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히틀러의 공격지향의 무리한 작전도 패전의 원인이지만 일본이 미국까지 참전시키게 한게 크죠. 소련과 미국 둘중 한곳부터 해결했으면 승전 했을겁니다. 히틀러는 일본의 소련견제를 바랬지만 역으로 재앙을 끌고왔죠. 아무리 그래도 두나라가 전세계를 상대로 싸울수야 있겠습니까? 히틀러가 소련 먹고나서 일본이 미국치는거 전적으로 도와주겠다고 설득 성공했으면 역사가 바뀌었을겁니다.
벌지전투 자체는 대전 초기라면 됬을껀데, 그땐 모두다 베테랑이라... 다리부터 끊어버렸죠. 다리확보는 전격전에 필수인데.. 지체되버리는, 그래도 그럭저럭 잘나갔는데(초기전격전이었다면는 좀더 프랑스쪽으로 둘러쌌을건데 이땐 가까운 벨기에 안트베르펜까지만 가기로).. 궁극적으론 날씨가 풀려버리니(그때까지 운이 좋았던것) 압도적인 영미연합군의 제공권이 나와버리니 그때부턴 그냥 쫑난것
애초 히틀러의 삽질 성공했어도 이미 전력이 바닥난 독일군이 전선을 유지하기 어려움 원래 부족한 전력 모아서 공세를 했는데 공세과정에서 몇만이 넘게 희생하고 탱크가 소모되어 연합군의 반격에 지킬수 없음 공자는 방어자의 3배의 전력이 있어야하기에 방어하는 것이 독일의 수명을 연장하고 피해도 줄이는 것이었죠
동부전선에서 이미 수백만이 죽었는데..무슨 결정적이냐..걍 최후의 발악이었지..독일은 쏘련이 물리친 게 맞지..아무리 미국이 덧칠을 해도 2천만이 죽은 러시아의 전과를 뒤집을 순 없고 그래서 동유럽의 공산화에도 별로 할 말이 없었던 거지..입은 삐뚫어졌어도 말은 바로하자..
@@이종범-c3i 한국전쟁전에 남한에서 1947년에 개발한 M1탄클립을 사용하는 반자동 소총'대한소총'이라고 현제 전쟁기념관에2정이 전시되었다는걸 보셨는지 모르겠으나 병기 제조 기술이 아예 없지 않았고 개발한 그걸 대량으로 생산할 군수물자 생산 공업 시스템이 없었다고 하면됩니다. 2차 대전이 한창인 그때 우리라기 보단 국호가 일제에 식민통치를 받던 일본반도입니다. 우리의 정식 국호인 대한민국이 되려면, 미 영 소 프 네 폴 호등 연합국이 승리하고 동시에 우리 주변의 식민통치를 경험한 다른 여러나라들과 함께 연합국 승전으로 해방되어 우리도 광복을 맞이해야 합니다. 일제가 세운 군수공장들이 거의 북한지역에 몰려있었고, 일제가 패망하면서 일제가 구축하고 경영하던 병참부대의 군수전략물자생산을 위한 대규모 공업단지 인프라 들이 거의 북쪽에 집약되었으니 광복 후 장차 다가올 한국전쟁에서 북한이 전쟁준비를 하는대 이용한 것이 라고 봅니다.
쿠르스크 이전에 스탈린그라드, 스탈린그라드 이전에 영국과의 전쟁을 마무리 짓지 않은 상태에서 소련 침공 바바로사, 바바로사 이전에 찾으려 한다면, 영국 항공전에서 영국공군을 격멸하지 못해 영국이 전쟁에 계속 남게 된 것. 종전후 소련측이 독일 최고위급 장성인 루트쉬테드 원수와의 인터부에서 물었던 질문과 답변 역시 그러했죠. 소련측은 내심 스탈린그라드 등의 답변이 나오길 기대했다고 하는군요. 소련측 질문 : 2차대전에서 가장 결정적 순간은? 룬트쉬테드 답변 : 영국항공전에서 영국을 굴복시키 못한 것
북아프리카 롬멜을 확실히 지원해서 수에즈운하 먹고 중동으로 가서 석유 먹고 그 다음 소련 턱 밑에서 협공으로 같이 소련을 쳤어야지 근데 문제는 지중해를 장악하기가 영국 땜에 너무 힘들단 거 그래서 영국을 이기던가 프랑스든 소련 반띵이든 줄테니 제발 짜져 있어 달라고 강화를 하던가 매듭을 지었어야 ㅎㅎ
이시기에 이탈리아 고딕라인에 독일제10군과 헤르만 괴링사단 다해서 약 24개사단 정도가 있었지만 현실은 고딕라인에 압도적인 영제8군 과 미제2,4,5군 마크 클라크장군과 몽고메리장군 의 협공에 방어하는데만도 힘들었죠. 케셀링원수도 지원해주고 싶었겠지만 부대를 뺄수가 없었어요. 없었습니다.
노르망디는 과대포장이 아니다 머저리새끼야. 그리고 미군의 업적은 직접 참여한 전투보다 보급과 수송에 있다. 미군의 보급이 아니였다면 독일이 이기지는 못했더라도절대 지지는 않았을꺼다. 아마 휴전으로 끝났겠지. 전쟁 말기로 갈수록 러시아군도 병력충원 문제로 매우 고전했다. 그래서 전쟁 중후반기에는 보급 수송, 통신들의 남군들을 전부 전방으로 보내고 여군들을 400만이나 징집해서 매꿀정도로 심각한 인력난을 격었다. 영국도 베틀오브브리튼 이후로 진짜 굶어죽을 지경이었지만 미국의 참전으로 전세가 역전된거다. 그리고 미군들도 정신력도 강하고 훈련도 강도높게 받은 정예군대다. 독일이 엄청나게 잘싸워서 그렇지 미군도 절대 만만치 않아. 좆도모르는 좌익 새끼야.
헐 이걸 헛발질이라고? 그럼 그 상황에서 뭐가 최고였던거지? 결과만 두고 이 따위 소릴하다니. 소수 정예 병력으로 큰 병력을 상대하려면 기동과 신속이 생명인데 장군들 말을 무시하고 모스크바 공격을 지연시킨것이나 레닌그라드,쿠르스크 공격등 소모전쟁을 한 것들이 헛발질이지.
벌지전투의 독일군대는 정예병도 아니였음. 일부 동부전선 패잔병 + 급하게 징집된 일반병사. 근데도 미군이 고전했지ㅋㅋ 거의 독일군1명이 미군2명을 담당해서 싸웠음. 당시 독일의 정예군대는 동부전선에서 대부분 죽거나 포로로 잡혔다. 미군은 빈집털이만 한거임. 어차피 미군안와도 소련이 다 밀고 들어왔음
44년도의 독일군은 동부와 서부전선 양측에서 말 그대로 다무너져가고 있는 풍전등화의 독일군이었습니다. 동부전선에서 만4년간 악전고투를 치루어온 잔뼈가 굵은 독일군은 모두 얼마남지 않은 군사력으로 나치정권시기독일의 마지막 희망이었을 것 이며, 그동안 버틴 건 바로 질 높은 전투력 뿐이었을 겁니다. 패잔병 잔존 병력들의 우수한 전투력과 저명한 독일 명장들의 지략 덕에 그나마 버티고 있던 실정에 임박한 종전을 조금 이나마 지연 시킨 것 1차 대전 참전 경험이 있던 예비군 겪인 중 장년 층으로 구성된 국민 돌격대와 야전 무장SS부대 그리고 이제 막 어린아이의 티를 이제 벗어나거나 그렇지 않은 엣된 청년들인 소년병들로 구성된 히틀러 유켄트(Hitler jugend:히틀러 청년단)로 구성되었으니까요. 대전막바지 무렵에는 다양한 연령대의 민간인 시민 여자들까지 병력으로 징집 동원되어 당시kar98k 소총 보다 판처파우스트가 워낙 많이 생산되어 수십만 자루가 남아돌았는데, 워낙 많아서 일회성 대전차병기 판처파우스트를 손에 쥐어주고 전투에 내보내서 자살에 가까운 공격을 감행하게 할 만큼 독일정부를 비롯해서 독일국민들이 패망의 벼랑 끝자락에 몰렸고 끝까지 발악하다가 종전을 맞이하였다고합니다. 동부전선의 소련군은 말 그대로 스딸린이 바그라치온 작전 전개 이전까지 줄기 차게 제 2전선을 목 놓아 요구하였지만, 스딸린의 바람과는 달리 뒤늦게 정치적인 목적으로 연합국이 제2의 전선(1940년의 상황과 달리 구분되는 제2의 서부 전선이라고 해야함)을 열었으나 스딸린은 이젠 영미 연합군의 도움 따위가 필요없다고 말했을 만큼 소련군 혼자서 독일군을 단독 전적으로 물리쳐가면서 싸워왔고, 연합국의 두 거물들 루즈벨트와 처칠은 강력해진 소련군을 두려워하였다고 할만큼 전쟁 괴수가 된 소련군을 무시할 수준이 아니였습니다.
히틀러의 최대 실수는 전쟁중에 유대인 확살이다 전쟁에 치중해야할 시기에 엉뚱한데로 에너지를 낭비한것이다 그자원을 이용하고 인종청소는 승리를 한 다음에 해도 되는데... 너무 자만한 댓가는 결국 패망을 가져왔다 추축국이 전쟁에 패한것이 우리로서는 다행이 아닐수없다 외국이나 자국이나 앞으로도 괴물들이 나오지 않길 바랄뿐이다
벌지전투- 아르덴 대공세는 해볼만한 도박이었죠. 딱히 큰 실수같진 않음. 연합군이 독일군 전력에 대해 방심하고 있고, 계속된 진군으로 전선이 늘어져 있었고, 날씨관계 압도적인 전력차였던 제공권 확보가 어려웠으며,,, 등등등 딱히 실수같진 않음 성공했으면 전선교착시키고, 소련과 전쟁에 집중하기가 좀더 나았겠죠.. 그래봐야 대세적으로 어려웠을것, / 최고실수는 대소련전쟁 자체죠. 그땐 소련의 역량을 무시했던것이고(역사적으로도, 19세기 일본외교관의 쌍끄뜨 뻬쩨르부'르크(상트 페테르부르크) 방문당시 보면 도시내의 돈되는곳은 프로이센 독일인 차지고, 이들이 러시아인들을 인종적으로 무시한다는 기술이 인상적) 특히 초반공세당시 신속히 모스크바 점령하지 못한게... 서서히 소련의 전력에 압도당한게... 궁극적 패전원인으로 봅니다. 결과를 알고보면 도박이었다는.. 당시는 프랑스 전격전 성공후 별문제없다란 시각이 다수 특히 대전내 그냥 아무것도 안했던 북부집단군은 그병력 애초 중부집단군에 좀 몰아줬다면 훨씬 해볼만했을것.... 다만 여기에 대해 히틀러가 독일군부(애초 프로이센의 중심인 군귀족출신이 다수로, 히틀러는 남부지역 사병출신= 훗날 늑대굴 암살미수등 히틀러와 군부는 반목관계)에 의한 위화도 회군같은 쿠데타를 두려워해 안몰아줬다.. 던 시각이 인상적
글쎄요 어차피 독일은 소련과 싸울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오히려 어차피 싸운다면 준비가 덜된 상태의 기습이 더 유력합니다. 문제는 그게 아니죠. 전략목표가 불명확했다는 것입니다. 진행에 따라 수차레 목표가 변경됐고 이로 인해 조기종전이 불가능해졌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초반대승후에 동유럽에서 소련 빠지라고 했다면 스탈린이 거부했을 까요?
@@닉네임님 독소전쟁의 개전으로 열릴 동부전선에서 독일이 선수(先手)를 둔 확실한 이유가 있습니다. 독잁이 소련을 먼저 치지 않았으면, 전쟁 개전과 공격의 선수(先手)소련이 가져 가게 됩니다. 그해 1941년 7월에는 소련도 개전 할 계획 이었다고합니다. 나치 독일이 조금이라도 주츰 하고 늦장을 부려 후수(後手)두었다면, 소련이 주도권을 잡고 선수로 전쟁을 시작 했을겁니다. 나치정권독일입장에서 처음부터 승산 없는 독소전쟁이라고 합니다.만 소련이 먼저 주도적으로 개전 하였다면, 독일은 방어적인 전쟁을 수행하기에도 버거웠을 만큼 질 좋은 장비로 구성된 소련군1,500만 정예 병력과 대적할 만큼 전력 차이도10대1의 압도적으로 낮았고, 설령 간신히 승세를 잡아간다해도 성공과 승리할 가능성이 단6%(독일의 대소련 침공시 승전 성공 확률)에 지나지 않았을 만큼 굉장히 희박했으니 독일로써는 선수를 둘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1934년 제군비 선언부터 독소 불가침 기간 동안 소련에서 입수한 독일공군의 소련영토내 정보 수집 정찰 활동으로 소련영토를 마치 내집 안방처럼 드나들던 독일공군의 정밀한 정찰능력기반으로 곧 개전 할 동부전선의 지도를 만들고 철저한 계획으로 독일군의 침공이 가능했다고 해야합니다. 독프전이 한창일 1940년까지 소련은 독일을 도와서 프랑스전에 군수전략물자를 지원하였는데, 이는 1941년 6월22일 침공개시당일 세벽 독일의 대소련 침공 시작 시간 전까지 소련의 마지막 연료보급수송화물열차가 폴란드 영내독소 분활 점령지 국경을 넘어 곧 침공 준비가 마무리 되어가는 독일군을 지원함 독일공군은 자신이 잉태된 천적의 뱃속에서 부활한 후 자신의 천적이 될 소련영토 곳곳을 종횡무진하듯이 샅샅이 정탐하여, 군사정보를 수집하였는데 독일이 1차 대전 패전국으로써 여러가지 불합리한 연합국의 조항들에 묶여서 군사력 보유에 제한받으니 군사력을 기르기 위해서 비밀리에 국제연맹의 감시를 피할 지역이 필요했고, 패전국 독일에게 적격 이었던 곳이 바로 소련이었으니 소련 역시 자신의 영토를 제공하는 댓가로 서방의 지원을 받을 곳이 필요했는데, 적합한 곳이 바이마흐 공화정 시절의 독일이었다고 합니다. 히틀러 집권 전부터 일찌감치 독일과 밀월의 공생관계를 맺으며 살아간 신생 공산주의 소련의 전쟁 전 우호적인 국제정세 속 독소관계 덕에 가능했다고 봐야합니다. 독일군의 군사력이 소련이라는 천혜의 특수 적인 잊점을 가진 천적의 배속에 배양 되고 부활하였는데, 전쟁 전에 독일 공군이 어떻게 이런 정밀하고 세세한 소련군의 군사정보들을 수집할 수 가 있었는가?를 알면, 소련 즉 특히 히틀러를 믿고 싶어했던 스딸린은 소련 영토내로 수시로 날아들어 소련 영토내 소련 영공 곳곳에서 하루 수십 차례 출격해 군사정보를 수집하기위해 머리 위 하늘에 떠있는 독일공군의 정찰기를 두눈 똑바로 뜬 지상부대가 발견하더라도 그들의 손으로 잡지 못하게 독일 공군의 정찰기에 대한 격추 불가 명령도 한몫 했다고 합니다. 이러니 개전 초반 소련군은 두 눈뜨고도 두 손마저 놓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그러나 스딸린도 바보가 아니기에 언젠가는 히틀러가 우리를 침공해 오겠지라고 하면서 잘 알았다고합니다. 스딸린의 믿음은 늦어도 1942년까지였고 1942년이면 히틀러가 집권하는 나치 독일과 자신이 통치 하던 소련이 국가의 국운을 건 전면전이 필수 불가결 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요. 2차 대전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독소전쟁전의 유럽상황이 C&C 레드얼럿1편 과도 같은 시나리오입니다. 이 시기는 희대의 인간체스게임을 벌일 두 독재자 즉 히틀러와 스딸린이 가운대에 독일이 포함된 중 유럽과 주 전장(主戰場) 주 전선(主戰選)이 될 동유럽 그리고 소련 영토가 그려진 장기판(schachbrett)을 놓고 각자 다 차려진 기물포진(전투부대배치)후 누가 먼저 둘까? 하는 상황의 그림이 연상 되는 형국입니다.
글쎄요... 전면전은 아니더라도 히틀러가 아무생각없이 단찌히 점령하고 폴라드공격 했을까요? 히틀러도 슈데텐란드까지는 연합국 을 떠본거라고 합시다. 하지만 그이후의 행동들은 선을넘은 겁니다. 히틀러도 장군들앞에서 프랑스를 잡을 작전 을짜라고 했고 반대하는장군들이 꽤많았습니다 그런데도 전쟁을 싫어했다구요? 프랑스를 점령해서 1차대전의 복수를 하는게 히틀러의 일생일대의 꿈이었고 더나아가 도버해협 을넘어 영국을 무릎 꿇리는게 목표었죠. 그게다 러시아를 공격하기위한 발판이었지만 말입니다. 히틀러가 전쟁을 피하려했다? 싫어했다? 글쎄요...준비가 덜된상태에서 전쟁이 앞당겨진게 아닐까요?
@콩토리 뉴욕 초토화까진 못가고 시나리오 쓰자면 먼저 독일이 핵 만들었으면 일단 연합군(프랑스쪽) 몇발쏘고 소련쪽 몇발쏘고 어느정도 전장 펼치고 안정화되면 영국에 핵 몇발쏘고 그다음 소련본토 초토화 작전할때쯤 미국도 핵개발 되서 독일이랑 독미협약하것지 그럼 유럽은 독일이 통일했을거임 소련은 국토 반토막났고 미국은 전쟁피해금 물면서 버로우타야되고, 국제통화는 마르크되며, 국제유가도 독일을 통해서 거래해야됨 그럼 현재 독일이 제2에 로마가 됨 아마 히틀러가 유대인학살만 안했어도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임
독일은 히틀러의 공격지향의 무리한 작전도 패전의 원인이지만 일본이 미국까지 참전시키게 한게 크죠. 소련과 미국 둘중 한곳부터 해결했으면 승전 했을겁니다. 히틀러는 일본의 소련견제를 바랬지만 역으로 재앙을 끌고왔죠. 아무리 그래도 두나라가 전세계를 상대로 싸울수야 있겠습니까? 히틀러가 소련 먹고나서 일본이 미국치는거 전적으로 도와주겠다고 설득 성공했으면 역사가 바뀌었을겁니다.
응 그럼 히틀러가 이긴 뒤 일본 공격해서 우리 지금 나치 독일 식민지임
벌지 전투에서 독일군이 승리를 했어도 어차피 전쟁에서는 독일이 패배할 수 밖에 없다.
동쪽에서 소련군이 계속 공격해 올 것이고 미국은 계속 막대한 전략물자와 군인을 공급했을 것이다.
결국 양쪽의 피해만 더 커졌을 것 같다.
벌지전투 자체는 대전 초기라면 됬을껀데, 그땐 모두다 베테랑이라... 다리부터 끊어버렸죠. 다리확보는 전격전에 필수인데.. 지체되버리는,
그래도 그럭저럭 잘나갔는데(초기전격전이었다면는 좀더 프랑스쪽으로 둘러쌌을건데 이땐 가까운 벨기에 안트베르펜까지만 가기로).. 궁극적으론 날씨가 풀려버리니(그때까지 운이 좋았던것) 압도적인 영미연합군의 제공권이 나와버리니 그때부턴 그냥 쫑난것
애초 히틀러의 삽질 성공했어도 이미 전력이 바닥난 독일군이 전선을 유지하기 어려움 원래 부족한 전력 모아서 공세를 했는데 공세과정에서 몇만이 넘게 희생하고 탱크가 소모되어 연합군의 반격에 지킬수 없음 공자는 방어자의 3배의 전력이 있어야하기에 방어하는 것이 독일의 수명을 연장하고 피해도 줄이는 것이었죠
동부전선에서 이미 수백만이 죽었는데..무슨 결정적이냐..걍 최후의 발악이었지..독일은 쏘련이 물리친 게 맞지..아무리 미국이 덧칠을 해도 2천만이 죽은 러시아의 전과를 뒤집을 순 없고 그래서 동유럽의 공산화에도 별로 할 말이 없었던 거지..입은 삐뚫어졌어도 말은 바로하자..
맞아요.. 독일이 소련에 삽질안했으면 어찌됬을지...
소련은 2차 대전의 주역이었으니까요. 미국의 승리도 소련없이 이루어 낼 수 없던거니까요.
@@pedrogim6952 독일일본이 세계랑 싸울때 우린 소총이나 만들줄몰랐으니......참...씁씁하네여.....
또또 소뽕이... 미영없었으면 소련도 털렸음. 소련이 계속해서 꼬라박고도 멀쩡한 이유는 미국이 끊임없이 지원해준게 가장크고 무엇보다 영국이 후방 산업시설을 계속 폭격해줌. 물론 소련이 가장큰 공을 세운건 맞지만 너무 소뽕에 빠지진 말길
@@이종범-c3i
한국전쟁전에 남한에서 1947년에 개발한 M1탄클립을 사용하는 반자동 소총'대한소총'이라고 현제 전쟁기념관에2정이 전시되었다는걸 보셨는지 모르겠으나 병기 제조 기술이 아예 없지 않았고 개발한 그걸 대량으로 생산할 군수물자 생산 공업 시스템이 없었다고 하면됩니다.
2차 대전이 한창인 그때 우리라기 보단 국호가 일제에 식민통치를 받던 일본반도입니다. 우리의 정식 국호인 대한민국이 되려면, 미 영 소 프 네 폴 호등 연합국이 승리하고 동시에 우리 주변의 식민통치를 경험한 다른 여러나라들과 함께 연합국 승전으로 해방되어 우리도 광복을 맞이해야 합니다.
일제가 세운 군수공장들이 거의 북한지역에 몰려있었고, 일제가 패망하면서 일제가 구축하고 경영하던 병참부대의 군수전략물자생산을 위한 대규모 공업단지 인프라 들이 거의 북쪽에 집약되었으니 광복 후 장차 다가올 한국전쟁에서 북한이 전쟁준비를 하는대 이용한 것이 라고 봅니다.
결정적 실수는 이미 1년전 동부전선 쿠르스크에서 결판났음
쿠르스크 이전에 스탈린그라드,
스탈린그라드 이전에 영국과의 전쟁을 마무리 짓지 않은 상태에서 소련 침공 바바로사,
바바로사 이전에 찾으려 한다면,
영국 항공전에서 영국공군을 격멸하지 못해 영국이 전쟁에 계속 남게 된 것.
종전후 소련측이 독일 최고위급 장성인 루트쉬테드 원수와의 인터부에서 물었던 질문과 답변 역시 그러했죠.
소련측은 내심 스탈린그라드 등의 답변이 나오길 기대했다고 하는군요.
소련측 질문 : 2차대전에서 가장 결정적 순간은?
룬트쉬테드 답변 : 영국항공전에서 영국을 굴복시키 못한 것
@@scz8333 등뒤에 두고 온 적이 영국입니다. 독일군이 영국에 상륙을 감행하였다면, 미국도 온전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덩케르크에서 결정났죠 그 때 영국군 공격했으면 영국은 육군의 80퍼센트를 잃은거죠
에초이 거길 왜 친 걸까요... 더 얇은 것을 뚫었음 몰라도
@@pedrogim6952 제해권 자체가 영국에게 있었는데 어떻게 상륙을함 ㅋㅋ 헤엄쳐서 갈것도 아니고. 그리고 기적적으로 상륙했다 치더라도 6개월안에 보급부족으로 항복할거라는게 전문가들의 의견임
독일군은 39.40.41 영광의 3년을 보내고 1942년에 동타를 이룬이래 43.44.45 쭈욱 내리막길 이었음.
결론적으로 42년 쯤에는 전쟁을 종결한다는게 독일사령부 계획 이었다는거.
39:04 무슨 2차대전중에서 가장 많은 인명피해를 입은 전투지..? 많은 피해를 입은건 맞은데 동부보단 적잖어..
동부전선 수천만 사상자수에 비하면 세발의 피도 안되는 미국의 피해에요.
Pedro Gim 알고있으니까 저렇게 올렸죠..
히틀러의 최대 실수는 소련침공이고 구체적으로는 중부집단군이 신속히 모스크바를 점령해야 하는데 그병력을 남부집단군과 협력하여 키에프를 점령한 것이다
물론 키에프도 중요하지만 모스크바를 점령하고 거기서 방어선을 구축하는 것이 최선이었음 - 당시 프란츠 할더 육참총장의 주장
쿠데타일으킬까봐 군대 쪼개놓은것도 레전드임 ㅋㅋ
이미 지고 싸운 독소전입니다.
이런 사람들 특징 만약 모스크바부터 정렴했는데 변수생기거나 잘못되면 왜 먼저 키예프 안쳤냐고 씨부림 ㅋㅋㅋㅋㅋㅋㅋ
키예프가 답답하게 굴러가긴 했어도 확실히 모스크바를 밀었어야 했음. 방어선도 견고하지 않고 극동부대도 돌리기 전이라 중부는 병력수도 소련이 열세였음.
애초에 이새낀 덩게르크에서부터 자존심하나때문에 망쳐놓음
어라???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로버트 싱크 대령이 나오다니!! 흥미롭네요.
말이 결정적실수지 사실 있는거 없는거 다 긁어모아 반격한거라 결국 졌을 것
북아프리카 롬멜을 확실히 지원해서 수에즈운하 먹고 중동으로 가서 석유 먹고 그 다음 소련 턱 밑에서 협공으로 같이 소련을 쳤어야지 근데 문제는 지중해를 장악하기가 영국 땜에 너무 힘들단 거 그래서 영국을 이기던가 프랑스든 소련 반띵이든 줄테니 제발 짜져 있어 달라고 강화를 하던가 매듭을 지었어야 ㅎㅎ
잘 하면 이겼을 수 도 있었어요.
말씀하신 이 전략 참으로 중요했죠.저도 이와 관련된 이슈를 제 채널에서 다뤄본적 있습니다.
발지전투의 가장 큰 변수는 패튼의 기갑군단... 패튼의 등장은 연합군도 히틀러도 예상하지 못했고 그 변수로 인해서 히틀러가 끝장이 났었다.
패튼의 미제3군이 바스토뉴 포위를 똟었을때
히틀러의 도박은 끝났죠.
Bulge벌지 불지는 이해해도 발지는 아니죠
독일군 전차 설명에 사진과 그림은 티거가 아니라 판터인데요..
티거맞음 티거 2세대임
@@gahjong 초기형 모델이 판터랑 닮아서 헷갈렸네요. 설명 감사합니다.
티거2 포르쉐 포탑형 같네요
이전투는 결론적으로 독일군의 모든게 엉망이니까 패전일수밖에 없음! 전술, 편제. 지원부대,물자 등등 모든게엉망임!
인디애나 먼시에 거래처가 있어서 여러번 방문했는데 여기서 먼시 출신이라는 소리를 들으니 고향사람 만난 기분이네요 ~
독소전쟁이니까 그건 하나의 전쟁이고
이건 하나의'전투'로 동부전선의 총합
피해보단 적겠지만 하나의 전투로
따지면 가장 큰 인명피해를 입은 전투라는 거 아닐까여
스탈린그라드전투 하나로 압살
나찌의 결정적 실수는 소련침공. 이때 이미 패망을 예약한 것.
구데리안 만슈타인 모델 이런 쟁쟁한 장군들을 등한시 하고 뭣도 모르면서 군대를 지휘하는데 이길수가 없죠 ....
그리고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인해 미국 참전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던데, 나폴레옹이 영국과 러시아를 정복하지 못하고 폭망한게 넘 똑같아서 소오름 ㅋ
아니지 이탈리아지 이탈리아만 아니었어도 모스크바 함락으로 끝남
적어도 엉국 함락시키고 갔어야 했는데 전력 분산시킨 이상 끝이었지
40:27
전쟁 벌인 것 자체가 실수
전쟁에 졋으니 할말은 없지만 나찌 선전장관 괴벨스가 자기 어린 아이 6명과 자살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과 나이가 같을건데 누군 70년전 죽고 누군 아직도 살고
중간에 매복해서 패튼군대 괴멸시켜으면 승산 있어게죠 방어하는 연합군도 의욕상실하고 독일 어느정도 여유있는 상황 이었으면 시도해게죠 노련한 지휘관 그에 상응하는 정예병력 없는게 문제 워낙 급한 상황이라 이미 자원 병력 열세데
크게 착각하는데 패튼은 무지성 닥돌이 아니라 정찰을 누구보다 많이하고 보급을 중요하게 봤다. 공격타임에 대한 판단이 누구보다 빠르니 무지성 닥돌로 착각하지. 애초에 패튼은 벌지공세를 예측했다.
그냥 전쟁을 일으킨것자체가 실수
유대인들이 전쟁을 걸어오는데 그러면 그냥 당하고이음? ㅋㅋ
역대급 웃긴 히틀러입니다.^^ 가발 콧수염 b급배우 전형 ㅋㅋ
결정적이라는것은 이게 아니였으면이 전제된 이야기라는건데 사실상 이미 진전투 그게 아니였으면 몇십일 더 길어졌다 그정도 일것.
ㄴㄴ 마켓가든작전으로인해 이미 서부전선은 안정화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독일은 수비에 집중만 한다면 휴전을 이끌어낼수도 있었습니다.
이시기에 이탈리아 전선쪽에도 꽤 병력 있어죠 다만 현실은 이동 편성 시간상 부족 물론 분산된 병력 있어겠지만 수백만 일본 관동군 처럼 물자 총알 없는 군대 종이 호랑이
이시기에 이탈리아 고딕라인에 독일제10군과
헤르만 괴링사단 다해서 약 24개사단 정도가
있었지만 현실은 고딕라인에 압도적인 영제8군
과 미제2,4,5군 마크 클라크장군과 몽고메리장군
의 협공에 방어하는데만도 힘들었죠.
케셀링원수도 지원해주고 싶었겠지만 부대를 뺄수가 없었어요.
없었습니다.
미군의 희생은
인정해야만 한다.
벌지 대전투에서 독일군이 진 이유 아시는분?
씰데읍는 고집과 미치광이의 미련한 명령때문 ~~~
히틀러의 생각은 어떻게든 빠르게 아르덴을
돌파해서 뫼즈강을 넘어 브뤼셀 ,안트워프
항을 점령한뒤 연합군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다시한번 연합군을 노르망디까지 밀어낸다는
생각이었는데 뫼즈강을 넘지못하고 바스토뉴
를 점령하지 못한게 패착이죠.
영상 잘보고 손잡고 갑니다. 저도 손잡아 주시길 바랍니다. ^^ 👍도 눌렀습니다.
히틀러입장 해볼만한 도박이었슴... 근본적으로 연합군 제공권때문에 저지된거...
그리고 성공후 서부전선 교착시키고 소련군에 올인하겠다.. 였을거나... 크게차이 없었을껄로봄
이탈리아만 아니였어도 소련은 끝났어
이탈리아가 추축에 상당히 우호적이라 절대로 연합으로 갈일없는 그리스 공격해서 털려서 모스크바 공격할때 겨울이라 소련이 막은거지
여기댓글에 전문가가 엄청많네.역시 재야에 인재들이 많아.
2차대전때 독일이 서유럽 동유럽정복해서 그쪽에서 엄청난 공업 자원뽑아내던걸 박살낸게
미군의 전략폭격이죠
결정적 실수? 출생부터 자살까지 모두 실수라 딱히
어느 것이라 말할 수 없는 놈
출생부터 자살까지라 우리나라의 어떤 대통령을 떠올리게 하네요.
발지전투 걸과로 독일 패전만 2-3달 빨라진거 뿐이죠
히틀러로서는 해볼만한 도박이었죠
실패 확률 100프로지만
서실 서부전선은 동부전선에 비해 ㅈ도 아니였음ㅋㅋ
미국은 2차세계대전때 빈집털이정도 했으면서 지들활약상 홍보하려고 벌지전투, 노르망디상륙작전등 엄청 과대포장하고 선전했지ㅋㅋㅋ
노르망디는 과대포장이 아니다 머저리새끼야. 그리고 미군의 업적은 직접 참여한 전투보다 보급과 수송에 있다. 미군의 보급이 아니였다면 독일이 이기지는 못했더라도절대 지지는 않았을꺼다. 아마 휴전으로 끝났겠지. 전쟁 말기로 갈수록 러시아군도 병력충원 문제로 매우 고전했다. 그래서 전쟁 중후반기에는 보급 수송, 통신들의 남군들을 전부 전방으로 보내고 여군들을 400만이나 징집해서 매꿀정도로 심각한 인력난을 격었다. 영국도 베틀오브브리튼 이후로 진짜 굶어죽을 지경이었지만 미국의 참전으로 전세가 역전된거다. 그리고 미군들도 정신력도 강하고 훈련도 강도높게 받은 정예군대다. 독일이 엄청나게 잘싸워서 그렇지 미군도 절대 만만치 않아. 좆도모르는 좌익 새끼야.
사망자 비교(전투)
노르망디 상륙작전:2500명
스탈린그라드:200만명
2차세계대전 총합 사망자
미국::41만명
소련:2500만명
쏘련 침공보다 진정한 큰실수는 원자폭탄의 위력을 무시하였다는거....,쏘련 침공전 영국을 점령치 못하였다는거...
헐 이걸 헛발질이라고?
그럼 그 상황에서 뭐가 최고였던거지?
결과만 두고 이 따위 소릴하다니.
소수 정예 병력으로 큰 병력을 상대하려면 기동과 신속이 생명인데 장군들 말을 무시하고 모스크바 공격을 지연시킨것이나 레닌그라드,쿠르스크 공격등 소모전쟁을 한 것들이 헛발질이지.
벌지전투의 독일군대는 정예병도 아니였음. 일부 동부전선 패잔병 + 급하게 징집된 일반병사. 근데도 미군이 고전했지ㅋㅋ 거의 독일군1명이 미군2명을 담당해서 싸웠음.
당시 독일의 정예군대는 동부전선에서 대부분 죽거나 포로로 잡혔다.
미군은 빈집털이만 한거임. 어차피 미군안와도 소련이 다 밀고 들어왔음
44년도의 독일군은 동부와 서부전선 양측에서 말 그대로 다무너져가고 있는 풍전등화의 독일군이었습니다.
동부전선에서 만4년간 악전고투를 치루어온 잔뼈가 굵은 독일군은 모두 얼마남지 않은 군사력으로 나치정권시기독일의 마지막 희망이었을 것 이며, 그동안 버틴 건 바로 질 높은 전투력 뿐이었을 겁니다.
패잔병 잔존 병력들의 우수한 전투력과 저명한 독일 명장들의 지략 덕에 그나마 버티고 있던 실정에 임박한 종전을 조금 이나마 지연 시킨 것
1차 대전 참전 경험이 있던 예비군 겪인 중 장년 층으로 구성된 국민 돌격대와 야전 무장SS부대 그리고 이제 막 어린아이의 티를 이제 벗어나거나 그렇지 않은 엣된 청년들인 소년병들로 구성된 히틀러 유켄트(Hitler jugend:히틀러 청년단)로 구성되었으니까요.
대전막바지 무렵에는 다양한 연령대의 민간인 시민 여자들까지 병력으로 징집 동원되어 당시kar98k 소총 보다 판처파우스트가 워낙 많이 생산되어 수십만 자루가 남아돌았는데, 워낙 많아서 일회성 대전차병기 판처파우스트를 손에 쥐어주고 전투에 내보내서 자살에 가까운 공격을 감행하게 할 만큼 독일정부를 비롯해서 독일국민들이 패망의 벼랑 끝자락에 몰렸고 끝까지 발악하다가 종전을 맞이하였다고합니다.
동부전선의 소련군은 말 그대로 스딸린이 바그라치온 작전 전개 이전까지 줄기 차게 제 2전선을 목 놓아 요구하였지만, 스딸린의 바람과는 달리 뒤늦게 정치적인 목적으로 연합국이 제2의 전선(1940년의 상황과 달리 구분되는 제2의 서부 전선이라고 해야함)을 열었으나 스딸린은 이젠 영미 연합군의 도움 따위가 필요없다고 말했을 만큼 소련군 혼자서 독일군을 단독 전적으로 물리쳐가면서 싸워왔고, 연합국의 두 거물들 루즈벨트와 처칠은 강력해진 소련군을 두려워하였다고 할만큼 전쟁 괴수가 된 소련군을 무시할 수준이 아니였습니다.
영국도 못 간 시점에서 멈쳐야 했다
히틀러의
최대 실수는
전쟁중에 유대인 확살이다
전쟁에 치중해야할 시기에
엉뚱한데로 에너지를 낭비한것이다
그자원을 이용하고 인종청소는 승리를 한 다음에
해도 되는데...
너무 자만한 댓가는 결국
패망을 가져왔다
추축국이 전쟁에
패한것이
우리로서는 다행이 아닐수없다
외국이나 자국이나
앞으로도 괴물들이
나오지 않길 바랄뿐이다
이때 히틀러가 해야 했던 것은(항복 은 빼고) 저 병력을 동부전선에 투입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소련의 점령지를 최대한 줄여야 했는데 뭐 지나간 남의 일 !
말해 본 들 뭐하나!
그리고 어차피 베를린은 스탈린 것 이었으니
청색작전이랑 치타델 작전성공 못해서 그 때 끝난거임
히틀러의 가장 큰 실수는 소련을 공격한일
미군은 물량으로 밀어서 이긴거지 전략이고 뭐고 별거없었던듯... 사료가 나올수록 점점 더 그렇게 감. 노르망디도 사망자수로보면 실패한게 맞지. 그 이상의 인원을 중공군처럼 밀어넣었으니 상륙이 성공한거지.
대군이 곧 전략입니다
나폴레옹이 한말예요
대군 상대론 전략이고 뭐고 쓸모없다는 뜻이죠
미국의 힘은 엄청난 보급력인데
뭐 상상초월할정도로 나찌와 일제를 상대하는 동맹국 밥까지 보급했으니
참고로 19세기말에 미국의 국력이 유럽전체보다 컷어요
독일군의 최대 실수는 양면전을 펼 능력이 없는데 양면전을 편 것이었음
히틀러는 사병출신인데 너무 자기주장만 함
소련 침공한게 제일 크지..전쟁을 장군들이했으면 조금 달라졌을것을
독일이 러시아 안건드리고 서부전선에만 집중했다면 연합군도 엄청나게 피해를 입었을거라 생각합니다
아마 서 유럽땅에 발도 못 붙였을겁니다.
그러나... 어차피 히틀러는 동쪽으로 아리아인의
터전을 넓히고 공산주의를 쓸어버리는게 그에게
주어진 임무라고 말하죠...물론 유대인도같이...
그러므로 러시아와의전쟁은 피할수없는 한판
이었습니다.
히틀러가 전쟁에 투자안하고 게르마니아 건설에 투자 몰빵했으면 히틀러 국가영웅되고 독일이 유럽1등 경제대국이 되는것뿐만아니라 어쩌면 미국이나 중국 다음으로 2,3위 경제대국이 되지않았을까 생각함
미국 다음 아닐까요
벌지전투- 아르덴 대공세는 해볼만한 도박이었죠. 딱히 큰 실수같진 않음. 연합군이 독일군 전력에 대해 방심하고 있고, 계속된 진군으로 전선이 늘어져 있었고, 날씨관계 압도적인 전력차였던 제공권 확보가 어려웠으며,,, 등등등 딱히 실수같진 않음 성공했으면 전선교착시키고, 소련과 전쟁에 집중하기가 좀더 나았겠죠.. 그래봐야 대세적으로 어려웠을것,
/ 최고실수는 대소련전쟁 자체죠. 그땐 소련의 역량을 무시했던것이고(역사적으로도, 19세기 일본외교관의 쌍끄뜨 뻬쩨르부'르크(상트 페테르부르크) 방문당시 보면 도시내의 돈되는곳은 프로이센 독일인 차지고, 이들이 러시아인들을 인종적으로 무시한다는 기술이 인상적) 특히 초반공세당시 신속히 모스크바 점령하지 못한게... 서서히 소련의 전력에 압도당한게... 궁극적 패전원인으로 봅니다. 결과를 알고보면 도박이었다는.. 당시는 프랑스 전격전 성공후 별문제없다란 시각이 다수
특히 대전내 그냥 아무것도 안했던 북부집단군은 그병력 애초 중부집단군에 좀 몰아줬다면 훨씬 해볼만했을것....
다만 여기에 대해 히틀러가 독일군부(애초 프로이센의 중심인 군귀족출신이 다수로, 히틀러는 남부지역 사병출신= 훗날 늑대굴 암살미수등 히틀러와 군부는 반목관계)에 의한 위화도 회군같은 쿠데타를 두려워해 안몰아줬다.. 던 시각이 인상적
글쎄요 어차피 독일은 소련과 싸울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오히려 어차피 싸운다면 준비가 덜된 상태의 기습이 더 유력합니다.
문제는 그게 아니죠.
전략목표가 불명확했다는 것입니다.
진행에 따라 수차레 목표가 변경됐고 이로 인해 조기종전이 불가능해졌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초반대승후에 동유럽에서 소련 빠지라고 했다면 스탈린이 거부했을 까요?
벌지전투는 히틀러의 큰실수였죠
이전투에서 전차,항공기 각1000여대,
10만의 베테랑 군인들이 녹아없어저
버렸습니다.
한마디로 독일을 막아줄 예비전차사단과
항공단,보병사단이 끝장났습니다.
독일본토로의 진격이 앞당겨진거죠.
1941년 6월 22일 소련 침공이 히틀러의 결정적 실수 였습니다. 특히 모스크바 공방전 실패는 독일군의 공격력을 완전히 상실한 결정적인 패배 였습니다.
발지 전투는 모든 훌륭한 장군을 잃은 후,패색이 짙은 최후의 발악 이였습니다.
난 이해가 안 가는 것이 1941년 6월 22일 날에 기름도 부족한 상태에서 왜 무리하게 소련을 침략을 해냐 하는 것이다 그러지 안 해도 항공기 유료 부족으로 영국에 런던 공격을 애먹고 있는 상태에서 말이야
@@닉네임님
독소전쟁의 개전으로 열릴 동부전선에서 독일이 선수(先手)를 둔 확실한 이유가 있습니다.
독잁이 소련을 먼저 치지 않았으면, 전쟁 개전과 공격의 선수(先手)소련이 가져 가게 됩니다.
그해 1941년 7월에는 소련도 개전 할 계획 이었다고합니다.
나치 독일이 조금이라도 주츰 하고 늦장을 부려 후수(後手)두었다면, 소련이 주도권을 잡고 선수로 전쟁을 시작 했을겁니다.
나치정권독일입장에서 처음부터 승산 없는 독소전쟁이라고 합니다.만
소련이 먼저 주도적으로 개전 하였다면, 독일은 방어적인 전쟁을 수행하기에도 버거웠을 만큼 질 좋은 장비로 구성된 소련군1,500만 정예 병력과 대적할 만큼 전력 차이도10대1의 압도적으로 낮았고, 설령 간신히 승세를 잡아간다해도 성공과 승리할 가능성이 단6%(독일의 대소련 침공시 승전 성공 확률)에 지나지 않았을 만큼 굉장히 희박했으니 독일로써는 선수를 둘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1934년 제군비 선언부터 독소 불가침 기간 동안 소련에서 입수한 독일공군의 소련영토내 정보 수집 정찰 활동으로 소련영토를 마치 내집 안방처럼 드나들던 독일공군의 정밀한 정찰능력기반으로 곧 개전 할 동부전선의 지도를 만들고 철저한 계획으로 독일군의 침공이 가능했다고 해야합니다.
독프전이 한창일 1940년까지 소련은 독일을 도와서 프랑스전에 군수전략물자를 지원하였는데, 이는 1941년 6월22일 침공개시당일 세벽 독일의 대소련 침공 시작 시간 전까지 소련의 마지막 연료보급수송화물열차가 폴란드 영내독소 분활 점령지 국경을 넘어 곧 침공 준비가 마무리 되어가는 독일군을 지원함
독일공군은 자신이 잉태된 천적의 뱃속에서 부활한 후 자신의 천적이 될 소련영토 곳곳을 종횡무진하듯이 샅샅이 정탐하여, 군사정보를 수집하였는데
독일이 1차 대전 패전국으로써 여러가지 불합리한 연합국의 조항들에 묶여서 군사력 보유에 제한받으니 군사력을 기르기 위해서 비밀리에 국제연맹의 감시를 피할 지역이 필요했고, 패전국 독일에게 적격 이었던 곳이 바로 소련이었으니 소련 역시 자신의 영토를 제공하는 댓가로 서방의 지원을 받을 곳이 필요했는데, 적합한 곳이 바이마흐 공화정 시절의 독일이었다고 합니다. 히틀러 집권 전부터 일찌감치 독일과 밀월의 공생관계를 맺으며 살아간 신생 공산주의 소련의 전쟁 전 우호적인 국제정세 속 독소관계 덕에 가능했다고 봐야합니다.
독일군의 군사력이 소련이라는 천혜의 특수 적인 잊점을 가진 천적의 배속에 배양 되고 부활하였는데, 전쟁 전에 독일 공군이 어떻게 이런 정밀하고 세세한 소련군의 군사정보들을 수집할 수 가 있었는가?를 알면,
소련 즉 특히 히틀러를 믿고 싶어했던 스딸린은 소련 영토내로 수시로 날아들어 소련 영토내 소련 영공 곳곳에서 하루 수십 차례 출격해 군사정보를 수집하기위해 머리 위 하늘에 떠있는 독일공군의 정찰기를 두눈 똑바로 뜬 지상부대가 발견하더라도 그들의 손으로 잡지 못하게 독일 공군의 정찰기에 대한 격추 불가 명령도 한몫 했다고 합니다.
이러니 개전 초반 소련군은 두 눈뜨고도 두 손마저 놓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그러나 스딸린도 바보가 아니기에 언젠가는 히틀러가 우리를 침공해 오겠지라고 하면서 잘 알았다고합니다. 스딸린의 믿음은 늦어도 1942년까지였고 1942년이면 히틀러가 집권하는 나치 독일과 자신이 통치 하던 소련이 국가의 국운을 건 전면전이 필수 불가결 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요.
2차 대전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독소전쟁전의 유럽상황이 C&C 레드얼럿1편 과도 같은 시나리오입니다.
이 시기는 희대의 인간체스게임을 벌일 두 독재자 즉 히틀러와 스딸린이 가운대에 독일이 포함된 중 유럽과 주 전장(主戰場) 주 전선(主戰選)이 될 동유럽 그리고 소련 영토가 그려진 장기판(schachbrett)을 놓고 각자 다 차려진 기물포진(전투부대배치)후 누가 먼저 둘까? 하는 상황의 그림이 연상 되는 형국입니다.
@@pedrogim6952 님에 지식에 감사합니다
모스크바 공방전은 단순히 성급하게해서 패배했을뿐 우세는 대독일국이였고 승리도 대독일국거였는데? ㅋㅋ 진 이유는 루ㅈ벨트 때문이지 ㅋㅋ
독일 10만 연합군 8만으로 가장큰 사상자라고 나오는걸 보면 동부전선의 백만단위 사상자가 얼마나 대단한건지 다시 알게되네
지휘를 장군들에게 위임했어도 속전속결로 소련을 이겼을 것입니다. 진격을 자꾸 멈추고. 모스크바가 아닌 스탈린그라드에 집착한것이 패인이죠. 장군들에게만 다 맡겼어도 이겼을 전쟁임
히틀러만 아니였어도 독일이 러시아 먹고 유럽도 절반은 먹었을듯.. 히틀러 삽질로 패전했음
현재 미국도 베트남,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서 빌빌 거렸는데 되겠냐 ㅋㅋ 남의 나라에서 전쟁하는게 쉬운게 절대 아니여
TMI: 1. 베트남전쟁은 미군이 고전하긴 했지만 화력에 밀려서 진게 아니라 국내 여론때문에 철수한것이다.
2. 이라크전쟁은 미군이 이라크를 영혼까지 턴 전쟁이다. 빌빌대긴 개뿔 ㅋㅋ
3.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트럼프 이후 계속해서 탈레반과 협상중에 있으며 곧 끝낼예정.
히틀러에 결정적 실수는 소련 침공과 적국인 영국에 너무 신사적으로 대처했다는점이죠.................... 그 나비효과로 자랑스런 대한민국 탄생....
그낭 히틀러가 단찌니 점령하면서 영국이 묵인할 것 이라는 오판이 진정한 실수지 뭔....전쟁임..... 사실상 히틀러는 전쟁을 하고 싶어하지않았다. 패권구가에 도전하는 현상타파 정도였을 뿐이지. 나대다가 전쟁난거고 크흠......
글쎄요... 전면전은 아니더라도 히틀러가
아무생각없이 단찌히 점령하고 폴라드공격
했을까요? 히틀러도 슈데텐란드까지는 연합국
을 떠본거라고 합시다.
하지만 그이후의 행동들은 선을넘은 겁니다.
히틀러도 장군들앞에서 프랑스를 잡을 작전
을짜라고 했고 반대하는장군들이 꽤많았습니다
그런데도 전쟁을 싫어했다구요?
프랑스를 점령해서 1차대전의 복수를 하는게
히틀러의 일생일대의 꿈이었고 더나아가 도버해협
을넘어 영국을 무릎 꿇리는게 목표었죠.
그게다 러시아를 공격하기위한 발판이었지만 말입니다.
히틀러가 전쟁을 피하려했다? 싫어했다?
글쎄요...준비가 덜된상태에서 전쟁이
앞당겨진게 아닐까요?
모든 전쟁은 이기면 히트고 지면 실수지 먼
이 전투에서 독일이 이겼어봐 히트아니냐? ㅋㅋㅋ
그리고 지금 물밑에서 핵개발중인데 웬 땅개짓이냐
미국이 2차대전 이긴건 핵을 먼저 가졌기 때문이지
독일이 먼저 핵 가졌어봐
어떻게 됐을것 같냐
@콩토리 뉴욕 초토화까진 못가고
시나리오 쓰자면 먼저 독일이 핵 만들었으면 일단 연합군(프랑스쪽) 몇발쏘고
소련쪽 몇발쏘고
어느정도 전장 펼치고 안정화되면 영국에 핵 몇발쏘고
그다음 소련본토 초토화 작전할때쯤 미국도 핵개발 되서
독일이랑 독미협약하것지
그럼 유럽은 독일이 통일했을거임 소련은 국토 반토막났고 미국은 전쟁피해금 물면서 버로우타야되고,
국제통화는 마르크되며, 국제유가도 독일을 통해서 거래해야됨
그럼 현재 독일이 제2에 로마가 됨
아마 히틀러가 유대인학살만 안했어도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임
마켓가든으로 연합군이 손실입으니 히틀러가 그에대한 대답으로 벌지전투했지요 뭐
이건 또 무슨 개소리인지........
아이젠하워가 아르덴 대공세의 연락을 받고 한 초기 조치가 바로 브래들리의 지휘권을 빼앗은 건데!!!!!!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지 않고 유럽만 공격했으면 지금은 아마도 전유럽을 독일이 통치하겠지.
1. 일본의.실수~~ 미국침공
2. 독일의.실수~~ 러시아 침공,
끝,ㅋㅋㅋ
영국냅두고 소련칠때 폭망의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