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락도량] 34. 무주 안국사

Поделиться
HTML-код
  • Опубликовано: 23 сен 2024
  • #무주적상산안국사#승병#호국사찰
    오늘은 무주 안국사입니다.
    안국사는 덕유산 국립공원 내 '적상산'이라는 산 정상에 있습니다.
    '붉은 치마를 두른 산'이라는 뜻의 적상산(赤裳山) 입구에서
    정상을 향해 올라가면 산정호수를 댐으로 막은 큰 제방이 보입니다.
    1989년에 조성된 수력 발전용 댐입니다.
    원래 안국사는 이곳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댐을 건설하면서 수몰될 위기에 처하자 1991년에
    더 위쪽으로 옮겼습니다.
    안국사 입구에는 '나라 제일의 정토 도량'이라는 뜻의
    '국중제일 정토도량' 이란 편액의 일주문이 있습니다.
    일주문을 올라가면 8km에 달하는 적상산성이 나오고
    안국사 도량이 나타납니다.
    안국사(安國寺)는 '나라를 편안하게 하는 절'이라는
    뜻의 호국사찰입니다.
    1277년(고려 충렬왕 3) 월인 스님이 창건했는데,
    조선 왕조가 창건되자 태조 이성계가 무학 대사로 하여금
    적상산의 험준함을 생각하고 적상산성을 쌓고 적상산성의
    호국사찰로 중건했습니다.
    그런데,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한
    사고가 불타고 말았습니다.
    특히, 광해군 때 북방의 만주족이 강성해지면서 광해군은
    북쪽에 있던 사고를 험준한 적상산성 안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승병들로 하여금 적성산성에 있는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한 사고를 지키게 하였습니다.
    승병들이 사고를 수호하므로 나라에서 근심이 없다고 하여
    절 이름을 '안국사(安國寺)'라고 했습니다.
    조선 왕조의 역사를 기록한 사고를 안전하게 보호하여
    나라의 안녕을 유지해 달라는 분명한 목적과 기원을 담고
    만든 절인 셈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조선 왕조 때 불교는 큰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불교는 임진왜란 때 많은 스님들이 승병이 되어
    나라와 백성을 위해 싸웠습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나서도 산성을 쌓고 수리하는 많은
    일들을 승려들이 도맡아했습니다.
    적상산성도 승병들이 수리하고 사고를 지키면서
    불교의 명맥을 유지했던 고단한 불교 역사가 숨쉬는 도량입니다.
    안국사에서 바라보면 백두대간 덕유산의 웅장한 산세가
    굽이굽이 흘러가는 멋진 풍광입니다.
    안국사는 극락전을 중심으로 명부전과 천불전이 함께 있는
    작은 도량입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안타깝게 희생된 많은 백성들의 원혼을 위무하고
    극락왕생을 기도하기 위해 극락전을 많이 세웠습니다.
    극락전에는 작지한 환한 상호의 아미타 삼존불이 모셔져 있습니다.
    환하게 웃는 상호가 서산 마애 삼존불과 같은 느낌이 드는
    아미타 부처님입니다.
    아미타 부처님의 상호를 바라보며 염불 기도를 올리면 마음이 환해집니다.
    안국사 극락전에는 재미있는 전설이 남아 있습니다.
    극락전을 지은 스님이 단청불사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심하고 있었습니다.
    하얀 도포를 입은 한 노인이 나타나 “제가 지금부터 100일 동안
    단청을 할 테니 극락전에 하얀 막을 치고 물 한 그릇만 넣어 주되
    절대로 그 안을 들여다보지 마시오”라고 말하였습니다.
    스님은 범상치 않은 노인의 말을 깊이 새기며 궁금증을 억누른 채
    노인에게 단청 불사를 맡긴 채 무사히 끝나기를 부처님께 기도하는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 구름이 걷히고 단풍이 떨어질 무렵의 어느 날,
    스님은 천막 속의 단청 불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함을
    억누를 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단청이 시작된 지 99일째 되던 날
    그 호기심은 극에 달하여 참지 못하고 가만히 안을 들여다보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천막 안에 노인은 온데 간 데 없고,
    붓을 입에 문 흰 학이 단청을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스님이 지켜보는 것을 눈치 챈 학은
    완성하지 못한 단청 일을 남겨 놓은 채 하늘로 날아가 버렸습니다.
    그래서 안국사 극락전의 뒤편 한쪽에는
    딱 하루 거리에 해당하는 분량의 목재가 단청이 되지 않은 채
    그대로 나뭇결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의 전설이나 기도 성취를 못한 안타까운
    전설처럼 100일을 채우지 못한 단청 학의 안타까운 전설이
    안국사의 극락전에도 남아 있습니다.
    '십년공부 도로아미타불'이라는 말이 있듯이
    끝을 이루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나타내는 전설입니다.
    마지막까지 방심하지 말고 끝까지 집중력을 잊지 않고 공을 쌓아야
    공덕을 성취할 수 있음을 알고 부지런히 정진하라는 가르침을
    담고 있는 법당입니다.
    안국사의 천불전에는 과거, 현재, 미래겁의 천불의 부처님이
    모셔져 있습니다.
    세 번의 절로 천 분의 부처님께 삼배 예배드릴 수 있으니 좋습니다.
    천불전 건물은 조선왕조실록을 모신 적상산성 사고가 폐사되면서
    그 사고였던 전각의 일부를 떼어와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적상산 꼭대기에 있는 안국사. 산성을 쌓고 경비를 서면서 기도하며
    신앙 생활했을 조선 억불 시대의 승병들의 애환이 떠오르는 도량입니다.
    그 당시를 살았던 스님들의 삶을 생각하며 극락전 아미타 부처님께
    염불 기도하고 적상산성도 차분히 걸어본다면 좋은 정토 도량 순례가
    될 것입니다.

Комментари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