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무사시 책을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있군요. 검술은 대단하지는 않았나 봅니다. 또 코지류를 이긴것 때문에 사람들이 싫어한다는 느낌도 듭니다. 하지만 말년에 자신의 책을 완성하면서 후세 사람들에게 교훈을 남긴 이야기는 검객으로서의 인생을 살았다기 보다는 도를 닦아서 어느 정도 완성을 이룬 사람이 아니었나 생각되어집니다.
무사시는 요시카와 에이지의 소설때문에 유명해진 인물이고, 실존인물 무사시와 소설속 무사시는 홍길동만큼이나 차이가 나는 인물이죠. 한국은 홍길동이라는 소설이 그저 실존인물을 모델로 한 소설이라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있지만 일본은 소설속 내용을 마치 사실인양 퍼뜨렸고 대중은 그게 사실인줄 알고있다는게 다른점이죠. 실존인물 무사시는 그저 당대 아주 평범한 사무라이에 불과했고 지금까지 이름이 남아있던 이유는 그가 남긴 책들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게 끝입니다. 최강의 검객이니 고수들과의 수십번의 진검승부니 하는건 단순히 소설속 내용입니다.
물론 무사시와 간류 코지로가 대결했던건 사실로 보입니다. 실제로 둘이 대결을 했다는 간류섬이란게 존재하니까요. 다만 코지로는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당대 최강의 검객같은게 아니라 그저 이름없은 일개 사무라이에 불과했고, 간류섬이라는 이름이 붙은 유래는 대결장소에 혼자 나온 코지로를 무사시가 제자들과 함께 집단 린치해서 살해했고, 불쌍한 코지로를 기리기 위해 섬이름을 간류라고 지었다는 게 섬의 전승이죠. 만약 명예로운 대결이었다면 승자인 무사시의 이름을 붙였지 패배자인 코지로의 이름을 붙였을리가 없죠.
무사시가 적은 녹봉은 받은 이유는 자기 몸 보신을 위해서겠죠 진짜 강하다면요 이긴자가 강한게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하다. 사람이란 게 어차피 받은 값만큼은 일해야하는데 그 말은 즉 높은 봉급= 높은 리스크 무사시가 오륜서를 저렇게 썼다면 절대 지지 않는 싸움만 할텐데 뭣하러 자기가 위험에 빠지는 높은 봉급의 일을 하겠습니까? 그런 걸 생각해보면 간류지마에서 충분히 4:1 쌈했을 수도 있겠고..
과대평가로 따지자면 최영의씨도 빠질수가 없다고 봅니다. 내가 처음 최영의라는 이름석자를 접한게 60년대 중반 중학생때인데, 당시 길거리 좌판에서 작은 책자를 발견하고 구입해서 아주 재미있게 봤어요. 제목은 "세계 주먹여행" 최영의씨가 자신의 주먹인생을 아주 솔직하게 써논 책입니다. 역도산의 레스링 오픈게임에서 잔재주를 보여주던 시절부터 아주 솔직한 자서전 이었어요. 그뒤 몇년후 만화가 고우영씨가 엄청난 과장을 해서 그를 찬양하더군요. 지금 유튜브 최영의 팬들이 대단하거 같아요, 아주 신적인 존재라고 할까? 본인은 과장하지 않는 분인데,... 팬들이 신으로 만든 사나이가 아닐까 합니다.
과장이 되긴 했는데 신체능력을 무시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가라데의 경우도 고주류 외에 쇼토관도 익혔고 유도, 복싱, 심지어 바디빌딩까지 배워서 근력이나 격파능력은 분명 당대에도 유명했습니다. 애시당초 고주류에서 파생된 소규모 유파였던 극진회가 지금같은 국제적인 규모의 거대단체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최영의의 압도적인 신체능력 덕에 유명해진 것이니까요. 그리고 당시 가라데의 시합방식은 슨도메-상대 앞에서 공격을 멈추는 가벼운 스파링 같은 형태였는데 이걸 직접 타격 방식으로 바꾼 것은 큰 변화였죠. 재일교포들이 일본에서 차별을 많이 당해서 무술을 많이 배웠던 모양인데 가라데 발전에 생각보다 재일교포들의 영향이 큽니다. 일본에서 최초로 보호구를 도입한 직접타격 방식의 시합도 윤쾌병이 운영한 '한무관'에서 시작했다고 하죠. 아마도 당시 시합 방식에 대해 조선인 무도가들 사이에서 이런저런 새로운 방식을 고민하고 공유했던게 아닌가 합니다. 가지외라 잇키나 고우영, 방학기 같은 분들의 만화 땜에 과장이 되긴 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 분의 업적까지 폄하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어쨌든 다양한 무술을 경험해서 압도적인 신체능력을 가졌던 것은 사실이고 가라데의 훈련방식이나 기술, 시합방식에서 많은 변화를 가져 온 혁신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리고 한 개인이 만든 단체가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지고 거대 단체가 된 것은 분명 대단한 능력이죠.
무사시가 코지로를 이긴건 검술로 이겻다기 보다는 전략으로 이겻다고 봐야죠 일부러 늑장을 부려서 코지로를 흥분하게 만들고 위치선점을 바닷가로 잡고 바다를 등뒤로 두고 서구요 이때 대결 시간이 아침시간대 였었습니다. 코지로는 날밤세고 무사시는 푹 자고 나온 셈이죠 게다가 무사시가 바다를 등뒤로 섯으니 일출때 태양이 검에 반사되어서 순간 눈이 부셔서 않보이게 됩니다. 무사시는 이점을 노렸던것이죠 코지로가 눈이 부셔서 깜박 거리는 그타이밍에 점프 해서 노로 대가리를 따악 근데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이 대결에 관람자 들도 있는걸로 나오더군요 아 그 13세 때 는 미야모토 마을에 검술가가 찾아왔는데 그 검술가 가 세운 펫말을 뽑아서는 개패듯이 패죽여 버립니다. 이일로 인해 무사시는 마을에서 왕따를 당하게 되죠 그리고 당시 야규세키슈사이는 검으로 성을 하사 받은 검성이었고 무사 쥬베이 도 이 야규가문 사람이었답니다. 무사시도 요시오카 도장에 찾아가기 전에 야규세키슈사이를 찾아가게 되죠
듣고 있으면, 영상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몰입 됩니다. 설명하시는 것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다녀 오신듯 해요. 감사합니다. 청화수 님!
여러번씩 항상 잘 듣고있습니다~
격하게 아낌니다~~~
항상 고맙습니다.
응원합니다.
다시한번 봤지만, 인상 깊은 내용입니다. ㅋㅋㅋㅋ
그야말로 간류섬의 혈전 ㅋㅋㅋㅋ
좋은자료 감사합니다.
아 두번째네... ㅎㅎㅎ 댓글은 잘 안다는데 두번째라 답니다. 항상 잘 듣고 있습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추론하는 논리적인 방식이 정말 흥미진진합니다.
역도산이 철저한 비즈니스 맨이죠. 수단 수법 가리지 않고 이긴 사람이 승자라는 점에서 오히려 역도산이 무사시 방식이었다는데걸 공감합니다.
항상 감사하게 잘 보고 있습니다.
근대사도 한 번 시리즈로 해서 부탁드립니다~
오랜만에 다시 방문해서 영화 한편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청화수님!
언제나 늘 응원해주시고 격려해주셔서 정말 너무 감사드립니다. 늘 큰 힘 얻고 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잘 보고가요~
예전에 무사시 책을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있군요. 검술은 대단하지는 않았나 봅니다. 또 코지류를 이긴것 때문에 사람들이 싫어한다는 느낌도 듭니다. 하지만 말년에 자신의 책을 완성하면서 후세 사람들에게 교훈을 남긴 이야기는 검객으로서의 인생을 살았다기 보다는 도를 닦아서 어느 정도 완성을 이룬 사람이 아니었나 생각되어집니다.
제자들이 남긴 책속 허구? 과장된 내용들이 우리에게 익숙한 무사시라는 검성의 모습이라고 저도 들은적이 있네요... 역사적으로는 대단한 무사는 아니였지만 자기만의 병법서가 있다는건 대단하고 우리나라의 홍길동이나 중국의 삼국지처럼 재미를 위해 각색이나 다양한 내용들이 추가된거 같네요.
감사합니다.
예리한 논리적 분석,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자료를 통한 입체적 해석을 통해 하나의 인물, 하나의 대상에 대해 결코 치우침없는 시각을 제공하는 그 면모에 감탄합니다.
무사시는 요시카와 에이지의 소설때문에 유명해진 인물이고, 실존인물 무사시와 소설속 무사시는 홍길동만큼이나 차이가 나는 인물이죠. 한국은 홍길동이라는 소설이 그저 실존인물을 모델로 한 소설이라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있지만 일본은 소설속 내용을 마치 사실인양 퍼뜨렸고 대중은 그게 사실인줄 알고있다는게 다른점이죠.
실존인물 무사시는 그저 당대 아주 평범한 사무라이에 불과했고 지금까지 이름이 남아있던 이유는 그가 남긴 책들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게 끝입니다. 최강의 검객이니 고수들과의 수십번의 진검승부니 하는건 단순히 소설속 내용입니다.
물론 무사시와 간류 코지로가 대결했던건 사실로 보입니다. 실제로 둘이 대결을 했다는 간류섬이란게 존재하니까요.
다만 코지로는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당대 최강의 검객같은게 아니라 그저 이름없은 일개 사무라이에 불과했고, 간류섬이라는 이름이 붙은 유래는 대결장소에 혼자 나온 코지로를 무사시가 제자들과 함께 집단 린치해서 살해했고, 불쌍한 코지로를 기리기 위해 섬이름을 간류라고 지었다는 게 섬의 전승이죠. 만약 명예로운 대결이었다면 승자인 무사시의 이름을 붙였지 패배자인 코지로의 이름을 붙였을리가 없죠.
감사합니다
Good lecture~~
명석함, 심도깊은 전문지식 level, 유연한 사고체계, 군더더기 없는 설명... 균형잡힌 해석자 positoning~~
잘 듣고 갑니다~~~
서양사 하신다면 로마 카이사르 다루어 주세요....
진짜 재밌게 잘보고가요 ㅎㅎ 구독햇어요
역도산에 대한 일화는 몰랏었는데 ㅎㄷㄷ
기무라가 중간쯤 역도산 소중이를 차는장면이후 역도산이 변하죠 이 승부를 본 최영의께써 비겁하다고 결투신청했다고들음 소중이 차는건 영상에서 보고.. 기무라가 역도산에게 덤빌수 없었던 이유는 역도산이 야쿠자와 관련되어있다고..
잘보고 있어요
무사시가 적은 녹봉은 받은 이유는 자기 몸 보신을 위해서겠죠 진짜 강하다면요 이긴자가 강한게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하다. 사람이란 게 어차피 받은 값만큼은 일해야하는데 그 말은 즉 높은 봉급= 높은 리스크 무사시가 오륜서를 저렇게 썼다면 절대 지지 않는 싸움만 할텐데 뭣하러 자기가 위험에 빠지는 높은 봉급의 일을 하겠습니까? 그런 걸 생각해보면 간류지마에서 충분히 4:1 쌈했을 수도 있겠고..
페이트 본다고 이런것도 추천해주냐 ㄷㄷ 알고리즘 똑똑하누
무사시는 검술 실력보다 변칙을 잘한듯 합니다.
닌자처럼 기습을 한다던가 다구리를 친다던가......
과대평가로 따지자면 최영의씨도 빠질수가 없다고 봅니다.
내가 처음 최영의라는 이름석자를 접한게 60년대 중반 중학생때인데,
당시 길거리 좌판에서 작은 책자를 발견하고 구입해서 아주 재미있게 봤어요.
제목은 "세계 주먹여행" 최영의씨가 자신의 주먹인생을 아주 솔직하게 써논 책입니다.
역도산의 레스링 오픈게임에서 잔재주를 보여주던 시절부터 아주 솔직한 자서전 이었어요.
그뒤 몇년후 만화가 고우영씨가 엄청난 과장을 해서 그를 찬양하더군요.
지금 유튜브 최영의 팬들이 대단하거 같아요, 아주 신적인 존재라고 할까?
본인은 과장하지 않는 분인데,...
팬들이 신으로 만든 사나이가 아닐까 합니다.
과장이 되긴 했는데 신체능력을 무시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가라데의 경우도 고주류 외에 쇼토관도 익혔고 유도, 복싱, 심지어 바디빌딩까지 배워서 근력이나 격파능력은 분명 당대에도 유명했습니다. 애시당초 고주류에서 파생된 소규모 유파였던 극진회가 지금같은 국제적인 규모의 거대단체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최영의의 압도적인 신체능력 덕에 유명해진 것이니까요. 그리고 당시 가라데의 시합방식은 슨도메-상대 앞에서 공격을 멈추는 가벼운 스파링 같은 형태였는데 이걸 직접 타격 방식으로 바꾼 것은 큰 변화였죠. 재일교포들이 일본에서 차별을 많이 당해서 무술을 많이 배웠던 모양인데 가라데 발전에 생각보다 재일교포들의 영향이 큽니다. 일본에서 최초로 보호구를 도입한 직접타격 방식의 시합도 윤쾌병이 운영한 '한무관'에서 시작했다고 하죠. 아마도 당시 시합 방식에 대해 조선인 무도가들 사이에서 이런저런 새로운 방식을 고민하고 공유했던게 아닌가 합니다.
가지외라 잇키나 고우영, 방학기 같은 분들의 만화 땜에 과장이 되긴 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 분의 업적까지 폄하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어쨌든 다양한 무술을 경험해서 압도적인 신체능력을 가졌던 것은 사실이고 가라데의 훈련방식이나 기술, 시합방식에서 많은 변화를 가져 온 혁신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리고 한 개인이 만든 단체가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지고 거대 단체가 된 것은 분명 대단한 능력이죠.
👍👏🙌👍~~^^~~
그냥 대부분 삼국지연처럼 흔한 소설이고 영웅을 만들어 민족주의로 애국심을 불러일으키고 국민들을 쉽게 조정하려는 목적입니다
이보시게 이 몸의 강함은 강함이 아니라 유연함일세 껄껄껄
청화수형님 검사이야기 너무 재미있어요~
삼국지 최강 검사?문앙도 꼭 다뤄주세요!
난 만화 처럼 읽어서 별 생각이 안나네...
다구리친거였어.....???
척준경을 만났어야 했는데 600년 뒤네
아, 로켓단의 무사시와 코지로가 저기서 왔구나!!
남의말에 진지하묜지는거라 요기에서경험을가지네요
무사시를 다 무서워했다는 얘기지
키130대 호빗들 그들만에 리그 ㅋㅋㅋ
ㄹㅇ 130 임?
어떤분은 110까지도 말하던데 말도 안된다고 댓글 달아도 겁나 무시하면서 ㅋㅋ
그 호빗들에게 두번이나 당한 우리는?
그래놓고 붙으면 두부마냥 썰릴듯
키 130대는 근거 없구 그 당시 일본인들의 키는 평균 150, 160대였습니다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평균 6cm정도 작았으나 막상 만났을때 그다지 차이도 안 났구요...
무사시가 코지로를 이긴건 검술로 이겻다기 보다는 전략으로 이겻다고 봐야죠
일부러 늑장을 부려서 코지로를 흥분하게 만들고 위치선점을
바닷가로 잡고 바다를 등뒤로 두고 서구요
이때 대결 시간이 아침시간대 였었습니다. 코지로는 날밤세고 무사시는 푹 자고 나온 셈이죠
게다가 무사시가 바다를 등뒤로
섯으니 일출때 태양이 검에 반사되어서 순간 눈이 부셔서 않보이게 됩니다.
무사시는 이점을 노렸던것이죠
코지로가 눈이 부셔서 깜박 거리는 그타이밍에 점프 해서 노로 대가리를 따악
근데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이 대결에 관람자 들도 있는걸로 나오더군요
아 그 13세 때 는 미야모토 마을에 검술가가 찾아왔는데
그 검술가 가 세운 펫말을 뽑아서는 개패듯이 패죽여 버립니다. 이일로 인해 무사시는 마을에서 왕따를 당하게 되죠
그리고 당시 야규세키슈사이는 검으로 성을 하사 받은 검성이었고 무사 쥬베이 도 이 야규가문 사람이었답니다.
무사시도 요시오카 도장에 찾아가기 전에 야규세키슈사이를 찾아가게 되죠
그반대일수도잇지않나요. 배가본드에섭ㅎ면 무사시가 스카웃을무시하고 농사짓던데
박식다박
무사시가 한 수 위
ㅂrㅂrㅌIㅂI 보고난뒤로 ㅋㅋㅋㅋ 발기찬하루보내는중
무사시가 우리나라 최고의장수 이순신장군님이였다면 얼떨까요......?
매일 ㅂrㅂrㅌIㅂI 보다가 존슨 딱딱해져서 터질거같네 ㅋㅋㅋㅋㅋ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너무나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려 드립니다 더 좋은 콘텐츠로 보답 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