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동해인] 암각화 전문가 이하우 교수 [포항MBC 210330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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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Опубликовано: 5 фев 2025
- 선사시대의 기록 문화 암각화 바위에 새겨진 비밀을 풀다
우리는 종이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면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다.
요즘은 인터넷 SNS가 그 역할을 대신하는 시대!
그렇다면 문자도 종이도 없었던 아득한 옛날,
인류는 어떤 방법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했을까?
바로, 바위에 새겨진 그림 암각화!
선사시대 사람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암각화는 세월의 풍파를 견디며 이 시대까지 남아 있는데
한반도 선사시대 사람들은 암각화에
과연 어떤 메시지를 남겨 놓았을까?
암각화 전문가 이하우 교수와 함께
바위에 새겨진 비밀을 하나씩 풀어본다!
멋있당💜💜💜💜❤️❤️❤️❤️🔥🔥🔥🔥
이하우 교수님 중학교 미술교사로 계셨을 때 제자였습니다. 엄한 모습도 많이 보여주셨지만… 그 때 제가 시를 좀 썼었는데 시화를 직접 그려보고 글씨도 직접 붓으로 써보면 어떠냐며 여러 조언을 해주셨죠. 정말 감사합니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 발견된 것 외에 현재의 암각화로부터 60~70m 떨어진 곳 물 속에도 있습니다. 저가 20년 전 쯤 발견했습니다. 지금은 잡석에 뭍혀 있습니다
하우형 반가워요.
한 번 볼 수 있었음좋겠다.
고고학계에 유감스런 부분은..
생활상 재현에 있어서...
헐벗은 사람들을 설정 한다는 것이다.
반구대 암각화에 묘사된 인물들을 보자.
활을든 사람. 작살을 든 사람도 있다.
한반도에서 활들고 숲속을 누빌때에
웃통벗고 다녔겠는가?
심지어는...
남성의 성기가 강조되어 묘사된 것이라
하는 말도 들었는데...
내가 보는 바로는 칼을차고 있는
모습으로 여겨진다.
고고학계에서 재조명 되어야 할것은
신석기 후기에서 청동기 초기시대의
생활문화 수준이다.
지난날... 고인돌 이라는 만화에서는
구석기 생활상으로 엮어 놓았다.
그러나 고인돌 시대는 고조선 시대다.
비파형 동검과 정문경 청동거울이 있던
시대라는 것이다.
그토록 정교한 청동거울을...
벌거벗은 웃통에 덜렁거리고 있었을까?
또는 너절한 넝마를 걸치고 그 거울을
가슴에 달고 있었을까?
고조선 시대 군장을 무슨 무당수준의
패션감각으로 여기는 폐단이 있다.
돈있고 권력있어 금과 옥으로 장식하고
다니던 시절이다. 지배층의 사치가 극에
달했을 정도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미개 원시인" 이라는 인식
프레임에서 좀처럼 벗어날줄을 모른다.
오죽하면 정문경 복원해 본다면서
막대기에 노끈맨 것으로 그리려 할까?
국보급 고려청자를 떠올려보자.
오늘날에 과연? 그보다 고급진 명품을
만들어낼수 있다고 자신 하겠는가?
그렇듯 인류의 기술은 진보나 발전만
거듭한것이 아니다. 때로는 퇴보하고
많은 것들이 단멸되었다.
특히. 삶이 팍팍해 질수록 생활문화는
퇴락하는것이 당연하다.
반구대 암각화를 다시보자.
면새김 그림은 신석기 작품.
선새김 그림은 청동기 작품.
이라고 추정한다.
선새김 작품은?
면새김 작품보다 훌륭한가?
전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알수있다.
면새김 고래는 그 종류까지 알수있을
정도로 표현력이 세련되어 있다.
선새김 사슴은 무슨 피카소 추상화
형태와 같이 본래의 모습을 알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인류문화는....
상형에서 표의문자로 발전한것이 아닌
상형할 여건이 못되니 표의로 퇴락한
것일수도 있다는 것이다.
인류 문화는 빙하기 부터 시작되었다.
즉. 옷을 입고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벌거벗은 아마존 원주민이 인류의 선조
생활상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므로....
반구대 암각화 인물상의 허리에
나타낸것은 성기가 아니라 검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분명한것은...
고인돌 시대에 동검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설사 그것이 부장품으로만 쓰였다
할지라도....
비파형이 있는데 다른검은 없었겠는가?
분명 지니고 다니던 검이 있었겠다.
다만. 그런것은 녹여서 재활용 되므로
유물로 남겨지기 어렵다.
암각화 역시도 같은 맥락이다.
바위에 새겼을때야 땅바닦에도
모래위에도 나무판에도 그렸겠지만
유적이나 유물을 찾아볼수 없을뿐이다.
이런 오류는...
학계의 갑골문 설명에도 나타난다.
"꼬챙이 글" 만 있었다는 설명이다.
갑골문에 붓 율(聿)이란 글자가 있는데
어찌해서 꼬챙이로만 새겼겠는가?
다만. 붓으로 그린 글자가 남지 않았을
뿐이다.
근본적으로....
구석기니 신석기니 하는 표현 자체에
어폐가 있는것이다.
그시대 사람들이 어찌 석기만을 사용
했겠는가? 조금만 생각해보면...
구석기 신석기 시대는 목기시대 였음을
추정할수 있다.
그것은....
세련된 돌 화살촉이 무더기로 출토
된것을 보고서 양질의 활이 있었음을
능히 추정할수 있는것과 같은 맥락이다.
결론적으로.....
세련되고 정교한 반구대 암각 고래를
보았다면?
당시의 사람들이 얼마나 여유롭고
수준높은 생활문화를 지녔었는지
추정할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고려청자를 볼때에....
당시에 얼마나 사치가 극에 달했는지
추정할수 있는것과 같다.
물론. 빈부격차도 크고 피지배층들은
개돼지처럼 살았을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이차문제다.
영상에서 보여지는 원시 생활상.
거기에 웃통까고 있는 사람들은
피 지배층의 모습이란 점을 한번이라도
언급하는 이들이 있던가?
고조선시대 군장들의 재력이...
오늘날의 박수무당 보다도 못했다는
식의 오류는 반드시 수정 되어야한다.
다시 반구대 암각화...
한번 물어보자.
맨손에 짱돌들고 찍어서...
저걸 그려낼수 있었겠는가?
망치나 정이 없었다고? 무슨근거로?
신석기? 그래서?
길죽한 돌을잡고 뭉툭한 돌로찍어
면새김으로 고래를 새겼다고?
(빡대가리야?)
설사 구석기 사람이라 할지라도
나무 손잡이가 달린 돌망치를 썼겠다.
하물며 신석기 후기인데?
짱돌들고 암벽을 두두리게 만들어놔?
(빡대가리 소리 들어도 싸다.)
암각화의 제작 년대는 모두 틀리는데, 일반인들은 잘 모릅니다.
몇 만년 전의 프랑스, 아프리카로 들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몇 천년 전으로 이야기합니다.
고인돌 또한 구석기는 몇 만년이라고 하는데, 오히려 구석기 고인돌은 제작년대가 국내 것들이 년수가 많이 적게 이야기되는 것 같습니다.
미술이 아니라
선사시대에 고대인들이 가장 중요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 제단을 쌓는 일이 가장 중요 한 일이다.
고대인들을 도구를 만들고 수렵을 하고 물고기를 잡고 먹고 살면서 제단을 쌓는 일을 가장 중요한 생활이 였다
교수님께서 발견하신 모양은 제단으로 가는 제단의 뿔이 있다는 이정표와 같은 바위이라고 봅니다.
제단 바위가 있는 곳에 물이 있다
제단의 모양이 있다
제사는 제단, 제물, 제사장이 있어야 한다.
암각은 성경과 신앙으로 풀어야 한다고 봅니다
암각화에 자신의 예기가 너무 많이 섞인 느낌입니다
하우가 교수되었나보구나 .쇠자와 홍두깨같은걸로 애들 패면서 암각화연구했었구나
영구 땡칠이 누구예요?
칠포리에 가면 제단의 바위가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제단을 쌓는 제단입니다
윷판이 아니라 동그라미 24개의 성혈은 성경의 숯자의 의미는 제사장의 수이며 하늘의 통치와 경배의 수입니다
십자가의 12개의 성혈은 12지파를 의미합니다
암각은 당시에 아주 중요한 것을 후대에게 남기기 위해서 바위에 암각을 했다
절대 낙서가 아니다 비석의 글을 절대 낙서가 아니다 중요한 내용이다
방패모양은 구약에 나오는 제단이다
방패안에 성혈이 12가 많다
그것은 12지파를 상징한다.
삼각형의 모양은 제단의 뿔을 상징 한다
우리나라에 있는 암각을 다른 추축으로 절대 풀수가 없다
성경으로 풀수 밖에 없다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는 자리이다
경주에 있는 암각화는 창세기에 나오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암각부터 시작을 합니다
제단 모양이 나오고 있고 짐승의 암각이 나오고 제단위에 나무모양도 있고 짐승의 발자국도 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