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향을 떠나서 A라는 인물이 B가 한짓을 못하겠냐.. 라고 가정하는건 진짜 어려운 일입니다. 사마의의 주변에는 기회가 되면 내가 다 해쳐먹을 각오를 가진 사람들이 어느정도 포진해 있었지요. 제갈량의 주변에는 강유나, 장완, 비의, 신지 같은 인물이 있었지요. 모순인거 같아요. 계가 사람이 좋아서 그렇지 하려고만 하면 그거 못해서 안하것냐? 하는거요. 그사람의 능력이란건 인격을 포함하는 거거든요. 그러니 유비는 제갈량을 믿었고, 조조는 사마의는 못 믿을 놈이니 쓰고 버리라고 한 거지요.
사실 이미 이릉대전 이후에 유선이 직위한 시점에서 남중을 정리하고 각지 반란을 진압한 후에 도강언을 정비했던 북벌 시점에서라면 할려면 할 수 잇엇을 거임. 물론 마음에 걸리는 게 이제 60대 초반인 조운인데 조운만 사망하고 난다면 그 다음엔 위연만 어떻게든 구슬린다면 군부도 문제가 없엇을 태니까 진짜 시도 가능성이 충분함. 다만 안했을 뿐이지
오히려 제갈량이 위나라가면 사마의 때문에 더 대우 받았을거라고 생각하네요. 위에서 사마의가 찬탈까지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사마의와 동급이거나 뛰어난 인재가 없어서 균형이 무너진거에 있는데 제갈량이 있었다면 능히 그 균형을 맞추어 줄만하죠ㅋㅋㅋ 솔직히 사마의가 소방수역할을 너무 잘해서 권력이 모인건데 그 중 반만 제갈량한테 몰아줘도 충분히 억제 가능했을듯. 단, 수명만 충분하다면ㅋㅋㅋ
10:43 조모: 사마 놈들이 주제 넘네 내가 나서야겠구만! 가충: 성제 없애!! 성제:네 그렇게 대낮에 창에 찔려죽어버린 황제.... 그 탓에 진태는 가충을 제거해야한다 했지만 사마소는 가충이 아닌 성제를 죽였고 죽지 않은 가충은 사마염시대에 또 이상한 짓(가남풍)을 하고말죠 .... 그리고 전 황제를 죽였다는 로 사마씨는 두고두고 비난 받았으며 이전의 사마의의 고평릉 사변과 실수였다고는 하나 벌어져버린 사마소의 황제 시해로 인해서 당태종을 비롯한 후대의 중국 황제와 지도자들에게서 많은 비판 받았죠.
저번에 올리신 영상으로 유입된 뉴비입니다! 최근에 삼국지를 열심히 보고있는데 삼칠이님 영상이 정말 도움 많이 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 위주로 영상을 만들어주셔서 안볼수가 없었어요ㅋㅋㅋㅋㅋ 한 달간 이 채널의 다른 영상들 챙겨보면서 2부를 너무 기다렸습니다... 좋은 영상 만들어주셔서 감사해요!
@modularsolarid2000 제갈량이 말했다. 그는 본래 싸우려는 마음이 없는데 천자에게 결전을 굳게 청한 이유는 그의 군사들에게 무(武)를 과시하자는 것이오. 장수가 군중에 있으면 임금의 명도 받들지 않을 때가 있는데, 만약 저들이 우리를 능히 제압할 수 있다면 어찌 천리 길을 가서 굳이 결전을 청하겠소!
제갈량이 사마의 만큼 출세하진 못할 것 같습니다. 제갈량은 나라를 바르게 다스리는 통치자이지만, 사마의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을 장악하는 정치가 이니까요. 하지만 위나라에서 제갈량은 나라의 기반을 잘 다져서 순욱 이상의 명성을 누렸을것 같습니다. 애초에 둘이 추구하는 방향이 다르니 결과도 다를 수밖에요.
권모술수나 뭐 그런거보다 가장 큰 문제는 '제갈량이 그렇게 관직이 올라갈만한 기회가 있었을까??' 가 아닐까요??? 솔직히 사마의도 나름 조조 휘하에서도 명문가인 사마씨 가문의 후광을 가지고서도 제갈량 북벌에 대한 거의 유일한 방패가 되어주면서 훗날의 권력을 잡을 기틀을 마련했다고 생각하는데... 제갈량이 출사할 시기라면 제갈량은 능력은 있지만 뒷배도 없고, 거기다 제갈량이 없는 유비군이 과연 조조를 귀찮게 할만한 세력으로 성장했을 가능성도 급격히 줄어들고, 즉 조조에게 대항할만한 세력이 사실상 거의 없어진다는 소리가 되는데... 그런 상황에서 제갈량이 출세 루트를 탈수 있는 기회가 있었을지가 가장 우선인거 같은데요...
저는 반대로 제갈량은 사마의가 한 행동들을 그대로 못했을거라 생각합니다. 위에 갔더라도 고평릉은 충의를 아는 제갈량이 행하기 어려웠을거라고 보고, 오히려 오와 촉을 정벌해서 통일 후 제후나 그 공으로 대장군, 승상을 할 수는 있었을 지언정 고평릉같이 쿠테타스러운 행보로 위에서 가장 높은 관직을 차지하진 못했을것 같습니다!
유비의 분노가 맞지요. 유엽만이 관우와 유비가 부모형제 같은 관계이기에 침공할 것이라 예측했다는 것에서 그렇습니다. 유비의 이릉대전이 합리적인 선택이라면 유엽말고도 이릉대전을 예측한 인물이 있었어야 합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할만큼 무리수였고 비합리적이었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유비같은 당대 최고의 지휘관이 말이죠.유비군의 2인자였던 제갈량도 말리고 심지어 군의 실세인 조운 마저 반대했던 이릉대전은 실리적이지도 않고 합리적이라고 볼 수도 없었던, 유엽이 말한 것처럼 분노와 복수심이라는 감정적 선택이었다고 결론내릴 수 있지요.
여러 이유가 있었죠. 아무래도 유비 입장에서는 빨리 형주를 찾을수 있을때 찾아야 국가의 가오도 살고, 형주 내에서의 호응도 기대할수 있는거라.. 게다가 손권은 지속적으로 유비를 추가적으로 압박하고 유장을 포섭해서 익주까지도 넘보려고 했음. 게다가 유비 개인적으로도 의형제가 죽은 상황이니 출병하지 않으면 꽌시의 나라에서 명예가 상할수도 있었음. 뭐ㅜ결과론적인거긴 하지만 이겼으면 아무문제 없었을거임
@@닉네임꼭설정해야함 본국에서 수백킬로미터 떨어진 곳이라 애초에 관우 정도 되는 거물급 장수 아니면 유지할 수도 없는 지역인데 어떻게 되찾아요;; 말이 안되지만 정말 만약에 되찾는다해도 다시 언제 뺏길지 모르는 땅인데 유비는 그냥 귀신들린것마냥 눈이 돌아가서 제갈량과 조운 같은 사람들이 말리는데도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하다 나라를 말아먹은겁니다..
유엽이 판세를 읽는 능력은 삼국지에서 탑일겁니다 가후도 그런거 잘하긴하는데 유엽이 유비를 보고 이때 자기힘을 뽐내지 않고선 촉나라는 쪼그라 들것이고 오래가지 못할것이기에 힘을 과시하기 위해서라도 무리해서 출정할것이라고 했죠 근데 조비도 알만큼 그런병크짓을 했으니... 적당히 대치하다가 서로 못이기는척 타협을 하는 시나리오가 좋았을듯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항상 공세적 포지션을 잡고 기선을 제압하며 승승장구하던 사마의가 유독 제갈량을 상대할 때 만큼은 철저히 수세적이었다는 것만으로 개인적 능력치는 확실히 제갈량 > 사마의가 맞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 커리어 라인 잡는 거도 재능이라면 재능이니 이건 사마의가 위지만... 역시나 후대 역사에서 (최근에는 쪼금 다르지만) 민중(특히 서토의 화하족 사람들에게)들에게 제갈량 (충의 화신) 사마의(역적의 화신) 어떤 대접을 받았는 지 생각해본다면... 흐음...
@@옼케발 착각들을 하시는데 제갈량이 여러번 북벌을 할 동안 위나라의 병력들은 대부분 동오쪽에 집중이 되어있고 대촉 방면은 많은 병력들을 지원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증거로 조조 - 조비 - 조예로 이어지는 삼대가 친정을 나설 때 동오 쪽으로 나섰지 한중공방전 이후로는 촉나라쪽으로 황제가 간적이 없단말입니다. 제갈량이 늘 북벌할 때 대동한 병력의 규모는 10만 정도인데 사마의에게 주어진 병력이 10만 혹은 그 이상이냐 라고 물어본다면 딱히 그것도 아니란 말이죠. 제갈량의 병력 운용 능력을 보자면 불리한 입장에서 승부를 봐도 본인이 답답해서 뭔가를 해야하는 입장인데 제갈량은 어떻습니까? 본인이 원정나가서 수비적인 위치를 고수한다는거죠. 사마의가 취해야될 입장은 너무 쉽죠. 그냥 촉병의 군량이 떨어지길 기다리면서 버티기만 하면 됩니다. 왜요? 제갈량은 어차피 대규모 꽝 한타를 절대 안벌이니까! 그냥 소규모 국지전 2~3번 이겨봐야 뭐합니까? 전쟁에서 지는데요. 제갈량은 실제로 대회전 자체를 치뤄본적이 없는 인물입니다. 제갈량의 1~5차 북벌이 모두 실패한 결과인걸 우리 모두 압니다. 지나치게 안정적인 운영을 했기 때문에 손실도 거의 없지만 얻은 것도 거의 없죠. 로우리스크 로우리턴 전략을 쓰는데 어찌 한실부흥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러니 제갈량의 군재는 항상 저평가 받을 수 밖에 없고 한신은 위대할 수 밖에 없는거죠.
제갈량보다 사마의가 나은 점 중 가장 큰 점은 처세술이죠. 조조조차 사마의를 보고 감복하여 여러번 등용을 위해 움직였으나 조조의 우세가 정해지기 전까지 사마의를 등용하지 못했고 그런 이유에서 인지 조조의 비서 쯤으로 쓰면서 그를 하대했습니다. 방통에 예시에서 보듯이 제갈량한테 이따위 짓 한다???? 바로 사표 던집니다. 제갈량같은 성격은 강한 리더가 아니라 좋은 리더를 만나야 쓸수있는 잡기 어려운 검과 같습니다. 천하의 기재였던 가후와 사마의 상당히 평온한 일생을 보냈고 와룡봉추라고 불렸던 제갈량과 방통이 그렇게 죽은 건 그들의 인생의 처세술에서 기인한다고 봅니다.
위와 촉의 국력차이를 생각하면 아무리 제갈량이 사마의만큼 살고...또한 이릉대전에서 인재들을 잃지 않았다고 해도 위나라 자체에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면 그 국력차는 극복하기는 어려웠을듯... 진짜 유선같은 암군이나 손호같은 폭군이 위나라를 말아먹었다면 어째 기회도 있었겠지만 조비 조예는 나름 다 문제는 있었지만 적어도 1인분이상은 거뜬히 하든 왕들이라...
순욱 엔딩 당했을 확률 높음. 하지만 그게 처신을 못해서 생긴 결과라고 까긴 좀 그렇지 않음? 그게 평가의 전부라면 간신이 최고 아님? 명백히 조조가 황제를 업신여기는게 팩트가 되어버리는 상황이 돠어버리니 하지 말라고 했다가 '응 너 토사구팽' 당하는게 처신 ㅂㅅ이라면 충언 올리다 죽은 사람들 다 ㅂㅅ만드는 거 아니겠습니까?
제갈량에게는 유비에게 있기에 더 빛나는 것이고 역으로 사마의는 조조와 있기에 더 시너지가 있는 편이죠. 하지만 조조는 사마의를 잘 믿지도 않는데 반대로 유비는 제갈량을 신뢰하여 자신의 뜻을 펼칠 수가 있었던 것 같에요. 하지만 역으로 사마의가 유비에게 들어간다면 사마의는 유비의 신뢰를 받아 뜻을 펼칠 수는 있지만 사마의는 우리가 알 듯 상당한 야심가라는 것이죠. 아마 유비가 죽고나면...... 그래서 저는 제갈량이나 사마의가 그 자리에 있기에 더 빛나는 것 같에요.
과장 덜어내고 봐도 이릉대전 이후 촉과 위의 국력차이는 최소 5배. 공격보다 수비가 유리하다는 건 (심지어 진출조차 힘들어서 매번 보급에 골머리 앓았던 서량, 관중측) 5살배기 아이도 아는 사실. 압도적인 인구 차이에서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휘하 제장들의 평균 능력치 차이까지. 그 외에도 따로 언급하지 못한 모든 이점을 안고 있으면서도 제갈량 상대로 번번히 깨지고 박살났다가 운 좋게 몇십년 더 살아서 결국, 본인은 위나라 근간을 흔들고 후손은 황제까지 참살하고 나라를 탈취해 후대에 망탁조의로 묶일 정도의 역사적 역적으로 남은 사마의, 정말 대단하다!
제갈량 북벌 당시 사마의와 제갈량의 정치적 입지를 따져봐야합니다. 제갈량은 유,관,장 사망 후에 실질적으로 전권을 장악하고 온전히 북벌에 집중할 수 있는 실권이 있었습니다. 반면에 사마의는 조예 사망 전까지는 실권이랄게 없었어요. 대촉방면 사령관도 하후연 - 조진으로 이어지는 조씨 일족의 혈족들이 실질적인 군 통수자고 위나라의 핵심 군대는 대오 방면에 대다수 주둔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사마의는 수비적인 포지션을 잡았을 뿐입니다. 결론적으로 제갈량의 5차례에 걸친 북벌은 단 한번도 제대로된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사마의는 임무를 거의 완벽하게 달성했습니다.
정치적 입지라고할게 있나요 사마의는 이미 조비가 죽을때 탁고대신이었고 조진사후 바로 대장군을달고 서쪽방면 총사령관이되는 위의 최중신..제갈량이 북벌에 집중할수있었다면 사마의 역시 조예의 전폭적인 지지와함께 관중방면만 수비하면되는 입장이었으니 조건은 똑같죠..영상에도 나오잖아요..위나라를 상대로 선전했다는 평가 그 이상은 아니라고요.하지만 개인적인 능력의 우위는 확연하게 제갈량의 위였습니다.
조진사후 이미 옹.양주의 군권은 사마의에게 있었습니다.당시 사마의의 직책이 대장군에 가절월입니다.옹.양주의 병력은 사마의의 관리하에 있었고 병력도 충분했는데 마음대로 할수있는 위치가 아니었다고요???맹달을 급습할때 중앙에 보고없이 군권사용을 걱정하던 부하에게 선조치 후보고하면된다면서 병력을 움직여 맹달을 벤 사마의가요???그리고 북벌당시 상황을보면 사마의가 위의 권신이되어 모든 군권을 마음대로 휘두른다한들 결과가 바뀔것같지는 않습니다만...어차피 위나라의 병력은 대촉전선.대오전선등으로 나눠져있었으니까요..
황제의 입장에서 보자면 제갈량 대 사마의... 아마 제갈량을 더 윗쪽으로 기용하고 싶지 않을까요? 충성심에 능력까지 겸비한 사람과 능력은 있지만 충성심이 부족한 사람. 제가 만약 황제라면 제갈량을 사마의보다 더 윗쪽에 두어서 사마의를 통제할 수 있는 구도를 만들고싶지 않을까 생각 되네요.
제갈량은 수명도 안타깝지만 ... 제갈첨이라는 아들이 제갈량의 호부견자였다는게.... 사마의는 그래도 아들이 위나라 권신으로 왕까지 된거 생각하면... 참 아쉬운 결과죠 물론 사마소는 가충으로인해 4대황제 조모를 죽였다는 도덕적, 윤리적문제가 있어 두고두고 비난받았지만 정치력과 군재 만큼은 제법 있는 아들이였는데 정작 제갈량 아들 제갈첨은 그가 싫어했던 황호도 제거하지 못했다는게 아쉬울 따름입니다... 물론 사마씨는 손자(사마염)와 중손자(사마충)이 뻘 짓하지만....
제갈량은 그저 뛰어난 내정담당이며 보급관이지 군지휘관으로서의 능력은 글쎄 vs 사마의와의 대결에서 봤듯이 군사작전에도 능했다. 음 제갈량의 재평가가 시급합니다. 연의에서 워낙 말도 안되는 판타지를 갖다 붙여서 오히려 제갈량의 북벌이 묻히는 경향이 있었어요. 제갈량이 내정과 보급에 뛰어난 능력이 있었다는건 이제 증명되었습니다. 근데 과연 코에이 삼국지에서의 능력치처럼 군지휘관으로서의 능력도 뛰어났던걸까요? 궁금하네요. 그리고 제갈량의 뒤를 이어 북벌을 감행한 강유와의 비교도 궁금합니다. 누가 더 잘한건지
"그" 사마의가 자기 본래 장기인 속전속결을 시도해보지도 못하고 제갈량 앞에서 완전 수비로 돌아선것, 그 과정에서 수많은 실패를 경험한걸 보면 최소 제갈량이 사마의보단 군재가 더 뛰어났다고 볼수 있겠죠... 물론 제갈량이 그렇다고 삼국지 최고의 군재는 아니겠지만... (대표적으로 육손)
@modularsolarid2000 조조가 사마의를 유심하게 봤던거도 맞는게, 사마의가 유파정도는 아니라도 어떻게든 임관 피하려고 발악을 한걸 억지로 끌고온거에 가까워서 분명 초중기에는 불온종자로 봤던거도 사실이긴 함. 다만 후기에 조조가 위왕 건으로 순욱의 영천라인 내치고 난 뒤 조조의 브레인 세대교체의 일환으로 올라온 인물은 맞음. 실제로 생각보다 굵직한 부분의 전략에 대해 사마의가 진언한걸 봐도 그럴 수 있는 인물이었기도 하고.. 하지만 그럼에도 사마의가 진짜 출세가도를 달리기 시작한건 조비때부터라는 점에서 조조 입장에서 사마의는 총애보단 적당히 끌어쓴다는 느낌에 가까움
사실 사마의는 조식한테도 안 되는 인물이었는데(조식이 조조 아들인 것도 감안해야지만 사마의가 실수한 걸 조식이 잡아내서 보완해준 거 생각하면 솔직히 실력도 사마의보다 마냥 떨어진다고 보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조식과 제갈량이 좀 일찍 죽어준 덕을 많이 본 것 같습니다. 조식이 10년만 더 살았어도 조예 죽은 뒤 조상일파 밀어주며 사마의는 견제 제대로 하고 갔을 것 같은데 그러면 고평릉사변도 좀 많이 힘들었겠네요. 사실 조조 큰아들인 조앙만 해도 사마의보다 나이가 많다보니 사마의는 참 젊어서부터 많은 경쟁자들에게 치이고 살았겠다 싶기도 하고.
사마의가 한 것을 제갈량이 못했겠냐고 말하지만
사실 그 뜻은
사마의가 한 더러운 짓들을 누구는 못해서 안했겠냐는 말로 승화되면서
제갈량과 사마의 사이에는 실력을 운운하기 이전에 인격적 급이 다르다는 것을 어필한 점.
되게 감동입니다.
좋은 댓글! 좋은 후원!!
성향을 떠나서 A라는 인물이 B가 한짓을 못하겠냐.. 라고 가정하는건 진짜
어려운 일입니다.
사마의의 주변에는 기회가 되면 내가 다 해쳐먹을 각오를 가진 사람들이 어느정도 포진해 있었지요.
제갈량의 주변에는 강유나, 장완, 비의, 신지 같은 인물이 있었지요.
모순인거 같아요. 계가 사람이 좋아서 그렇지 하려고만 하면 그거 못해서 안하것냐? 하는거요.
그사람의 능력이란건 인격을 포함하는 거거든요. 그러니 유비는 제갈량을 믿었고, 조조는 사마의는
못 믿을 놈이니 쓰고 버리라고 한 거지요.
¹¹
제갈량 빠로써 마지막 파트에 너무 분노합니다 선생님. 아무리 가정이라지만 감히 제갈선생께 망탁조의의 길을 대입시키시다니요 ㅋㅋㅋㅋ
사실 이미 이릉대전 이후에 유선이 직위한 시점에서 남중을 정리하고 각지 반란을 진압한 후에 도강언을 정비했던 북벌 시점에서라면 할려면 할 수 잇엇을 거임. 물론 마음에 걸리는 게 이제 60대 초반인 조운인데 조운만 사망하고 난다면 그 다음엔 위연만 어떻게든 구슬린다면 군부도 문제가 없엇을 태니까 진짜 시도 가능성이 충분함. 다만 안했을 뿐이지
오히려 제갈량이 위나라가면 사마의 때문에 더 대우 받았을거라고 생각하네요. 위에서 사마의가 찬탈까지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사마의와 동급이거나 뛰어난 인재가 없어서 균형이 무너진거에 있는데 제갈량이 있었다면 능히 그 균형을 맞추어 줄만하죠ㅋㅋㅋ 솔직히 사마의가 소방수역할을 너무 잘해서 권력이 모인건데 그 중 반만 제갈량한테 몰아줘도 충분히 억제 가능했을듯.
단, 수명만 충분하다면ㅋㅋㅋ
제갈량은 임명되어서 승상이 된거고
사마의는 협박해서 승상이 된거라
능력 이전의 문제 일 듯.
제갈량뽕에 안 취할 수가 없는 게, 능력도 능력이지만 황제보다 더 많은 권한을 가졌는데도 주객전도 하지 않고 충심으로 본인 할 일만 했다는 거
다만 그 놈의 수명이.....
확실히 능력면에서는 제갈량이 사마의보다 뛰어나면 뛰어났지 못했을거라고는 보지 않습니다만, 과연 온갖 비겁한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위나라 정치판에서 제갈량의 성품이 제갈량의 출세길을 막지 않았을거란 보장도 없어서... 하지만 제갈량 대 사마의 정치전도 재밌긴 했을듯요
최고의 삼국지 유튜브 👍
제 생애 최고의 반전은 사마의 의 진나라의 천하 통일 입니다
최고의 구독자!!
10:43
조모: 사마 놈들이 주제 넘네 내가 나서야겠구만!
가충: 성제 없애!!
성제:네
그렇게 대낮에 창에 찔려죽어버린 황제.... 그 탓에 진태는 가충을 제거해야한다 했지만 사마소는 가충이 아닌 성제를 죽였고 죽지 않은 가충은 사마염시대에 또 이상한 짓(가남풍)을 하고말죠 ....
그리고 전 황제를 죽였다는 로 사마씨는 두고두고 비난 받았으며
이전의 사마의의 고평릉 사변과 실수였다고는 하나 벌어져버린 사마소의 황제 시해로 인해서 당태종을 비롯한 후대의 중국 황제와 지도자들에게서 많은 비판 받았죠.
형 2부 너무 오래 기다렸어 ㅠㅠ 역시 잼나네
저번에 올리신 영상으로 유입된 뉴비입니다!
최근에 삼국지를 열심히 보고있는데 삼칠이님 영상이 정말 도움 많이 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 위주로 영상을 만들어주셔서 안볼수가 없었어요ㅋㅋㅋㅋㅋ 한 달간 이 채널의 다른 영상들 챙겨보면서 2부를 너무 기다렸습니다... 좋은 영상 만들어주셔서 감사해요!
ㅎㅎㅎ삼국지 재밌쥬? 제 영상이 유익하시다니 다행입니다
사마의는 수많은 전쟁에서 이겼으나. 제갈량 앞에선 쫄보 그 자체였다. 이건 정사/연의를 다 보아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맞상대 안 해주고 드러누워서
장기전으로 질질 끄는거 자체가
제갈량한테는 치명타라...
@@seki777 그래서마지막북벌둔전제로버텼죠..몸이 과로로 쓰러졌지만
근데 사마의도 그거 유지하다 제장들에게까지 욕먹어서 황제에게 서를 올리몀서까지 존버한거 생각하면, 보통 인물은 아닌게 확실함. 최소 육손과 동급이라 생각
@modularsolarid2000 사마의가 버티니 제갈량이 도발했고 그걸 막으려고 사마의가 조예한테 쇼에 장단 맞춰달라고 해서 된거지
@modularsolarid2000 제갈량이 말했다. 그는 본래 싸우려는 마음이 없는데 천자에게 결전을 굳게 청한 이유는 그의 군사들에게 무(武)를 과시하자는 것이오. 장수가 군중에 있으면 임금의 명도 받들지 않을 때가 있는데, 만약 저들이 우리를 능히 제압할 수 있다면 어찌 천리 길을 가서 굳이 결전을 청하겠소!
역시 삼칠이님 꿀잼영상 감사해요👍
드디어 올라왔군요ㅎㅎ 삼국지 지식 잘 배워갑니다~!😊
제갈량이 사마의 만큼 출세하진 못할 것 같습니다. 제갈량은 나라를 바르게 다스리는 통치자이지만, 사마의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을 장악하는 정치가 이니까요.
하지만 위나라에서 제갈량은 나라의 기반을 잘 다져서 순욱 이상의 명성을 누렸을것 같습니다.
애초에 둘이 추구하는 방향이 다르니 결과도 다를 수밖에요.
저도 제갈량이 위나라 간다고 하면 위나라를 수호 하는 선에서 끝날거같아요
이거맞다 제갈량이 반란 일으키진 않을듯 빈찬합만 안받으면 다행...
어.........아무래도 그렇죠? 오나라를 섬기기로 했으면 오에 충성할사람이고, 위를 섬기기로 했으면 위에 충성할 사람이니까요.
사마의 만큼 높은 자리는 못 갔을 수도 있는데 만인의 존경을 받을 만한 위치는 갔을 것 같긴 함.
정답
사마의가 제갈량보다 뛰어났으면 제갈량 죽기전에 촉이 망했겠지..
정답이네요 ㅋㅋ
이..이거다!
와 , 마지막 부분이 핵심이네요.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와~ 정말 오래 기다렸습니다. ^^
제갈양과 사마의가 입장이 바뀌었으면, 과연 사마의는 제갈양 만큼 했을까? 하는 의문에 대한 확실한 답이네요.
기다리다 목이 빠질뻔했네요ㅎㅎ
하루에도 몇번씩 삼칠이님 채널 들락날락했네요. 혹시나 업데이트 되었던거 놓쳤을까봐! 늘 재밌게 보고 있고, 이번 컨텐츠 참으로 창의적이고 흥미로우며 재밌었습니다👏👍
사마의 가장 큰 공적은 "제갈량을 막은것인다"라는 문구는 엄밀히 말하면 "제갈량이 [병사할때까지] 막은것이다."라고 바꿔야 된다고 생각함요....
제갈량이 사마의보다 더 높은 관직 (혹은 권력) 을 가질 거냐 못 가질 거냐의 문제는
제갈량이 더 오래 살았냐 아니냐의 문제 외에
사마의와 그 자손들 만큼 패도적 행보를 펼쳤겠는가 아니었겠는가의 문제다 라는 거군요
ㄷㄷㄷㄷ
권모술수나 뭐 그런거보다 가장 큰 문제는 '제갈량이 그렇게 관직이 올라갈만한 기회가 있었을까??' 가 아닐까요??? 솔직히 사마의도 나름 조조 휘하에서도 명문가인 사마씨 가문의 후광을 가지고서도 제갈량 북벌에 대한 거의 유일한 방패가 되어주면서 훗날의 권력을 잡을 기틀을 마련했다고 생각하는데... 제갈량이 출사할 시기라면 제갈량은 능력은 있지만 뒷배도 없고, 거기다 제갈량이 없는 유비군이 과연 조조를 귀찮게 할만한 세력으로 성장했을 가능성도 급격히 줄어들고, 즉 조조에게 대항할만한 세력이 사실상 거의 없어진다는 소리가 되는데... 그런 상황에서 제갈량이 출세 루트를 탈수 있는 기회가 있었을지가 가장 우선인거 같은데요...
결론 : 제갈량의 유일한 약점은 수명이었다.
그 원인들 중에는 유비(과로)와 조조(서주대학살)도 있음ㅋㅋ
그래도 55세면 꽤 오래 산거임. 제갈량 이후 촉한 관리의 운명이 대다수가 과로사인거 고려하면.. 피지컬이 좋은 편이었다는거
이때의 평균수명이 40세여서 54세면 적게 살았던것이 아닙니다.방통이 36세에 죽었고 법정이 46세에 죽었거든요
제갈량이 십년을 더살았어도 대세에는 영향이 없었음. 제갈량이 사마의보다 뛰어난건 맞으나 사마의 + 양국의 국력차를 극복할순 없음. 사마의가 맞대결에서 가장 잘한거는 제갈량이 본인보다 뛰어나다는걸 인정하고 수비적 스탠스를 취한거리고봄.
그나마 연장하려고 했으나...
삼칠님의 이번 주제 듣고 나니 촉나라에 육손 오나라의 순욱 등 각 인재가 나라를 바꿔 활약 했다면 어디 위치까지 올라갔을까 하는 물음이 생기네요.
언제나 감탄하는게 첨보는 캐릭터 나와도 너무 기가막히게 특징을 잡아서 누군지 바로 이해감 ㅋㅋ
정말 재미나게 보고 있습니다. 그림체도 재밌고 삼칠님 그림체로 삼국지 만화 나오면 정말 재미있을듯 하네요
의외로 제갈량이 위나라에 갔다면 제갈량이 승상에 오르기도 전에 삼국지가 정리되어서 못 간다는 설을 밉니다 😂
그나저나 제갈량 성품을 보아 사마의와 완전히 같은 길은 걷지 못했을 것 같네요. 제갈량은 사마의보다 수명만 부족했던 걸로...
과로가 이렇게 위험함니다
날이 일교차가 심하군요
감기 독감 코로나 조심하시고
잘보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렇잖아도 저번달에 독감인줄 알고 검사했는데 아니더군요 크악 내 사만원..!
반대로 사마의가 촉에서 공명과 같이 일했다면 어땠을까요?
유비를 각성시킨 남자 방통급(=제갈량급) 대우를 받았을지도 싶어서요.
조조때는 눈치보느라 못하지도 잘해보이지도 않게, 하지만 모두가 관우를 보며 도망치자할때 홀로 이길수 있다 판단하는 능력.
조비때는 조비가 말아먹는 족족 보급고를 채우는(넓은영지 덕이라지만, 넓은만큼 관리나 통제해야하니) 내정실력
조방때는 황족한테 꼽받아가며 군생활 견뎌낸 집념.
제갈량같은 촉나라의 인물들이 자원적ㆍ환경적 고난을 이겨내고 이뤄낸 업적을 분명 칭송받아 마땅하지만,
사마의같은 위나라의 인물들도 활약할기회의부재ㆍ기득권이휘두르는피바람속 꿈틀대는것마저 허락되지않는 환경적 고난을 이겨낸 인물이라서.
다음컨텐츠가 없다면
쓰마이가 촉진영이었다면?
유비가 반골상ㆍ낭고지상취급당했을지
혹은 3대까지는 열심히 충성하겠거니 싶었을지 ㅎㅎ
4:29 스터너 ㅋㅋㅋㅋㅋ 아 삼칠이님 넘 좋다❤
저는 반대로 제갈량은 사마의가 한 행동들을 그대로 못했을거라 생각합니다.
위에 갔더라도 고평릉은 충의를 아는 제갈량이 행하기 어려웠을거라고 보고, 오히려 오와 촉을 정벌해서 통일 후 제후나 그 공으로 대장군, 승상을 할 수는 있었을 지언정 고평릉같이 쿠테타스러운 행보로 위에서 가장 높은 관직을 차지하진 못했을것 같습니다!
제갈량은 일평생을 촉에 바친 충신중에서도 충신이고, 유비사후 사실상 자신이 나라를 통치하다 싶이 했음에도 충절을 지켰죠
만약 촉 대신 위를 섬기고 사마의와 같은 행동을 하라고 했을때, 충절을 지킨다고 하거나 마음이 약해서 똑같이는 못했을수도
권한과 위치가 망탁조의와 같았으나
역심 없이 한평생 충의를 다하고
선제의 유지를 지키기 위해
평생을 다바치고 죽어서야 멈췄다.
제갈씨가 위나라였다면....아마 천통은 순삭이었다....
사마씨가 촉나라였다면....아마 유선은 등산왕을 못보고 항복했을수 있다...
즉....우리 속담 중....똥개도 자기집 앞마당에선 반은 먹고 들어가더라.....이 말이 죽은공명이 산중달에게 진정으로 해주고 싶은 말 아니었을까?
조조가 잘못했네. 서주 대학살만 없었더라도 제갈씨 인재들을 흡수할수 있었을텐데
그랬다면 이미 우리가 아는 제갈량이 아니었을 것 같네요,,
이릉대전 원인이 유비의 분노 일까요
나관중도 몰랐던 삼국지 이야기에서는
관우는 없지만 강하다는걸 보여주기 위해 전쟁 한다 . 유엽만이 맞추다고 하는 내용 이던군요
유비의 분노가 맞지요. 유엽만이 관우와 유비가 부모형제 같은 관계이기에 침공할 것이라 예측했다는 것에서 그렇습니다. 유비의 이릉대전이 합리적인 선택이라면 유엽말고도 이릉대전을 예측한 인물이 있었어야 합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할만큼 무리수였고 비합리적이었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유비같은 당대 최고의 지휘관이 말이죠.유비군의 2인자였던 제갈량도 말리고 심지어 군의 실세인 조운 마저 반대했던 이릉대전은 실리적이지도 않고 합리적이라고 볼 수도 없었던, 유엽이 말한 것처럼 분노와 복수심이라는 감정적 선택이었다고 결론내릴 수 있지요.
여러 이유가 있었죠. 아무래도 유비 입장에서는 빨리 형주를 찾을수 있을때 찾아야 국가의 가오도 살고, 형주 내에서의 호응도 기대할수 있는거라.. 게다가 손권은 지속적으로 유비를 추가적으로 압박하고 유장을 포섭해서 익주까지도 넘보려고 했음. 게다가 유비 개인적으로도 의형제가 죽은 상황이니 출병하지 않으면 꽌시의 나라에서 명예가 상할수도 있었음. 뭐ㅜ결과론적인거긴 하지만 이겼으면 아무문제 없었을거임
@@닉네임꼭설정해야함 본국에서 수백킬로미터 떨어진 곳이라 애초에 관우 정도 되는 거물급 장수 아니면 유지할 수도 없는 지역인데 어떻게 되찾아요;; 말이 안되지만 정말 만약에 되찾는다해도 다시 언제 뺏길지 모르는 땅인데 유비는 그냥 귀신들린것마냥 눈이 돌아가서 제갈량과 조운 같은 사람들이 말리는데도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하다 나라를 말아먹은겁니다..
유엽이 판세를 읽는 능력은 삼국지에서 탑일겁니다 가후도 그런거 잘하긴하는데 유엽이 유비를 보고 이때 자기힘을 뽐내지 않고선 촉나라는 쪼그라 들것이고 오래가지 못할것이기에 힘을 과시하기 위해서라도 무리해서 출정할것이라고 했죠 근데 조비도 알만큼 그런병크짓을 했으니... 적당히 대치하다가 서로 못이기는척 타협을 하는 시나리오가 좋았을듯
제갈량은 통일된 나라에서 더욱더 태평성대를 만드는 승상이라면 사마의는 혼란스러운 시대여서 최고가 된것 같네요
유비VS조조랑 똑같은 느낌 같습니다
제갈량은 찬탈같은거 못하는게 아니라 안할듯
망탁조의랑 충신 량을 비교하다니!!!!
약자로서 강공을 취해 강자의 역습을 계속해서 막아냈다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라 할만합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항상 공세적 포지션을 잡고 기선을 제압하며 승승장구하던 사마의가
유독 제갈량을 상대할 때 만큼은 철저히 수세적이었다는 것만으로
개인적 능력치는 확실히 제갈량 > 사마의가 맞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 커리어 라인 잡는 거도 재능이라면 재능이니 이건 사마의가 위지만...
역시나 후대 역사에서 (최근에는 쪼금 다르지만)
민중(특히 서토의 화하족 사람들에게)들에게 제갈량 (충의 화신) 사마의(역적의 화신) 어떤 대접을 받았는 지 생각해본다면...
흐음...
@@옼케발 착각들을 하시는데 제갈량이 여러번 북벌을 할 동안 위나라의 병력들은 대부분 동오쪽에 집중이 되어있고 대촉 방면은 많은 병력들을 지원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증거로 조조 - 조비 - 조예로 이어지는 삼대가 친정을 나설 때 동오 쪽으로 나섰지 한중공방전 이후로는 촉나라쪽으로 황제가 간적이 없단말입니다.
제갈량이 늘 북벌할 때 대동한 병력의 규모는 10만 정도인데 사마의에게 주어진 병력이 10만 혹은 그 이상이냐 라고 물어본다면 딱히 그것도 아니란 말이죠.
제갈량의 병력 운용 능력을 보자면 불리한 입장에서 승부를 봐도 본인이 답답해서 뭔가를 해야하는 입장인데 제갈량은 어떻습니까? 본인이 원정나가서 수비적인 위치를 고수한다는거죠.
사마의가 취해야될 입장은 너무 쉽죠. 그냥 촉병의 군량이 떨어지길 기다리면서 버티기만 하면 됩니다. 왜요?
제갈량은 어차피 대규모 꽝 한타를 절대 안벌이니까! 그냥 소규모 국지전 2~3번 이겨봐야 뭐합니까? 전쟁에서 지는데요.
제갈량은 실제로 대회전 자체를 치뤄본적이 없는 인물입니다.
제갈량의 1~5차 북벌이 모두 실패한 결과인걸 우리 모두 압니다. 지나치게 안정적인 운영을 했기 때문에 손실도 거의 없지만 얻은 것도 거의 없죠.
로우리스크 로우리턴 전략을 쓰는데 어찌 한실부흥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러니 제갈량의 군재는 항상 저평가 받을 수 밖에 없고 한신은 위대할 수 밖에 없는거죠.
제갈량의 팬으로써 제갈량의 북벌은
로망이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죠
위나라 미혼란 , 병력차 ,
내정까지 신경 , 보급로 힘듬
형주 상실 후 마지막 가능성도
사라 지고
하지만 그 의지와 충성심으로
삼국지 보는 재미와 감동이 있내요
제갈량보다 사마의가 나은 점 중 가장 큰 점은 처세술이죠.
조조조차 사마의를 보고 감복하여 여러번 등용을 위해 움직였으나
조조의 우세가 정해지기 전까지 사마의를 등용하지 못했고 그런
이유에서 인지 조조의 비서 쯤으로 쓰면서 그를 하대했습니다.
방통에 예시에서 보듯이 제갈량한테 이따위 짓 한다????
바로 사표 던집니다. 제갈량같은 성격은 강한 리더가 아니라
좋은 리더를 만나야 쓸수있는 잡기 어려운 검과 같습니다.
천하의 기재였던 가후와 사마의 상당히 평온한 일생을 보냈고
와룡봉추라고 불렸던 제갈량과 방통이 그렇게 죽은 건 그들의
인생의 처세술에서 기인한다고 봅니다.
재능이 모자란 유선같은 군주라도 끝까지 충성한 제갈량! 그래서 제갈량이 후대에도 큰 존경을 받는 인물이 된 거죠. 사마의를 존경하는 사람은 찾기 힘들잖아요?
아 누가 망탁조(사마)의를 존중하냐고 ㅋㅋ
@@OWEL-d5f 시진핑... 그의 시대에 사마의가 주인공으로 나온 드리마가 방영한건 우연이 아님. 심지어 태자당의 시진핑 파벌이 본인들은 5세대가 아닌 1세대 마오의 적통을 있는 2세대라고 말하는거랑, 조조를 좋아하는 마오랑 연관시킨다면 아마 소름 돋으실듯
@@닉네임꼭설정해야함은근히 조조 사마의에 대한 세탁기가 잘 돌아가죠. 중국 권력자들을 잘 담고있기에. 특히 핑핑이가 사마의랑 진짜 닮은꼴
만약 제갈량이 위 소속으로 사마씨의 길을 걷는다면 제갈첨이 진왕이 되었을지도 ㅋㅋㅋ
제갈씨 나라는 오래갔으려나
ㄹㅇ 제갈량이 저정도 못했을 리가 없죠... 단지 출사표에서 드러나는 제갈량의 충의란 것을 적용한다면... 아마 성미상 사마의처럼 못하는 게 아니라 하진 않았을 듯!
사마씨 가문의 찬탈 과정은 후손도 부끄러워함
중국에서 지금까지 승상하면 제갈량이 가장먼저 언급되는거보면 대단하다고 봄
오나라빠지만 삼칠이의 촉국 설명을 충분히 신빙성이 있다 맞는 말임
근데 제갈량이 워커홀릭이라서 유파처럼 좋아하지도 않는 조씨(조조의 서주대효도) 밑에서 빡세게 일하다가 사마의보다 먼저 갔을 수도 있겠네요.
시대가 한참 지나고 다른 나라 사람 입장에서 역사와 그 역사가 섞인 창작물을 봤을 때 사마의는 진짜 최고로 재밌는 인물인 거 같음 ㅋㅋ
위나라로 간 제갈량은 출신지 낭야군 인근의 국명을 따서 노나라의 시조가 되었을지도 모르겠군요. 잘 봤습니다.
충신인 제갈량은 그걸 못했을거 같아요. 애당초 유비말고는 제갈량의 마을을 얻을 수 있는 군주가 있긴했을까요?
4:20 제갈량의 스터너
4:42 스터너에 이은 락바텀
스터너,락바텀하니 스톤콜드, 더 락 생각나네ㅋㅋ
못하는 게 아니라 안할 가능성도 있다는 거라지만...그쪽 동네는 그쪽 동네 만큼의 성향이 있는지라...
위와 촉의 국력차이를 생각하면 아무리 제갈량이 사마의만큼 살고...또한 이릉대전에서 인재들을 잃지 않았다고 해도 위나라 자체에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면 그 국력차는 극복하기는 어려웠을듯...
진짜 유선같은 암군이나 손호같은 폭군이 위나라를 말아먹었다면 어째 기회도 있었겠지만 조비 조예는 나름 다 문제는 있었지만 적어도 1인분이상은 거뜬히 하든 왕들이라...
사마의가 '위나라를 수호했다'에 밑줄을 좍 그어놓고 반어법이라 은연중에 어필... 은밀한 돌려까기를 시전하심
삼칠이 삼국지 캐릭터 디자인 비하인드 다음화 추천!!!
못하진 않지만 절대 안하겠죠ㅋㅋㅋ 자기 믿어준 사람한테 간,쓸개, 죽어서도 인생을 바치는 위인인데ㅋㅋㅋㅋ
드디어!!
음 애당초 제갈량은 전투용이 아니었던걸로 압니다. 진수도 군략이 뛰어났던건 아니다는 평을 남겼고 1차북벌은 사마의는 아니지만 장합한테 털렸던거고 ~ 당시 마속이 선봉이고 제갈량이 본진이었는데 최소 마속의 삽질이 제갈량의 지시는 아니라도 허가로 이뤄졌을건 상식 아닐까요?
왔구나❤❤❤ 소식도 없길래 어디 아프신줄 걱정했습니다
문제는 유비가 있기에 제갈량이 세상으로 나왔는데 과연 조조가 제갈량을 자신의 부하로 만들 수 있을까란 의문이 들기는 합니다.
드디어!!!!!!!!!!!!!!!
근데 제갈량의 FM 모습이나 자기 몸을 보살피지 않는 모습 보면
딱 암살당하기 좋은 사람인데
과연 사마의의 위치까지 암살 당하지 않을 수 있을 까 싶네요
결론이 사마의대 제갈량으로 흘러갓는데 국력차이에 오히려 열세인 국가가 공격하는데 수비측이 더 유리함에도 제갈량의 우세 여기서 둘의 우위는 이미... 결국은 10배의 국력 그리고 긴 수명으로 이긴 사마의 물론 오래사는것도 능력
조조가 서주대학살만안했어도 촉오 수많은 인재가 위로갔겠지 그리고 유부녀만 안후렸어도 조앙이왕되고 천통했을거고 그랬으면 팔왕의난이나 5호16국도없고 고구려는 성장못해서 수멸망시킨 살수대첩도없었을거고 조조의 서주대학살+유부녀후리기의 스노우볼이 결국 우리나라엔 이득이였
조앙의 정통성이 위를 안정시켰을 테니까요.
뭐 두기급 행보관 하다 이름없이 죽었거나 빈 찬합 엔딩했단 생각.. 제갈량이 위대한건 사천지방 무후 사후 1700년을 책임진 산업들 비단 제염을 본격적으로 갈고 닦았다는게 위대한거죠.
제갈량이 공성전에 취약한 모습을 보이는 반면 사마의는 맹달 토벌때 공성전에도 뛰어난 모습을 보여줬죠
큰 의미는 없지만 사마의은 끝내 승상을 거절하여 태부로 죽은것으로 기억합니다.
제갈량이 전체적으로 사마의보다 뛰어난 것은 맞지만 조조 조비 조예 같은 군주 아래에서 사마의만큼 처신을 잘 해서 70살 넘게 살 수 있었을지는 생각해볼만한 거 같네요
순욱 엔딩 당했을 확률 높음. 하지만 그게 처신을 못해서 생긴 결과라고 까긴 좀 그렇지 않음? 그게 평가의 전부라면 간신이 최고 아님? 명백히 조조가 황제를 업신여기는게 팩트가 되어버리는 상황이 돠어버리니 하지 말라고 했다가 '응 너 토사구팽' 당하는게 처신 ㅂㅅ이라면 충언 올리다 죽은 사람들 다 ㅂㅅ만드는 거 아니겠습니까?
제갈량에게는 유비에게 있기에 더 빛나는 것이고 역으로 사마의는 조조와 있기에 더 시너지가 있는 편이죠. 하지만 조조는 사마의를 잘 믿지도 않는데 반대로 유비는 제갈량을 신뢰하여 자신의 뜻을 펼칠 수가 있었던 것 같에요.
하지만 역으로 사마의가 유비에게 들어간다면 사마의는 유비의 신뢰를 받아 뜻을 펼칠 수는 있지만 사마의는 우리가 알 듯 상당한 야심가라는 것이죠. 아마 유비가 죽고나면......
그래서 저는 제갈량이나 사마의가 그 자리에 있기에 더 빛나는 것 같에요.
사마의는 제갈량이 있어서 그 이름을 더 높일 수 있었는데,
제갈량이 위나라에 있었다면,
"애초에 누구든 제갈량의 상대가 아니다." 라고 사람들이 인식해 버리는 바람에
오히려 제갈량에 대한 평가가 더 박해졌을지도...
과장 덜어내고 봐도 이릉대전 이후 촉과 위의 국력차이는 최소 5배.
공격보다 수비가 유리하다는 건 (심지어 진출조차 힘들어서 매번 보급에 골머리 앓았던 서량, 관중측) 5살배기 아이도 아는 사실.
압도적인 인구 차이에서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휘하 제장들의 평균 능력치 차이까지.
그 외에도 따로 언급하지 못한 모든 이점을 안고 있으면서도 제갈량 상대로 번번히 깨지고 박살났다가 운 좋게 몇십년 더 살아서 결국, 본인은 위나라 근간을 흔들고 후손은 황제까지 참살하고 나라를 탈취해 후대에 망탁조의로 묶일 정도의 역사적 역적으로 남은 사마의, 정말 대단하다!
국력차이가 10배인 나라에 항상 공세를 취했다는 것만 봐도 반대로 국력이 10분의 1밖에 안되는 나라한테 항상 쫄아서 수세로 일관한 모습만 봐도 제갈량과 사마의의 능력에는 큰 차이가 있는 듯..
떳다 삼칠 삼국지!!@!!
다음 영상은 삼칠이 선정 삼국지 최악의 조합 top 10 갑시다
제갈량 자체다 사기캐죠
제갈량 북벌 당시 사마의와 제갈량의 정치적 입지를 따져봐야합니다.
제갈량은 유,관,장 사망 후에 실질적으로 전권을 장악하고 온전히 북벌에 집중할 수 있는 실권이 있었습니다.
반면에 사마의는 조예 사망 전까지는 실권이랄게 없었어요. 대촉방면 사령관도 하후연 - 조진으로 이어지는 조씨 일족의 혈족들이 실질적인 군 통수자고
위나라의 핵심 군대는 대오 방면에 대다수 주둔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사마의는 수비적인 포지션을 잡았을 뿐입니다.
결론적으로 제갈량의 5차례에 걸친 북벌은 단 한번도 제대로된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사마의는 임무를 거의 완벽하게 달성했습니다.
정치적 입지라고할게 있나요 사마의는 이미 조비가 죽을때 탁고대신이었고 조진사후 바로 대장군을달고 서쪽방면 총사령관이되는 위의 최중신..제갈량이 북벌에 집중할수있었다면 사마의 역시 조예의 전폭적인 지지와함께 관중방면만 수비하면되는 입장이었으니 조건은 똑같죠..영상에도 나오잖아요..위나라를 상대로 선전했다는 평가 그 이상은 아니라고요.하지만 개인적인 능력의 우위는 확연하게 제갈량의 위였습니다.
@@얼큰커피 사마의가 탁고대신이라 해도 자신이 모든 군권을 장악하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위치는 아니었으니까요. 제갈량은 유비 사후에 이미 황제인 유선을 능가하는 권신이 되어버렸는데 사마의랑은 느낌이 다르죠.
조진사후 이미 옹.양주의 군권은 사마의에게 있었습니다.당시 사마의의 직책이 대장군에 가절월입니다.옹.양주의 병력은 사마의의 관리하에 있었고 병력도 충분했는데 마음대로 할수있는 위치가 아니었다고요???맹달을 급습할때 중앙에 보고없이 군권사용을 걱정하던 부하에게 선조치 후보고하면된다면서 병력을 움직여 맹달을 벤 사마의가요???그리고 북벌당시 상황을보면 사마의가 위의 권신이되어 모든 군권을 마음대로 휘두른다한들 결과가 바뀔것같지는 않습니다만...어차피 위나라의 병력은 대촉전선.대오전선등으로 나눠져있었으니까요..
황제의 입장에서 보자면 제갈량 대 사마의... 아마 제갈량을 더 윗쪽으로 기용하고 싶지 않을까요? 충성심에 능력까지 겸비한 사람과 능력은 있지만 충성심이 부족한 사람. 제가 만약 황제라면 제갈량을 사마의보다 더 윗쪽에 두어서 사마의를 통제할 수 있는 구도를 만들고싶지 않을까 생각 되네요.
이제 슬슬 새 영상 올라올때가 된 것 같은데...
늦어서 죄송합니다 영상은 오늘!
@@372tv 퍄퍄
제갈량은 수명도 안타깝지만 ...
제갈첨이라는 아들이 제갈량의 호부견자였다는게....
사마의는 그래도 아들이 위나라 권신으로 왕까지 된거 생각하면... 참 아쉬운 결과죠 물론 사마소는 가충으로인해 4대황제 조모를 죽였다는 도덕적, 윤리적문제가 있어 두고두고 비난받았지만 정치력과 군재 만큼은 제법 있는 아들이였는데 정작 제갈량 아들 제갈첨은 그가 싫어했던 황호도 제거하지 못했다는게 아쉬울 따름입니다...
물론 사마씨는 손자(사마염)와 중손자(사마충)이 뻘 짓하지만....
솔직히 고평릉 사변은 사마의와 사마사가 정치적 기반이 상당한 사마 가문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제갈 가문이 좋다면 좋다고 할 수 있지만 또 조위에서 한따까리할 수 있을까 하면 논란이 있겠네요. 승상 대장군 상국도 이상한 짓 하면 목 달아나는게 중세시대잖아요?
제갈 가문도 엄청난 명문 가문 아니었나요? 오나라에서 제갈각은 거의 모든 실권을 가지고 있었던 적도 있었고
근데 제갈량이 위나라에 있었다면 굳이 전장에 나갔을까도 의문이긴 하네 출사표도 어찌보면 더이상 이나라에 인재가 없으니 직접 출사 한다는 뜻이였으니까 뭔가 위나라 갔으면 정치 법 내정 쪽에서 쭉 있었을거 같음
이야 전개가...마지막 보고 감탄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그렇죠...제갈량은 이정도는 못할 것 같습니다...
제갈량은 사마의만큼 독심이 없어서 못할듯... 있었다면 유선대신 니가 황제 해라고 했을때 했겠죠...
음 제갈량이 정치적 암투도 못하는 순딩이로 알고 계시는 분들이 있는것 같은데
기존 세력과 입촉하면서 새로 들어온 세력간에 보이지 않는 힘겨루기는 분명 존재했고 승자는 제갈량이었죠
사실 이분은 삼국지를 처음부터 스스로 해석해서 만들어도 엄청난 컨텐츠가 나올것이다
만두를 만든 것은 사물기원에서 나오지만 만두는 실크로드를 통해 들어온 것이 맞습니다.
근데 중국이 땅덩이가 워낙 넓어서…만두 비슷한 음식은 있었을듯 하네요
반면에 제갈량은 일족들이 삼국에 고루 분포하고 중용된 상태라서 굳이 유비나 유선에 탁고받지 않더라도 제갈씨 어셈블로 천하를 먹었을지도
제갈량은 그저 뛰어난 내정담당이며 보급관이지 군지휘관으로서의 능력은 글쎄 vs 사마의와의 대결에서 봤듯이 군사작전에도 능했다. 음 제갈량의 재평가가 시급합니다. 연의에서 워낙 말도 안되는 판타지를 갖다 붙여서 오히려 제갈량의 북벌이 묻히는 경향이 있었어요. 제갈량이 내정과 보급에 뛰어난 능력이 있었다는건 이제 증명되었습니다. 근데 과연 코에이 삼국지에서의 능력치처럼 군지휘관으로서의 능력도 뛰어났던걸까요? 궁금하네요. 그리고 제갈량의 뒤를 이어 북벌을 감행한 강유와의 비교도 궁금합니다. 누가 더 잘한건지
"그" 사마의가 자기 본래 장기인 속전속결을 시도해보지도 못하고
제갈량 앞에서 완전 수비로 돌아선것,
그 과정에서 수많은 실패를 경험한걸 보면
최소 제갈량이 사마의보단 군재가 더 뛰어났다고 볼수 있겠죠...
물론 제갈량이 그렇다고 삼국지 최고의 군재는 아니겠지만...
(대표적으로 육손)
제갈량은... 그러네.
제갈량은 결코 사마의보다 출세할 수 없겠네.
정적의 목은 칠 수 있어도,
황족의 목은 칠 수 없는 사람이라
제갈량은 절대 사마의보다 출세할 수 없는 사람이야.
그래도 사마의보다 존경은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혹시 정사 관우와 연의 관우의 차이점으로 영상 올려주실 수 있을까요 ㅠㅠ
사마의가 능력,자질,집안 어느것도 빠진게 없는 인물로 아는데, 조금만 더 일찍 등판했다면 황제도 됐을것.
@modularsolarid2000 조조가 사마의를 유심하게 봤던거도 맞는게, 사마의가 유파정도는 아니라도 어떻게든 임관 피하려고 발악을 한걸 억지로 끌고온거에 가까워서 분명 초중기에는 불온종자로 봤던거도 사실이긴 함.
다만 후기에 조조가 위왕 건으로 순욱의 영천라인 내치고 난 뒤 조조의 브레인 세대교체의 일환으로 올라온 인물은 맞음. 실제로 생각보다 굵직한 부분의 전략에 대해 사마의가 진언한걸 봐도 그럴 수 있는 인물이었기도 하고.. 하지만 그럼에도 사마의가 진짜 출세가도를 달리기 시작한건 조비때부터라는 점에서 조조 입장에서 사마의는 총애보단 적당히 끌어쓴다는 느낌에 가까움
다음에 삼국지 인재풀이 뛰어난 지역 탑5 해주세요.
오... 서주는 몇 위지..
연주 서주가 많이 먹을라나
사실 사마의는 조식한테도 안 되는 인물이었는데(조식이 조조 아들인 것도 감안해야지만 사마의가 실수한 걸 조식이 잡아내서 보완해준 거 생각하면 솔직히 실력도 사마의보다 마냥 떨어진다고 보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조식과 제갈량이 좀 일찍 죽어준 덕을 많이 본 것 같습니다. 조식이 10년만 더 살았어도 조예 죽은 뒤 조상일파 밀어주며 사마의는 견제 제대로 하고 갔을 것 같은데 그러면 고평릉사변도 좀 많이 힘들었겠네요. 사실 조조 큰아들인 조앙만 해도 사마의보다 나이가 많다보니 사마의는 참 젊어서부터 많은 경쟁자들에게 치이고 살았겠다 싶기도 하고.
제갈량이 위나라에 가면 절대 승상이 못됩니다. 촉에 제갈량이 없으면 위나라에서도 승상 자리까지 바쳐야 할 만큼 권력을 집중시키지 않았을테니까요
??? :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이기다
올라왔다!!!!!
간만에 출사표나 듣고 가야지
오랜만입니다 응애
다음이야기가 그립다..
조예 캐릭 바뀌었군요. 할아버지 조조 닮았네요
못하는 것과 안 하는것의 차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