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추억들도 같이 댓글로 들려주시죠~^^ 또한 보고 싶은 추억이 있으며 댓글로 남겨주시면 좋은 컨텐츠로 만들어 보겠습니다.💌 💖좋아요와 구독💖그리고 알림설정은 채널 운영에 아주 큰 힘이 됩니다💯 구독하기 : youtube.com/@humanin_333
7~80년대에 이어 60년대의 대구 부자동네를 말씀 드리자면, 단연 삼덕동 일대였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의 2.28공원(여기는 제 모교 중앙국민학교 옛 터...)에서 부터 대충 동성로 로데오거리 부근까지, 그리고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의 남쪽 지역 삼덕동 일대. 지금은 대구의 가장 번화한 거리인 이쪽 지역이 60년대에는 대구 부자 토박이들이 살던 고급 주택 단지였습니다. 부자집 자제들이 다니던 경북사대부속국민학교 학생들이 많이 살던 곳이기도 했죠. 저는 국민학교 시절을 거의 이 동네와 같이 하다시피 했는데 학교에서 잘 살던 친구들의 집 대다수가 삼덕동에 있었습니다. 지금은 밤이 되면 제일 시끌벅적한 이 거리가 그 당시에는 조용한 고급주택가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으시는 분들도 많을겁니다....부언하자면 - 지금은 관광객들로 시끌벅적한 서울의 북촌한옥마을 일대, 그러니까 명륜동, 가회동이 강남이 개발되기 전 서울의 토박이 부자들이 살던 동네였던 것처럼 대구의 삼덕동, 공평동이 그 비슷한 성격의 동네였습니다.
80년대초 앞산 올라가는 도로로 조금 올라가다 나오는 주택가 정치인 이효상씨 집이 있었고 그 옆에 집이 예전 살던집,,, 그동네에서 작은평수(96평) 에 속함 ,, 내 방 2층 베란다에서 이효상씨 집 정원이 훤히 내려보였는데 그 집이 그렇게 좋아보였었던 고등학교 시절,,,
대명동에 있던 경북광유 박진희 사장님 저택 가봤습니다. 아버지께서 사장님 운전기사로 일하셨을 때 한번 데리고 가주셨죠. 커다란 대문, 잔디가 쫙 깔린 마당, 그 옆에 차고도 있었고, 집안에 들어가니 럭셔리한 응접세트.... 당시 국민학교 4학년생 눈엔 모든게 생경했습니다. 사장님집과 나란히 붙어서 상무님(전무님인가?) 집도 있었죠. 어느덧 50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네요. 세월 참...
삼덕동은 60, 70년대까지 부촌으로 유명했고, 70, 80년대로 넘어가며 대명동이 신흥 부촌으로 자리잡았습니다. 80년대에도 삼덕동에 좋은 집들이 남아 있었으나 시내 유흥가가 확장되며 일대가 룸살롱, 요정으로 바뀌었고 부자들이 떠나기 시작했죠 당시 대구 최고 기업이었던 경북광유, 동국무역회장 집이 있던 남도국민학교 길 건너 대명 1동 (당시 대구 최고급아파트였던 정우맨션도 이곳에), 앞산 올라가는 좌우측 이효상씨집부터 정보부가 있던 대명 9동이 가장 부촌이었요 이 영상에서 나오는 잔디가 넓게 깔리고 분수와 비단잉어 헤엄치는 연못이 있는 정원을 갖춘 2층 양옥집들이 모여있었죠.
국딩때 뒷집 이층 양옥집에살고있는 친구집 부엌바닥에 마당으로 나가는통로 있었서요 제가 숨바꼭질 하다가 부엌바닥통로 발견했고요 그집 친구 가족들 부엌바닥에 통로있었는지 전혀모르고 있었고요 중딩때 통로 친구집 거실로 들어오다가 친구한테 걸렸고요 친구 부모 밖에 못나가하면 부엌바닥 통로 통해서 밖으로 나와서 놀다가 통로 들어가서 집으로 갔고요 부모님한테 통로 들어오다가 걸려가지고 부엌통로 입구 냉장고로 막아버렸어요
시청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추억들도 같이 댓글로 들려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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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엄니말에의하면 동구 수성구 깡촌이고 수성구 고산 지금의 시지에서 돈주고 딸기 포도밭데이트를 했데요
부자동네는 어릴적 제기억엔 대명동이었어요 드라마속 2층양옥 수세식화장실이었던 집이. 가득있었고 그다음이 수성구 중동 주택가로 기억되요
그시절로 돌아가고 싶네요^^
어머님의 말씀이 정확하시네요~~그담음이 중동 주택가였군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7~80년대에 이어 60년대의 대구 부자동네를 말씀 드리자면, 단연 삼덕동 일대였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의 2.28공원(여기는 제 모교 중앙국민학교 옛 터...)에서 부터 대충 동성로 로데오거리 부근까지, 그리고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의 남쪽 지역 삼덕동 일대. 지금은 대구의 가장 번화한 거리인 이쪽 지역이 60년대에는 대구 부자 토박이들이 살던 고급 주택 단지였습니다. 부자집 자제들이 다니던 경북사대부속국민학교 학생들이 많이 살던 곳이기도 했죠. 저는 국민학교 시절을 거의 이 동네와 같이 하다시피 했는데 학교에서 잘 살던 친구들의 집 대다수가 삼덕동에 있었습니다. 지금은 밤이 되면 제일 시끌벅적한 이 거리가 그 당시에는 조용한 고급주택가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으시는 분들도 많을겁니다....부언하자면 - 지금은 관광객들로 시끌벅적한 서울의 북촌한옥마을 일대, 그러니까 명륜동, 가회동이 강남이 개발되기 전 서울의 토박이 부자들이 살던 동네였던 것처럼 대구의 삼덕동, 공평동이 그 비슷한 성격의 동네였습니다.
7839님의 댓글로 60년대 부자동네 영상을 만들어도 될 것 같습니다. 좋은 이야기 항상 많이 들려주셔서 늘 감사드립니다.^^
6070서울 부자집은 그때나 지금이나 평창동 아닌가요
@@kcm0526 평창동 부자 동네 맞죠. 제 얘기는 서울이나 대구 도심의 옛동네들이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예전에는 다 부자집들이 많았다는 뜻입니다~
만리장성 중화반점 그 동네가 옛날에 부촌이였다더니..
@@kcm0526.아님. 가회동,쟝충동이 최고임.
80년대초 앞산 올라가는 도로로
조금 올라가다 나오는 주택가
정치인 이효상씨 집이 있었고 그 옆에
집이 예전 살던집,,, 그동네에서 작은평수(96평)
에 속함 ,, 내 방 2층 베란다에서 이효상씨
집 정원이 훤히 내려보였는데 그 집이
그렇게 좋아보였었던 고등학교 시절,,,
이효상의원집은 유명했습니다. 건축 양식도 멋졌지요~ 그 시절이 그립네요.
내가 해외에 있어도 항상 마음이 가는 곳. 내 고향 대구. 그립습니다.
고향을 생각하는 마음 ~늘 고맙습니다 . 대구의 추억을 더 모아 전달 하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동국직물은 한때 한국 최대 수출기업이었는데 망해서 아쉽네요. 대구 서문시장에서부터 시작해서 섬유 한 길만 고집하다 변화에 적응 못해서 망했다던데
반면에 삼성은 대구 서문시장에서 농수산물 국수 장사하다 제일제당 제일모직 물산 전자 중공업 하면서 한국 최대 기업이 되었죠
80~90년초까진 앞산순환도로 밑동네가 최고부촌이었죠. 집안에 계단있고 정원있는 대형 양옥이 엄청 많았죠,
부촌답게 그 규모도 상당했죠 ~아직도 지나다 보면 양옥 규모가 대단하더라고요~~
대명동에 있던 경북광유 박진희 사장님 저택 가봤습니다. 아버지께서 사장님 운전기사로 일하셨을 때 한번 데리고 가주셨죠. 커다란 대문, 잔디가 쫙 깔린 마당, 그 옆에 차고도 있었고, 집안에 들어가니 럭셔리한 응접세트.... 당시 국민학교 4학년생 눈엔 모든게 생경했습니다. 사장님집과 나란히 붙어서 상무님(전무님인가?) 집도 있었죠. 어느덧 50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네요. 세월 참...
세월이 빠르긴 합니다~~박진희 회장님집 직접가보셨군요~~댓글 감사드립니다
그 집 붉은 담장 길이가 100m는 족히 됐었죠
후에 갤러리로 쓰던데 요즘은 못가봐서 모르겠네요.
대구 삼덕동 역시 부촌이였죠 ^^ 그당시 삼덕소방서와 삼덕성당 그리고 중앙도서관 ^^ 저희집도 이사가기전 삼덕성당옆에 살았더랍니다 ^
부촌에 사셨군요~~ 부럽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옛 생각 나네요. 남산동이 고향인데 한 동에 이층 양옥 골목, 6.25 피난촌 골목, 서민 골목 이렇게 다 있었습니다. 구슬치기(옹글랑?) 할 땅이 조금 남아있던 그 시절에는 이층 양옥집을 부자집으로 불렀던 기억이 나네요.
1970년대...
국립경북대학교사범대학부속국민학교...
줄여서 사대부국 다녔던...
동기, 선배 , 후배님들...
모두 잘 지내시는지요?
특히, 같이 학교 다닌...
1968년 생 36기,
1969년 생 37기,
1970년 생 38기 등......
그립습니다.
아~~~사대부국 그 당시는 정말 들어가기 힘든 곳이었지 싶습니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행복하십시오~💖
7,80년대 대구 범어동에서 살다 서울로 학교때문에 왔는데 수성구 범어동이 이렇게 발전할줄이야~ 거기가 엄청 부촌아파트가 된 느낌입니다.
저도 범어동 부동산 가격을 한번씩 볼때마다~~ 그저 부러울 따름입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한양가든은 철거하지 말고 뜯어서 어디 한적한 공간에 박물관으로 삼고 싶을정도로 한국 건축역사에 남을 건축물이었음.
김석철 건축가의 획기적인 시도였다고 저도 들었습니다. ~ 건축성이 있는 작품을 보관할 방법이 없을까요~~
80년대 중반에, 친구집이 한양 가든 테라스여서 놀러 간적이 있습니다. 족히 100여평은 되어 보였고, 정원과 연못까지 있었습니다. 참 멋진 아파트였지요 👍
대명동이 좋은이유는.. 앞산 때문에 공기가 당연 일품이고.. 여름철에도 다른동네에 비해 엄청 시원함
70_80년대 부촌은 삼덕동 아닌가요?저희 외가쪽 친척이 경북광유 상무여서 삼덕동2층양옥에 살았는데 한번씩 엄마따라 놀러가면 네슬레커피,미국에서 온 깡통햄등이 많았어요 그때 13평주공아파트에 살때였는데 그집 부엌이 저희집보다 컸어요
삼덕동은 60, 70년대까지 부촌으로 유명했고, 70, 80년대로 넘어가며 대명동이 신흥 부촌으로 자리잡았습니다.
80년대에도 삼덕동에 좋은 집들이 남아 있었으나 시내 유흥가가 확장되며 일대가 룸살롱, 요정으로 바뀌었고
부자들이 떠나기 시작했죠
당시 대구 최고 기업이었던 경북광유, 동국무역회장 집이 있던 남도국민학교 길 건너 대명 1동 (당시 대구 최고급아파트였던 정우맨션도 이곳에),
앞산 올라가는 좌우측 이효상씨집부터 정보부가 있던 대명 9동이 가장 부촌이었요
이 영상에서 나오는 잔디가 넓게 깔리고 분수와 비단잉어 헤엄치는 연못이 있는 정원을 갖춘 2층 양옥집들이 모여있었죠.
대명동 2층 양옥 부촌이라 좀도둑들이 그렇게 많았어요. 10년전까지도 도둑들이 신혼부부 들어오면 털어감.
그랬던 기억이 생각납니다~ 구체적인 말씀 감사드립니다~
영상감사합니다추억돋네요
감사드립니다~ 혹시 추억이 더생각나시면 저도 참고하여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대구의 옛모습들
사진으로 보니
어릴적 생각들이 새록새록나네요
대명동쪽
계대.미도극장쪽 오래된주택들은
요즘 그대로인지
아파트로 바뀌었는지
옛거리들을 한번거닐어보고싶군요
변화의 바람은 어쩔수 없지만 ~~ 지나가 추억은 다시 생각 나실 겁니다 ~
내고향 대구. 고향의 이야기 들려주셔서 감가합니다. 81년 닭띠 올씨다
감사합니다~ 대구 사람의 진한 마음 다시금 느껴집니다
대명동 앞산밑의 저택이 지금도 그명맥으로 남아있는듯 합니다...
네..그때의 주택들이 아직도 꽤 있는것 같습니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행복하십시오~💖
70년중학시절 앞산고굽주택" 수성구고급주택보면서 감탄그자체였죠" 80년서울 직장생활하면서 성북구고급주택 남산고그주택 2000년 논현동고급주택보니" 대기업회장임원이 살더군요" 지금은 강남3구 반포압구정잠실서초 송파고급APT로 부자들이 살더군요! 그런데 착한아내자식과 행복하게 사는게 최고입니다!
댓글에서 인생을 배웠습니다~~감사드립니다
어릴적엔 논밭으로 개구리 잡으러 동네 아이들이랑 뛰어다녔었는데😢 어릴적 자랐던 동네에 가보니 산이 있던 자리엔 넓다란 도로가 생겼더라구요. 어디가 어딘지 감으로 겨우 맞춰 봤는데.. 어릴적 추억의 장소들이 흔적조차 없어진 걸 보니 좀 많이 서글펐어요.
저도 그런적이 많습니다~흔적 조차 없을때~ 그림움이 더해 지더군요~~
대구 삼덕동 3가 249-4번지 3통 4반 이층양옥집에 살았습니다
대구동덕초등학교 다녔구요
그때 동덕초등에서 삼덕초등 가는골목 에 100평 잔디밭있는 양옥집이 몇채있었고 저희모교 친구 들집이 많이있었네요
그때 기억이 새록새록하네요
골목에서 축구하고 배드민턴 치고 얼음쨍하고 차도 마니안다녀서 잼나게보냈던추억이..참고로 47세입니다
그 시절의 추억이 고스란히 느껴지네요. 멋진 추억 이야기 감사합니다! 😊
반가워요 동덕23회 졸업생입니다^^
만촌2동 , 지금의 메트로팔레스가 군부대였던 시절 모습을 보고싶슴다
제가 알기로는 메트로팔레스는 의무사령부 부지였던걸로 기억하는데요~ 한번 찾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
대명동 양옥집 유명하지.
고등학교시절 이길 많이 걸어 다녔지.
지금 많이 달라 졌을까?
교대옆으로는 지금은 원룸 빌라촌 되었죠. 어릴 적 살던 동네인데 교대 옆으로 붙은 이층 양옥에 외국인 살았고 포드 선더버드 들락거리던 거 기억나네요. 주차된 흰색 선더버드 옆에서 괜히 사진 찍고 했던 ㅎ. 대명유치원 교대부국 이렇게 다녔었는데 다들 뭐하고 있으려나...
전체적인 분위기는 많이 변했다고 는 할 수없는데... 활기가 조금 줄어든것 같았습니다... 제 의견일 뿐입니다.. 댓글 감사드립니다
수성구 배추밭이 금싸라기땅이 됄줄 누가알았겠습니까
1950년대 경산군 고산면 삼덕동 505번지가 제 고향입니다 지금은 금싸라기 수성구로 바뀌었고요
저도 범어 로타리에서 친구들과 놀곤했는데 ~~ 한 치 앞을 모르니~ 댓글에 공감합니다
아~ 그랬군요~ 좋은 정보 감사 드립니다~~고맙습니다
@@표주박-p2j시지 맞니요? ㅎㅎㅎ
@@백깜찍이 네에~
대덕산 자락에서 바지 저고리 입고 뛰어놀던 아련한 옛 생각들이 나고
비내리는 고모령 노래와 영화화 한 고모역 까지 걸어와서 놀던 생각도 납니다
6,70년대때
이층 양옥집은 꿈의 주택이었음.
60년대 이면 꿈이 맞는것 같아요~ 댓글 감사합니다
음 저때...이층 양옥집...그리고 마당에 분수 까지 있었으면 정말 큰 부자였죠..ㅋㅋㅋ
그랬던것 같습니다. 단층집만 있으도 살만한 시절이었으니까요~~~ 댓글 감사드립니다
국딩때 뒷집 이층 양옥집에살고있는 친구집 부엌바닥에 마당으로 나가는통로 있었서요 제가 숨바꼭질 하다가 부엌바닥통로 발견했고요 그집 친구 가족들 부엌바닥에 통로있었는지 전혀모르고 있었고요 중딩때 통로 친구집 거실로 들어오다가 친구한테 걸렸고요
친구 부모 밖에 못나가하면 부엌바닥 통로 통해서 밖으로 나와서 놀다가 통로 들어가서 집으로 갔고요 부모님한테 통로 들어오다가 걸려가지고 부엌통로 입구 냉장고로 막아버렸어요
재밋는 추억에 ~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네요~ 추억의 에피소드 감사드립니다
얼마전 체육대회가 있어 서도초등 건너편 골목길을 가봤는데 50년전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수익성이 낮아서 재개발이 되지않으니 아마 대구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이 서도초등 앞쪽 입니다...살아 생전에 저곳이 재개발이 되려나...
지금은 대구 전체가 부동산 침체기 이지만 향후 경기가 살아 나면 잘될것같습니다~~~
80년대 앞산 대명동 안기부와 전두환 대통령 누님의 집 주변이 부촌이자 지역 권력의 중심지였죠.
그 이후로 부자들은 지산동으로 옮겨가고.
대명9동 전두환대통령 누님집을 경찰들이 수시로 순찰 다녔다는 말은 저도 들었습니다. 내용을 잘 아시는 것 같습니다
다음 편에 참고 하도록 하겠습니다~
대명동쪽이 터가 쎄다고 하던데.. 그 말은 귀신이 많다는 소리 같아요. 자세히 아시는 분?
풍수지리적으로 그런 말이 있었나보네요~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행복하십시오~💖
앞산쪽아니니기ㅣ요
옛날 앞산쪽에 부자집이 많았다하네요^^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행복하십시오~💖
1970년대후반 국민학생 당시 할아버지가 대구 변두리에서 극장을 운영 했고 극장옆 큰 공터에 큰 감나무랑 일본식 적산가옥서 살았지여 !
남성 남성남 . 혜은이 극장쑈도 가끔 했고 중고등학교 학생들 단체영화관람시 쌀포대에 돈을 받기도 했지여 .
참 오랫된 추억 이네여 !
그당시 그장을 운영했고 적산가옥에 사셨다면~ 남께서는 정말 부자였는 것 같아요~~부럽습니다
구 능인고등학교 앞 도로지나 대구향교 가는길 언덕에 신진욱 협성재단 이사장님 집이 있었는것으로 기억합니다 고급주택이었습니다. 대명동 앞산 밑의 고급주택에 잔디가 있는것도 신기했습니다. 이제는 추억이네요
그 시절 잔디는 귀하기도 했지만 ~ 협성이사장님도 사셨군요~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동대구역 에서 법원 가는길
넓은대로 신암동 에서 동중
으로 86번 버스 타고
중학교 다녓던 기억이
아스라히 나네요
지금 길은 그대로 이지만 주변은 많이 변했지요~ 늘 다녔던 길이라 더 생각이 나시겠네요~~ 감사합니다
난 앞산대명동쪽에서 86번 버스타고 남산동 영남중고등하교 가거나 시내로 나갔는데 다시 돌아가고 싶네요
앞산에서 시내로 가는 버스 노선이었는데 가끔 앞산네거리로 질러가 문제가 되기도 했던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