권 국가들의 경제가 급격하게 악화되었고, 그래서 북한국으로의 경제적 지원은 중단되었어요. 그러자, 북한국 경제는 점점 어려워지다가, 90년을 전후로 쏘련과 동구권이 모두 폭망하자, 북한국 경제도 폭망 직전까지 몰린거죠. 하지만, 김일성 살아 생전에는, 등소평 장쩌민 등 중국 공산당 지도자들과 김일성 사이의 관계가 매우 돈독했기 때문에, 중국으로부터 최소한의 지원을 받았을테지만, 충분하지 못했을거에요.
당시 우리나라의 상황은. 87년까지만 해도 대기업 노동자 월급이 20만원 수준이었어요. 그런데, 87년 민주화 이후 90년때 초반까지 소위 노동자대투쟁을 거치면서, 노동자 월급이 급격히 올라서 100만원이 넘어갔어요. 그러다가, 94년도 김영삼 정부는 해외투자 자유화조치를 발표하는데. 인건비가 급격하게 오르자, 기업들이 인건비가 저렴한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준거죠. 당시 중국 인건비는 우리나라의 10분의 1도 안되던 시절이었어요. 그러자, 부산 등의 신발 공장, 대구 등의 섬유 공장 등이 대거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하면서, 우리나라에서 달러가 빠져나갔고, 그것이 98년 IMF 금융위기를 유발한 원인 중 하나에요
당시 이런 상황들을 감안해보면. 김일성이 3년 정도만 더 살아서, 94년 7.27 김영삼-김일성 정상회담이 성사되었더라면, 2004년부터 시작된 개성공단 가동은 10년 정도 빨라졌을거에요. 그랬으면, 최대 300만명이 굶어죽었던 고난의 행군도 겪지 않았을거에요. 북한국이 고난의 행군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는, 2001년부터 우리나라 정부가 북한국에 연간 40만톤씩 쌀을 지원해주었고, 비료 역시 그때부터 해마다 30-50만톤씩 지원해주었기 때문에, 식량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거에요. 즉, 김일성이 3년만 더 살았더라면, 남북 경제 협력은 94년부터 시작되었을 것이고, 95년부터 시작된 고난의 행군으로, 북한국 주민 수 백만명이 굶어죽는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