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감사합니다. 1951년 4월 15일(주) 밴플리트 중장이 진해 공항에 도착하여 국부 이승만 박사를 접견하고, 중공군의 제3차 서울 점령 공세를 막아내기 위해 서울로 올라가 미 제1군단 군단장(밀번 소장이 바로 전에 중장 진급)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미 제1기병사단(사단장 Parlmer 소장, 맨 마지막에 나오는 장군) 예하에 배속된 그리스도 스파르타 대대를 방문하는 영상입니다. 바로 직전 3월 25일(주)이 부활주일이었기 때문에 기독교 국가 그리스 대대는 부활절 예배와 행사를 가졌고, 그래서 삶은 계란을 나눠먹는 행사를 하신 것입니다. 밴플리트는 제2차 세계대전 후 그리스 군정사령관을 지내면서 공산주의를 제압하고 자유민주주의를 건국한 그리스의 국부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나중에 밴플리트 장군은 박정희 대통령과 정주영회장에게 그리스의 선박왕 '리바노스' 회장을 소개시켜주어 조선사업을 성공하게 합니다.
@@백대현-g1j 1945년 10월 16일(금) 이승만 박사가 33년 만에 환국하시면서부터 백성들로부터 대한민국이 건국도 되기 전부터 '국부(國父, THE FOUNDING FATHER)'라고 칭송을 받으셨고, 이승만 박사가 맥아더 원수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임정의 김구 선생 일행'을 입국시켰습니다. 김구 선생이 입국하여 자신의 지지자들로부터 '국부'라고 호칭하자 김구 선생은 '국부'는 오로지 자신이 형님과 같이 여기는 이승만 박사 한 분 뿐이라고, 자신에 대해서는 그렇게 호칭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이것은 중공군의 기습개입으로 두번째 1.4후퇴 때 서울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중공군을 격퇴하고, 3월 15일(목) 국군 제1사단(사단장 백선엽 준장)이 서울을 탈환하자 다시 피난민들이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모습입니다. 중공군의 제3차 서울 점령을 위한 춘계 공세가 있었지만 연합군과 국군이 필사적으로 막아냈습니다. 이 때 일부 다시 제3차로 서울을 피난한 시민들이 있기는 했지만 사진이나 영상으로 기록을 남길 수준을 아니였습니다.
가슴이 아픕니다 우리 조상님들
이런 귀한 자료 많이 퍼트려야
합니다.
장군님이 여유가 넘치고 밝아서 좋네요.
영상을 시청하면서 마음이 너무도 아픕니다. 정치 지도자들의 오판과 무능 무책임으로 피를 쏟으며 고통을 받는 것은 백성들뿐. 일제 강점기, 38선 분단, 한국전쟁, 남북분단... 잊어서는 안되는 치욕과 비극의 역사.
임진왜란, 병자호란 기타등등 다 그렇죠 민초들만 뺑이 치네요
단 한마디.."멸공!"
전시 중 전날 비라도 온건지 한발자국 내딛기도 힘든 뻘밭을 나이드신 장님이 쑥쑥 벗겨지는 고무신을 신고 걷는다...
정말 상상만해도 끔찍한 현실입니다
다시는 이땅에 전쟁이 없기를 .....우리 군대를 잘 키워야 합니다. 미국및동맹국들의 은혜를 잊지말아야 할것입니다..
끊어진 한강철교가 멀리 보이는데...가족들과 같이 발이 묶여 있는 당시 피난민들의 심정이 얼마나 참담했을지...
찢어진 고무신 신은 눈먼 할머니가 손녀 등을 잡고 진흙길을 걸어가는 모습이 너무 슬픕니다.
외세를 등에 업고 동독의 가슴에 총질을 한 김일성의 죄과를 기억합시다.
ㅠㅠ 추운 겨울 이였죠... ㅠㅠ
그때 그시절이
이런걸 옛날처럼 반공 교육용으로 써야하는데
밴 플리트 장군님 웃고 계신 모습을 이 영상에서 보네요.
전쟁 후에도 한국을 위해 해주신 많은 것들을 기억하겠습니다.
한국전쟁에 지원해 실종된 그의 외아들 지미 밴 플리트 중위님께도 감사합니다.
나도 직접격지도 않은 전쟁이지만 나태어나기 전 십년도 않되 발발된 전쟁이며 아직 70여년 밖에 않된 전쟁입니다 더구나 끝난전쟁이 아닌 휴전이며 비극의 역사입니다 헌데 감상적으로 동족상쟁의 6.25를 인식시켜 안보의식을 뭉게다니...전쟁이 정치로 이용할 문제입니까!
영상 감사합니다.
1951년 4월 15일(주) 밴플리트 중장이 진해 공항에 도착하여 국부 이승만 박사를 접견하고,
중공군의 제3차 서울 점령 공세를 막아내기 위해 서울로 올라가 미 제1군단 군단장(밀번 소장이 바로 전에 중장 진급)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미 제1기병사단(사단장 Parlmer 소장, 맨 마지막에 나오는 장군) 예하에 배속된 그리스도 스파르타 대대를 방문하는 영상입니다.
바로 직전 3월 25일(주)이 부활주일이었기 때문에 기독교 국가 그리스 대대는 부활절 예배와 행사를 가졌고, 그래서 삶은 계란을 나눠먹는 행사를 하신 것입니다.
밴플리트는 제2차 세계대전 후 그리스 군정사령관을 지내면서 공산주의를 제압하고 자유민주주의를 건국한 그리스의 국부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나중에 밴플리트 장군은 박정희 대통령과 정주영회장에게 그리스의 선박왕 '리바노스' 회장을 소개시켜주어 조선사업을 성공하게 합니다.
국부?
@@백대현-g1j 1945년 10월 16일(금) 이승만 박사가 33년 만에 환국하시면서부터 백성들로부터
대한민국이 건국도 되기 전부터 '국부(國父, THE FOUNDING FATHER)'라고 칭송을 받으셨고,
이승만 박사가 맥아더 원수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임정의 김구 선생 일행'을 입국시켰습니다.
김구 선생이 입국하여 자신의 지지자들로부터 '국부'라고 호칭하자
김구 선생은 '국부'는 오로지 자신이 형님과 같이 여기는 이승만 박사 한 분 뿐이라고,
자신에 대해서는 그렇게 호칭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미국의도움이 없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고있을지?
아주 귀한 자료 잘봤습니다. 피난가는 우리 국민들이 너무 불쌍하군요. 다 공산당 때문입니다.
미군이않니면 전쟁도없다 중국이나 베트남 한국이나 내전은 미국때문이다
귀여운 소녀 감사합니다
세상에~ 처음봐요.
충격적이네요!!
영상에서 4성급 장성은 미군의 올워드 밴프리트 장군같은데 얼굴이 많이 비슷함 매튜 리지웨이 장군은 아닌것 같고
8군 사령관 밴 플리트 장군이네요.
너무나 불쌍한 우리 선조들입니다. 우리는 자나깨나 멸공해야합니다
이것은 중공군의 기습개입으로 두번째
1.4후퇴 때 서울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중공군을 격퇴하고,
3월 15일(목) 국군 제1사단(사단장 백선엽 준장)이 서울을 탈환하자
다시 피난민들이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모습입니다.
중공군의 제3차 서울 점령을 위한 춘계 공세가 있었지만 연합군과 국군이 필사적으로 막아냈습니다.
이 때 일부 다시 제3차로 서울을 피난한 시민들이 있기는 했지만 사진이나 영상으로 기록을 남길 수준을 아니였습니다.
그때 그시절이 지금에 부칸 현실아다
이런 고통과 불행이 누구 때문인가요 ?
서울특별시 전쟁이
지금에 부칸 현실이 지금이나 그때 그시절이나 똑간다 부칸 현실이 지금이나 그때 그시절이나 그게 그거다
지금 우리나라는 아직 휴전상태이고
언제 북괴로부터 미사일이 날아올지 모릅니다
그런데 멸공이란 말이 그렇게 불편한겁니까? 노재팬하듯이 이게 불매한다는 사유가 됩니까?
멸공 승공 반공
이정신은 우리삶에 자연스레 녹아있어야하거늘..
새서
이러한역사를 겪고안고있는 우리가 친북종북이 웬말인지 정신차립시다
저꼴을 직접격지않았다고 지금 우리네 하는골값들봐봐. 신세계 회장 멸콩 메세지가 뭐겠어.? 거기에 개지뢀떠는 민주당 꼬봉들 퐈이링~~^^
저런 시절였으니 군으로 인해 수많은 무고한 인명 피해들이 발생했지
무슨 헛소리...?
저할머니는 눈먼봉사같은데?
예수는 사탄의 권세를 깨뜨리고
그대의 죄와 저주를 해결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입니다. 그대가
예수를 믿으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영원히 해방되고 천국의 백성이 됩니다. 예수를 믿고 영접하세요.
부모님.세대의 고통을
안다면.. 친북할수 있을까.
멸공으로.자주국방해야하고..동란후.잿더미에.경제부흥시킨.박정희대통령을
생각하면.나라지키는데
.좌파들을. 조심해야한다
이 전쟁 또 하자고?
윤석렬 정신차려라
제발 전쟁 생각하지 말고 평화만 생각하자
선제 타격? 군대도 면제인 니가 뭘 안다고 ...
그러게 말입니다 우리가 선제타격하면 그 빨갱이 넘들이 가만있겠어요 수도권에만 2000만명이 밀집해 살고있는 나라에서 말이 안되는 소릴하고 있은니 어처구니가없습니다 군대도 멀쩡해 보이는데 미필자가 ㅉㅉ
어려웠던우리의역사를젊은이들이여알아야합니다ㅡ자꾸퍼주면큰이납니다나라가잘살아야후대가어려워지지않겠지요생각을깊히해야합니다
왜 이런 비극이 생겼을까요?
이씨 조선 때문입니다.
공산주의도 알본도 아닙니다.