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박 감독님 사인볼 이벤트] 안녕하세요 구독자 여러분! 체육공단 제작진입니다. '빵형의 잘하자 in cafe' 김재박 2편에서 '김재박 감독님' 사인볼 이벤트를 진행합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이벤트 참여 방법] 1. 체육공단 구독, 영상에 좋아요(필수!) 2. 댓글에 영상 관련 내용을 자유롭게 댓글에 달아주세요!
✓ 이벤트 기간: ~08/25(일)까지 ✓ 당첨자 발표: 08/26 (월) 3명 (사인볼 3명) 개인 정보 취합 및 구독 인증 방법은 영상 내 답글로 안내 [주의사항] *당첨자 정보 전달 수령 후, 최근 6개월 간 체육공단 유튜브 댓글 이벤트에 당첨되신 내역이 있는 경우 당첨이 취소됩니다.
국민학교 다닐때 김재박 선수 싸인 공 못받은 것이 정말 두고 두고 아쉬웠는데 50대 아저씨가 되어서는 꼭 받아 보고 싶습니다!!! 김재박 감독님 사인본 이벤트 MBC 청룡 어린이 회원은 어머니께서 돈 없다고 안된다고 하셔서 회원도 못되었지만 항상 MBC청룡과 김재박 감독님을 응원했었습니다!!!
88년,89년 MBC청룡 어린이 회원입니다. 88년에 MBC 회원가입하려고 구로구까지 갔던 기억이 있네요. 그리고 회원책자에 김재박 프로필에 MBC청룡 어린이회원중 80%가 김재박 선수팬이라는 문구가 아직도 기억에 남네요. 저 역시 김재박선수의 팬이었고 아버지를 따라 처음 간 잠실야구장에서 김재박선수가 홈런포함 4타수4안타를 친 기억도 납니다. 또 몇년도인지 정확히 기억은 안나는데 올스타전에서 홈런포함 5타수4안타 친 거로 기억납니다. 아마 91년같은데 홈런빼고 다 단타라서 아쉽게도 MVP를 못받고 감투상인가 받았었죠. 팬으로서 정말 아쉬워했었던 기억이나네요.
저는 박재홍 위원과 갑장인 50대초반 아저씨입니다. 대한민국 야구천재중 이종범보다 훨씬 먼저 그라운드의 여우 김재박 선수가 있었습니다. 타격 8관왕도 하시고, 무엇보다 제가 국민학교 3학년때 세계야구선수권에서 일본을 상대로 개구리 번트하셔서 역전을 했잖아요. 그 다음날 학교교실에서 아이들이 다 "내가 김재박이다"라고 하면서 작대기자고 점프하던 기억이 납니다. 프로야구 초창기 유격수로 라이벌이라고 할 선수가 없었죠. 그냥 독보적인 선수였습니다. 어릴때 MBC청룡 회원이 되고 싶었는데 어머니께서 안된다고 해서 회원이 못되서 정말 아쉬웠었죠. 우리 동네에서 늘 아이들과 공터에서 야구를 했었는데요. 저는 김재박선수를 좋아해서 늘 유격수를 도맡아서 했어요. 그러다 불규칙바운드에 얼굴도 맞고 늘 흙투성이었었지요. 올해 70세라고 하시는데 머리도 까맣고 50대초반으로 보이시네요. 젊음의 비결이 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40년넘게 김재박 감독님을 좋아하고 응원했던 50대초반 아저씨에게 김재박 감독님의 싸인 볼 꼭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야구를 좋아하는 제 지인들에게 자랑하고 잘 보관하고 싶습니다!!! 3편도 기대하겠습니다!!!
저는 인천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사회인 야구 하시던 아버지 따라 도원구장 자주가던 40대 입니다. 잘 못하던 태평양을 응원하며 94년 한국시리즈 진출했던 기억이 최고였다가 96년 현대로 바뀌고 신나게 야구 봤던 기억이 지금까지도 최고의 시즌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당시 괴물신인 박재홍과 마찬가지로 괴물신인감독인 김재박 감독이 시너지를 내 좋은 결과를 만들어 냈었죠. 한국시리즈 4차전인가 정명원 선수 노히트노런 게임 직관도 갔었고 항상 박재홍 선수 기다린다고 남아있던 생각도 납니다. 박진만 선수 차를 얻어타고 가시던 박재홍 선수의 모습이 지금도 남아 있네요. 세계최초 신인 30-30이라며 기념구도 나눠줬었는데 정말 대단했던 시즌이었습니다. 좋은 기억 만들어주신 두 분께 감사합니다~!
제가 태평양응원을 하긴 했지만 재미가 없었는데 현대유니콘스를 보면서 선수들의 플레이는 물론 감독의ㅜ용병술에ㅡ재미를 느낀게 김재박 감독님 덕분임니다.. 현대가ㅜ인천 떠나고 원망하는 마음에 sk를 응원했고, 현대의 몰락과, sk 의 왕조를 보며 야구로 느낄수 있는 감동은 다 느낀거 같아요.. 랜더스는 왠지 정이 안가고.. 삼국지로 치면 제갈량 사후를 보는거 같아.. 어려ㅛ을때 좋아했던 유니콘스와 커서 좋어했던 와이번스만 추억하고ㅜ있답니다..
2등!!! 어린시절 저는 인천 야구팬이었지만 MBC청룡의 김재박 선수는 최고였구 92년에 태평양으로 오실때 우와!!! 했떤 기억이 나네요. 96년에 창단 현대팀을 이끄시면서 만년꼴찌 팀을 06년까지 잘 이끌어주시면서 현대시절에는 정말 늘 상위권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던 행복한 기억이 납니다.
중요한것 또한가지 요즘 각팀의 감독.선수.코치들이 선수들을 주목시킬때 치칫!!!치칫!! 이 시그널소리를 영구 심형래보다 20년 먼저 김재박 감독님이 선수때부터 사용하셨답니다^^❤ 에휴 야구가 하고싶어 당시 집근처 성동국민학교 전학시켜 달라고 단식투쟁까지 했었던 추억이ㅎㅎ아련하기만 합니다^^
신생팀에서부터 시작해 대단한 업적을 남기신 것이 감동적입니다. 특히 1977년에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세우신 부분과 1982년 세계 야구 선수권에서의 드라마틱한 순간은 많은 야구 팬들에게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장면일 것 같습니다. 감독님의 역대급 이야기 덕분에 정말 재미있고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어렸을때 아버지랑 야구장 가면 항상 야구는 김재박이 최고라 했던 기억이 아직도 납니다. 그런 데 이후에 현대 감독님이 되셔서 많이 야속했었는데 07년에 다시 LG로 돌아오실때 정말 너무 좋았네요. 뭐 결과적으로는 좋지 않게 끝나버렸지만 그래도 그시절 야구 정말 재밌게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감독님
저랑 동갑나기인 박재홍 위원도 모른는 당대의 유격수 김재박선수의 숏스탑 글러브의 비밀!!!! 동대문구장시절 예전 건국대학 야구장에서 연습하실때 꼬맹이였던 제가 직접보고 물었죠 글러브에 바르시는 그 콧물같은거 뭐에요??? 글러브 안쪽에 바세린을 바르셔서 포구순간 공이 빨리 스탑되게해서 실발을 잡고 정확한 송구를 하려고 하신다는ㅎ 또한가지 청룡에서 7번 타자 치실때 7개가 들어있는 캬라멜 광고도 찍으셨죠^^❤❤
김재박감독님 저번편보니 웨이트도 당시의 편견과 다르게 필요하다고 생각하시고 다시 현장에 한 번 오셔도 느슨해진 야구판에 긴장감을 불어넣어주실 것 같은데 기회가 된다면 현장에서 다시 보고싶습니다😢 골프로 운동을 계속하셔서 그런지 나이가 있으신대도 박위원님이랑 체구차이가 크게 없어보이심다...😂
야구 올드팬입니다. 김재박감독 나온다고 기대 많이 했는데 생각보다 실업팀 이전 시절 언급이 별로 없네요. 그당시 실업팀도 10여개 정도됐고 대학팀도 그정도 수가 있었던걸로 기억해요. 82년 세계선수권 이전에도 국제대회도 많았고 동시대 같이 뛰었던 선수들과의 이야기도 듣고 싶었는데~ 최동원 김시진 장효조 김일권 등등 개성있고 뛰어난 선수들이 정말 많았죠. 개인적으로 그당시가 한국 야구 최고의 황금기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프로야구가 생길수 있었다고 봅니다. 일반적으로 정치적 이유로 프로리그가 생겼다고 알려져있지만 실상은 그때가 한국야구의 인기와 선수 인프라가 황금시대였기에 가능했엏다고 봅니다. 당사자였던 김재박감독이 그런 자세한 얘기가 없어서 아쉽네요.
빵카페에서 김재박 감독님 초대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91년 한일 슈퍼게임이 끝났을 때로 기억합니다. 저희 동네에 LG 선수단이 회식하러 왔었습니다. 그때 LG의 한 선수가 저에게 김재박 선수를 소개(?)시켜줬습니다. 전 그때 야구를 잘 몰라서 아는 선수가 별로 없었는데 아버지께 여쭤보고 한국 최고의 유격수라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런데 사인은 물론 제대로 인사말(?)도 하지 못했던 것이 정말 후회가 됐었죠. 그런데 얼마 안 지나서 제가 응원하던 태평양으로 오신다는 소식에 정말 기뻤고, 나름 현대 광팬(?)으로 감독님도 많이 응원했습니다. LG로 가셨을 때도 감독님 때문에 현대가 사라진 후에는 감독을 위해 LG도 응원했습니다. 오랜 시간 야인생활을 하고 계시지만 다시 한번 현장으로 오실 것을 기대하고 빵카페의 남은 편들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태평양으로 가실 땐 솔직히 김재박 감독님 팬으로써 이해가 안됐습니다. 1년만 더 뛰고 은퇴하시는걸 보고는 더 그렇게 생각했죠.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LG에서 코치로 남아서는 빠른 시일 내에 감독하시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수도 있었다고 봅니다. LG에선 주장도 오래 했고 리더 이미지로 남아 있던 이광은 선수가 계셨기 때문이죠. 뒤에 있을 일들을 예상을 하고 옮기셨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태평양으로 옮기신게 신의 한 수가 되었다고 봅니다.
@@고두막한-w2p대학 1학년 최동원이 국라대표 에이스급였다고요? 대표선수들 수준을 고교야구로 아나. 최동원이 불세출의 투수였다는 건 고교2년때부터 봐온 나로서 누구보다도 인정하지만 1학년때 국가대표 에이스급였다구요? 세계대회는 초단기전이라 고교야구처럼 연투도 불가능하고 고교급처럼 그렇게 막 먹고들어가는 그런 타자들이 아뇨. 정확히 그때 경기를 찾아봐야겠지만 내 기억엔 에이스급 역할은 이선희였어요. 당시 대표팀 에이스 계보가 김호중에서 이선희로 넘어온 단계였고 신인 최동원이 이제 막 뛰어든 상태였어요. 아무리 최동원이라도 이제 고교 졸업한 최동원이 성인 무대에서 날고기는 타자들 상대로 상대로 막 먹고들어간다고 생각해요? 그럼 백호기 우승을 왜 못했어?
@@고두막한-w2p 1977년 니카라과대회 mvp 이선희. 다승왕 이선희. 구원왕 이선희. 최동원이 에에스급이었다구요? 콜홈비아전 잘 던졌고 미국전 잘 던졌는데, "미래의" 한국 대들보 투수로서 최동원이 물론 잘 던졌지만, 중남미 국가에서 콜롬비아가 축구 말고 야구도 잘 하는 나라였던가요? 그리고 미국팀은 대학선발이에요. 최동원을 평가절하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대학 1학년생 최동원은 약체팀 상대로 선발였던 거고, 또 당연히 그래야 했고, 에이스는 이선희였어요. mvp가 말해주잖아요? 이선희가 82년 프로야구 개막전과 코리안시리즈에서 낭패 본 거로 그저그런 투수로 인식들 하나본데 그때도 15승 7패였고 평균자책점이 무려 2.91이요. 아마시절 이선희는 대단한 투수였어요. 대한민국 에이스가 김호중에서 이선희로 넘어왔고 유남호 계형철 등이 서브인 상태에 최동원은 신출내기에 불과했어요. 78.9년 돼야 명실상부한 최동원이 된 거지. 1학년때는 대단한 투수로 평가받는 동시에 비판적 시각도 많았어요. 하체가 부실하다. 롱런할 수 있을까 등등. 가장 유명한 비판자가 김동엽 씨. 대학 1학년 최동원은 아직 덜 여문 때였어요. 마치 1학년때부터 최고였던 것처럼 미화해선 곤란해요. 성인무대가 만만한 데가 아니에요.
최동원 77학번으로 77년 니카라과 세계대회에서도 우승주역이고 국가대표 에이스 맞습니다 한미대학야구도 77년 1학년때 1차전 선발투수로 나갔지요 최동원이 구위나 탈삼진 능력면에서 에이스고 미국과 일본전에 강했던 이선희는 준에이스라고 봅니다 윤석환 선수가 진행하는 유튜브에 심판위원장 고 조종규 대학3학년때 최동원 1학년 시절 남미 시합 증언 동영상 있습니다
프로야구 초창기 전국구 스타셨죠. 김재전 사건 때도 그 유명한 야구선수 '김재박'의 이름을 모르고 있었기에 화제가 되었던 것이구요. 박, 전 두 글자가 한자로 써놓으면 앞 부수만 살짝 다른 한자(博 넓을 박, 傳 전할 전)라서 한자로 써놓은 이름을 보고 앞 두 글자는 잘 읽었는데 마지막 한자를 잘 못 읽어버렸죠. 가뜩이나 비슷하게 생긴 한자인데 손으로 써서 더 헷갈리게 되었다나. 인기리에 연재되었던 이현세의 만화를 원작으로 했던 영화 '이장호의 외인구단'의 엄지 역으로 캐스팅되었던 인연으로 KBO 골든글러브 시상자로 나왔지 않나 싶었고 해태 시절 전성기 이종범이나 40홈런 치던 평화왕 강정호처럼 김재박 선수의 유격수 부문 수상이 당연시되던 분위기라서 (김재박이 아닌) 김재전!이라고 불러도 김재박 선수의 유격수 부문 골든글러브 수상을 의심하는 이는 없었죠. (시상식장에 부부 동반으로 앉아 있었는데 김재전 호명 순간 사모님 표정이 재밌습니다.) 참고로 그때의 사고 이후 시상식장의 수상자 이름은 한글로 적는 문화가 생겼다고 합니다.
태평양-현대96년도창단돼서 96년도 한국시리즈 해태랑 했는데 정명원투수 기록했고 그날에 준우승 해태감독이 김응룡감독인데 현대가 아쉽게 졌지요ㅜㅜ그후에 현대 선수 많이 영입해서 98년 00년03년04년 우승했지요 왕조 현대 선수들이 좋았어요~ 투수 선발 중간 마무리있고 내야수도 외야수 최강선수 좋았지요^^
[김재박 감독님 사인볼 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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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형의 잘하자 in cafe' 김재박 2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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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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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에 영상 관련 내용을 자유롭게 댓글에 달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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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 다닐때 김재박 선수 싸인 공 못받은 것이 정말 두고 두고 아쉬웠는데 50대 아저씨가 되어서는 꼭 받아 보고 싶습니다!!! 김재박 감독님 사인본 이벤트 MBC 청룡 어린이 회원은 어머니께서 돈 없다고 안된다고 하셔서 회원도 못되었지만 항상 MBC청룡과 김재박 감독님을 응원했었습니다!!!
잘보고있습니다 ㅎㅎ
88년,89년 MBC청룡 어린이 회원입니다. 88년에 MBC 회원가입하려고 구로구까지 갔던 기억이 있네요. 그리고 회원책자에 김재박 프로필에 MBC청룡 어린이회원중 80%가 김재박 선수팬이라는 문구가 아직도 기억에 남네요. 저 역시 김재박선수의 팬이었고 아버지를 따라 처음 간 잠실야구장에서 김재박선수가 홈런포함 4타수4안타를 친 기억도 납니다. 또 몇년도인지 정확히 기억은 안나는데 올스타전에서 홈런포함 5타수4안타 친 거로 기억납니다. 아마 91년같은데 홈런빼고 다 단타라서 아쉽게도 MVP를 못받고 감투상인가 받았었죠. 팬으로서 정말 아쉬워했었던 기억이나네요.
스토킹보면 가끔식 레전드 게스트나오면 깜짝 놀라는데 여기는 그냥 모두 다 레전드들이구나... 박재홍 선수 섭외자 자체가 레전드니 게스트 초대할 수 있는 역량도 어마어마한듯
저는 박재홍 위원과 갑장인 50대초반 아저씨입니다. 대한민국 야구천재중 이종범보다 훨씬 먼저 그라운드의 여우 김재박 선수가 있었습니다. 타격 8관왕도 하시고, 무엇보다 제가 국민학교 3학년때 세계야구선수권에서 일본을 상대로 개구리 번트하셔서 역전을 했잖아요. 그 다음날 학교교실에서 아이들이 다 "내가 김재박이다"라고 하면서 작대기자고 점프하던 기억이 납니다. 프로야구 초창기 유격수로 라이벌이라고 할 선수가 없었죠. 그냥 독보적인 선수였습니다. 어릴때 MBC청룡 회원이 되고 싶었는데 어머니께서 안된다고 해서 회원이 못되서 정말 아쉬웠었죠. 우리 동네에서 늘 아이들과 공터에서 야구를 했었는데요. 저는 김재박선수를 좋아해서 늘 유격수를 도맡아서 했어요. 그러다 불규칙바운드에 얼굴도 맞고 늘 흙투성이었었지요. 올해 70세라고 하시는데 머리도 까맣고 50대초반으로 보이시네요. 젊음의 비결이 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40년넘게 김재박 감독님을 좋아하고 응원했던 50대초반 아저씨에게 김재박 감독님의 싸인 볼 꼭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야구를 좋아하는 제 지인들에게 자랑하고 잘 보관하고 싶습니다!!! 3편도 기대하겠습니다!!!
머리가 검은 건 염색의 힘이죠.
저는 인천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사회인 야구 하시던 아버지 따라 도원구장 자주가던 40대 입니다. 잘 못하던 태평양을 응원하며 94년 한국시리즈 진출했던 기억이 최고였다가 96년 현대로 바뀌고 신나게 야구 봤던 기억이 지금까지도 최고의 시즌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당시 괴물신인 박재홍과 마찬가지로 괴물신인감독인 김재박 감독이 시너지를 내 좋은 결과를 만들어 냈었죠. 한국시리즈 4차전인가 정명원 선수 노히트노런 게임 직관도 갔었고 항상 박재홍 선수 기다린다고 남아있던 생각도 납니다. 박진만 선수 차를 얻어타고 가시던 박재홍 선수의 모습이 지금도 남아 있네요. 세계최초 신인 30-30이라며 기념구도 나눠줬었는데 정말 대단했던 시즌이었습니다. 좋은 기억 만들어주신 두 분께 감사합니다~!
축하합니다!! 김재박 감독님 사인볼에 당첨되셨습니다!
biz.studioclips@gmail.com로 당첨된 댓글+구독페이지(체육공단 구독 인증용) 캡처 이미지, 닉네임, 이름, 주소, 연락처를 적어서 보내주면 사인볼 보내드리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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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박 감독님에 얼굴에 신구선생님의 얼굴이 보인다... 닮으셨군
개구리번트 원조 유격수 김재박 감독님의 자세한 야구스토리 재밌네요 ㅎㅎ 몰랐던 에피소드들을 알게되서 좋아요~~ 빵카페 너무 좋음ㅜㅜ
내 마음속 올타임 넘버원 유격수는 김재박입니다. 포구후 송구자세가 가장 부드럽고 아름다운 유격수입니다.
생각보다 쿨하신 모습이 재밌었습니다. 정말 인상깊었네요.
오랜만에 레전드 선수를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채널에 유익한 영상이 많네요~!!!!!
재치있는 구성도 훌륭하고요.
보는 재미 굿굿!!
앞으로도 자주 방문할게요~!!!
제가 태평양응원을 하긴 했지만 재미가 없었는데 현대유니콘스를 보면서 선수들의 플레이는 물론 감독의ㅜ용병술에ㅡ재미를 느낀게 김재박 감독님 덕분임니다.. 현대가ㅜ인천 떠나고 원망하는 마음에 sk를 응원했고, 현대의 몰락과, sk 의 왕조를 보며 야구로 느낄수 있는 감동은 다 느낀거 같아요.. 랜더스는 왠지 정이 안가고.. 삼국지로 치면 제갈량 사후를 보는거 같아.. 어려ㅛ을때 좋아했던 유니콘스와 커서 좋어했던 와이번스만 추억하고ㅜ있답니다..
앗 업로드되자마자 보러왔어요
제가 그 82년둥이 입니다~~, 검은창의 엘지트윈스 숏스탑, dtd도 밉지 않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좋은 모습 많이 보여 주십시요 감사합니다.
그라운드의 여우 김재박 한국야구사에서 두뇌 센스야구의 창시자 야구선수는 머리가 좋아야한다란 이미지를 각인 시킨 레전드
본편의 영상도 재밌고 좋았는데 예고편도 엄청 기대되게 잘 넣어놓으셧네 ㅋㅋ
원조 최고유격수 김재박 감독님 재밌게 잘보고있습니다~^^
2등!!! 어린시절 저는 인천 야구팬이었지만 MBC청룡의 김재박 선수는 최고였구 92년에 태평양으로 오실때 우와!!! 했떤 기억이 나네요. 96년에 창단 현대팀을 이끄시면서 만년꼴찌 팀을 06년까지 잘 이끌어주시면서 현대시절에는 정말 늘 상위권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던 행복한 기억이 납니다.
빵카페 자주 보고있습니다.
감독님 아직 너무 멋지시네요~
조용필급~~~❤❤❤❤
중요한것 또한가지 요즘 각팀의 감독.선수.코치들이 선수들을 주목시킬때 치칫!!!치칫!! 이 시그널소리를
영구 심형래보다 20년 먼저 김재박 감독님이 선수때부터 사용하셨답니다^^❤
에휴 야구가 하고싶어 당시 집근처 성동국민학교 전학시켜 달라고 단식투쟁까지 했었던 추억이ㅎㅎ아련하기만 합니다^^
재밌어요...
신생팀에서부터 시작해 대단한 업적을 남기신 것이 감동적입니다.
특히 1977년에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세우신 부분과 1982년 세계 야구 선수권에서의 드라마틱한 순간은 많은 야구 팬들에게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장면일 것 같습니다.
감독님의 역대급 이야기 덕분에 정말 재미있고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빵카페~~박재홍위원님, 진심으로 열심히 하십니다.
김재박감독님, 옛날(1982년 세계야구대회) 개구리 번트와 한대화선수의 3점 홈런, 선동렬선수의 역투 생각 많이 납니다.👏👏👏
MBC청룡의 추억의 라인업
1.김재박
2.박흥식
3.이광은
4.김상훈
5.윤덕규
6.김영직
7.김인식
8.심재원
9.신언호
야못알인 40대 후반 아저씨인데
레전드 김재박 김경기 여태구 등등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태평양 단어 처럼. 크게 구단 운영 했음 좋겠지만 없는 살림에 야구 하던게 지금은 추억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우와 역사다 진짜 ❤❤
어렸을때 아버지랑 야구장 가면 항상 야구는 김재박이 최고라 했던 기억이 아직도 납니다. 그런 데 이후에 현대 감독님이 되셔서 많이 야속했었는데 07년에 다시 LG로 돌아오실때 정말 너무 좋았네요. 뭐 결과적으로는 좋지 않게 끝나버렸지만 그래도 그시절 야구 정말 재밌게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감독님
우리동네 옥수동 한남하이츠 5동에 사시던 김재박감독님😅
초중학교 시절 김재박형님 때문에 야구가 멋있고 재밌는 운동이라고 알게됐어요
한국화장품시절에 유백만감독님(?) 지도아래 참 강팀이었던걸로 기억됩니다
그 영향으로 1981년에 선린상고에 야구보러 입학했어요 ㅎㅎ
축하합니다!! 김재박 감독님 사인볼에 당첨되셨습니다!
biz.studioclips@gmail.com로 당첨된 댓글+구독페이지(체육공단 구독 인증용) 캡처 이미지, 닉네임, 이름, 주소, 연락처를 적어서 보내주면 사인볼 보내드리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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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랑 동갑나기인 박재홍 위원도 모른는
당대의 유격수 김재박선수의 숏스탑 글러브의 비밀!!!!
동대문구장시절 예전 건국대학 야구장에서 연습하실때
꼬맹이였던 제가 직접보고 물었죠 글러브에 바르시는 그 콧물같은거 뭐에요???
글러브 안쪽에 바세린을 바르셔서 포구순간 공이 빨리 스탑되게해서 실발을 잡고 정확한 송구를 하려고 하신다는ㅎ
또한가지 청룡에서 7번 타자 치실때 7개가 들어있는 캬라멜 광고도 찍으셨죠^^❤❤
김재박감독님 저번편보니 웨이트도 당시의 편견과 다르게 필요하다고 생각하시고 다시 현장에 한 번 오셔도 느슨해진 야구판에 긴장감을 불어넣어주실 것 같은데 기회가 된다면 현장에서 다시 보고싶습니다😢 골프로 운동을 계속하셔서 그런지 나이가 있으신대도 박위원님이랑 체구차이가 크게 없어보이심다...😂
김재박감독님이 첨부터 잘했던게 아니었군요. 선수로서도 훌륭했지만 감독으로서도 훌륭했죠. 김감독님도 연세 많이 드셨네요. 나도 지천명이니......ㅠㅠ 세월이 야속하네요
김재박의 개구리 번트, 한대화의 홈런. 라이브로 시청한 1인입니다. ^^
야구 올드팬입니다. 김재박감독 나온다고 기대 많이 했는데 생각보다 실업팀 이전 시절 언급이 별로 없네요. 그당시 실업팀도 10여개 정도됐고 대학팀도 그정도 수가 있었던걸로 기억해요. 82년 세계선수권 이전에도 국제대회도 많았고 동시대 같이 뛰었던 선수들과의 이야기도 듣고 싶었는데~ 최동원 김시진 장효조 김일권 등등 개성있고 뛰어난 선수들이 정말 많았죠. 개인적으로 그당시가 한국 야구 최고의 황금기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프로야구가 생길수 있었다고 봅니다. 일반적으로 정치적 이유로 프로리그가 생겼다고 알려져있지만 실상은 그때가 한국야구의 인기와 선수 인프라가 황금시대였기에 가능했엏다고 봅니다. 당사자였던 김재박감독이 그런 자세한 얘기가 없어서 아쉽네요.
실업야구 백호기대회 그립네요
7관왕 김재박 실업야구 홈런왕 김우열
황금의 팔 남우식 황규봉 왼손 일본킬러 이선희
세계대회 도루왕 김일권 영원한 아마 4할타자 장효조
최동원 김시진 김용남 트리오
키다리 3루수 김용희 명포수 심재원
한미대학야구 명수비 정학수 홈런 김봉연
포수 박해종 왼손3할 박종훈 사이드 투수 노상수
컴퓨터 제구력 임호균 왼손잡이 포크볼 선우대영
정말 기라성같은 선수가 많았지요
빵카페에서 김재박 감독님 초대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91년 한일 슈퍼게임이 끝났을 때로 기억합니다. 저희 동네에 LG 선수단이 회식하러 왔었습니다. 그때 LG의 한 선수가 저에게 김재박 선수를 소개(?)시켜줬습니다. 전 그때 야구를 잘 몰라서 아는 선수가 별로 없었는데 아버지께 여쭤보고 한국 최고의 유격수라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런데 사인은 물론 제대로 인사말(?)도 하지 못했던 것이 정말 후회가 됐었죠. 그런데 얼마 안 지나서 제가 응원하던 태평양으로 오신다는 소식에 정말 기뻤고, 나름 현대 광팬(?)으로 감독님도 많이 응원했습니다. LG로 가셨을 때도 감독님 때문에 현대가 사라진 후에는 감독을 위해 LG도 응원했습니다.
오랜 시간 야인생활을 하고 계시지만 다시 한번 현장으로 오실 것을 기대하고 빵카페의 남은 편들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야구에 야자도 모를때 김재박 전 감독님이 82 선수권대회때 개구리 번트가 유튜브로 편집이 되서 번트로 홈런친거 봤는데 ㅋㅋ 저는 번트로도 홈런을 칠수있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
여우와 같은 재치와 뛰어난 BQ로 선수생활했을 뿐만 아니라 감독으로서 성공적으로 팀을 이끈 면모에 있어서 한국 야구계의 전설이라고 생각해요
삼성팬으로는 아쉽네요
고등학교때 서울로 가셔가지고
Mbc로 가셨네요
오대석선수도 있었지만 김재박선수가 왔다면 85년전에 우승 한두번은 했겠죠?
한국화장품 현정화만 유명한줄 아시는 분들 많지만
당시 주류였던 은행팀 다제끼고 한국화장품 야구단은 당니 오비로 같던 3루수 황일권 까지 최고의 팀 이었답니다^^
태평양으로 가실 땐 솔직히 김재박 감독님 팬으로써 이해가 안됐습니다. 1년만 더 뛰고 은퇴하시는걸 보고는 더 그렇게 생각했죠.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LG에서 코치로 남아서는 빠른 시일 내에 감독하시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수도 있었다고 봅니다. LG에선 주장도 오래 했고 리더 이미지로 남아 있던 이광은 선수가 계셨기 때문이죠. 뒤에 있을 일들을 예상을 하고 옮기셨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태평양으로 옮기신게 신의 한 수가 되었다고 봅니다.
82~83년 삼성라이온즈 우용득 코치 겸 선수로 82년은 출장이 없고 83년에는 14경기에 출전했습니다.
원년시즌 임신근 코치도 선수로 두 경기인가 출장하셨네요
약속의8회의 시작
1977년엔 김재박 김재박.. 김재박 김재박 스포츠계에 온통 김재박이었다.
"야구는 이종범" 이전에 "야구는 김재박"이었다.
4:13
아 김정수, 신일고의 수퍼스타 김정수. 최동원과 맞먹는 인기를 구가했던 투타 발군의 김정수.
그건 아니다 최동원은 프로이전에도 전국구스타였는데 국가대표에서 연대에서 워낙 활약을 해서 77년도 니카라과 야구월드컵 우승주역인데 막내이면서 에이스역활햇구만 최다승투수로 그때부터 최동원선수가 넘버원 인기였는데
@@고두막한-w2p내 이런 댓글 나올줄 알았다. 고교 한정해서 그렇다는 말. 최동원이 성인야구에서 활약할 때 김정수는 고교야구 수퍼스타였단 얘기.
@@고두막한-w2p대학 1학년 최동원이 국라대표 에이스급였다고요? 대표선수들 수준을 고교야구로 아나.
최동원이 불세출의 투수였다는 건 고교2년때부터 봐온 나로서 누구보다도 인정하지만 1학년때 국가대표 에이스급였다구요?
세계대회는 초단기전이라 고교야구처럼 연투도 불가능하고 고교급처럼 그렇게 막 먹고들어가는 그런 타자들이 아뇨.
정확히 그때 경기를 찾아봐야겠지만 내 기억엔 에이스급 역할은 이선희였어요.
당시 대표팀 에이스 계보가 김호중에서 이선희로 넘어온 단계였고 신인 최동원이 이제 막 뛰어든 상태였어요.
아무리 최동원이라도 이제 고교 졸업한 최동원이 성인 무대에서 날고기는 타자들 상대로 상대로 막 먹고들어간다고 생각해요?
그럼 백호기 우승을 왜 못했어?
@@고두막한-w2p 1977년 니카라과대회 mvp 이선희. 다승왕 이선희. 구원왕 이선희.
최동원이 에에스급이었다구요?
콜홈비아전 잘 던졌고 미국전 잘 던졌는데, "미래의" 한국 대들보 투수로서 최동원이 물론 잘 던졌지만, 중남미 국가에서 콜롬비아가 축구 말고 야구도 잘 하는 나라였던가요? 그리고 미국팀은 대학선발이에요. 최동원을 평가절하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대학 1학년생 최동원은 약체팀 상대로 선발였던 거고, 또 당연히 그래야 했고, 에이스는 이선희였어요. mvp가 말해주잖아요?
이선희가 82년 프로야구 개막전과 코리안시리즈에서 낭패 본 거로 그저그런 투수로 인식들 하나본데 그때도 15승 7패였고 평균자책점이 무려 2.91이요. 아마시절 이선희는 대단한 투수였어요.
대한민국 에이스가 김호중에서 이선희로 넘어왔고 유남호 계형철 등이 서브인 상태에 최동원은 신출내기에 불과했어요. 78.9년 돼야 명실상부한 최동원이 된 거지.
1학년때는 대단한 투수로 평가받는 동시에 비판적 시각도 많았어요. 하체가 부실하다. 롱런할 수 있을까 등등. 가장 유명한 비판자가 김동엽 씨.
대학 1학년 최동원은 아직 덜 여문 때였어요.
마치 1학년때부터 최고였던 것처럼 미화해선 곤란해요. 성인무대가 만만한 데가 아니에요.
최동원 77학번으로 77년 니카라과 세계대회에서도 우승주역이고 국가대표 에이스 맞습니다
한미대학야구도 77년 1학년때 1차전 선발투수로 나갔지요
최동원이 구위나 탈삼진 능력면에서 에이스고
미국과 일본전에 강했던 이선희는 준에이스라고 봅니다
윤석환 선수가 진행하는 유튜브에
심판위원장 고 조종규 대학3학년때 최동원 1학년 시절 남미 시합 증언 동영상 있습니다
1982년에 MBC에 입단하셨습니다. 세계선수권 대회 끝나고 1982년 시즌 후반기에 경기도 뛰셨었어요. 물론 제대로 뛰신 시즌은 1983년 시즌부터였지요.
사실 김재박,이해창선수는입단당시 30세 들어선 시기라 사실 전성기 지난상태였어요.장효조선수는 26세시기라 완숙기때 프로에 입단해 기량을 확실히 보여줬읍니다^^
@@영학오 정답이십니다^^
실업때는
27세면 노장소리 듣고 슬슬 은퇴준비 하면서
사무직으로 전환하려고 준비했습니다
한국 야구 최고 유격수.
김재박은 이종범,류중일보다도 뛰어났다.
번트때 배트의 맟추어야 할 위치를 정확히 알면서 번트
훗날 경기때 번트 제대로~^^
재미나게 잘보고 있읍니다
프로야구 초창기 전국구 스타셨죠. 김재전 사건 때도 그 유명한 야구선수 '김재박'의 이름을 모르고 있었기에 화제가 되었던 것이구요. 박, 전 두 글자가 한자로 써놓으면 앞 부수만 살짝 다른 한자(博 넓을 박, 傳 전할 전)라서 한자로 써놓은 이름을 보고 앞 두 글자는 잘 읽었는데 마지막 한자를 잘 못 읽어버렸죠. 가뜩이나 비슷하게 생긴 한자인데 손으로 써서 더 헷갈리게 되었다나. 인기리에 연재되었던 이현세의 만화를 원작으로 했던 영화 '이장호의 외인구단'의 엄지 역으로 캐스팅되었던 인연으로 KBO 골든글러브 시상자로 나왔지 않나 싶었고 해태 시절 전성기 이종범이나 40홈런 치던 평화왕 강정호처럼 김재박 선수의 유격수 부문 수상이 당연시되던 분위기라서 (김재박이 아닌) 김재전!이라고 불러도 김재박 선수의 유격수 부문 골든글러브 수상을 의심하는 이는 없었죠. (시상식장에 부부 동반으로 앉아 있었는데 김재전 호명 순간 사모님 표정이 재밌습니다.)
참고로 그때의 사고 이후 시상식장의 수상자 이름은 한글로 적는 문화가 생겼다고 합니다.
그거 생방송으로 봤는데 누가 바보같이 그런건지 .. 잘난척도 아니고
그냥 한글로 썼어야지 ㅉㅉ
축하합니다!! 김재박 감독님 사인볼에 당첨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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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현대96년도창단돼서 96년도 한국시리즈 해태랑 했는데 정명원투수 기록했고 그날에 준우승 해태감독이 김응룡감독인데 현대가 아쉽게 졌지요ㅜㅜ그후에 현대 선수 많이 영입해서 98년 00년03년04년 우승했지요 왕조 현대 선수들이 좋았어요~ 투수 선발 중간 마무리있고 내야수도 외야수 최강선수 좋았지요^^
야구 잘했 서요 번트도 잘되고
박진만도 키우고
77년도 우승 와
개구리번트가 타석에서 벗어난 타격이라서 아웃이라는 글을 읽은적이 있는데 그 얘기 좀 해주지 그런 얘기는 빼놓네
김재박, 선동열 공통점
0. 우승 청부사 소리를 들으며 친정팀에 금의환향.
1. 부임 첫 해 5위
2. 부임 두 번째 해 8위
3. 부임 세 번째 해 뒤에서 2등
아마도 한국야구역사에 김재박 같은 선수가 또 있었나요?
아마도 비슷한 선수는 김성한으로 볼수 있으나 삼박자 선수로는 조금 못 미치고 유격수/투수/타자 모든부분이 TOP Class로
한국야구의 큰획을 그었던 역사였슴은 부인할수 없습니다.
아오~그당시 한국 화장품은 걍 프로팀 이었주^^
경엽이 ㅠ
유격수가 7번인이유가 이겁니다
올리는 타이밍 보소
광복절에 올리네^^
김재박과 이종범을 비교하는건 격이 맞지않다. 김재박은 러닝스로우란 개념이 없을때 자습으로 국내에 첫선을 보이던.. 고급야구의 개척자이자 천재인 선수..
손기정선생의 기록을 시간으로 비교해서 황영조보다 못하다 얘기하는 격임
중계 캐스터 해설자들이 찬탄하면서 동시에 저런 거 따라하지 말라고 걱정 많이 한 시절ㅎㅎ
내 기억에 오대석이 저 지적을 많이 받은 거로 기억함.
김재전 프로에선 이름 값 모했지.
왠 김재전?
이보희 사건때문에?
무상 트레이드에 대한 이해가 사람마다 다르...진 않다고 생각하지만 다를수 있다고 치더라도 엘지는 92년 시즌중 김재박을 내어주고 박준태를 데려왔었죠 93년 엘지는 박준태를 빼놓고 얘기할수 없음. 분명 데려와서 몇시즌동안 충분히 기여한 자원이 있는데 무상?
잘못알고 계신게, 1992년 시즌 중 태평양 소속의 박준태 선수의 엘지로의 트레이드는 김재박 트레이드와 전혀 무관합니다. 엘지 소속이었던 윤덕규 선수와의 맞트레이드입니다. 김재박 선수는 92년 풀시즌 태평양 소속으로 뛰었고, 무상 양도 트레이드 맞습니다.
@@viva5263 아 맞네요 윤덕규선수와의 트레이드였었네요 정정 감사합니다
지자랑마니하네 나이먹고젊잖치 못하게시리 사람자체가 좀 비겁하게 보이네?
모르면 가마니 있지
자랑 좀 하고 살자
살날 얼마남았다고 감추고
사노...
꼬우면 저것보다 성과를 내서 어디가서 자랑해라. 악플달지 말고 ㅋㅋㅋㅋ
영상 보니 자랑할 만 하구만 ㅉㅉ 뭐가 이리 배배 꼬였을꼬 ㅉㅉ
타격 전관왕 호타준족
홈런왕이 도루왕 리딩히터까지 했는데
무슨 되먹잖은 트집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