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119 조선 뿐 아니라 동아시아 대다수 국가에서 사냥은 그 자체가 기동 훈련이었음. 정발 장군도 임란 얼마 전 소 요시토시의 투서와 왜관 일본인들이 피신하는걸 보고 수상함을 느껴서 절영도에 주둔해서 군사 훈련과 사냥을 했다 되어 있음. 일본군 측에서도 '부산진 전투에서 좌절했다' 는 말을 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정말 치열하게 싸웠다고 함.
기억은 잘 안 나지만 부산진성 개개인 무장은 조선에서 탑클래스 였다고 알고 있는데 알본측 기록에서도 부산진 조선 병사들 개개인이 갑옷을 입고 무장이 좋았다고 나와 있음 일본이 부산진 첬다가 괜히 사기가 꺽인게 아님 워낙 무장도 좋고 사기도 충만한데 수도 한양에 있는 병사들은 얼마나 더 무시무시한 병력일까 걱정했으나 부산진에 있던 병력이 조선의 최정예 병력이 였던 점이 안습이죠 무기는 충분 했으나 병력이 부족했다는 말이 맞을 것같아요. 왜냐하면 왜구가 많은 지역이여서 지금 현대로 치자면 udt급 특수부대가 수비를 하는 성이였음 다만 아무리 갑옷이 좋고 무장상태가 좋다한들 2개 대대로 1~2개 사단을 막기는 어려웠겠죠.
0:12 일본처럼 칼을 허리띠에 꽂아넣었네요, 사실은 마상에서 저렇게 칼을 패용하진 않은 대신 띠돈으로 매달되 칼자루가 뒤로 향하게 해야 말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했었는데 여기서는 그런 모습이 안나와서 아쉬워했던 1인이지만, 징비록에 담겨진 역사적 사건의 진실을 솔직하고 풍부하게 담아낸 것만으로도 작품성은 충분히 빛났습니다.
@@EE22EE22 임진왜란1592에서 사용된 일본수군의 세키부네와 안택선 cg가 명량 영화에서 사용된 디자인이었어요. 그래서 명량 한산 노량을 만든 김한민 감독의 빅스톤픽쳐스가 kbs를 상대로 소송을 했고 공방끝에 법원이 임진왜란 1592에 협조한 cg업체 대표에게 벌금 700만원을 선고했었습니다. 그렇게 이후로 임진왜란 1592 드라마는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더이상의 시청이 불가합니다. 근데 개인적으로는 김한민 감독 역시 과연 떳떳한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면 한산 영화에서 적선이 50보 이내로 접근하면 화포를 쏘는 장면이 나오는데 임진왜란 1592 연출을 맡은 김한솔 피디와 제작진이 역사적 기록을 참고해서 먼저 연출해낸것이었어요. 결국에 김한민 감독도 표절을 했었다고 볼 수가 있겠지만 과연 이게 표절이냐 아니면 참고이냐 혹은 창작의 자유이냐의 기준이 참 애매해요. 명량 영화에서 야밤에 거제 헌령 안위가 거북선에 불을 지르고 나룻배를 타고 도망가던 배설을 화살로 쏴서 죽이는 장면이 나와서 배설의 후손분들이 김한민 감독 제작사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던 일이 있었는데 법원의 판결로는 창작의 자유라는 이유로 김한민의 편을 들어주었습니다. 세상에 정답은 없고 본인이 생각하는게 옳거나 틀릴수도 있어요. 그럼에도 저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김한민 감독 역시 떳떳한 사람이 아니라고 봅니다. 누구나 표절이나 참고나 창작의 자유가 있어요 그건 인간의 권리이니까요 하지만 훗날에 문제가 될 거 같으면 조심스럽게 생각하고 행동하는게 옳지 않을까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이순신이 경상좌수영에 배치되었어도 대응하기 어려웠을텐데... 전쟁 시작과 동시에 명량 뺨치는 상황으로 시작한게 경상좌수영이라... 이거도 그나마 부산에 함선 집결했는데도 기습사태에 적규모가 워낙 압도적이라 전부 자침하고 육전수비대로 전환할수밖에 없는상황이엿음. 오히려 그 옆수영 원균이 자기 진영이 기습받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탈주하면서 모조리 자침한게 더 욕먹을일일걸요. 현대로 비교하면 기습당하는 와중에 싸울 상태가 안되니까 무기고 폭파시켜서 적이 병기 탈취 못하게라도 한 대장-이걸 연락받고 공격안받아서 사단은 멀쩡한데 비상사태라 사단 집결지 이동해야하는데 내리 겁먹고 멀쩡한 상태 병력+병기 전부 파기해버리고 참모진만 튀어버린 대장급 비교라... 정발은 여기서 비교하면 최전방 초소 지휘관격이고요.
아무런 준비도 없이 싸운 전투라 어쩔수없음 모든 전쟁에서 군수물자, 병력지원, 백성들의 도움이 없으면 버티질 못함 거기에 부산진전투때 아군병력은 고작 500~6백명....일본군은 고니시군만 1만9천여명...워낙 초기전투라 우리나라 기록보다 일본기록이 자세히 나옴. 부산진의 북문을 뚫고 점령단계에 들어간 고니시군이 근접전으로 정발장군을 잡지 못하자 결국 조총부대를 이용해 정발장군을 죽이고 부산진을 함락 -> 고니시가 정발장군의 충의와 무용에 감복해서 시체를 훼손하지 말고 온전히 고향으로 돌려보내주라했고 일본에서 정발을 흑의장군이라 부르면서 왜란이후 나온 일본소설에 김시민, 곽재우 등과 함께 조선 대표맹장중에 한사람으로 나옴. 전쟁후에 통신사가 다시 왕래할때 조선에서 일본측에게 어떤 장수의 무용이 가장 기억에 남느냐고 물으니 정발장군을 1순위로 꼽았다고할정도로 용맹무쌍한 충의지사였는데 조선측은 하루만에 부산진을 넘긴 졸장취급함
이거 장군들 뿐만 아니라 단역들 EX) 겁많은 병사&호탕한 병사 2명, 군역을 나온 할아버지와 어린 병사 등 일반 병사들의 시점까지도 묘사 해서 꽤 호평을 받았던 전투씬입니다.
스토리에 이입하기 좋았던 요소들로 가득했던것 같아요 초딩때 생방송으로 봤었는데 진짜 이입이 잘됐어요
지금은 인건비가 비싸서
절대로 못한다.
정발장군님의 조선에 대한 충정에 깊은 감사 드립니다.
사냥이나 하고 술이나 퍼마시다 전멸당한 장수가 무슨 ㅋㅋㅋㅋ
@@people119 조선 뿐 아니라 동아시아 대다수 국가에서 사냥은 그 자체가 기동 훈련이었음. 정발 장군도 임란 얼마 전 소 요시토시의 투서와 왜관 일본인들이 피신하는걸 보고 수상함을 느껴서 절영도에 주둔해서 군사 훈련과 사냥을 했다 되어 있음. 일본군 측에서도 '부산진 전투에서 좌절했다' 는 말을 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정말 치열하게 싸웠다고 함.
@@people119 평가 뒤바뀐 지가 언제인데
@@people119 ㅂㅅ
@@kijungkim5998 자기 입맛에 바뀐거지 어떻게든 국뽕을 넣어야하니깐
07:55 지휘관이 가져야 할 마인드... 현재도 이런분들이 많기를... 비겁함으로 도망치기보다 목숨을 걸더라도 적을 막는다는 마음
솔직히요 부산진 전투가요 가능성이 없긴하였어요
@@박지성-u7v 그렇긴하죠ㅠ 하지만 저런모습이 국난극복하는데 일조하였고 저런장수가 있었음에 후일이 도모된 면은 기려야할듯합니다^^
@@뭐해야하지-q5r 그렇죠 그건 그래요 그래도 워낙 장단점이 명확해서요 저렇게죽으면 다른 전투에서 싸울 병사들이 보고 복수심에 사기가 올라갈수도 있다고 생각을 해서요 물론 치고 빠지는 것도 중요해요
@@박지성-u7v 맞죠ㅠ 장수가 후퇴해서 다시 전략을 짜고 승리를 거두는 것도 중요하죠ㅠ 부산진성 전투는 사실 버틸수 없는 싸움이였긴합니다 ㅠ 그래도 조선장수의 기개를 보았다는 그 하나만큼은 어찌보면 다행이라고 느껴지네요
@@뭐해야하지-q5r 그렇죠 그래서 선택권이 별로 없어요 작렬하게 죽느냐 치졸하게 사느냐 그런수준이에요
1:06 한국의 브래드 피트
@@_asiaserver7202 ..........네?
@@_asiaserver7202 뭔 바로 도망가 이님은 그말하는게아닌데 난독증있냐?
@@백승엽-x4p 영화 퓨리에 워데디 역으로 나온 미국 배우 아니냐. 뭐 얼굴이 닮았다는 뜻인지 전쟁 상황이 비슷하다는 건지 잘 모르겠는데.
이거 역사 실제로도 정발하고 송상현이 잘버틴거임 백성들먼저 안으로들이는 청야작전쓰고 전투에서 지긴했지만 그냥 길내주고 ㅌㅌ했으면 한양까지더빨리와서 아예망했을수도있음
현대에는 쳐들어오면 정보화시대에서 빠르게알수있는데 저렇게순찰하다가 갑자기 봤는데도 저정도로대응한거면 평소에 군사훈련 잘되어있다는 거임 원균이나 다른애들 같았으면 당했음
부산진성이나 동래성은 나름 정예병이었습니다 문제는 병력수가 너무 적었던 것이 탈이죠
근데 실제로도 4시간밖에못버텼다고해도 왜군이 정비하고하는시일땜에 실제론 하루를벌어준거라하네요
@@이강모-f4i 그래도 쟤네 정비하고있는지는 모르지않았나요?
@@joon146 어디실록인가 나와있었던걸로압니다 정확한건아니고요 몇년전에본기억이나네요
@@joon146 당연히 부대 피해보고하고 정비하지. 후방 확보 안하고 옮기나
2:26 광기가 고니시였군!
3:41백발백중
징비록에서 가장 좋아했던 전투씬!😭😭
3:33 궁수 앞으로! 쏴라~!!
日本万歳万歳🙌万歳🙌
我われは官軍我敵わがてきは 天地容いれざる朝敵ぞ
敵の大將たる者は 古今ここん無雙むそうの英雄で
之これに從したごふ兵つはものは 共に慓悍ひようかん决死の士
鬼神に恥はぢぬ勇あるも 天の許さぬ叛逆はんぎやくを
起しゝ者は昔より 榮えし例ためしあらざるぞ
敵の亡ぶる夫迄それまでは 進めや進め諸共もろともに
玉ちる劔つるぎ拔き連れて 死ぬる覺悟かくごで進むべし
부산진성이 큰성이 아니라서 병력, 무기가 충분치 못한 상황임에도 끝까지 싸운 정발 장군과 휘하 군사들 및 백성들의 노력은 정말 대단했죠 ㅜㅜ
기억은 잘 안 나지만 부산진성 개개인 무장은 조선에서 탑클래스 였다고 알고 있는데
알본측 기록에서도 부산진 조선 병사들 개개인이 갑옷을 입고 무장이 좋았다고 나와 있음
일본이 부산진 첬다가 괜히 사기가 꺽인게 아님 워낙 무장도 좋고 사기도 충만한데
수도 한양에 있는 병사들은 얼마나 더 무시무시한 병력일까 걱정했으나
부산진에 있던 병력이 조선의 최정예 병력이 였던 점이 안습이죠
무기는 충분 했으나 병력이 부족했다는 말이 맞을 것같아요.
왜냐하면 왜구가 많은 지역이여서 지금 현대로 치자면 udt급 특수부대가 수비를 하는 성이였음
다만 아무리 갑옷이 좋고 무장상태가 좋다한들 2개 대대로 1~2개 사단을 막기는 어려웠겠죠.
부산진성은 함락돼었어요
@@원빈양-z5y 네 알고 있어요
병력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해 결국 전멸했죠
아무래도 부산진은 경상좌수영 소속이라 큰성은 아니죠. 문제는 부산진이 삼포왜란 등 단순히 왜구들이 약탈만 할것이라고 인지만하다가 동래성 같은 큰성이 함락되고나서야 사태가 심각함을 인지했다라는거죠.
부산진 이랑 동래성은 노략질만 일삼던 정규군이 아닌 해적들만 상대 했었음 잘훈련된 정예 일본군 과 싸우니 부산진 을 지키던 병력이 많이 잡아봐도 6~800 조금 될까한 숫자 였고 동래성도 1000명이 되지 않은걸로
경주정씨 정발장군 후손으로써 자랑스럽습니다.
존경합니다
장군님^^
다른 후손도 왔다갑니다
눈물이 다닙니다
부산시민으로서 마음이 많이 아프네요 선조들의 넋을 기리며 다시는 다른 나라가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부강한 나라가 되길바랍니다…
퍽이나 왜군 상당수가 조선인인건 알고있냐?
@@방구석워리어-c9j 홍이장군님은 맞는말 하신건데.;) 그리고 임진왜란 때 왜군 중 상당수가 조선인이라는 근거없는 틀린말을 왜 하시는거죠?
@@김민준-p9c7r 조선실록에남옴
@@방구석워리어-c9j 이놈은 국적이 어디냐?
@@tv-iq2fm 불행이도 한국이다 새꺄
5:03 숭문천무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는 중이다.
지금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보면서 임진왜란 당시 우리 조상님들의 삶이 얼마나 힘드셨을지 새삼 생각하게 되더군요...
0:12 일본처럼 칼을 허리띠에 꽂아넣었네요, 사실은 마상에서 저렇게 칼을 패용하진 않은 대신 띠돈으로 매달되 칼자루가 뒤로 향하게 해야 말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했었는데 여기서는 그런 모습이 안나와서 아쉬워했던 1인이지만, 징비록에 담겨진 역사적 사건의 진실을 솔직하고 풍부하게 담아낸 것만으로도 작품성은 충분히 빛났습니다.
감독 : 귀찮아
환도패용 고증은 한국사극에서 개판임
전쟁났는데 지금 그걸 말할때입니까..?
브래드 홍표
2:34 어디서 많이 봤다 생각했는데 불멸의 이순신에서 이삼평을 모티브로 했던 장평이구만!
임진왜란1592에서 귀선 격군 막둥이 아버지로도 나왔어요
4:06 저때 대포쏘면 안되나유
7:18 실제로 동래성 전투때 아녀자들이 지붕위에서 기왓장을 던지면서 싸웠다는 기록도 그림도 있습니다
대포 무기도 부족하고 지원도 없었는데요.
@@트럼펫-c7p 그런게 아니라 대포 쏠려면 몇분 이상 걸리는데 화살로 대응하는게 맞죠
문경에서 이거 찍느라 고생했는데...
보조출연 알바 하심? 되게 힘들었을텐데
고니시 유키나가의 제 1군 선봉대
18,700명의 병력
임진왜란1592도 올려주세요 KBS 홈페이지까지 가 봐도 다시 볼 수가 없네요ㅠㅠ
@@jhyoo19936 헐....안타깝네요 명작이었는데..답변 감사합니다
@@EE22EE22 임진왜란1592에서 사용된 일본수군의 세키부네와 안택선 cg가 명량 영화에서 사용된 디자인이었어요. 그래서 명량 한산 노량을 만든 김한민 감독의 빅스톤픽쳐스가 kbs를 상대로 소송을 했고 공방끝에 법원이 임진왜란 1592에 협조한 cg업체 대표에게 벌금 700만원을 선고했었습니다. 그렇게 이후로 임진왜란 1592 드라마는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더이상의 시청이 불가합니다. 근데 개인적으로는 김한민 감독 역시 과연 떳떳한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면 한산 영화에서 적선이 50보 이내로 접근하면 화포를 쏘는 장면이 나오는데 임진왜란 1592 연출을 맡은 김한솔 피디와 제작진이 역사적 기록을 참고해서 먼저 연출해낸것이었어요. 결국에 김한민 감독도 표절을 했었다고 볼 수가 있겠지만 과연 이게 표절이냐 아니면 참고이냐 혹은 창작의 자유이냐의 기준이 참 애매해요. 명량 영화에서 야밤에 거제 헌령 안위가 거북선에 불을 지르고 나룻배를 타고 도망가던 배설을 화살로 쏴서 죽이는 장면이 나와서 배설의 후손분들이 김한민 감독 제작사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던 일이 있었는데 법원의 판결로는 창작의 자유라는 이유로 김한민의 편을 들어주었습니다. 세상에 정답은 없고 본인이 생각하는게 옳거나 틀릴수도 있어요. 그럼에도 저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김한민 감독 역시 떳떳한 사람이 아니라고 봅니다. 누구나 표절이나 참고나 창작의 자유가 있어요 그건 인간의 권리이니까요 하지만 훗날에 문제가 될 거 같으면 조심스럽게 생각하고 행동하는게 옳지 않을까라고 생각합니다.
브레드 홍표의 연기가 빛났던
징비록
실제로도 흑의장군 정발은
1군 고니시를 긴장시키는 전투력을
보여주기도 했었음
부산진 전투까지만해도 엄청난 대작인줄 알았는데...ㅠㅠ
글구 감정선 느끼려하는 부분마다 광고넣으시네,,,
11:00 광고제거하실때 누르세요
제작비가 웬수죠....
@@BJ-qc9tu 탄금대 전투때 고니시군 사상자가 8000이라고 왜곡때린걸 보면 무조건 제작비탓도 할수없음.
7:56 슬프다..
충정으로 나라를 위해 죽음을 불사하고 싸워주신 영웅 정발 장군께 감사를 드립니다
10:06 신검이 할 때보단 이 때가 낫겠네,광기야!
임진왜란 때 경상도 수군이 상륙을 막아주지 않아서 부산진성에서 힘들게 싸워준게 빛이 바랬네요
근데 선조는 정유재란 때 이순신한테 상륙 못 막았다고 죄를 뒤집어씌웠으면서 임진왜란 때는 원균과 박홍에게 같은 죄를 묻지 않았을까요
임란발발때는 일본이 쳐들어올줄 몰랐고 정유재란은 일본스파이(이중첩자)의 정보를 믿었기에 선조가 보기에 조선해군전력으로 일본 상륙을 안막는 이순신이 역적으로보임
뇌물과 빽이면 있는 죄도 없는 죄 됨. 껄껄껄
정발이랑 송상현 윤흥신장군은 좌수영소속 장수들인데
좌수사가 추노해버리니....
직접 공격받는 경상좌수영입장에선 기습+명량뺨치는 판도라서 애초에 대응이 불가능했어요. 전쟁 직전에 부울경일대쪽 군함들 점차 부산으로 집결했는데도 쪽수에서 대응이 불가능해서 죄다 자침한거임. 명량같은게 지형까지 잘잡기+천운이 따라서 승리한거지 일반적인 해전은 쪽수 차이나면 적은쪽이 무조건 패하는지라.. 근데 거기서 기습까지 당한상황이면 자침이라도 하는게 맞음. 기습 안당해서 해상병력이 온전한 경상우수영 원균이 내리 겁먹고 함선 모조리 자침해버린게 ㄹㅇ 트롤이지.
박홍은 그나마 할 거 다하긴 했음.
계속 여러 전투에 합류하는 움직임과 정보전달을 신속히 하긴 함.
이 전투씬이 진짜 레전드였는데..ㅠㅠ 와.. 이때 저 많은 군대를 어캐 이기냐.. 이 생각하면서 봤는데 진짜..ㅠㅠ
전쟁은 숫자로 하는게 아니다 그리고 1만8천 병력이 많은거냐..10만도 아니고 1만8천인데
@@영원한코로나 왜 ㅊ꼽줘ㅋㅋ 내가 언제 인원수 딸려서 무조건 진다고 했누 그리고 저기에 있는 조선군보다 많다고 한건데 뭐가 그렇게 ㅊ꼬와
@@영원한코로나 2만이면 지금도 한개 읍은 되는 수준인데
영원한코로나 전쟁은 숫자가 중요하고 만8천도 적은병력이 아님. 적은수로 많은병력 격파한 경우있다고 저렇게 얘기하는거 같은데 보통은 많은쪽이 유리함. 그리고 적은숫자로 이길수있다해도 수백 대 만8천이라는 수차이는 어떻게할수있는게 아님.
800명으로 2만명 이길수 있냐
0:44 조수창에서 정발로 승진했나,천왕동이?
수만명이나몰려오는데 얼마나 두려웟을까….존경합니다
大日本帝国万歳🙌君が代は千代に八千代にさざれ石の巌となりて苔のむすまで
ㄷㄷ 한국의 브래드피트
전시 초기에 정발이나 송상현 같은 충장이 있었으면 그나마 나았을수도..
원균이 아니라 이순신이 경상도 수군을 맡았다면......
저 장군은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눈빛좋네 ㅎㅎ
@@KEVIN_travelogue불멸의 이순신에서도 나옴ㅋ
@@shinee00774 그냥 원균만 아니였어도 크게 달라졌을겁니다.
정발장군이 진정한 참된 무장이지.... 적은 병력으로 끝까지 도망가지 않고 목숨을 걸고 적들과 싸웠으니.... 너무 정발장군을 과소평가 한건 아닌지..... 너무 안타깝다... 😔
이외에도 부산진에 이어서 왜적과 싸워 전사한 송상현도 참된 무장이고, 조선 육군 최초의 승리를 이끈 신각도 있죠.
@@김건우-g3y3t 근데 송희립은 이순신장군 휘하 무장이고 부산진 다음 동래성전투는 송상현장군인데요?
@@문재훈-y7v 어? 그렇네요.ㅠㅜ 죄송합니다, 빨리 수정할게요.
정발 송살현 장군님들은 존경받아 마땅한 인물이지 누가봐도 질꺼알고 죽는거 알면서도 끝까지 싸움 당시 대부분 장수들이 도망감. 도망간 장수들 욕하지만 막상 당사자면 100명중에 한명 남아서 싸울까말까 죽음의 공포앞에서 싸운건 정말 대단한거임
@@낮과밤-l2d 그쵸.괜히 무과가 있는게 아니죠.
실감나게 찍었네
브금이 쩔었다
정발장군님은 용감한장수
경상좌수사는 후퇴시키지도않고 자기혼자 겁먹고 도망가는 겁쟁이장군
만일 이순신이 경상좌수영에 배치되었어도 대응하기 어려웠을텐데... 전쟁 시작과 동시에 명량 뺨치는 상황으로 시작한게 경상좌수영이라... 이거도 그나마 부산에 함선 집결했는데도 기습사태에 적규모가 워낙 압도적이라 전부 자침하고 육전수비대로 전환할수밖에 없는상황이엿음. 오히려 그 옆수영 원균이 자기 진영이 기습받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탈주하면서 모조리 자침한게 더 욕먹을일일걸요.
현대로 비교하면 기습당하는 와중에 싸울 상태가 안되니까 무기고 폭파시켜서 적이 병기 탈취 못하게라도 한 대장-이걸 연락받고 공격안받아서 사단은 멀쩡한데 비상사태라 사단 집결지 이동해야하는데 내리 겁먹고 멀쩡한 상태 병력+병기 전부 파기해버리고 참모진만 튀어버린 대장급 비교라...
정발은 여기서 비교하면 최전방 초소 지휘관격이고요.
너는 전쟁나면 싸워보지도 않고 도망갈거면서 도망가는 장수욕할 자격이있나
올려주실 수 있으시다면 김시민장군님이랑 진주성전투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
그 다음 성 전투신도 (동래성이었나)
진주성 전투는 불멸의 이순신이 레전드
2:38 태조 왕건 진호가 여기서 겐소구나!
7:40 이놈 적을 앞에 두고 어딜 피한단 말이냐
행주산성 전투도 부탁드려요
할배 싸우는 거 맘 아프다ㅠㅠ
브래드피트 폼 미쳤다
11:00
이거 혹시 임진왜란 모두 다 올려주실건가요?
와우..불멸의 이순신에선 판옥선 건조하시다.
이제 성지키시넹
오~ 그러네요 이름이 수찬이였던가?
조수창입니다. 칠천량해전에서 불타는 거북선 불 끄려다 왜군의 칼에 베여 죽었습니다
Bu dızının adı nedır Türk ce olarak
저당시 조총의 최대 사거리가 100미터였고 유효 사거리가 50미터 였는데 적어도 수십미터 거리에 쏘아도 사람 몸을 관통해버리네
5:00
범위 내에선 관통력이 활보다 좋아요
드라마이니까요 ㅋㅋㅋㅋ
근데 관통이 되든 안되든 맞아서 몸에박히면 즉사or전투불능임
@@오창민-n1s성 아래에서 위로 쏘는거라 바람이나 각도영향 더받아서 절대 저렇게 못쏨
저당시는 오히려 활이 더좋았음
신거미가 이겨써
정발이 최소한 원균과 박홍보단 나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최소한이라도 정발 장군에대한 모독이죠. 원균은 진짜 ㅅㅂㅅㄲ
차라리 정발장군이 경상좌수사나 경상우수사 했었으면 조선이 저리 쳐발리진 않았을것 같네요..졌어도 왜군한테 타격을 입히고 졌을텐데 아쉽게도 지휘관의 무능이 결국 나라를 누란에 쳐하게 만들고 7년간의 전쟁으로 치닫게 했으니 안타깝네요
심지어 그 성웅 이순신이랑 입대동기 같은 사이인 모양이더라구요.
최소한이라는 단어라는 말도 쓰지마라
@@dspark1988 저때당시 박홍이랑 원균이 경상도 함대 조기에 출격시켜서 바다에서 싸웠으면 고니시의 선봉대가 온전히 상륙도 못했을것이고 저정도로 단기간에 쳐발리진 않았을듯
볼때마다 눈물 난다
부산진성병사장군들멋진다
9:45초에 전사자들 비추는데
왼쪽 아래 왜군보면 전사했는데 창이 움직임ㅋㅋㅋ
사후경련
제가 알고있는 정보로는 정발 장군이 이순신 장군과 친분이 있었다고 하던데
(답글에 사실여부 알려주세요)
16시간 ㅋㅋ
@@juny8332 ?
친한 사이라고 하더군요.ㅎㅎ
두분다 두만강 일대 북방에서 여진족을 상대할때 같이 있었습니다.
개전초기에 유일한 수성전.
부산진성, 동래성 전투
평양성전투, 독산성 행주대첩 이전까지 제대로된 싸움없음.
그리고 부산진성 병사는 오늘날로 치면 해병대급
무인시대 이의민 아들 이지순 환생했누
조수창... 장군이 됐네 ㅠㅠ
부산진에서 전투를 치른 후 일본군들도 조선 쉽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잠시 주춤했었음.
하지만 그 뒤에 경부고속도로일줄은...
그건 국뽕기록이고 고니시는 저때 가토가 뒤늦게 조선땅에 도착하면 자기가 역전당할수 있어서 바로 진격해서 빠르게 성몇개를 함락시킴
한국판 브래드 피트 김홍표❤️❤️❤️❤️❤️❤️
일본 조총부대의 위력을 처음 실감나게한 전투 그러나 정발장군님은 최선을 대해 싸워주었습니다
정발장군의충심을영원히기억하겠습니다
정발 윤흥신장군 존경합니다
부산진성전투때만 해도 오오 많이 기대했는데 탄금대전투씬에서 할말을 잃었다.
근데 고거전 귀주대첩마무리보니 이건 그냥 킹작이었네
"첫 전투부터 이렇게 힘들고 피해가 크면 앞으로 남은 전투들이 얼마나 많을지 모르는데 어떻게 조선왕을 잡을 수 있을까" 라고 왜장이 생각했을 정도이니 얼마나 용감하게 잘 싸웠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조선왕이 백성버리고 빤스런할줄은 상상도 못했던 일본
정발 장군님 만수무강 하세요
발굴된 여성 유골중 머리뼈째로 반이 잘린 유골도 나옴
ㄹㅇ 참혹했다고 밖에는..
전라좌수영 판옥선 전선건조지휘장 나으리가 왜 부산에 가있는거죠?
그러게요 ㅎㅎ
정발이 정말 잘 싸웠음 700명 병사로 얼마나 잘싸웠는지 흑백 장군이라고 기록됨 일본군이 정발 장군 겨우 죽임 조총으로 그정도 일본군한테 엄청난 피해줌
그건 검은옷을 즐겨입어
흑의 장군이라 불렀음
임진왜란때 부산진 전투 장소가
지금의 부산 영도인가요?
아닙니다. 부산동구 좌천동쪽입니다
@@닥치통조림 네 감사합니다
이쪽부분은 너무 암울해서 징비록 다시 보고 싶을땐 이순신 장군님 매드무비만 보는게 맞는듯
그렇긴하지만 정발장군,송상현장군 및 휘하 장수 관,민들이 일본기록에서 칭찬할만큼 용감하게 끝까지 분전하였죠ㅠ 모두 감사한 분들입니다
명장은 아닐지라도 참다운 군인이다
임진왜란 드라마 처음보면서 첫타자로 나오길래 도망가겠네했는데 으외로 나라에 충신
과연 이랬을까?
정발장군역이네요 ㅎ
바다에서 첫승리 거둔 옥포해전 정암진전투 이전까지 잘싸운부대 성은 부산진성 정발 동래성 동래부사 송상현이지 그 이후 나머지는 걍 패전장수 특히 바다를 막지못해 경상우수사원균 , 이각이 막아줬으면 몰라도 버리고 도망가고 차라리 경상우수사자리에 이억기 장군이었으면 몰랐는데
جميل كتير
한국판 브레드 피트
제1군 선봉 장 고니시 유키나가
저당시 저걸 실제로 보고잇던 군병들은 무슨마음이엇을까 ..
저 때 초동조치로 인해 이겨야 함!
천주교 고니시가 승려를 데리고 다니네
저게 말로만 듣던 싸우지도 않고 경상도 수군을 전멸시켰던 그 전투인가요??
조선군 무기 당파(삼지창) 길이 가 2m정도 였고 일본 아시가루 장창병 들은 4~5m정도 의 긴창 으로 리치 차이가 상당했을 텐데요
디운
물러시지말고 끝가지 함께 싸워라
장군이 화가났네요
진주성장군 멋짐
600여명의 군사로 180000의 일본군과 장렬하게 싸운 정발장군 ....
흑의장군이라불리는장군 원래 고니시는 정발를생포하려하는데 생포를불가해서 사살했다하고 고니시도 본받았다함 심지어 후에 송상현장군도 훌륭한장군이다 우리가본받아야한다하고 높게평가함
어라...? 조수창...?
이거볼때마다 마음이 아파서 못 보겠음..
불멸때 그 병사신분이였다 관직받은 수찬분 였던가?
점령할까봐 눈치를 바르게 사는 입니까
破竹之勢: 戰則戰矣 不戰則假道
소서행장 전즉전의 부전즉가도
싸우려면 싸우고, 싸우지 않으려면 우리에게 길을 빌려달라
宋象賢 (將軍): 戰死易 假道難
송상현 (장군) 전사이 가도난
싸워서 죽기는 쉬워도 길을 빌리기는 어렵다
이때 원균한테 지원요청 했더니 판옥선 다 태우고 도망갔다죠?
상황이 안돼서 후퇴한거죠 1만8천 실전경험있는 최정예군 상대로 부산진 버티긴힘들음
장군이 잘하네요 지휘관에서 될겁니다
나군관 출세했네!
@w hw 정확한 지적 감사합니다. 제가 착각했네요. 지휘장 조수창이 맞네요.ㅎㅎ
저때 일본군의 손실병력이 100명 정도고 조선군은 전멸이라고 알고 있는데 ...
아무런 준비도 없이 싸운 전투라 어쩔수없음 모든 전쟁에서 군수물자, 병력지원, 백성들의 도움이 없으면 버티질 못함 거기에 부산진전투때 아군병력은 고작 500~6백명....일본군은 고니시군만 1만9천여명...워낙 초기전투라 우리나라 기록보다 일본기록이 자세히 나옴. 부산진의 북문을 뚫고 점령단계에 들어간 고니시군이 근접전으로 정발장군을 잡지 못하자 결국 조총부대를 이용해 정발장군을 죽이고 부산진을 함락 -> 고니시가 정발장군의 충의와 무용에 감복해서 시체를 훼손하지 말고 온전히 고향으로 돌려보내주라했고 일본에서 정발을 흑의장군이라 부르면서 왜란이후 나온 일본소설에 김시민, 곽재우 등과 함께 조선 대표맹장중에 한사람으로 나옴. 전쟁후에 통신사가 다시 왕래할때 조선에서 일본측에게 어떤 장수의 무용이 가장 기억에 남느냐고 물으니 정발장군을 1순위로 꼽았다고할정도로 용맹무쌍한 충의지사였는데 조선측은 하루만에 부산진을 넘긴 졸장취급함
@@심제헌-b9f ㅎㅎㅎ 그건 인정합니다.
근데 불멸의이순신과 징비록 중에 불멸의이순신의 부산진 전투가 진짜 부산진전투 같습니다.
징비록은 조선군들이 너무 잘싸우는거 같습니다.
@@김재걸-m2g 무슨? 시신들보면 90프로가 조선군 시신들이구만
애초에병력차이에서 600~800명이랑vs18700명은 차이가너무심합니다 그럼에도 몇시간버텼다는건 대단한겁니다 정말잘싸우셨습니다 정발장군및그외의 조선군들의 명복을빕니다.
6백으로 살인기계들 상대로 백명 사살은 업적인데
검술로는 중국,한국인도 못 당한게 일본군임
지붕에서 기왓장 던져서 공격하는게 현실감있네요.
부산진성이면 지금의 범일동,범천동,좌천동,수정동 일대 겠구만
저당시 진성은 좌천동에 있었다고합니다.
역사을잊은자 미래가없다 그래서 저는 역사공부에 젖저 살아요~~~
6.25 잊지말자
9분46초에 일본군 죽었는데 창움직이네 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