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는 당시 로마제국의 주요도시 가운데 하나였고 해상과 대륙이 교착되는 무역과 경제의 중심지였습니다. 이도시는 풍요의 여신 아데미신전이 있어 아데미를 숭배하는 우상숭배의 도시였습니다. 풍요로움 가운데에는 하나님을 부르지도 찾지도 않습니다. 그나마 바울이 이곳에서 3년간 눈물로 기도하며 치열하게 영적전쟁가운데 말씀을 전파했기에 주변교회의 모교회로써 에베소교회가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바울이 에베소에 있을때 많은 병을 치유하며 마귀를 쫒아내는 등 많은 이적을 행한것을 보게 됩니다. 바울은 3년간 매일 두란노서원에서 말씀을 가르치고 자신의 영적아들 디모데를 자신이 로마에 가는 중에도 상주시키는 등 모든 심혈을 기울여 에베소교회의 영적 퀄리티의 존속을 위해 감옥에 갖혀서까지 근심하며 기도하고 서신으로 에베소교회를 위한 가르침과 훈계를 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전체의 관통하는 주제는 유대인출신교인과 이방인교인이 그리스도안에서 하나이며 거룩한 삶과 외적인 말씀전판를 동시에 견지하기를 원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으나 그보다 더 근본적인 메세지는 하나님의 마음을 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는 사랑과 순종이 계속 반복되어 강조됩니다. 가르침대로 예배는 참석하고 신앙의 모양새는 있어보입니다. 게다가 이단도 경계하며 말씀에서 이탈하지 않는 모습도 있습니다만 요한계시록에 보면 부활하신 예슈아께서 크게 책망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너의 첫사랑을 버렸느니라" 주님을 처음만나던 그 감격하며 뜨겁던 사랑이 식어버리고 신앙의 형식과 껍데기만 남은 것이지요. 사랑하면 순종하게도 됩니다. 부활의 주 예슈아를 사랑하지 않으니 어느샌가보니 예배도 의무감으로 참석하고 말씀읽는 것도 따분하고 진부하게 느껴지는 신앙안에서의 죄를 짓게 됩니다. 가슴은 뜨거워야 하고 머리는 차가워야 합니다. 가슴에서는 뜨거운 방언이 입으로 나와야 하고 머리에서는 분별의 영, 날선 검이 나오는 말씀이 머리에서 입술로 나와야 합니다. 사도바울이 3년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눈물과 말씀으로 양육하고 기도했건만 주님에 대한 첫사랑을 버린 에베소교회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내이름으로 기도하는 두세명이상 있는 곳에는 나도 그들 가운데 있다고 하신 말씀을 상기해 본다면 기도하는 두세명이 없었다는 겁니다. 소돔과 고모라도 그성을 위해 기도하는 의인 10명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심판을 단행하십니다. 그들이 우리보다 죄가 많아서 심판을 받은 것이 아니라는 얘기죠. 사랑없는 예배, 사랑없는 헌신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위선행위에 불과한 것입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도 물으셨지요?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감사해요♡
너무좋다 ❤
기다렸습니다❤
우왕.. 새로운 영상 넘 행복❤
왕킹 복음. 감사합니다
왕킹!!!
왕.. 기다렸어요...🫶🏻
❤
에베소는 당시 로마제국의 주요도시 가운데 하나였고 해상과 대륙이 교착되는 무역과 경제의 중심지였습니다. 이도시는 풍요의 여신 아데미신전이 있어 아데미를 숭배하는 우상숭배의 도시였습니다.
풍요로움 가운데에는 하나님을 부르지도 찾지도 않습니다. 그나마 바울이 이곳에서 3년간 눈물로 기도하며 치열하게 영적전쟁가운데 말씀을 전파했기에 주변교회의 모교회로써 에베소교회가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바울이 에베소에 있을때 많은 병을 치유하며 마귀를 쫒아내는 등 많은 이적을 행한것을 보게 됩니다.
바울은 3년간 매일 두란노서원에서 말씀을 가르치고 자신의 영적아들 디모데를 자신이 로마에 가는 중에도 상주시키는 등 모든 심혈을 기울여 에베소교회의 영적 퀄리티의 존속을 위해 감옥에 갖혀서까지 근심하며 기도하고 서신으로 에베소교회를 위한 가르침과 훈계를 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전체의 관통하는 주제는 유대인출신교인과 이방인교인이 그리스도안에서 하나이며 거룩한 삶과 외적인 말씀전판를 동시에 견지하기를 원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으나 그보다 더 근본적인 메세지는 하나님의 마음을 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는 사랑과 순종이 계속 반복되어 강조됩니다. 가르침대로 예배는 참석하고 신앙의 모양새는 있어보입니다. 게다가 이단도 경계하며 말씀에서 이탈하지 않는 모습도 있습니다만
요한계시록에 보면 부활하신 예슈아께서 크게 책망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너의 첫사랑을 버렸느니라"
주님을 처음만나던 그 감격하며 뜨겁던 사랑이 식어버리고 신앙의 형식과 껍데기만 남은 것이지요.
사랑하면 순종하게도 됩니다. 부활의 주 예슈아를 사랑하지 않으니 어느샌가보니 예배도 의무감으로 참석하고 말씀읽는 것도 따분하고 진부하게 느껴지는 신앙안에서의 죄를 짓게 됩니다.
가슴은 뜨거워야 하고 머리는 차가워야 합니다. 가슴에서는 뜨거운 방언이 입으로 나와야 하고 머리에서는 분별의 영, 날선 검이 나오는 말씀이 머리에서 입술로 나와야 합니다.
사도바울이 3년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눈물과 말씀으로 양육하고 기도했건만 주님에 대한 첫사랑을 버린 에베소교회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내이름으로 기도하는 두세명이상 있는 곳에는 나도 그들 가운데 있다고 하신 말씀을 상기해 본다면
기도하는 두세명이 없었다는 겁니다.
소돔과 고모라도 그성을 위해 기도하는 의인 10명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심판을 단행하십니다.
그들이 우리보다 죄가 많아서 심판을 받은 것이 아니라는 얘기죠.
사랑없는 예배, 사랑없는 헌신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위선행위에 불과한 것입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도 물으셨지요?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