옳지 않은 청지기가 아니라 깊이 생각해보면 옳은 청지기라고 할수 있다고 생각해요.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와 사랑으로 탕감해주신 것처럼 청지기 또한 빚을 탕감해줬다는 그 비유는 바로 죄에 대한 용서를 뜻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빚을 탕감받은 자들이 주인 그러니까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돌리게 되는 것이니까요. 목사님의 귀한 말씀에 성령의 영감이 떠올라 한번 제 생각을 말씀드려봤어요.
사실 비현실적인 내용입니다. 물질에 관련된 내용이 아닙니다. 주인의 돈으로 자기 유익을 위해 쓰고 문서를 위조하면 현실적으로는 고소당하고 간옥에 갈 수 있습니다. 자기의 미래를 지혜롭게 준비한 것이 어니라 스스로를 장래를 위험에 빠뜨린 것입니다. 빚을 탕감해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기 전에 감옥부터 갈겁니다. 좀 더 다른 해석이 필요합니다
설교를 하시지만 포인트는그게 아닌것같습니다 전혀 논리적으로 납득이 되는 설교는 아닌것같아여 세상종말이던, 개인적인 종말이올때 그렇게 해서 본인의 숙제를 피해간다? 그 고스란한 피해는 주인몫입니다 그렇다면 금화 열냥으로 열냥 남긴 종은 칭찬과 주인의 축제에 참여하게되고 한냥 그대로 묻어놓앗던 종은 묶여 밖에 내던져져 이를 간다는데 똑같이 보면 이 청지기는 사형당할수도잇는 문제라고 봅니다
청지기의 행위는 불의가 맞습니다. 그는 주인의 재물을 횡령하다가 해고통보받는 것이고, 그 후 그는 자신의 생존만을 생각해서 더욱 주인의 재산을 배임합니다. 그런데 왜 빛의 아들들보다 지혜롭다고 했겠습니까? 이 비유의 핵심은 청지기의 불의를 들어내고자 하는 주인의 숨겨진 의도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청지기는 다름 아닌 에덴동산 최초의 청지기가 불의한 짓을 하고 해고당한 이후 오로지 자신의 생존만이 인생 최대의 목적이 되어버린 우리 인간들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주인이신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자기백성들의 "불의함"을 들추어내어 십자가 앞에 세웁니다. 이들이 바로 성도이구요,,, 성도들은 다름아닌 자신이 불의한 청기지이며, 심판 받아 마땅한 자임을 알게 되고, 그래서 친구되신 예수의 은혜에 연합(사귐)되어야 하는 당위성을 점점 더 절실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주인)의 목적은 자기백성들의 "불의(죄)"를 폭로하게 함으로 그 불의에서 건져 줄 진짜 친구(예수)와 연합시켜 영원한 처소로 이끌고 가는 것에 있습니다. 청지기의 지혜는 다름 아닌 자기 생존을 위해 불의한 짓을 하는 자임을 알는 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불의한 자임을 알아야만 그 불의에서 유일하게 건져줄 친구를 요청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소위 빛의 아들들이라고 하는 자들은 자기들 스스로 선한 청지기라고 착각하고 있으니 그들에겐 친구인 예수가 필요 없겠지요. 그래서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하지않았습니까? 본문속 청지기는 자산의 생존을 위해 재물을 섬기고 있는데 바로 그 모습이 우리들 모습 아닙니까?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는 정도를 넘어 오로지 나의 생존을 위해 재물만을 섬기고 있고, 심지어 나의 생존을 위해 하나님까지 이용해 먹으려는 자들 아니었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바로 재물을 섬기는 불의한 자들임을 인정할 수 밖에 없고, 이런 불의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음을 알고, 두 손들고 예수께로 갈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자신이 불의한 청지기 임을 하는 것이야 말로 지혜로운 자입니다.
@@morming94그건 완전히 틀린해석같구여 요한복음에 보면 이 부분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구절이 나옵니다 또한 훨씬 심하게 반대되는 구절도 잇습니다 즉 제가 볼때는 원어의 단어와 당시시대상을 보면서 성서학자들이 하는설교가 맞을것같습니다 예를 들어 요한계시록의 7교회는 숫자그대로 을 얘기하는게 아닙니다 마찬가지겟지요
@@거참-u9o 요한복음 어디에 반대되는 구절이 나오며 또한 훨씬 심하게 반대되는 구절이 어디 있는지 근거를 좀 가져다 주세요,,,, 그리고 원어의 단어와 당시 성서학자들이 어떻게 설교를 했는지도 제시해 주실 수있겠습니까? 제가 틀렸다면 공부를 해 봐야지요,,, 참고로 성경은 유기적 관계로 서로 연결되었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물론 한 문장의 구절이나 단어 속에 깊은 메시지가 담겨 있기도 하지만 거시적 관점에서 봐야만 해석이 되는 말씀들도 상당히 많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거시적 관점에서 성경을 해석할때는 분명한 기준점이 있어야 하지요,, 그 기준점은 "언약에 따라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역" 즉 십자가의 은혜라는 분명한 기준점으로 가지고 해석해야 복음만이 들어나는 것입니다. 이 은혜 속에 인간의 행위는 결코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만약 이 기준점을 잡지 않고 성경을 해석하면 위의 예처럼 칭찬받은 인간의 행위의 당위성만 찾아 억지 끼워맞추기를 하는 꼴이 반복될 뿐이지요.....그렇게되면 창세기를 출발하면서 인간들이 어떻게 죄와 허물로 죽었으며, 그 죽은 자들을 예수께서 어떻게 살려내시는지에 대한 성경의 역사는 다 부정해버리는 꼴이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관점으로본문의 비유를 해석해 보라는 것입니다. 본문의 내용은 인간의 실체가 어떻게 시작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창세기의 내용이 담겨져 있습니다. 왜냐하면 친구를 사귀는 구속의 역사를 들여내는 복음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봐도 불의한 청지기(나)를 의롭다하신 하나님의 그 놀라운 은혜,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주신 물질을
지혜롭게 사용하게 하소서💒💒
누가복음 말씀읽다가 딱 이해가 안되었던 말씀인데 쉽게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멘
언제나 이 말씀은 어렵네요
인간의 이해력으로 하나님의 논리를 받아들이기는 어렵지만 - 나의 관점과 해석이 아닌 하나님의 진리를 온전히 내 것으로 수용하겠습니다
옳지 않은 청지기가 아니라 깊이 생각해보면 옳은 청지기라고 할수 있다고 생각해요.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와 사랑으로 탕감해주신 것처럼 청지기 또한 빚을 탕감해줬다는 그 비유는 바로 죄에 대한 용서를 뜻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빚을 탕감받은 자들이 주인 그러니까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돌리게 되는 것이니까요.
목사님의 귀한 말씀에 성령의 영감이 떠올라 한번 제 생각을 말씀드려봤어요.
그건 아닌것같은데여
애초에 그 사기 문서위조한 그 모든재산은 주인것이엿습니다
그런데 후에 주인이 정산을 하자고 스케쥴을 잡앗을때
그 스케쥴 전에 빚쟁이들한테 가서 사기문서위조를 한것이지여
그걸 우리의 죄와 연관시킨다?
논리적으로 전혀 맞지않는것같아여
혹시 불의로 만든 재물이라도 남을 돕기위해 사용하면 하나님눈에 지혜롭게 보인다는 뜻인가요?
제 생각에는
목사님이시니까 히브리어나 희랍어로 된 단어를 알려주시면서
그걸 번역하시면서 원서 그대로
잇는대로 설교해주시는게
더 납득이되고, 그것대로 또 묵상해볼 문제일것같네여
장래를 준비한 종말론적내용도 좋은데 저는 구원의 관점이 더 좋을듯 합니다.
사실 비현실적인 내용입니다. 물질에 관련된 내용이 아닙니다. 주인의 돈으로 자기 유익을 위해 쓰고 문서를 위조하면 현실적으로는 고소당하고 간옥에 갈 수 있습니다. 자기의 미래를 지혜롭게 준비한 것이 어니라 스스로를 장래를 위험에 빠뜨린 것입니다. 빚을 탕감해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기 전에 감옥부터 갈겁니다. 좀 더 다른 해석이 필요합니다
설교를 하시지만 포인트는그게 아닌것같습니다
전혀 논리적으로 납득이 되는 설교는 아닌것같아여
세상종말이던, 개인적인 종말이올때 그렇게 해서 본인의 숙제를 피해간다?
그 고스란한 피해는 주인몫입니다
그렇다면
금화 열냥으로 열냥 남긴 종은 칭찬과 주인의 축제에 참여하게되고
한냥 그대로 묻어놓앗던 종은
묶여 밖에 내던져져 이를 간다는데
똑같이 보면 이 청지기는 사형당할수도잇는 문제라고 봅니다
청지기의 행위는 불의가 맞습니다. 그는 주인의 재물을 횡령하다가 해고통보받는 것이고, 그 후 그는 자신의 생존만을 생각해서 더욱 주인의 재산을 배임합니다. 그런데 왜 빛의 아들들보다 지혜롭다고 했겠습니까? 이 비유의 핵심은 청지기의 불의를 들어내고자 하는 주인의 숨겨진 의도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청지기는 다름 아닌 에덴동산 최초의 청지기가 불의한 짓을 하고 해고당한 이후 오로지 자신의 생존만이 인생 최대의 목적이 되어버린 우리 인간들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주인이신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자기백성들의 "불의함"을 들추어내어 십자가 앞에 세웁니다. 이들이 바로 성도이구요,,, 성도들은 다름아닌 자신이 불의한 청기지이며, 심판 받아 마땅한 자임을 알게 되고, 그래서 친구되신 예수의 은혜에 연합(사귐)되어야 하는 당위성을 점점 더 절실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주인)의 목적은 자기백성들의 "불의(죄)"를 폭로하게 함으로 그 불의에서 건져 줄 진짜 친구(예수)와 연합시켜 영원한 처소로 이끌고 가는 것에 있습니다. 청지기의 지혜는 다름 아닌 자기 생존을 위해 불의한 짓을 하는 자임을 알는 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불의한 자임을 알아야만 그 불의에서 유일하게 건져줄 친구를 요청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소위 빛의 아들들이라고 하는 자들은 자기들 스스로 선한 청지기라고 착각하고 있으니 그들에겐 친구인 예수가 필요 없겠지요. 그래서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하지않았습니까? 본문속 청지기는 자산의 생존을 위해 재물을 섬기고 있는데 바로 그 모습이 우리들 모습 아닙니까?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는 정도를 넘어 오로지 나의 생존을 위해 재물만을 섬기고 있고, 심지어 나의 생존을 위해 하나님까지 이용해 먹으려는 자들 아니었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바로 재물을 섬기는 불의한 자들임을 인정할 수 밖에 없고, 이런 불의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음을 알고, 두 손들고 예수께로 갈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자신이 불의한 청지기 임을 하는 것이야 말로 지혜로운 자입니다.
@@morming94그건 완전히 틀린해석같구여
요한복음에 보면 이 부분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구절이 나옵니다
또한 훨씬 심하게 반대되는 구절도 잇습니다
즉 제가 볼때는 원어의 단어와 당시시대상을 보면서 성서학자들이 하는설교가 맞을것같습니다
예를 들어 요한계시록의 7교회는
숫자그대로 을 얘기하는게 아닙니다
마찬가지겟지요
@@거참-u9o 요한복음 어디에 반대되는 구절이 나오며 또한 훨씬 심하게 반대되는 구절이 어디 있는지 근거를 좀 가져다 주세요,,,, 그리고 원어의 단어와 당시 성서학자들이 어떻게 설교를 했는지도 제시해 주실 수있겠습니까? 제가 틀렸다면 공부를 해 봐야지요,,,
참고로 성경은 유기적 관계로 서로 연결되었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물론 한 문장의 구절이나 단어 속에 깊은 메시지가 담겨 있기도 하지만 거시적 관점에서 봐야만 해석이 되는 말씀들도 상당히 많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거시적 관점에서 성경을 해석할때는 분명한 기준점이 있어야 하지요,, 그 기준점은 "언약에 따라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역" 즉 십자가의 은혜라는 분명한 기준점으로 가지고 해석해야 복음만이 들어나는 것입니다. 이 은혜 속에 인간의 행위는 결코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만약 이 기준점을 잡지 않고 성경을 해석하면 위의 예처럼 칭찬받은 인간의 행위의 당위성만 찾아 억지 끼워맞추기를 하는 꼴이 반복될 뿐이지요.....그렇게되면 창세기를 출발하면서 인간들이 어떻게 죄와 허물로 죽었으며, 그 죽은 자들을 예수께서 어떻게 살려내시는지에 대한 성경의 역사는 다 부정해버리는 꼴이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관점으로본문의 비유를 해석해 보라는 것입니다. 본문의 내용은 인간의 실체가 어떻게 시작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창세기의 내용이 담겨져 있습니다. 왜냐하면 친구를 사귀는 구속의 역사를 들여내는 복음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에이구 목사들아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교회에서 생활비를 받냐!
안 창피한가!
요점은 예수님이 우리의 신랑이시고 우리는 예수님의 신부라는것이 요점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