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부사관입니다. 저또한 아버지께 얘기 많이들었습니다. 저 당시 군대는 지금 군대와는 차원이다르고 힘들었습니다. 항상 사람은 본인이 다 힘들다고 하지만 저 당시 때에 저분들이 계셨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는겁니다. 항상 존경합니다. 선배님들 선배님들의 희생 이 있기에 지금의 우리가 뒤이어 열심히 지키고 있습니다. 결코 저분들을 욕해서도 놀려서도 안되는 겁니다. 진짜 대단한겁니다. 존경스럽습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돌격!
@없음닉네임 진짜 아버지세대.. 3년군복무하신분들... 진짜 부조리너무심하고 구타도 많고 영화에서나 볼듯한 그런것들 겪고 먹을것도 진짜부실하게 뭐든게 부실하게 생활하셨던 분들은 오히려 가만히계신데...... 허허. 나라는지켜야하지만 이런거안겪었으면 좋겠다고 하시면서...
75년도 군번입니다 너무 라때는 말야 라는 소리 꼰대 마인드 그런소리 많아서 한자 적고 지나갑니다 그당시 우리나라 가 북한보다 못살았습니다 그당시는 배고품에 월북하는사람도 있는세상이었고요 우리 윗대분들도 거의 집안입하나 줄이고 군대입대하는 기분이 었고요 부식이라 할것도 없고 염잠무 우거지 된장국 그생활속에서도 그적은 월급 모아서 제데하는분들 많았던거 기억합니다 그때는 그렇게 사는 세상이었습니다
98년 군번인데 기억나는건 일병까지는 전투화 신을때 서서 신음 상병때부터 앉아서 신는데 이게 엄청 편하기도 하고 행복했음 ㅎ 상병5호봉부터 독서가능 책 읽는게 가능 너무 좋았음 좀 고쳐졌으면 했던건 훈련마치고 육공트럭타고 올때 이등병은 주로 바닥에 앉았는데 훈련마치고 차 한시간이상 타면 피곤한데 졸고 있으면 상병고참이 총 개머리판으로 하이바 강타함 훈련마치고 올땐군기고 머고 다같이 고생하는데 좀 조는건넘어가주고 해야한다고 생각함 아무튼 군대는 훈련 빡시고 내무생활은 편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듭니다
저의 아버지는50년군번입니다.워낙못 먹어서 미군들 먹다버린 닭뼈다기 ,십다버린 껌을 주워 먹고 군 생활 했다고 하였습니다.정말 눈물이 핑돌았습니다. 제가 89년도에 갈때만 해도 힘들다고 했는데, 그런 악조건속에서도 무려 군복무를13년간이나 하고 마친 아버지를보고 자랑스럽고 존경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해도 군대는 군대다워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없습니다.
84년 군번입니다 군대가 군기 중요하지요 하지만 시대가 변한걸 알아야죠 군기좋은 80년대 군대와 군기 없다는 지금군대가 싸움이 될까요? 물론 군기도 좋고 지금의 군대라면 더 좋겠지만 젊은 혈기의 아들들 군대가서 고생하는데 잘 챙겨줘야죠 옛날군대 무조건 군기랍시고 잠 안자기 72시간 이런거 한 똥별들 그럴거면 안죽기 훈련하지
이혁 빡세게 군생활 하셨는데 연세를 보니 애들이 군생활 해야 하는 시기인 것 같습니다. 부모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90년대 초반 저희형과 제가 같이 군생활 할 시기에 부모님이 식당을 하셨는데 당시 휴가나 외출나온 군인들이 공기밥을 추가하면 추가분에 대해서는 절대로 돈을 받지 않으셨답니다. 군대 가 있는 아들들이 생각나서... 이후로 우리가 제대하고도 계속 그러셨습니다.
74년 2월 35개월 만기제대 당시, 마지막 병장 월급으로 1,350원을 받았으니까 정확하게 400배 올랐네요. TV는 1972년 하반기부터 일선부대에 14인치 흑백테레비가 보급되었는데, 저녁식사 후 일석점호 전까지 2시간(7시~9시) 동안 시청가능한 시간대였지요. 연말특집인 경우는 주번사관이 기분이 좋으면 약식점호 후 11시까지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급식은 기본적으로 김치에 국, 그리고 반찬 한 가지가 나왔고(1식 1찬), 일주일에 한번 특식이라고 고기가 나오긴 했지만 비계가 서너점 있는 돼지고기 찌개나 누린내만 나고 멀건 황우도강탕(黃牛渡江湯) 배식이 고작이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훈병~일등병 시절에는 겨울에 보초를 서면서 배가 고파서 짬밥통 주변에, 눈 위에 얼어붙은 콩나물대가리를 주훠 먹었던 기억도 납니다.. 어쨌든 제대할 때까지 자유급식은 커녕 정량에서 훨씬 부족한 배식이라서 춥고 배고픈 시절이었지요 사적 감정에 기인한 구타행위가 공공연히 자행되었고 고참들 말에 따르면 기합의 종류도 백 가지가 넘는다고 겁을 주었습니다. 가장 괴로운 것은 점호가 끝난 후에 고참들이 한밤중에 한바탕 화풀이 쇼를 하는 CPX였는데 내무반에서의 '철모에 대가리 박기'는 양반이고, 군화발로 쪼인트를 까거나 짓밟기(탈장된 경우도 있었음), 단체기합으로는 무지막지하게 '5파운드 곡쾡이 자루로 군번순으로 줄빳따를 때리기'나 '완전군장에 방독면 쓰고 연병장 구보' , '알철모에 매트레스 메고 연병장 선착순' 또는 엄동설한에 '원산폭격 자세에서 찬물 끼얹기' '팬츠 바람으로 눈밭에서 '올챙이 포복하기' 등이 다반사로 반복되었죠. 오죽하면 취침 후에 CPX가 걸리지 않으면 불안해서 잠이 오지 않는다고 했을까요? 졸병들은 한바탕 푸닥거리가 끝나야 비로서 편한 마음으로 잠을 잘 수 있었지요. 특히 제 주변에는 월남전에 참전한 용사들이 많은데, 제대 후 고엽제 후유증으로 지금까지 고생하는 선후배들을 적지 않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1966년~1972년 군번들이 복무기간도 가장 길고 혹독한 군대생활을 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즐겁게 감상했습니다! 참고로 저는 70년대 유신군대 였는데 당시 식당구호가 1식 3찬 였는데 집에서 먹던것보다 군대밥과 반찬이 더 좋았습니다! 구타없애겠다고 했지만 여전했지만 그래도 당시 고참들이 라면이나 건빵, 기끔 술도 한잔씩 나눠마시게하고 했던, 그리고 굉장히 인간적이던 유신군대가 그립습니다!
저는 79년2월군번이고 인제 원통에서 포병으로 근무했음 기억에남는것은 배가고파 밤에 모포속에서 도너츠먹다가 들켜서 전체기상해서 잠도 못자고 한시간동안 단체기압받았음 나는 별도 얼차레 하였고 그뒤로 빼치카뒤에 집합해 몽둥이빠따도 자주 맞았다 보초서면서 부모님생각에 눈물도 자주훌렸다 그렇게 힘든 3년군생활 강한의지로 죽기살기로 잘견뎌내고 전역했다 세월이 흘러 장년이된 지금은 오직 이나라와 후세들의 행복한미래를 위해 마지막순간까지 열심히 최선을다해 살아갈것입니다 위대한 대한민국 만세 만세👍
전라도 장성에서 군복무할때 목욕탕에서 물 한바가지로 전신 목욕을 했고 짬 남기면 죽음이었습니다.내무반에서 원상폭격을 하도 해서 머리에 딱정이가 떠나지를 않았고 군기 빠졌다고 배에 힘 주라고 하고 전투화 신은 발로 맞아서 뱃살이 밀려 빨갛게 된적도 있었습니다. 지금 군대라면 백번이고 천번이고 말뚝 박을수 있겠네요
???? 광주사태를 끼워넣어 버리네 팩트 알려줄까 탈북자중에 초 고위급이었던 사람이 있음. 황장엽이라고 김일성 최측근이었는데 그사람 증언에 따르면 10.26사건 이후부터 쭉 지켜봤었데 박정희 사망 직후부터 행여나 남한정권에 혼란이 올까 지켜봤데 자발적 시민 운동으로 사회가 살짝 혼란해졌긴 했지만 그들이 바라는것은 공산주의와 거리가 먼 민주화의 요구였지. 그러다가 김대중이 광주로 압송되고 광주에서 민주화요구가 커졌음. 전두환이 지 국정 장악할려고 김대중한테 터무니 없는 죄로 뒤집어 씌우면서 본보기로 광주를 자기 군대로 쳐버렸지. 이때 북한에서는 1980년 급작스럽게 발생한 광주 사태를 보며 "남조선에 혼란이 왔으니 동포들을 도와주어 조국 해방 전쟁을 개시해 볼까" 하고 김일성이 황장엽한테 말했데 황장엽은 그때 말렸데. 김정일도 반대했데 김일성은 주시했지. 근데 광주사태가 일주일도 안돼서 끝나버렸데 내부 혼란 명분삼아 남침하려고 했는데 사태가 예상보다 훨씬 빨리 끝나버린거지. 이후 전두환은 쿠데타에 완전히 성공하고 정권의 전반적인 시스템 장악에 성공했으며 심지어 무소불위의 권력을 동반한 안정적 통제가 가능 해지게 되었지. 더이상의 혼란이 발생되지 않는 남한의 상황을 보고 김일성은 결국 남침을 포기했데. 그래서 유야무야 되었다고 황장엽이 말했음. 그리고 그당시는 국제 사회가 매우 혼란했던 시기였다. 중국이 개혁개방에 길에 들어서고 베트남이 개혁개방의 첫발을 딛는 등 국제 공산주의 동맹이 균열이 있던 때였음. 오죽하면 수정주의로 가지말라고 북한이 중국한테 ㄱㅈㄹ 했었겠냐고 게다가 남한이 그때 초고속 경제성장 중이었고 미국은 로널드 레이건이 대통령이었을 때라 미국의 일극주의가 가속화 되며 이에 따라 대소압박역시 가중화 되던 시기였음 (이때 남침했다면 최소한 북한은 지워졌겠지) 소련 스스로도 역시 과도한 군사비 지출로 경제가 매우 나빠지던 시기였고. 국제 정세가 북한 입장에서는 매우 불리했었어. 남침 조건이 안되던 시기였다고 오죽했으면 김일성이 당시 동독 수상 에리히 호네커에게 아깝다는 말투로 "붉은 기는 얼마나 더 휘날릴 것인가"라고 말했겠냐 유일한 남침 수단이던 땅굴역시 이미 그 존재가 발각된지 오래였다고 하고.(심지어 베트남과달리 한국 지형은 화강암 지대라서 돈이 몇십배 더들어. 학자들은 여러 상황으로 봤을때 땅굴 전략은 일찌감치 포기된 전략이라더라.) 한미 군당국이 그에 대비한 대응전략전술을 완비했던 때라 땅굴 적화는 사실상 불가능했지. 쉽게 말하자면 북한이 딴생각을 할수 없던 시대였어. (북한이 본격적인 핵개발의 길로 가는 계기가 되기도 했고.) 이런상황에서 광주에 북한 특수군을 보낸다? 체제 위기가 올수도 있는 불안정한 상황에? 말이되냐? 닌 된다고 생각하니? 아 그리고 전세계 외교문서에 광주사태는 북한이 저질렀다는 내용 어디에도 없어 광주사태 자료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미국 국방부랑 미 국무부, 태평양사령부조차 해당 사실 없다고 일축했다. 선동 좍좍 하자 좀 알고 아가리털자
나도 저분 만큼은 아니지만 꽤 오래된 군번인데 요즘 군대 월급 많고 스마트폰 쓰고 밥 잘 나오고 계급간 위계질서 풀어지고 구타 없고 기합 없고 보급품 좋아지고.. 이런건 별로 안 부럽고 배도 안아파. 다만 한가지 유일하게 부러운게 요즘 군대 1년 6개월의 짧막한 복무기간이 부러움. 그땐 진짜 길어도 너무 길었어.... 군생활 해도해도 끝이 안 보이니 이거야 뭐... 1년 6개월이면 진짜... 와.. 그때보다 더 맞고 굴러도, 휴가 한번 없어도 감사하게 생각하며 복무할 수 있겠다. 진짜 부럽다 1년 6개월 ㄷㄷㄷㄷ. 또하나 살짝 부러운게 있다면 요즘 군대는 사고가 나면 즉각 방송에 나오고 기자들이 취재하고 공개가 된다는 거... 그 시절엔 인터넷도 없었고 군부대는 언론들 출입도 불가능했고 병사들 뒤지는 말든 무조건 자살처리고 가족한테 시체 돌려주고 땡이었으니... 뉴스에 기사한 줄 안 나왔음.
그 시절이 그립다기보다는 좀 더 정확히는 그 때의 젊음이 그리운 것이겠죠? 멋 모르고 혈기만 가득찼던 시절이니 그 군생활을 견뎌냈지 50을 바라보는 현재의 모습 굵어진 대가리로 또 다시 그 군생활을 겪어야 한다면 체력은 말할 필요도 없고, 그 부조리함과 비상식을 과연 견뎌낼 수 있을까 싶네요...
81년 12월 입대했었지요. 임진강 못미쳐 2km 파주/적성이란곳에서 근무. 포병(155mm) 그때는 우리나라 핵이 있었어요... 핵 투발훈련을 했었으니까... 155mm곡사포에 넣어서 쏘는 훈련. 84년5월 제대. 약 30개월 복무하고 전역 (대학 군사교육,훈련이수로 약2개월 단축혜택받음) 저 당시 시점(84년 제대시점) 군복무기간이 약 32개월정도였음. 당시도 조금씩 복무기간이 줄어드는 추세였음.. 81년 입대당시 전역하는 병장들 36개월이었음. 화면에 고참분 저와 같은 시대에 군 생활하신분이네요. 반갑군요..전형적인 당시 군인 모습입니다. 이병 월급 3200원인가.. 병장때 4200원인가 했었던거로 기억. 동그란 구멍빵빵 뚫린 크림빵 하나 100원정도 한산도 담배 1갑300원. 일병,병장,이등병 같이 누워서 유튜브요? 풋.. 말도 안되는 상상임. 병장옷도 함부로 만지지 못했어요 . 구타심했지요..가끔 상급부대에서 밤 12시에 검열나와 자는 병사들 모두깨워 엉덩이 깝니다 지금생각하면 ... 전부 뒤돌아서서 엉덩이만 까서 내밉니다..장관이지요. 한 내무반에 50여명이.. 거기서 엉덩이 시커멓게 멍든 친구들 2-3나옵니다. 고참한테 맞아서요.. 바로 색출해서 그 다음날 고참 영창보냅니다 내가 그 영창 보내는 조서 서류를 작성했지요.. 행정반에 있었어요..소위 말하는, 끗발이 있었던 보직이었지요.. 화면의 김두환님이 말씀하신 쇠파이프 구타... 맞았어요.. 한대.. 그냥 나무나,배트보다 맛이 묵직합니다. 한대 맞으면 뻗는다는 표현이 맞습니다. 나는 포병이라 야전삽으로 많이 맞았지요... 삽 뒷쪽으로.. 배를 치는데 아주 죽습니다 다 맞고나서 동기들과 오줌을 누러가는데 미치는줄 알았음.. 버클이 야전삽으로 맞을때 우그러져서 버클이 안열리는겁니다 바지를 내릴수가 없어서 오줌은 질질 나오고... 미치는줄 알았음... 화면의 김두환님이 말씀하시는거 거의 맞는말입니다.. 약간의 부대차이가 있겠지만 거의 맞는말입니다. 지금 군대 참 좋아졌네..어이가 없네... 군대가 아니구만...공중전화가 어디있어... 세탁기같은 소리하고있네 이등병이 병장한테 식사메뉴를 물어본다고요? 풋... 환장하시겠네요..말마따나 사형임. 사형은 거짓말이고. 병장은 이등병이나 일병은 안때립니다.. 너무 조무라기라서요 기분이 안좋고 아랫것들이 상태가 안좋으면 상병을 개패듯이 팹니다. 이병/일병들 교육을 그따위로 시키냐며... 그러면 밤에 상병들은 이병/일병들 집합시켜 아주 죽입니다.. 이런생활이 예전에 횡행하던 군생활이었어요... 내무반생활도 졸병때에는 긴장의 연속입니다. 처음에 아무것도 안보일정도로.. 사격훈련이나, 유격훈련, 완전군장 장거리 구보등의 힘듬은 뭐 모든 군대에서 지금도 할거니까.. 그렇다치고 바로 위 고참이 아주 무서웠어요... 첫 크리스마스 위문단 공연왔을때 밤공연을 하는데 오랜만에 들어보는 사회 유행가 반주를 들으니까 너무 반가워 괜스리 눈물이 흐르더군요. 주위창피해서 몰래 눈물 훔치던적도있었지요.. 아 참 그리고 군에서 자살하는것도 봤습니다.. 보초서다가 M16소총을 목에 대고 .. 또한 총을 들고 탈영을 하는일도 가끔 나오는데 그 지역 주변 전 부대원 병력들을 총동원시켜 밤새워 교대로 동원을합니다 끝내 잡힙니다. 성공했다는 말은 들은적이없고 하루이틀 지나면 잡으로 동원나갔던 주변 동료들얘기가 잡혔다는 말이 들리더군요.. 그러 그러한것들도 6개월 ,1년이 지나면서 군생활에 대한 적응을 하게됩니다.. 암튼 지금과 확연히 다른것은 아래위의 관계가 너무도 틀립니다. 병장이란 위치는 졸병이 함부로 쳐다보기도 힘든 존재였어요..
저희 아버지께서는 77년도 군번이신데 아직도 군번을 기억 하십니다. 군생활 이야기 들은걸로는 "그때당시에 군대는 죽으러 가는거다" "안 맞으면 잠이 안온다" "빨리 맞고 잤으면 좋겠다" 군대에서 콩나물국을 질리게 먹어서 인지 어머니가 콩나물국 실수로 차리면 밥상을 엎으십니다.
저희 외할아버지가 6.25 참전용사신데 전쟁3년+이후 군대3년 하셔셔 총 6년 군복무 하셨는데 진짜 재미난 썰도 많고 흥미진진한 전쟁썰도 많은데 여기서 다 적을순 없으니 거두절미하고 제가 입대할때 본인 군생활 재밌었다 하시니까 제가 할말이 없더라구여 ㅠㅠ 진짜 영상속에 나오시는 어르신도 respect하고 멋지시네요. 아 물론 저희 할아버지는 연세가 90이 넘으셨는데도 정정하십니다! 정말 옛날에 군대 다녀오신분들이랑 비교하면 정말 군대 좋아졌다고 느껴지긴하네여 ㅎㄷㄷ
저희 아버지 80년 5월에 만 18세 나이로 부사관 입대하셨는데 입대사유가 가난해서였답니다... 큰아들이라 나라도 군대가서 먹을 입 하나 줄이고 얼마 되지 않는 월급으로 집안 살림에 보태야만 했기 때문이었다는.. 참고로 당시 짬밥은 그냥 반찬은 늘 김치 한 종류인데 그것도 제대로 된 김치가 아니라 배추에 고추가루 버무린 정도고 고깃국은 구경하기도 어려운 데 소고기 무국이라고 해서 나오면 살코기는 하나도 없고 지금으로 따지면 소고기 굽다보면 나오는 그 허연 기름덩어리를 우려내고 또 우려내서 고기 냄새만 나게 해서 먹었다고 합니다.
70년대 사병은 제대하면서 반납하고 예비군복 (개구리복)으로 입고 나왔습니다. 참고로 저도 유신군대 시절 80년대도 그랬을것 같은데요... 그리고 국방색 군복도 병장되면 군복이 물이빠져 하늘색 비슷하게 바랍니다. 아마 새로 장만한듯... 그리고 쌀 보리 비율이 2:8도 아니고요 과장이 심한듯...
89년 군번인데 부대번호,군번 아직도 기억합니다. 군복도 그대로 있습니다. 90년도 까지는 구타가 조금씩 있었으나 그보다 얼차려는 진짜 매일 아침마다 취사반 앞에서 한따까리 무조건 하고 밥 먹었음.그것도 91년도 부터는 진짜 거의 없어졌습니다.89년말 군번까지는 진짜 80년대 군번이랑 같은 군 생활이라 좃뺑이 쳤는데 90년대 들어서서 부터 군대가 정말 눈에 눈에띄게 좋아졌음. 민무늬군복과 얼룩무늬 군복으로 모든 군생활의 차이가 구별된다고 보면 됨.
1974.3월 해병268기네요. 그때 이병 급여가600~800 원 이었다오.(올라서800원) 병장은2400원 조금너은 것 같구려, 전역한지 45년이 지났지만 군대 얘기를 들으니 감회가 새롭구려. 열악했던 군생활환경이 나 아진걸 보니 흐뭇하네요. 대우의 문제가 아니라 군은 기강이 우선이며 또한 지구 력이 있어야 되지않나 싶구 려~^^!! 어휴 도루묵두부국에 지금 도 고개를 젓구려, 취침전 선임들의 이유갖지 않는 이유로 기수집합하여 좋지않는 악습으로 내려온 HMG 총열로 취침전 빠따 따를 때리는 기합이라는 명 목하에 휘들렀는데 지금은 안녕했겠지^^ 그땐 부대이탈도 많이 생각 했지만 이머님 생가하며 꾹 참고 병영행활을 종료했는 데 무심한 세월이 빠르네요. 그래도 다시오지않을 젊음 이 그립구려. 모두 건강하시길~^^!!
ㅋㅋㅋㅋㅋㅋㅋ 저런분들도 아들 보낼때는 군생활 편하길 바라십니다. 저도 핸드폰을 쓴적 없고 월급 병장때 20만원쯤 받았었지만 최근 군대의 변화 좋게 봅니다. 긍정적인 효과들 기사난것도 많이 봤구요. 그래도 아는 사람이 최근 군대가면 요즘 군대 개빠졌네 라떼는 말이야 이러구요 ㅋㅋㅋㅋ
6.25때 전투복과는 다르지만(43 HBT(한국전~월남전 초기) -> 정글복(월남전)(국내 부대는 작업복 비스무리한 누런색 전투복이 많았습니다) -> 70년대 중반 부터 보통 저희가 아는 민무늬가 나옵니다 당시 민무늬는 군용 스탬핑 있는 자리에 그 전과 동일하게 육 군 스탬핑이있고 그 후에 군용 스탬핑이 생깁니다 그 뒤로는 개구리와 지금의 디지털 전투복이 되겠네요 군대는 계속 좋아지고 편해지되 훈련은 실전처럼 제대로 하면서 있는게 좋은거같습니다 오늘도 추위와 싸우시며 국방에 힘쓰시는 국군장병 여러분 감사합니다
요즘 군대 많이 좋아졌지 뭐.. 나 때만 해도 군생활 정말 힘들게 했었는데... 냄새나는 화장실에서 고참들한테 뚜드려 맞으면서 초코파이 먹어도 맛있게만 먹었었는데..요즘 군인들은 눈물의 초코파이 맛을 알려나.. 이등병4호봉때 근무 끝나고 먹었던 뽀글이맛은 아직도 생각난다ㅎㅎ 18년 2월 동기들아 잘지내지?보고싶다!!!
17년 군번입니다 위에 선배님들의 짬밥에 숟가락얺지 못할 군번이란거 잘압니다. 제가 하고 싶은말은 그저 지금 후배전우들이 군대 훈련중 다치지만 않았으면 좋겠네요 저는 군생활중 왼쪽 검지손가락 골절과 인대손상으로 아직도 검지가 잘 구부려지지 않아요 허리디스크도 군대에서 생겼고요 후배님들 다치지말고 아프지말고 정신적 육체적으로 건강히만 전역하면 그게 최고의 군생활이에요 모두 몸조심하고 gop gp에서 이추운날 근무서는 후배장병들도 감기조심하세요 더더욱 다치지말고요
군대도 감찰대가 있어 대놓고 못합니다 만약에 김치만 주고 배고파서 탈영하거나 자살한게 후에 밝혀지면 부대장 옷벗어야 되는데 그렇게 않합니다~ 군 한달 식단표 대로 거의 맞춰 줍니다( 82년 1월~ 84년 7월까지 육군 병 생활했읍) 시골 읍 중류 가정 에서 군에 갔는데 집에서 보다 식단이 좋았읍니다. 맛이 떨어질때도 있었지만 내가 알고 있기론 육본에서 한달 식단표 내려주는걸로 기억합니다 취사장 내 정면에 차드병이 작성해서 한달 식단표 게시하고 그대로 부식수령받아 취사병이 식단표 대로 요리해서 배식합니다
저희 아버지가 80년도 해병대 입대하셨는데 그때 해병대 이병 월급이 2천원이 채 안됬다네요 근데 그것마저 고참들이 갈취를 많이해서 상병전까지 월급을 받고도 남은게 거의 없었다고합니다 하도 사람을 쇠빠따로 패니까 탈영하는 사람도 꽤 있었고 아버지는 자살한 사람 딱 한번 봤다고합니다
우리 아빠 76년도인가 그때 군대 갓던 얘기해줄때 놀랏는데..지금은 1년6개월? 이지만 그때는 말로는 3년 하지만 막상 3년채우고 부대안에 일 생기고 저때는 남북고조도 심해서 저절로 전역이 연기.. 그래서 저때 군대간 사람들은 기본 3년6개월이상은 다하고 나오셧다고.. 아빠 정강이 보면 쪼인트 까여서 평생 상처 아직도 있음.. 똥통에 대가리박기는 기본 심심하면 불러서 줘패고 하루라도 안맞으면 불안하셧다고 하심.. 자다가도 갑자기 무방비 상태에서 맞아서 기절하셧다고.. 하.. 또 생각하니 눈물나네 우리 아빠... 존경하고 감사합니다 ㅜㅜ
저는 부모 세대고 요즘 현역병들 정도면 자식뻘 쯤될진대 나이먹은 사람이 할일없어 헛소리 할까요? 다보는눈이 있고 생각이 있고 그러니 그러지 왜 군기가 충일하면 뭣때문에 속된말로 빠졌다 그러겠어요? 열심히 군생활 하는 사람들한테. 어른들이 얘기하면 우리가 문제가 있구나 하고 참고하고 고칠 생각을 해야지 지금 비아냥 거리는식으로 댓글 다나요? 한한달전 우리 막둥이도 병장 제대 했지만 도데체가 군인 같지가 않아요 군복만 입었지 ..제대하고 한일주일 지나니까 군대 가기전 하고 똑같아 지드만요..
91년 2월군번인데 딱 저 녹색 전투복을 입었습니다. 군번도 1로 시작하던게 91년부터 91로 시작했습니다. 그해 10월에 전군에 새로운 얼룩무늬 전투복이 지급된걸로 기억합니다. 90년대 군번인데 80년대 군번보다 정말 빡세게 훈련받았습니다. 저 아래 75년 군번 대선배님 계시는데 제가 아는 어르신이 그 군번이고 수송병인데 군생활 내내 술을 드셨더라구요. 전 군대에서 술을 먹는다는건 상상도 못했습니다. 화랑담배 정말 좋은것 태우셨는데 전 백자 끝난다음 군용솔 받아 피는데 와...이게 사람 죽이는곳이구나...생각...모든 군복무 사병출신들이 생각하는게 그시절 그 뽀얗고 예쁜얼굴. 지금은 파삭파삭 늙어버린 몰골. 왜 우린 군 미필자와 나라위해 아무것도 안해본 그들의 권리가 군복무자보다 더 우선시되는 사회가 되어있을까요
저는 사진관 스튜디오를 운영합니다 군인들 전역하고 우정사진촬영 많이 옵니다 하나같이 똑같은 말하더라구요 '요즘 군대가 무슨 군대에요? 후임들 무서워서 선임들이 눈치보는데' 이렇게요 그래도 그 갇혀있는 자유를 뺐기는 그 시간자체가 힘들지 않냐? 물어봐도 본인들이 군대같지 않다고 말하는걸 보고 많이 바뀌긴 했구나 싶더라구요 아무래도 군대란게 전시상황에서 국민들 목숨을 지켜줘야하는 임무가 기본으로 주어지기때문에 어른들이 보시기엔 요즘 군대는 눈쌀찌푸려질 상황들이 많긴하겠죠 ㅎㅎ
툭까놓고 말해서 병사가 간부를 좆으로 보는건 간부 능력 부족입니다 요즘 군대는 오히려 간부가 병사를 통제하기에 더 좋은 환경입니다 병사간 구타 및 가혹행위가 줄어들면서 간부의 역할이 더 커졌습니다 교육내용 숙지 안하고 관물대 엉망이고 총기상태 엉망이고 훈련 개판으로 받고 하는것들에 대해 예전엔 병사들끼리 쥐어패면서 바로잡았다면 이제는 간부가 규정대로 처벌해야 하는 시대인거죠 간부가 이러한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수행만 했다면 병사들이 간부를 절대 쉽게 못봅니다 병사들이 개판을 치건말건 나몰라라 내버려두거나 병사들을 이끌 능력 자체가 안되는 간부들이나 병사한테 먹히는거죠 병사들 월급보다 몇배씩이나 국민세금으로 받는 군인이면 그 정도 책임감과 능력은 있어야죠
자대영창은 늘어나지 않고 똑같지만 육군교도소 즉 남한산성 다녀오면 형기날짜 일수 대로 늘어남. 운전병근무하며 사고나서 자대 영창 10일 다녀와 봤는데 자대영창 편하다는 소린 다 헛소리. 범죄가 아닌 일반 잡범이랄까 이런 병들은 취사반 가서 새벽3시부터 일어나 죽도록 노동했었음. 진짜 일하다가 처음으로 말로만 듣던 코피도 터져봤음.
요즘 군대 정말 얼차려 구타가 없다고요? 좀 걱정되네요.. 구타는 그렇다고 해도 얼차려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네요.. 체력과 정신력을 키우는 측면이 있는데... 얼차려는 재미로 주는 것이 아니었는데... 군대라는 조직이 너무 좋게만 해도 돌아가기 쉽지 않을텐데... 전쟁나면 전투나 제대로 수행할런지 모르겠네요..
2000년대 중후반부터 구타나 가혹행위가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음. 중고등학교도 체벌이나 일진놀이 등등 그떄부터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함. 지금은 선생이 애들한테 떄리지도 못하고 혼내지도 못한다는데 군대에서는 폰쓰고 선진화되어서 좋다 하지만 물러서 공부 열심히 안하거나 군생활 제대로 안할까봐 걱정되긴 하지.
2편도 재미있게 편집하여 빠른시일안에 업로드하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
79년도 군번 인데 병장때 4200원
80년대 : 순 거짓말. 카레는 덜풀어져 가루가 나왔지
맞아 철모위에 깍지끼고 관물대 타면 10분 도 안되어 온몸이 땀과 경련을 일으키지요.
먹는 건 너무 과장
대범님 잘생겼습니다
현역부사관입니다. 저또한 아버지께 얘기 많이들었습니다. 저 당시 군대는 지금 군대와는 차원이다르고 힘들었습니다. 항상 사람은 본인이 다 힘들다고 하지만 저 당시 때에 저분들이 계셨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는겁니다. 항상 존경합니다. 선배님들 선배님들의 희생 이 있기에 지금의 우리가 뒤이어 열심히 지키고 있습니다. 결코 저분들을 욕해서도 놀려서도 안되는 겁니다. 진짜 대단한겁니다. 존경스럽습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돌격!
아버지들은 대부분 자기아들을 자기떄처럼 부조리가 있는 군생활이 없기를 바라시는분들이 많으시죠.몇몇아버지들은 자기아들 군대생활보고 뭔가 안심이라고 하시는분들이 요즘 많아진추세죠.
@없음닉네임 진짜 아버지세대.. 3년군복무하신분들... 진짜 부조리너무심하고 구타도 많고 영화에서나 볼듯한 그런것들 겪고 먹을것도 진짜부실하게 뭐든게 부실하게 생활하셨던 분들은 오히려 가만히계신데...... 허허. 나라는지켜야하지만 이런거안겪었으면 좋겠다고 하시면서...
우리아빠50인데 나 군대갔을때 존나 나 고생하고 좀 뭔가 느끼길바라던데 ㅋㅋ그거보고 와..아빠맞나.. 싶더라 아! 꼰머기질있긴함 우리아빠 ㅋ
@@bisudro9406 한심ㅋ 너 생각해주는건 가족뿐이다
저희 아버지도 군대 안갓으면 합니다...
@@bisudro9406 근데 사회에서 정신못차리고 세상물정모르면 군대에서 바뀌는것도 나쁘진않음
형님들 진짜 존경합니다! 지금보다 훨씬 열악한 환경에서 더 오랜시간동안 나라를 지켜주셔서 지금의 우리가 있습니다! 저는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남은 2개월 최선을 다해 복무하도록 하겠습니다!
"요즘 군대 캠프네 ㅋㅋ" 이런 말은 저런 분이 하셔야 함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런 분들께서 저런 말씀 하시는거면 ㅇㅈ
닉보고 뭐라 반박할수가없다
ㅌㅎㅋㅎㅋㅎㅋㅋㅋ
@@천안문탱크맨-y9u 그런게 개선되긴 했지만 훈련같은게 없어진건 아님 막상 해보면 ㅈㄴ 힘듬
보통 페북이다 다른 SNS를 보면 틀딱이니 뭐니 하며 지금 시대서 어느땐데 이런 얘기 하냐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여기는 그런 사람들보다 아버님께서 지내온 시대 상황을 이해해주시는 분들이 많아 굉장히 보기 좋네요.
저글링 ㅇ
@@manduman ;;
@@manduman ㄹㅇ 능지수준이 저글링이네ㅉ
전지호 닉값하잖아요 이해해요
@@manduman 내가 틀딱이면 니는 비린내지
99년 군번입니다. 저보다 먼저 군생활하신 선배들 계신가요?? ..................................존경합니다!!
대범이 이 자식 나보다 동생이었네;;;;;;
제 큰아버지 73군번이신데ㅎ
할아버지
해병대장교:73기
아이고... 저희 행정보급관님 임관했을때가 99년 00년인데...
우리 할아버지군번67번 ㅋ
75년도 군번입니다 너무 라때는 말야 라는 소리 꼰대 마인드 그런소리 많아서 한자 적고 지나갑니다 그당시 우리나라 가 북한보다 못살았습니다 그당시는 배고품에 월북하는사람도 있는세상이었고요 우리 윗대분들도 거의 집안입하나 줄이고 군대입대하는 기분이 었고요 부식이라 할것도 없고 염잠무 우거지 된장국 그생활속에서도 그적은 월급 모아서 제데하는분들 많았던거 기억합니다 그때는 그렇게 사는 세상이었습니다
진짜 이렇게 힘들게 나라지키셨는데 요즘 좌파 빨갱이 공산당한테 나라 넘어가게 생겨서 마음이 아프네요.
옛날처럼 반공교육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낍니다
@@엘르-q5o
요즘도힘들게나라지키고있고
옜날보다 더든든하니 할말없으면빨갱이가어떻고저떻고 떠들어되지말았으면합니다
존경합니다
배곱파서월북했다
너무오버하신것같네요
후진국으로서경제발전에얼마나빠르게돌아가는세상이었는데
모지리한두명에 일탈같은데
@@Bigsin-k8t 맞음.. 그때 안간 좌빨들이 아직 남한에 남아잇음 ㅋㅋㅋ 아이러니 ㅋㅋㅋ
98년 군번인데 기억나는건 일병까지는 전투화 신을때 서서 신음 상병때부터 앉아서 신는데
이게 엄청 편하기도 하고 행복했음 ㅎ
상병5호봉부터 독서가능 책 읽는게 가능 너무 좋았음 좀 고쳐졌으면 했던건 훈련마치고
육공트럭타고 올때 이등병은 주로 바닥에
앉았는데 훈련마치고 차 한시간이상 타면
피곤한데 졸고 있으면 상병고참이 총 개머리판으로 하이바 강타함 훈련마치고 올땐군기고 머고 다같이 고생하는데 좀 조는건넘어가주고 해야한다고 생각함 아무튼
군대는 훈련 빡시고 내무생활은 편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듭니다
저의 아버지는50년군번입니다.워낙못 먹어서 미군들 먹다버린 닭뼈다기 ,십다버린 껌을 주워 먹고 군 생활 했다고 하였습니다.정말 눈물이 핑돌았습니다. 제가 89년도에 갈때만 해도 힘들다고 했는데, 그런 악조건속에서도 무려 군복무를13년간이나 하고 마친 아버지를보고 자랑스럽고 존경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해도 군대는 군대다워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없습니다.
50 이면 한국전쟁인데 수고하셨어요
13년이요?!
북한도 아니고...
@@소펑키직업군인인듯
그 당시 장병들은 보급도 열악했고 또 간부들은 봉급도 매우 적었고 제때 못 받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제가 얘기듣기로는 6,70년대 탈영하는 사람들은 구타나 괴롭힘이 아니라 배고픔때문이었다고 합니다ㅜㅜ 그분들 얘기로는 생존의 위협을 느낄 정도였다더군요. 그저 존경스럽고 고마울뿐이고 그 열악한 환경을 만든 당시 국방정책자들에게 화가 날 뿐입니다.
아버님들이야 고생많이 했죠... 정말
20년 3월 전역한 삐약이는 선배님들이 매우 존경스럽습니다..👏👏
7:58 사형ㅋㅋ
15:08 빠따
15:18 쇠파이프
17:56 빠따5대vs머리박기20분
여름엔모기회식겨울엔빰빠라 ᆢ우리선임하사주번차는날 곡소리남82년도에
80년대 군대는 구타가 일상이었고 병장월급이 만원이 안됐습니다. 복무기간도 30개월이 넘었죠. 식단도 몇년 묵힌 정부미에 똥국 참배고팠던 시절이었죠.
84년 군번입니다
군대가 군기 중요하지요
하지만 시대가 변한걸 알아야죠
군기좋은 80년대 군대와
군기 없다는 지금군대가 싸움이 될까요?
물론 군기도 좋고 지금의 군대라면 더 좋겠지만 젊은 혈기의 아들들 군대가서
고생하는데 잘 챙겨줘야죠
옛날군대 무조건 군기랍시고
잠 안자기 72시간 이런거 한 똥별들
그럴거면 안죽기 훈련하지
멋지십니다
존경합니다
아버님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이혁 빡세게 군생활 하셨는데 연세를 보니 애들이 군생활 해야 하는 시기인 것 같습니다. 부모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90년대 초반 저희형과 제가 같이 군생활 할 시기에 부모님이 식당을 하셨는데 당시 휴가나 외출나온 군인들이 공기밥을 추가하면 추가분에 대해서는 절대로 돈을 받지 않으셨답니다. 군대 가 있는 아들들이 생각나서... 이후로 우리가 제대하고도 계속 그러셨습니다.
16군번인데 제가 훈련소에있을때도 무박3일은 존재했슴다. 의미없는 훈련인거같슴다
그땐 한국이 가난하였었고 푸대접하고 헌신만 강요하는 군생활 이었지만 충성심은 넘쳤던 시기내요. 이젠 우리 장병들에게 최고의 대우와 명예로 훌륭한 군인이 되었음 합니다
폭력으로 강요된 충성이 진심으로 우러나온 충성일까요
@@Nasty_Jello 지금의 개판을 보니 폭력으로 강요된 충성이 훨씬나은것처럼 보이네. ㅋㅋ
@@박규태-c5m그렇다고 때리는게 정당화되진 않음
그당시엔 가난하진 않았어요. 60년대부터 경제성장을 하였고 1981년 기준 1인당 소득이 1900달러로 나름 중진국수준정도였죠
저희 아버지는 79군번이셨죠..저때 12.12사태 5.18사태가 일어낫을때라서 많이 힘드셨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걸 들으니까 아버지를 정말 존경합니다.
맞습니다.
제 선배 되심..
전투화도 못 벗고 취침햐그 10일씩 대기..
74년 2월 35개월 만기제대 당시, 마지막 병장 월급으로 1,350원을 받았으니까 정확하게 400배 올랐네요.
TV는 1972년 하반기부터 일선부대에 14인치 흑백테레비가 보급되었는데,
저녁식사 후 일석점호 전까지 2시간(7시~9시) 동안 시청가능한 시간대였지요.
연말특집인 경우는 주번사관이 기분이 좋으면 약식점호 후 11시까지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급식은 기본적으로 김치에 국, 그리고 반찬 한 가지가 나왔고(1식 1찬),
일주일에 한번 특식이라고 고기가 나오긴 했지만 비계가 서너점 있는 돼지고기 찌개나
누린내만 나고 멀건 황우도강탕(黃牛渡江湯) 배식이 고작이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훈병~일등병 시절에는 겨울에 보초를 서면서 배가 고파서 짬밥통 주변에, 눈 위에 얼어붙은 콩나물대가리를 주훠 먹었던 기억도 납니다..
어쨌든 제대할 때까지 자유급식은 커녕 정량에서 훨씬 부족한 배식이라서 춥고 배고픈 시절이었지요
사적 감정에 기인한 구타행위가 공공연히 자행되었고 고참들 말에 따르면 기합의 종류도 백 가지가 넘는다고 겁을 주었습니다.
가장 괴로운 것은 점호가 끝난 후에 고참들이 한밤중에 한바탕 화풀이 쇼를 하는 CPX였는데
내무반에서의 '철모에 대가리 박기'는 양반이고, 군화발로 쪼인트를 까거나 짓밟기(탈장된 경우도 있었음),
단체기합으로는 무지막지하게 '5파운드 곡쾡이 자루로 군번순으로 줄빳따를 때리기'나
'완전군장에 방독면 쓰고 연병장 구보' , '알철모에 매트레스 메고 연병장 선착순'
또는 엄동설한에 '원산폭격 자세에서 찬물 끼얹기' '팬츠 바람으로 눈밭에서 '올챙이 포복하기' 등이 다반사로 반복되었죠.
오죽하면 취침 후에 CPX가 걸리지 않으면 불안해서 잠이 오지 않는다고 했을까요?
졸병들은 한바탕 푸닥거리가 끝나야 비로서 편한 마음으로 잠을 잘 수 있었지요.
특히 제 주변에는 월남전에 참전한 용사들이 많은데, 제대 후 고엽제 후유증으로 지금까지 고생하는 선후배들을 적지 않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1966년~1972년 군번들이 복무기간도 가장 길고 혹독한 군대생활을 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진짜 열악한 상황에서 고생하셨네요..
아구 선배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는 4600원으로 시작해서 7200 원 받았는데.. ㅠ ㅠ
7학년3반인 저도70년대 중반근무...저희부대는 (강원도화천) 1식3찬이었는데...군기는 쎄도 매일 구타는 없었고 두 세달에 한번정도 포상에서 단체 줄빠따는 있었죠..
어르신 반응 너무 꿀잼입니다. 전 대범님께도 비빌 군번은 아닌 11년도 군번이지만 요즘 군대보면 와 진짜 좋아졌다 싶은데 어르신 눈에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이겠죠 ㅋㅋㅋㅋㅋㅋ
즐겁게 감상했습니다! 참고로 저는 70년대 유신군대 였는데 당시 식당구호가 1식 3찬 였는데 집에서 먹던것보다 군대밥과 반찬이 더 좋았습니다! 구타없애겠다고 했지만 여전했지만 그래도 당시 고참들이 라면이나 건빵, 기끔 술도 한잔씩 나눠마시게하고 했던, 그리고 굉장히 인간적이던 유신군대가 그립습니다!
꼰대 어르신 ㅋㅋ
70년대면 영상에 나오신분 보다 더욱 살벌했을텐데ㄷㄷ 고생 많으셨다는 말 밖에..
😂때려잡자 김일성 무찌르자 북괴군 쳐부수자 공산당 이룩하자 유신과업..... 빳따근절..
유신군대~~~~~^^
저는 79년2월군번이고 인제 원통에서 포병으로 근무했음 기억에남는것은 배가고파 밤에 모포속에서 도너츠먹다가 들켜서 전체기상해서 잠도 못자고 한시간동안 단체기압받았음 나는 별도 얼차레 하였고 그뒤로 빼치카뒤에 집합해 몽둥이빠따도 자주 맞았다 보초서면서 부모님생각에 눈물도 자주훌렸다 그렇게 힘든 3년군생활 강한의지로 죽기살기로 잘견뎌내고 전역했다 세월이 흘러 장년이된 지금은 오직 이나라와 후세들의 행복한미래를 위해 마지막순간까지 열심히 최선을다해 살아갈것입니다 위대한 대한민국 만세 만세👍
79년이시면 윤치기 중위 월북했을때네요 정시수 김용진 이런사람들 북한넘어갔을때
79년 5월 장갑병 수기사 근무 헐 윤치기 중위 우리중대 부중대장이 윤치기 중위였는데 설마 동명 이인이겠지요
저렇게 적은데도 그 당시에도 돈 모아서 전역 하신분들이 있다는게 진짜 대단
@조용민 그때는 월급도 적었지만 그만큼 물가도 쌌읍니다. PX 에서 코카콜라 1병 170원 소령 초임 월급이 29만원~ 사회서 솔담배 500원 했던거로 압니다.
@@전문수-k9j 소령 월급이 30만원 전후 라니 ㄷㄷㄷ
실제인데요 제가83년도입대해서86년도제대했는데 같은부산고참인 제가입대했을때상병달고있었음 이름은조경제 아직이름도기억나는데요 그고참이 제대할때 월급모아나갔습니다.제가전역다되었을때 병장월급이4천5백원으로올랐었는데 그고참은 더 적었겠죠...담배한갑이100원이였는데 담배도 팔아서 같이모아서 전역한줄압니다.
@@전문수-k9j 소령 ㅇㅈㄹ
@@전문수-k9j피엑스 콜라 70원 솔 거북선 250원
전라도 장성에서 군복무할때 목욕탕에서 물 한바가지로 전신 목욕을 했고 짬 남기면 죽음이었습니다.내무반에서 원상폭격을 하도 해서 머리에 딱정이가 떠나지를 않았고 군기 빠졌다고 배에 힘 주라고 하고 전투화 신은 발로 맞아서 뱃살이 밀려 빨갛게 된적도 있었습니다. 지금 군대라면 백번이고 천번이고 말뚝 박을수 있겠네요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전방 일산에서 14군번으로 복무한 후배 육군입니다. 저는 말년에 후임보고 작업후 제 삽도 좀 챙겨달라고 말했다가 휴가 14일이 잘렸습니다. 그래도 지금 군대가 좋아졌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한우-k9g 아니 어째서 그게...?
@@biting_doog 요즘 군대는 이런게 부조리랍니다. 근데 저것때문에만 14일이 잘린게 아니고 제가 비흡연자인데 제 앞에서 담배피지 말라고 했다가 강제로 금연시켰다고 이것도 부조리랍니다.
@@한우-k9g 역시 대한민국....
상무대에서 군 복무했나요?
저분이 군생활 하셨을 70~80년대가 북한의 도발이 극에 달했고 국제정세가 혼란 그 자체였죠..군기가 빡셀 수 밖에 없엇어요
그쵸 ㅠㅠ 판문점 도끼 사건,10.26사태,광주 사태 등등 언제듯 김일성이 쳐내려오려고 했던때죠
@@이제2년 국제적으로는 70년대 초반 닉슨독트린으로 인한 여파가 남아 있는 상태였고 미소전도 극에 달했을 시기였죠..언제 전쟁나도 이상하지 않았을 시기..정말 존경스럽습니다
@@MTFat 맞아요 ㅠㅠㅠ 그래서 제가 늘 6.25 참전용사분들과 80년대초반 군번분들까진 늘 존경의 마음을 가지며 살거든요 격동의 시대에 피흘려 지키신 영웅들
@@이제2년 광주사태요?
???? 광주사태를 끼워넣어 버리네
팩트 알려줄까
탈북자중에 초 고위급이었던 사람이 있음.
황장엽이라고 김일성 최측근이었는데
그사람 증언에 따르면
10.26사건 이후부터 쭉 지켜봤었데
박정희 사망 직후부터
행여나 남한정권에 혼란이 올까
지켜봤데
자발적 시민 운동으로
사회가 살짝 혼란해졌긴 했지만
그들이 바라는것은 공산주의와 거리가 먼 민주화의 요구였지.
그러다가 김대중이 광주로 압송되고
광주에서 민주화요구가 커졌음.
전두환이 지 국정 장악할려고
김대중한테 터무니 없는 죄로 뒤집어 씌우면서
본보기로 광주를 자기 군대로 쳐버렸지.
이때 북한에서는
1980년 급작스럽게 발생한 광주 사태를 보며
"남조선에 혼란이 왔으니 동포들을 도와주어 조국 해방 전쟁을 개시해 볼까" 하고
김일성이 황장엽한테 말했데
황장엽은 그때 말렸데.
김정일도 반대했데
김일성은 주시했지.
근데
광주사태가 일주일도 안돼서 끝나버렸데
내부 혼란 명분삼아 남침하려고 했는데 사태가 예상보다 훨씬 빨리 끝나버린거지.
이후 전두환은 쿠데타에 완전히 성공하고 정권의 전반적인 시스템 장악에 성공했으며 심지어 무소불위의 권력을 동반한 안정적 통제가 가능 해지게 되었지.
더이상의 혼란이 발생되지 않는 남한의 상황을 보고
김일성은 결국 남침을 포기했데.
그래서 유야무야 되었다고 황장엽이 말했음.
그리고 그당시는
국제 사회가 매우 혼란했던 시기였다.
중국이 개혁개방에 길에 들어서고
베트남이 개혁개방의 첫발을 딛는 등
국제 공산주의 동맹이 균열이 있던 때였음.
오죽하면 수정주의로 가지말라고 북한이 중국한테 ㄱㅈㄹ 했었겠냐고
게다가 남한이 그때 초고속 경제성장 중이었고
미국은 로널드 레이건이 대통령이었을 때라
미국의 일극주의가 가속화 되며 이에 따라 대소압박역시 가중화 되던 시기였음
(이때 남침했다면 최소한 북한은 지워졌겠지)
소련 스스로도 역시 과도한 군사비 지출로
경제가 매우 나빠지던 시기였고.
국제 정세가 북한 입장에서는 매우 불리했었어.
남침 조건이 안되던 시기였다고
오죽했으면 김일성이 당시 동독 수상 에리히 호네커에게 아깝다는 말투로 "붉은 기는 얼마나 더 휘날릴 것인가"라고 말했겠냐
유일한 남침 수단이던 땅굴역시 이미 그 존재가 발각된지 오래였다고 하고.(심지어 베트남과달리 한국 지형은 화강암 지대라서 돈이 몇십배 더들어. 학자들은 여러 상황으로 봤을때 땅굴 전략은 일찌감치 포기된 전략이라더라.) 한미 군당국이 그에 대비한 대응전략전술을 완비했던 때라 땅굴 적화는 사실상 불가능했지.
쉽게 말하자면 북한이 딴생각을 할수 없던 시대였어.
(북한이 본격적인 핵개발의 길로 가는 계기가 되기도 했고.)
이런상황에서 광주에 북한 특수군을 보낸다?
체제 위기가 올수도 있는 불안정한 상황에?
말이되냐? 닌 된다고 생각하니?
아 그리고
전세계 외교문서에
광주사태는 북한이 저질렀다는 내용 어디에도 없어
광주사태 자료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미국 국방부랑 미 국무부, 태평양사령부조차 해당 사실 없다고 일축했다.
선동 좍좍 하자 좀
알고 아가리털자
나도 저분 만큼은 아니지만 꽤 오래된 군번인데
요즘 군대 월급 많고 스마트폰 쓰고 밥 잘 나오고 계급간 위계질서 풀어지고 구타 없고 기합 없고 보급품 좋아지고.. 이런건 별로 안 부럽고 배도 안아파.
다만 한가지 유일하게 부러운게 요즘 군대 1년 6개월의 짧막한 복무기간이 부러움.
그땐 진짜 길어도 너무 길었어.... 군생활 해도해도 끝이 안 보이니 이거야 뭐... 1년 6개월이면 진짜... 와..
그때보다 더 맞고 굴러도, 휴가 한번 없어도 감사하게 생각하며 복무할 수 있겠다. 진짜 부럽다 1년 6개월 ㄷㄷㄷㄷ.
또하나 살짝 부러운게 있다면 요즘 군대는 사고가 나면 즉각 방송에 나오고 기자들이 취재하고 공개가 된다는 거...
그 시절엔 인터넷도 없었고 군부대는 언론들 출입도 불가능했고 병사들 뒤지는 말든 무조건 자살처리고 가족한테 시체 돌려주고 땡이었으니... 뉴스에 기사한 줄 안 나왔음.
80년대 군대는 살아남는 자가 강했다던데...
진짜 고생많으셨습니다 ㅠㅠ
그러실만한 이유가 있었네요ㅋㅋㅋ
이번에 정년퇴직하신 선배가 군대 얘기 해줬는데 dmz에서 근무해서 같이 입대한 동기 중 절반은 살아서 못나왔다고 하더라고요. 과장인진 모르겠지만.. 한 명은 월북해서 대남 방송으로 목소리 들려오고;
@@pyeondoche 그 선배 나이가?
80년대 군번 가장 똥군기 심할 시절... 짬찬 중사,중위,병장들은 참전용사가 일선에서 실무까지 하면서 현역인데
그 직후 입대해서 후임들 군기는 잡아야겠는데 실전경험있는 선배들처럼 카리스마는 안되니까 똥군기로 내무부조리 꽃피워나가던 시절이죠
개그맨 김대범 형님 99년 군번이신데 하정우 주연의 영화 '용서받지 못한자' 이 영화가 1998~2000년도 배경 군대를 소재로 한 영화입니다. 극중 주인공들 나이대가 79년생~80년생인걸 보면 이 영화를 통해 김대범 형님 군시절 대략적으로 짐작이 갑니다 ㅋㅋ
00 군번인데 '용서받지 못한자' 이영화는 레알 그시절 군생활 다큐임.... ㅋ
제가 96군번인데 그영화보고 느낀 게 그나마 좀약하지만 가장 군 생활 비슷하네요
필승~해병특수수색대424기 입니다
지나고나니 그시절이 그립네요~
필승~건승하십시요~
다시 가보쉴?
그곳에선 행복하십쇼..훔형
그 시절이 그립다기보다는 좀 더 정확히는 그 때의 젊음이 그리운 것이겠죠? 멋 모르고 혈기만 가득찼던 시절이니 그 군생활을 견뎌냈지 50을 바라보는 현재의 모습 굵어진 대가리로 또 다시 그 군생활을 겪어야 한다면 체력은 말할 필요도 없고, 그 부조리함과 비상식을 과연 견뎌낼 수 있을까 싶네요...
@@mun-ilchi7349 강제징용 징병제는 빨리 없어져야한다고 생각해요... 빨리 종전이 되야하는데 ㅠ
대범이형 복무했던 99년도도 충분히 라떼 찾을 자격 있는데 7~80년 군번은 걍 레전드..
81년 12월 입대했었지요. 임진강 못미쳐 2km 파주/적성이란곳에서 근무. 포병(155mm)
그때는 우리나라 핵이 있었어요... 핵 투발훈련을 했었으니까... 155mm곡사포에 넣어서 쏘는 훈련.
84년5월 제대. 약 30개월 복무하고 전역 (대학 군사교육,훈련이수로 약2개월 단축혜택받음)
저 당시 시점(84년 제대시점) 군복무기간이 약 32개월정도였음. 당시도 조금씩 복무기간이 줄어드는 추세였음..
81년 입대당시 전역하는 병장들 36개월이었음.
화면에 고참분 저와 같은 시대에 군 생활하신분이네요. 반갑군요..전형적인 당시 군인 모습입니다.
이병 월급 3200원인가.. 병장때 4200원인가 했었던거로 기억. 동그란 구멍빵빵 뚫린 크림빵 하나 100원정도
한산도 담배 1갑300원.
일병,병장,이등병 같이 누워서 유튜브요? 풋.. 말도 안되는 상상임. 병장옷도 함부로 만지지 못했어요
.
구타심했지요..가끔 상급부대에서 밤 12시에 검열나와 자는 병사들 모두깨워 엉덩이 깝니다
지금생각하면 ... 전부 뒤돌아서서 엉덩이만 까서 내밉니다..장관이지요. 한 내무반에 50여명이..
거기서 엉덩이 시커멓게 멍든 친구들 2-3나옵니다. 고참한테 맞아서요.. 바로 색출해서 그 다음날 고참 영창보냅니다
내가 그 영창 보내는 조서 서류를 작성했지요.. 행정반에 있었어요..소위 말하는, 끗발이 있었던 보직이었지요..
화면의 김두환님이 말씀하신 쇠파이프 구타... 맞았어요.. 한대.. 그냥 나무나,배트보다 맛이 묵직합니다.
한대 맞으면 뻗는다는 표현이 맞습니다.
나는 포병이라 야전삽으로 많이 맞았지요... 삽 뒷쪽으로.. 배를 치는데 아주 죽습니다
다 맞고나서 동기들과 오줌을 누러가는데 미치는줄 알았음.. 버클이 야전삽으로 맞을때 우그러져서 버클이 안열리는겁니다
바지를 내릴수가 없어서 오줌은 질질 나오고... 미치는줄 알았음...
화면의 김두환님이 말씀하시는거 거의 맞는말입니다.. 약간의 부대차이가 있겠지만 거의 맞는말입니다.
지금 군대 참 좋아졌네..어이가 없네... 군대가 아니구만...공중전화가 어디있어... 세탁기같은 소리하고있네
이등병이 병장한테 식사메뉴를 물어본다고요? 풋... 환장하시겠네요..말마따나 사형임.
사형은 거짓말이고. 병장은 이등병이나 일병은 안때립니다.. 너무 조무라기라서요
기분이 안좋고 아랫것들이 상태가 안좋으면 상병을 개패듯이 팹니다. 이병/일병들 교육을 그따위로 시키냐며...
그러면 밤에 상병들은 이병/일병들 집합시켜 아주 죽입니다..
이런생활이 예전에 횡행하던 군생활이었어요...
내무반생활도 졸병때에는 긴장의 연속입니다. 처음에 아무것도 안보일정도로..
사격훈련이나, 유격훈련, 완전군장 장거리 구보등의 힘듬은 뭐 모든 군대에서 지금도 할거니까.. 그렇다치고
바로 위 고참이 아주 무서웠어요...
첫 크리스마스 위문단 공연왔을때 밤공연을 하는데 오랜만에 들어보는 사회 유행가 반주를 들으니까 너무 반가워 괜스리 눈물이 흐르더군요.
주위창피해서 몰래 눈물 훔치던적도있었지요..
아 참 그리고 군에서 자살하는것도 봤습니다.. 보초서다가 M16소총을 목에 대고 ..
또한 총을 들고 탈영을 하는일도 가끔 나오는데 그 지역 주변 전 부대원 병력들을 총동원시켜 밤새워 교대로 동원을합니다
끝내 잡힙니다. 성공했다는 말은 들은적이없고 하루이틀 지나면 잡으로 동원나갔던 주변 동료들얘기가 잡혔다는 말이 들리더군요..
그러 그러한것들도 6개월 ,1년이 지나면서 군생활에 대한 적응을 하게됩니다..
암튼 지금과 확연히 다른것은 아래위의 관계가 너무도 틀립니다.
병장이란 위치는 졸병이 함부로 쳐다보기도 힘든 존재였어요..
84군번인데 거의 저도 비슷한 경험을... 제가 좀더 나았을까?
당시가 뭐라고 옛시절이 그리워 30여년을 기다리다 작년처음으로
자대며 안보관광이랑 다녀왔습니다 내 젊은날의 흔적들이 묻어나는 철원을 마주하니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한따까리 완전군장 유격 빤빠라 전투준비태세훈련 ATT RCT 팀스피리트 매복 실사격 MOS 야간보초 주간말뚝 GOP 마사토 특명....
이제는 모두가 그리운단어입니다
가끔씩 당시 전우들이 보고싶어지네요...
81년 4월군번인데 그시절군생활 하신분들 다같은경험 하셨지요
장단반도 포탄떨어지는곳야간포떨어지면 낚하산타고내려오는 예광탄불빛이 멋있었는데...
이등병은 병장한테 질문을 할수가 없어, 오직 대답만 할뿐이야.
요즘은 당나귀군대라 병장이 이등별 눈치보는시대
@@sondm4095 전투화도 서서묶고 신어야했져 일병되면 앉아서 신는거가능했고
요즘 이등병 1달만 하면 된다던데...
@@sondm4095 12년군번 저도 그랬어요 화장실가고싶은데 맞선임이랑 꼭 같이가야했어요. 고만좀 가라고 뭐라하기도했죠ㅋ 전투화도 앉아서 신으면 바로 줄줄이 내리갈굼ㅋㅋ 기상 5분전 일어나서(눈이떠짐) 매트모포 바로 다개고 1등으로 집합하고 휴.. 모포 각안잡고나오면 또 갈굼당하고..
@@sondm4095 기억났어요 화장실 둘이가야하는게 이등병들이 자살 많이한데서 같이갔던 기억이있네요.
전투화 끈도 첫시작때 그냥 일자로 넣으면 안됬고 한두번 매듭져 줫던거같아요
89년에도 구타근절 이야기는 많았는데,,말만 그렇고 구타 엄청 심했음.
훈련소 조교 30개월 근무 아직도 군번외우고 총검술,창격술 할수있음^^;
40중반까지 군대꿈 꾸었던것 같음. 아직도 논산훈련소 각 교장(훈련받는곳)이 아련하네요 ㅎㅎ
20대초중반 그곳에서 다보냈는데,,제대후 한번도 가본적이 없네요.
저희 아버지께서는 77년도 군번이신데
아직도 군번을 기억 하십니다.
군생활 이야기 들은걸로는
"그때당시에 군대는 죽으러 가는거다"
"안 맞으면 잠이 안온다"
"빨리 맞고 잤으면 좋겠다"
군대에서 콩나물국을 질리게 먹어서 인지 어머니가 콩나물국 실수로 차리면 밥상을 엎으십니다.
나도 77년 군번 그 악랄한 골병대 수송부 출신임.
군번은 죽는 그날까지 잊을수 없음.
군번은 남자자존심의 최후 보루임.
구타가 너무너무 심했지만 부식은 그렇게 불만은 없었음.
1식3찬. 콩나물 많이 나왔지만 상을 엎을 정도는 아닌거같은데 .
@@에쎄-x1v 밥상 엎는거는 과장이구요ㅎ
콩나물을 안드셔요ㅎ
저희 아버지랑 같은년도 이시네요~~
아버지께서는 32사 출신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역할때 후임들한테 받은 선물 아직도 집에 있습니다ㅎ
17군번 32사 출신입니다. 40년 차이나네요 ㄷㄷ 맞지 않으면 잠이 안왔다니... 전 영화 안보면 잠이 안왔습니다.
진짜 매일 빠따 안맞으면 언제맞을까 두려워서
빨리 맞는게 기다려졌다고 하시네요...
@@에쎄-x1v 아무 이유없이 선임 들이 그냥 구타 한적 있나요?
정말 과묵하신 제 아버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군시절 하루도 안맞는 날이 없었다고ㄷㄷㄷ 빨리 때리고 취침시켜주는 선임이 최고였다고;;;
선임한테 죽을떄까지 쳐맞아도 아무도 뭐라안하던 시절
선배님들 나라 지켜주시느라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덕분에 저 포함
많은 아이들이 안전하게 자랄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16군번 올림
제가 중학교 3학년일때 군생활하셨군요 님도 고생하셨습니다 초등학생때 군인들 보면 멋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초등학생때 하늘에 전투기 날아다니는거 보고 엄청 웅장하고 멋있다고 생각했지요
저희 외할아버지가 6.25 참전용사신데
전쟁3년+이후 군대3년 하셔셔 총 6년 군복무 하셨는데 진짜 재미난 썰도 많고 흥미진진한 전쟁썰도 많은데 여기서 다 적을순 없으니 거두절미하고
제가 입대할때 본인 군생활 재밌었다 하시니까 제가 할말이 없더라구여 ㅠㅠ
진짜 영상속에 나오시는 어르신도 respect하고 멋지시네요.
아 물론 저희 할아버지는 연세가 90이 넘으셨는데도 정정하십니다!
정말 옛날에 군대 다녀오신분들이랑 비교하면 정말 군대 좋아졌다고 느껴지긴하네여 ㅎㄷㄷ
대단하시네요 ㄷㄷ.. 아직 건강히 살아계신지
저희 아버지 80년 5월에 만 18세 나이로 부사관 입대하셨는데 입대사유가 가난해서였답니다... 큰아들이라 나라도 군대가서 먹을 입 하나 줄이고 얼마 되지 않는 월급으로 집안 살림에 보태야만 했기 때문이었다는.. 참고로 당시 짬밥은 그냥 반찬은 늘 김치 한 종류인데 그것도 제대로 된 김치가 아니라 배추에 고추가루 버무린 정도고 고깃국은 구경하기도 어려운 데 소고기 무국이라고 해서 나오면 살코기는 하나도 없고 지금으로 따지면 소고기 굽다보면 나오는 그 허연 기름덩어리를 우려내고 또 우려내서 고기 냄새만 나게 해서 먹었다고 합니다.
40년동안 군복을 가지고계셨다는것도 대단함 그래도 당시 군생활한것에대해 자부심이 있으셨던듯
70년대 사병은 제대하면서
반납하고 예비군복 (개구리복)으로
입고 나왔습니다.
참고로 저도 유신군대 시절
80년대도 그랬을것 같은데요...
그리고 국방색 군복도
병장되면 군복이 물이빠져
하늘색 비슷하게 바랍니다.
아마 새로 장만한듯...
그리고 쌀 보리 비율이 2:8도 아니고요
과장이 심한듯...
@@산군-t1q 맞습니다,,,,저도 84년도 제대했는데 그때는 저 국방색군복은 제대할때 반납하고 일명 개구리복이라고하는 예비군복을 받았었죠....
@@산군-t1q 핵대중 노알라가 가도 부대가 뒤집혔을 시대가 있었는데 아예 육사출신 대통령이 방문하면 군단 완전 난리날듯 박정희 전두환 방문ㄷㄷ 당시 전군 실세 하나회 소속이던 박희도 준장이나 심지어 장세동이나 허삼수가 방문했어도 미싱 ㅈㄴ할듯
89년 군번인데 부대번호,군번 아직도 기억합니다.
군복도 그대로 있습니다.
90년도 까지는 구타가 조금씩 있었으나 그보다 얼차려는 진짜 매일 아침마다 취사반 앞에서 한따까리 무조건 하고 밥 먹었음.그것도 91년도 부터는 진짜 거의 없어졌습니다.89년말 군번까지는 진짜 80년대 군번이랑 같은 군
생활이라 좃뺑이 쳤는데
90년대 들어서서 부터 군대가 정말 눈에 눈에띄게 좋아졌음.
민무늬군복과 얼룩무늬 군복으로 모든 군생활의 차이가 구별된다고 보면 됨.
85년 8월 병장 만기전역. 그때 병장 월급 생생히 기억나는데, 4500원이었습니다. 그래도 3,6,9,12월은 보너스 100% 그래서 9000원 받았습니다. 그리고 흡연자는 매달 담배 15갑, 비흡연자는 담배대신 매달 1500 원 나왔습니다.
보너스까지 8천몇백원 받으면 P.X서 뽀지게 회식함~ㅎ 왔다빵120원. 진주햄소시지200원. 쿨피스1L짜리 400? 원. 컵라면 ? .. 부대앞 중국집서 짜장면 300원? ..
82.6~84.12월 백령도 6여단2대대에서의 옛추억.
대한민국국군 파이팅~~~~~..
와 짜장면이 300원...
덧붙이는 글
80년대는 일병 이등병이
PX 가고싶다고 마음대로 가지도 못했다...
필씅 !6여단 2대대 5중대 570기 입니다 ㆍ
안재환 반갑네 후배님^ ^ 570기면 1987년 봄군번이겠군 4~5월? 내사촌동생이 565기인데 87.초 추울때간 기억.
저는 97년 입대했지만 보너스는
없었어요.
특수부대라 보너스가 있나요.?
저도 81년 9월3일 논산훈련소 수용연대 입소 조용필 3집 미워미워미워 팝송 아바 태풍 애그니스때 생각이 납니다.
1974.3월 해병268기네요.
그때 이병 급여가600~800
원 이었다오.(올라서800원)
병장은2400원 조금너은 것
같구려,
전역한지 45년이 지났지만
군대 얘기를 들으니 감회가
새롭구려.
열악했던 군생활환경이 나
아진걸 보니 흐뭇하네요.
대우의 문제가 아니라 군은
기강이 우선이며 또한 지구
력이 있어야 되지않나 싶구
려~^^!!
어휴 도루묵두부국에 지금
도 고개를 젓구려,
취침전 선임들의 이유갖지
않는 이유로 기수집합하여
좋지않는 악습으로 내려온
HMG 총열로 취침전 빠따
따를 때리는 기합이라는 명
목하에 휘들렀는데 지금은
안녕했겠지^^
그땐 부대이탈도 많이 생각
했지만 이머님 생가하며 꾹
참고 병영행활을 종료했는
데 무심한 세월이 빠르네요.
그래도 다시오지않을 젊음
이 그립구려.
모두 건강하시길~^^!!
맛,져요
ㅋㅋㅋㅋㅋㅋㅋ 저런분들도 아들 보낼때는 군생활 편하길 바라십니다. 저도 핸드폰을 쓴적 없고 월급 병장때 20만원쯤 받았었지만 최근 군대의 변화 좋게 봅니다. 긍정적인 효과들 기사난것도 많이 봤구요. 그래도 아는 사람이 최근 군대가면 요즘 군대 개빠졌네 라떼는 말이야 이러구요 ㅋㅋㅋㅋ
대범이형 요새 썰빵에서 무기력해보옇는데 요새 열일해사 보기좋다 형 코로나 조심하고 자주자주 올려줘용. 썰빵에서도 유튜브도 화이팅
요즘군대 재대해도 한번더 가고 싶겠다.
그럼 재입대 해라
@@PUBG_5HARK 나이 땜에 안바다줌
와.. 딴건 뭐 요즘 군대 좋아지면 좋은거지 라고 생각하면서 영상봤는데 오히려 저는 이등병이 병장한테 메뉴 물어본다는거에 엄청 충격 먹었네요 ㄷㄷ 대박이네
저는 19군번인데요. 정말 맞습니다. 병장때 편해야 정상인데 오히려 그 반대임. 후임이 선임같고. 거꾸로됨.
병장되면 오히려 편해야정상인데 그게 아닙니다. 저때도 그랬고 그래요 ㅋㅋ.. 부대마다 차이있겠지만 제 기준입니다.
저보다 일찍가신 선배님들 존경스럽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이건 군대가 아닙니다. 이게 군대입니까..?
05군번인데 나때 이등병이 병장에게 메뉴 물어본다? 바로 폐급 강등에다 그 이등병 전역날 까지 조리돌림 당하고
후임들한테 먹힐 정도의 질문이죠.
저희 아버지는 80년대에 해사 졸업 후 소위 임관하고 뭣도 모르고 udu장교로 들갔다가 죽을만큼 고생했답니다
그리고 아직까지 군복무 중입니다 ㅋㅋ
97년도에 근무한 제가 현시점 병영생황을 봐도 너무 많이 바뀌었고 어이없는 부분이 있는데 선배님이 보시는 상황은
그보다 10배는 넘을 듯 하네요.
가장 왼쪽에 앉아계신 구민성이란분 오늘 예비군 훈련장에서 퇴소하면서 만났습니다 인사도 잠깐 나눠봤는데 진짜 실물로 뵈니 훨씬 잘생기시고 멋지신거 같아요 😄👍🏻
6.25때 전투복과는 다르지만(43 HBT(한국전~월남전 초기) -> 정글복(월남전)(국내 부대는 작업복 비스무리한 누런색 전투복이 많았습니다) -> 70년대 중반 부터 보통 저희가 아는 민무늬가 나옵니다 당시 민무늬는 군용 스탬핑 있는 자리에 그 전과 동일하게 육 군 스탬핑이있고 그 후에 군용 스탬핑이 생깁니다 그 뒤로는 개구리와 지금의 디지털 전투복이 되겠네요
군대는 계속 좋아지고 편해지되 훈련은 실전처럼 제대로 하면서 있는게 좋은거같습니다 오늘도 추위와 싸우시며 국방에 힘쓰시는 국군장병 여러분 감사합니다
요즘 군대 많이 좋아졌지 뭐..
나 때만 해도 군생활 정말 힘들게 했었는데...
냄새나는 화장실에서 고참들한테 뚜드려 맞으면서 초코파이 먹어도 맛있게만 먹었었는데..요즘 군인들은 눈물의 초코파이 맛을 알려나..
이등병4호봉때 근무 끝나고 먹었던 뽀글이맛은 아직도 생각난다ㅎㅎ
18년 2월 동기들아 잘지내지?보고싶다!!!
죄송한데 18년 2월 이 고참한테 화장실에서 뚜두려맞았나요?
이등병에 호봉이 어딨나ㅋㅋㅋㅋㅌㅋㅋ
18년 2월 군번 ㅋㅋ 짬찌네
와....저희 아버지보다도 훨씬 선배님이시네요!^^존경합니다!(저는 13년도 10월 군번입니다.)
할아버지: 응 나 월남 갓다왓어ㅎ(해맑)
ㅋㅋㅋ
아버지들이 군대얘기하시는걸 저희보다 좋아하는 이유
*그래도 예전이나 지금이나 남성만 강제로 군대끌려가는건 똑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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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요 에휴.... 근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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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퉁퉁이 여자들은 군대는 공짜 캠프라면서 정작 자기들도 가게해주겠다니 싫다고함
???:여자는 약한데 오또케 가욧!! 변명하는게 앞뒤가 안맞음 차라리 벌레 많아서 캠핑 가기싫다고하는게 더 그럴싸함
에디슨 ・ 1년 전 님은 님의 어머니와 누나 동생도 군대 갔으면 좋겠어요? 전 한번도 그런 생각 갖지 않았는데 전쟁이나면 여자들도 의료 보급 등에 다 도움이 되는 일들을 해야 할 겁니다. 역사적으로 봐도 다 그렇고요~
ㅋㅋㅋㅋㅋ 칸수 틀리셨음..
칸수는 그렇게하는게 아니라
[자세히 보기]
아버님 컨텐츠를 잘뽑아주십니다.
아버지가 항상 말씀하시던게 월급받아서 맥주한병 사마시면 월급이 없으셨다네요ㅋㅋ 정말 고생많으셨죠
군대에서 맥주를팔아요?
@@ggigdhihtg 휴가가서 드셧건거나, px에서 무알콜술드시거나 하셧겠죠
Px에서 무알콜 술이나, 술팔아요(알코울술은 간부,장교분들에게 팔아요
나가서 사드시거나 하셨겠죠?
양배추 그건 나도 알죠 소대 회식하다가 가끔가다 먹고 근데 80-90년대에도 px에 무알콜맥주가 있었어요?
내무반 바닥 공사할 일이 있어서 침상 다 뜯어냈던적이 있었는데 거기에 오래된 술병들 굴러다니다군요.. 생전 처음보는 술병들 이었습니다. 신기허기도 하고 이걸 어디서 구해서 쳐먹었지?라는 생각이 제일 많이 들었음.
정말 좋은 컨텐츠입니다 예전 기억 새록새록하네요^^
군대라는 공통분모로 세대단절된 지금 이렇게 얘기한다는게 좋은 아이템이네요.
17년 군번입니다 위에 선배님들의 짬밥에 숟가락얺지 못할 군번이란거 잘압니다.
제가 하고 싶은말은 그저 지금 후배전우들이 군대 훈련중 다치지만 않았으면 좋겠네요
저는 군생활중 왼쪽 검지손가락 골절과 인대손상으로 아직도 검지가 잘 구부려지지 않아요 허리디스크도 군대에서 생겼고요
후배님들 다치지말고 아프지말고 정신적 육체적으로 건강히만 전역하면 그게 최고의 군생활이에요 모두 몸조심하고 gop gp에서 이추운날 근무서는 후배장병들도 감기조심하세요 더더욱 다치지말고요
대범한 tv 군대편은 봐도봐도 재밌다ㅋ
항상 응원합니다!!
더 재미있는 영상 많이많이 올려주세요!!
젊은 남성들이 일찍 군대갔다온 현 40대 이상 남성들 존중하는 만큼 기성세대들도 무조건 요즘 군대 편해졌다 이 정도는 군대가 아니네 라고 하기보다는 수고했다고 말해줬으면 어찌됐든 남자가 희생하는 사회니까
55년생이신 우리 아버지 들어보면 짬밥이 밥,된장국,짠지 세개였다는데
솔직히 지금도 드럽게 맛없는데 예전에 비하면 훨낫긴함 ㅋㅋㅋㅋ
요즘 부대마다 다르지만 거의 잘나오더라
요즘엔 잘나오는거죠 ㅋㅋㅋ 진짜 비빔소스만 아니면
너무 재미있어요~~^^ 대범님 팬입니다~~^^
사실 얼차려도 군법에 명시되어있어서 합법적으로 줄 수 있는것으로 압니다. 대신에 군계급별로 줄 수있는 얼차려가 나뉘어져있고 영상에나온것처럼 횟수와 시간도 다 정해져있어요~
하지만 요즘엔 그런 얼차려도 주지않는답니다 마음의편지가 무섭기때문이죠
육군규정 개편되고 병상호간에는 얼차려 자체가 없어져 버림 . 당직하면서 이런저런 규정 읽어보니까 윗대가리들이 여론으로 국방부터치 하는거 귀찮아서 규정을 개편해서 병상호간에 격차를 확줄여버림 그러니까 개판이지
큰형님고정가즈아👍👍👍👍👍
입담장난아니십니다😊😊😊😊😊
얼마나 위에서 해처억는게 많았으면 일주일동안
김치만나왔을까
그당시에는 부식차 오기전에 미리 선점해서 빼돌리지 않았을까 추측됩니다.
이승만 시절에 부식 거의 빼돌려 국방청년회인가 국방준비대인가 행군하다 많이 돌아 가셨다는 기사 본적이 있슴다
어디던지 슬기로운 지혜와 도덕성이 없으면 나가리판 나는것 같슴다ㅠ
@김세민 국민방위군 이군요
감사합니다
군대도 감찰대가 있어 대놓고 못합니다 만약에 김치만 주고 배고파서 탈영하거나 자살한게 후에 밝혀지면 부대장 옷벗어야 되는데 그렇게 않합니다~ 군 한달 식단표 대로 거의 맞춰 줍니다( 82년 1월~ 84년 7월까지 육군 병 생활했읍) 시골 읍 중류 가정 에서 군에 갔는데 집에서 보다 식단이 좋았읍니다. 맛이 떨어질때도 있었지만 내가 알고 있기론 육본에서 한달 식단표 내려주는걸로 기억합니다 취사장 내 정면에 차드병이 작성해서 한달 식단표 게시하고 그대로 부식수령받아 취사병이 식단표 대로 요리해서 배식합니다
해쳐먹는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다만 나라가 가난하냐 아니냐가 다른거죠
81년이면 진짜힘드셨을듯. 80년대도 89년 맨끝자락온후배분들은 26개월로 바뀔무렵이라 혜택가성비체감 역대비교 젤조았을둣.. 분위기나.생활시설.의식도 만이 선진화되고 며칠에 한번씩털던 줄빠타도 그때 90프로이상 사라진듯.
16군번 삐약이는 그저 존경합니다
이누야샤 하이
저희 아버지가 80년도 해병대 입대하셨는데 그때 해병대 이병 월급이 2천원이 채 안됬다네요 근데 그것마저 고참들이 갈취를 많이해서 상병전까지 월급을 받고도 남은게 거의 없었다고합니다
하도 사람을 쇠빠따로 패니까 탈영하는 사람도 꽤 있었고 아버지는 자살한 사람 딱 한번 봤다고합니다
아가들아 74년도 이등병은 600원받았단다 병장은 1200원 담배 은하수 한산도 150원
세영 많이 받아서 죄송합니다!!!!
어르신 무탈하십쇼!!!
어르신 건강하십시오 전역10년차인데.. 와..74군번...고생하셨습니다
@Игорь Ян 저희아버지랑 비슷하신것같습니다.
@Игорь Ян 20원....와.... 지금 20원으론 저금통에 넣어놓는거밖에 할게없는데...
충성! 현역상병입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우리 아빠 76년도인가 그때 군대 갓던 얘기해줄때 놀랏는데..지금은 1년6개월? 이지만 그때는 말로는 3년 하지만 막상 3년채우고 부대안에 일 생기고 저때는 남북고조도 심해서 저절로 전역이 연기.. 그래서 저때 군대간 사람들은 기본 3년6개월이상은 다하고 나오셧다고..
아빠 정강이 보면 쪼인트 까여서 평생 상처 아직도 있음.. 똥통에 대가리박기는 기본
심심하면 불러서 줘패고 하루라도 안맞으면 불안하셧다고 하심.. 자다가도 갑자기 무방비 상태에서 맞아서 기절하셧다고..
하.. 또 생각하니 눈물나네 우리 아빠...
존경하고 감사합니다 ㅜㅜ
나 군생활 이렇게 했다 까지는 꼰대가 아님. 근데 요즘 군대가 왜 이러냐며 본인 군생활 얘기를 꺼내면 꼰대임. 그건 곧 요즘 군대가 그때처럼 바뀌어야 함을 의미하는 거니까 ㅋㅋ
인정합니다
맞는 말씀이십니다.
요즘 군대 좋아졌다고 이 말듣고 기분 안좋은 사람있던데 그만큼 군대가 좋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생각하면 좋겠다
나는82년10.27일 입대했습니다만 지금병사들 먹는 식단은 그당시 사단장도 저렇게 못먹었어요 나는당시 모병기수 하사관 출신입니다만 처음 입대해 육하교 10주 거치고 나머지 15주 교육 받으러 주특기 병과학교에 입소해서 가자마자 더블백 입에 물고 내무반 들어가서 관물대 상단에 발올리고 손깍지끼고 한 한시간여를 시키는데 진짜땀이 내무반 마루침상에 흥건하고 깍지낀 손가락은 새카맣게 죽어가는데 구대장들이 하는말 너희는 모병기수이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못하겠으면 다시 사회로 갈수있다 갈사람가라.그렇지만 우리동기들은 한사람도 그런사람없고 끝까지 버티어냈습니다 이런말은 진짜 사실입니다 요즘 군대는 너무 빠졌어요 심히 걱정입니다
요즘 군대가 빠졌다고요???
세월이좋아지면 빠지는것도있어야지
미군들은 군이생기자마자빠졌다고보면됨니까 자기위치에서맡은바열심히하고있으니걱정마세요
한그릇먹고싶으면 자대방문해서한그릇드시고오세요
82년도군대새활도 빠져있을땜니다
창설군대이후로는전부다빠져있음
저는 부모 세대고 요즘 현역병들 정도면 자식뻘 쯤될진대 나이먹은 사람이 할일없어 헛소리 할까요? 다보는눈이 있고 생각이 있고 그러니 그러지 왜 군기가 충일하면 뭣때문에 속된말로 빠졌다 그러겠어요? 열심히 군생활 하는 사람들한테. 어른들이 얘기하면 우리가 문제가 있구나 하고 참고하고 고칠 생각을 해야지 지금 비아냥 거리는식으로 댓글 다나요? 한한달전 우리 막둥이도 병장 제대 했지만 도데체가 군인 같지가 않아요 군복만 입었지 ..제대하고 한일주일 지나니까 군대 가기전 하고 똑같아 지드만요..
지금이몇년도입니까
당신이제대한지가언젠데ᆢ
빠르면손주볼나이가다됐을건데
자제분도 제대한나이에빠졌네마네하는건 쪼께머시기하네요
당신비교해 60년도에군생활한분한테비교하고물어본다면80녀도군생활이군이들이가하며 속된말로빠졌다하지않을까요
내를기준으로보면 자신까지만고생한것같고밑으로는군생활답지않타는생각은누구나들수있는겁니다
나름국가를위해군에가서국민의의므를다하는훌륭한젊은이들에칭잔과위로는못해주어도 빠졌니어떻니하는건선배로서오른된도리로서가아니라생각합니다
그야말로옜날군생활생각나면 자대방문하여 옜날사단장식사보다더잘나온다는점심식사한끼하며 아련한군시절추억에젖어보는것도괞찬지않겠어요 ㅋ
91년 2월군번인데 딱 저 녹색 전투복을 입었습니다. 군번도 1로 시작하던게 91년부터 91로 시작했습니다. 그해 10월에 전군에 새로운 얼룩무늬 전투복이 지급된걸로 기억합니다. 90년대 군번인데 80년대 군번보다 정말 빡세게 훈련받았습니다. 저 아래 75년 군번 대선배님 계시는데 제가 아는 어르신이 그 군번이고 수송병인데 군생활 내내 술을 드셨더라구요. 전 군대에서 술을 먹는다는건 상상도 못했습니다. 화랑담배 정말 좋은것 태우셨는데 전 백자 끝난다음 군용솔 받아 피는데 와...이게 사람 죽이는곳이구나...생각...모든 군복무 사병출신들이 생각하는게 그시절 그 뽀얗고 예쁜얼굴. 지금은 파삭파삭 늙어버린 몰골. 왜 우린 군 미필자와 나라위해 아무것도 안해본 그들의 권리가 군복무자보다 더 우선시되는 사회가 되어있을까요
저랑 비슷하시네요.
그당시 25사단
진찌 이런분들께는 꼰대라고 하는게 아니다
10년대때 21개월이였는데 그때도 시간 더럽게 안갔었는데
저분들 있던 시절이야 뭐.. 얼마나 지옥이였을까..ㄷㄷ
헐 전역 40년차 ㅋㅋㅋ 선배님 존경합니다.
저희 할아버지는 6.25전쟁때 태어나셔서
군대생활은 여기에 계시는 할아버지분은
80년대 군대생활을 하셨지만
저희 할아버지는 70년대 군대생활을 하셨습니다
5:56 "우리나라 사람들은 매가 약이야"
ㄹㅇ 찐 팩틐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사진관 스튜디오를 운영합니다 군인들 전역하고 우정사진촬영 많이 옵니다
하나같이 똑같은 말하더라구요 '요즘 군대가 무슨 군대에요? 후임들 무서워서 선임들이 눈치보는데'
이렇게요 그래도 그 갇혀있는 자유를 뺐기는 그 시간자체가 힘들지 않냐? 물어봐도 본인들이 군대같지 않다고
말하는걸 보고 많이 바뀌긴 했구나 싶더라구요 아무래도 군대란게 전시상황에서 국민들 목숨을 지켜줘야하는
임무가 기본으로 주어지기때문에 어른들이 보시기엔 요즘 군대는 눈쌀찌푸려질 상황들이 많긴하겠죠 ㅎㅎ
80년대 군생활 여러모로 힘들었던거 인정하는데 그렇다고 지금군대 편해졌다 좋아졌다 하면서 비하하진맙시다. 어찌됐든 군대는 군대죠.. 다만 요즘 군기빠진거는 인정. 보급이나 시설은 좋아지되 최소한의 군기유지는 했으면 하는데.. 병사들이 간부들 존나깔본다는 얘기듣고 어처구니 없다 생각했네요 - 지나가던 01군번 -
군대인것도 사실이고 편해진것도 사실이고 좋아진것도 사실이고 솔직히 먼저 같다 온 입장에서 환경 좋아지고 부조리 없어진건 참 다행이라 생각하고 좋은데 위계질서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분위기는 이해 못해주겠음. 학교도 마찬가지. 학생은 선생님을 존중하고 무서워 해야하고 군인은 상명하복의 위계가 지켜져야 하는건데 자꾸 설탕물 뿌려서 안쪽부터 썩혀가는거 같음.
툭까놓고 말해서 병사가 간부를 좆으로 보는건 간부 능력 부족입니다
요즘 군대는 오히려 간부가 병사를 통제하기에 더 좋은 환경입니다
병사간 구타 및 가혹행위가 줄어들면서 간부의 역할이 더 커졌습니다
교육내용 숙지 안하고 관물대 엉망이고 총기상태 엉망이고 훈련 개판으로 받고 하는것들에 대해 예전엔 병사들끼리 쥐어패면서 바로잡았다면 이제는 간부가 규정대로 처벌해야 하는 시대인거죠
간부가 이러한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수행만 했다면 병사들이 간부를 절대 쉽게 못봅니다
병사들이 개판을 치건말건 나몰라라 내버려두거나 병사들을 이끌 능력 자체가 안되는 간부들이나 병사한테 먹히는거죠
병사들 월급보다 몇배씩이나 국민세금으로 받는 군인이면 그 정도 책임감과 능력은 있어야죠
와 01년도면 진짜 힘들게 군생활 하셨겠네요..그때만 해도 사지방같은것도 아예 없었다 들었는데..
9904002* 줜장 잊혀지지 않는다!!
나도 90년대 초중반 보다 편한건 인정 근대 어느 정도 군기는 있어야 한다고 봄 얼마전 하사관이 성 전환수술? 하고 짤린다고 오히려 난리치고 이런거 보면! 욕나오더라!
21년군번으로 착각했네 ㅋㅋㅋ 다시보니 01년군번이네
76년 판문점 도끼사건때 전역 6개월 남았던 공군병장이었음 1.21사태때 전례가 있었기에 그때 복무기간 연장된다는 유언비어가 돔 그러면 하사달고 제대하게 되므로 예비군 훈련을 35세까지가 아닌 45세까지 해아 되니 신경이 곤두섬(병장봉급 1600원)
그때 공군도 구타 심했나요?
저는 군악대라 더욱 군기가 쎄서 구타가 엄청 많았습니다
@@ckchung5139 어우..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때 구타가 난무했던 이유 중에 하나로 제도적인 부분도 한몫 했음.
왜냐면 그때는 사고치고 영창을 갔다와도 복무기간이 안 늘어났기 때문에 고참들이 애들 패고 싶으면 뒷일 걱정 안하고 마음껏 팼음.
어차피 편하긴 영창이 더 편했음. 실무가 워낙 힘들어서 영창이 더 편했는데 복무기간까지 안 늘어나니 패는데 거리낄 것이 없었음.
전과에 남지 안나요?
자대영창은 늘어나지 않고 똑같지만 육군교도소 즉 남한산성 다녀오면 형기날짜 일수 대로 늘어남.
운전병근무하며 사고나서 자대 영창 10일 다녀와 봤는데 자대영창 편하다는 소린 다 헛소리.
범죄가 아닌 일반 잡범이랄까 이런 병들은 취사반 가서 새벽3시부터 일어나 죽도록 노동했었음.
진짜 일하다가 처음으로 말로만 듣던 코피도 터져봤음.
이런 재미 있는 컨텐츠를 이제야 봅니다.
추천드립니다.
저도 99년 8월이 전역인데.캬
우리 아버지는..어.. 비슷하시네..
요즘은 계급이 낮을수록 힘이 쌔잖아...
마편.중대장.대대장.헌병마편..
이병의 종이 1장에 대대가 웅성웅성..
울아버지군복이네.. 군복에서 그때의향기가느껴진다
좋아지는건 분명히 좋은거지...그런데 군기는 진짜 필요할듯 전쟁나면 확연히 차이가 날것이다....
80군번입니다
옛날생각이나네요
그때가그립네요
15년 군번인 내가 볼때 요즘 스마트폰을 쓴다는건 상상도 못할 정도인데. 제가 감히 말을 못하지만 40년전 군생활하셨던 삼촌뻘 선배님은 이병~병장 월급으로 어떻게 버티신거지...
대범씨 저랑 비슷하신데, 따지고보면 우리가 젤적을때에요..물가상승율로보면, 80년도 짜장면으로 치면 300백원정도 였고 3900원이면 13그릇. 우리때 1만3천원 받을때 짜장면 약 2500원 5그릇정도 밖에 못사먹었음.
지금 50만원정도 받는다면 짜장면 약5천원 100그릇? ㅋㅋ 지금이 엄청 많이 받네요ㅎ
내가 77년3월 군번인데 내가 입대할 당시 명찰은 흰색 이었음.
그러다가 그해 8월인가 그즈음 녹색명찰로 바꼈음.
난 33개월 하고 나왔음.
수송부 근무했는데 하루라도 빳다 맞지않은 날이 없이 구타가 너무 심했음.
존경합니다.박통시절에 복무하셨군요.
오메... 고생많으셨어요 존경합니다 bb
7.80년대 수송부 기름밥 먹은 애들 군기는 최고지.
어디 비교 될 군대가 없었지.
수송부 악마들. 정신병자들 천국이지.
매일 저녁6시부터 9시까지 얼차러와 구타.
밤12시 집합.
아침 기상 얼차려 구타.
병장때 처음 혼자 피엑스 갈수 있음.
@@ho1322 선배님 충성!!
77년3월입대 610.
광주 상무대 건단 210대대 수송부 출신입니다.
동기들 논산군번 1274****
반갑습니다.
충성!!
@@mississippi7072 대구 2수교 77년17기 입니당.
울부대 경례 구호는 필승이었습니다.
필승!!!
요즘 군대 정말 얼차려 구타가 없다고요? 좀 걱정되네요.. 구타는 그렇다고 해도 얼차려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네요.. 체력과 정신력을 키우는 측면이 있는데... 얼차려는 재미로 주는 것이 아니었는데... 군대라는 조직이 너무 좋게만 해도 돌아가기 쉽지 않을텐데... 전쟁나면 전투나 제대로 수행할런지 모르겠네요..
얼차려 없어도.아무지장없습니다ㅎ폭언이 있으니깐여
옛날에는 훨씬더 힘들었던거 아는데 이거보고 요즘애들은 전혀 안 힘들고 편하기만 하다고 생각 안했음 좋겠다.20대를 날리는건 똑같은데
날린다니요, 비록 아까운마음은 이해한다만은 나라지키고 오는건데..
피터파커 솔직히 군대가 무슨 도움이되나요? 반박해보세요. 참고로 전 군필임
전 17년 7월군번 3사단 18연대 1대대 나왔습니다, 도움된다라기보다는
휴전인 국가에서 당연히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오는게 정상아닌가요?
남다새@끼가 국가 2년지키고 온거가지고 도움안된다며 찡찡되는 마인드는 고추 때는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피터파커-x4x 다치거나 죽으면 느그아들인데 먼개솔 노예마인드가 박혀있네
@@피터파커-x4x 너나그렇게처생각하지
2000년대 중후반부터 구타나 가혹행위가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음.
중고등학교도 체벌이나 일진놀이 등등 그떄부터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함.
지금은 선생이 애들한테 떄리지도 못하고 혼내지도 못한다는데
군대에서는 폰쓰고
선진화되어서 좋다 하지만
물러서 공부 열심히 안하거나
군생활 제대로 안할까봐 걱정되긴 하지.
2012년 군번이다.
요즘 라떼에 비해서도 군대 ㅈㄴ 좋아졌다.
아~나도 이제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나이라니 ㅠㅠ
86년 3월 입대~88년 9월제대한 의정부군번(철원근무)입니다~재밌네요~삼 사천원한 월급에 대한 기억,고참되어 내무반에 뒤집어 까진 아련한 추억,특히 한겨울 뻬당에게 라면 끓이라 해서 9시정도에 내무반 뻬치카에서 라면먹던 추억 아련하네요~추억은 아름답습니다~~백골 화이팅~
와 병장월급이 3900이면 난 뛰어내린다... 진짜 대단하십니다
선배님들 존경합니다 저는90년에 제대한 전방 공병대 운전병이네요 운전병들 군기 쎘지요
원래 기름밥먹는 부대가 군기가 쎄죠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