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릉대전 당시 촉군의 총병력이 98만명이었고 이중에 오 정벌에 동원된 병력이 75만명. 사실 이때 유비가 아닌 제갈량이 전군을 통솔했으면 이때 오는 물론이고 천하통일 가능했지. 이때 오군이 총 41만명, 위군이 115만명이었는데 군략의 천재 제갈량이었다면 다 제압 가능했다
만성적인 인재 부족에 시달리는 촉의 한계였다고 보네요 정사에서의 관우는 유능하지만 오만했고 인물 평가에 날카로운 유비가 그걸 모르지는 않았을겁니다 다만, 신뢰를 떠나서 전략적으로도 관우를 대신해서 형주를 맡길 인재도 없었구요 연의와 다르게 정사에서는 매우 뛰어난 지휘관인 장비도 관우와는 다른 의미로 오만 했기에 유비가 직접 모든걸 통솔할 수 있었던 지방 세력일 시절엔 티가 덜 났지만 중국을 분할하던 거대 세력이 되어서는 한계를 드러내게 되었고 결국 못 견딘 부하들에게 암살 당하게 된건 이 둘에 비견 되면서 중간다리 역할이 가능한 인재가 없었기에 불러온 참사라고 봅니다
마초는 원체 자신과 동급의 군벌급이라서 서량기병정도 맡길수 있지 군단장을 주기는 쉽지않고 조운은 유비사후에나 선봉장을 세웠지 유비때는 호위장군급이였고 장비는 선봉장은 잘했지만 한쪽 군단을 맡길깜냥은 안됨 고나우가 그래도 유비가 믿고맡길 군단장감인데 아랫사람을 홀대하는경향이 있어서 망함
@@김준하-b8w @ᄀ샤를 그건 한참 키우고 있었던 2선급 지휘관들이고 모사 역활을 할 인재가 부족했어요 미래의 주력이 될 인재들을 갈아 먹어서 유비 사후 제갈량의 북벌시 노장인데다 군을 이끌어 본 경험이 부족한 조운이 1선에 나서야 할만큼 처참해지기도 했지만 형주 공방전 당시엔 촉을 먹은지 얼마 안 되서 관우를 컨트롤 할 수 있는 모사가 없다시피 했습니다
@@샹배 그만큼 능력있는 종친이 권력자의 권력을 공고히 한다는 의미로 쓴 것 같음. 뭐 그래도 당시 조조 권력은 그런거에 흔들릴 것 없이 공고했고, 조인과 하후돈이 그 역할을 충분히 다함. 결국 하후연을 잃고 한중을 내준것과 동시에 수복의지가 꺾인 것도 사실이니 하후연 잃은 것이 아프지 않은 손실은 아니긴 하죠.
이릉전투 폭망으로 인재 만성 부족도 문제지만 한중말고 위로 진격할 루트가 없어진 것도 크죠. 매번 출사표 내고 한중 분지에서 내려와 산 등지고 싸우는 복붙 레파토리. 제갈량 전투능력 부족보다는 한중 밖에 없는 단순한 루트가 문제. 거기에 장수 병력 부족한 상황에서 위연의 자오곡 돌파는 정말 도박. 장안을 먹어도 지켜낼 힘도 없음. 수비병력을 익주에서 산타고 와서 장안까지 가는건 한 세월. 결국 형주를 잃고 지정학적으로 고립된 것도 촉 패망의 큰 원인이라고 생각되네요.
풍습이 자만했다기보다 유비의고집으로인한 무리한진격이 더 맞을겁니다.그당시 유비는 관우.장비의 잇따른죽음으로 이미 몸도마음도 재대로인게 없었죠.이릉전투하기전에 제갈량이 말려보고 마량이 복병과육손의인물됨을 몇차례 간언했지만 끝내 유비가 서둘다가 망한 전투라고 보는견해가 더 많은것으로 압니다.
@@휴-f8b 수군을 육군으로 돌린건 마땅한 장수가 없었던 탓도 있죠 유비군에게 수군을 제대로 지휘할 수 있었던 장수가 관우였고 관우와 형주를 잃음으로서 수군 경험이 전무 하다보니 유비는 단기 결전을 노렸을겁니다 그걸 육손이 파악하고 시간만 끌면서 정면 싸움을 피함으로서 전선에 투입될 병력보다 보급로를 유지할 병력이 지나치게 많아졌어요 평생을 전장에서 굴렀던 유비가 정말 모르지는 않았을테지만 감정이 이성을 이김으로서 결국 이릉대전이란 처참한 패배로 촉의 한계가 결정 됬다고 봅니다
황권을 잃은게 가장 큰 실책인듯 유비는 이엄을 죽기 전에 불렀으나 제갈량이 인재풀이 부족했음에도 중히 쓰지 않은걸 보면 이엄은 뭔가 쉽게 일군을 맡길 캐릭이 아니었다고 봄(육손이 건재한 오나라가 동맹을 또 깨고 들어올 일이 없음에도 오 견제한다고 이엄을 영안에 배치하고 쓰지 않음) 황권이 있었으면 선봉을 위연 황권을 참군정도로 하여 가정에서도 장합을 버텨냈을지도 모르고
@@마이바이-h6u 방통과는 합이 잘 맞았음. 제갈량은 관장과 갈등이 있었으나 방통은 겉으로는 살짝 불화했을지언정 대놓고 갈등도 없었고 무엇보다 인간적 관계는 관우 장비와 술잔 기울일 정도로 가까웠다고 합니다. 반대로 관장 형제가 제갈량과는 유비가 없으면 사적인 만남조차 갖지 않았죠
@@Maple684이 부분이 사실이면 그냥 촉 첩자 귀에 들어가서 관우가 방심하라고 한 말임.. 손권하고 다 짜고 이미 뒷치가 앞치기 다 준비 해놨는데 무엇이 무서울까요?? 손권이 거짖이여도 지키는것은 쉬웠음.. 관우 서황한테 다 깨짐... 뒷치기가 없어도 관우 군은 무너져서 내려왔어야 되는 상황 손권 도움 없이는..
@@Maple684 관우는 조인하나 못뚫고 시간 허비하다가 서황한테 얻어맞고 후방 태수들 전부 오나라로 배신하고 본인이 이끌던 병력도 대부분 오나라로 항복해서 단 한번의 제대로된 전투한번 못하고 도망다니다가 잡혀죽은게 전부죠 태수들부터 병사들까지 전부 배신한데서 평소 관우 행실이...
손상향 유선 납치사건 관우 손권 쥐새끼 사건 형주 왜 안 내놔 사건 등 많은 일이 있었으니 손권이 유비를 공격하는 건 어느정도 명분이 이따 할 수도 있겠지만 유비 성격 알면서도 관우를 죽인 것은 우리 공멸하자 라는 소리 밖에 안되는 거 같다 관우만 안죽었으면 아무리 두 세력의 감정이 많이 상했어도 이릉대전은 없었을 거고 조조랑 이렇게 점수차가 벌어지진 않았을 텐데
공감합니다. 유비쪽에서 오나라에 너무 좃같이 대한건 맞는데 결국 선택을 한건 손권이라 손권 참... 압도적 1등이 있다면 아무리 좃같아도 2,3등이 힘을 합쳐야 만에 하나라는 기회라도 생기는데... 그냥 1등이랑 편먹고 3등 깜... 병신이ㅋㅋㅋ 유비쪽의 실착도... '설마 위나라가 버티고 있는데 설마 이정도는 참겠지?ㅋㅋ'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염병 떨어서 사이 틀어지게 한 원인도 있지만요..
저 충성심이 끓고 뛰어난 인재들 형주에 좀만 남겨놓았어도 번성공방전때 미방 부사인이 군량 불태워먹어 보급이 ㅈ망하는 폐급짓도 없을거고, 손권에 뒤통수 맞고 관우 본대가 회군할때까지 강릉에서 결사항전했을거고 관우가 죽지 않았을 수도 있음. 이부분은 항상 유비의 저의가 궁금함..
@@ArtJoHistory 제가 알기론 유비의 한중전에 호응해 맹달이 상용, 관우가 양번으로 올라갔던걸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딱 칠군만 데리고 돌아왔으면 완벽했는데 우리가 아무리 방구석에서 ㅂ랄 긁고 댓글을 싸질러도 백전노장의 심정을 어찌 알겠습니까.. 우리는 무리한 북벌이라고 생각하지만 관우 입장에서 무리하지 않을 수 없는 북벌인것도 맞네요. 조조의 후방은 반란으로 들끓고 뜻밖의 수해로 최정예 칠군을 대파하고 그 철옹성 같던 양번을 함락직전까지 갔으니까요. 아마 관우는 다음은 없다라고 생각했겠죠. 사태가 얼마나 심각했으면 조조가 합비전선에서 장료까지 빼왔겠습니까? 손권이 형주먹고 관우보다 월등한 조건에서 수십년간 단한번도 양번을 함락직전까지 밀어붙힌 적이 없습니다.
@@ArtJoHistory 그리고 관우가 수성 위주로 피해를 최소화하려고 해도 결국 궤멸적 피해를 입게 되어 있습니다. 여몽전에 따르면 익양대치 이후 여몽과 손권은 철두철미하게 어떻게 형주를 쌈싸먹을지 골몰하고 있었습니다. 관우는 오나라 본대와 맞서야하고 위로는 조인, 만총이 버티며 여차하면 서황, 장료, 하우돈이 달려옵니다. 익주로 복귀하고 수개월 동안 관우 모가지가 따일때까지 아무것도 못한게 익주의 유비입니다. 지킨다고 뭐 달라질게 있을까요?
관우가 장료나 조운이나 감녕 같은 그냥 A급 장수인 것도 아니고, 오나라도 원래부터 악연이었던 것도 아니고, 째깐한 나라끼리 힘을 합쳐도 살까말까 한 판에 의형제를 통수쳐서 죽이니 못 참을만도 하긴 함. 죽은 장수만이라도 관우가 아니라 방통 이런 사람이었으면 그래도 참았을텐데..
촉의 진정한 문제는 유랑생활을 오래하며 길러진 협객화된 습관으로 자신의 토지와 백성에 의지하는 세력이 아니라 유랑 전투집단이다보니, 다른 세력에 대한 포용력이 낮았고, 위급하고 중요한 일은 유비가 독단적인 결정하게 되는데, 작은 세력일때는 그렇다쳐도, 국가를 이루면 트러블이 심해질수 밖에 없는 구조적 약점을 가지고 있었음 모든 힘이 군주에게 집중되면, 주변의 혈족의 힘이 비대하게 강해지는데, 이러면 인재가 능력을 발휘하기에 어려움이 많았고 그래서 위나라에서 잔치를 열면 하후돈 같은 중신이 걸죽한 농담을 항복한 장수인 장료,서황,장합에게 할정도로 분위기가 좋았는데 반해 촉나라에서 잔치를 열면 파벌끼리 서로 째려보는 현상이 있을 정도로 불협화음이 심했음 그러한 사회체재의 갈등이 나타난 사건의 예가 관우북벌시 후방의 형주관리가 배신하여 죽음으로 몰아넣고, 장비가 부하장수에게 암살되는 사건으로 나타나게되며, 관우,장비의 개인의 탓으로 보기에는 국가의 운명을 바꿀정도로 큰 사건이었고 위나라와 오나라에서 이정도 되는 중신이 배신으로 죽거나 암살되는 예는 매우 드믐. 유비는 이러한 문제를 알고 있었고, 자신이 죽으면 내부적으로 결속못하는 촉한은 망할것이 불보듯 뻔했기에 마지막 희망을 가지고 이릉으로 향했던 것이며, 이릉전투에서 인재를 갈아넣고도, 갈등을 봉합하면서 국력을 길러 북벌을 시도한 제갈량은 대단한 능력자.
"유비는 교활한 적이며, 매우 많은 일을 겪었고, 그의 군대가 처음 집결했을 때, 그의 생각은 조밀하고 전일하였으므로 침범할 수 없었다. 현재는 매우 오랫동안 출병하여 병사들은 피곤하고 사기는 떨어졌으며, 또 새로운 계책은 없다. 적을 잡을 때는 바로 오늘이다." 육손이 했다고 하는 말이죠
그런데 생각해보면 어느 누구도 유비한테 "이런 진형으로 장강을 내려다가간 화공에 각개격파를 당할수도 있습니다"라고 진언을 못한거보면 이릉에서 죽은 촉장들 그닥 인재라고 느껴지진않는데..그냥 평범한 장수들 아니였을까?아무리봐도 위연,왕평보다는 밑이고 요화,장익이랑 비슷한 수준들이었듯.
촉에서 형주로 나가는 지형이 대체로 그럴 수 밖에 없는 땅 아닌가요? 드가기도 길이 좁고 나가기도 좁아서, 일단 드가면 입구만 딱 지키면 못나오는... 그니까, 그런 진형으로 장강을 내려갈 수 밖에 없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인데, 문제는 상대가 육손... 그래서 그렇게 된 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BlackGetta 촉에서 형주로 진출하는길이 장강을 타고 내려가는게 가장 편리하긴합니다.이게 수비자가 각잡고 물길 틀어막고 우주방어하면 공자가 뚫기힘든긴 한데 280년에 오나라가 막장이긴 했지만 진나라 왕준과 두예는 파죽지세라는 고사성어까지 만들어내며 손쉽게 뚫어버립니다.이걸 보면 공자가 준비를 잘하고 유비처럼수륙양면으로 진을 길게 늘여뜨려서 진격하는게 아닌 왕준처럼 큰배로 장강을 내려가면 이릉에서 대패는 안당했을수도 있겠지요.저는 그걸 제안한 장수가 하나없다는점에서 이릉대전때 전사한 촉장들이 그닥 인물들은 아니였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촉나라는 패전하면 관우부터 완전 몰살을 당하네요... 유비도 전투는 잘했지만 전략이 없는게 효정에서 어설픈 유인 작전이나 하고 큰 전략이 없었던 거 같네요... 전략이 없으면 일단 철군을 해야지 산속 700리에 목책을 세우면 당연히 화공에 취약하지...죽치고 있는다고 뭔 묘책이 나오는것도 아니고...
유비의 꼴통짓으로 10년 공부 도로아미타불이 되었으니 기가 막힐 뿐이다. 감정을 다스릴 줄 모르고 나라를 망쳤다는 점에서 유비는 조조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제갈량이 유비가 다 말아 먹은 나라를 가지고 북벌에 나서 결국은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탈진해서 죽은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마량죽어 여러 장수들 죽어 그와중에 그나마 모사+지휘관 할만한 황권 위나라로 넘어가 그전에 법정 병으로 죽어 정무야 뭐 장완 비의 동윤둥이 있었지만 군무를 맡길만한 사람이 이릉 전투 이후로 없어졌죠 게다가 유비의 가장 몹쓸짓이 유선이 왕재가 아니면 니가 황제해 이거였는데 이게 이릉전투 후였으니 뭐...
유비군이 다른 세력에 비해서 가지는 큰 의의가 (모두가 완전 그런 것은 아니어도) 대의,신의,충의 등을 더 중시하는 편이라 (위는 비교적 실리,냉정 위주고 오는 본능,감정 위주 같음), 가뜩이나 유비가 대군으로 오를 치려한 동기 자체도 오가 뒤통수를 쳐서 (군주의) 의형제가 죽기까지 한 ㄱㅆ병크였기에, 전투가 패하고는 있지만 (당시로서는 전황을 즉시 다 정확하 알긴 어려운 시절이니) 아군이 물러설 전투가 아니라 생각하고 본인이 죽을지언정 자신의 위치를 내빼지 않고 사수하려 한 사람들이 많은듯. 방금전 본 수성의 달인 편만 해도 굉장히 열악한 상황이기에 패배하고 사망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지만 도주하지 않고 항전한 끝에 이긴 사례들이 있음.
열후가 40명이 넘고 장군이 100명........아 진짜 노답이었네
하아.. 이릉대전에서 갈아먹은 2세대들.. ㅠㅠ 제갈량이 이 생각만 하면 담배마려웠을듯..
이릉대전 당시 촉군의 총병력이 98만명이었고 이중에 오 정벌에 동원된 병력이 75만명. 사실 이때 유비가 아닌 제갈량이 전군을 통솔했으면 이때 오는 물론이고 천하통일 가능했지. 이때 오군이 총 41만명, 위군이 115만명이었는데 군략의 천재 제갈량이었다면 다 제압 가능했다
@@김관철-t1y 병력 숫자를 믿는 바보가 있네 뭔 98만 115만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75만이 아니라 10만이어도 너무 아깝지
이릉으로 날려먹은 인재, 시간, 병력, 물자만 아니었어도
짬 안되는 마속이 기산에서 바보짓 할 일 없었을 것이고
기산루트 보내고도 진창루트로 협공도 했을듯
@@김관철-t1y 98만 이지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촉에 인재풀이 적었던것도 맞지만
그 얼마 없는 인재풀 조차 이릉대전으로 전부잃었죠
2~2.5세대가 전부죽어 촉이 참 힘들었죠..
만성적인 인재 부족에 시달리는 촉의 한계였다고 보네요 정사에서의 관우는 유능하지만 오만했고 인물 평가에 날카로운 유비가 그걸 모르지는 않았을겁니다 다만, 신뢰를 떠나서 전략적으로도 관우를 대신해서 형주를 맡길 인재도 없었구요 연의와 다르게 정사에서는 매우 뛰어난 지휘관인 장비도 관우와는 다른 의미로 오만 했기에 유비가 직접 모든걸 통솔할 수 있었던 지방 세력일 시절엔 티가 덜 났지만 중국을 분할하던 거대 세력이 되어서는 한계를 드러내게 되었고 결국 못 견딘 부하들에게 암살 당하게 된건 이 둘에 비견 되면서 중간다리 역할이 가능한 인재가 없었기에 불러온 참사라고 봅니다
역활 X 역할 O
@@moorejamysternly7533 앗...지적 감사함돠
그 중간다리들이 여기서 다죽어서 문제너무 커짐
마초는 원체 자신과 동급의 군벌급이라서 서량기병정도 맡길수 있지 군단장을 주기는 쉽지않고 조운은 유비사후에나 선봉장을 세웠지 유비때는 호위장군급이였고 장비는 선봉장은 잘했지만 한쪽 군단을 맡길깜냥은 안됨 고나우가 그래도 유비가 믿고맡길 군단장감인데 아랫사람을 홀대하는경향이 있어서 망함
@@김준하-b8w @ᄀ샤를 그건 한참 키우고 있었던 2선급 지휘관들이고 모사 역활을 할 인재가 부족했어요 미래의 주력이 될 인재들을 갈아 먹어서 유비 사후 제갈량의 북벌시 노장인데다 군을 이끌어 본 경험이 부족한 조운이 1선에 나서야 할만큼 처참해지기도 했지만 형주 공방전 당시엔 촉을 먹은지 얼마 안 되서 관우를 컨트롤 할 수 있는 모사가 없다시피 했습니다
저평가된 풍습, 죽으면서도 존나 멋있는 육군의 부융, 수군의 정기. 그리고 동오 정벌 준비과정에서 장비도 죽었지…
적벽대전에서 조조도 큰피해를 봐도
네임드 장수는 손실없이 돌아가고
그덕분에 북벌중에서도 등장하죠
대신 한중에서 하후연은 잃어지만
@@빈티지시계사랑 단순히 장수 하나 죽은게 문제가 아니라 종친이 죽은게 타격이 큰거임 종친의 중요성은 후대만 봐도 나오잖음 애초에 종친들이 능력있는 애들이 하나라도 있었으면 사마씨가 황제위 찬탈 못했음
@@디에스이레 하후연 그 많은 아들들 중 하후영만 전사하고 다 살았는데 그게 의미가 있나요…? 애초에 찬탈이랑은 시대가 너무 다른 인물인데;;
@@샹배 그만큼 능력있는 종친이 권력자의 권력을 공고히 한다는 의미로 쓴 것 같음. 뭐 그래도 당시 조조 권력은 그런거에 흔들릴 것 없이 공고했고, 조인과 하후돈이 그 역할을 충분히 다함.
결국 하후연을 잃고 한중을 내준것과 동시에 수복의지가 꺾인 것도 사실이니 하후연 잃은 것이 아프지 않은 손실은 아니긴 하죠.
실제로는 그렇게 큰 피해른 입었던것은 아니었습니다. 대치 도중 조조군에 역병이 들어서 조조가 회군을 명했거든요
이릉전투 폭망으로 인재 만성 부족도 문제지만 한중말고 위로 진격할 루트가 없어진 것도 크죠. 매번 출사표 내고 한중 분지에서 내려와 산 등지고 싸우는 복붙 레파토리. 제갈량 전투능력 부족보다는 한중 밖에 없는 단순한 루트가 문제. 거기에 장수 병력 부족한 상황에서 위연의 자오곡 돌파는 정말 도박. 장안을 먹어도 지켜낼 힘도 없음. 수비병력을 익주에서 산타고 와서 장안까지 가는건 한 세월. 결국 형주를 잃고 지정학적으로 고립된 것도 촉 패망의 큰 원인이라고 생각되네요.
차라리 자오곡루트가 촉에 맞는전략이엇을지도
제갈량 방통 마량 법정 서서 강유 황권이 같은때에 있었다면 더좋은활약을 하고도 남을듯 마량은 조조쪽으로치면 유엽 만총 손권쪽으로치면 노숙 장굉임
제갈량 없었으면... 촉은 이릉전 뒤에 바로 망했을지도...
손실이 커도 너무 컸다. ㅜㅜ
심지어 백미 마량도 여기서 죽었다는거 보고 허무함..
마랑이 무릉(오계)만이를 설득하고 무릉만 사마가가 원군으로 갔는데, 이릉대전에서 자신의 우두머리가 죽자 화가나서 무릉만이 같이있던 마량을 죽였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이 쪽이 더 허무한듯...
@@Xellossred 감기걸린 감녕 잡은 사마가 대박 ㅋ
@@파크냐아수투아루 역사에선 감녕이 훨씬 일찍죽습니다. 병으로요. 이미 없던 인물임
백미가 진정 인재였으면 목숨걸고 유비의 일자진을 막았어야 했는데 그걸 보고만 있었으니 그의 천명은 거기까지라 보면됨
@@로토라마량의 능력이 훌륭한 언변과 사람의 마음을 사는 설드력이라 군사적 전술보다는 외교와 내부에 중심을 잡아줄 사람으로써 가치가 좋았죠.
이 모든 비극은 관우의 오만으로 시작되었다.
글쎄요.. 형편없이 오만했다면 유비가 형주를 맡기지 않았겠죠.
솔직히 억까임 혼자 국가 2개를 상대로
@@파란색마커 게다가 형주가 전부 관우께 아니었슴, 형남은 손권것이고 형북은 조인것인데,
동형주 일부만 가지고 우금 방덕 잡고 조인 잡기직전까지 간 것만해도 넘사벽 사령관은 맞음.
@@skywalkeranakin54 관우가 형주의 일부를가지고 마치 대부분을갖은듯 영향력을 떨친건 대단하지만 오나라 간계에 오만에빠져 그리도쉽게 모조리 뺏기고 죽어버린건 너무나 큰잘못 근데 형주먹었어도 삼국은 조조의 위나라가 통일했을것같음
@@Holymoly7k 촉 세력의 특성상 전국 떠돌이 연합이라 규합이 쉽지 않죠. 유비라서 가능한 규합인데, 관우가 넘사벽 사령관은 맞지만 하북 서주 강북 형초 짬뽕 조합의 충성심이 얼마나 관우를 향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결국 그들의 배신이 큰 몫을 한 것이죠.
히스토리형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현재로 이릉대전을 비유하자면 총사령관 유비 전투 패배 후 사망 + 육군대장 풍습 사망 + 군단장 황권 퇴로 막혀서 위나라 항복 + 정기, 유녕 등 사단장급들 전부 전사 + 그 밑에 연대장+대대장+중대장급 지휘관들 항복하거나 전사
확 와닿네요...
🥺😢😭
저 정도면... 쓰촨성 장군 인재들은 절반은 저세상으로 갔을듯
와 그래도 저렇게 박살났는데 그걸 수습하고 위를 상대로 40년을 버티네.
@@갓바이스타 차피 통로가 좁아서 몇명만 잘 싸워도 길막 가능해서..문제는 뚫고 나가는데도 마찬가지라서 위나 오가 장수 하나만 잘 보내고 병력충원만 해주면 언제든 막을 수 있음.
이릉에서 인재들 갈아마시지만 않았으면 유선도 트롤 덜하고 제갈량도 과로로 안죽었을듯
환관오리는 제갈량으로도 역부족이었을듯
제갈량은 이엄도 잡아족쳤으면서
환관 못죽인 이유뭐임?
@@lowe4996 제갈량있을때는 환관이 못깝쳤어요
풍습이 자만했다기보다 유비의고집으로인한 무리한진격이 더 맞을겁니다.그당시 유비는 관우.장비의 잇따른죽음으로 이미 몸도마음도 재대로인게 없었죠.이릉전투하기전에 제갈량이 말려보고 마량이 복병과육손의인물됨을 몇차례 간언했지만 끝내 유비가 서둘다가 망한 전투라고 보는견해가 더 많은것으로 압니다.
@@휴-f8b 수군을 육군으로 돌린건 마땅한 장수가 없었던 탓도 있죠 유비군에게 수군을 제대로 지휘할 수 있었던 장수가 관우였고 관우와 형주를 잃음으로서 수군 경험이 전무 하다보니 유비는 단기 결전을 노렸을겁니다 그걸 육손이 파악하고 시간만 끌면서 정면 싸움을 피함으로서 전선에 투입될 병력보다 보급로를 유지할 병력이 지나치게 많아졌어요 평생을 전장에서 굴렀던 유비가 정말 모르지는 않았을테지만 감정이 이성을 이김으로서 결국 이릉대전이란 처참한 패배로 촉의 한계가 결정 됬다고 봅니다
황제가 직접 전쟁 나가는데 인재들이 안따라 갈수도 없었고 제갈량도 대려가자니 국무총리 자리 맞길 사람도 없고 그저 안타 까울뿐...
제갈량이 과로사할수밖에 없었던 최대의 이유.. 일을 맡길 인재가 한번에 다 사라져버림
강유 마대 위연 왕평 요화 나름 짱짱했다
@@동호한-k3p대가리가 병신인가?
@@동호한-k3p 문관이 없었던거죠! 내정에 힘쓰고 그걸 바탕으로 전쟁하는건데~
황권을 잃은게 가장 큰 실책인듯
유비는 이엄을 죽기 전에 불렀으나 제갈량이 인재풀이 부족했음에도 중히 쓰지 않은걸 보면 이엄은 뭔가 쉽게 일군을 맡길 캐릭이 아니었다고 봄(육손이 건재한 오나라가 동맹을 또 깨고 들어올 일이 없음에도 오 견제한다고 이엄을 영안에 배치하고 쓰지 않음)
황권이 있었으면 선봉을 위연 황권을 참군정도로 하여 가정에서도 장합을 버텨냈을지도 모르고
황권을 잃은거 진짜 유비 입장에서
정말 아쉬운거는 인정하는데
제갈량이 뭘 이엄을 중히 쓰지않아 ㅋㅋ
제갈량 북벌할때 보급담당에다가
한중지키는 장수였는데
영안에 배치했다는건 어디서 들은 얘기 ?
제갈량이 이엄을 쓰지 않은건 아마 3차였나
4차였나 제갈량 모함하고 그때 탄핵당하고
나서부터였는데 ? 그때는 영안에 배치한것도 아니라 걍 나랏일을 안시켰다고 하는데
제갈량 방구석키보드워리어에서 운좋게 출세해서 그런지 자기같은 키보드워리어들을 싫어함.
여기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장비도 이릉대전 준비하다가 프래깅 암살당해버렸으니... ㅠ
시원하게 2세대 날려먹음
마량 자소서 썰은 첨 들어보는데 재미있네요ㅋㅋ
제갈량이 과로사한 이유.mp4
풍습 여러번 봤는데 하급 장수로 나오던데 아니였군 최소 능력치 80짜리군
그렇겠죠 유비가 그렇게 허투루 자리 남발하는사람도 아니고 대도독으로 임명할 정도면 오나라의 주연, 위나라의 조휴정도 능력과 입지를 갖고있었다는게 맞는거겠죠
통솔 80대 장군인데 이릉대전때문에 너프 받았을듯요 .
촉나라의 인재난이 이때 초래됐구나...
분노가 이렇게 무섭다. 그동안 쌓아온 유비의 모든 업적이 분노 하나에 재가되어 사라졌으니...
근데 방통죽은거부터 문제임
형주를 제갈량이 맏고
서천에는 방통이가있었으면
이릉대전은 일어나지않았을듯
법정이요
호족들 극혐하는 관우가 제갈량, 방통이 와도 관우가 따랐을지 의문이긴 함 밑바닥 부터 올라온 법정이었으면 몰랐을까
@@마이바이-h6u 방통과는 합이 잘 맞았음. 제갈량은 관장과 갈등이 있었으나 방통은 겉으로는 살짝 불화했을지언정 대놓고 갈등도 없었고 무엇보다 인간적 관계는 관우 장비와 술잔 기울일 정도로 가까웠다고 합니다. 반대로 관장 형제가 제갈량과는 유비가 없으면 사적인 만남조차 갖지 않았죠
대신들 말 안듣고 이릉대전 일으키더니 결국 이패배가 촉나라 멸망으로가게되는 시초였슴
촉은 이릉패전이후 43년후에 멸망해요
@@user-runqian 제글보시면 시초라고 했자나요 빠르게 멸망했다아니라 나라가 기울기 시작한 원흉이에요
진짜 유비, 관우는 가슴이 웅장해진다
자기들이 쌓은탑을 자기들이 무너뜨림ㅋㅋ
운명인가보죠.. 사실 관우 무너지기 전에 위가 위태로웠음. 위나라가 수도 천도 생각까지 했으니까
@@Maple684이 부분이 사실이면 그냥 촉 첩자 귀에 들어가서 관우가 방심하라고 한 말임..
손권하고 다 짜고 이미 뒷치가 앞치기 다 준비 해놨는데 무엇이 무서울까요??
손권이 거짖이여도 지키는것은 쉬웠음..
관우 서황한테 다 깨짐... 뒷치기가 없어도 관우 군은 무너져서 내려왔어야 되는 상황 손권 도움 없이는..
@@ReiGyeonggi 기록에 수도 천도 고려했다고 나와있는데 무슨 ㅋ
그리고 수도 천도가 뻥이라고 쳐도 위나라 명장 여럿 썰리거나 항복했었고 조인(?) 인가도 관우에게 항복직전까지 갔었는데
@@Maple684수도천도는 관우 북벌과 동시에 허창주변 여러곳에서 반란이 일어나서 고려했던거고
홍수로 이미 다망가진 번성 조인하나 못뚫고있는데 관우때문에 천도를 해야한다면 서황한테 고작 만오천 주고 관우한테 보내겠어요?
@@Maple684 관우는 조인하나 못뚫고 시간 허비하다가 서황한테 얻어맞고
후방 태수들 전부 오나라로 배신하고
본인이 이끌던 병력도 대부분 오나라로 항복해서 단 한번의 제대로된 전투한번 못하고 도망다니다가 잡혀죽은게 전부죠
태수들부터 병사들까지 전부 배신한데서 평소 관우 행실이...
너무 아쉬운 인물들
조조는 새로운 전쟁을 할때 자기 기반을 모두 쏟아붓고
유비는 본래 기반은 놔두고 새로 얻은 것만 투자한다고 평가했던게 생각나네요.
이문열 삼국지 에서 본거같아요
마량 황권은
s급까지는 아녀도
a급 인재 정도는 되었고
더구나 인재풀 말라가던 촉으로써는 더더욱 중히 쓸수 있었을텐데
유주부터 시작해서 기주 서주 형주 익주까지 평생 모은 인재 한방에 싹다 갈아 마셔버린 ㅋㅋㅋㅋ
촉의 유능한 2세대 장수 싹다 죽음
1:51 정사 이야기 보면서 현웃 터진 유일한 에피소드일듯 ㅋㅋㅋㅋㅋㅋㅋ
지도자는 진짜 끝까지 이성을 찾아야 되는구나... 태종 이방원이 진짜 역대 최고왕이다
방통과 서서가 없었어도 법정이 참전을 했거나 황권의 충언을 들었다면 저 정도의 대패가 없었을텐데..저 대패로 인해 촉의 인재 손실이 너무 크게 날아가버렸으니..
서서는 삼국지 연의 거품 아닌가 막말로 정사에서는 전공 하나없음
@@jydasdfg3688 맞긴한데 서서는 향수병때문에 관직을버리고 낙향해서그렇습니다
군략에 있어서는 방통과 법정이 제갈량보다 위인데 법정은 순간적인 판단능력이 제갈량도 방통도 못따라감. 전형적인 타고난 천재형
공명의 눈물...
이거 좀 궁금했는데 감사합니다~
사마가 : 기록이 없다 해도 힘으로만 이루어진 이민족들중에서 왕이라는건 왠만한 장수 초월급의 무력과 포스가 있었다는것을 뜻함
그냥 대부족장임
관우가 형주에서 버티고 잠시동안만 호흡을 가다듬었으면 위나라의 서북과 장안을 차지할 기회가 반드시 왔을텐데
프로야구로 치면 1군 선수 죄다 은퇴한 상황에서 2군 선수로 1군 1위팀과 상대해야하는 제갈감독... 더구나 구단의 지원(인구와 생산력)도 미미함ㅜ.ㅜ
4번 타자로 파격기용한 마속은 오버런으로 끝내기 주루사함..
@@인도양의제왕나갈플 상대 투수는 최동원상 수상자에 시즌 20승, 방어율 1점대 포함 투수 사관왕 장합
포수는 리그 MVP와 골든글러브 수상에 홈보살, 블로킹 장인 조진ㄷㄷ...
축구로 보묜 딱 토트넘(촉)이 맨시티(위) 상대로 우승경쟁하는 꼴임 맨시티 상대로는 전적이 좋은데 막상 우승은 못하는 ㅋㅋㅋ
@@Donkid-f8m 선수기량은 몇몇빼고는 상대도 안될정도로 허접한데
감독(콘테) 역량으로 간신히 버티는 토트넘이랑 비슷한듯.?
비유찰지네 ㅋㅋㅋ
@@Donkid-f8m 축구는 딱 맨유아님?퍼거슨 은퇴후 맨유는 아무것도 못하는데 퍼거슨때는 바르셀로나나 바이언이랑도 비볐으니
손상향 유선 납치사건 관우 손권 쥐새끼 사건
형주 왜 안 내놔 사건 등 많은 일이 있었으니
손권이 유비를 공격하는 건 어느정도 명분이 이따 할 수도 있겠지만 유비 성격 알면서도 관우를 죽인 것은 우리 공멸하자 라는 소리 밖에 안되는 거 같다
관우만 안죽었으면 아무리 두 세력의 감정이 많이 상했어도 이릉대전은 없었을 거고 조조랑 이렇게 점수차가 벌어지진 않았을 텐데
공감합니다.
공감합니다.
유비쪽에서 오나라에 너무 좃같이 대한건 맞는데 결국 선택을 한건 손권이라 손권 참...
압도적 1등이 있다면 아무리 좃같아도 2,3등이 힘을 합쳐야 만에 하나라는 기회라도 생기는데...
그냥 1등이랑 편먹고 3등 깜... 병신이ㅋㅋㅋ
유비쪽의 실착도... '설마 위나라가 버티고 있는데 설마 이정도는 참겠지?ㅋㅋ'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염병 떨어서 사이 틀어지게 한 원인도 있지만요..
ㅇㅇ 노숙이 살아있었다면 이새끼 큰그림 못그린다고 ㅈㄴ 답답해했을듯
ㄹㅇ 조조 죽고 위나라 건국되고 한창 혼란할때 지들끼리 싸우게 만듬ㅋㅋ 관우만 돌려보냈어도 이성적인 유비가 걍 하씨발새ㄲ들하고 끝냈을건데
오나라 트롤이 너무컷음 촉 오 합쳐도 위나라 이기기 버거운데 오나라가 촉을 쳐버리니..
저 인원들중 절반만 돌아왔었어도 마속의 저곳에 산이 있다 고로 나는 등산한다 같은 짓거리도 없었을듯? 제갈량 나홀로 북벌기도 안찍었을테고
제갈공명은 혹시 안올려주시나요 ㅠㅠㅠ 쭉 기다리는데 안올라오네요..
성도에서 형주원정군이 개같이 멸망했단 보고를 들은 제갈량의 심정을 서술하시오
(배점: 재갈량의 수명)
수어지교라매!!! 왜 물고기가 말을 안들어!!!
혹시 촉나라에 왕보가 연의 정사에서 내용이 다른가요? 제가 본 삼국지에서는 관우가 죽을때 맥성전투에서 주창과 함께 죽은걸로 알고있는데 어느게 맞는 정보인지 모르겠네용!
죽은 사람만 포함되는건가요???정기를 몰랐는데 정기가 제일 아깝네...아....황권도 있구나....조비가 한신에 비하던 인물.....그리고 위나라 열후에 봉해진 인재들만해도 몇명이야...쟤들이 촉에 있었다면....안타깝다
그냥 하늘이 삼국지라는 명작을 탄생하기 위해 일부러 그랬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 이릉대전 안 말아 먹었으면 제갈량의 그 눈물나는 고군분투기가 없었을 테니.
이성이 왜 감성보다 더욱 중요하는지 알아야 하는 이유
일러스트 퀄리티가 갑자기 좋아졌네!?
이래서 없는 사람이 올인하면 안된다니까
코인에 올인하는 청년들..
지휘관급 장수들이 싸그리죽은거보면, 진짜 말그대로 괴멸적인 피해를 입은듯... 제갈량의 천하삼분지계가 허무하게 날라가는 순간이죠. 저군대로 진작에 남만점령햐고 북벌했으면 중국사가 달라졌을수도
방통 마량 법정 황권등 촉에도 뛰어는 인물이야 많아지만 그당시 위와 촉의 국력차이와 과연 촉의 잃은 인재들이 순욱 순유 가후 곽가 유엽 만총등과 비교해서 과연 비슷한 급이였을까?
게임이나 소설에선 밸런스상 촉을 높게해준듯
개인적으로는 순욱 곽가 가후 순유에 대응하는 촉의 모사는 제갈량 법정 정도고 유엽 만총에는 마량 황권정도일듯
촉의 수많은 인재를 한방에 쓸어버린 육손은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거지.
인간계가 아니라 신계다.
오죽하면 위군들도 상대가 육손이면 의심하고 망설이는게 버릇이었죠.
손권이 장료만 보면 움츠려드는 것과 비슷하다고 봅니다..
그런 육손을 어떤 쥐xx가...
@@김현덕-f9v 히힛 이궁의변 발싸!
촉보다 오의 인재풀이 훨씬 넓고 능력도 좋음
촉은 드라마 몇개 빼면 위랑 오에 비비지도 못할 거품국임
@@D.O.R.A.L.P.A.K 관우는 대표적 거품이고, 장비와 황충은 임팩트는 있지만 꾸준함이 부족했고, 위연과 왕평은 임팩트와 꾸준함을 동시에 갖췄지만 인품이 ㅜㅜ
제갈량이나 마초는 싸울때마다 지는 패장이고요..
조운은 뭐 아무것도 없다는ㅠㅠ
인내심 그건 진짜 무서운 무기다
저 충성심이 끓고 뛰어난 인재들 형주에 좀만 남겨놓았어도 번성공방전때 미방 부사인이 군량 불태워먹어 보급이 ㅈ망하는 폐급짓도 없을거고, 손권에 뒤통수 맞고 관우 본대가 회군할때까지 강릉에서 결사항전했을거고 관우가 죽지 않았을 수도 있음. 이부분은 항상 유비의 저의가 궁금함..
아 형 촉정벌도 유비한테 사활을건 전투였는데 참모진을 양분할 여력이 어디있었겠어
@@y.s6622 익주에서 영혼까지 끌어모아 북벌을 할 정도로 어느정도 안정된 상황인데 익양대치때 개같이 멸망하는거 봤으면 S급 몇 명은 보내야 하지 않을까요
@@ArtJoHistory 남군을 그렇게 쉽게 내주지 않았으면 죄다 죽임 당할 일은 없을겁니다. 관우 본대도 살아있고 한중 전투 이후 익주에 유비군 본대가 주둔 중인 상황었구요. 법정도 아직 죽기 전이구요..
@@ArtJoHistory 제가 알기론 유비의 한중전에 호응해 맹달이 상용, 관우가 양번으로 올라갔던걸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딱 칠군만 데리고 돌아왔으면 완벽했는데 우리가 아무리 방구석에서 ㅂ랄 긁고 댓글을 싸질러도 백전노장의 심정을 어찌 알겠습니까..
우리는 무리한 북벌이라고 생각하지만 관우 입장에서 무리하지 않을 수 없는 북벌인것도 맞네요. 조조의 후방은 반란으로 들끓고 뜻밖의 수해로 최정예 칠군을 대파하고 그 철옹성 같던 양번을 함락직전까지 갔으니까요. 아마 관우는 다음은 없다라고 생각했겠죠. 사태가 얼마나 심각했으면 조조가 합비전선에서 장료까지 빼왔겠습니까? 손권이 형주먹고 관우보다 월등한 조건에서 수십년간 단한번도 양번을 함락직전까지 밀어붙힌 적이 없습니다.
@@ArtJoHistory 그리고 관우가 수성 위주로 피해를 최소화하려고 해도 결국 궤멸적 피해를 입게 되어 있습니다. 여몽전에 따르면 익양대치 이후 여몽과 손권은 철두철미하게 어떻게 형주를 쌈싸먹을지 골몰하고 있었습니다. 관우는 오나라 본대와 맞서야하고 위로는 조인, 만총이 버티며 여차하면 서황, 장료, 하우돈이 달려옵니다. 익주로 복귀하고 수개월 동안 관우 모가지가 따일때까지 아무것도 못한게 익주의 유비입니다. 지킨다고 뭐 달라질게 있을까요?
이 순간만 벗어났다면 이 인물들로서 위나라를 도모해볼수도 있었을텐데 안그래도 힘이 약한 세력이었건만 왜 말도 안되는 전투를 벌인것인지..
유비가 딱 그만큼이었다는거겠죠..
관우가 장료나 조운이나 감녕 같은 그냥 A급 장수인 것도 아니고, 오나라도 원래부터 악연이었던 것도 아니고, 째깐한 나라끼리 힘을 합쳐도 살까말까 한 판에 의형제를 통수쳐서 죽이니 못 참을만도 하긴 함. 죽은 장수만이라도 관우가 아니라 방통 이런 사람이었으면 그래도 참았을텐데..
@@notUNDERSTANDABLE 못참으면 망해야지ㅋㅋ
의형제의 복수를 위해서 이뤄둔 모든것을 포기하고 실행했다는 점이 유비라는 인물을 입체적으로 만들어주고 삼국지가 아직까지 회자될 수 있는 점이 아닐까 싶네요,,
@@졸린곰-c8d 님 같으면 흑인노예들을 해방한다는 대의명분으로 힘을 얻어서 대통령이 된 사람이 갑자기 성향이 바껴서 흑인노예매매로 국익을 얻겠다고 하면 따르겠음?
이런 히스토리 넘 좋아해요. 성우님이신가여? 목소리 넘 좋으세요
따지고 보면 황권은 죽지 않았지만, 촉나라 입장에선 이릉대전으로 아깝게 잃어버린 인재다.
법정:이거 설계 누가했어?
방통:그러게 누가 아는거 없나
공명:그게... 어...
법정:어 공명 뭐 아는거라도 있수?
공명:그게... 사실은... 주군이 설계한겁니다.
법정,방통:아...
공명:거기서 내친구 마량도 전사했지 뭡니까 ㅎㅎㅎ 😔
방통,법정:아니 우리들이 죽은뒤에 뭔일이 벌어졌길래
공명:아 그게 관우 장군이 전사했거든요...
방통,법정:아...
공명:그러고 덤으로 장비씨도... 네 그렇게 됐습니다...
조운:저 아니였으면 주군도 전사하셨을겁니다...
방통:근데 미축이 안보이네요?
공명:아 미축? 그자는 두문불출하고 있습니다...
법정:그자는 왜?
공명:미축 동생이 사고를 크게 쳤거든요...
촉의 If가 종결된 이릉대전..
황권도 잃었지..
이릉대전에서 이릉게 너무 많은 유비는
병으로 목숨을 이릉...
마량도 나이에 비해서 빨리 사망함 30대중반에 사망했으니.. 당시 몇천년전인거 생각하면 30대중반 병사 흔한일이긴한데..
사섭이 특이한 인물이였던거임
몇백년전...몇천년전이면 구석기시대
@@user-no5ii3jl2c 약 1800~ 1900년전 맞습니다..
최근에 그림체가 업그레이드된거같네요
이릉대전때 .. 수많은 장수들이 훅갔네요 .ㅠㅠㅠ
정기 존멋이네. A급이상.
촉의 진정한 문제는 유랑생활을 오래하며 길러진 협객화된 습관으로
자신의 토지와 백성에 의지하는 세력이 아니라 유랑 전투집단이다보니, 다른 세력에 대한 포용력이 낮았고,
위급하고 중요한 일은 유비가 독단적인 결정하게 되는데, 작은 세력일때는 그렇다쳐도, 국가를 이루면 트러블이 심해질수 밖에 없는 구조적 약점을 가지고 있었음
모든 힘이 군주에게 집중되면, 주변의 혈족의 힘이 비대하게 강해지는데, 이러면 인재가 능력을 발휘하기에 어려움이 많았고
그래서 위나라에서 잔치를 열면 하후돈 같은 중신이 걸죽한 농담을 항복한 장수인 장료,서황,장합에게 할정도로 분위기가 좋았는데 반해
촉나라에서 잔치를 열면 파벌끼리 서로 째려보는 현상이 있을 정도로 불협화음이 심했음
그러한 사회체재의 갈등이 나타난 사건의 예가 관우북벌시 후방의 형주관리가 배신하여 죽음으로 몰아넣고, 장비가 부하장수에게 암살되는 사건으로 나타나게되며,
관우,장비의 개인의 탓으로 보기에는 국가의 운명을 바꿀정도로 큰 사건이었고 위나라와 오나라에서 이정도 되는 중신이 배신으로 죽거나 암살되는 예는 매우 드믐.
유비는 이러한 문제를 알고 있었고,
자신이 죽으면 내부적으로 결속못하는 촉한은 망할것이 불보듯 뻔했기에 마지막 희망을 가지고 이릉으로 향했던 것이며, 이릉전투에서 인재를 갈아넣고도,
갈등을 봉합하면서 국력을 길러 북벌을 시도한 제갈량은 대단한 능력자.
부융 부첨이 진짜 멋있지
이릉대전 패전으로 촉한은 통일은 끝났다고 봐야겠구나
용렬한 관우의 🦋 효과
마량 황권 황충이 죽은게 너무 아쉬운게 장완과 마량. 비의 등으에게 정사를 맡겨도 될정도의 인물이엇는데ㅜ
유비의 오판으로 인재들과 병사들만 골로간듯 ㅜㅜ
제갈량 왈..
법정이 살았으면 이것(이릉대전)을 반드시 막았을것을..
03:23 마속이 대신 죽었으면 얼마나 좋아?
이릉참사 직전 육손이 순우단에게 3천 정도의 병력을 주어 영채 하나를 취하게 했는데 순우단이 군사 다 잃고 겨우 목숨을 부지하여 돌아갔는데 이게 유비를 더욱더 방심하게 만든 전략이었다는거
"유비는 교활한 적이며, 매우 많은 일을 겪었고, 그의 군대가 처음 집결했을 때, 그의 생각은 조밀하고 전일하였으므로 침범할 수 없었다. 현재는 매우 오랫동안 출병하여 병사들은 피곤하고 사기는 떨어졌으며, 또 새로운 계책은 없다. 적을 잡을 때는 바로 오늘이다."
육손이 했다고 하는 말이죠
유비 진짜 제갈량이 그렇게 말렸는데도 불구하고.. 촉이 오를 공격하는 바람에 위나라 만 결국 어부지리를 얻었지
하지만 유비가 관우에 죽음에도 가만히 있었다면 삼국지에 한축이 되진 않았겠죠
@@dasshik가만히 안있어서 개털린 건데
@@우정-t5u 그니까 에초에 배신에 의한 의형제의 죽음에도 이득과 합리를 논하는 인물이였으면 에초에 사람들이 몇십년 동안 유비를 따랐겠냐는거지 유비가 내새운게 덕과 의리 충심 인데
@@Nina-j5i 따랐겠지 동족 유장 통수치는데도 공명 등이 계속 따랐는데? 그리고 결국 그건 if의 영역 아님? 삼국지의 한축이 된 건 한중전 덕이지 이릉대전에서 개털려서가 아님.
덕, 의리, 충심 전부 개나준 손권이나 조조도 수많은 사람이 따랐다 ㅋㅋ
@@Nina-j5i 그리고 애초에 유장을 배신한 게 누군데 ㅋㅋㅋ
법정만 있었어도 ,. . ㅜ
헉 이렇게 많이 장수잃었나요...`~~
풍습은 빙습이라고도 불리는 장수인가요??
이름이 특이해서 기억이 남는 장수..
빙습이라고 불린다는 말은 들어본 적 없는데 이릉대전 전에 대도독을 장비로 임명했다가 장비가 살해당하고 바로 풍습이 대도독이 된걸로 봐선 사람 보는 눈 하나는 정말 따라올 자 없는 유비가 발탁한거니 실력이 없는 것은 분명 아닐텐데 뭔갈 보여주기도 전에 죽었으니...
그런데 생각해보면 어느 누구도 유비한테 "이런 진형으로 장강을 내려다가간 화공에 각개격파를 당할수도 있습니다"라고 진언을 못한거보면 이릉에서 죽은 촉장들 그닥 인재라고 느껴지진않는데..그냥 평범한 장수들 아니였을까?아무리봐도 위연,왕평보다는 밑이고 요화,장익이랑 비슷한 수준들이었듯.
수십년간 전장에서 살아온 숙장들보단 대부분 경험이 부족한 2세대 장수들로만 이루어져있었고 유비가 오를 너무 얕본 것도 있었음..
촉에서 형주로 나가는 지형이 대체로 그럴 수 밖에 없는 땅 아닌가요? 드가기도 길이 좁고 나가기도 좁아서, 일단 드가면 입구만 딱 지키면 못나오는...
그니까, 그런 진형으로 장강을 내려갈 수 밖에 없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인데, 문제는 상대가 육손... 그래서 그렇게 된 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BlackGetta 촉에서 형주로 진출하는길이 장강을 타고 내려가는게 가장 편리하긴합니다.이게 수비자가 각잡고 물길 틀어막고 우주방어하면 공자가 뚫기힘든긴 한데 280년에 오나라가 막장이긴 했지만 진나라 왕준과 두예는 파죽지세라는 고사성어까지 만들어내며 손쉽게 뚫어버립니다.이걸 보면 공자가 준비를 잘하고 유비처럼수륙양면으로 진을 길게 늘여뜨려서 진격하는게 아닌 왕준처럼 큰배로 장강을 내려가면 이릉에서 대패는 안당했을수도 있겠지요.저는 그걸 제안한 장수가 하나없다는점에서 이릉대전때 전사한 촉장들이 그닥 인물들은 아니였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ArtJoHistory 확실히 이릉에서 전사한 장수중 그 누구도 마속같이 가정에서 뻘짓거리는 안했을거같습니다.그런데 제갈량은 누가살아남아있던간에 마속을 가정으로 보냈을거에요.ㅎㅎ
유비가 은근 인복은 있었지만 정작 실속있는 인재는 몇안되면서도 그마저도 일찍 요절하면서 이후 제갈량 북벌때 크게 어려움을 겪을수 밖에 없었던거지 알짜배기 인재들은 한중공방전 이후 이릉대전때 모조리 전사해부렀네 ㅜㅜ 결과는 유비가 잘못했네 ㅋ
헉 전에 읽었던 책에는 부동이라고 되어 있었는데 부동이 아니고 부융이 맞나 보군요.
융과 동의 한자가 서로 비슷해서 부동으로 착각했던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구요 부융이 맞습니다
이거 목소리 누구신가요?
어찌보면 극단적 인물들이 많은 촉 능력은 넘사지만 사람이 적은 촉 극단적 인물들은 적지만 중간과 상급을 오가는 알짜들이 많은 위의 포지션만봐도 북벌에게 이기기가 쉽지얗죠ㅜㅜ
유비가 이릉대전만큼은 참았어야했는데... 참... 근데 또 우린 다 지난일을 살펴보는것이니 이런말을하지만 그 전쟁에서 유비가 이겼다면 얻는것 또한 엄청났을테니.
함부로 평하긴 힘든듯
장비아들 장포도 이릉대전 휴우증으로 죽지않나요?
북벌중에 사망으로나옴
촉나라는 패전하면 관우부터 완전 몰살을 당하네요... 유비도 전투는 잘했지만 전략이 없는게 효정에서 어설픈 유인 작전이나 하고 큰 전략이 없었던 거 같네요... 전략이 없으면 일단 철군을 해야지 산속 700리에 목책을 세우면 당연히 화공에 취약하지...죽치고 있는다고 뭔 묘책이 나오는것도 아니고...
마량이 존형이라고 불렀으면 제갈량의 영어식 이름은 john이었겠구만...
유비의 꼴통짓으로 10년 공부 도로아미타불이 되었으니 기가 막힐 뿐이다.
감정을 다스릴 줄 모르고 나라를 망쳤다는 점에서 유비는 조조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제갈량이 유비가 다 말아 먹은 나라를 가지고 북벌에 나서 결국은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탈진해서 죽은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순간 장남이 초촉과 장남할때 그 장남인줄 알았음 ㅋㅋㅋ 사마가는 분량 무엇?(주태가 죽인것도 뻥?)
마량죽어 여러 장수들 죽어 그와중에 그나마 모사+지휘관 할만한 황권 위나라로 넘어가 그전에 법정 병으로 죽어 정무야 뭐 장완 비의 동윤둥이 있었지만 군무를 맡길만한 사람이 이릉 전투 이후로 없어졌죠 게다가 유비의 가장 몹쓸짓이 유선이 왕재가 아니면 니가 황제해 이거였는데 이게 이릉전투 후였으니 뭐...
막판에 똥 안싼 왕은 위왕 조조. 오왕 손권도 죽기전에 똥싸고 한중왕 유비도 똥싸고. 죽기전에 똥 좀 싸지 마라.
결과적으로 이겼으니깐 안싸보인거지 적벽대전때 대패후 전사해서 조비가 왕되었다면 조가분열나서 촉이나 오가 빠르게 자리 잡았을지도 그냥 왕이 빅똥만 안싸면 다른놈들이 알아서 자멸해준꼴
쬬도 싸긴 쌌지 사패한테 자기 자리 물려줬는데ㅋㅋ
근데 왜 이렇게 장군들이 피해가 큰가요 병사들이 몰살당해도 장군들은 사는데 왜 그런가요?
그만큼 유비가 무리하게 진격한거고 오나라가 예상치 못한 공격 타이밍+포위망이 촘촘했던거겠죠
유비군이 다른 세력에 비해서 가지는 큰 의의가 (모두가 완전 그런 것은 아니어도) 대의,신의,충의 등을 더 중시하는 편이라 (위는 비교적 실리,냉정 위주고 오는 본능,감정 위주 같음), 가뜩이나 유비가 대군으로 오를 치려한 동기 자체도 오가 뒤통수를 쳐서 (군주의) 의형제가 죽기까지 한 ㄱㅆ병크였기에, 전투가 패하고는 있지만 (당시로서는 전황을 즉시 다 정확하 알긴 어려운 시절이니) 아군이 물러설 전투가 아니라 생각하고 본인이 죽을지언정 자신의 위치를 내빼지 않고 사수하려 한 사람들이 많은듯.
방금전 본 수성의 달인 편만 해도 굉장히 열악한 상황이기에 패배하고 사망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지만 도주하지 않고 항전한 끝에 이긴 사례들이 있음.
보통 장군들이 사는 이유는 장군들의 호위대가 강하고 연의처럼 장군들의 선두에 있는 게 아니라 후방에서 지휘하기 때문입니다.
관도 때도 곽도, 신평, 장기, 원소나 적벽 때 서황, 장료, 만총, 가후 등도 이 경우줘
@@마루1세-x3z 이분 말씀이 일반적인 상황인데 그 후방을 오나라가 끊어버리면서 갇힌 것이죠.
선택은 싸우다 죽거나 항복하거나
육손이랑 주유는 삼국연의 나관중이 현실인물보다 레벨을 낮춰서 그렸다고하던데 ㅋㅋㅋ 말그대로 넘사벽 인물들이었다고 함
둘이가 어나더 레벨이긴함
주유는 워낙 빨리죽어서 모르겠고 노숙 여몽 육손등 오도독은 잘하기는 했지 육손이나 육항은 손씨때문에 부모 다죽었는데도
유비의 개트롤링
여기서마속이죽었다면?😅
나이먹음 꼰대되어서 어쩔수 없는 전쟁이 일어난거지.
관우도 완전 고집쟁이
유비도 마찬가지
그 고집으로 흥 할 수는 있으나 오래가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는거지
쉽게 설명하면
꾸역꾸역 무자본부터 올라간
슈퍼개미가 멘탈나가서 추매했다가
하한 10연속 맞고 ㅈ된 상황 이라고 하지
슬프네
이래서 전쟁때 모든 밑천을 다 끌어다 쓰는건 위험하다 이기면 다행이나 지면 막대한 피해로 돌아오기에
厉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