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훈련소에서 자대가다가 한시간정도 시내에 있던 기억이 있는데 기차에서 내려서 역앞에 앉아있는데 햇살따뜻하고 좋구나 벤치에 혼자 앉아서 하늘보고있는데 박효신 눈의꽃 노래가 나옴 진짜 천국이였다 그노래만 들이면 그때 느낌 냄새 기분 한번씩 올라온다. 그노래는 나한테는 자유야
선배님들 존경합니다. 22군번 짬찌입니다. 전 수료식 끝나고 6시간 정도 부모님과 함께 영외에서 면회할 수 있도록 시간 받았었습니다. 혼란스럽기도 하고, 내 의지대로 박탈당한 1년 6개월을 생각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부정적인 생각은 자신을 갉아먹기만 할 뿐이라는 것을 생각하며 항상 두려워하기보다 긍정적으로 부딪히는 것을 선택했었습니다. 역시나 그게 답이었습니다. 군 생활은 생각보다 짧았고 나름 많은 추억들과 인연들을 제게 안겨주었습니다.
100일휴가때 양구에서 버스타고 집에올때 그 설렘은 잊을수가없다 아직도 가끔 군생활 군전우들이 꿈에 나온다 근데 꼭 한번 추억삼아 가보고싶던 2사단이 이전해 없어져서 이젠 진짜 추억으로만 남았네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데 신교대때 첫 엄마편지받고 울까봐 화장실에서 읽는데 편지에 엄마는 매일 아들이 자던 침대에 앉아 아들 생각한단다 그 구절이 왜 그렇게도 슬프던지 펑펑 울었는데 지금은 다시 욕먹는중 다시 군대가라는 소리 달고사신 우리엄마 사랑합니다
올~ 통신학교 출신은 보통 버스 타고 들어가는데 우리때 레파토리가 “너희들은 선택받은자들이다. 이등병의 천국에 온걸 환영한다” 였는데, 그때도 그랬나요?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당시엔 진짜 훈련소에 있다가 통신학교 가면 겁나 현대식 건물에 깨끗한 내무반에 복도에 생수통 있고 시설 엄청 좋아서 눈이 휘둥그레 ㅋㅋ 학과 라고 하고 교수님이라고 불러서 대학온 느낌이었음 ㅋㅋㅋ 적당히 졸기도 하고 한눈팔고 px가고, 담배도 오며가며 자유롭게 물론 열중쉬어 자세로 피우긴 했고 직각보행 하던건 기억나네요. 물론 그 천국에 있다가 102보 거쳐 강원도 양구까지 팔려가서 그지같은 벽돌 막사에서 생활하면서 꼬이긴 했지만 ㅋㅋㅋ
98군번인데 신병 때 말년고참이 너 전역일이 언제냐 묻길래 당연히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라고 모범?적인 답을 했는데 괜찮으니까 말해보라고 해서 2000년 7월입니다! 했더니 2000년??? 밀레니엄? 21세기??? ㅋㅋ 야 21세기가 올꺼같냐? ㅋㅋㅋ 저얼대 안와~ 이러면서 조롱함.. 근데 그 말 들으니 진짜 안올거같더라.
89년 12월 어느날 이른 아침 포항서 출발하여 동대구역을 거쳐 늦저녁 서울역에 동기생 70여명과 함께 하차 하였다..오와 열을 맞춰 직각보행 하는 해병대 하사관들을 바라보던 시민들의 박수 갈채를 받으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60트럭에 승차 하였을때 무언가 잘못됨을 느꼈다..제기랄..트럭 뒷화물칸에 전방 바람막이가없는 차량들이었다..달리는 속도 그대로 바람과 눈을 맞으며 서울역에서 김포 사단사격장까지 가는 그 시간이 그렇게 추웠었다..그 화물칸에 앉아 있던 우리들은 이제 50줄을 훨씬 넘겨 중늙이가 되어 있다..그때 그 동기들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그립다..나에게 군대란 내 인생의 소풍 같던 삶이었다..다시 갈수만 있다면 갈수 없겠지만 갈수 없겠지만 갈수 없겠지만 갈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08년도에 신병교육훈련 마치고 자대가서 백일휴가 나올때 진짜.....눈물났다 사화에 나와 누리는 사소한거 하나하나가 정말 큰 혜택이고 자유가 얼마나 좋은건지 아직도 잊을수가 없다. 밤에 군것질이땽겨 편의점으로 나와 물건을 사는것도 행복이였다. 이처럼 자유가주는 호의가 어느순간 권리가 되면 자유가 자유인지도 모르고 이제 남과 나를 비교하는 시각으로 삶을 본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경미하게 시기하고 나는 크게 부러워하지 않은 사람처럼 어른처럼 마음먹으려하지만 결국 그런 사소한 시기심들이 쌓여 세상에 불만을 가지기까지 5년도 안걸린다. 남이 가는 대학 남이 가진 직업 남이가진 자본소득 이모든걸 비교하고 더가진자들에대해 의문을 품으면 의문은 어느순간 위법한 인간으로 까지 바라보게 의심을 가지게 된다 정치인들의 고도의 정치선동에 세뇌가 되고 그렇게 더불어민주당을 찍든 국힘을 찍든 개돼지로 살아간다 결론은 시기심이 나를 개돼지로 만들기까지 가는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안걸린다는것이다
연대 보충중대 대기하다 늘노리 대대 처음 도착해서 올라가는데 진짜 그 알수없는 기분은 평생 못 잊을거 같음 긴장되고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하고 중대 복도 지나는데 선임들 나와서 다 구경하고 중대본부 선임이 데리고 가서 밥먹는데 저녁에 와 아이스크림 나온것도 기억 나네요 벌써 10년전 ㅋㅋ
저때 뇌 세척했다가 다시 쓰는 기분임
ㄹㅇ
무인도에서 한 삼십년 살다나온 느낌 ㅋㅋㅋ
ㅇㅈ
ㅋㅋㅋㅋ
저때 잠깐 행복을 느낄때지. 곧들어갈 자대는 지옥이야.ㅋㅋㅋㅋ
진짜 훈련소에서 자대가다가 한시간정도 시내에 있던 기억이 있는데 기차에서 내려서 역앞에 앉아있는데 햇살따뜻하고 좋구나 벤치에 혼자 앉아서 하늘보고있는데 박효신 눈의꽃 노래가 나옴 진짜 천국이였다 그노래만 들이면 그때 느낌 냄새 기분 한번씩 올라온다. 그노래는 나한테는 자유야
저랑 비슷하게 입대하신듯ㅋㅋㅋ 04년에 입대했었는데ㅋㅋ
저는 05군번인데 맨날 엠씨더맥스노래틀어놓고 저녁에내무실청소해서 그노래들으면 내무실생각이;;
통제 없이 벤치에 앉아있을 수 있나요?
@@안대희-n4y미띤 ㅋㅋㅋㅋㅋㅋㅋ
04 7월군번 이등병때 첫 겨울의 눈의꽃ㅠ
오래전 휴가나오는 친구들이 사람 많은곳 가고 싶다고 했던게 생각나네요
명동, 강남역, 종각, 신촌으로 데리고 갔던 그시절...
ㅎ 자동차의 매연 냄세와 화려한 네온사인..북적북적 그리은 인파!^^
휴가나와서 그냥 멍하니 길에 서서
지나다니는 사람구경만해도 즐겁고 행복했던시절..ㅎ
민간인 구경이 제일 재미있는 시기죠 ㅎㅎ
저때쯤 편하다고 누군가 얘기해서 수색대지원했다가 평생 후회할짓을 했구나 싶었었지 그래도 휴가나갈때 전투모에 윙도달고 흉장도 박고 짜세는 나왔었지
선배님들 존경합니다. 22군번 짬찌입니다.
전 수료식 끝나고 6시간 정도 부모님과 함께 영외에서 면회할 수 있도록 시간 받았었습니다. 혼란스럽기도 하고, 내 의지대로 박탈당한 1년 6개월을 생각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부정적인 생각은 자신을 갉아먹기만 할 뿐이라는 것을 생각하며 항상 두려워하기보다 긍정적으로 부딪히는 것을 선택했었습니다. 역시나 그게 답이었습니다. 군 생활은 생각보다 짧았고 나름 많은 추억들과 인연들을 제게 안겨주었습니다.
저도 22 군번 ㅋㅋ
이제 진짜 대한민국 남자의 일원이 되었네요 고생했어요
@@styler892군대 안가면 남자 아니겠네
몸 안다치고 건강히 전역한게 중요하죠 고생하셨어요.
@@koon.g 면제냐 왜캐 꼬임?
100일휴가때 양구에서 버스타고 집에올때 그 설렘은 잊을수가없다 아직도 가끔 군생활 군전우들이 꿈에 나온다 근데 꼭 한번 추억삼아 가보고싶던 2사단이 이전해 없어져서 이젠 진짜 추억으로만 남았네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데 신교대때 첫 엄마편지받고 울까봐 화장실에서 읽는데 편지에 엄마는 매일 아들이 자던 침대에 앉아 아들 생각한단다 그 구절이 왜 그렇게도 슬프던지 펑펑 울었는데
지금은 다시 욕먹는중 다시 군대가라는 소리 달고사신 우리엄마 사랑합니다
신병교육 양구남면 31연대 백호에서 받았었는데 2사단 신병교육대대 구막사
@@nicego7533오~ 31연대 전투지원중대 근무 했슴돠
반갑고 추억 돋네요
연대 아저씨들이네 난 공병인데 ㅋ 터미널 무봉리순댓국 한그릇 때리고 가는게 룰이죠
저는 09군번 2사단 신교대였습니다. 1중대 구막사…
훈련소 수료 끝나고 바로 옆 생활관이 기관병 생활관ㅋㅋㅋ
같은 양구라 반갑네요 05군번 21사단입니다 ㅎ
저때 기분은 미필은 모름 ㅋㅋㅋ 군필자들은 수첩에 듣고싶은노래 먹고싶은음식 맥주 적어놓고 할거투성이인데 심지어 설렘 ㅋㅋㅋ
수료식하고 말레피는데 증말 어지럽고 짜릿했는데…
그 훈련소기간에 끊었어야하는데 후회중..
공군 기훈단에서 고작 몇주 갇혀서 훈련받는건데도, 최용덕관 근처 전천후나 사격장 언덕길 넘어서면 보이던 차도에서 달리는 차들만 봐도 마냥 신기하게 보이더라
ㅎㅇ 751기입니다 저도 이생각 했었는데 ㅎㅎ
나도 훈련소 5주 끝나고 대전에 통신학교 갔을 때 바깥을 보면서 신기했다기 보다는 그냥 휴가나가서 게임이나 좀 하고싶다 이런 생각을 했었음.
올~ 통신학교 출신은 보통 버스 타고 들어가는데
우리때 레파토리가 “너희들은 선택받은자들이다. 이등병의 천국에 온걸 환영한다” 였는데, 그때도 그랬나요?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당시엔 진짜 훈련소에 있다가 통신학교 가면 겁나 현대식 건물에 깨끗한 내무반에 복도에 생수통 있고 시설 엄청 좋아서 눈이 휘둥그레 ㅋㅋ 학과 라고 하고 교수님이라고 불러서 대학온 느낌이었음 ㅋㅋㅋ 적당히 졸기도 하고 한눈팔고 px가고, 담배도 오며가며 자유롭게 물론 열중쉬어 자세로 피우긴 했고 직각보행 하던건 기억나네요. 물론 그 천국에 있다가 102보 거쳐 강원도 양구까지
팔려가서 그지같은 벽돌 막사에서 생활하면서 꼬이긴 했지만 ㅋㅋㅋ
금새 인적이 뜨문해진다 싶더니가 ㄹㅇ ㅜㅜㅜㅜ 와중에 18군번으로서 오랜만에 스마트폰 터치하면 ㄹㅇ 터치스크린 처음 만질 때처럼 어색함
바깥 냄새는 달랐죠. 민간인만 봐도 설레였었잖아요
지나가는 못생긴 여자만봐도 설랬죠
훈련소 끝났을때 딱 담배를 끊었어야하는데.. 내 평생의 한이다
나도 내인생 유일한 금연이었는데..
지금 끊을 생각은 안 하고…
ㄹㅇ 이갑만 피우고 그만핀다
ㅇㅈ 근데 훈련소 끝나고 담배 어케참아 다시가도 못참지..
운동하면서 피우세요ㅋ
첫휴가때의 그기분은 아직도
잊혀지지않음 그치만 전역했을때의
기분과는 비교도 되지않았음
백골이네.... 저분들 고생많이하셨것다ㅠㅠ
지나가던 할머니 에게도 휘파람 불었음..
아니면 머스마들 굵은 목소리만 듣다가 아이 목소리가 들리면 소름이 쫘악 돋았음..
와 그냥 훈련소에서 gop 들어가는 날은 잊혀지지가 않는다.
저날이 동기들하고 마지막날이란 생각은 꿈에도 못했겠지..조만간 다시만날 날이 있을꺼라고 서로 해맑게 웃으며 헤어졌지만 다시는 보지못하는 아득히 잊혀져간 훈련소 동기들,요즘엔 폰번호가 있어서 또 모르겠네
사랑하는 아들들-고마워요❤
늘 건강하시고 --❤
늘 승리하시고 --❤
늘 행복하세요 --❤
98군번인데 신병 때 말년고참이 너 전역일이 언제냐 묻길래 당연히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라고 모범?적인 답을 했는데 괜찮으니까 말해보라고 해서 2000년 7월입니다! 했더니 2000년??? 밀레니엄? 21세기??? ㅋㅋ 야 21세기가 올꺼같냐? ㅋㅋㅋ 저얼대 안와~ 이러면서 조롱함.. 근데 그 말 들으니 진짜 안올거같더라.
어 나도 후임들한테 그러고 나왔는데 ㅋㅋㅋ 난가?
저도 98군번인데
2000년 1월1일 아침점호때
그 첫 멘트
2000년1월1일 아침점호 인원보고
하는 그때 2000년이라는 말이
듣고도 신기했던 기억이나네요 ㅋㅋㅋ
오긴 다 오죠 저는 92군번인데 GP에 있을때 김일성 죽었음 ㄷ
21세기는 2001년부터다
2001년부터 21세기인데..ㅋㅋㅋㅋㅋ
건강하게 군복무 잘하고 와라 응원 한다
제대하고 집에 도착 했더니.. 징집영장이 잘못되어 다른 사람 것을 갔다 와서 본인 것의 의무를 해야 해서 다시 군대 가야 된다고.. 병무청직원이 기다리고 있어서 열불 났는데... 깨어 보니 꿈이 었는데..꿈 중에서 가장 복창 터니는 꿈
유튜브에 ”장삐쭈 전산오류“라고 치시면 나오는 영상있는데 그거랑 완전 똑같네요 소름
저때는 진짜 차 굴러가는 느낌이 그냥 신기할뿐 ㅎㅎㅎ
첫 부대를 gop로 갔는데 멧돼지 뛰어 가는거 보고 진짜 집 가고 싶더라ㅠ
마! 니들 그날이 올것갔냐😊
다치지 마시고 건강하게 군복무 마치고
돌아 오세요.
감사합니다 ^^
나라 지키느라 감사합니다
89년 12월 어느날 이른 아침 포항서 출발하여 동대구역을 거쳐 늦저녁 서울역에 동기생 70여명과 함께 하차 하였다..오와 열을 맞춰 직각보행 하는 해병대 하사관들을 바라보던 시민들의 박수 갈채를 받으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60트럭에 승차 하였을때 무언가 잘못됨을 느꼈다..제기랄..트럭 뒷화물칸에 전방 바람막이가없는 차량들이었다..달리는 속도 그대로 바람과 눈을 맞으며 서울역에서 김포 사단사격장까지 가는 그 시간이 그렇게 추웠었다..그 화물칸에 앉아 있던 우리들은 이제 50줄을 훨씬 넘겨 중늙이가 되어 있다..그때 그 동기들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그립다..나에게 군대란 내 인생의 소풍 같던 삶이었다..다시 갈수만 있다면 갈수 없겠지만 갈수 없겠지만 갈수 없겠지만 갈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100일 휴가 나와설때 고속버스 탔는데 진짜 리무진 탄줄알았네 넘승차감 좋아서
진짜 훈련소 박혀있다 나오면 신세계임
저 기분은 경험한 사람들만 느낄 수 있음..
지금은 일상인데 훈련소에서 마치고 자대갈 때
그 찰나의 순간인데도 행복함 시야 냄새 소리
잊을 수가 없음 ㅋㅋ
학교 와수리로 다녔습니다. 옛날에 아빠랑 같이 갔던 돈가스집 간판도 보이고 하교길에 들리던 구멍가게 간판도 보이고 추억돋네요 ㅎㅎㅎ
... ㅆ..ㅋㅋㅋㅋㅣㄱ 잊고살았는데 갑자기 또 생각났어ㅋㅋㅋㅋㅋ 캬..벌써 10여년도훌쩍 지나갔구나
옛날 생각 나내요 훈련소 행군때 지나가는 사람들이 왠지 부럽다는 생각도 들었지요
훈련병때 유격훈련받으러 버스탔었는데 그때 교관 진짜 너무했었음 바깥에 보지말라고
거의 3주만에 바깥 구경하는건데 그걸 보지말라고 그러냐 그래도 보긴했는데 그 말 한마디가 너무 서운함ㅜ
진짜 가끔 육공트럭타고 훈련복귀하다가 일반인보면 그리 신기할수가 없다ㅠㅠ
강원도 인제는 원통 읍내가 바깥쪽에 있고 부대 주둔지들 갈려면 안으로 들어가야되는 구조라 저런거 구경도 못하고 온통 산만보임..ㅋㅋㅋㅋㅋ
원통터미널 맞은편 국밥집 아직있을랑가요??ㅠ 휴가나오면 늘 국밥에 소주먹었는데
12군번입니다
@@내가구울구운만두 지훈네 말씀하시는건가요? 저 복무하던 시기엔 있었습니다 휴가나갈때마다 먹는게 국룰이었죠
08년도에 신병교육훈련 마치고 자대가서 백일휴가 나올때 진짜.....눈물났다 사화에 나와 누리는 사소한거 하나하나가 정말 큰 혜택이고 자유가 얼마나 좋은건지 아직도 잊을수가 없다.
밤에 군것질이땽겨 편의점으로 나와 물건을 사는것도
행복이였다.
이처럼 자유가주는 호의가 어느순간 권리가 되면
자유가 자유인지도 모르고 이제 남과 나를 비교하는
시각으로 삶을 본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경미하게 시기하고
나는 크게 부러워하지 않은 사람처럼 어른처럼 마음먹으려하지만 결국 그런 사소한 시기심들이 쌓여
세상에 불만을 가지기까지 5년도 안걸린다.
남이 가는 대학 남이 가진 직업 남이가진 자본소득
이모든걸 비교하고 더가진자들에대해 의문을 품으면
의문은 어느순간 위법한 인간으로 까지 바라보게 의심을 가지게 된다
정치인들의 고도의 정치선동에 세뇌가 되고
그렇게 더불어민주당을 찍든 국힘을 찍든
개돼지로 살아간다
결론은 시기심이 나를 개돼지로 만들기까지 가는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안걸린다는것이다
2ne1 goaway....
전역날 미치게 나오던 그노래..
그노래만 들으면 전역날의 내가 떠오르면서 몬가 벅차오름
100일 휴가 나올때 그 가슴뛰는 두근거림..
세월 빠르다 정말.😅
자대 처음 갔을 때 소대 내 이등병 고참이 13명 그것도 전부 2개월 이내의 차이... 속으로 열라 군생활 꼬였구나 생각이 듬. 근데 첫 휴가도 거의 군입대 1년만에 휴가 나옴. 철원 최전방에서 1년만에 휴가 나오니 바깥세상이 별천지같았음.
06군번 화천군 사내면 사창리 pc방 모텔방
가격이 ㅎㄷㄷ 하지만 음식점은 맛집
사랑방 (백반집) .또래오래 치킨집 👍
대호여관 늘봄다방...
이기자! 비록 부대는 사라졌지만…
06군번인데 반갑습니다
08년 15사단입니다. 사창리 최근에 가봤는데 별로 안 바뀌었습니다. 터미널 옆에 순댓국 집 생각나네요ㅎㅎ
사방거리 ㅋㅋㅋㅋ
개구리복 세대는 진짜 고생이지😢
군대보낸 아들 엄마로써 가슴이 아프고 눈물나네요. 부대앞 다가왔을때 마음이 어떨까...😢
영웅들 풋풋 합니다
디지털군복은 저 갬성 안나옴ㅋㅋㅋ
저분들 최소 두번째 20살 넘으셨을텐데 그시절 모두 고생 하셨습니다
훈련소 3일째되는날 제대하는사람 봤는데 진짜 신으로 보였다. 너무부러웠음
아...6주 수료후 2박3일 휴가는 달콤했었지. ㅡ해군
2009년에 신종플루때문에 6개월 넘게만에 휴가 나왔는데 정말 영천역만 갔는데도 심장이 막 뛰고 설렌 기분은 아직도 못잊는다
진짜 자대배출날 훈련소에서 자대까지 가는데 6시간 걸렸었는데 그땐 진짜 음악 들으면서 갈 수 있었고 밖에 차들만 봐도 설렜는데..ㅋㅋ
90년대 중반에 포항에서 몇달 고생하다가 백령도 가던날... 단풍이 무르익던 가을 어느 날에 동대구역에서 기차 플랫폼 동기들과 대기하다가 여행가는 남녀연인들 가족들을 보면서 군복입고 더블백을 매고있는 내모습과. 섬에 팔려가는 내처지가 생각나네요
와수베가스~
91년 백골신교대 298기입니다.
후배님들 고생하십니다.
삼촌 저는 91년생이에요 그럼 수고요
@@김승현-b6i6r 91년생의 어법이맞냐 진짜?가슴이 옹졸해진다
우리 연대 마크 눈물난다 😢
2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와수베가스가 생각나네요
ㅈㅂㄱ 연대 화이팅
잊을 수가 없다 저 순간은..
와씨 왤케 익숙해보이지 했는데 2대대네 ㅋㅋㅋㅋㅋㅋ 와… 과거에는 저런 모습이었구나…
와수베가스 와 참 그땐 그렇게도 저기 나가기도 힘들었던 곳인데 벌써 20년이 훌쩍 지났네
백골부대군요
와수베가스..참 오랫만에 들어보네요ㅋ
94년 18연대에 있었습니다^^
휴가나갈때 와수베가스가 그렇게 천국같이 보일수가 없었지
와수베가스 ㅋㅋ 03년 2월 3사단신교대에서 훈련받았습니다
8사단인데 와수리 궁금하긴했음 동성은 가봤는데ㅋㅋ 신철원이랑 비슷한가요?
저 모자 날아가면 끔찍한일이 일어나니까 꼭꼭 붙들고 있는거 ㅋㅋ 그렇다고 벗지도 못함
군대가면 사람 구경하는 게 제일 재밌지😂
20군번인데 코로나때라 수료식이고 뭐고 없었음.
그냥 육훈소끝나고 후반기 교육받으러감.
뇌가 리셋됐다가 다시 돌아와서 백업 데이터 조금 조금씩 쌓이는 기분
금새 인적이 뜸해지는가 싶더니~~~ㅋㅋㅋㅋㅋ
위병소 보는순간 아 x댓네
부사교 11주 훈련받을때 익산 어느 외지인데도 전술행군할때 보이는
민가만 봐도 자유의 냄새 맡고 설레이곤 했었는데ㅋ
연대 보충중대 대기하다 늘노리 대대 처음 도착해서 올라가는데 진짜 그 알수없는 기분은 평생 못 잊을거 같음
긴장되고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하고
중대 복도 지나는데 선임들 나와서 다 구경하고
중대본부 선임이 데리고 가서 밥먹는데 저녁에 와 아이스크림 나온것도 기억 나네요
벌써 10년전 ㅋㅋ
나중에 훈련 한다고 밖에 나가는것도 좋음 대민지원 가는건 더 좋음
00군번6월논산군번 논산,,경계교장인가 수류탄 교장인가 갈때 고속도로위 교각을 지나가는데 유일한 민간차량 보는장소,어떤동기는 입대할때 부모님이랑 저도로 타고왔다며 눈물 훔치는애도있었고. . . 여튼 논산출신들은 이얘기하면 아아 맞아!!우리도 그랬어!!!하고 공감함
훈련소 나오고 폰 받았는데
엥? 막 무슨 유리에서 빛이나오는 느낌이들고 적응이 안됬음 이질감에 ㅋㅋㅋ
난 자대 가는데 레토나 타고 갔었었다... 가는중에 선임이 노래 시켜서 트로트 노래 하나 불렀었다..... 꽤 추억이네....
훈련소 끝나면 제대한것 마냥 잠시 착각에 빠젔다가 자대배치받고 현타가 오게되지
와 딱 내 또래네 전우들아 잘살자~
부대 처음 도착했는데 동원 훈련 끝나고 퇴소하던 예비군들이 놀리던 기억이 십수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훈련소때 기껏 군기 바짝 들어서 아... 이게 군대구나, 훈련소가 이 정도면 자대는 지옥이겠지? 라는 무거운 마음으로 자대가면 취식보행부터 상병장들 껄렁거리면서 누워서 티비보고 군기 다 풀려있음 ㅋㅋㅋㅋㅋㅋㅋ
아.. 아직도 생각난다 위병소 통과할때 그 느낌
저 때는 부대 밖에 시골만 나갔다와도 기분좋음
저는 코로나 때문에 휴가 막혀서 자대갔다가 8개월 만에 나왔는데 춘천에서 걸어다니는 할아버지도 신기하더군요
02년 군번입니다 육군훈련소에서 전•후반기 교육 끝나고 강원도 화천으로 자대배치 받고 부대로 갈땐 포로수용소 가는 기분이었죠 그런데 시간이 벌써 이렇게 흘렀네요 쌍둥이 장병들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가더라 뺑이쳐라~
난 신교대에서 자대를 사단 사령부로 간거라 인사담당관이 자차로 데려온거 생각나네 ㅋㅋ 신교대랑 사단사령부도 도심에 있어서 저런 느낌은 못받아봄
10군번들은 알거다. 입대전에 폴더폰쓰다 들어갓는데 전역하니 다들 스마트폰 씀 ㅋㅋ 와 난 진짜 냉동인간 된 기분이엇음. 난 번호도 016이엇는데 016폐지되고 ㅋㅋ
11인데 10선임들이 밖에서 폰 뭐쓰다왔냐해서
스마트폰 쓰고왔다 유튜브도되고 다된다 해서 그런게어딨냐고 구라친다고 맞았음
10때 제가 고3이니까 친구가 스맛폰 처음 들고와서 아프리카티비봐서 신기했으니 선임들은 모를수도
저도 10군번인데 ㅋㅋㅋ바깥 사람들 스마트폰 쓰는 거 보고 딴 세상 온 줄 알았습니다
예나지금이나 문물의 차이만 있을뿐 충격은 똑같군요.
저는 전역을 했더니..거의 모든 사람들이 삐삐를 가지고 있고, pc는 dos가 아닌 윈도우가 깔려있고, 무엇보다 '인터넷' 이라는 혁명적인 시스템이 존재 하더군요.
거의 바퀴의 발명 급 이었습니다ㅎㅎ
몸에나는 짬내 머리에 쓴 갓파빵모
이세계에 들어가는 레벨 0짜리 귀여운 몹..
자대갈때 현타 진짜 왔었는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때는 힘들었지만 그립네..
훈련소 끝나고 기차타고 올라오다가 우리집 보이는데 울컥하더라
내리지도 못하고...
군대에서 썩다가 첫외박 동기들이랑 나오니까 초등학생때로 돌아간느낌이더라 일분일초가 재밌고
옛추억의 행복은 절대 안오는게아니었음 도파민에 절여져있는 내 뇌가 문제인거지
훈련소 퇴소할때쯤은 이제 새로 들어온 1주차 애들보면 가소롭다는듯이 웃고, 군생활 적응완료해서 의기양양 어깨뽕 차오릅니다. 자대 들어가는 순간 RESET!!!
부대 보이니깐 찹찹함ㅋㅋ
난 하필이면 자대가 멀어서 깜깜한 밤에 가는데 참 그 기분 잊을수가 없내요
97년 자대배치받고 60트럭 뒤에 타고 가다 부평역 사거리쯤에서 잠시 대기했었는데 그때 점포 스피커에서 김경호"나를 슬프게하는 사람들"흘러 나오는거 들었는데 불안.초조.긴장하던 와중에 노래 너무 좋다고 생각했음
수료식날...5주만에 내 스마트폰 전원켜고 만졌을때....
그리고 담배한모금...
진짜 감동스러웠음
91년도 난 주변 환경이 칼라가 많아 좋았는데.
8월7일 백령도 입도날
연인부두에서 배타고 가던 길,
입항 전 5시간 정도의 마지막 자유가
떠오르네요.
저때가 설레면서 다시작해야하는압박감..
사람은 적응의 동물
ㅈㄴ추운전방있다가
전역1년만지나도 남쪽우리동네도 춥다
코로나 군번인 20년 군번인데 군생활동안 입대 4개월차에 신병휴가 딱 한번 나가고 전역함..
3월초에 휴가 나가서 2월초에 조기전역했으니까 거의 1년동안 부대에 있던건데 진짜 정신 나가는줄 알았음 ㅠㅠ
1년만에 밖에 나갔을때는 진짜 출소한거같은 기분이었음..
내무실에서 쉴 수 있는 잠깐의 시간조차 각잡고 앉아있던게 너무 힘들었어서 활동적인 성격인 내가 휴가 기간내내 집밖을 나가지않고 무조건 휴식만 취했다. 원없이 누워있고 먹고 자고 자외선차단제도 실컷 바르고 그러다 부대복귀
와 저기분 암ㅋㅋㅋ저도 6주 훈련 끝나고 시내구경했을때 진짜 하나하나가 신기했음
포항터미널에서 버스타고 동대구역까지 간뒤 상륙한곳 서울 명동… 겨울날 명동 한복판에서 선임에 구령소리와 함께 박수는 천당에서 지옥까지 ㅋㅋㅋㅋ 싸가는 빳다가… 잊을 수 없네요
와수리네 ㅋㅋ 진짜 추억이 새록새록 ㅋㅋ
훈련소 6주가 편했지
조치원 역에서 닭장차 보고 탈영하고
싶었다
세상 구경하는거 만으로 도파민임 레알..
전체 주목!!
자기 키가 175가 넘는다 거수..
이 중에 축구 좋아한다 거수...
이 중에 한라산, 설악산 등반 경험이 있다 거수...
너네 더블백 챙겨서 앞으로 나와
너희는 이제 특공대다...
01군번 특공부대원 그게 바로 접니다.
사단 훈련소 끝나고 우린 자대까지 인솔간부 하고 동기들 하고 걸어갔는데 그 걸어가는 순간이 그렇게 좋았었던기억이 나네요
물론 자대도착 하자마자 시무룩...
아이구 먼 산길 깊은 산골짜기
강원도 원통 최전방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