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로마서의 말씀을 통해 귀한 은혜를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1. 사도 바울은 우리 자신을 누구에게 내어주는 가?에 따라 우리의 삶의 모습은 분명하게 달라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에게 자신을 내어 주면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하나님에게(주인)에게 자신을 내어 주면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게 된다."(롬6:16b) 2. 따라서 우리는 날마다 나는 나 자신을 누구에게 내어주며 살고 있는가? 죄의 종과 의의 종 중에 나는 어떤 종인가?를 스스로 점검해야 합니다. 3. 나는 죄의 종과 의의 종 중에 어떤 종인가?는 내 삶에 어떤 열매가 나타는가?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죄의 종 노릇하는 사람은 삶의 부끄러움을 느끼며 그 열매는 사망입니다. 하지만 의의 종 노릇하는 사람은 거룩한 삶을 살며 그 삶의 열매는 영생을 얻게 됩니다. 4.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나 스스로 나는 지금 삶에서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는가? 돌아봅니다. 5. 물론 나 스스로의 본성은 절대로 죄로 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5:1) 말씀처럼 하나님의 전적인 구원의 은혜를 믿음으로 죄로부터의 자유함을 얻었고, 영생이라는 은혜의 선물(카리스마)을 받은 의의 종이 되었음을 믿습니다. 6.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만을 강조하며 세상 가운데 나의 삶을 돌아보지 못했던 모습을 회개하며, 죄의 종 노릇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영생이라는 선물은 받은 의의 종 답게 거룩한 삶을 살아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탕자의 비유를 다시 한번 곱씹게 되는 귀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의의 종과 죄의 종, 모두 자유가 있으나 그 결과는 확연히 달랐습니다. 죄의 종이 되어 자유롭게 죄를 짓고, 열심히 죄의 종으로서 고군분투하며 일하였으나 돌아오는 대가는 사망이었습니다. 그것은 분명 우리가 자유한 것 같으나 자유하지 않고 결국에는 내가 원치 않는 사망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은 참으로 인생의 역설인 것 같습니다. 반대로, 의의 종으로 구속된 것은 자유함이 없어 보이나 그렇지 않고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을 받아 영생을 누리게 되는 자유가 있었습니다. 이 차이점을 분명히 기억하여, 다시는 종의 멍에를 매지 않고 의의 종으로 구속받는 인생을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의식을 하면서 살게 됩니다. 체면이라는 이름으로 면을 세우려고 노력만 할때가 많습니다. 거룩한 척 예배 자리에 앉아 있었는지, 내 영혼이 아버지 앞에서 자유롭다 하면서 실상은 외적인 모습만 있지 않았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죄라는 것은 너무나도 가까이 있고 죄라는 것은 너무나 쉽게 다가오기에 죄의 종이 되기 쉽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오늘도 구하는 것은 주님의 은혜이면서 간절하게 주님의 종이 되기를 바라면서 나갈 뿐입니다. 성실히 주님을 찾고 거룩한 열매 맺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오늘도 생명의 말씀으로 영혼에 자유함을 알려주시는 목사님에게 감사함을 느끼고 구원을 주시는 주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오늘 강의도 집중력을 갖고 들을수록 진리의 깊은 맛을 음미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믿음으로 의로워진 사람은 죄에서 벗어나 거룩한 삶을 살아야 마땅합니다. 사실 거룩한 삶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과정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가 "누구의 종이 되는가?"에 따라서 방향이 결정됩니다. 죄의 지배 아래에서 벗어나지 못해 사망으로 마침표를 찍을 수도 있고 순종의 종으로 거룩한 삶을 살며 궁극적으로 영생을 얻게 될 수도 있습니다. "순종의 종"은 신비하게도 종이면서 자유롭습니다. 왜냐하면 "주인을 위한 자유"를 맘껏 누리기 때문입니다... 특히 인상적인 말씀은 "죄의 삯은 사망이고 하나님의 은사(선물)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 6:23)는 말씀을 해설해주신 부분이었습니다.. 죄의 결과는 응당한 대가를 치르는 '삯'으로 표현하면서 사망으로 귀결되고, 반면에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선물'로 표현하면서 영생으로 귀결되는 대조가 크게 다가옵니다.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분명히 제시해주시는 단호함이 느껴집니다. 오늘 강의를 통해 선언해주신 "하나님의 종으로 순종의 종이 되어 주 하나님을 위한 자유(=거룩한 삶)을 맘껏 누리며 살아라"는 귀한 교훈을 가슴에 새깁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갈라디아서 5:1). 아멘.
죄의 종 노릇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안에 자유롭게 사는 삶😊 가슴뭉클한 말씀입니다 깊어가는 가을에 은혜도 깊어지는 듯 합니다.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보면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야 함을 다시 고백하게 됩니다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영생을 선물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오늘 강의에서 우선 눈여겨 보게되는 부분은 바울사도의 비유와 표현력입니다. 우리의 회심이 '죄의 종'에서 '의의 종'으로 가는 과정으로 설명하는 표현력이 탁월합니다. 단지 문학적 표현 뿐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구윈의 진리가 참 놀랍습니다. 이러한 세심한 과정을 잘 설명해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죄의 종에게는 삯으로 사망을 지불한다는 것. 그런데 의의 종에게는 삯이 아닌 '선물'로 영생이 주어진다는것. 곱씹을수록 너무나 탁월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오늘 강의를 통해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해 묵상해봅니다. 말씀하신대로 신앙생활 하느라 자유가 없다고 말하는 성도들을 종종 봅니다. (저도 마찬가지고요.)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자유란 부끄러움이라는 열매를 동반하는, 그래서 죽음이라는 삯을 받는, 자유라고 하지만 실상은 죄의 종이 되는 길이겠지요.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여전히 죄의 종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회심이란 주인을 바꾸는 것이라는 말씀이 참으로 옳습니다. 주인이 바뀌는 구원의 여정을 오늘 결단해봅니다. 거절의 자유가 없는 의의 종이 되어 거룩함의 열매, 영생의 선물을 받는 제가 되길 소망합니다. 오늘도 좋의 강의 감사드립니다.
죄의 종에서 벗어나 의의 종, 하나님의 종이 되어야 영생의 길을 갈 수 있다는 말씀을 듣고 생각해 봅니다. 세상살이 구석구석에 지천으로 깔린 죄의 유혹을 떨치려면 항시 나를 제어할 수 있을 만큼의 믿음의 훈련이 선행되어야 하리라고 믿습니다. 믿음의 훈련 - 수시로 회개하고 열심히 기도하고 하나님을 생각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바울 사도의 로마서 말씀은 역설의 의미가 여러 곳에 잘 표현되어 있는데, 오늘 강의는 그 핵심을 만지는 말씀이었습니다. 죄의 종은 사망에 이르는 것. 순종의 종은 의에 이르는 것인데, 회심을 통하여 우리는 그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기독교의 자유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유이며, 하나님의 종이 되면 생명을 얻는다는 것에 대해 역설적인 신선한 통찰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죄의 종에서 의의 종으로 바뀌었습니다. 죄의 종이었던 우리의 마침이 사망이었으나,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종으로 의에 이르러 영생의 열매를 얻게 된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며 축복이며 선물임을 깨닫습니다.
[요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죄의 종으로 살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속량으로 말미암아 순종의 종이 되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지만 순종의 종이 받을 것은 영생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자유는 무언가에서 벗어나는 세상의 자유와는 다른 순종을 위한 자유라는 신비 이것을 주인과 종이라는 기막힌 표현으로 기록한 사도바울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오늘 강의를 통해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리스도인들이 지켜야 할 것도 많고 하지 말아야 할 것들도 많은 자유가 없는 삶으로 보이겠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의의 종이 얻는 영생이라는 완전한 자유를 얻는 은혜의 삶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죄의 종에서 벗어나 의의 종이 되기 위해 성화의 길을 걸어나가는 거룩한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자신을 누구에게 내어주는가에 따라 그의 종(노예)이 된다. 자유함이 없이 꼼짝없이 주인에게 끌려다니는 노예처럼, 인간은 죄의 노예가 되어 끌려갑니다. 바울이 말하는 종(노예)의 개념은 당시 시대의 신분 질서에서 바로 보고 이해할 수 있기도 했지만, 이것은 오늘날 주인과 종이라는 신분질서가 없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주인-노예의 관계가 모든 사람이 매일 순간순간 누군가에게 끌려다니는 "경험적 현실"을 마주하기 때문입니다. 어떤이는 돈에 끌려다니고, 어떤 이는 자식에게 끌려 다니고, 어떤 이는 남의 말과 평판(체면)에 끌려다닙니다. 모두 노예의 신분은 아니지만 노예처럼 주인된 무언가를 섬기고 있는 꼴입니다. 그러면서 '회심'은 우리가 섬기지 말아야 할 주인이 아닌, 예수그리스도의 노예로써 주인을 바꾸는 것입니다. 죄가 아닌 하나님의 종이 될 때 우리는 신앙으로 인해 제약이 많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자유함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죄는 자유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을 섬기는 종들을 비루하게 구속합니다. 마치 '마약'이 우리 기분을 자유롭다고 느끼도록 하지만, 실상은 중독을 통해 삶을 완전히 망가 뜨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죄를 중독으로 이해하여, "중독과 은혜"라는 개념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마약보다 더 잔인하게 우리 자신으로 하여금 '죄인 된 나' 에게 집중하게 하는 죄는, 하나님이 우리 삶의 주인이 되실 때,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는 것은 (죄로부터) 자유인이 되는 것이고, (죄의) 종이 되는 것은 (하나님을 떠나 멸망(사망)과 절망으로 치닫는 망가진) 자유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에 노예가 되어, 사망과 멸망의 길을 갈지, 하나님의 노예가 되어서 진정한 자유, 참 자유를 누릴지 선택해야 합니다. 이 것은 예수님을 믿기로 한 시작점부터, 예수님을 믿고 난 현재의 신앙생활의 과정속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죄의 노예의 상태에서 벗어나려 할 때는 "그럴 수 없느니라" 외치며 단호히 거부해야 합니다. 가만히 흘러가는대로 넋 놓고 있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이 "우리가 누구인지를 정확히, 바로 알아야 합니다. 바른 인식이 바른 실천이 됩니다. 우리가 성인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면 다시 고등학교 교복을 입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자신이 아직 고등학생이라 생각하여 나이가 50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교복을 입으며 고등학생처럼 살려 하는 것은 잘못된 인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분에 있어서의 바른 인식을 갖아서, 바른 실천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특별히 오늘 강의에서 마음에 기억되는 부분이 있었는데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했다"는 구절인데요. [ἐκ καρδίας"] 카르디아라는 단어를 통해서 인간의 정신과 의지를 다해서 디다케에 가르침을 따라갔다는 것입니다. 신앙은 단순간의 은혜도 있지만, 그 후에 오는 지속적, 점진적 훈련 과정이 반드시 필요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귀한 강의로 풍성한 말씀의 깊이를 가르쳐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목사님^^
오늘 강의를 들은 어느 애청자의 피드백을 소개해 올립니다.^^ 그해 여름의 중복 날을 잊을 수 없다. 너무나 더워서 친구들과 남한산성 골짜기에 놀러갔다. 남한산성 골짜기는 중복날에 삼삼오오 모여서 이열치열 한다며 개고기를 먹는게 유행이었다. 골짜기를 돌아가며 중턱에 이르렀을 때에, 한 무리의 아저씨들이 개를 나무에 달아 몽둥이로 패며 잡고 있었다. 개는 나무에 매달려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맞은 채, 필사적으로 목에 걸린 밧줄을 풀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그 개는 비명을 지르며 목을 흔들다가 목이 밧줄에서 미끄러지며 나무에서 떨어지자 그대로 도망쳤다. 그러자 개 주인이 개 이름을 부르며 오라고 손짖을 했다. 개는 이미 100m 쯤 도망가 있었다. 개는 주인이 부르자, 망설이다가 다시 주인에게로 다리를 절며 피투성이가 된 채 달려가고 있었다. 개는 주인에게 다가오자 꼬리를 흔들며 주인의 품에 안기었다. 바로 그 때, 주인은 그 개를 잡아 다시 나무에 밧줄로 꽁꽁 매달고 몽둥이로 머리를 세게 쳤다. 그리고 주인은 그 개를 끊는 솟에 넣어 친구들과 개고기를 먹는것이었다. 너무나 순식간에 내 눈 앞에서 벌어진 삶과 죽음을 오간 개를 보며 나의 주인은 누구인가를 심각하게 생각했다. 그 날 밤 잠을 자려는데 그 개의 이미지가 떠오르며 생각한 것이, “사탄은 인간을 이용하고 현혹하여 결국 영원한 죽음으로 이끄는 마치 개 주인과 같은것이다.” 나의 주인은 누구인가?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시기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내죄를 사해 주시고 영생을 주셨으며 천국을 보장해 주심에 감사와 찬양을 드리며 평안한 단잠을 잤다.
요한3,15)"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 믿는사람 ; 무엇을 믿어야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지 예수님이 말씀 하십니다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 "(요한6,53) 예수님을 믿는 믿음과 예수님의 살과피 (성체) 를 연결시켜야 합니다 가톨릭 교회의 사제가 빵과 포도주를 축성하면 진짜 예수님의 살과피라고 믿는게 믿음입니다
아멘
아멘
목사님
귀한말씀
감사합니다
오늘도 로마서의 말씀을 통해 귀한 은혜를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1. 사도 바울은 우리 자신을 누구에게 내어주는 가?에 따라 우리의 삶의 모습은 분명하게 달라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에게 자신을 내어 주면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하나님에게(주인)에게 자신을 내어 주면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게 된다."(롬6:16b)
2. 따라서 우리는 날마다 나는 나 자신을 누구에게 내어주며 살고 있는가? 죄의 종과 의의 종 중에 나는 어떤 종인가?를 스스로 점검해야 합니다.
3. 나는 죄의 종과 의의 종 중에 어떤 종인가?는 내 삶에 어떤 열매가 나타는가?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죄의 종 노릇하는 사람은 삶의 부끄러움을 느끼며 그 열매는 사망입니다.
하지만 의의 종 노릇하는 사람은 거룩한 삶을 살며 그 삶의 열매는 영생을 얻게 됩니다.
4.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나 스스로 나는 지금 삶에서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는가? 돌아봅니다.
5. 물론 나 스스로의 본성은 절대로 죄로 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5:1)
말씀처럼 하나님의 전적인 구원의 은혜를 믿음으로 죄로부터의 자유함을 얻었고, 영생이라는 은혜의 선물(카리스마)을 받은 의의 종이 되었음을 믿습니다.
6.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만을 강조하며 세상 가운데 나의 삶을 돌아보지 못했던 모습을 회개하며, 죄의 종 노릇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영생이라는 선물은 받은
의의 종 답게 거룩한 삶을 살아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탕자의 비유를 다시 한번 곱씹게 되는 귀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의의 종과 죄의 종, 모두 자유가 있으나 그 결과는 확연히 달랐습니다. 죄의 종이 되어 자유롭게 죄를 짓고, 열심히 죄의 종으로서 고군분투하며 일하였으나 돌아오는 대가는 사망이었습니다. 그것은 분명 우리가 자유한 것 같으나 자유하지 않고 결국에는 내가 원치 않는 사망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은 참으로 인생의 역설인 것 같습니다. 반대로, 의의 종으로 구속된 것은 자유함이 없어 보이나 그렇지 않고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을 받아 영생을 누리게 되는 자유가 있었습니다. 이 차이점을 분명히 기억하여, 다시는 종의 멍에를 매지 않고 의의 종으로 구속받는 인생을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의식을 하면서 살게 됩니다. 체면이라는 이름으로 면을 세우려고 노력만 할때가 많습니다. 거룩한 척 예배 자리에 앉아 있었는지, 내 영혼이 아버지 앞에서 자유롭다 하면서 실상은 외적인 모습만 있지 않았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죄라는 것은 너무나도 가까이 있고 죄라는 것은 너무나 쉽게 다가오기에 죄의 종이 되기 쉽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오늘도 구하는 것은 주님의 은혜이면서 간절하게 주님의 종이 되기를 바라면서 나갈 뿐입니다. 성실히 주님을 찾고 거룩한 열매 맺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오늘도 생명의 말씀으로 영혼에 자유함을 알려주시는 목사님에게 감사함을 느끼고 구원을 주시는 주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오늘 강의도 집중력을 갖고 들을수록 진리의 깊은 맛을 음미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믿음으로 의로워진 사람은 죄에서 벗어나 거룩한 삶을 살아야 마땅합니다. 사실 거룩한 삶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과정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가 "누구의 종이 되는가?"에 따라서 방향이 결정됩니다. 죄의 지배 아래에서 벗어나지 못해 사망으로 마침표를 찍을 수도 있고 순종의 종으로 거룩한 삶을 살며 궁극적으로 영생을 얻게 될 수도 있습니다. "순종의 종"은 신비하게도 종이면서 자유롭습니다. 왜냐하면 "주인을 위한 자유"를 맘껏 누리기 때문입니다...
특히 인상적인 말씀은 "죄의 삯은 사망이고 하나님의 은사(선물)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 6:23)는 말씀을 해설해주신 부분이었습니다.. 죄의 결과는 응당한 대가를 치르는 '삯'으로 표현하면서 사망으로 귀결되고, 반면에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선물'로 표현하면서 영생으로 귀결되는 대조가 크게 다가옵니다.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분명히 제시해주시는 단호함이 느껴집니다.
오늘 강의를 통해 선언해주신 "하나님의 종으로 순종의 종이 되어 주 하나님을 위한 자유(=거룩한 삶)을 맘껏 누리며 살아라"는 귀한 교훈을 가슴에 새깁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갈라디아서 5:1). 아멘.
하나님의 종이 되어 영생을 선물받는 삶이 되게 기도드립니다.
목사님의 로마서 강의 감사 드립니다.
죄의 종 노릇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안에 자유롭게 사는 삶😊
가슴뭉클한 말씀입니다
깊어가는 가을에 은혜도 깊어지는 듯 합니다.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보면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야 함을 다시 고백하게 됩니다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영생을 선물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의의 종으로 살아가야 하겠읍니다 열심히 예수님닮으려고 노력하게 목사님 도와주세요 늦게라도 주님을 만난것을 너무 감사합니다 늘 건행하세요
순종의 종 의의 종 하나님의 종이 되어지기를 기도하겠습니다!!
보배로운 은혜의 말씀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
"죽음을 가져오는 자유"와 "생명을 가져오는 구속"
하나님의 종으로 평생 살아갈 수 있는 힘과 은혜를 주소서. 감사합니다.
의의 종으로 살아가는데 있어서 보다 분명한 확신을 주시는 말씀에 감사합니다!!!
오늘 강의에서 우선 눈여겨 보게되는 부분은 바울사도의 비유와 표현력입니다. 우리의 회심이 '죄의 종'에서 '의의 종'으로 가는 과정으로 설명하는 표현력이 탁월합니다. 단지 문학적 표현 뿐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구윈의 진리가 참 놀랍습니다. 이러한 세심한 과정을 잘 설명해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죄의 종에게는 삯으로 사망을 지불한다는 것. 그런데 의의 종에게는 삯이 아닌 '선물'로 영생이 주어진다는것. 곱씹을수록 너무나 탁월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오늘 강의를 통해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해 묵상해봅니다. 말씀하신대로 신앙생활 하느라 자유가 없다고 말하는 성도들을 종종 봅니다. (저도 마찬가지고요.)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자유란 부끄러움이라는 열매를 동반하는, 그래서 죽음이라는 삯을 받는, 자유라고 하지만 실상은 죄의 종이 되는 길이겠지요.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여전히 죄의 종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회심이란 주인을 바꾸는 것이라는 말씀이 참으로 옳습니다. 주인이 바뀌는 구원의 여정을 오늘 결단해봅니다.
거절의 자유가 없는 의의 종이 되어 거룩함의 열매, 영생의 선물을 받는 제가 되길 소망합니다.
오늘도 좋의 강의 감사드립니다.
죄의 종에서 벗어나 의의 종, 하나님의 종이 되어야 영생의 길을 갈 수 있다는 말씀을 듣고 생각해 봅니다. 세상살이 구석구석에 지천으로 깔린 죄의 유혹을 떨치려면
항시 나를 제어할 수 있을 만큼의 믿음의 훈련이 선행되어야 하리라고 믿습니다. 믿음의 훈련 - 수시로 회개하고 열심히 기도하고 하나님을 생각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멘 💕
하나님께 순종의 종으로 살기 원함니다.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종이되어 영생 얻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아멘!!
바울 사도의 로마서 말씀은 역설의 의미가 여러 곳에 잘 표현되어 있는데, 오늘 강의는 그 핵심을 만지는 말씀이었습니다. 죄의 종은 사망에 이르는 것. 순종의 종은 의에 이르는 것인데, 회심을 통하여 우리는 그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기독교의 자유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유이며, 하나님의 종이 되면 생명을 얻는다는 것에 대해 역설적인 신선한 통찰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죄의 종에서 의의 종으로 바뀌었습니다. 죄의 종이었던 우리의 마침이 사망이었으나,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종으로 의에 이르러 영생의 열매를 얻게 된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며 축복이며 선물임을 깨닫습니다.
귀한시간 감사합니다
기대하는
성서학당
시간입니다
[요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죄의 종으로 살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속량으로 말미암아 순종의 종이 되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지만 순종의 종이 받을 것은 영생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자유는 무언가에서 벗어나는 세상의 자유와는 다른 순종을 위한 자유라는 신비 이것을 주인과 종이라는 기막힌 표현으로 기록한 사도바울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오늘 강의를 통해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리스도인들이 지켜야 할 것도 많고 하지 말아야 할 것들도 많은 자유가 없는 삶으로 보이겠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의의 종이 얻는 영생이라는 완전한 자유를 얻는 은혜의 삶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죄의 종에서 벗어나 의의 종이 되기 위해 성화의 길을 걸어나가는 거룩한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하나님의 종이 되면 생명을 얻고 자유함이있다.아몐~
자신을 누구에게 내어주는가에 따라 그의 종(노예)이 된다.
자유함이 없이 꼼짝없이 주인에게 끌려다니는 노예처럼, 인간은 죄의 노예가 되어 끌려갑니다. 바울이 말하는 종(노예)의 개념은 당시 시대의 신분 질서에서 바로 보고 이해할 수 있기도 했지만, 이것은 오늘날 주인과 종이라는 신분질서가 없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주인-노예의 관계가 모든 사람이 매일 순간순간 누군가에게 끌려다니는 "경험적 현실"을 마주하기 때문입니다.
어떤이는 돈에 끌려다니고, 어떤 이는 자식에게 끌려 다니고, 어떤 이는 남의 말과 평판(체면)에 끌려다닙니다. 모두 노예의 신분은 아니지만 노예처럼 주인된 무언가를 섬기고 있는 꼴입니다.
그러면서 '회심'은 우리가 섬기지 말아야 할 주인이 아닌, 예수그리스도의 노예로써 주인을 바꾸는 것입니다. 죄가 아닌 하나님의 종이 될 때 우리는 신앙으로 인해 제약이 많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자유함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죄는 자유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을 섬기는 종들을 비루하게 구속합니다. 마치 '마약'이 우리 기분을 자유롭다고 느끼도록 하지만, 실상은 중독을 통해 삶을 완전히 망가 뜨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죄를 중독으로 이해하여, "중독과 은혜"라는 개념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마약보다 더 잔인하게 우리 자신으로 하여금 '죄인 된 나' 에게 집중하게 하는 죄는, 하나님이 우리 삶의 주인이 되실 때,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는 것은 (죄로부터) 자유인이 되는 것이고, (죄의) 종이 되는 것은 (하나님을 떠나 멸망(사망)과 절망으로 치닫는 망가진) 자유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에 노예가 되어, 사망과 멸망의 길을 갈지, 하나님의 노예가 되어서 진정한 자유, 참 자유를 누릴지 선택해야 합니다. 이 것은 예수님을 믿기로 한 시작점부터, 예수님을 믿고 난 현재의 신앙생활의 과정속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죄의 노예의 상태에서 벗어나려 할 때는
"그럴 수 없느니라" 외치며 단호히 거부해야 합니다. 가만히 흘러가는대로 넋 놓고 있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이 "우리가 누구인지를 정확히, 바로 알아야 합니다. 바른 인식이 바른 실천이 됩니다. 우리가 성인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면 다시 고등학교 교복을 입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자신이 아직 고등학생이라 생각하여 나이가 50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교복을 입으며 고등학생처럼 살려 하는 것은 잘못된 인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분에 있어서의 바른 인식을 갖아서, 바른 실천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특별히 오늘 강의에서 마음에 기억되는 부분이 있었는데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했다"는 구절인데요.
[ἐκ καρδίας"] 카르디아라는 단어를 통해서 인간의 정신과 의지를 다해서 디다케에 가르침을 따라갔다는 것입니다. 신앙은 단순간의 은혜도 있지만, 그 후에 오는 지속적, 점진적 훈련 과정이 반드시 필요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귀한 강의로 풍성한 말씀의 깊이를 가르쳐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목사님^^
오늘 강의를 들은 어느 애청자의 피드백을 소개해 올립니다.^^
그해 여름의 중복 날을 잊을 수 없다. 너무나 더워서 친구들과 남한산성 골짜기에 놀러갔다. 남한산성 골짜기는 중복날에 삼삼오오 모여서 이열치열 한다며 개고기를 먹는게 유행이었다. 골짜기를 돌아가며 중턱에 이르렀을 때에, 한 무리의 아저씨들이 개를 나무에 달아 몽둥이로 패며 잡고 있었다. 개는 나무에 매달려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맞은 채, 필사적으로 목에 걸린 밧줄을 풀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그 개는 비명을 지르며 목을 흔들다가 목이 밧줄에서 미끄러지며 나무에서 떨어지자 그대로 도망쳤다.
그러자 개 주인이 개 이름을 부르며 오라고 손짖을 했다. 개는 이미 100m 쯤 도망가 있었다. 개는 주인이 부르자, 망설이다가 다시 주인에게로 다리를 절며 피투성이가 된 채 달려가고 있었다. 개는 주인에게 다가오자 꼬리를 흔들며 주인의 품에 안기었다. 바로 그 때, 주인은 그 개를 잡아 다시 나무에 밧줄로 꽁꽁 매달고 몽둥이로 머리를 세게 쳤다. 그리고 주인은 그 개를 끊는 솟에 넣어 친구들과 개고기를 먹는것이었다.
너무나 순식간에 내 눈 앞에서 벌어진 삶과 죽음을 오간 개를 보며 나의 주인은 누구인가를 심각하게 생각했다. 그 날 밤 잠을 자려는데 그 개의 이미지가 떠오르며 생각한 것이, “사탄은 인간을 이용하고 현혹하여 결국 영원한 죽음으로 이끄는 마치 개 주인과 같은것이다.” 나의 주인은 누구인가?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시기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내죄를 사해 주시고 영생을 주셨으며 천국을 보장해 주심에 감사와 찬양을 드리며 평안한 단잠을 잤다.
하 ...이럴수가... 섬뜩합니다.
어쩜 오늘 말씀과 딱 맞아 떨어질까요.
누굴 주인으로 섬기느냐에 따라 결말이 어떻게 달라는질지 !!!
스크립트는 왜 안될까요?
요한3,15)"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
믿는사람 ; 무엇을 믿어야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지 예수님이 말씀 하십니다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 "(요한6,53)
예수님을 믿는 믿음과 예수님의 살과피 (성체) 를 연결시켜야 합니다
가톨릭 교회의 사제가 빵과 포도주를 축성하면 진짜 예수님의 살과피라고 믿는게 믿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