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부 소설이란다. 6사단의 개뻥 때문에 UN사는 중공군은 여전히 서부의 한국군 방어지역 돌파를 기도하고 있다고 기만당해 있었단다. 미10군단 배속 7사단도 쓸려나가면서도 전선을 고수하고 있다고 허위보고해 9병단이 오마치고개를 점렴하고서야 미10군단, 8군은 시바 여기가 중공군 주공이구나하고 인지하게 되었단다. 6사단이 중공군 간첩이었단다. 그걸 숨기기 위해 용문산전투 개사기를 친다. 당시는 UN도 기만당해 상황을 모르고 있었는데 한국군이 9병단의 기습돌파를 저지할 거라 믿는거 자체가 개그란다. 밴플릿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란건 알고 있었단다. 그래서 UN사는 역으로 3군단을 미끼로 9병단을 깊숙히 끌어들여 역습 반격해 역으로 9병단을 화천호로 몰아 섬멸전을 하게된다. 하지만 중공군 간첩 6사단의 작명 위반으로 9병단은 섬멸의 위기에서 벗어난단다. 알고나 씨부리라.
논리적으로 생각해 봐라. 한국 2군단 6, 7, 8사단은 중공군 2차 공세에 단 하룻만에 연기처럼 사라지고 UN사는 급거 터키여단을 투입해 구멍을 막는다. 3차 공세에서 서울방어 1, 6사단이 또 연기처럼 사라져 중공군이 미군 배후로 돌파해 UN사는 서울을 포기하고 퇴각한다. 이후 6사단은 미9군단에 배속되어 미9군단 작전 통제를 받았단다. 한국군이 중공군 3개사단을 격파한 대전투인데 작전지휘권을 가진 미9군단도 미8군도 모르는 전투에 중공군도 금시초문이다. 미9군단이 화력지원을 안할 수가 없고 미8군이 가용한 모든 기갑부대와 항공전력을 투입해야만 하는 상황인데 미군은 뭔 소리여? 백마고지 소부대 전투 때도 미군 2개 전차대대가 직접 9사단을 지원했다. 전차가 백량이 넘어. 설마 지형이 변할 정도의 화력을 9사단 혼자 동원했다고 믿나? 백마고지전투는 소부대 전투에 밴플릿의 화력전이었단다. 논리라는 두 글자를 알면 개사기라는게 금방 눈에 들어온단다. 6사단애들은 유령하고 싸웠냐? 이 말도 안되고 근거도 없고 논리도 없는 개소리를 믿고 싶어하는 한국애들의 심리상태가 과연 뭘까?
한국군 똥별들은 전사로 서로 쉴드를 쳐주고 있었다. 끼리끼리 좋은게 좋은거라고 개사기 전사를 만들어 유포해 서로 쉴드치고 있다. 차라리 북한군 전사가 한국군전사보다 신뢰도가 높아. 그러니 아무도 한국군 전사는 참조하지않아. 전부 개뻥 소설이거든. 북한군, 중공군, 미군 전사는 얼추 아귀가 들어맞아. 한국군 전사만 완전히 따로논다. 전부 개사기 개뻥이거든. 사기꾼은 결코 자신의 조국을 지키지 못한다.
니같으면 적이 뒤에 나타나 우리 퇴로를 잘랐는데도 조국이 나를 부른다고 발광하며 진지를 지켰을거 깉지? 개망상 영화시나리오일 뿐이야. 너나 없다. 전부 총던지고튀게 되어있는데 경험많은 병사들이 눈치도 빨라 먼저 튄단다. 지휘관, 장교들은 잡히면 곤란해. 그러니 최선두에서 튄단다. 세계 전사에 대동소이하게 나와있단다. 영화만 본 미필들이나 개망상한단다. 이론이 있다. 공황이론이라고 해. 나치독일군이 최초로 공황이론을 현실화시킨 전격전을 시현하고 영군, 불란서군은 미친 듯이 토낀다. 소련군도 전격전에 개박살 나 미친듯이 토끼나 소련의 포위성멸전에 나치독일군도 미친듯이 토끼고 미군의 기갑돌파전에도 나치독일군은 미친듯이 토낀다. 어느정도였냐 하면 나치군 전차 피해 20%만 미군이 격파하고 나머지 80%는 퇴로가 쟐린 독일전차병이 전차버리고 맨발로 튀어서 대부분이 전장 유기되었단다. 유기된 티거, 판타가 도로를 막아 진격이 곤란할 정도였단다.
현리 전투보다 더 큰 피해가 많았는데도 이상하게 현리 전투가 가장 최악의 패배인 것처럼 퍼져 있더군요. 6.25 기간 전체를 보면 현리 전투는 오히려 성공적으로 패주한 작전에 가깝죠. 근거없는 밴플리트와의 대화도 사실인 것처럼 돌아다니고 중공군이 한국군만 노려서 한국군만으로 구성된 군단을 해체한 것인데 그게 마치 한국군의 엄청난 패배로 인한 것처럼 왜곡도 해대죠. 오히려 한국군은 파로호 전투에서 최대의 전과를 냈는데도 그건 애써 무시하고 무조건 현리 전투만 최악의 패배로 각색하려 하죠. 현리에서 전투 시도도 하지 않고 무질서하게 후퇴한 것처럼 한 것도 왜곡입니다. 오히려 지금까지는 달리 체계적으로 후퇴를 한 전투에 가깝죠. 오마치 고개가 점령당한 이후에 여러번 돌파를 시도했지만 실패를 했고 종공군이 계속 압박해와 후퇴할 시기를 놓쳐 포위섬멸될 수 있다는 위기감에 소규모 단위로 산개해서 산을 통과해 후퇴하기로 결정한 것이었습니다. 또 사용한 포탄을 모두 중공군에게 발사해 소진하고 파괴할 수 있는 병기는 모두 파괴를 했으며 파괴가 불가능한 병기는 모아 놓아 공군을 동원해 파괴하도록 조치를 했습니다. 계급장을 떼는 행위는 산개 후퇴시 교본에도 나온 정상적인 후퇴시 행동이고 후퇴 작전 전반적인 내용이 교본에도 나올만큼 정상적인 후퇴였음에도 무슨 멘붕을 해서 무질서하게 후퇴한 것처럼 과대 과장한 면이 있습니다. 중공군 조차도 현리 전투에서 엄청난 노력과 희생을 하며 현리를 포위했는데도 불구하고 한국군이 빠르게 후퇴하는 바람에 제대로 전과를 얻지 못해 완전 실패한 작전으로 생각하는데 한국에서만 이상하게 현리가 역대급 패전인 것처럼 각삭된 듯합니다.
진심으로 좋은 영상 감사드립니다.
많이 배우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요.
용문산은 가보시면 멀리서도 엄청 높이 우뚝 솟은 산이라 그 감제 반경도 엄청 넓고 중요도도 매우 큽니다. 여기 못 찾으면 양평은 물론 이천, 여주 방어까지 한번에 위험해지죠. 여기를 되찾은 덕분에 북한은 단숨에 북한강 이남을 버리고 북한강 위로 물러나게 되었답니다
국군6사단 청성부대 파이팅! 필~~승
파일드라이브 18:20
국군 3군단이 후퇴하면서 중공군 3,9병단이 아군지역으로 깊숙히 들어옴으로 오히려 중공군이 역포위되어 파로호 전투의 전과 올릴수 있었던것으로 전화위복이네요
오랑캐를 수장시킨 기념으로 화천저수지를
파로호라고 명명합니다
초반 자막은 오류가 있네요. 5차 2단계 는 1950년이 아닌 1951년이 아닌가요?
네 맞아요. 1951년입니다. 올리고 한참 후에 알게 되서, 수정하지 못했습니다. 개정판 만들 때 반영할 계획입니다.
지금도 파로호에는 주중 중공사단이 아직도 주둔중이라네요
말갖지앉는개소리마라너빨갱이선전대냐
벤 플리트 '당신의 군단은 어디있소?' 유재흥' 모르겠습니다'
출세하다가 국립묘지 안장
전부 소설이란다.
6사단의 개뻥 때문에 UN사는 중공군은 여전히 서부의 한국군 방어지역 돌파를 기도하고 있다고 기만당해 있었단다.
미10군단 배속 7사단도 쓸려나가면서도 전선을 고수하고 있다고 허위보고해 9병단이 오마치고개를 점렴하고서야 미10군단, 8군은 시바 여기가 중공군 주공이구나하고 인지하게 되었단다.
6사단이 중공군 간첩이었단다.
그걸 숨기기 위해 용문산전투 개사기를 친다.
당시는 UN도 기만당해 상황을 모르고 있었는데 한국군이 9병단의 기습돌파를 저지할 거라 믿는거 자체가 개그란다.
밴플릿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란건 알고 있었단다.
그래서 UN사는 역으로 3군단을 미끼로 9병단을 깊숙히 끌어들여 역습 반격해 역으로 9병단을 화천호로 몰아 섬멸전을 하게된다.
하지만 중공군 간첩 6사단의 작명 위반으로 9병단은 섬멸의 위기에서 벗어난단다.
알고나 씨부리라.
똥별의상징역사에부끄럽지앉나
@@성정현-h9b 한국군에 똥별 아닌 놈 이름 대봐라.
난 구경한 적이 없다.
유재흥
우리나라 전시작전권을 미국에 헌납한 똥별중에 왕똥별 입니다 .
또한 노무현 대통령때 회수하려고 한 전작권마저 못찿아오게 만든 원흉 . 이런놈이 국립묘지에 안장
기가막힐 일이죠 .
@@WHCAV-u5p6사단장 김종오 대령
장성진급해서도 전과를 많이 올렸지 .
이런 장군이야 말로 똥별이 아닌
진짜 별 아니냐 ? .
용문산전투는 6단 2연대가 거의 다 한거네요~
6사단은 중공군 간첩이란다.
개뻥 대강쳐라.
논리적으로 생각해 봐라.
한국 2군단 6, 7, 8사단은 중공군 2차 공세에 단 하룻만에 연기처럼 사라지고 UN사는 급거 터키여단을 투입해 구멍을 막는다.
3차 공세에서 서울방어 1, 6사단이 또 연기처럼 사라져 중공군이 미군 배후로 돌파해 UN사는 서울을 포기하고 퇴각한다.
이후 6사단은 미9군단에 배속되어 미9군단 작전 통제를 받았단다.
한국군이 중공군 3개사단을 격파한 대전투인데 작전지휘권을 가진 미9군단도 미8군도 모르는 전투에 중공군도 금시초문이다.
미9군단이 화력지원을 안할 수가 없고 미8군이 가용한 모든 기갑부대와 항공전력을 투입해야만 하는 상황인데 미군은 뭔 소리여?
백마고지 소부대 전투 때도 미군 2개 전차대대가 직접 9사단을 지원했다.
전차가 백량이 넘어.
설마 지형이 변할 정도의 화력을 9사단 혼자 동원했다고 믿나?
백마고지전투는 소부대 전투에 밴플릿의 화력전이었단다.
논리라는 두 글자를 알면 개사기라는게 금방 눈에 들어온단다.
6사단애들은 유령하고 싸웠냐?
이 말도 안되고 근거도 없고 논리도 없는 개소리를 믿고 싶어하는 한국애들의 심리상태가 과연 뭘까?
한국군 똥별들은 전사로 서로 쉴드를 쳐주고 있었다.
끼리끼리 좋은게 좋은거라고 개사기 전사를 만들어 유포해 서로 쉴드치고 있다.
차라리 북한군 전사가 한국군전사보다 신뢰도가 높아.
그러니 아무도 한국군 전사는 참조하지않아.
전부 개뻥 소설이거든.
북한군, 중공군, 미군 전사는 얼추 아귀가 들어맞아.
한국군 전사만 완전히 따로논다.
전부 개사기 개뻥이거든.
사기꾼은 결코 자신의 조국을 지키지 못한다.
남의 나라 전쟁에 수류탄들고 탱크에 육탄돌격을 바랄 수는 없어. 두다리로 20km가 넘는 정찰수색도 마찬가지. 중국군은 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으니 자국전쟁과 같아.
한국 사람 이라면 교양 필수 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더 쳐올라갈 것을 그자리에 멈췄구나...미.소간무언의 협의로써....
그 벤플리트의 대화 근거 없는 구라죠.
1951년
1950년????
시작부터 날짜가 틀린거 아닌가요??
1951년을 1950년으로 잘못 표기했습니다. 통합본 작업할 때 수정하겠습니다. 좋은 지적 감사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6,25는 중공군 침입임
50년이 아니고 51년이겠지요,,,
네 맞습니다. 오타를 거르지 못했습니다^^;; 향후 수정할 계획입니다.
군단장이 전투임무를 제대로 주었어야 했는데..왜 그랬을지 궁금합니다..그래도 군단장을 고스톱 따서 달지는 않았을텐데..ㅜ
니같으면 적이 뒤에 나타나 우리 퇴로를 잘랐는데도 조국이 나를 부른다고 발광하며 진지를 지켰을거 깉지?
개망상 영화시나리오일 뿐이야.
너나 없다.
전부 총던지고튀게 되어있는데 경험많은 병사들이 눈치도 빨라 먼저 튄단다.
지휘관, 장교들은 잡히면 곤란해. 그러니 최선두에서 튄단다.
세계 전사에 대동소이하게 나와있단다.
영화만 본 미필들이나 개망상한단다.
이론이 있다.
공황이론이라고 해.
나치독일군이 최초로 공황이론을 현실화시킨 전격전을 시현하고 영군, 불란서군은 미친 듯이 토낀다.
소련군도 전격전에 개박살 나 미친듯이 토끼나 소련의 포위성멸전에 나치독일군도 미친듯이 토끼고 미군의 기갑돌파전에도 나치독일군은 미친듯이 토낀다.
어느정도였냐 하면
나치군 전차 피해 20%만 미군이 격파하고 나머지 80%는 퇴로가 쟐린 독일전차병이 전차버리고 맨발로 튀어서 대부분이 전장 유기되었단다.
유기된 티거, 판타가 도로를 막아 진격이 곤란할 정도였단다.
군단장도 문제지만 사단장이 더 문제라고 생각됨
현리전투에서
현장의 사단장이
제대로 지휘했더라면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치욕의 패배는 안당했으리라 봄🤕
춘천전투에선 선방했던 김종오
사단장도 현리전투에서는
능력을 발휘 못하고 패배한
주역으로....😩🥱
현리 전투보다 더 큰 피해가 많았는데도 이상하게 현리 전투가 가장 최악의 패배인 것처럼 퍼져 있더군요.
6.25 기간 전체를 보면 현리 전투는 오히려 성공적으로 패주한 작전에 가깝죠.
근거없는 밴플리트와의 대화도 사실인 것처럼 돌아다니고 중공군이 한국군만 노려서 한국군만으로 구성된 군단을 해체한 것인데 그게 마치 한국군의 엄청난 패배로 인한 것처럼 왜곡도 해대죠.
오히려 한국군은 파로호 전투에서 최대의 전과를 냈는데도 그건 애써 무시하고 무조건 현리 전투만 최악의 패배로 각색하려 하죠.
현리에서 전투 시도도 하지 않고 무질서하게 후퇴한 것처럼 한 것도 왜곡입니다.
오히려 지금까지는 달리 체계적으로 후퇴를 한 전투에 가깝죠.
오마치 고개가 점령당한 이후에 여러번 돌파를 시도했지만 실패를 했고 종공군이 계속 압박해와 후퇴할 시기를 놓쳐 포위섬멸될 수 있다는 위기감에 소규모 단위로 산개해서 산을 통과해 후퇴하기로 결정한 것이었습니다.
또 사용한 포탄을 모두 중공군에게 발사해 소진하고 파괴할 수 있는 병기는 모두 파괴를 했으며 파괴가 불가능한 병기는 모아 놓아 공군을 동원해 파괴하도록 조치를 했습니다.
계급장을 떼는 행위는 산개 후퇴시 교본에도 나온 정상적인 후퇴시 행동이고
후퇴 작전 전반적인 내용이 교본에도 나올만큼 정상적인 후퇴였음에도 무슨 멘붕을 해서 무질서하게 후퇴한 것처럼 과대 과장한 면이 있습니다.
중공군 조차도 현리 전투에서 엄청난 노력과 희생을 하며 현리를 포위했는데도 불구하고 한국군이 빠르게 후퇴하는 바람에 제대로 전과를 얻지 못해 완전 실패한 작전으로 생각하는데 한국에서만 이상하게 현리가 역대급 패전인 것처럼 각삭된 듯합니다.
왜조직적반격을안하고무조건퇴각명령을내린것에대한 미책임자에한국군본보기임 이후현리재발은없엊습니다
오합지졸로 줄행랑 친게 득이 되었네!
그런데 재정비해서 진부 방어 명령을 내렸건만 영월까지 줄행랑 처서 미군이 초급행으로 달려가 간신히
막았는데...
이게 더 맨붕 오게 만드네요 😬😡
전시작적권도없는 군대를만든 유재흥 ㅋㅋ
유씨가문 쪽팔리겠다
국방 장관 때문인걸로 아는데요 전시 지휘권 뺏긴게요
펑다화이가 50년 625 전에 왔었나? 고치시길
오타를 영상 올리고 한참 후에 알았습니다. 차후 다른 내용까지 수정하여 업로드할 때 반영할 계획입니다. 꼼꼼히 살펴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역은 군대에서 제대하는 것인데~~
그래서 국군 포로는?
휴전 협정에 앉지도 못한 군대?
아오지에서 죽어간 국군포로는?
그러고도 니들 국군이 전우란 단어를 입에 올려? 사람이냐?
한국이할수잊는게무엇이잊나 능력도없이선재타격못한다 지금은한국내부에빨갱이척결이우선이다
6분38초 에 나오는 국군3군단장. 국군3사단장.,국군9사단장 부분에서 국군3사단장 김종오 준장이 아니라.. 6사단장 김종오준장이 아닌가요? 교양선택 다른 영상에서는 6사단장으로 소개 하다가 여기에선 3사단장으로 나오면 혼돈이 올수도....
개전 초기 6사단장이었던 김종오 대령은 1950년 7월에 준장으로 진급하였고, 1950년 가을 북진 작전 중 부상을 당했습니다. 후송되어 치료를 받은 후, 1951년 중공군 5차 2단계 공세 즈음에는 3사단을 지휘하고 있었습니다.
춘천전투에선 선방했던 김종오 사단장도 계급장 떼고 줄행랑 이라니....
치욕의 패배 지휘관중 하나....
춘천전투 승리가
면죄부를....,
사단장들이 제대로 역량을 발휘 했더라면
치욕의 패배는 안 당했으리라 자위 해보며
전시에 지휘관의
역량이 얼마나 중요한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